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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6 07:30
톰 카잔스키 소령입니다.


무표정한 얼굴로 제게 악수를 청하는 남자의 이름을 듣자 클라우스는 왜 그가 자신을 떠맡게 됐는지를 이해했다. 러시아에서 귀화한 이 젊은 장교는 독일의 변절자를 거부할만한 힘이 없었으리라. 그는 입꼬리를 미미하게 올려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세 손가락 뿐인 손이 느껴졌을텐데도 카잔스키는 시선을 내려 굳이 살펴보는 짓은 하지 않았다. 형식적인 인사를 한 뒤 그는 집 안을 안내하겠다며 돌아섰다. 조금의 인간적 호의도 보이지 않던 카잔스키의 군복 코트엔 하얀 눈이 소복히 쌓여 있었다.



ㅡ나치의 한 장교가 미국으로 빼돌린 슈타우펜베르크 백작이 카잔스키 가에 양도된 것은 1945년의 겨울, 첫 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1층 로비에 들어가자 단정하게 차려입은 금발의 사내아이가 보였다. 카잔스키 준장은 걸음을 멈추고 클라우스를 돌아보았다. 제 아들 카잔스키 주니어입니다. 그렇게 소개하지 않았어도 알 수 있을 만큼 두 부자는 꼭 닮아 있었다. 아이는 예의를 갖춰 의젓하게 인사했다. 아이답지 않게 차분했지만 눈동자에는 숨길 수 없는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 클라우스는 부드럽게 웃으며 간단하게 자기 소개를 했다.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란다. 당분간 카잔스키 저택에서 신세를 지게 됐어. 아이는 더 하고싶은 말이 있는 듯 했지만 제 아버지가 먼저 발걸음을 옮기자 입을 다물었다. 클라우스는 아이를 스쳐지나가며 어깨를 살짝 짚었다. 나중에 또 보자. 입모양으로 속삭이자 주니어는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 제 아이들도 저 또래였지. 아이를 지나쳐 걷고 있자니 기분이 가라앉았다. 아이는 있었지만 부인으로 보이는 여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부인은...? 조심스러운 질문에 카잔스키는 아이를 낳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떠났다 답했다. 실언을 했네. 클라우스는 제 무심함에 탄식했지만 카잔스키는 그닥 신경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1층을 비롯해서 2층에도 많은 방이 있었지만 카잔스키는 보이지 않는다는 듯 수많은 문을 지나쳤다. 마침내 2층의 가장 안 쪽 방에 도착하자 그는 처음으로 멈춰섰다. 당신이 지날 방입니다. 다른 곳은 알 필요 없다는 듯한 태도에도 클라우스는 그저 그렇군, 하고 대답할 뿐이었다. 어차피 이 저택에서 자유롭게 지낼 수 있을거란 기대는 없었다. 포로에겐 이 정도도 과분한 처사지. 클라우스는 아무 말 없이 카잔스키가 열어주는 문으로 들어갔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클라우스의 방에 손님이 찾아왔다. 미스터 스타펜벨츠. 클라우스는 웃으며 슈타우펜베르크라고 정정해줬다. 아이는 낯선 독일 발음이 어려운지 몇 번이고 도전해봤지만 계속 틀린 이름을 내뱉었다. 성을 부르기 어려우면 이름으로 불러도 된단다. 선생님께서 친하지 않은 사람끼린 성으로 부르는게 예의에 맞는 일이라 하셨어요. 똑부러지는 대답에 클라우스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성으로 부르되 애칭으로 부르는 건? 내가 허락하면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지. 그래도 돼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오는 게 귀여워 클라우스는 저도 모르게 아이의 뺨을 툭 건드렸다. 그럼. 당연하지. 아이는 조금 고민하다 슈슈, 하고 속삭였다. 네가 지어준거니? 마음에 드는구나. 클라우스의 대답이 기뻤는지 아이가 사르르 웃었다. 클라우스는 서 있지 말고 침대에 앉으라며 아이를 불렀다. 아버지께서 계속 우리집에 있을 손님이라고 해서 어떤 사람일지 궁금했어요. 슈슈는 좋은 사람 같아요. 그러니? 클라우스는 복잡한 기분이 되었다. 또 찾아와도 될까요? 아버지를 닮은 회안이 반짝였다. 아이의 천진한 얼굴을 보고 있으면 마음속을 소란스럽게 하는 상념이 가라앉았다. 오히려 클라우스가 부탁하고 싶을 정도였다. 언제라도 찾아와도 된단다. 아이는 정중하게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했지만 신이 난 듯 다리를 흔들었다. 자기 전에 찾아와준 작은 천사 덕에 클라우스는 그 날 아무런 꿈도 꾸지 않고 잠들 수 있었다.



