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연갤 - 애니
- 애니


보고싶다
근데 태웅이가 그냥 흑표가 아니라 요괴인
비 내리는 날 정대만 감독님 퇴근길에 뭔 박스 같은데에 버려져있는 태웅이 줍는거...여느 때처럼 집 앞에 차 주차하고 내리려하는데 헤드라이트 불빛에 비치는 박스가 뭔가 이상한 거임 꿈틀...거림 분명 꿈틀거렸어 방금?! 얼마전에 한 괴담 소설을 덜덜 떨면서 읽었던 정감독님 주변에 공포감 호소했더니 받았던 복숭아 염주 팔찌 심호흡하며 한번 만져주고 귀신 쫓는 효과가 제발 탁월하길 바라며 눈 앞의 박스를 다시 보는데
꿈틀.. 꿈틀꿈틀
히이이이익!!!
더 심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괴상한(?) 물체에 정감독님 허억허억 숨소리 내쉬면서 차 안에 계속 있어야 할지 아니면 밖으로 나가서 도망 (아파트 코앞)가야할지 고민하다 결국 차문 열고 뛰쳐나오겠지 마침 박스 안의 괴물체도 그 움직임을 감지했는지 불쑥, 하고 솟아오르는데 정대만 으아아아악 소리와 함께 마주한건...
-...
-...이, 이게 대체...
한 꼬마였음. 머리는 새까매서는 비죽비죽 아무렇게나 기른 채인 더러운 더벅머리였고 약간 노란 빛이 도는 듯한 눈이 형형히 빛나 마치 새끼 고양이 같았음 정감독님 눈 앞의 소년이 박스에서 나왔다는 사실에 인지부조화 와서 한참을 얼떨떨하게 있다가 귀신이 아니라서 다행인가...하고 안도의 한숨 내쉬겠지 그 꼬마가 대만이 다리를 와락 껴안기 전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말야
-...우, 우아악!
-배...고...
-야, 얌마. 뭐하는 거야...! 저리 가...!
-...배고파...
가뜩이나 주변 어두운데 대만이 정장 바지도 까맣고 거기에 매달린 까만 꼬마의 머리통도 까매서 당최 분간이 안갈 정도였을듯 그렇게 무슨 마물 붙듯이 까만 덩어리 하나를 다리에 달랑달랑 달게 된 정감독님은 곧 꼬마가 매달린 다리 쪽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윽...! 하고 소리를 지름
-아프다고!!
-...배고...파...
-내 다리는 먹는게 아냐!
-....
정대만의 일갈에도 아랑곳 않고 다리를 질겅질겅 깨무는 태웅이임 배가 많이 고픈듯 했음. 이빨도 사람의 그것과 다르게 아주 크고 뾰족해서 거기에 다리를 물린 정감독님은 이제 진짜로 통증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음 하필 이 녀석이 매달린 곳도 무릎 부근이라...찌릿 하고 오는 통증에 제발 떨어지라고 하소연했더니 그제서야 힘을 느슨하게 푸는 녀석이었음 무슨 꼬마가 이렇게 힘이 장사야!?
-배고파.
-너...집 없어? 부모님은?
-여기.
-이 박스가 집이라고?
-응.
-비, 비가 이렇게 오는데...진짜 집이 없어?
-먹을거 줘.
-....
말이 안통하는 녀석이었음. 일단 이 꾀죄죄한 녀석이 정말로 꼬질꼬질하고 불쌍해보여서 정대만은 난감한 듯이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결국 한숨을 푹 내쉬고 옆의 꼬마를 일으켜 세움. 정말로 배가 고팠는지 아까 다리에 매달렸던 뒤로는 풀썩 주저앉아서 제 발치에 철푸덕 하고 구두를 깔고 앉은 녀석한테 일단 뭐라도 먹여야겠다 싶은 댐저씨...읏차, 하고 태웅이를 들어올려서 품에 안고는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겠지
공동현관의 주황빛 불빛 아래의 녀석은 생각보다 더 퀭한 모습이었음 얼굴에 피...가만, 피!? 정감독님 꼬맹이 얼굴 이리저리 살펴보다 입가에 묻어있는 자국이 핏자국이라는 걸 알아챔. 이걸 왜 지금 봤지!?
-이게 뭐야...?
-새.
-뭐?
-새 먹었어. 어제.
