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붕이 리카르도를 무서워한다면 그냥 무표정할 때 말 걸기가 조금 망설여진다, 분위기 때문에 굳이 언성을 높이지 않아도 화내면 조금 무섭다, 같은 느낌이었어. 그 정도는 너붕도 리카르도도 상관없었지. 리카르도는 대체로 너붕 앞에선 사랑스러워서 어쩔 줄 모르느라 무표정하게 있을 때는 거의 없었어. 게다가 조곤조곤하게 화를 낸다고 해도 그 밑에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감정은 걱정이었고 너붕이 정말 잘못했을 때만 그랬거든. 무엇보다 너붕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털어놓은 상태라 리카르도는 충분히 납득하고 이해했을거임.

다만 문제는 리카르도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는거지. 사업을 하느라 출퇴근이 자유롭고 출장이 잦은 편이라고 말했지만 실상은 마약이나 총기를 거래하고 가끔 번거롭게 하는 놈들을 사람 손 안닿는 곳에 묻어버리는 마피아였어. 자기가 침착하게 타이르는 것처럼 화를 내도 무서워하는 너붕이었으니까 대충 사실과 거짓을 적당히 섞어서 사업가라고 둘러댄거였지. 거기에 대한 죄책감이나 걱정은 없었어. 사랑을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었는데다 안들킬 자신이 있었어. 보통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애인을 가지고 자주 협박을 당하고 납치까지 지켜봐야 했지만 적어도 리카르도는 예외였으니까. 상당수의 목격자가 있을 만큼 큰 일을 터트리지 않는 한 경찰도 건들길 꺼려할 정도로 깊고 넓게 영향력을 펼치고 있는 사람인지라 미치지 않고서야 리카르도의 심기를 거스를 일 같은건 아무도 하지 않았지.

근데 안타깝게도 생각보다 미친 사람이 많았지.




제대로 데려온 거 맞아?

확실합니다. 며칠 내내 미행도 했었고, 그 동안 돌아다니던 소문이나 사진들이나...

그래, 됐어. 됐으니까 리카르도 그 망할 새끼를 환영할 준비나 해.




리카르도 때문에 많은걸 잃는걸로 모자라서 자비랍시고 눈 한쪽만 빼앗긴 채 구질구질하게 살아가던 남자가 너붕을 납치했어. 잃을게 없는 놈이라 물불 가릴 것 없이 예전으로 돌아갈 방법만 찾다가 너붕을 가지고 그 리카르도와 거래하는 멍청한 방법을 택한거지. 아무것도 모르는 너붕은 자칫하면 자기도 죽을 수 있는 상황인데 남자들 입에서 리카르도의 이름이 오르내리면 놀라서 그 사람이 뭘 잘못했길래 우리한테 이러냐고 순진한 말을 뱉어내.




아가씨는 잘못없지. 근데 그놈은 아주 개새끼야. 내 눈을 이렇게 만든게 그놈이라고. 그 피도 눈물도 없는 새끼한테 내가 무슨 짓을 당했는지 전부 알고 나면 아마 밤에 무서워서 잠도 못잘텐데 괜찮겠어?




너붕은 입을 꾹 다물고 대답하길 피할거야. 믿기 힘든거랑 별개로 아무리 봐도 거짓말 같진 않았으니까. 아무튼 리카르도를 기다리느라 너붕과 약간의 대화를 한 덕분에 남자는 너붕이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라는걸 알아버렸는지 태도가 변해. 초반에는 소리라도 지르면 뺨을 내려치고 살벌하기 짝이 없었는데 지금은 너붕을 볼 때마다 혀를 차기 바빠. 너 같이 순진한게 어쩌다 그놈한테 걸려서는, 부터 시작해서 그놈이 너한테 질리면 네 몸이 사지 멀쩡하게 관에 들어갈 수 없을테니 빠른 시일내로 도망쳐라 같은 끔찍한 걱정을 대신 해주는데 리카르도가 왔어.




6065b8fd5ca56f2eaac7f6384716fa09.gif

허니, 다치지 않았어?




그것도 경찰을 동원해서. 당황한 납치범들이 리카르도에게 뭐라고 화내듯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하나도 듣지 않았지. 마치 없는 사람인 것 마냥 너붕 걱정을 하기 바빴어. 당황한 이들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총을 찾으며 너붕을 데리고 협박하려고 하자 리카르도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버리더니 양옆에 서 있던 이들에게 쏴, 하고 명령하는 것 같았어. 총성과 함께 너붕은 눈을 질끈 감으며 아무것도 보지 않으려고 했지만 뺨에 튀는 핏방울들과 바닥으로 쓰러지는 둔탁한 소리들에 덕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지. 상황이 종료됐음에도 눈을 뜨지 못하고 소리없이 떨기 바쁜 너붕을 보고 리카르도는 혀를 찼어. 그건 짜증보다는 자신이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에 대한 자책에 가까웠지. 리카르도는 경찰들에게 상황 수습을 요구하고 너붕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어. 익숙한 향, 익숙한 목소리에 너붕은 그제야 눈을 뜨고 입을 열 수 있었지.




