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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4 15:50
아침 일찍 눈을 치워 둔 길 위로 또다시 얊고 흰 카펫이 깔리고 있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에 첫 발자욱을 남기느라 신이 난 호장이 혹시나 넘어질까 싶어 순순히 한쪽 팔을 내어 준 정환의 눈에 유독 저 혼자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감싸인 집이 들어왔다.

"다 왔다."

호랑가시나무와 포인세티아로 엮은 리스가 매달린 대문 앞에 선 정환은 호장이 매달려 있는 오른팔을 한 번 들썩 하며 넋을 잃은 호장을 돌아보았다.

"내가 들어 줄 테니 저기 대문 위쪽 화단에서 열쇠 좀 꺼내 줄래?"
"에에, 저기요?"

정환에게 허리가 잡혀 가뿐히 위로 들려져 보니 정말로 대문 위쪽의 화단 흙 위에 열쇠꾸러미가 놓여 있는 게 보였다.
호장이 얼떨떨해서는 가져온 열쇠를 정환에게 건네자, 정환이 열쇠에 엉겨붙은 눈을 털어내며 작게 투덜거렸다.

"조심성 없긴 여전하네. 하긴 3미터는 되는 저 위에 열쇠를 둘 거라고 누가 생각하겠냐마는."

대문 뒤로 펼쳐진 널찍한 마당을 지나 크리스마스 오브제가 놓인 현관문을 열어젖혔을 때 드러난 집 안은 더한층 크리스마스 분위기였다.
고개가 아프도록 올려다봐야 하는 높이의 트리 아래엔 오너먼트가 담긴 박스 두어 개가 놓여 있고, 마당으로 통하는 유리창 위 커튼레일엔 커튼 대신 겨우살이가 늘어져 있고, TV화면엔 모닥불이 타오르는 영상이 타닥타닥 소리와 함께 반복적으로 흐르고 있는, 어딘가 다른 세계 같은 공간.

"안 춥냐. 문은 활짝 열고."

등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 때까지 정환과 호장은 이 이질적인 공간의 분위기에 홀려 말을 잃고 있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쪽을 쳐다보았다.
현관 앞에 서서 머리며 어깨에 쌓인 눈을 털어내는 두 집주인은 미리 고지했던 드레스코드 - 빨강, 하양, 초록 - 에 딱 맞는 차림새였다.

"뭐야. 어글리 스웨터 세트냐."

코트 아래로 드러난 크림색 바탕에 루돌프 무늬 스웨터와 눈꽃무늬의 버건디색 스웨터에 정환이 실소를 터뜨리자, 방금 전 벗은 목도리며 장갑, 코트를 옷걸이에 걸던 수겸이 입꼬리를 슬며시 올리며 정환을 흘겨보았다.

"어머니 작품이신데."
"아, 우리 엄마 센스가 좀 그렇지."
"아니아니아니 그런 게 아니라-!!"

올해도 저 망할 친구 부부의 입담에 말려 버리고 만 정환의 리액션이 고장난 걸 본 호장이 다급하게 서포트를 시작했다.

"원래 이 시즌엔 어글리스웨터가 국룰이죠!"
"...애쓴다. 니가 고생이 많구나."

누가 봐도 그게 아니다 싶은 호장의 눈물겨운 방어에 수겸이 터지는 웃음을 참기 위해 이를 악물고 대꾸했다.
매년 있던 익숙한 티키타카였는데 이 상황을 처음 마주한 호장 혼자만 패닉에 빠진 걸 잠깐 구경하던 세 사람은 곧 익숙하게 업무분장을 시작했다.

트리 장식은 전호장.
풍선 불기엔 이정환.
부엌 담당 성현준에 잡무 겸 총지휘 김수겸.

미리 선물을 숨겨 둔 풍선에 핸드펌프며 헬륨봄베로 공기를 불어넣어 여기저기 띄우고 던져 두는 정환의 곁에서 호장이 현준의 어깨를 타고 앉아 쉬이 손이 닿지 않을 트리 위쪽 장식을 하고 있을 때.

"그래서 올해는 누굴 불렀는데?"

먹이사슬처럼 각자 친한 사람들을 불러오기로 한 룰을 떠올린 정환의 질문에 수겸과 현준이 동시에 대답했다.

"정대만!"
"변덕규."

수겸의 정대만 앓이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뜬금없는 변덕규에 정환의 표정이 오묘해지는 걸 본 현준이 허하게 웃으며 안아들고 있던 호장을 조심스레 바닥에 내려 주곤 어깨를 주무르며 대꾸했다.