새를 먹었다고...? 정감독님 이제 정신이 혼미함. 제가 지금 집에 데려오려고 하는게 정말 사람이 맞나 싶음. 아까 사그라들었던 공포심이 살짝 머리를 치켜드는데...어제 새 한마리를 먹고 지금까지 있었다는거야? 하는 동정심이 결국 이김. 꼬마를 다시 고쳐안고 집안으로 들어서는데 현관불이 반짝, 하고 켜지며 두 사람을 반갑게 맞이하는 듯 했음. 마치 이 집에 한 사람이 더 있는게 오랜만이라는 듯이
꼬마를 내려놓고 나서 뭐 먹을게 없나...하고 냉장고를 뒤지던 감독님 냉동실 열어보며 상체를 숙이는데 이내 냉동식품 발견하겠지 간편 식사라고 쓰여져있는 키트를 꺼내며 아, 여깄...하는데 곧 으악! 하고 소리지를듯 꼬마가 정감독님 등 위로 날렵하게 점프해 올라탄 뒤 냉장고 윗쪽을 열음 그리고 조리도 되지 않은 고기 팩을 낚아채서 다시 감독님 등 타고 내려옴. 그 모습이 작은 맹수와 같아 정감독님 방금 제 눈으로 보고도...그리고 제 등으로 당해놓고도(?) 믿기지 않아 얼떨떨해 하겠지
-너, 얌마, 사람 등에...
-이거.
-이걸 먹고 싶다고?
-응.
-...잠시만 기다려. 구워야...
-그냥 먹을래.
-그냥 먹겠다고?
끄덕끄덕, 하고 눈을 반짝이며 그새 팩 비닐을 뜯고 생고기를 꺼내고 있는 꼬마는 딱히 대답이 필요하지 않은 듯 했음. 태웅이는 아까부터 이런 식이었음 동물처럼 마음가는대로 행동하고, 답을 바라지 않고 행동하고...이제는 고기를 생으로 먹고 싶다고 하고 있었음. 아니, 이미 먹고 있었음 얼굴의 핏자국이 채 사라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새빨간 정육을 날카로운 이를 세워 찢어발겨 먹는 태웅이를 보면서 댐감독님 잠시 복숭아 염주 팔찌ㅋㅋㅋ 다시 만짐 저 놈 정체가 대체 뭐야...!?
이내 고기 한점을 전부 해치운 서태웅 만족스럽다는 듯이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가 예사롭지 않았음 도저히 사람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짐승에 가까운 울음에 정감독님 좀 오싹해져서 뒷걸음치는데 꼬마가 다시 정감독님 다리에 와락 하고 매달림. 우아아악! 하고 소리지르는 어른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쓱쓱 다리에 부비며 만족감을 표시하는 태웅이임
-고마워.
-그...그래. 비록 난...한게 없지만...
-고기 줬잖아.
-그...렇지. 조리...해야 되는게 맞는데...
-괜찮아.
-꼬마야...생고기를 날로 먹으면 안 돼.
-왜?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되냐...
-새보다 훨씬 맛있어.
-...
-그리고 집도 줬잖아.
-...뭐?
-집. 이제 여기가 내 집이야.
-아니 이녀석이 언제 봤다고 네 집이야...?
정대만 황당해서 말도 안나옴ㅋㅋㅋ 물에 빠진 사람 건져놨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하는게 이런 상황인가...밥 줬더니 이제 집도 달라는 이 꼬마 녀석의 당당한 요구에 댐감독님 할말을 잃음. 하지만 꼬마가 너무...꾀죄죄하기도 했고 갈곳도 없어보여서. 정감독님 마음이 약해짐 꼬마를 집에 살게 하고 말고는 나중에 결정하고 일단 애를 씻겨야겠다 싶었음. 다리에 매달린 꼬마를 집어서 다시 안아들고 욕실로 향하는데 이 꼬마녀석이
-아야!
-?
-목을...목을 물면 어떡해!
-하지만 간지러운걸.
-뭐...뭐가!?
-이빨. 간지러워.
-그렇다고 내 목을 물어!?
