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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5 10:13


조요한. 


백성들은 그를 칭송했다. 


전장에서는 한 순간의 망설임 없이 가장 먼저 적군의 한 가운데로 뛰어들었고, 그 때마다 그들의 목을 베었으며, 승리하고 나서도 승리에 도취되지 않았다. 항상 공평하게 부하들을 대했고, 패배한 적군과 그 식솔들에게도 인간적인 대우를 해주었다. 오죽하면, 연국의 군인에게 패배한다면 조 장군에게 패배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말까지 들려왔다.  

그렇지만 그 중 가장 그의 명성을 높인 것은 바로 전쟁에서 성치 않은 몸으로 돌아와 더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된 군인들이나 전쟁으로 자식을 잃은 노인, 부모를 잃은 고아를 위한 구제원을 설립하고, 본인의 모든 재산과 황실로부터 하사품까지 모두 쏟아부어 구제원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수도에 돌아와 상엽을 만난지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요한은 언제나 그렇듯 구제원을 집으로 삼아 지냈다. 



새벽부터 밥을 짓고, 구제원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하나 하나 살피며 그들에게 인사하고 웃음짓는 요한은 어느 때보다도 편안해 보였다. 그들보다 더 좋은 방이 아니라, 그저 그들이 사용하는 것과 같은 방을 쓰고, 같은 이불을 덮으며, 같은 밥을 먹는 그를 사랑하지 않는 구제원 사람은 없었다. 





잡곡밥을 끓인 죽에 맑은 김치로 아이들과 함께 아침을 먹은 요한이 곧이어 선과 함께 구제원 문을 나섰다. 


어디론가 한참을 걷는 두 사람은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땅만 보며 묵묵히 걸었다. 선의 손에 들린 작은 보자기가 힘없이 흔들렸고, 요한이 든 호리병에서는 찰랑 찰랑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 저기 흩어진 나무 비석들과 조잡하게 만들어진 돌로 만든 비석들이 가득한 곳. 구제원 소유의 작은 무덤터에는 이미 서른 개 남짓의 크고 작은 무덤이 만들어져 있었다. 가장 최근에 덮은 흙인 듯 약간 젖어있는 무덤을 찾아 요한이 호리병 뚜껑을 열고 무덤 앞에 내려놓았다. 



조 연 



아직 채 잔디가 자라지 않아 붉은 머리를 그대로 내보이고 있는 것이 마치 그의 생전 모습같아 요한은 슬며시 웃었다. 선이 부지런히 보자기에 쌌던 음식들을 가지런히 무덤 앞에 내려놓고 무릎을 꿇은 채로 무덤 위에 가만히 손을 가져간다. 


"우리 왔어 아빠."


요한이 살짝 목례를 했다. 


"잘 있는거지?"


"......"


"우리는 다 잘 지내. 순이는 벌써 키가 얼마나 컸는지 몰라. 검이는 앞니를 갈았고. 은주 할머니는 앓던 허리가 낫고나니 이제는 무릎이 아프대." 


조잘거리듯 말하던 선이의 목소리가 어느덧 조금씩 떨렸다. 


"아빠..." 


"......"


"요한 오빠가... 잘 참고있어. 잘 하고 있어. 이제 얼마 안 남았어..." 


선이의 어깨가 들썩인다. 

















달콤한 꽃향기와 물을 머금은 풀 냄새를 간직한 바람이 상엽의 머리를 흔든다. 매끈한 이마를 지나 콧등으로 떨어지는 바람의 숨결을 느끼며 상엽이 잠시 고개를 든다. 화사한 연녹색의 옷을 입고 정자 난간에 기대어 서있는 상엽이 뒷머리를 콩-하고 기둥에 기댄다. 뚫어져라 문을 바라보는 상엽에게는 이미 그 문을 지나 걸어들어오는 요한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얇고 긴 요한의 몸이 마치 물 위를 걷는 듯 고요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오늘은 선물한 그 옷을 입었을까. 

지난 번 함께 만들었던 팔찌를 차고 왔을까. 

구제원 일이 힘들어 한숨도 쉬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이제 또... 전쟁으로 인해 이 평화가 끝나는 것은 아닐까. 


상엽은 생각했다. 

어쩌면, 당신이 있을 때보다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긴 삶이 될지도 모르겠어. 










짙은 자줏빛 옷에 청색 허리띠를 두른 요한의 무릎을 베고 누운 상엽이 요한의 허벅지 위에서 제 손가락을 놀린다. 장난치듯 큭큭 거리며 허벅지 위를 뛰듯이 달리다가 무릎뼈 앞 쪽으로 도도도 뛰어가다가, 또 잠시 멈춰서 원을 그리며 배회하는 상엽의 손장난에 맞춰 요한은 상엽의 어깨를 감싼 손을 두드린다. 




