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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여기

















긴 휴가를 끝내고 스티브는 토니와 함께 뉴욕으로 돌아왔다, 토니의 전용기를 타고 더미와 버터핑거까지 함께.
쉴드에서 복귀 요청(사실상 명령이었으나 콜슨은 다정하게도 요청이라고 표현했다)을 받아서 뉴욕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는 스티브의 말에, 토니는 '아, 그래?' 하고 여상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비스와 더미에게 제 짐을 싸도록 했다. 휴가의 끝은 스티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고 토니가 요청했던 '휴식기'는 끝나지 않았기에 토니는 돌아올 필요가 없었으나, 같이 돌아간다는 것에 일말의 의문도 가지지 않는 것처럼 보여 스티브는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어도 그것이 꽤나 기뻤다.

스티브의 전근 요청은 일정 부분만 승인되었다, 소속을 뉴욕 지부로 옮기되 일주일에 한 번은 워싱턴 본부로 가서 스트라이크팀과 실전 훈련을 하게 된 것이다.
매주 한 번씩 장거리 이동은 아무리 당신이라도 힘들지 않겠냐는 토니의 걱정에 스티브는 자신은 피로를 거의 느끼지 않는 체질이라고 답하며 토니를 납득시켰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았는지, 토니는 스티브가 네 번째로 워싱턴 '출장'을 가기 전에 전용 퀸젯을 만들어 내놓았고, 운전도 자신이 직접 하겠다고 나섰다.

내 휴가가 끝나면 어려울 지도 모르지만, 그건 그 때 가서 생각하지 뭐. 일단은 내가 태워줄 거고, 내가 데려올 거야. 토니는 자신이 늘 하는 것처럼 거만하게 선언했지만, 그 으스대는 말투 안에 숨겨진 애틋함이나 수줍음을 모를 스티브가 아니었다.
덕분에 토니의 '내가 태워주겠다'는 말은 스티브의 다섯번 째 출장에서야 실현될 수 있었다, 워싱턴으로 향하는 도중에 스티브가 토니를 다른 일로 몹시 바쁘게 한 탓에 실제 운행은 자비스가 맡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토니는 워싱턴에 스티브를 내려주고는 바로 자신의 말리부 저택으로 가서-정확히는 자비스에 의해 실려가서- 닥쳐올지도 모를 근육통을 예방하기 위해 뜨거운 욕조에 몸을 푹 담그고 있어야 했다, 스티브의 훈련이 끝날 때까지 내내 말이다.

스티브가 '그 토니 스타크의 퀸젯'을 타고 쉴드 본부에 출근을 하는데도, 다행인지 불행인지 두 사람의 관계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퀸젯이 늘 스티브를 내려주고는 바로 이동했기 때문에 쉴드의 요원들은 퀸젯이 자동 조종되는 것으로 여겼고, 그 안에 토니가 타고 있다는 것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훈련이 끝나면 스티브는 늘 자신의 바이크를 타고 본부를 떠났으나, 스티브가 향하는 곳이 현재 그의 거처인 뉴욕의 스타크 타워가 아니라 말리부의 스타크 저택일 거라는 것 역시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토니가 한 번도 퀸젯에서 내린 적이 없었고, 퀸젯이 쉴드 본부에 착륙할 즈음에는 '배웅'을 빙자한 스킨쉽을 나누느라 바빠서 운전석은 비어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바이크로 워싱턴에서 뉴욕까지 간다는 것은 전혀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도, 그가 슈퍼 솔져라는 것 때문인지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비밀은 본의 아니게 유지되었다, 스티브로서는 꽤나 안타깝게도. 두 사람의 관계를 비밀로 하자던 토니의 말은 아직 유효한 것이리라고 스티브는 생각했고, 그는 그 약속에 대해서 다시 묻거나 불편한 기색을 비치지 않았다.
스티브의 본심이야 토니가 제 것이 되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까지는 힘들더라도 쉴드 내에서는 모두가 다 아는 사실로 만들고 싶었으나, 그는 일단은 참기로 했다. '참았다'는 것은 스티브가 언젠가는 그 사실을 드러내기로 이미 마음을 먹었다는 의미이고, '일단은' 이라는 것은 그가 적당한 타이밍을 가늠하며 조용히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미 토니를 완전히 손에 넣었고 무슨 일이 있어도 토니가 저를 떠날 리 없으며, 만약 제가 대놓고 사실을 공표한다면 토니가 처음에는 약간 화를 내겠지만 이내 포기할 거라는 것까지 모두 잘 알고 있었음에도 스티브는 기다렸다, 오로지 토니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
언젠가는 벌어질 일인데 굳이 토니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다고 스티브는 생각했다, 어차피 토니는 제 사람이었고 다른 사람들이 모른다고 해도 그 사실이 덜해지지는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모두에게 다 알리고 싶고 사방팔방 소문이라도 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납득할 이유는 스스로도 찾을 수 없었지만 그래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으니 어쩌겠는가.
그래서 스티브는 기다렸다, 토니가 조금 더 자신에게 익숙해지고 제가 주는 사랑에 길들여져서  두 사람의 관계를 알리는 일에 겁먹지 않을 수 있도록. 얼마 남지 않았을 거야, 곧 때가 올 거야. 스티브는 그렇게 자신을 달랬다.
그러나 우습게도 '때'는 스티브의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오고야 말았다.


