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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30 04:10
ㅅㅈㅈㅇ

BGSD

1: “이게 사람 같습니까? 영화도 안 봐요?”
---
3: “아니야. 쌤이랑 집 가기로 했잖아.”







#30 .

허니쌤의 장담에 사람들이 기운을 얻긴 했지만 확신까지 얻을 수는 없었다. 허니쌤 자신조차도. 그나마 인력 조금이랑 야구 배트 몇 개가 등장해준 덕에 정신만 겨우 차릴 수 있는 정도였다.


그 와중에 라디오는 방송국에 문제라도 생긴 건지 아까부터 앵무새처럼 같은 방송을 반복해댔다. 피로함에 허니쌤 미간의 주름이 깊어졌다.

그러니 리지가 조용히 휴대폰에 이어폰을 연결하고 다른 방송이 들리면 알리겠노라 말했을 땐, 허니쌤도 대충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거하게 움직인 몸이 긴장이라도 풀린 건지 뒤늦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허니쌤은 다리에 힘이 빠진 걸 티 내지 않기 위해 애쓰며 자리에 주저앉아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바깥엔 좀비가 돌아다니고 있는데 교실엔 정신 나갈 만큼 반짝거리는 장식이 한가득한 게 우스워 헛웃음이 나왔다.

그런 허니를 가만히 지켜보던 잭이 슬금슬금 다가와 곁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자마자 그 웃음도 샐쭉한 표정 뒤로 자취를 감췄지만.



“왜요.”

“걱정돼서. 몸 안 좋아요?”

“아침부터 뛰어서 그래요. 머리가 핑 도네.”

“저혈압인데 무리하니까 그렇죠. 어지러워요? 앞은 잘 보이고?”

“앉아서 쉬면 됩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퉁명스러운 허니의 대꾸에도 잭은 눈썹을 조금 모았을 뿐, 계속 친절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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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은? 먹었어요?”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해. 쌤도 어젯밤부터 강당에 있던 거 아니에요?”

“음...”



눈썹을 모은 것도 비난이나 짜증 같은 감정이 아니라 오로지 걱정스러운 마음에 그랬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 허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걸로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사람이 너무 좋아도 문제야.

잭은 여전히 할 말이 남은 듯 입을 벙긋거리긴 했지만, 허니의 단호한 표정을 읽어내고 이내 입술을 꾹 물었다. 허니가 저런 표정을 지으면 절대 대화해주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혹시 저희를 빼고 중요한 얘기라도 하는 건 아닌지 선생님들의 대화에 몰래 귀를 기울이던 아이들도 대화가 어영부영 마무리되자 이내 저들끼리 눈을 마주치더니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 말았다. 보건쌤이 주변 사람들 과하게 걱정하는 건 늘 있는 일이었으니 이상할 것도 없었다.

가장 마지막까지 둘에게 집중하던 칼럼마저 시선을 떨구고 한숨을 한 번 푹 내쉴 때였다.


꼬르륵


칼럼의 귀 끝이 조금 빨갛게 물들었다.







#31 .

전신에 피 칠갑을 한 정도면 양반이고, 내장을 아낌없이 보여주며 학교 곳곳을 활보하던 좀비들은 다음 종소리가 울리자마자 또다시 스피커로 뛰어갔다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이미 교실에 붙어 있던 스피커는 야구 배트로 후려 박살 낸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배고픈 걸 걱정할 정신머리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리고 정말 배가 고팠다고 하더라도 밥 먹고 싶단 소리를 입 밖으로 꺼낼만한 타이밍도 없었고.


허니쌤이 매점에서 챙겨온 비상식량이나 물 몇 병이 더플백 속에서 아직 뒹굴고 있긴 했지만, 학교 상황이 이렇게 된 마당에 무턱대고 그것들을 죄다 꺼내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한창 잘 먹을 나이에다가 운동을 하느라 식성까지 좋은 칼럼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점점 빨개지는 귀를 애써 숨기며 딴청을 피웠고, 나머지 사람들도 그런 칼럼을 십분 이해해 민망한 소리를 못 들은 척해주려-고 했는데...



“이거 먹어.”



