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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4 16:07
졸업식이란 언제나 시원섭섭한 행사다.
떠나는 사람에게도, 남겨지는 사람에게도.
누군가는 활짝 웃고, 또 누구는 울먹이는 가운데 누군가를 찾듯이 주위를 둘러보던 정환의 앞에 큼지막한 꽃다발이 내밀어졌다.

"축하드립니다."

준섭이 내민 꽃을 건네받은 정환은 웃으며 손을 내밀어 준섭의 어깨를 두드렸다.

"해남을 잘 부탁한다, 주장."
"하하, 부담되네요. 제가 이정환의 빈자리를 과연 채울 수 있을까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젓던 준섭은 정환의 시선이 자신의 어깨너머쯤을 훑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등 뒤를 흘끗 돌아보았다.

"누구 기다리시나요?"
"아니, 별로."

입으론 아니라고 하지만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정환의 태도에 준섭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전원이 다 올 수는 없어서 대표로 저랑 호장이 둘이 왔는데, 선배들 교실이 다들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둘이 따로따로 다니고 있거든요. 아마 조금 있으면 호장이도 이쪽으로 오지 않을까요?"
"마지막 가는 날까지 군기 바짝 잡는 사람 만들 셈이냐."

여전히 마음에도 없는 소리나 하는 정환의 보기 드문 모습이 재미있어서라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싶던 준섭이었지만, 아직 인사를 하지 못한 선배들이 남아 있었기에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 전 아직 가 볼 곳이 남아 있어서."
"그래. 와 줘서 고맙다."

꾸벅 인사하고 발걸음을 돌린 준섭을 배웅한 정환은 아마도 준섭과 호장이 고심해서 골랐을 꽃다발을 내려다보며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 좋아합니다!!

인터하이가 끝나고 은퇴하던 날, 부실과 로커룸에 남아 있던 짐을 모두 정리해 나가려던 정환의 등 뒤로 쏟아진 고백의 말은 뒤돌아 나가려던 발을 묶어 두기에 충분했다.

호장의 기분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눈빛으로, 몸짓으로, 쉴 새 없이 전하는 감정은 정환 혼자만이 아니라 주위의 모두가 다 알아차릴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까.
그저 그 고백의 타이밍이 언제일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게 지금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

말없이 자신을 돌아보는 정환의 태도가 거절이라고 생각한 건지 호장은 두 눈을 꽉 감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 받아 달란 거 아닙니다! 그냥.. 그냥, 말하고 싶어서..

누군가에게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정환도 잘 알고 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을 위한 결심을 하기까지 쌓아 왔을 고민의 무게만큼은 충분히 심사숙고한 뒤 대답을 건네주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일 거란 생각에 정환은 그 자리에서 바로 답을 주는 대신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했었다.

그렇게 정환 나름대로의 결심이 설 때까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고른 D-DAY에 정작 대답을 들어야 할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니, 시간이 흐를수록 정환의 마음 속엔 초조함이 쌓여 가고 있었다.

이미 텅 빈 교실을 벗어나 사람들로 북적이는 운동장 한쪽에서 이리저리 서성대던 정환은 숨을 크게 한 번 들이키고는 바닥에 내려놓았던 꽃다발들을 집어들었다.
역시 기다리는 건 성미에 맞지 않는다.
가만히 서 있기보다는 직접 찾아나서기로 마음먹은 정환의 발걸음이 점점 조급해졌다.

1학년 교실과 자신의 반 교실, 로커룸, 부실, 체육관까지.
호장이 있을 만한 곳을 예측해 가며 여기저기 뒤져 보았지만, 호장의 모습은 커녕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었다.
이 정도면 일부러 피하는 건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든 정환이 호장을 찾아내지 않는 게 호장이 바라는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하며 걸음을 천천히 늦추었을 때, 등 뒤에서 묘한 기척이 느껴졌다.