밤엔 아들이 찾아오더니 다음날 아침엔 아버지가 찾아왔다. 집에서도 정장을 빈틈없이 갖춰입은 카잔스키는 잘 잤냐고 물었다. 언뜻 다정해 보일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나, 그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면 그저 집주인의 형식적인 인삿말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클라우스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고 잠시 대화가 끊겼다. 1층에 내려오는 건 곤란하지만 2층은 어디든 들어가도 좋소. 그래봤자 대부분은 손님방으로 쓰는 빈 방이었지만 2층엔 서재가 있었다. 서재에도 들어가도 되냐는 물음에 카잔스키는 돌려놓기만 한다면 책을 방으로 가져가는 것도 괜찮다고 덧붙였다. 그 말을 하려고 온 건지 카잔스키는 대화가 끝나자 용건을 마쳤다는 듯 방을 나갔다. 그런 일이라면 그냥 고용인을 통해 전해도 될 텐데. 아들이 벌써 어른 흉내를 내는 건 고지식한 아비를 닮아서일것이다. 클라우스는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손수 침구를 정리했다.



카잔스키 가의 서재는 저택의 크기 만큼이나 크고 웅장했다. 심지어 크기만 큰 것이 아니라 꽂혀있는 책들의 내용도 좋았다. 클라우스는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또한 그만의 확고한 취향을 남자였다. 서재에 있는 대부분의 책이 그가 재미있게 읽었거나 흥미를 가졌던 것들이었다. 제 취향을 훔쳐본 것 같은 일선에 클라우스는 순수한 호기심이 생겼다. 서재의 책들은 카잔스키 소령이 직접 고른 것일까? 그 무뚝뚝한 남자가 저와 취향이 같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눈에 띄는 책을 몇 권 집어 밖으로 향하던 클라우스의 시선이 업무용 책상에 닿았다. 단정하게 정리된 책상 위에는 종이가 한 장 놓여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정갈한 글씨체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적으라는 전언이 적혀 있었다. 글씨만 봐도 주인을 알 것 같았다. 클라우스는 잠주저하다 책을 옆에 놓아두고 글을 적었다. 서재의 책들은 직접 고른건가? 오른손으로 고정 시켜가며 분투한 보람이 있게 조금 흔들리긴 했어도 제법 반듯하게 쓰여졌다.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이기도 했고 답장이 돌아올거란 생각도 없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다음 날 서재 책상엔 또 종이가 놓여져 있었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손 닿는 위치에 있는 책들은 직접 모은 것들이오. 클라우스는 카잔스키와 처음으로 인간적인 교감을 나눈 것 같았다.



자네 책 취향이 마음에 들어.


과찬이군.


주로 어떤 주제의 책을 좋아하나?


실체 없는 아름다움을 논하는 것 보단 명확한 주제의식을 가진 책이 좋소.



두 남자는 수업시간에 딴짓을 하는 것 처럼 한 종이에 하고 싶은 말을 번갈아 쓰며 짧은 대화를 이어갔다. 클라우스와 카잔스키는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일단 카잔스키가 너무 바쁘기도 했고, 얼굴을 마주보고 있으면 어색함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편지 아닌 편지를 주고받는 것은 꽤 즐거웠다. 책보다 카잔스키의 답장이 궁금해 서재를 찾게 될 정도였다. 그 동안 종이는 두 번 바뀌었고, 두 사람은 신변잡기를 공유할 정도의 사이가 되었다. 카잔스키는 클라우스의 시덥잖은 질문에도 진지하게 답했고, 그의 인간적인 모습을 들여다본 것 같아 클라우스의 경계심도 허물어질 수 밖에 없었다. 어제 저녁에 같이 올라온 와인이 마음에 들어. 처음엔 독서 취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언제부턴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게 되었으므로 와인 이야기도 별 의미 없는 잡담이었다. 그래서 그날 저녁, 그 와인을 들고 직접 찾아온 카잔스키를 본 클라우스는 크게 당황했다. 그래도 차마 집주인을 내쫓을 순 없으니 클라우스는 그를 안으로 들였다. 카잔스키는 평소와 달리 편한 옷차림이었고, 어딘가 긴장한 티가 났다. 그와 마주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자니 새삼 젊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대 후반이랬나. 저하곤 거의 열 살 가까이 차이가 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직접 찾아와 말을 전하던 것도, 편지를 두고 간 것도 나름 가까워지려 노력한 것 같았다. 그래서 클라우스는 이번엔 자신이 먼저 다가가보기로 했다. 오랜만에 얼굴 보니 좋군. 가끔 술 생각이 나면 같이 마시겠나? 카잔스키의 안색이 밝아졌다. 클라우스는 처음 이 저택에 온 날, 한 순간에 밝아지던 주니어가 떠올랐다.