무거운 몸을 일으켜 터벅터벅 걸어간 허니쌤이 가져온 건 아직 교탁 위에 있던 케이크와 일회용 포크 한 뭉치였다. 칼럼은 물론 다른 사람들까지 뜬금없는 -솔직히 눈치도 조금 없는- 행동에 당황해 눈알만 굴려대고 말이 없자 ‘그’ 허니쌤도 달라진 분위기를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큰 감정 변화는 없어 보이는 얼굴에서 눈꺼풀을 몇 번 깜빡인 허니쌤이 변명처럼 어물거렸다.



“...애들은 단 거 먹으면 기분 좀 풀리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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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이 민망함도 잊고 활짝 웃으며 케이크를 덥석 받아 들었다. 풀려요, 완전.

덧붙인 대답에 허니쌤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복슬복슬한 칼럼의 머리통을 살짝 쓰다듬었다. 아까 때린 꿀밤이 조금 마음에 걸린 듯 이마도 흘긋 확인하는 시선에 칼럼의 웃음이 더 깊어졌다.

이 선생님이 아까부터 왜 이렇게 오버를 하나 했더니, 수업 한 번 안 들어온 학생도 학생이랍시고 걱정을 하고 마음을 써주는 모양이었다.


사실 태도가 다른 선생님들과는 다르게 너무 건조해서 조금 헷갈렸는데, 서투른 손길이 떨어질 타이밍을 몰라 여전히 머리칼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는 걸 보니 방금 막 확신이 들었다. 학생 대하는 게 어색한 게 아니라 애들한테 딱히 큰 관심이 없으시구나.

얼마나 학생들한테 관심이 없으면 덩치 산만 한 하이스쿨 학생들을 유치원생 정도로 취급할 수 있는 거지?

그렇다고 특이한 선생님이 딱히 밉지는 않았다. 보호받는 기분이 썩 나쁜 것도 아니었고, 이런 상황에 어리광 좀 부려도 되는 어른이 있다는 게 내심 안심되기도 하고.



갈팡질팡하는 손을 돕기 위해 저보다 조금 작은 손을 살짝 붙잡아내려 포크를 하나 쥐여주었더니 미세하게 구겨져 있던 미간이 풀어졌다.

역시 언제까지 쓰다듬어줘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거였군. 칼럼이 케이크를 선생님 쪽으로 살짝 밀었다.



“선생님도 같이 먹어요. 계속 뛰어다녔잖아요.”

“난 단 거 싫어하는데... 너희들도 이리 와서 먹어.”



머뭇거리는 아이들이 뭣 때문에 망설이는지도 모르면서 ‘지금 안 먹으면 상할걸?’ 하고 대신 변명해주는 서투름이, 어쩌면 다정한 천성일 수도 있겠다는 착각이 들었다.

선선한 날씨 덕분에 겉만 조금 녹은 생크림 케이크가 무척 달았다.







#32 .

좀비가 나타난 이유나 죽은 몸이 움직이는 원리에 관해 토론하고 싶어 하던 톰에게는 애석하게도, 그와 그런 지성적인 -정신 나간- 토론을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허니는 애들 배를 채우자마자 다른 정신 나간 생각을 하느라 바빠졌다.


우선 인원이 늘어났으니 허니의 자그마한 차로 탈출한다는 처음의 계획은 완전히 수정되어야 했다. 사실 좀비의 수도 아까처럼 만만하게 도망칠 범위에서 이미 한참 벗어나기도 했고.

게다가 저것들끼리 몰려다니며 내는 소리가 동료를 부르는 건지 그 숫자는 점점 늘어나는 중이기까지 했다.

이 동네 좀비는 다 이리로 오겠네. 학교 다닐 때 점심시간에 운동장 트랙을 따라 도는 학생들이 딱 저 꼴이었는데. 느릿느릿 걸어 나가서 운동장에 하나, 둘... 잠시만, 운동장에 모여?


학교 내부에 있는 좀비 대부분은 운동장에 몰려 있는 것 같고, 그 비율도 늘고 있고, 굳이 계단을 오를만한 지능은 없는지 교실이 있는 2층에는 아까 선생님 두 명이 달고 온 몇 마리가 전부인 것 같고, 2층엔 강당으로 연결되는 브릿지가 있고, 결정적으로 교실에는 다른 어른이 둘이나 생겼고...