"오늘은... 어째 말씀이 없으십니다." 


"제가 그랬나요." 


요한의 목소리가 어디 다른 곳을 헤매는 듯 멀리서 들렸다. 

요한의 토닥거림에 상엽이 제 얼굴을 허벅지에 부벼댄다. 


"저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그리 없단 말입니까?" 


이제는 어깨가 아닌 등을 토닥이는 요한의 손길이 사뭇 농밀해졌다. 어깨뼈 위쪽을 자근자근 누르다 날개죽지로 내려가 깊이 파인 골짜기를 훑었다. 척추뼈 하나 하나를 줄을 튕기듯 두드려대다 다시금 슬며시 올라와 목 뒤를 간질었다. 


"제 마음을... 모르십니까." 


상엽이 눈을 들어 요한을 바라보자, 요한이 상엽을 내려다보며 싱긋 웃는다. 목에 머물던 손이 올라와 상엽의 입술을 만지작거리자 상엽의 입술이 살며시 벌어진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요한의 검지 손가락이 들어갈 듯 말듯 배회하며 상엽의 혀와 윗니를 장난스레 건드리자, 상엽이 혀로 그 손가락을 집요하게 따라다닌다. 


어느새 두 팔로 몸을 지탱한 채 엎드린 자세가 된 상엽이 요한의 허벅지 위에서 그의 손가락을 쪽쪽 빤다. 꿀이라도 떨어지는 걸까. 상엽의 진득한 애무에 요한은 손가락을 쑤셔넣으며 다른 손으로 상엽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깜빡 잠이 들었다. 끝을 보지 못한 은근한 쾌락의 감각이 아직도 상엽의 몸에 남아 미열을 남기고 있었다. 한가롭게 정원에서 연인과 함께 낮잠도 자고, 참 행복하구나- 생각하며 상엽이 자신에게 팔베개를 하고 잠든 요한의 얼굴을 바라봤다. 

굳게 다문 입술, 다부지다 못해 단단해보이는 코, 고집스레 자리잡은 이마. 


잠든 요한의 이마에 상엽이 쪽-하고 입술을 붙였다 떼어낸다. 


"사랑해요... 요한." 

















오늘 요한이 오기 전 궁에서는 난리가 났다. 

황후에게 황제의 씨가 뿌리내리지 못하는 것이 바로 궁 안에서 아기를 쫓아내고 있는 요물 때문이라는 점괘가 나오자 황제는 상엽을 불러 그야말로 달달 볶아댔다. 


네놈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에게 질투를 하여 황후의 몸이 차가워 진 것이 아니냐. 

혹시 황후의 음식에 약이라도 탄 것이 아니란 말이다!!!


말도 안되는 어거지를 부리는 아버지에게 상엽은 그저 머리를 박으며 용서를 구할 뿐이었다. 




지긋지긋하다. 


입으로 반복적으로 용서를 구하며, 상엽은 이 삶이 불쌍했다. 참으로 지긋지긋한 삶이다. 






"만약 내가 장군보다 먼저 죽으면..." 


아직도 잠이 든 요한을 보며 상엽이 작게 속삭였다. 


"그렇다면... 장군은 남은 삶을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


굳게 다문 입술에 상엽이 제 입술을 가져갔다. 


"나는... 나에게는 오직 당신만이..." 


상엽이 말을 멈추고 요한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요한의 손이 살짝 올라와 상엽의 등을 쓸었다. 









 

  












상엽의 궁을 나서던 요한은 한 담벼락에 서서 피어있는 붉은 매화꽃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사시사철 붉은 꽃이 달려있는 매화는 아주 희귀한 종으로 황제의 궁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어서 그 존재 자체가 귀하게 여겨지곤 했다. 


매화꽃을 만지작 거리다 요한이 손을 떼고 다시 걸음을 옮기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꽃 뒷편에 다른 누군가가 숨겨두었던 종이 쪽지가 요한의 손에서 단단히 구겨졌다. 












"이제 한 달 남았다." 


여인과의 거짓 정사가 끝난 후 요한이 그녀의 굴곡진 허리를 쓸며 말했다. 아침부터 아버지의 묘소에 다녀와서 그런지 오늘따라 선이는 더욱 더 요한을 갈구하며 거친 신음을 내뱉었지만, 끝내 요한을 가질 수는 없었다. 


"한 달 내에 태자에게 이걸 선물할 작정이신가요?" 


선이가 자조적으로 웃으며 요한의 것을 애무했다. 


