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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1 19:24
ㄱㅇㅇㄱㅁㅇ 노래 왼손잡이 듣다 든 생각임
너만 왜그래? 란 말 더럽게 많이 듣고 살았을 거 같은데 그런 애한테 또 선수겸 감독이란 힘든 롤을 주냐ㅠㅠㅠㅠㅠㅠ




ㅡ 아이, 야!

저 소릴 오늘만 몇 번을 듣지.
조막만한 머리로 숫자를 세 본다.

노래에 맞춰 아침 체조 율동을 하다 친구와 부딪혔을 때.
크레용으로 밑그림에 맞춰 색칠을 하던 때.
점심 시간에 팔이 부딪혀 옷을 더럽혔을 때.
심지어는 낮잠을 자다 뒤척이던 중 팔을 휘둘러 옆에서 자던 친구를 건드렸을 때.

세기도 어렵다.
그 전에 이걸 왜 세고 신경써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그런 거 신경 안 쓰던데, 왜 나만?

머리가 아프다.
그냥 집에 가고 싶다.
하지만 집엔 아무도 없는데.
내가 울면 아빠도 엄마도 다 걱정하며 슬퍼할 텐데.
어쩌지.

눈가가 뜨거워진다.
애들 앞에서 우는 건 죽기보다 싫은데.

그 순간, 누가 내 왼손을 확 잡아채 들어올렸다.

ㅡ 너희들이 한 뼘씩 피하면 되지. 수겸이 왼손 쓰는 거 다 알잖아. 알면서 딱 붙어 앉아 놓고 건드렸다고 왜 뭐라 해? 수겸이는 너희보고 뭐라 한 적 한 번도 없어. 맨날 기죽어서 미안해 미안해 우는 소리만 했지. 너희는 얘한테 사과 해 본 적 있어? 부딪혀서 미안하다, 방해해서 미안하다 해 본 적 있어? 야, 너 잘못한 거 없어. 사과하지 마. 너도 그냥 대들어. 소리쳐. 싸워. 그리고 이겨. 내가 네 편 해 줄게. 착한 사람 괴롭히면 안 된댔어.

태어나면서부터 쭉 옆집에 사느라 익숙해진 친구의 단호한 손길에 발뒤꿈치가 들릴 정도로 손이 번쩍 들려진 순간, 내 정신도 번쩍 들었던 모양이다.

ㅡ 안 울어.
ㅡ 그래. 넌 웃는 게 제일 예뻐.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손길에, 나보다 한 뼘은 큰 그늘에, 간신히 마지막 울음을 지워낼 수 있었다.



ㅡ 뭐 하냐. 쉬는 시간마다.
ㅡ 손 닦잖아.

왼손으로 펜을 쥔 상태로는 어떻게 해서든 필기를 하면 손이 필기를 한 곳 위를 문대 지나가며 더러워질 수 밖에 없다.
때로는 스스로 쓴 글씨마저 알아보기 어려워 골머리를 앓고, 수업 시간마다 불려나가 혼이 나기 일쑤였다.

그 모습을 쭉 지켜보던 현준이, 같이 농구를 마악 시작했던 초등학교 3학년 즈음의 생일날 새벽, 엄청나게 무겁고 커다란 박스를 낑낑대고 밀고 와 대문을 두드렸다.

ㅡ 어? 뭐야 너, 이 시간에?
ㅡ 어후 무거워.. 이거, 네 거. 생일선물. 생일 축하해.
ㅡ ...어?

박스 안에 든 건 예스러운 전통지로 묶인 노트였다.
....세로줄 방식의.

ㅡ 이건 오른쪽 끝에서부터 왼쪽으로 쓰는 거니까 너도 종이나 손 안 더럽히고 글 쓸 수 있대. 부모님이 그러셨어. 다 써 갈 때쯤 되면 얘기하래. 더 구해다 주신다고.
ㅡ 근데 이걸 왜...?
ㅡ 어...?

현준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 곧 싱긋 웃었다.

ㅡ 해 주고 싶어서.
ㅡ 어, 어?
ㅡ 너 예쁜 손, 계속 예쁘게 가지고 있으라고. 나 농구할 때 네 손 진짜 좋아해. 정말 예뻐. 계속 보고 싶어.

순수하게 웃으며 건네는 진심에 목 언저리가 콱 틀어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ㅡ 또 혼자 밥 먹지.

옥상에서 도시락을 펼치자마자 등 뒤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ㅡ 교실에선 매번 부대껴서 싫단 말야.
ㅡ 나 부르라니까.

맞은편에 털썩 앉은 현준의 손엔 오늘도 편의점 비닐봉투가 들려 있었다.
오늘은 멜론빵과 우유다.