간당간당하게 유지되던 허니쌤의 책임감은 새로운 어른들의 등장으로 인해 그 힘을 서서히 잃고 있었으니, 허니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당연히 한 가지뿐이었다.







#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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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

“안 됩니다.”

“이러기예요? 잠깐 애들 보고 있으라는 게 그렇게 무리한 부탁도 아니고.”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혼자 어떻게 주차장까지 가려고요?”

“선생님 또 혼자 나가세요?”

“아니, 리지. 음... 그렇다기보다는...”



혼자 주차장으로 가는 길목까지만 뚫고 오겠다는 허니의 의견은 ‘묵살’이라는 단어가 소박하게 느껴질 정도로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과묵하기 짝이 없는 조엘마저 인상을 찌푸리고 조용히 문가로 걸어가 팔짱을 끼고 멈춰 섰다. 지금 저거 나 못 나가게 지키는 거야...?


허니의 미간과 야구 배트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찰나에 짚어낸 해리가 얼른 손을 뻗어 배트를 빼앗아 들었다. 저 선생님이 사람을 패지는 않겠지만, 손에서 무기를 놓질 않길래 내내 주시하고 있었으니까. 나이스 타이밍.

손이 가벼워진 허니가 잠깐 주머니에 있던 스패너를 떠올리긴 했는데, 어쩐지 해리 앞에서 다시 그 피투성이 흉기를 꺼내기가 조금 망설여져 팔짱만 꼈다. 그렇다고 순순히 물러날 생각까지는 없었지만.



Rrrrrr-



마침 타이밍 좋게 울려준 종소리에 좀비들이 다시 괴성을 지르며 스피커 쪽으로 달려갔다. 두두두- 진동이 약하게 울렸다. 허니의 손끝이 이미 박살 난 스피커를 가리켰다.



“그럼 방송실 가서 종부터 끄자. 저것 때문에 노이로제 걸리겠어. 아니면 운동장에 라디오라도 틀어서 밖으로 유인해도 되고.”

“1층이 여기보다 바글바글한데요.”

“선생님 그냥 안 나가시면 안 돼요? 너무 위험해요.”

“허니, 나가는 방향이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나간다는 것 자체가 위험한 발상이라고요.”

“그럼 여기서 손 놓고 있을까요?”



해리, 리지, 잭의 만류에 허니 미간의 주름이 더 깊어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이런 상황에 무리에서 싸움이나 갈등이 벌어지는 건 죽음의 전조증상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기 때문에, 허니는 화를 더 내는 대신 한숨을 푹 쉬며 무리를 등지고 섰다.


두두두-


두 번째 개수작도 먹히지 않았다니. 어쨌든 정확한 상황 파악도 안 되는 학교에 머무르는 건 미친 짓이었다. 가장 안전한 장소라고 생각했던 학교가 가장 위험한 장소가 되고 있었다.

잭과 조엘의 차가 주차장에 있을 테니 어떻게든 건너갈 길을 뚫어서 탈출하면-


두두두-


아니 근데 이 좀비 새끼들은 왜 자꾸 뛰는 거야...?

작은 진동 소리가 멈추지 않고 귀를 약하게 간지럽혔다. 체력도 좋네... 따위의 실없는 생각이나 하던 허니가 표정을 굳히더니 갑자기 창문으로 다급하게 다가가 커튼을 쳤다.

발아래로 느껴지던 진동은 진작에 사라지고 없었다. 그럼 이 소리는...



두두두-



운동장 한참 너머에 있는 마을 상공에서 작지 않은 점 하나가 다가오고 있었다. 두두두- 직접 듣는 건 처음인 게 분명한 소음의 정체를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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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다.”



희망의 소리가 두두두- 하고 울렸다.







#34 .

“약점은 뒤통수예요.”

“예?”

“뒤통수랑 목덜미 사이 터뜨리면 죽... 멈춘다고요. 근데 뭐, 배트로 사람 두개골 깨기는 힘들 테니까 최대한 밀어 넘어뜨리는 방향으로 갑시다.”