잠깐 안아올렸더니 그새 댐감독님 목덜미에 대고 입질을 시작하는 서태웅...될성부른 새싹은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음. 이 꼬마녀석 입질이 지금 한번뿐이겠냐...아무튼 정대만 태웅이 좀 더 아래로 안아들고 욕실로 향하는데 대만이 수트도 전부 더러워져서 빨아야 하겠지 꼬마 때가 함께 묻어서 팔이나 등등도 얼룩덜룩하고 감독님도 좀 씻어야 했음
욕조에 물 틀어놓고 태웅이 옷 벗기기 시작하는 댐감독님인데 말이 옷이지 거의 거적떼기였음 코를 찡그리며 이건 그냥 버려야되겠다, 하고 옷가지를 옆으로 치워놓고는 자기도 셔츠랑 바지를 벗기 시작하는 정대만임 태웅이 그런 정대만을 빤히 바라볼듯 점점 드러나기 시작하는 나체를 뚫어지게 바라보는데 대만이 그 눈빛에 괜히 쫄아서 (리터럴리하게 잡아먹힐까봐...) 태웅이랑 좀 떨어져서 옷 벗음
-뭘...뭘 보냐.
-처음 봐.
-뭐를...?
-사람 몸.
-켁, 켁...그, 그런건 함부로 보면 안돼.
-왜?
-남의 몸이니까...?
-아저씨가 먼저 벗었잖아.
-????
-벗어서 볼 수 밖에 없어.
-아니...그런 말 좀 아무렇지 않게 하지 말라고...그보다 아저씨!?
-아저씨잖아.
-...
할말이 없어지는 정감독님ㅋㅋㅋ 그래...아저씨 맞지. 다 이 아저씨 잘못이다 내가 널 집에 데려온게 죄지...애 집에 데려오고 밥(...) 먹여놨더니 아저씨 소리 들은 정대만 좀 서러워져서 욕조 목욕 말고 샤워 부스 들어가서 물줄기에 눈물 흘려보낼까 잠시 고민함. 태웅이 꾸물꾸물 움직이더니 먼저 욕조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발 끝 닿자마자 고양이가 하악질 하듯이 히야아아아악 하고 이상한 소리 내면서 바로 발뺄듯 뜨거운 열기에 무척 놀랐는지 욕조를 노려보는 태웅이 보고 대만이 이제서야 좀 애가 애처럼 느껴질듯
-뜨거워?
-...
-이 정도는 뜨거운 거 아닌데.
-나도 알아.
-푸흡,
괜히 오기부리며 센척하는 녀석을 보니 사내놈이 맞다 싶음. 꼬마가 다시 심호흡을 하더니 욕조 안으로 발을 살살 넣는데 도저히 무리인지 발끝이 덜덜 떨림ㅋㅋ 대만이 웃으면서 꼬마 뒤에서 안아들고 같이 씻을까? 하고 욕조에 함께 들어감 태웅이 캬아아아아앙 하는 소리 내면서 고통스러워하는데 이내 잠잠해짐 생각보다 안 뜨겁잖아?
-거봐. 안 뜨겁지?
-...
-익숙해지면 괜찮아.
-...
-괜찮지?
끄덕끄덕. 물 속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이 곧 푸우...하며 몸을 아래로 가라앉혀 깊게 담금. 까만 정수리밖에 안 보이는 꼬마 머리를 보며 대만이 생각함 어쭈 첫 입욕부터 뜨거운 물 속에 잠수라니 익숙해지는게 빠르잖냐 이녀석. 하고. 뜨거운 물에 몸이 노곤노곤하게 녹는 느낌이 좋아서 대만이도 눈 지그시 감고 어 좋다 하고 아저씨스러운 감탄이나 내뱉겠지 함께 내뱉어진 숨소리가 귓가에 와닿는게 간지러웠는지 꼬마가 흠칫하는게 가슴팍에서 느껴지는 대만이었음
그렇게 목욕을 마치고...그 뒤로는 꽤나 살벌한 진짜 씻기ㅋㅋ 였을듯 순서가 바뀌었긴 한데 당연히 입욕만으로는 꼬마 녀석의 꾀죄죄한 때가 다 씻겨질리 만무했음 대만이 태웅이 샤워 부스 쪽으로 데려가서 몸 빡빡 씻기는데 태웅이 또 캬아아아앙 하는 고양이 같은 소리 내며 난리치겠지 가만 있어. 하고 이태리 타올을 고쳐잡는 대만이었음
효과는 강력했다!
말끔해진 꼬마는 그야말로 온 몸에서 빛이 나는 듯 했음. 새하얀 피부가 광채를 발하는데 대만이도 넋을 놓고 바라볼 정도였을듯 그러다 정신 차리고 어우 내가 뭐하고 있냐, 하면서 애 입을 옷이나 찾아보려고 드레스룸 쪽으로 향하는 대만이임 이제 당연하다는 듯 어미새 쫓아가듯이 종종걸음으로 대만이 따라가는 태웅이
-이거.
