러너스하이 와서 저땐 다쳐도 본인은 잘 모른다더라고
살짝 머리가 멍하다 해야 하나, 기억이 제대로 안 난다던데
그러니까 어쩌면 백호도 산왕전에서 좀 그러지 않았을까
그 와중에도 통증을 느낀 거 보면 진짜 많이 아팠겠다...




내 영광의 시대는, 지금입니다.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하는 백호도, 그런 백호를 도발하듯 코트로 이끄는 태웅도, 그 누구도 말리지 못했다.
아니.. 말리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등을 떠밀어 내보내고야 말았다.
그 결과, 결국 백호는 시합이 끝나고 기념사진을 찍자마자 탈진해서는 병원으로 실려갔다.
앰뷸런스를 기다리던 그 짧은 순간 동안 내내 질러대던 고통스런 비명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들러붙어 있다.

"재중 군, 난... 내 선택은.... 제대로 된 건가?"

난 또 누군가의 인생을 내 멋대로 망쳐 버린 게 아닐까.
앞날이 창창한 선수의 새싹을 내 손으로 꺾어 버린 걸까.

차마 병원에 따라가지조차 못한 채 경기장 뒤편 구석진 곳 계단에 앉아 손만 덜덜 떨고 있는 안 감독의 곁에 누군가 털썩 주저앉았다.

"어차피 무슨 수를 써도 감독님은 강백호 저 고집 못 꺾었습니다."

따뜻한 녹차가 손에 쥐어진다.
녹차 캔을 쥔 손을 부드럽게 감싸쥐고 있던 수겸이 씩 웃으며 차게 식은 한수의 손등을 토닥였다.

"감독님 선수였을 때 기억 안 나세요? 프로리그 2년차 때, 경기 중 무릎 십자인대 끊어먹고도 풀타임 뛰셨어요. 국대 경기 때, 늑골 두 곳 금 간 채로 세 경기를 죄다 내리 승리로 이끄셨잖아요. 죽어도 코트에서 죽을 거라면서. 아마 강백호도 그 땐 그랬을 겁니다. 저 이래봬도 감독님 팬이에요? 감독님 선수 시절 난리쳤던 흑역사 다 압니다."
"김.. 감독."
"에이, 제가 무슨 감독입니까. 그냥 편하게 부르세요."

수겸이 한숨을 길게 쉬며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저도 플레이 스타일 험해서 저 기분 알아요. 저 순간은 정말 주체할 수가 없단 거. 이성은 말려야 한다고 외치는데, 그런데 뇌가, 입이, 딴 소릴 해요. 나가! 나가서 이겨! 실컷 뛰어!! 이 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오더라고요. 그래도 선생님은 말리려고 시도는 해 보셨잖아요. 전 아직 그것도 못 합니다."
"...그야, 젊으니까."
"..그게 칭찬은 아니죠. 감독인데요."

수겸의 농구화 끝이 지익- 하고 바닥을 긁었다.
머리를 쓸어넘긴 아래로 울퉁불퉁 꿰매진 흉터 자욱이 드러났다.

"저 이거, 아세요?"
"알지. 봤네, 그 자리에서."
"그럼 그 난리통도 보셨겠네요."

소리죽여 웃은 수겸이 상처 위를 매만지며 툴툴대기 시작했다.

"아니 사실 전 이거 기억 하나도 안 나거든요. 기록이랑 사진이나 비디오가 남아 있으니 아 내가 저때 저 난리를 부렸구나 하는거지, 전 정말 기억 속에 아무 것도 없어요. 저 저 날 머리에서 피 철철 흘리면서도 다친 줄도 모르고 계속 뛰겠다고 고집부렸다면서요. 우리 감독님 저 뒤로 곧바로 사직서 내셨단 소문 한참 돌았는데. 저 하는 거 보고 학이 떨어져서는."
"응... 심하긴 했지."
"그 정도였나요? 우와아..."

어이없다는 듯 허벅지를 치며 웃던 수겸이 두 손을 깍지낀 채 한수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걔들도 그랬을 겁니다. 그 땐 누구도 못 말려요. 그게 감독님 탓만은 아니라고요. 아시잖아요, 그 기분.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지금이어야만 한다는 감각이요."
"...그래도, 하지만..."

긴 한숨 소리를 듣던 수겸이 제 엄지손톱을 틱틱 튕기며 질문했다.

"그럼 감독님은요, 그 때로, 본인이 다쳤던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경기 포기하실 건가요?"

틱, 틱, 틱, 틱, 틱.

시계의 초침이 돌아가는 것 같은 소릴 듣던 한수의 고개가 천천히 가로로 움직인다.

"...아닐 걸세."
"그렇죠. 우리도 다 똑같습니다."

그 사이 얼마나 뜯어 댄 건지 수겸의 엄지손톱엔 거스러미가 잔뜩 일어나 있었다.

"그 정도 고집은 있어야 운동 쭉 하는 거죠. 그리고 강백호는 분명 코트로 되돌아옵니다."
"자네가 의사도 아닌데 그걸 어찌 장담하지?"
"글쎄, 감독이긴 해도 아직은 현역 선수니까요? 그냥 제 눈엔 그렇게 보여서요."

능청스럽게 받아치는 수겸의 말에 한수도 결국 웃고야 말았다.

"그래, 돌아와야지. 돌아와야 해."
"강백호 기다리는 친구들이 사방에 많습니다. 꼭 올 거예요."

마주 웃는 수겸을 쳐다보던 한수가 살짝 입매를 찡그렸다.

"상양은 참 좋은 감독을 뒀구만. 어린데도 이 정도로 시야가 넓고 사람을 챙길 줄 아니."
"북산이 더 행운 아닙니까. 오실 거면 저희 학교나 오시지. 그랬으면 저도 선수 생활이 더 편했을 텐데요."

패배의 부채며 피로를 어깨 위에 덕지덕지 얹은 어리디 어린 라이벌의 투정에 한수가 조용히 손을 뻗었다.
등을 두드리는 손길이 다정하기 그지없다.

"선생님."
"왜 그러시나."
"저 진짜 선생님 딱 한 번만 이겨 보고 싶은데요."
"선수로서, 아니면 감독으로서?"
"둘 다요."

억울하다는 목소리에 한수가 웃으며 답했다.

"내가 오래오래 건강해야겠구만. 김수겸 감독, 힘 내시게."
"아알겠습니다아아."





#슬램덩크 논컾
2023.05.12 15:14
ㅇㅇ
모바일
미친 센세 글 웰케잘써??
필력 미친거아님?
ㄹㅇ 경기장 복도에서 대화 엿들은거같음...
[Code: 91a2]
2023.05.12 19:41
ㅇㅇ
모바일
헐... 헐....... 센세.... 고마워 올려줘서 정말 고마워
[Code: cf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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