그것은 스티브가 닷새 간의 국외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날의 일이었다, 일체의 외부 교신을 차단할 필요가 있는 극비 임무였기에 스티브는 '집'을 떠난 이후로 토니의 목소리도 듣지 못했고 얼굴도 보지 못한 상태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사진'이라도 한 장 뽑아서 품에 넣어둘 것을, 어설픈 주제에 쓸데없는 부분만 현대에 익숙해져 제 휴대 전화에만 토니의 사진을 가득 채워두고 목소리를 녹음해 둔 게 불찰이었다. 하다 못해 그 흔한 가십지 사진 한 장이라도 오려다 접어 뒀다면 좋았을 것을, 다른 사람과 함께 실린 모습에 괜한 부아가 치밀어 그냥 지나친 것을 스티브는 뒤늦게 후회했다.

덕분에 쉴드에 돌아왔을 때 쯤 스티브의 머리는 '토니가 보고 싶다, 토니를 안고 싶다.'로 가득 찬 상태였고, 빨리 씻고 어서 보고를 마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서 얼른 토니를 봐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쉴드의 퀸젯에서 내려 샤워실로 가다가 모퉁이를 돌았을 때 멀찍이 보이는 토니를 보고, 스티브는 토니가 너무 보고싶은 나머지 자신이 헛것을 보는 거라고 생각했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빠른 걸음으로 성큼성큼 걷다가 갑자기 우뚝 멈춰선 스티브 덕에, 지친 몸을 이끌고 캡틴의 뒤를 따르던 스트라이크팀도 그대로 멈춰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지 바로 앞의 캡틴 아메리카와 멀찍히 보이는 아이언맨을 번갈아 보며 자신들끼리 눈길을 주고 받아야만 했다.

바로 그 때 고개를 돌린 토니가 굳어진 채로 눈만 깜빡이고 있는 스티브를 발견하고는 방긋(다른 이들은 절대로 씩-이라고, 늘 하던 대로 개구지게 웃었다고 할 테지만 어디까지나 스티브의 기준으로는 너무도 사랑스럽게 방긋-) 웃었고, '왔어? Hey'하고 반갑게 말을 건넸다.
스티브는 순간 정말로 반쯤 정신이 날아가서 한달음에 달려가 토니를 끌어안아 버렸다. 토니가 당황하는 것이 흠칫 굳어지는 몸짓에서 느껴졌으나 스티브는 아랑곳않고 토니, 토니, 토니…하고 애닳게 토니의 이름을 부르며 토니의 목덜미에 제 얼굴을 파묻었다. 그리웠던 토니의 냄새를 마음껏 들이마시며 가슴이 벅차오른 스티브가 다음에 할 일이야 뻔한 것이었다, 스티브는 토니의 등을 당겨 안고 있던 팔의 힘을 풀고 손을 내려 토니의 허리에 가볍게 감았다. 놀랐는지 그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를 올려다보는 것이 귀여워 스티브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스티브- 라고 부르려고 토니가 입을 열었던 것 같은데, 당연히도 그 말은 스티브의 입에 막혀 이어지지 못했다, 토니의 뺨을 감싸쥔 스티브가 그대로 얼굴을 가까이하고 입을 맞추었기 때문이었다.
닷새 떨어져있을 뿐인데도 이렇게 안달이 나다니, 이걸 어쩌면 좋을까. 제 스스로도 어이없다고 생각하면서 토니를 안고 며칠 내내 하고 싶었던 대로 길고 진하게 입을 맞춘 후에야, 스티브는 토니가 자신의 키스에 전혀 응해오지 않을 뿐더러 몸을 딱딱하게 굳히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럴 리가 없는데, 뭔가 잘못 됐어.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스티브는 자신이 어디에 있었던가를 기억해냈다.