조엘과 잭에게 땅에서 굴러다니던 야구 배트를 건네주고 더플백을 둘러맨 허니는 더 할 일이 남은 듯 바쁘게 움직였다. 그러면서 쉴 새 없이 쏟아내는 말을 이해할 수 있는 건 해리가 유일했으므로, 그들이 허니에게 멍청한 “예?”만 되풀이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멍한 얼굴을 흘긋 곁눈질로 쳐다본 허니가 그제야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헬기가 오고 있어요. 옥상으로 가야 해요.”

“그게 정말이에요?”

“지금 저기 확인해 봐요. 리지? 이리 와. 팔에 이 책 두르고 테이프로 감아.”



부산스럽게 교실 곳곳을 털어대더니 학생들을 위한 보호대를 찾으려 했던 거였나. 조엘은 멍청한 질문을 더 하는 대신 허니를 도와 보호 장비가 될만한 걸 찾기 시작했다. 헬기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음이 조급해진 조엘과 잭이 본인들이 차고 있던 보호장비를 벗어 학생에게 건네주려다 허니에게 금방 제지당했다.



“그건 쌤들이 계속 차고 있어요.”



책이나 테이프 따위보다 이게 훨씬 안전할 텐데... 허니는 그들의 생각을 어렵지 않게 읽어냈지만, 빌의 팔에 테이프 감는 것을 마저 돕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딱히 리더나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이런 지시를 내리는 게 못내 불편한 얼굴이었다.



“우리가 앞장서다 물리면 다 끝이잖아요. 두 분이 앞장서고, 제가 뒤에서 따라가면서 애들은 최대한 안으로 보호합시다. 괜찮겠죠?”



라고 말하는 허니에게
‘뭐라는 거야 이 땅콩만 한 게. 스패너 이리 가져와요.’
라고 제정신 박힌 일갈을 날릴 수 있는 사람은 교실에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객관적인 시선에서 허니는 리지보다도 부족해 보이는 피지컬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허니가 보호해준다고 했으니 막연히 그럴 것 같다는 믿음이 피어올랐기 때문이었다.


물론 중간에 정신을 차린 잭이 좀 긴 무기-야구 배트-를 든 사람이 앞뒤 한 명씩 있는 게 좋겠다는 되도 않는 핑계로 허니와 제 자리를 바꾸는 작은 해프닝이 벌어지긴 했지만, 어쨌든 여덟 사람은 옹기종기 교실 문 앞에 모일 수 있었다.

맨 앞에서 교실 문손잡이를 꾹 쥔 허니가 중얼거렸다.



“얘들아, 절대로 등은 보이면 안 된다.”







#35 .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걱정과 긴장이 무색할 만큼. 그러나 조심스럽게 중앙계단으로 향하는 동안 그들은 숨소리, 발소리 하나 내지 않으려고 주의했다.

계단을 통해 내려본 1층의 좀비들은 헬기 소리에 반응하듯 서서히 운동장 쪽의 벽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역시 문을 통해 나갈만한 지능까지는 없다는 소리인데, 그렇다면 아까 2층에 어거지로 올라왔던 좀비들이 굳이 1층으로 내려갔을 확률도 현저히 낮을 게 분명하니까. 어딘가 숨어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을 좀비들을 자극하지 않아야 했다.


몸을 잔뜩 낮춘 채로 계단을 반쯤은 기어가는 동안 다행히 좀비와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근근이 밖이나 1층 즈음에서 들려오는 비명을 제외하고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아 오히려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아래 상황을 전혀 알 수 없다는 두려움이 그들을 좀먹었다. 그러나 일행들은 서로의 등을 보며 우선 끊임없이 앞으로, 위로 나아갔다. 올라가서 불이라도 피우면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탈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은 제법 강력한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무난하게 도착한 옥상의 문 앞에서 허니가 작게 수신호를 보냈다. '셋, 연다, 오케이?' 조엘이 배트를 움켜쥐고 고개를 얕게 끄덕이... 려다 허니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아 내렸다.

내가, 연다, 오케이?
잠깐 눈을 몇 번 깜빡인 허니가 의외로 순순히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리지를 등 뒤에 숨기고 피투성이 스패너를 고쳐 잡는 걸 확인한 조엘이 팔을 반쯤 들어 올렸다.





하나, 둘, 셋







#36 .