그 후로 카잔스키는 종종 클라우스의 방에 찾아왔다. 처음엔 술 핑계를 대며 오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저녁을 함께 하게 되었다. 보드카를 마셔도 끄덕 없을 것 같이 생긴 남자는 의외로 술이 약했다. 카잔스키와 저녁을 함께 하는 게 자연스러워진 후로 서재의 편지는 사라졌다. 대신 두 사람은 마주보고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언제부턴가 클라우스는 카잔스키의 얼굴을 마주보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다. 그는 말 수가 많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생각보다는 사려 깊고 통하는 부분이 많아 대화가 지루하지 않았다. 저택에 갇혀 있는 클라우스가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은 카잔스키 부자 뿐이었고, 클라우스는 내심 두 사람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리고 계절이 한 바퀴 바뀌어 다시 겨울이 찾아왔을 때 즘엔 클라우스는 카잔스키 소령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오래 알고 지낸 친우처럼 카잔스키 부자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카잔스키 소령은 술이 약하고, 어색하면 검지와 엄지 손가락을 맞대는 버릇이 있으며, 아이를 교육하는 데에 있어선 엄격한 면이 있었다. 그는 주니어를 자식보단 생도처럼 대했고 주니어는 어린 나이에 어른 흉내를 낼 수 밖에 없었다. 주니어에게 좀 더 부드럽게 대하는 것은 어떻겠나. 자네가 그러면 주니어 역시 타인을 부하 대하 듯 하는 방법밖에 모르게 될 걸세. 클라우스가 넌지시 제안을 해 봐도 카잔스키는 변함 없었다. 무시 당하는 것 보단 거리감을 느끼게 되는 편이 낫소. 클라우스가 그와 가까워진 건 사실이지만 자식 교육에 끼어들 위치는 아닌지라 결국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대신 클라우스는 몰래 제 방에 찾아오는 주니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자주 안아주었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결국 그를 이해하게 되는 일이고 사람을 이해하게 되면 애정을 느끼게 될 수 밖에 없었다. 언젠가부터 클라우스는 카잔스키 부자 사이에 있는 자신을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클라우스가 저택에 도착했을 때는 크리스마스가 지난 후였으므로, 올해가 저택에서 맞는 첫 번째 크리스마스였다. 삭막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사치스러운 장식을 지양하던 카잔스키 저택에도 크리스마스의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사람들은 묘하게 들떠 있었고, 벌써부터 저택에 선물이 쌓이기 시작했다. 고용인들이 벽에 반짝이는 장식을 두르고 벽난로에 양말을 놓는 걸 보면서 클라우스는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독일에 있던 클라우스의 아이들도 크리스마스를 좋아했다. 양초에 불을 밝히며 생일 선물로 새 구두를 받았으면 좋겠다던 둘째의 얼굴이 생생했다. 막내는 화관이 잘 엮이지 않는다며 투덜거리곤 했다. 셋째는 식사 전에 쿠키를 너무 집어먹어서 자주 혼났고, 트리에 장신은 아이들이 직접 매달았다. 그리고 온 가족이 모여 기도하던 식탁과 제게 기대오며 입을 맞추던 아내의 눈빛, 온기... 그런 것들을 떠올리자 클라우스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었다. 참으려는 것이 구역질인지 눈물인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다 놓아줬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속에 묻었다 생각했는데 한 번 떠올리자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왔다. 모두가 크리스마스를 기대하는 가운데 클라우스는 홀로 괴로워했다. 아내와 아이들을 잃었는데 자신만이 축제 분위기 속에 있다는 것이 고통스러웠고, 사무치게 외로웠다. 아무리 호화롭게 장식을 하고 흥겨운 음악이 넘실거려도 자신은 이 곳에서 이방인이었다. 