스티브는 자신이 본의 아니게-언젠가는, 아마 머지 않은 시점에 밝힐 생각이긴 했지만 어쨌든 지금 당장은 본의 아니게- 토니와의 약속을 어기고 말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토니를 품에서 놓아주자, 토니가 당혹감으로 얼굴을 물들이고 망연하게 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주위는 쥐죽은 듯 조용했지만 제 뒤를 따라 오던 스트라이크팀이 보내는 눈길이 등이며 뒤통수로 마구 꽂히는 것 같았고, 토니의 옆에 서있던 콜슨이 어색한 미소를 띤 채 저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맙소사, 이걸 어쩌지? 차라리 작정하고 저지른 일이었더라면 다음 수도 생각해뒀을 텐데 제 의도와 다르게 일이 벌어져버리고 나니 스티브는 머리가 하얗게 비어버렸다.
어쩔 줄 몰라하던 스티브는 결국 머뭇거리며 '보고 싶었네, 토니.' 하고 작은 소리로 말했고, 토니는 '어, 그런 것 같네 Yeah, I don't doubt it.' 하고 평소의 토니 스타크와 다를 바 없는 말투로 대꾸하며 스티브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사랑한다I love you는 말에 나도 안다I know고 대답한 한 솔로 이래 이렇게나 쿨한 대답은 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제가 좀 전에 저지른 실수에도 불구하고 스티브는 조금 섭섭해졌다.




“으음…, 연인과의 감격적인 해후가 무척이나 보기 좋긴 합니다만, 캡틴. 약식 보고는 올려주셔야 합니다, 일단 좀…씻기도 하셔야 할 것 같고요.”

“아…, 음…, 그렇지.”

“같이 돌아가실 거면 씻으신 후에 제 사무실로 오시죠, 스타크 씨와 의논할 게 좀 있어서요.”

“…알겠네. …토니…, 그…미안하네.”




잠시 머뭇거리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사과하자 토니가 어이가 없다는 듯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실소이긴 했으나 드디어 토니가 웃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러워서 스티브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씻고 와, 기다릴게. 토니의 그 말이 너무나도 다정하게 들리는 바람에 스티브는 또 잠시 이성을 잃고 그를 끌어안고 입을 맞출 뻔 했으나 간신히 정신을 다잡았고, 토니는 그런 스티브를 눈치챘는지 옅은 한숨과 함께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 '못 말리겠다'는 감정이 배어나오는 몸짓에는 애정이 담뿍 묻어있었고, 그 덕에 스티브는 미안하게 생각하면서도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지울 수가 없었다. 예상치못한 실수는 분명 제 잘못이었지만 토니가 화나지 않은 것 같고 덕분에 이걸로 '공식적'인 관계가 될 테니 얼마나 잘 된 일인가, 스티브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활짝 웃는 낯으로 자리를 떴다.