ㅡ 넌 그런 거 먹고도 잘만 컸다?
ㅡ 유전인가보지. 우리 부모님 두 분 다 크시잖아.

태연하게 빵 비닐을 뜯는 현준의 입가에 조금 쓸쓸한 미소가 맺힌다.
늘상 내가 최우선이라 새벽마다 운동한다는 아들 때문에 도시락을 두 개씩 싸는 것도 당연히 생각하고, 학교에 무슨 행사가 있으면 일을 쉬고 꼬박꼬박 참가해 주시는 우리 부모님과 달리, 현준의 부모님은 일 관계로 바쁜 대신 거의 그 모든 걸 돈으로 해결해 주신다.
물론 가끔 뵙는 모습을 보면 현준에게 관심이 없는 건 아니다.
그저 정말 절실하게 시간이 없어 안타까운 거지.

ㅡ 야. 받아.
ㅡ 뭔데.
ㅡ 우리 엄마가 싸 주셨다. 너 주래.
ㅡ 날? 왜?
ㅡ 좀 그냥 입 다물고 먹으면 안 되니?

지나가는 말로 저녁 식사 시간에 저 얘길 했더니, 부모님은 흔쾌히 도시락을 두 배로 싸서 안겨 주셨다.
네 덕에 엄마랑 아빠가 아침에 10분이라도 나란히 서서 요리를 하며 다정하게 얘기를 나눌 시간이 생겼다고, 기분 좋게 웃으시면서.

ㅡ 너 많이 먹고 많이 크란다.
ㅡ ...아니 여기서 얼마나 더 커야 돼.... 벌써 189던데...
ㅡ 나도 몰라.
ㅡ 뭐, 감사하다고 전해 드려라.

어색하게 웃으며 도시락을 받아드는 현준을 보고 마주 미소지었다.
이 시간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도시락을 순식간에 절반 정도 비운 현준이 고개를 들어 이쪽을 바라본다.

ㅡ 너, 상양 스카웃됐다며?
ㅡ 응. 넌 다른 데 갈 거지?

잠깐 허공을 보고 고개를 갸웃 하던 현준이 씩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ㅡ 나도 며칠 전 거기 스카웃 제의 들어왔어.
ㅡ 응? 아니 그런데 너...

선생님들이 명문고에 진학시킬 1순위로 꼽는 성적 톱랭크에 있는 애가 갑자기 농구부 스카웃 진학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멍해진 귓가에 현준의 목소리가 웅웅 울린다.

ㅡ 너랑 계속 같이 있고 싶다. 넌 싫어?
ㅡ 어? 아, 아니, 그건 아닌데, 아니 그래도 너...
ㅡ 안 싫은 거면 됐다. 끝. 자, 밥 먹자. 종 칠라.

부지런히 젓가락을 움직이는 현준의 모습을 보느라 결국 그 날 점심 도시락은 채 반도 비우지 못했다.

첫 번째 고백이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사귀게 된 그 뒤로 진학 관련 이슈에 대해서만은 꽤 긴 다툼이 있었지만, 결국 우리는 나란히 상양에 진학했고, 여전히 부대끼며 치열한 3년을 보냈다.



내 앞에 내밀어진 오른손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방금 전 현준이 반지를 끼워 준 왼손을 내려다보고, 현준의 눈을 바라보았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따뜻한 시선.

ㅡ 반대쪽.
ㅡ 아니. 난 여기.
ㅡ 왜 또 고집이야.

살짝 골을 부리자, 현준이 오른손을 들어 내 왼손을 맞잡는다.

ㅡ 둘 다 많이 쓰는 손. 맞잡으면 서로 닿을 수 있는 손. 그러니까 나도 이쪽. 됐지?

저 머리 쓰는 기술은 어디 안 가는지. 하여간에 둘러대긴 예전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하다.
결국 웃으며 내민 오른손의 네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끼운다.

ㅡ 나 떠나기만 해 봐. 죽여버릴 거야.
ㅡ 난 네가 나 떠나면 나부터 죽어버릴 거다.

역시나 한 술 더 뜨는 넉살에 모인 사람들이 죄다 웃음을 터뜨리며 야유를 보낸다.

이렇게 내 삶의 스무 번째 봄이 시작되었다.
아마도 더 이상은, 왼손이 외롭지 않을 그런 시간이.



#슬램덩크 하나후지 현준수겸
2023.05.01 20:1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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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흑 너무 달아요 선생님... 어렸을때부터 수겸이 지켜주는 현준이랑 자연스럽게 결혼까지 골인하는거 현준수겸 바이블이지 ㅠㅠㅠㅠㅠ
[Code: 8bb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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