그것도 홀로 살아남은, 죽지도 못 한 실패의 증거. 클라우스가 사랑했던 모든 것은 독일에 남아있었다. 손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삼키던 클라우스는 갑자기 밝아진 시야에 고개를 들었다. 부정적인 감정에 매몰되어 있었더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던 모양이었다. 어느덧 창 밖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카잔스키는 방 문 앞에 멈춰 서 있다가 클라우스에게로 빠르게 다가왔다. 그는 땀에 젖은 클라우스의 머리를 넘기며 안색을 살폈다. 미지근한 체온이 닿자 머리속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클라우스가 종종 환지통으로 발작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기에 카잔스키의 표정은 심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진통제가 필요한가? 그냥 놔두면 의사까지 부를 기세라 클라우스는 그냥 그의 손을 잡아 내렸다. 울음을 참느라 클라우스의 눈가는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클라우스는 그 어느때에도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격리실의 유리 너머로 죽다 살아난 그를 처음 봤을 때에도 이렇게 약해 보이진 않았다. 그래서 카잔스키의 심장은 빠르게 요동쳤다. 무엇이 이 남자를 이렇게 만들었단 말인가. 클라우스는 세 손가락 뿐인 손으로 카잔스키의 팔을 당겼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자 클라우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기적인 부탁이란 건 알아. 하지만... 올해만큼은 크리스마스를 조용히 보내면 안 될까. 클라우스가 처음으로 부탁한 것이 이런 것이라니 입맛이 썼다. 그가 왜 이런 부탁을 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얼굴이 너무나 절박해서 카잔스키는 그저 그러겠다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크리스마스가 코앞인데 모든 장식을 치우라는 지시엔 카잔스키 가의 고용인들도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카잔스키 소령의 태도가 너무 단호해서 다들 조용히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갑자기 크리스마스 파티가 취소됐다는 아버지의 통보에도 주니어는 그저 의젓하게 받아들였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고 대답하는 어린아이를 보니 클라우스는 마음이 아팠다. 그 날 이후 클라우스는 몸살이 와서 며칠을 앓아 누웠다. 정신의 피로가 육체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클라우스가 아프단 걸 듣고 주니어가 틈 날 때마다 찾아왔다. 슈슈가 아프니까 크리스마스 파티는 안 해도 돼요. 대신에 내년 파티는 꼭 같이 보내주세요. 아닌 척 해도 아이는 속상한 기색이었다. 주니어가 얼마나 셋이서 맞는 크리스마스를 기대했는지 알기에 더 미안했고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클라우스는 아이를 달래주고 싶었지만 위로가 될 만한 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그래서 말 대신 아이의 부드러운 금발을 쓰다듬어주었다. 내년엔 꼭 같이 지내자. 입 밖으로 꺼내지 못 한 말을 속으로 중얼거리며 클라우스는 주니어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새벽까지 잠들지 못 하고 있던 클라우스는 갑작스레 찾아온 손님을 보고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 했다. 카잔스키는 예전의 어느 날처럼 와인을 들고 문 앞에 서 있었다. 지금은 마시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지만 카잔스키의 눈에서 고집이 보여서 말 없이 자리를 내주었다. 테이블에 마주 앉았음에도 두 사람은 말 없이 잔만 비워갔다. 카잔스키는 평소보다 더 빠르게 마시는 것 같았다. 과음을 하는 것 같아 주의를 주려던 때에 카잔스키가 시선을 맞춰왔다.