그리고 스티브가 예상했던 것과 하나 다르지 않게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얼마나 '삽시간'이었는가 하면, 스티브가 몸을 씻고 나와 퓨리와 화상 통화로 10여분 대화를 나눈 후 나왔을 어름에는 이미 쉴드 전체-뉴욕은 물론 아마 다른 지부까지도-가 다 그 일을 알고 있을 정도였다.
차마 직접 물어보지는 못하고 멀찍이서 저와 토니에 대해 수근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천사들의 속삭임처럼 흐뭇하게 감상하며 스티브는 콜슨의 사무실로 향하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마치 기다린 것처럼 나타샤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을 보자마자 의뭉스러운 미소를 띄는 나타샤의 얼굴을 마주하고 스티브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뜨끔한 기분이었다, 나타샤는 이미 자신의 속셈을 다 눈치채고 있었던 것 같아서였다.

사고 쳤다면서? 히죽 웃으며 묻는 나타샤를 향해 스티브는 가능한 한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였으나, 노련한 스파이는 역시나 속아주지 않았다. 어차피 조만간에 터뜨릴 거였으면서 가증스럽긴, 일부러 과장스러운 몸짓으로 고개를 저으며 스티브 대신 콜슨의 사무실이 있는 층을 눌러주는 나타샤를 향해 스티브는 저도 모르게 튀어나오려는 헛기침을 겨우 누르며 얼굴을 굳혀보였다.
가증스럽다니, 말을 좀 가려서 해주게. 그러나 나타샤는 스티브의 엄한 목소리에 전혀 개의치 않고 팔짱을 끼며 스티브를 향해 빙긋이 웃었다. 가증스럽다고 하지 않으면 음흉하다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아니야? 얄미운 비난을 부정할 수 없어진 스티브는 괜히 미간에만 힘을 주었고, 나타샤는 여전히 웃으며 말을 돌렸다. 좀 전에 토니랑 만났어, 콜슨한테 전할 말이 있어서 갔다가 잠깐. 벌써 엄청 소문이 난 거 토니도 알고 있던데, 신경 쓰이나 보더라고.

나타샤의 말에 스티브의 굳어졌던 입매에 힘이 풀리고 미간에는 더 힘이 들어갔다. 신경 쓸 것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니 금방 흘려보내주길 기대했는데 그럴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많이 싫어하더냐, 스티브가 묻자 나타샤는 어깨만 으쓱하며 대답했다, 싫어한다기보다 그냥 말 그대로 신경이 쓰이는 것 뿐일 거라고. 토니는 가볍게 보이는 거랑 다르게 상냥하잖아, 자기가 욕 먹는 건 아무렇지 않아 해도 자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싫은 소리 듣는 거에 꽤 민감하게 굴거든. 아마 자기 때문에 네가 험한 꼴 볼까봐 걱정했을 거고, 그러니 티를 안 내려고 한 거겠지. 토니의 성격에 대해 꽤나 정확한 판단을 내리며, 나타샤는 토니와 나눈 얘기를 들려주었다.




- 잘  됐네요. 당신한테도, 스티브한테도.

- ……진심이야?

- 어차피 이럴 거라고 생각했는 걸, 솔직히 내 기대보다는 좀 늦었는데요? 왜 이렇게 늑장을 부리는지 좀 짜증이 나려던 참이었어요.

- 대체 왜…?

- 그야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하니까, 겠죠?

- 어…, 그거야….

- 당신이 모를 것 같아서 무한한 호의를 베풀어 말해주는 건데, '그런 식that way'으로 좋아한 건 캡이 먼저였어요.

- 그런 식? …그런- 그런 식…말하는 거야You mean 'that way' that way?




나타샤가 긍정의 의미로 어깨를 으쓱하며 입꼬리를 올려 웃자 토니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하니 그녀를 쳐다봤다고 한다, 그렇게 넋나간 얼굴을 하는 건 처음 봤다고.
그 큰 눈만 꿈뻑꿈뻑하면서 한동안 말이 없다가, '말도 안 돼, 나 스티브 좋아한지 한참 됐다고.' 납득할 수 없다는 듯 토니가 그렇게 중얼거리기에 '알아요, 그래도 스티브가 먼저야.' 하고 답해줬더니 토니는 의구심을 넘어 불신이 가득한 표정으로 나타샤를 쳐다봤다고 한다.




