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연갤 - 일본연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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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17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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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황자 스즈키 노부유키가, 배다른 형제인 황태자를 처단하고 왕위에 오른지 이주가 지났다. 제국은 새로운 황제가 즉위한 직후 평화의 기틀을 다지게 되었다.
풍요가 충만하고 평온이 발산되는 곳에는, 항상 여유가 깃들고 행복이 피어오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마치다의 삶은 삭막함만이 가득했다. 어린 하인이었던 노부유키가 갑자기 황제로 탈바꿈한 순간부터, 그는 마치다에게 늘 폭력적이었고, 매사 잔인하게 굴었다.
"...크흑!"
목이 달라붙어 엉켜있는 것만 같았다. 도무지 트일 생각을 않는 목구멍에 숨이 한계에 달했다. 마치다는 손끝을 세워 눈 앞의 상대를 밀어보았지만 남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미끄러지기만 하는 자신의 손가락과는 달리 남자의 손은 땅을 움켜쥐는 거목의 뿌리처럼 단단했다. 목이 졸린 지 얼마나 됐을까? 시야가 급격히 흐릿해지며 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죽을 때엔 과거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는데, 마치다의 머릿속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새까맣기만 했다.
이제 끝이군, 지옥으로 가는 일만 남았구나. 아아 그래, 언제나 이런 끝을 예상하고는 했지. 이렇게 죽을 줄 알았다. 제법 어울리는 죽음이라고 자조하며 체념하는데 갑자기 차가운 공기가 속을 얼렸다.
"큭! 흐!! 쿨럭, 쿨럭...!!!!"
쪼그라들었던 폐가 터질 듯이 부풀며 공기를 끌어들였다. 세상이 어지러웠다. 시야는 빙빙 돌거나 흑백으로 점멸하며 깜빡거렸다. 마치다는 숨통이 트였지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벌벌 떨리는 몸을 붙잡은 남자는 아랫도리 사이를 들이밀었다. 커헉, 하고 다시 한번 외마디 비명이 공기중으로 흩어졌다.
"아흐....끄, 윽!"
"그 역겨운 목소리 들리지 않게 해."
난폭하게 처박히는 살덩어리를 경련하는 몸이 힘껏 조였다. 아랫배가 꿈틀거리며 몸이 굽었다. 상대가 자신를 향해 뭐라 말하는 듯했으나 이명소리에 잘 들리지 않았다. 마치다는 물속에 있는 것처럼 귀가 먹먹했다. 숨을 들이켜고 기침을 내뱉는 소리가 마치 먼 곳의 파도처럼 작게 울렸다.
".......흐..."
"정신 차려요."
-짜악!!!
별안간 얼굴에 따귀가 날아왔다. 겨우 정상으로 돌아오려던 시야가 충격으로 번뜩였다. 자신이 내는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마치다가 새어나오는 신음을 삼키며 입만 뻐끔뻐끔거렸다.
"고작 이거 가지고 우는 소리라니."
헐떡이는 가슴 위로 황실의 노예라는 인이 박힌 자국을, 노부유키가 내려다 보았다. 손수 개발한 자신의 엄중한 형벌이 제법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마치다의 사지를 강제로 묶은후 그가 가장 처음으로 했던 소행이었다.
빨갛게 달구어져 있는 불쏘시개를 하나 끄집어 내어, 티끌 한 낱도 없는 고결한 몸에 직접 흔적을 박아버렸다. 그 쾌감과 열기를 노부유키는 결코 잊을수 없었다. 자신의 발밑에서 발버둥치며 고통에 서서히 잠겨버린 얼굴을 지긋이 지켜보는 일은 꽤나 흥미를 돋구는 일이었다.
"......그냥....죽여줘......"
나직하고 묵직한 마치다의 음성이 정적을 부쉈다. 고고하고 서늘한 외모에 잘 어울리는 중저음에 뒷목이 오싹했다. 노부유키의 등골이 일순 짜릿했다. 단단하게 굴곡진 빈틈없는 눈망울을 당장이라도 틀어잡아 뽑아버리고 싶었다. 참을수 없는 충동이 들끊었다. 자신의 손아귀 안에 파열된 마치다의 영혼을 자꾸만 들춰 보고싶었다.
