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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9 16:46
초등학교 4학년인가 5학년인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확실한 건 열 살을 넘겼을 무렵이었다.
학교나 집 근처가 아니라 조금 먼 동네에 갔을 때, 어디선가 시비를 거는 목소리가 들렸다.

- 그 키로 잘도 농구를 하겠다.

농구, 란 단어에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보니, 저쪽 길 건너편에 있는 농구코트에 아이들 몇 명이 보였다.
개중 다른 아이들에 비해 한 뼘 이상 작아 보이는 한 아이의 머리를 누가 기분나쁘도록 툭툭 치며 웃었다.

- 농구 얼굴로 하는 줄 아나. 계집애같이 생겨서는.

농구랑 신장까지는 이해하겠지만, 농구랑 생긴 게 무슨 상관이라고.
원숙한 외모 탓에 다른 결로 비슷한 상황을 많이 겪어 봤던 정환이 순간 발끈 해서는 길을 건너 코트 쪽으로 다가가는데, 방금 전 머리를 맞았던 애가 씩 웃는 게 보였다.

- 그래. 말 잘 했다.
- 어어, 어? 야..! 수겸아!

그리곤 말릴 틈도 없이 뒤에 머뭇거리며 서 있던 한참 키 큰 애가 들고 있던 농구공을 빼앗아 든 아이는, 공을 정확히,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방금 전 제 머리를 때린 아이의 얼굴에 집어던졌다.

- 아악!!
- 농구 얼굴로 자~알 하네. 노 바운드 패스인데 왜. 아직 정신 안 들어? 한 게임 더 해 봐?
- 수겸아, 제발 그만...
- 아, 이거 놔! 우리 엄마아빠가 이런 걸로 시비 걸릴 때 치료비랑 합의금 내 주려고 매일같이 나가서 죽어라 돈 버신댔어!! 어디 가서 지고 질질 울고 올 거면 집에 기어들어오지도 말라고!!
- 야, 야, 가라 제발. 그러게 왜 선배한테 겁도 없이 대드냐. 얘가 너희보다 두 살 더 많다니까. 이제 곧 열한 살이라고.

농구공에 맞아 얼굴이 벌겋게 붓고 코피를 줄줄 흘리던 아이가 결국 서슬에 못 이겨 울며 도망치고 나서도 한참을 씩씩대던 그 작은 아이는 그제서야 정환을 알아차린 듯 홱 돌아보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 왜. 그쪽도 나한테 시비 걸러 왔어?
- 아니. 아까 쟤가 너 괴롭히는 것 같아서 말리러 왔는데, 굳이 말릴 필요가 없었네.

피묻은 농구공을 집어든 정환이 옷소매로 공에 묻은 핏자욱을 꼼꼼히 지운 뒤 내밀자, 상대는 채가듯 공을 받아들었다.

- 저런 놈들은 초장에 기를 콱 꺾어 놔야 다음에 또 안 덤비지. 왜들 그렇게 생긴 걸로 시비야. 농구 실력도 아니고.
- 뭐, 예쁜 건 예쁜 거니까.
- 뭐?
- 수겸아, 좀 진정해라.

익숙한 듯 재빨리 뒤에서 예쁘장하고 작은 아이를 꽉 잡는 키 큰 친구의 모습에 정환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 아냐. 나도 비슷한 소리 많이 들어서. 얼굴로 농구하냐고. 성적 잘 나오게 나이 속이고 하위 리그 뛰는 거 아니냐면서.
- ...응?
- 나 초등학생이야.

툭.
들고 있던 공이 발치에 맞고 떼구르르 굴러간다.

- 중학생, 아니었어? 요?
- 거 봐. 너도 똑같은 짓 하네.
- 아, 미안. 어우 놀래라. 현준아, 너같은 애가 여기 또 있다.
- 난 갑자기 거기 왜 끼워넣어...

얘기하는 걸 들어 보니 저기 저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애도 같은 나이인 모양이다.
굴러간 공을 주워든 정환이 가볍게 드리블을 시작했다.

- 해 볼래?
- 주제에, 덤비냐?

킥 하고 웃은 수겸이 금방 몸을 낮춰 수비 자세를 취하자, 정환의 손에서 공이 점점 빠르게 튕겨올라갔다.
결국 세 사람이 서로의 이름을 알게 된 건 그로부터 약 두 시간이 지난 다음이었다.

그렇게 중학교에 진학한 뒤로도 수겸의 지독한 외모 컴플렉스는 계속됐다.

- 커흑, 큽!

무슨 비스크돌이라도 되는 양 무거운 레이스가 빼곡한 드레스를 온 몸에 두른 채 다가오지 말라는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서 있는 수겸을 발견한 정환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웃음을 삼켰다.

- 웃지 마. 짜증나.
- 뭐야 그 꼴.
- 몰라. 학교 문화제 홍보를 왜 이 꼬라지로 하래. 이러고 동네를 어떻게 돌아다녀.