-...이걸 입겠다고?
-응.
-다른거 많잖아. 저 초록색 티셔츠는 어때? 좀 크긴 하지만.
-이거.
-왜 하필...
-좋은 냄새 나.
-...!
태웅이가 고른 옷은 대만이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의 농구부 티셔츠였음. 유니폼은 아니지만 뒷쪽엔 나름 백넘버도 적혀있고 꽤나 오래된 옷이었지 14번 이라는 숫자를 꼬마가 만지작거리는 걸 보면서 대만이는 상념에 잠김 벌써 아득하게 느껴지는 옛 시절이었음. 잠시 옛 시절을 회상하고 있는데 꼬마가 주섬주섬 옷을 꿰입더니 망충한 얼굴로 댐감독님 바라봐서 대만이 빵터질수밖에 없었겠다
-푸, 푸핫...!
-?
-옷을 거꾸로 입으면 어떡해.
-거꾸로?
-옷이 앞뒤가 있는걸 몰라?
-몰라.
-14번이 뒷쪽으로 가게 입는거야.
-아.
실밥 있는 쪽으로 뒤집어 입은게 아닌게 기적이었음 이 녀석의 상식을 보면. 그래도 꼬마가 14번을 앞쪽으로 입어준 덕분에 대만이 왠지 모르게 꼬마녀석에 제 10대 시절을 겹쳐보게 됨. 꼬마 옷 앞뒤를 바꿔주면서 곧 됐다, 하고 옷 밑단을 탁탁 털고 제대로 입혀주는데에 성공하는데 그마저도 커서 태웅이 허벅지를 전부 덮을 수준이겠지 무슨 원피스 입을 것처럼. 꼬마가 계속 코를 킁킁대며 냄새를 맡음
-좋은 냄새.
-그게 나냐?
-응. 좋은 냄새 나.
-오래된 옷인데.
-포근해.
하고 말하며 다시금 다리에 안겨오는 태웅이 때문에 대만이 난감함. 꼬마 머리 쓱쓱 쓸어주면서 머쓱하게 있는데 꼬마가 물음
-이제 뭐해?
-응?
-밥 먹었고. 씻었고.
-이제 자야지?
-자?
-그럼 안 자...? 지금은 늦은 시간이야. 자야 해.
-...
꼬마는 이해하지 못한다는 표정이었음. 잔다는 개념을 모르나? 아니면 자는데 그거에 이름을 못 붙이는 건가? 어느 쪽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대만이는 태웅이를 이끌고 침실로 향함. 거실에 쇼파가 있긴 했지만 차마 이 어린 녀석을 혼자 자게 둘수는 없었음. 침대로 데려와서 뉘이고 이불 덮어주고 불 끄는데 꼬마 얼굴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임. 눈도 말똥말똥 또렷함.
-이제 뭐 해?
-...잔다니까?
-잘거야?
-넌 안자니...?
-응.
-잠이...안오니?
대만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태웅이가 요괴인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어서...단순히 애가 안 졸리다고만 생각했을듯 침대 한쪽에 누워서 저를 멀뚱멀뚱 바라보는 꼬맹이 머리를 다시 한번 쓱 쓸어주고는 잘 자라, 하고 등 돌려 눕는 정감독님임. 이내 으억, 하며 식겁했지만 말야 뒤에서 꼬마가 저를 꼬옥 껴안아왔거든
-뭐...뭐하냐?
-...
-숨막혀...임마...
-따뜻해.
-...응?
-포근해.
-...
대만이 아무 말도 할수가 없었음. 왠지 뭉클해지는 기분에 괜히 큼큼 하고 헛기침하며 괜한 소리 하지 말고 자라, 하는 대만이었음 오늘 하루 너무나 많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있었다는 걸 복기하며 곧 쏟아지는 잠에 굴복해 꿈나라로 빠져버리는 정감독님
그리고 그런 정감독님을 밤새 껴안고 있으며 내내 눈뜨고 밤을 지새우는 꼬마 요괴 아니 곧 꼬마가 아니게 되는 요괴 서태웅
갈 길 먼데 왜 이렇게 길어지냐
태웅대만
슬램덩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