"글쎄. 사내는 내 취향이 아니라." 


"아아, 딱하신 오라버니..." 


선이가 다시 자신의 몸에 올라타는 것을 느끼며 요한이 손을 뻗어 그녀의 가슴으로 가져갔다. 


"그래도, 그 자도 참 불쌍하군요." 


"무엇이?" 


"들리는 소문에는 황제의 친아들도 아니라던데. 황후에게서 아들을 보면 바로 내쳐질걸요." 


선이의 촉촉한 음액이 묻은 부드러운 살이 요한의 것에 닿았다. 앞뒤로 허리를 움직이는 선이의 움직임에 맞춰 요한이 그녀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풀었다. 


"우리가 알 바는 아니지." 


"흐응, 그래요. 저는 또 혹시 오라버니가 마음을 빼았기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되서요." 


요한이 선이의 얼굴을 잡아당겨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나는...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 너 또한." 



















매화꽃에 들러 자신이 준비한 쪽지를 넣어둔 요한이 상엽에게 발걸음하려는 순간, 움찔 하고 놀라 서둘러 손을 거뒀다. 


"태자 저하." 


깊이 고개 숙여 인사하는 요한에게 다가선 상엽은 자연스레 요한을 자신의 곁으로 끌며 말했다. 


"기다리는 것이 너무 길어 이렇게 먼저 나와 있었습니다." 


혹시 자신이 무엇을 숨기는 지 본 것은 아닌지 요한이 상엽의 눈치를 살폈지만, 상엽은 그저 싱글벙글 웃으며 요한을 끌고 가기 바빴다. 


"장군을 위해 제가 준비한 것이 있습니다."


눈을 반짝이며 요한을 이끌고 간 상엽이 자랑스러운 듯 수줍은 듯 몸을 돌려 요한을 바라보며 자신이 준비한 것에 대한 요한의 반응을 기대하는 듯 두 눈을 깜빡였다. 



"이... 마차는... 무엇인지요?" 


족히 네 사람은 누울 수 있을만큼 거대한 마차에 요한이 입을 벌렸다. 


"바다... 바다를 보려구요."


상엽이 아무것도 모르는 듯이 웃었다. 


바다, 바다라. 


요한은 지끈 두통이 오는 듯 했다. 바다의 비린내에 피 비린내가 섞여 요한의 코를 찔렀다. 





온마을이 쑥대밭이 되는 지옥과 같은 광경에 요한이 흡- 하고 숨을 들이쉬었다. 


누이의 위로 장정 네 다섯이 달려들며 그녀의 몸을 깔아뭉개고, 어머니의 배를 가르고, 동무의 머리통을 박살내는 병사들의 얼굴이 하나 하나 떠오르며 구토감이 올라온다. 


터질 것 같이 붉은 눈으로 다른 생각이 휘몰아치다 사라지는 요한을 보는 상엽의 표정은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었다. 




"예... 저하. 저하께서는 바다를 보신 적이 없으시지요." 


더듬거리며 겨우 말을 이어가는 요한을 보며 상엽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장군을 위해서라면... 그곳이 지옥이라도... 가야하니까요." 














 

2017.03.25 10:49
ㅇㅇ
모바일
아니 어딜간다는거죠??? 뭔 소리야ㅠㅠㅠ어딜가요ㅠㅠ
[Code: 6c03]
2017.03.25 10:49
ㅇㅇ
모바일
요한이랑 상엽은 혼인하나요? 근데 어딜가..ㅠㅠ
[Code: 6c03]
2017.03.25 10:50
ㅇㅇ
모바일
으 숨겨진 얘기가 넘 궁금한것ㅠㅠㅠㅠㅠ
[Code: 6c03]
2017.03.25 10:50
ㅇㅇ
모바일
센세 어나더ㅠㅠ나도 센세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긴 인생 같아ㅠㅠ
[Code: 6c03]
2017.03.25 19:3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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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지옥 제가 가겠습니다.
[Code: d0c5]
2017.03.25 19:4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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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꽃길만 걸어서 저한테 오시고요.
[Code: d0c5]
2017.03.25 22:38
ㅇㅇ
모바일
대작냄새ㅜㅜㅜ이미 대작이에요 센세ㅜㅜㅜ
[Code: 1e1c]
2017.03.26 01:2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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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엽이 죽으로가 샌새 ㅠㅠ??????? 오 안돼 ㅠㅠㅠㅠㅠㅠㅠ
[Code: 8947]
2017.03.26 16:2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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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센세 지옥은 내가 갈게 센세 어디 가지말고 꼭 완결내줘야해 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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