- 뭐, 누가 먼저 좋아했든 누가 더 좋아하든, 그런 거 상관 없지 않아요? 중요한 것도 아니고.

- 그렇긴 하지만….

- 왜요, 캡틴이 먼저라니까 지는 기분이에요?

- 아니…, 그런 게 아니라…미안해서.

- 뭐가 미안한데요?

- …혼자 너무 오래 힘들게 한 것 같아서.




토니가 미안해하더라는 말이 나온 순간 또 '자신과 이런 사이가 된 것이 미안하다' 같은 말이 나오는 게 아닌가 잔뜩 긴장했던 스티브는, 나타샤의 입을 통해 들은 토니의 대답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더는 달아나지지도, 도망치려고도 하지 않겠다고 했던 토니의 말은 진심이었다.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그렇게 말해준 것이 아니라 토니가 진심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 스티브는 뿌듯하게 차오르는 안도감을 느끼며 잠시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아아, 빨리 토니가 보고 싶다. 내 눈 닿는 곳에만 토니를 붙여둘 수 있다면, 토니가 있는 곳에 항상 내가 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또 그런 말도 안 되는 바람을 떠올리다, 스티브는 문득 나탸사가 스치듯 말한 것 중 마음에 걸리는 부분을 찾아냈다.




“…토니를 콜슨의 방에서 만나서 그런 얘기를…했다는 건, 콜슨도 같이 들었다는 건가?”

“아니, 콜슨은 잠깐 나가고 없었어. 직접 와서 봐줘야 할 일이 있다는 얘기를 전하러 간 거였거든. 그게 신경 쓰여?”

“…아니네. 콜슨은…어차피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




스티브는 대수롭지않은 척 대답하고 나타샤에게 다음에 보자는 인사를 남긴 후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나타샤는 또 뭔가 눈치챈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잠시 스티브를 쳐다봤지만 아무 말 않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엘리베이터의 닫힘 버튼을 눌러 스티브의 시야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나타샤가 당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있는 곳에서 저런 얘기를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스티브는 '콜슨의 방에서' 그런 얘기를 나눴다는 게 마음에 걸렸던 거였다.

쉴드에서는 주인이 없는 방에 다른 사람의 출입을 허용하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그게 설령 외부인이 아닌 쉴드 요원이라고 할지언정. 그리고 스티브가 '좀처럼'이라고 생각한 것은 바로 지금 제가 아는 한은 처음으로 예외적인 상황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바꿔 말하면 이 일 전에는 단 한 번도 그런 상황을 보거나 들은 적이 없었다.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누구에게나 친절하며 상냥한 말투를 가진 콜슨이 사실은 매우 용의주도한 성격이며 매사에 철저한, 그야말로 잘 훈련된 '요원'이라는 것을 스티브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잠깐이라고는 하지만 콜슨이 자신의 개인 사무실을 나가면서 토니를 그대로 두고 다녀왔다, 그것도 나타샤까지 함께.
콜슨은, 도대체 얼마나 토니를 신뢰하고 있는 걸까?

스티브는 자신이 속좁게도 콜슨과 토니 사이의 친밀함을 질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지만, 이성적인 깨달음이 감정적 동요를 진정시켜주지는 못했다.
콜슨이 좋은 사람인 것은 안다, 알지만…. 물론 나도 콜슨을 믿고 있다, 만약 내게 개인 사무실이 있다면 콜슨은 기꺼이 마음대로 드나들어도 좋다고 할 것이다, 아마 그럴 테지. …토니는? 혹시 토니의 개인 사무실이나 랩에 콜슨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걸까?
돌아가면 자비스에게 확인해봐야겠다고 다짐하며 모퉁이를 돈 순간, 스티브의 눈 앞에 마법처럼 토니가 불쑥 나타났다.
어, 스티브. 마중 나가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왔네. 폭주하던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토니와 마주쳐버린 스티브가 놀라서 잠시 굳어져 있는데, 토니가 스티브를 향해 배시시 웃었다. 아, 적어도 이것만은 확실하다. 토니가 이렇게 웃어주는 건 나밖에 없을 거야.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며 토니의 웃는 얼굴에 홀려 여전히 말을 잊고 있는 스티브를 향해, 토니가 두 팔을 활짝 벌렸다.