하지만 홱 몸을 돌린 정환의 눈 앞에는 정환이 찾는 사람은 없었다.
하다하다 못해 이젠 헛발질까지 하는구나 하고 허탈하게 웃으며 사람들을 피해 복도를 걷던 정환의 발에 무언가 툭 걸렸다.
품 안 가득한 꽃다발로 가려져 있던 시야를 어렵게 확보해 내려다보니 구둣발 아래 운동화 한 짝이 밟혀 있었다.
뒤축이 구겨진 낯익은 운동화를 보자마자 정환은 운동화를 낚아채 들고는 계단 위로 뛰쳐올라갔다.
올라가는 도중 몇 명인가와 부딪힌 것 같았지만 제대로 사과를 할 시간마저 아까웠다.

마지막 계단참을 돌자마자 쾅 하고 옥상 문이 닫히는 게 보였다.
단숨에 뛰어올라가 손잡이를 당겼지만 반대쪽에서 잡아당기는 건지 문은 덜컹대며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하기만 했다.

"열어!"
"싫어! 안 돼요!!"

문 너머에서 필사적으로 소리치는 까스러진 목소리를 확신한 정환은 까드득 이를 악물고는 발로 벽을 짚었다가 차내며 체중을 실어 단번에 손잡이를 당겨 버렸다.

양쪽에서 당기는 힘을 이기지 못한 낡은 손잡이가 빠각 소리를 내며 부서져 빠져나가자, 삐걱대며 열린 문 틈새로 천천히 파란 하늘이 퍼져 간다.
부서진 문 손잡이를 내던진 정환이 숨을 헐떡이며 옥상으로 한쪽 발을 들이자마자,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호장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허겁지겁 뒤로 물러났다.

"오지 마! 저리 가요!!"
"전호장."
"싫어, 안 들을래! 나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으니까 제발 그냥 가 주면 안 돼요? 제발요..!"

이번엔 두 귀를 틀어막은 채 눈을 꼭 감고 애원하듯 소리치는 호장에게 다가간 정환은 거친 숨을 고르며 호장의 앞에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아서는 한아름 안고 있던 꽃다발을 내려놓고 신발이 벗겨진 호장의 한쪽 발을 잡아들어 자신의 무릎 위에 얹었다.
얼굴이 새빨개진 호장이 눈물고인 눈을 살그머니 떠 보니, 아까 전 도망치다 벗겨진 운동화 한 짝이 정환의 손바닥 위에 얌전히 올라앉아 있었다.

"신발 구겨 신지 말라고 일 년을 얘기했는데... 이러니까 벗겨지지. 이제 후배들도 들어올 텐데, 언제까지 이런 모습 보일 거냐."

웃음 섞인 핀잔을 주면서도 구겨진 뒤축을 반듯이 편 운동화를 발에 신겨 주고 신발끈까지 새로 단단히 묶어 주는 정환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호장은 자신을 흘끗 올려다 본 정환과 눈이 마주친 순간 흠칫 하며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서슬에 고여 있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려 턱끝에 맺힌다

대롱대는 눈물 방울이, 따뜻한 손끝에 지워졌다.

"전호장, 눈 뜨고 나 봐."

다정한 부름에도 고집스럽게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내젓는 호장을 가만히 바라보던 정환은 손을 뻗어 호장의 뺨을 움켜쥐어 움직임을 멈추게 했다.
강제로 고정된 얼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환과 마주하긴 했지만 여전히 똑바로 정환을 바라볼 자신이 없는지 호장의 눈은 눈꺼풀에 경련이 일 정도로 꾹 감겨 있었다.
이래서야 언제까지 시간이 지나도 제대로 된 대화는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정환은 어쩔 수 없이 가지고 있던 마지막 카드를 꺼내기로 했다.

쪽.