쓸데없이 낡고 두껍기만 한 철문이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평범한 인간인 허니 뒷목에 솜털이 쭈뼛 설 만큼 날카로운 소음이었으니, 만약 옥상에 좀비가 있다면 이 소리를 무시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뭐라도 달려온다면 대가리를 후려주마. 허니가 바짝 긴장한 몸을 문틈 사이로 구겨 넣었다.


허니와 좀비 모두에게 다행스럽게도 옥상은 고요하기만 했다. 물론 제법 가까워진 헬기 소리를 제외하고서 말이다.

간단하게 밖을 훑은 조엘이 마저 손짓하자 아이들이 조심스럽게 문을 비집고 나왔다. 마지막까지 뒤를 경계하던 잭을 끝으로 모두가 옥상에 발을 디뎠다.

무거운 문이 닫히며 또다시 쿵- 하고 육중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전히 인기척 비슷한 것도 없었다.


그 틈에 공사 자재 따위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옥상 구석구석을 훑은 조엘과 허니가 눈을 마주쳤다. 그제야 가볍게 끄덕여지는 고개에 여기저기서 작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흐아... 긴장이 간절하게 묻어나는 소리에도 허니는 딱히 신경 쓰는 기색 없이 몸을 움직였다. 헬기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낮이라고는 해도 구조 신호를 미리 만들어 두는 편이 나았다.



“쌤, 뭐 하세요?”

“SOS라도 만들어 두게. 낮이라 불 피워도 잘 보일 것 같지도 않고. 저쪽에서도 우리가 보여야 구해주지. 좀비인 줄 알면 어떡해.”

“아...”

“알아들었으면 좀 도와줄래? 거기 나무판자 좀 몇 장 가져와 줘.”

“네에-.”



칼럼이 휘적휘적 판자가 쌓인 곳을 향해 걸어가자 나머지 사람들도 뒤를 따랐다. 허니는 펜스 가까이에 의자를 하나 두고 올라섰다. 그럴듯한 S자의 곡선을 흉내 내기 위해 구도를 고민하는 동안 사람들과 반대 방향으로 향했던 조엘이 양손 가득 뭔가를 들고 돌아왔다. 흔한 벽돌이었다.



“벽돌은 왜요?”

“거기서 말씀해주시면 제가 맞는 위치에 놓겠습니다. 판자보다 이걸로 먼저 표시하는 게 빠를 것 같아서.”

“아, 좋네요. 그럼 지금 서 계시는 쪽에 하나 둬주세요.”

“네.”



여기랑, 거기랑... 아뇨, 한 발짝 앞이요. 네, 그쪽이요.

허니와 조엘의 대화를 들은 건지 다른 일행은 판자 무덤 근처에 멀뚱멀뚱 서서 나머지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엘은 어느 정도 그림이 잡히자 알아서 척척 벽돌을 놨다. 그 덕에 할 일이 사라진 허니는 조엘과 나머지 일행을 번갈아 쳐다보다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그냥, 진짜 절대로 체육 선생님이 어색해서 그런 건 아니고......



“잘하시네요. 어디서 해보셨어요?”

“예.”

“아......”

“...”

“...”

“......군에 있을 때, 이런저런 훈련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 군인 출신이셨어요?”

“네. 어릴 때 잠깐.”

“어느 부대?”

“그냥, 평범한...”



왠지 군대 이야기를 꺼리는 것 같은 조엘의 모습에 허니가 눈알을 데굴 굴렸다. 아이스 브레이킹한다고 괜한 걸 물었나.

벽돌을 모두 놓고도 우물쭈물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허니의 시선을 피하는 모습이 퍽 애잔하길래. 참... 덩칫값 못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허니는 선심 쓰듯 농담을 던져줬다.


평범한, 특수부대쯤 되어 보이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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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리고 이번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는 남자 덕분에 되레 당황한 허니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어야 했다.

'어떻게 알긴요. 당신 인상을 봐요.' 라고 답할 수는 없지 않은가.



“농담... 이었어요.”



결국 바람 빠지듯 내보낸 대답에 남자의 귀가 좀 붉어진 건, 착각은 아닌 것 같았다.







#37 .