왜 죄인처럼 자책하는 겁니까?


자신을 용서하질 못 하니까.


당신에게 죄를 물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는 편이 마음이 편해서야. 속죄도 자책도 결국은 내 마음이 편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그런 인간도 있어, 카잔스키 소령. 시선을 내리깔며 씁쓸하게 웃자 그가 한 쪽 눈을 찡그렸다. 아무리 그가 최연소 장교를 단 엘리트라 해도 클라우스에겐 열 살 가까이 차이 나는 풋내기였다. 카잔스키는 매우 못마땅해 했지만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질 않아 답답한 모양이었다. 카잔스키는 손가락으로 미간을 꾹꾹 눌렀다. 주니어가 매우 실망했소. 알고 있네. 클라우스는 입맛이 써서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나 역시.... 당신과 보내는 크리스마스를 기대했습니다. 클라우스가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지만 고개를 숙인 카잔스키는 보지 못 했다. 당신이 오고 나서 이 곳이 집처럼 느껴졌소. 당신도 이 곳을 집이라 생각하게 되었음 좋겠어... 마지막 문장은 거의 웅얼거림에 가까웠다. 카잔스키는 말을 마치자 마자 고개를 푹 숙이고 얼굴을 감쌌다. 한숨을 쉬나 했더니 그대로 잠든 모양이었다. 클라우스는 당황해서 카잔스키를 멀뚱멀뚱 바라만 봤다. 방 문을 열고 밖을 살피자 복도 저 편에 메이드가 걸어오고 있는게 보였다. 클라우스가 손을 들자 메이드가 다가왔다. 카잔스키 소령이 잠이 들어서... 부축할만한 남자 하인을 데리고 와 주게. 메이드는 공손하게 대답한 뒤 사라졌다. 자네는 항상 내가 이해했다고 생각하면 새로운 모습을 보여 나를 당황하게 만드는군. 클라우스는 곧게 뻗은 카잔스키의 콧등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클라우스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클라우스는 키잔스키의 코 끝도 톡톡 건드려 보다가 뺨도 쿡 찔러보았다. 늘 딱딱한 무표정을 하고 다니는 남자의 자는 얼굴은 순하기 그지 없었다. 카잔스키의 얼굴을 건드리던 클라우스는 카잔스키가 움찔거리자 누가 볼 새라 황급히 손을 거두었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는데 꼭 나쁜 짓을 하다 걸린 것 처럼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 날 클라우스는 카잔스키에게 처음으로 다른 느낌의 호감을 느꼈다.




창가에 기대 밖을 내려다 보던 클라우스는 등 뒤로 다가온 남자 때문에 회상에서 깨어났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합니까? 가까이 와도 모르고. 색 옅은 금발을 말끔하게 넘긴 남자는 클라우스의 허리를 끌어안고 그의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남자는 오래된 연인처럼 스킨쉽이 자연스러웠다. 카잔스키. 연인의 이름을 부르며 클라우스가 미소지었다. 또 무언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군. 어리광 부리지 말라며 코 끝을 건들자 카잔스키가 고개를 돌려 털어냈다. 또 크리스마스에 홀로 감상에 젖는건가 했소. 이젠 안 그런다니까. 클라우스와 처음으로 함께 보내는 크리스마스 파티가 사라졌다며 시무룩해 하던 주니어는 사관학교에 입학한 청년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그 해엔 결국 셋이서 조촐하게나마 케이크를 나눠 먹었었지. 파티라기엔 너무나 소박한 일이었는데도 주니어는 활짝 웃으며 기뻐했다. 다시 생각해도 그 일은 아이에게 참 미안한 일이었다. 지나고 나면 그 땐 왜 그랬는지... 하지만 다시 돌아가도 그 때의 클라우스는 같은 선택을 할 것 같았다. 주니어 생각을 하고 있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카잔스키가 아들은 내일 아침에 첫 차를 타고 올거라 일렀다. 카잔스키는 가끔씩 클라우스의 마음을 읽은 것 처럼 말할 때가 있어서 그를 깜짝 놀라게 했다. 클라우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카잔스키가 그를 안고 한 발짝 물러났다. 창가에 너무 오래 서 있으면 감기에 걸릴지도 모릅니다. 이제 그만 안으로 들어가자는 신호에 클라우스가 제 허리를 끌어안은 손등을 두드렸다. 내 발로 걸어갈테니 그만 놔주시게. 카잔스키는 아쉽다는 듯 클라우스에 뺨이 한 번 더 입맞춤을 하곤 그를 놓아줬다. 참 이럴 땐 연하 티가 난단 말이지. 클라우스는 카잔스키가 질색할 생각을 하며 조용히 웃었다.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크리스마스 장식이 꾸며진 복도를 걸어갔다.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가 카잔스키 저택에서 보내는, 열 번째 크리스마스였다.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급 마무리 했지만 그래도 쓰고 싶은 건 다 썼다ㅠ크리스마스는 한참 남았지만 갑자기 생각나서 썼음. 글에서 티가 나진 않지만 시니어는 첫 눈에 반해 대쉬하는 연하 남편이었다.