"내게.... 복수하고 싶다면......때론 산 것보다 죽은 게 더 큰 만족감을 줄 수도 있어...."
단정하던 머리카락이 구겨진 침대 사이로 흐트러져도 기품있는 위용은 그대로였다. 꼿꼿한 자태를 유지하는 소나무 같던 얼굴에 묘한 감정을 실은 변화가 생기자 노부유키는 입꼬리를 감아 올리며 실실 웃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자 마치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가 다시 마치다의 목을 단숨에 움켜쥐었다.
"싫습니다."
"...아학! 으윽!"
"이제... 겨우 재밌어져 가는데."
"아으, 흐으! 흐!!"
"당신이 날 거절할 권리 따윈 없어."
노부유키는 으르렁거리듯 사나운 표정으로 허리를 퍽퍽 쳐올렸다. 처음과는 달리 가볍게 잡힌 목은 마치다의 숨통을 막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 조여질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공포가 그를 공황으로 몰아넣었다.
뜨겁고 미지근한 것이 다리 사이를 타고 흘렀다. 이것이 피인지 정액인지 가늠할수 없다.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몰랐다. 몸속을 미끄덩하게 채우며 들어온 난폭한 살덩어리가 제 욕심을 채우고 나간 뒤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으!"
한참을 흔들린 뒤에야 노부유키는 상대를 침대 밑으로 밀어 떨어뜨렸다. 쓰레기를 버리듯이 내던져졌지만, 마치다는 기분이 상하기보단 안도하는 마음이 더 컸다.
...이제 겨우 끝난 것이다. 자신은 이번에도 살아남았다.
계속해서 얻어맞은 뺨이 얼얼했지만 서서히 소리도 들려오고 통증도 돌아왔다. 느끼기 힘들 정도로 가해지던 폭력은 그가 자신의 몸에서 떨어지자 완전히 끝이 났다.
"쿨럭...쿨럭...."
마치다는 삐걱거리는 몸을 천천히 움직여보았다. 기침을 내뱉자 타액에 피가 섞여 나왔다. 뺨을 계속 얻어맞은 탓에 입 안이 터진 것이다. 그는 고개를 비스듬히 꺾어 자신을 거칠게 내팽개친 남자를 쳐다보았다.
옷조차 벗지 않은 채 오만하게 앉아있는 노부유키의 시선이 흉흉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얻어맞은 건 본인인데 그는 늘 피해자처럼 심사가 꼬인 얼굴이었다.
희미한 어둠 속에서 금빛으로 수놓인 황제의 옷자락이 빛을 받아 일렁였다. 황궁에서 가장 지고한 존재만 걸칠 수 있는 옷의 색채는 마치다에게 있어 죽음의 색깔과 진배없었다. 화려한 아름다움은 자신이 있을 장소가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추워......'
마치다는 지긋이 눈을 감았다. 한숨을 내쉬며 차가운 목을 두 손으로 감쌌다. 피가 돌지 않는 것처럼 차가워진 손끝과 피부가 서서히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의식은 마치 켜켜이 쌓아올린 두터운 눈처럼 그를 좀먹고 있었다.
창문 틈으로 스미는 서늘함에 짓눌려 자신이 살아있다는 존재감조차 미미해졌다. 마치다는 하얗게 얼어붙은 한기 속을 유영했지만 끝내 따스한 온기에 닿지 못했다.
세상이 전부 암흑의 나락이었다.
* * * * *
- 너무 예뻐요, 주인님.
따뜻한 바람이 온몸을 한 번 훑고 지나간다.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던 곳은, 타인의 눈에 띄지 않는 화원 안쪽이었다. 그래서 아이는 종종 머리카락에 꽃잎을 여러 장 매달고 다녔다. 꽃잎을 떼어주려고 한 건데, 쓰다듬어 주려 하는 건 줄 알았는지 아이는 냉큼 꽃이 매달린 머리를 내밀고 마치다의 손에 머리칼을 비볐다. 부슬부슬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을 때마다 마치다는 꽃향기가 제 손에 묻어나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 노부. 이리 와.
마치다는 어린 아이에게 손짓을 하더니 손수건을 잔디 위에 깔고 그 위에 앉았다. 아이는 몸을 엎드려 그의 허벅지에 얼굴을 여러 번 비비며, 온몸으로 집요하게 애정을 표현했다. 그러면 마치다는 꽃잎같이 붉은 입술에 향긋한 미소를 머금고는 정수리를 살살 쓰다듬어 주었다.
