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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2 15:41
"몸."

...숨은 쉬고 대답해라.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에 교실 여기저기서 큭큭 웃음소리가 튀어나왔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빤히 들여다보이는 웃음소리에 수겸은 앉아 있던 의자 등받이에 턱하니 팔을 걸곤 입꼬리를 올렸다.

"다른 건 다아~ 내 노력으로 만들 수 있지만 딱 하나 키만은 의지대로 못 하는데, 그걸 갖고 있잖아. 나한테는 없는 거. 성현준 암리치가 얼만 줄 알아? 자기 키만해. 서서 손만 뻗어도 3미터다. 그게 얼마나 유리한 조건인데."
"아아.."

몸이란 게 그런 의미였음을 깨닫고 나자 순식간에 관심이 식어 하나 둘 자리를 뜨는 친구들의 뒤에서 수겸만 승리자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디 몸 뿐일까. 정신력은 그 이상인데.
스스로 생각해도 미쳤다 싶은 농구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고스란히 따라와 줄 수 있는 끈기는 수겸도 가끔 대단하다 감탄하곤 했다.
게다가 본인이 신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증량이 어려운 체질임을 깨닫자마자 바로 오펜스 스킬에 집중하는 식으로 머리 회전까지 빠른데 저걸 내가 어떻게 놓겠어.

"성격 무던한 녀석이 시합 땐 180도 바뀌어서 승부의 화신이 되지, 내 빈자리 마음 놓고 맡길 수 있게 리더십도 있지, 제 앞가림 잘 해서 어딜 가도 믿을 수 있지. 다 잘 한다, 전부 다."
"좋겠다 그래. 다 가진 자식을 차지한 유일한 사람이라."

툴툴대는 친구들의 뒤에서 빙긋이 웃은 수겸의 마음 속 마지막 말은.

너희들이 생각하던 거기까지 다 잘 한다고.
그런데 그것까지 알 필요 없잖아?
이미 내 건데, 관심 갖지 마라.

굳이 할 필요 없는 말은 깔끔히 생략하는 수겸이었다.




그리고 현준의 교실에선.

"수겸이? 귀엽잖아."
"엉????"

수겸에게 홀랑 넘어간 계기가 무언지 묻는 소릴 듣자마자 보면 다 아는 거 쓸데없는 질문은 왜 하냐는 듯 툭 던진 현준의 대답에 모두들 괴성을 질렀다.

누가 귀엽다고?
김수겸이?
걔 교실 문 앞에 서면 양 옆으로 빈틈 없지 않냐.
한 번 화나면 눈빛만으로 곰도 때려잡을 느낌이던데.
맘먹고 등짝 때리면 맞은 사람이 나가떨어질 피지컬이 귀여워?
성현준 안경 지금까지 액세서리인 줄 알았더니 진짜긴 진짜구나.
아니지 안경이 액세서리니까 김수겸이 제대로 안 보여서 귀엽단 거지.

이러고 웅성웅성 수군수군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을 때, 똑똑 하고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교실 뒷문이 열렸다.

"현준이 있냐. 아, 저기 있구나."

호랑이도 제 말 하면 나타난다고 너도 양반은 아니구나.

활짝 열린 문 앞에 누가 봐도 훤칠한 등빨의 수겸이 서 있었다.

저 봐, 저거. 문짝만하네.
어깨 태평양이구만.

애들이 수군대거나 말거나 현준은 문 앞에 나타난 수겸을 보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야?"
"아, 오늘 오후 연습 말인데, 상의 할 일이 좀 생겨서."
"뭔데."

농구부 일이란 말에 벌떡 일어난 현준이 뒷문 앞으로 다가가자.

"허어...?"

방금 김수겸이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분명 문을 꽉 채웠다 싶던 수겸의 모습은 현준이 다가가는 순간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심지어 정말 작게까지 보이는지라 모두가 눈을 비볐지만, 누가 봐도 성현준 앞의 김수겸은 작고 귀엽게만 보인다.

교실 문틀 위쪽에 이마를 기대고 서려면 구부정하니 서야 하는 피지컬 앞에선 태평양 등짝도 귀여울 수 있구나.
이렇게 또 강제로 새로운 사실을 알고야 말았다.



#슬램덩크
2024.01.13 10:1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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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준이 그냥 솔직한거였네
[Code: a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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