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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9 21:06
대체 저런 게 왜 대화의 주제가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됐건 오늘도 쓸데없는 화제로 교실은 시끄럽기만 했다.

"한 뼘? 이 정도가 제일 좋지 않냐?"
"난 좀 더 큰 게 좋던데."
"여자들은 신발 굽이 있잖아."
"지도 깔창 이만한 거 깔면서."

각자 이상적인 애인과의 키 차이 취향을 털어놓는 걸 말없이 지켜보던 수겸은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키 차이를 논하기 전에 여자부터 만나지? 너희들이 이정도가 좋네 아무리 떠든다고 그 이상형이 널 만나 준다는 보장은 있고?"
"와, 말하는 거 봐라. 잔인한 자식."
"가진 자의 여유냐?"

수겸의 말에 우우 야유를 퍼붓던 친구들은 곧 하나 둘 입을 다물더니 서로 시선을 교환하고는 씨익 웃으며 수겸을 빙 둘러싸고 앉았다.

"그래서, 좋냐?"
"뭐가."
"20센티 차이, 좋냐고."
"19센티거든?"
"그거나 그거나지."

낄낄대던 친구 중 하나가 어림잡아 수겸의 머리 위 20센티쯤이 얼마나 되는지 손으로 재 보며 말을 이었다.

"야.. 이 정도면 쳐다보기도 힘들겠다. 한참 올라가야겠는데."
"계단 한 칸 위에 서도 네가 더 작겠다."
"키스 한 번 하면 다음날 목에 담 오는 거 아니냐?"
"아 진짜, 키 얘기 그만 하랬다?"

안 그래도 민감한 주제에 짜증이 오른 수겸은 손을 홱홱 저어 친구들을 내쫓아 버리고 책상에 푹 엎드려서는 길이를 재듯 손을 크게 펼쳤다.
20센티면 내 손으로 한 뼘 정도던가.
아주 어릴 적엔 눈높이가 대충 비슷했었던 것 같은데.

"..언제 혼자 그렇게 커 버렸대."

그러게, 이젠 정말 올려다보기도 힘들...

"어라?"

그래, 20센티면, 이 정도?
수겸은 자신의 정수리에서 한 뼘 더 위의 허공을 올려다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그렇게 올려다 본 적이.. 있다고?"

위를 아예 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저렇게까지 고개를 쳐들어 본 기억은 없다.
아니, 오히려 내려다 본 기억이 더 많은데.
혼란스러운 기억을 더듬는 사이 쉬는 시간이 끝나고, 수업 시작을 알리는 차임벨이 울렸다.




"현준아."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현준은 책상 위의 교과서와 노트를 서랍 안에 정리해 넣고는 앉은 자리에서 반쯤 몸을 돌렸다.
자리로 다가온 수겸이 자연스럽게 현준의 허벅지 위에 걸터앉는 걸 본 친구들은 짜증 반 부러움 반의 시선으로 둘을 훑으며 투덜대기 시작했다.

"빈 자리도 많은데 왜 꼭 거길 끼어서 앉냐."
"내버려 둬라. 저기가 김수겸 전용석인데. 죽어도 차고 딱딱한 데엔 못 앉힌다잖아."
"누가 보면 성현준이 김수겸 임신이라도 시킨 줄 알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제 등허리를 감싸안듯 받쳐 주는 현준의 팔에 편하게 몸을 기댄 수겸은 다리를 건들대며 피식 웃었다.

"내가 얘 애 가졌으면 의자가 뭐야, 아예 바닥에 발도 못 디디게 모시고 살 걸."
"왜. 지금부터 해 줘?"
"뭘. 받들어 모시는 거, 애 만드는 거?"
"둘 다."

제법 수위 높은 대화인데도 왠지 저 둘이 하면 야하다기보다는 그냥 일상적인 대화나 만담처럼 들리기에 말하는 사람은 물론 듣는 사람도 별 생각 없이 웃기만 했다.
수겸 역시 큭큭대고 웃으며 바로 옆에 있는 현준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무릎 위에 앉은 자세 때문에 거의 비슷한, 몸을 바로 세운다면 살짝 내려다 볼 수 있을 것 같은 눈높이.
이것도 익숙한 높이이긴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눈높이라면.

"...이 정도인가?"

수겸이 제 어깨에 팔을 걸치고 몸을 살짝 일으켜 자신을 내려다보자, 현준이 자연스럽게 고개를 살짝 들었다.

"뭐가?"
"아니, 아무 것도."

저것보다도 더 내려다 본 것 같은데.
여전히 풀리지 않는 궁금증을 머리에 담고 있던 수겸은 시간을 확인하고는 현준의 다리 위에서 일어났다.

"간다. 이따 보자."

자리에서 일어나자 가슴 언저리쯤 오는 현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은 수겸은 자신의 교실로 돌아가며 손을 흘끔 바라보았다.

차라리 이 높이가 더 익숙한 것 같은데,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연습 시작 전 자체정비와 지시사항 전달을 위해 모여든 부원들은 자연스럽게 학년별과 포지션별로 모여 체육관 바닥에 나란히 앉기 시작했다.
그 앞쪽에서 서성이며 전달사항을 적은 메모를 확인하던 수겸은 갑자기 생각이 난 듯 맨 앞줄에 앉아 작게 대화 중이던 창석과 택중의 앞으로 다가갔다.