“Welcome home, darling.”




앞뒤 가릴 것 없이, 스티브는 토니를 와락 끌어안았다. 토니, …토니. 다른 말이 나오지 않아 스티브는 간신히 토니의 이름만 불러댔고, 토니는 다른 말은 하지 않아도 다 안다는 듯 스티브의 등을 안고 토닥였다. 가장 알맞은 순간에 그 어느 것보다도 필요했던 말을 해주었다, 토니가. 내가 원하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래서 기꺼이 그렇게 해주고 싶었다는 듯이. 이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적어도 지금은 다 괜찮지 않은가, 스티브는 생각했다.
힘들었을 텐데, 말리부에 가서 좀 쉬고 뉴욕으로 가자. 제 품 안에 폭 안긴 채 조곤조곤 속삭이는 토니에게 응, 하고 고개를 끄덕인 스티브는 토니를 조금 더 힘주어 안으며, 오래도록 한 번도 하지 못했던 말을 드디어 할 수 있었다.
다녀왔어I'm home, 라고.










*










토니의 동그란 뒤통수만 봐도 뭔가 골똘히 생각에 빠진 것 같아서, 잠시 뒤에서 기웃거리며 토니의 낌새를 살피던 스티브는 결국 토니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저 혼자 짐작해보기를 포기하고 토니에게 그냥 물어보기로 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나? 얼굴이 심각하군. 사실 토니의 얼굴은 심각하다기보다는 풀이 죽었다고 해야 맞을 것 같았지만, 왜 그리 시무룩하냐고 묻는 게 조금 꺼려져서 조금쯤 에둘러 물은 것이, 토니의 대답을 듣고 보니 참으로 적당했던듯 싶었다.




“내가 캡틴을 농락한다는데 아무도 뭐라는 사람이 없으니 이상해서.”

“…농락이라니, 토니.”

“세간의 시선으로 보면 그런 거잖아, 놀만큼 놀아본 40대 아저씨가 순진한 20대 청년을 꼬여낸 거니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기꺼이 해명하겠네, 내가 먼저 자네에게 빠졌다고.”

“음…그거 오히려 역효과일 거 같은데.”




스티브의 결연한 다짐에 토니는 재미있다는 듯 킬킬 웃었지만, 이제 스티브는 토니가 웃음으로 얼버무리는 것에 속아넘어갈 정도의 바보는 아니었다. 비록 눈치가 없어서 예의 '키스 소동'을 벌여 쉴드 내의 '공식 인증 커플'이 되고 벌써 한 달이 지났는데도 여태 이런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걸 몰랐을 만큼 둔하기는 해도, 이런 소리를 해놓고 '아무것도 아냐, 그냥 해 본 소리야.'하고 넘긴다고 해서 아, 그런가- 하고 넘어갈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다는 말이다.




“사실 나는 꽤 큰 소동이 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계란을 맞거나 토마토나…, 돌을 맞는다거나….”

“돌이라니, 정말 그런 일이 생기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걸세. …계란이든 토마토든, 뭐가 됐든.”

“누가 돌을 던져도 이상하지 않거든, 내 생각에는. …그런데 아무도 뭐라는 사람이 없어서…, 뒤에서야 뭐라고 하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 앞에서는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으니까…, 이상하단 말이야.”

“그게 그렇게 이상한 일인가? 나는 누가 자네에게 뭐라고 한다면 그게 더 어이 없는 일일 것 같네만.”

“사실은…혹시 내가 그 이상한 빔에 맞은 후로 계속 꿈을 꾸고 있는게 아닌가 좀 의심스럽기도 해. 나 좋은 것만 보여주는 꿈 말이야, 깨고 싶지 않은 꿈…몽마 같은 거 있잖아?”

“그런 거라고 하기엔 그 후로도 자네에게 충분히 괴로운 일이 많았던 것 같은데, 토니.”