- 글자는 읽을 줄 알아?
- 어, 아니요..
아이는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수그렸지만 마치다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먹고 사는 일로 바쁜 하인들은 보통 글자 읽는 법을 잘 몰랐다. 그렇기에 그는 아이에게 더 가까이 오라는 듯 손짓을 하고는 주머니에서 빈 양피지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펜을 들어 기본적인 철자를 죽 나열하여 쓴 후 말했다.
- 읽는 법을 알려 줄게.
- 에?
- 싫어?
- 아뇨, 아뇨. 너무 좋아요!
아이의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다. 어린 노부유키는 연신 고개를 끄덕여 댔다. 회색 털뭉치 강아지의 것처럼 머리카락이 마구 흔들렸다.
'주인님, 제가 주인님을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지 아시면 아마 깜짝 놀랄 거예요.'
어린 노부유키는 그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애썼다. 그런 소리를 언젠가 입 밖으로 꺼내 보고 싶기도 했지만, 노부유키는 알았다. 영원히 닿을 수 없는 마음이라는 것쯤은. 이는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받아 줄 수도 없는 애정을 이렇게까지 키워놓는다는 것 자체가. 아이의 눈은 필사적으로 마치다의 손끝을 따라왔다.
- 이건 이렇게.
마치다는 철자를 하나하나 짚어 가며 아이에게 발음을 알려주었다. 아이는 놀라울 만큼 잘 배우고 잘 외웠다. 새로운 지식을 접할 때마다 그 내용을 빠르게 이해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 특히 어려운 개념이나 복잡한 문제를 다룰 때 더욱 두각을 나타냈다.
- 그래, 제법 잘하는구나.
아이는 볼 때마다 영특하고 총명했다. 그 재능은 자신과 견주어 보아도 더없이 훌륭해 보였다. 저보다 겨우 두살 어린 아이에게 마치다는 점점 흥미를 더해 가기 시작했다.
- 기초 문법만 좀 더 습득하면 전반적인 문서나 장부는 금방 읽고 쓸수 있을거다.
근사한 주인 노릇을 하는 건 즐거웠다. 신경을 먼지처럼 뒤덮고 있던 권태와 짜증이 일순 걷힐 만큼.
멍청한 아버지, 고압적인 어머니. 겉으로 보기엔 완벽한 귀족가이나 사실 텅텅 비어 있는 금고나 마찬가지인 집안. 그 안에서 보드라운 털실 같은 아이가 자신을 따르니 너무나 좋은거다. 애정을 받는 기분이 들어서. 자신도 남들처럼 감정을 나눌수 있는 사람이 된 것같아서. 마치다는 생각을 끊고 다시금 입을 열었다.
- 돌아오는 주말엔 국립 도서관에 가보자. 다양한 서적을 폭넓게 찾아보아야, 그에 대한 지식이나 교양도 쌓이는 법이니까.
- 네! 좋아요, 주인님. 너무 좋아요. 저 열심히 배울께요!
마치다는 괜히 아이의 머리칼을 더 거칠게 헝클었다. 머리가 죄다 뻗치고 부스스해졌는데도 아이는 여전히 온순하게 웃으면서 더 쓰다듬어달라는 듯 허벅지에 머리칼을 비볐다. 머리털은 부숭부숭하게 일어나 있었고 눈꼬리는 축 처져 있었다. 조약돌처럼 반질반질한 눈동자를 빛내면서 몸을 비벼 오는 모습은 영락없는 그것 같았다.
예쁜, 사랑스런 내 강아지.
그 순간, 마치다는 뭐에 홀린 것처럼 다시 노부유키의 머리 위로 손을 뻗었다. 사라락, 사락, 부드러운 머리를 매만질 때마다 달콤한 감각이 가슴 위로 설탕처럼 흩어져 내렸다.
그 뜨거운 체온과 코를 파고드는 향기에 온몸이 녹아내릴 것 같았다. 마치 따뜻한 햇살이 몸을 감싸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세상의 모든 걱정과 고통이 사라지고, 오직 이 따스한 포옹 속에서만 존재하는 평화로운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노부마치
[Code: 32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