"우리 1학년 때도 이랬나? 집합하면 바로 착석하는 거."
"아니. 그 땐 주전들이 맨 앞줄, 그 뒤는 학년별로 줄 맞춰 서서 열중쉬어 부동자세였지. 앉았다간 기합 빠졌다고 바로 운동장 돌았을 걸."
"그런데 왜 이게 자연스러워졌지?"
"그러게. 언제부터더라?"

창석과 택중도 이유를 모르고 서로 얼굴만 쳐다보는 중 다가온 권혁이 옆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뭐가?"
"우리 모이면 바로 앉는 거, 언제부터 이랬는지 기억하냐?"
"우리 2학년 올라가자마자 거의 바로."
"꽤 오래 됐네."
"그렇지."
"이유도 기억해?"

수겸의 물음에 권혁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수겸의 등 뒤에 놓인 보조의자를 바라보곤 아, 하고 입을 열었다.

"성현준이 지시한 것 같은데. 너 말할 땐 서 있지 말고 다들 앉으라고."

이제야 기억이 난다.
팀 내에서 수겸의 발언권이 강해진 뒤로 지시사항 전달을 주로 수겸이 하게 되면서부터 집합하면 착석하는 룰이 생겨났다.
그리고 처음엔 자신과 마주한 바닥에 앉아 있던 현준도 수겸이 주장이 되고 본인이 부주장 위치로 올라가며 수겸의 옆에 나란히 서는 대신 살짝 물러난 곳에 간이 의자를 두고 앉는 걸로 자리를 바꾸었다.

"다들 착석했나?"

조금 늦게 들어와 뒤쪽 의자에 앉은 현준에게 수겸의 시선이 돌아가자, 현준이 왜? 라고 묻듯 눈을 맞춰 왔다.

가장 익숙해진 눈높이의 이유를 이제야 깨달았다.




가로등이 켜진 어두운 골목을 걷던 중, 찌뿌둥한 몸을 풀기 위해 두 팔을 위로 쭉 뻗던 수겸은 그대로 뻗은 손끝을 보다가, 그 손높이 언저리에 있는 현준의 머리를 가볍게 만졌다.
머리칼을 쓰다듬는 손길에 발을 멈춘 현준의 상체가 자신을 향해 살짝 수그러드는 걸 본 수겸이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넌 진짜, 어쩌면 좋냐."
"뭘."

수겸은 역시나 비슷해진 눈높이까지 다가온 현준의 얼굴을 감싸쥐곤 이마를 마주댔다.

"내가 올려다보는 게 그렇게 싫었어?"
"아무래도 그림이 안 좋지. 감독님이 말하는 내내 뒤로 넘어가도록 고개 젖히고 부원들 올려다보는 것보다는 우리가 낮추는 게 낫지 않아?"
"부활동 때 말고, 일상에서도 그러잖아."

어디 한 번 잘 대답해 보라는 듯 뺨을 감싸쥐고 이리저리 흔드는 손길에 현준이 피식 웃더니 수겸의 허리를 감싸쥐고 안아올렸다.
현준의 목에 매달려서는 다리로 허리를 감은 채 안겨서 내려다보는, 키스할 때 가장 익숙한 눈높이다.

"이 높이로 내려다보면 무섭게 보이니까."

확실히 올려다보는 쪽이 훨씬 더 인상이 부드러워 보인다.
목에 감았던 손으로 뒷덜미를 쓰다듬자 간지러운지 어깨를 살짝 움츠린 현준이 웃으며 수겸을 바라보았다.

"내가 살면서 사람을 올려다 볼 일이 얼마나 있겠어. 그러니까 너 한 사람 정도는 평생 올려다 볼 수 있게 해 줘."

응? 괜찮지?

기다려, 란 명령에 얌전히 앉은 채로 간식을 손에 쥔 주인의 허락이 떨어지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강아지 같은 눈빛에 수겸이 고개를 숙였다.
허가의 키스가 끝나고도 여전히 자신을 내려 줄 생각이 없는 듯한 현준에게 수겸이 어색한 미소를 돌려주었다.

"언제까지 안고 있을 건데?"

슬슬 내려 달라는 것처럼 허리를 감아 안은 다리에서 힘이 풀리려 하는 걸 현준의 손이 다시 잡아 제 허리에 올렸다.
조금 더 바짝 안아올린 팔 덕에 방금 전보다 조금 더 높아진 시야로 현준이 웃는 게 보였다.

"아까 전 말했잖아. 바닥에 발 안 딛게 해 주겠다고."
"진심이었어?"
"나머지 하나도 진심이야."

품에서만 안 내려 주는 게 아니라 침대 위에서도 못 내려갈 거라는 무서운 소릴 웃으며 하는 입술 위로 이번엔 입막음용 키스가 닿았다.


#슬램덩크 하나후지 현준수겸
2024.01.19 22:05
ㅇㅇ
센세 최고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Code: aeec]
2024.01.20 18:27
ㅇㅇ
모바일
머야 진짜 달달해...
[Code: 2f7c]
2024.01.22 11:49
ㅇㅇ
모바일
달달하다 ㅠㅠㅠㅠㅠㅠ누군가 벤츠를 찾거든 고개 들어 성현준을 보도록 해야된다 ㅠㅠㅠㅠㅠㅠ
[Code: df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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