“음, 난 머리가 좋으니까 내가 납득할만한 전개가 사전에 필요했던 거라고 생각하면 설명이 되지.”




토니의 말에 스티브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도망치지 않겠다고 했으면서, 왜 아직도 이렇게 잔걱정으로 자신을 괴롭힌단 말인가. 다른 일에는 대범하기 짝이 없으면서 왜 이 일만은 편히 받아들이고 제멋대로 하지 못하는 건지.
속이 상해 원망처럼 그런 생각을 떠올렸지만 스티브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이 일이 저와 관계된 일이기 때문이라는 걸. 토니가 이리도 신경 쓰고 조바심 내는 이유는 제 자신이 아니라 '스티브 로저스'를 위함이라는 것을 스티브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무랄 수 없고, 화를 내거나 탓할 수 없다. 애가 타고 속이 쓰리고 마음이 아프지만, 토니가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고 자신이 토니를 더 사랑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꿈이니까 이번엔 깨어나는 걸로 도망칠 건가?”

“아니, 그건 아니고…. 이제 도망 안 친다고 약속 했잖아.”

“…그랬지. 다시는 도망치지 않겠다고, 나에게 약속했지.”

“응, 그냥…이게 꿈이라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이게 다 꿈이면 '실제'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당신한테 잘못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죄책감 같은 걸 가질 이유가 없는 거 아닌가- 하고.”




'실제'라는 말을 하며 장난스럽게 손가락으로 따옴표를 만들어보였지만 그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뱉어내는 '잘못'이나 '죄책감'이라는 단어에서 아직도 떨쳐내지 못한 토니의 자책이 느껴져 스티브는 가슴께가 지끈거렸다.




“인셉션처럼, 림보에 갇혔다고 해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어. 나 혼자 꾸는 꿈이라도 괜찮다고, 꿈만 꾸다 남은 평생을 잠으로 보내다 죽어도 전혀 상관 없다고.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는 꿈이라고 말이야.”

“…토니.”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꿈이라면 그 꿈에 질식해서 죽어도…. 아니, 오히려 그 꿈만 꾸다가 죽고 싶어, 나는.”

“자네가 잠들어있는 동안, 진짜 내가 현실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으면 어쩌려고?”




스티브의 물음에, 토니는 잠시 아무 대답도 없이 말끄러미 스티브를 쳐다보다가 이윽고 손을 들어 스티브의 애처롭게 굳어진 얼굴을 살살 펴주듯 부드러이 쓸었다. 투박하지만 따뜻한 토니의 손이 저를 어루만지는 느낌이야 말로 꿈결같다고 생각하며 스티브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다시 눈을 떠 토니를 쳐다보았다.
사랑스럽고 애처로운 이 얼굴이, 언제쯤이면 나를 볼 때 아픔 없이 행복만 느낄 수 있게 될는지. 제 마음이 아픈 것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으니 아무래도 좋지만, 토니가 아직도 매일 상처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티브는 너무나 안타까워 심장이 시꺼멓게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림보는 나한테만 길지, 사실은 아주 짧은 시간이잖아. …그러니까 금방 깨서 당신을 만나러 갈 수 있을 거야.”

“자네를 기다리는 시간은 짧더라도 많이 힘들다네, 그러니 꿈이라면 얼른 깨서 내게 와줘야 해.”

“…이거 꿈이야?”

“아니, 아니네. …이게 꿈이라면 자네의 꿈이 아니라 내 꿈일 테고….”

“당신은 이게 꿈이 아니라고 확신하나봐.”

“물론, 매일 아침에 눈뜨자마자 허벅지를 꼬집어본다네.”

“…진짜?”

“농담인 것 같겠지만, 정말이네.”