아이스매브 크오
2022.12.06 07:53
ㅇㅇ
직진하는 연하남 개좋다 센세 덕에 이른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기분이야
[Code: 2c01]
2022.12.06 08:0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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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헉 너무 좋아...... 슈슈 스며드는거 좋았는데 크리스마스에서ㅠㅜㅜ아ㅜㅜㅜㅜ 그래도 세 가족이 행복해져서 다행이야ㅜ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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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6 08:1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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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넘 따뜻하구 좋다 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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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6 08:5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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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진연하남 시니어 너무 좋다
[Code: 56cb]
2022.12.06 09:0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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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크리스마스ㅜㅜㅜㅜㅜ 슈슈가 잘 지내게 되어 다행이야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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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6 09:3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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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너무 따뜻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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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6 10:0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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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크리스마스 이 가족 영사해 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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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6 10:3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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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해.. 정말 좋다
미리 크리스마스!!
[Code: c393]
2022.12.06 10:4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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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슈랑 연하시니어의 분위기도 슈슈랑 주니어의 포근함도 존나 다 좋다
[Code: b898]
2022.12.06 10:4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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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고 딱딱한 느낌의 카잔스키가에 슈슈가 와서 조금씩 생기 찾는거 그 과정에서 슈슈 상처도 조금씩 나아가는거 너무너무 좋다... ㅠㅜㅠㅠㅠ 조용하고 편안한 연말 크리스마스 느낌이 되게 편안해서 자꾸 읽고싶어져 ღ˘⌣˘ღ
[Code: 05a9]
2022.12.06 10:5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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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우리는 작품이라 부르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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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6 11:0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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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읽고따듯해져서 히터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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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6 12:0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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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따듯해............... 분위기넘좋아....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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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6 13:1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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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근한 눈내리는 분위기랑 잘 어울린다 ㅜ
[Code: 83eb]
2022.12.06 16:1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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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좋다.. 따수워... 붕간적으로 크리스마스 느낌 너무 좋다.. 쿠리스마스 선물받은거같다...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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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6 16:1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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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여기가 크리스마스야.. 어디서 눈 포근하게 내리는 거 같고..ㅜㅠㅜㅠㅜㅠㅜㅠ벽난로 앞에 있는 거 같아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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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6 18:1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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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너무 따뜻해ㅠㅠㅠㅠㅠ 존잼ㅠㅠㅠㅠㅠ
[Code: e7b7]
2022.12.06 18:2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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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아아아아앙ㄱ ㅜㅜㅜㅜ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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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6 19:2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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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척 하지만 첫눈에 반해 있었던 연하남편ㅋㅋㅋㅋ 그리고 커여운 주니어.. 너무 따땃하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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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6 19:3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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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ㅊ...ㅠㅠㅜㅠㅠㅠㅠㅠㅠㅜㅠㅠ개좋다
[Code: 078f]
2022.12.06 21:3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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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좋다 진짜 ㅠㅠ
[Code: fb75]
2022.12.06 23:5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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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아아ㅏㅏㅏ 천천히 무뚝뚝하지만 섬세하게 다가오는 시니어 너무좋다 ㅠㅠㅜㅠㅜㅜㅜㅜㅜㅜㅜ
[Code: 991a]
2022.12.07 04:1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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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센세 나붕 지금 아주 고풍스런 대저택의 벽난로가 타오르는 방 안에서 벽난로앞에 앉아 흔들의자랑 담요에 둘러싸여서 눈앞에있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감상하는기분이에요ㅜㅜㅜㅜㅜㅜㅜㅜㅜ너무좋다ㅜㅜㅜ
[Code: fd9d]
2022.12.08 04:0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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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ㅠㅠㅜㅜ다 읽고 나서 본문 제목보니까 더 좋아요 미쳐..........❤
[Code: e73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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