리키. 아까 그 사람들이 나한테 이상한 말 했어.

...무슨 말?




저급한 말들이라도 늘어놓았던걸까. 납치만으로도 충분히 놀랐을 너붕이라 애써 다정한 태도를 유지하며 자신의 무책임함이나 납치범들에 대한 화를 눌러 담고 있던 리카르도였지만 표정이 안좋아졌어. 죽기 전에 입이라도 찢어놨어야 했는데. 그렇게 후회같지 않은 후회를 하는데 너붕이 하는 말은 예상치 못한 말들이었을거임.




...리키에 대해서.

나?




아까보단 표정이 풀어졌지만 여전히 좋진 않아. 분명 자신이 저지른 일들을 들먹이면서 허니에게 겁을 준 게 분명했어. 예전처럼 다정한 눈으로 쳐다보지 않을 텐데, 아니, 경멸하는 것 정도는 괜찮아. 떠나겠다고 하지만 않으면 돼. 혹시라도 떠난다고 하면 그때는... 까지 생각한 리카르도였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예상치 못한 말들이 이어졌어.




리, 리키는 평범한 사람이잖아. 마약이나 사람 같은 거... 게다가, 그런 일 하는 사람이면 경찰이랑 같이 올 수도 없잖아. 그렇지?




자신에 대해 얼추 들은 것 같지만 거기에 두려움을 느낀다기 보단 현실을 부정하는 말들이었어. 그걸 가만히 듣고 있던 리카르도는 살풋 웃음을 짓더니 이내 고개를 저어.




4af1bcb475ef70ffaeeea9c741bccdcc.gif

평범한 사람? 그럴 리가 없잖아.

리키...




아니라고 말은 하면서도 너붕은 확신하지 못했을거야. 리카르도가 그럴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납치했던 그 남자가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거든. 그랬는데 생각보다 단숨에 사실을 인정하는 태도에 너붕은 살짝 겁을 먹고 물러서려고 했지만 이내 다정하게 웃어보이며 너붕의 손을 잡고 연신 입을 맞추는 리카르도 때문에 그럴 수 없었어.




ead976240f4b5d609c5e5dff2dc605f0.gif

천사에게 사랑받고 있는 내가 어떻게 평범한 사람이야. 축복받았지. 사실 난 내가 감히 천사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

...리키, 알았어. 그만해.




그리고 이어지는 말을 들으니 맥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지. 너붕이 어이없다는듯 살짝 웃으며 리카르도 어깨를 툭 밀어내자 리카르도는 그제야 안심이 되는 기분이었지.




87fee37bde71f8bdcf1ff73aadeeebab.gif

이제 긴장 좀 풀렸어? 물론 방금 그 말은 농담 아니야. 진심이긴 한데 허니 기준에서 평범하게 대답해주면 허니가 계속 불안해 할 것 같아서...

알겠어. 더 말하지 않아도 리키가 나 사랑하는거 알고, 나도 사랑해.




순순히 자신이 원하던 대답을 내놓는 너붕을 보고 리카르도는 미소를 지었어. 걱정과 달리 너붕은 자신을 아직도, 앞으로도 사랑할 것 같았으니까 리카르도가 더 바랄건 없었어. 다만 이렇게 순진해서야 어떻게 지금까지 사기 한 번 안당하고 잘 살아왔는지 모를 노릇이었지. 물론 이래서 자신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거긴 하지만, 그래도 너붕이 살아온 지난날들이 조금 걱정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




9e0ec9fa9528cee0fe5a2767b5536bd4.gif

...허니, 집으로 갈까?

응. 집으로 갈래.




너붕은 꿈에도 몰랐을거야. 솔직히 제 애인이 경찰과 대립되는 입장이지만, 동등한 입장은 아니라 경찰마저도 손쉽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일거라고 생각하는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 오늘 있던 일은 연극 그 자체였겠지. 납치범과 그의 입장에선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사업 몇 가지에 대해 넘겨주는 대가로 극중 배우가 되기로 결정한 경찰들이 공연한 너붕을 구하는 대규모 연극. 딱 그정도였지. 하지만 너붕이 그걸 알 방도는 없었으니 순순히 리카르도의 곁에 머물 수밖에 없었어.











자기가 가진걸로 답없는 집착을 다정함과 유능함으로 덮어버리는 리카르도가 좋은데 리카르도너붕붕 센세들이 몹시 보고싶다...
2020.02.15 (16:23:33) 신고
ㅇㅇ
모바일
센세 바로 여기 있잖아 나 지금 너무 좋아서 잇몸이 다 말라버렸어
[Code: 663f]
2020.02.15 (21:03:03) 신고
ㅇㅇ
모바일
센세 있는 이곳이 천국이지 너무조타정말 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4a99]
비회원은 통신사IP나 해외IP로 작성할 수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