스티브가 진지하게 말하자 토니는 웃었다, 농담을 이렇게 진지하게 하는 걸 보니 얼음과자 같던 양반이 제법 노련해졌다면서. 그리고 물기 어린 눈을 곱게 휘며 스티브를 향해 웃던 토니가 스티브의 곁으로 바짝 다가 앉으며, 입술이 아니라 숨이 닿은 것처럼 스치듯이 짧게 스티브에게 입을 맞추었다.
나도 이게 꿈이 아닌 거 알아, 나즈막히 말하고 토니가 팔을 뻗어 스티브를 꼭 끌어안았다. 그래, 꿈이 아니네. 스티브는 토니를 제 품에 마주 안고 토니의 등을 토닥이며 대답했다.
꿈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정말로. 혼잣말처럼 작은 소리였지만 당연히도 스티브의 귀에는 토니의 속삭임이 들렸고, 스티브는 대답 대신 토니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고 토니를 가볍게 들어 안고 침실로 걸음을 옮겼다.





















스토니가 서로 좋아 죽는 게 좆타.

2017.01.12 (21:08:50) 신고
ㅇㅇ
모바일
저도 좋아요 센세ㅠㅠㅠㅠㅠㅠㅠㅠㅠ스토니 달달하다못해 아주 쓰네 써ㅠㅠㅠㅠ
[Code: 8f6a]
2017.01.12 (21:10:51) 신고
ㅇㅇ
모바일
나도 좋아 센세ㅠㅠㅠㅠㅠㅜ 내 조쉬도 너무 좋아서 울고있어ㅠㅠㅠㅜㅠㅜㅜ 더이상 토니가 물러서지 않고 똑바로 마주보고 있는게 진짜ㅠㅠㅜㅠㅜㅠㅜㅜㅜ 좋다ㅠㅜㅠㅠㅜㅜㅠㅜㅜ
[Code: c467]
2017.01.12 (21:22:48) 신고
ㅇㅇ
모바일
저도 서로 좋아 죽는게 좋아요ㅠㅠㅠㅜ 행쇼만 했으면 좋겠어요ㅠㅜㅜㅠㅠㅜㅜ존잼존잼
[Code: 85e2]
2017.01.12 (21:37:27) 신고
ㅇㅇ
모바일
나도 센세가 좋아 죽어 겨론해줘ㅠㅠ ㅠ ㅠㅠㅠㅠㅠㅠ
[Code: adfc]
2017.01.12 (21:54:50) 신고
ㅇㅇ
모바일
센세 매일 목빠지게 센세를 기다리고 있어요 진짜 센세 사랑해 ㅠㅜㅜㅠㅜㅠㅜㅠㅠㅜㅠㅜ
[Code: 8407]
2017.01.12 (21:55:33) 신고
ㅇㅇ
모바일
너무좋아....
나도좋아센세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6c47]
2017.01.12 (21:56:11) 신고
ㅇㅇ
모바일
센세 왜케늦게오셨어요ㅠㅠㅠㅠ광광 스팁 주체못하는 애정표현 좋아죽을거같음 하 ㅠㅠ 정말ㅠㅠㅠㅠ하ㅠㅠㅠㅠ
[Code: 6c47]
2017.01.12 (21:56:43) 신고
ㅇㅇ
모바일
한 솔로가뭔지 몰랐는데 찾아보니까 별전쟁인물이네 헿헿
[Code: 6c47]
2017.01.12 (21:57:04) 신고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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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더가시급함니다센세ㅠㅠ
[Code: 6c47]
2017.01.12 (23:15:05) 신고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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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역시센세도 좆치?그니까 억나더도 좆쿠..이좆은 금무순 문학무순을 끝내지말고 영원히 연재해죠 내가 지하실 확장을 위해 열심히 꿀딸게! 응! 믿는다!
[Code: 5ed2]
2017.01.13 (00:09:35) 신고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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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스토니 좋아ㅜㅜ 재업이란 어나더의시작인것을...!
[Code: 995d]
2017.01.13 (00:19:11) 신고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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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센세가 좆타ㅜㅜㅜㅜㅠㅠㅜ좋아죽을거가타ㅠㅠㅠㅠㅠ센세 억나더가좍 사랑해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Code: 9702]
2017.01.13 (00:39:12) 신고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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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내가 센세를 사랑하는거 알지?
[Code: 89a1]
2017.01.13 (09:51:09) 신고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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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Code: 355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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