그런데 심각한 건 그 꼴이 진짜 잘 어울린다는 문제다.
화려한 드레스와 딱 맞는 아직 덜 자란 중성적인 외모 하며 벌크업이 채 안 되어 호리호리한 체형이 눈길을 확 끄는데, 저 정도면 없던 관심도 생길 지경이다.
수겸이 들고 있던 전단지의 절반을 정환에게 턱 안겼다.

- 야, 돌려.
- 손님한테 별 걸 다 시킨다.
- 손님은 무슨.
- 성현준 시켜라.
- 걔 집행위원회라 바쁘다. 학생회장이잖아.
- 능력도 좋다. 농구 하면서 학생회도 하냐.
- 응. 걔 능력 좋아. 그러니까 지금까지 데리고 다니지. 야, 가자.

걷기 불편한지 촥 걷어올린 치마 아래로 레이스 스타킹을 잡아문 가터벨트가 야무지다.
또각대는 하이힐 소리가 멀어지는 걸 들으며 숨죽여 웃던 정환이 곧 털고 일어나 전단지 뭉치와 함께 수겸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된 지금도 여전히.

- 아 진짜. 확 수염 기를까.
- 수염 같은 소리 한다. 솜털밖에 안 나는 게.
- 약올릴래.
- 사실적시다.
- 사실적시적 명예훼손이란 것도 있다.
- 그럼 적어도 사실 인정은 한다는 거네.
- 이정환, 적당히 하즈아.
- 야 성현준 어디갔냐. 와서 김수겸 말려라.
- 나 바쁘다. 너희 둘이 알아서 해.

오늘 하루만 길거리에서 세 번이나 헌팅을, 심지어 남자에게서 당한 수겸이 거울 앞에서 제 얼굴을 뜯어보며 성질을 내는 걸 보던 정환이 끅끅대고 웃으며 수겸의 등을 때렸다.

- 야, 나 아까 커피 살 때 못 들었어? 거기 사장님~ 시키신 카페라떼 나왔습니다~ 하는 거. 그래도 나보단 어리게 봐 주는 네가 낫지.
- 네가 내 입장을 안 겪어봐서 그러는 거야...
- 너도 내 입장 안 겪어 봤으면서.
- 아니, 난 쟤 덕에 간접체험은 실컷 했지.

수겸의 시선 끝에 머무르는 현준의 등을 본 정환이 차마 웃음을 참지 못하고 소리내어 웃고 말았다.

- 진짜.. 농구 얼굴 가지고 하는 거 아닌데.
- 이젠 그냥 얼굴로 한다고 하고 싶다. 그래도 넌 잘생겨서 좋겠다. 부럽네.
- 넌 그 소릴 네 남편한테나 좀 해 줘라. 애가 불쌍하지도 않니?
- 쟤는 그냥 이목구비가 있을 자리에 주차를 적당히 잘 한 거고. 넌 그린 듯이 잘 생긴 미남이잖아. 급이 아예 다른데.
- ...넌 거울을 너무 많이 봐서 미의 기준이 남다른 거야... 성현준 정도면 어디 가서 빠진다는 소리 안 듣는다.
- 저게?
- 어. 저게.

두 손가락이 가리키는 저것이 드디어 듣다듣다 인내심이 폭발한 듯 책상을 쾅 내리쳤다.

- 야!! 거기서 그러고 떠들 거면 집에들 가!! 남 시험공부 훼방놓지 말고!!!
- 아, 집에 가면 엄마가 잔소리해서 귀찮다고오~~!!
- 김수겸이 잡아 두는 건데? 난 가라면 간다.
- 아아~ 가지 마아~ 쟤 공부한다고 나랑 안 놀아 주잖아아~~!!!
- ...란다.
- .....웬수들아.

빠드득 이를 간 현준이 책을 탁 덮고 일어나 소파에 나란히 앉은 정환과 수겸의 목을 조르듯 팔로 감쌌다.

- 나란히 죽어라 이것들아.
- 아악! 악! 야! 여보! 말로 해, 말! 말!!
- 커흑, 너 팔 힘이.. 아, 항복, 항복!




#슬램덩크
2023.05.19 16:50
ㅇㅇ
모바일
초딩때부터 중딩소리듣던 정환이형ㅋㅋㅋㅋㅋㅋㅋㅋ ㅠㅠ
[Code: cdc4]
2023.05.19 16:56
ㅇㅇ
모바일
아 귀여워ㅋㅋㅋㅋㅋㅋㅋ 수겸이 정환이 중학생인줄 알았으면서도 냅다 반말 갈겨놓고 아니라니까 그제서야 요 붙이는거 너무 귀엽다ㅠㅠ 셋 다 얼굴은 제각기 다르게 잘생기고 이쁘지만 그냥 동갑 애샛기들인거 너무 좋음ㅜㅜ
[Code: 878a]
2023.05.19 19:35
ㅇㅇ
모바일
아 진짜 너무 ㄱㅇㅇ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ode: fa2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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