"김수겸 픽 외모 취향이다. 변덕규, 채치수, 황태산, 신현철, 너희 팀 고민구도. 아무래도 같은 포지션들끼리 자주 붙기도 하고, 변덕규 있으면 내 일도 좀 줄어들 것 같길래."
"아아..."

즉슨 부엌데기 겸 얼굴마담이 필요하셨단 말이로군.
외형으론 그다지 빠지지 않는 축임에도 본인의 배우자 이상형과는 영 동떨어진지라 항상 찬밥 신세인 현준의 눈물겨운 몸부림에 정환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언제나 왁자지껄하던 크리스마스였지만 올해는 더 특별했다.

"거기 애기 강아지들, 나가서 정원에 쌓인 눈 좀 치워라! 뼈 시린 늙은이들은 집구석 정리나 하시고!"

수겸의 명령에 1학년 - 태웅, 백호, 호장, 경태 - 들은 밖으로 뛰어나가 눈사람을 만들기 위한 눈뭉치를 굴리기 시작했고, 3학년 - 정환, 치수, 준호, 대만, 덕규, 현준, 수겸 - 들은 마지막 남은 집안 장식이며 식사 준비에 달라붙었다.

그렇게 모두가 한창 바쁠 순간, 언제나 끼인 세대가 가장 힘든 게 현실이라.
멀뚱하니 서 있거나 안절부절 못 하던 2학년 - 태섭, 대협, 영수 - 들의 스위치가 갑자기 올라갔다.

"어욱, 뭐야!!!"

태섭이 느닷없이 던진 눈뭉치에 맞은 백호가 눈을 부릅뜨는 걸로 갑작스레 벌어진 눈싸움.
정원과 통하는 통유리창에 컬러마커로 그림을 그리던 치수와 준호가 눈쌀을 찌푸리며 서로를 마주보았다.

"유리 깨지는 거 아냐?"
"저녀석들은 정말..."

뛰쳐나가서 저걸 말려야 하나 고민하는 두 사람 사이로 수겸이 끼어들어 웃으며 둘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애들 잘 놀면 됐지. 그냥 둬라. 신났잖아."



대협의 낚시 하드캐리 덕에 풍성해진 덕규표 식탁.
태웅과 백호 덕분에 눈이 깨끗히 치워진 정원에서 벌인 바비큐 파티.
터뜨려서 발견된 선물은 모두 찾은 사람 몫이란 말에 정환과 대만이 죽어라 불고 띄워 둔 풍선이 무참하게 터져나가 아수라장이 된 거실.
준호가 가져온 캐럴 음악이 잔잔하게 흐르는 턴테이블 곁 TV에서는 크리스마스와 어울리는 간지러운 로맨틱코미디 영상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는 중이다.

한참 그렇게 웃고 떠들며 지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는데.

- 딩동

뜬금없이 울린 현관벨 소리에 수겸이 소파에서 일어나며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뭐야. 올 사람 다 온 거 아냐?"

그 때 사방을 둘러보며 손가락을 꼽아 손님을 세던 수겸의 말을 막은 사람.

"아, 내가 초대한 분이 있는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후다닥 일어난 대만이 현관문을 열자마자.

"홋홋호-, 메리 크리스마스-!!"

빨간색 스웨터 차림의 안감독님을 본 수겸이 그 자리에 다리가 풀려 주저앉거나 말거나 한수에게 달려가 안기는 대만과 언제나 그랬듯 영감님을 부르며 턱을 챱챱 두드리는 백호.

그 뒤로 경태의 초대로 온 남진모 감독과 덕규에게 듣고 온 유명호 감독까지 해서 크리스마스 모임은 갑자기 연말 송년회의 분위기를 띠게 되었다.

"이럴 때 노는 거지! 마셔, 마셔!"
"연말인데 계급장 떼고 놀아보자!!"
"허허, 분위기 좋구만, 응."
"아니 선생님들, 여기서 이러시면..."

곤란한 사람, 난감한 사람, 답답한 사람, 즐거운 사람, 행복한 사람, 들뜬 사람, 그냥 이 모든 게 다 좋은 사람까지.

해피 메리 크리스마스.
모두에게 사랑스러운 기억만 남을 오늘 하루이기를.


#슬램덩크
북산 해남 능남 상양 감독즈
현준수겸 정환호장 태섭대만 치수준호 덕규경태 태웅백호 대협영수
2023.12.26 15:37
ㅇㅇ
모바일
분위기좋타...
[Code: 85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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