예고조차 없이 입술 위를 지나간 따뜻한 체온에 놀란 호장이 숨조차 쉬지 못하고 천천히 눈을 떠 보자,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는 정환의 얼굴이 보였다.
언제나 자신만만하기만 하던 정환이 이런 머쓱한 표정을 짓는 걸 처음 본 호장이 놀란 나머지 경계심을 싹 풀고 입만 뻐끔대는 걸 본 정환은 낮게 웃으며 호장의 이마에 이마를 맞댔다.

"이제 겨우 봐 주는구나."
"어... 으, 저기..."
"미안하다."

방심하고 있는 사이 치고들어온 고백에 호장은 잠시 굳어 있다가 어렵게 입꼬리를 올렸다.
절반 정도는, 아니, 절반 이상은 예상했던 일이었는데.
그래서 그 길고 긴 기다림의 시간 동안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연습하고 또 연습했는데도 왜 정작 예고된 거절의 말을 듣는 순간 지금까지의 노력이 전부 물거품이 되고 마는 걸까.

괜찮아.
괜찮은 척 해야지.
마음 속으로 되뇌이는 소리가 웅웅대는 귀울림에 묻혀 가는 동안.

"네가 먼저 말 꺼내게 한 것도 미안하고,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 쭉 고민하다 보니 네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조금씩 알 것 같아서 섣불리 답을 하지 못했는데..."

이어지는 정환의 말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걸 뒤늦게 알아차리고 어리둥절해진 호장은 그저 눈만 크게 뜬 채 정환을 바라보기만 했다.
이제서야 겨우 제게 붙박힌 호장의 시선에 정환도 급작스레 긴장한 건지 마른침을 삼키곤 잠시 말을 멈췄다.

허공중에서 한참을 뒤얽히던 불안한 눈빛의 끝은.

"자."

불쑥 내밀어진 꽃다발을 쳐다보던 호장이 머뭇대며 정환에게 눈을 돌렸다.

"이건, 선배가 받은..."
"아니. 내가 '산' 거다."
"에에엑? 왜요??"
"왜냐니."

호장보다도 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한 정환은 호장의 품에 안개꽃에 감싸인 빨간 장미 한 다발을 안겨 주고는 주머니를 뒤져 작은 상자를 꺼내들었다.

"프로포즈의 정석 아닌가. 꽃다발에, 반지."

왼손 네번째 손가락에 딱 맞게 들어차는 반지만으로도 이미 과부하 상태인 머리는 자신과 똑같은 디자인의 반지가 끼워진 정환의 손이 제 얼굴을 감싸쥐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다가온 입술은 아까 전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꽤 오래 머물러 있었다.
입술을 가볍게 물고 할짝이다 고개를 꺾어 더 깊이 다가오는 접촉에 자기도 모르게 살짝 입을 벌리자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침입한 혀가 조금은 거칠게 얽혀 온다.

정신없이 지나간 첫 키스에 넋이 나간 채 이끄는 대로 순순히 따라오는 호장을 품에 안은 정환이 만족스런 웃음을 흘리며 발갛게 열이 오른 귓가에 속삭였다.

"오늘부터 1일이지, 그럼?"




망할 오타...ㅠㅠㅠ

#슬램덩크
정환호장
2024.02.14 17:55
ㅇㅇ
모바일
하아앙 정환호장ㅠㅠㅠㅠㅠㅠ 끼끼야 성공했구나..... 정환이형 성공하셨군요......
[Code: 2251]
2024.02.14 18:22
ㅇㅇ
모바일
넘 귀엽고 달달한 정환호장 최고다ㅜㅜㅜㅜㅜㅠㅠㅜㅜ
[Code: 67a7]
2024.03.01 00:19
ㅇㅇ
모바일
정말 너무 좋다ㅜㅜㅜㅜ 뽀뽀로 진정시키고 정석대로 프로포즈에 딥키스까지한후 1일 확인까지 제대로 못박는 정환이형 너무 최고 멋지시다ㅠㅜㅜㅜㅜ
[Code: a4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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