단순히 조엘의 손에 있던 벽돌이 전부 소진된 걸 확인한 건지, 아니면 급격하게 다시 어색해진 분위기를 눈치라도 챈 건지.

잭과 아이들이 나무판자를 하나둘 집어 드는 모습이 시야 끝에 걸려 보였다. 마침 등 뒤에서 들리는 헬기 소리도 어느 정도 가까워진 것 같아 작업을 서두르려던 참이었다.

분위기 환기를 위해 허니가 박수를 짝, 치며 뒤돌았다. 조엘과 더 이상 눈을 맞추며 대화를 나누기에는 사실 조금 무리가 있었으니까. 우리 헬기가 어디까지 왔으려, 어라?


헬기는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소리가 작지? 너무 높아서 그런가?’

허니의 시선이 헬기를, 태양을 향했다. 갑자기 눈을 비춘 햇빛에 인상을 찡그렸다. 헬기가 원래 저렇게, 작았나?

손으로 그늘을 만들어 다시 하늘을 확인해야 했다.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갈 것 같다는 예감이 허니의 가슴 한구석을 서늘하게 스치고 지나갔을 때였다.



탕!



낯선 소리가 울렸다.







#38 .

두두두-

허니가 들은 ‘처음 듣는 소리’는 헬기 소리가 아니었다. 연속적인 총성이 울려 퍼졌다. 헬기 아래에 달린 무언가에서 끊임없이 총알이 나오고 있었다. 괴성이 어지럽게 뒤섞였다. 사람의 것이 아닌 괴성과 총성이 어우러졌다. 도중 인간의 것처럼 들리는 비명이 섞여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초록빛 운동장에 붉은 피가 튀었다. 한때는 사람이었을 무언가의 몸에 벌집 같은 구멍이 뚫렸다. 피가 솟구쳤다. 탕! 묵직하게 귓전을 때리는 소리에 허니가 비틀거렸다. 의자 위에서 위태롭게, 덜컹-



“젠장, 허니! 조심하세요. 정신 차리십쇼!”

“...네?”

“다 구조물 뒤로 숨어! 당장!”



간신히 허니를 받아 든 조엘이 제 몸 아래 허니를 숨기고 다급하게 소리쳤다. 판자를 챙기던 아이들은 짧은 비명과 함께 더미 뒤로 몸을 피하고 있었다.

잭은 아이들을 챙기고 당장이라도 허니를 향해 뛰어올 것처럼 몸을 움찔거렸지만, 다시 시작된 총성에 귀를 막고 몸을 웅크릴 수밖에 없었다.


두두두-


희망의 소리가 절규로 뒤덮였다. 아비규환의 지옥도가 운동장에 펼쳐지고 있었다.






교주너붕붕으로 좀아포 세상에서 고군분투하는 허니쌤






옥상.png
옥상 계단실은 이 사진에서 오른쪽에 있는 거 말하는 거임!
재업인데도 여전히 노잼에 느린 내용 읽어주는 거 정말 고맙다...

https://hygall.com/525230688

약 빌슼너붕붕 칼럼너붕붕 해숙너붕붕 토모너붕붕 리지너붕붕 리지올슨너붕붕 로우든너붕붕 조엘너붕붕 + ???너붕붕 X 4
2022.11.30 07:2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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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센세가 성실 수인이라니 사랑합니다 센세ㅠㅠ
[Code: bbb9]
2022.11.30 07:2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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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업은 사랑이고 여전히 존잼입니다ㅠ 제가 더 코맙ㅠㅠㅠ
[Code: bbb9]
2022.11.30 09:2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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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존잼인데??? 센세가 재업해줘서 나는 처음 보는데?????? 이런 대작을 놓치고 살뻔한걸 센세가 구해준건데?!?!?
[Code: 6ced]
2022.11.30 10:4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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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존잼존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73d6]
2022.11.30 16:4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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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진짜 행복하다ㅠㅠㅠㅜ너무 재밌어 ㅠㅠㅠㅜㅜㅜㅜㅜㅠ
[Code: 345b]
2022.11.30 20:5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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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거 아냐ㅠㅠㅠㅠㅠㅠ 허니랑 애들 더 고생하겠네 오늘도 잘 읽었어 센세!!
[Code: a58d]
2022.12.20 07:5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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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가 인간형태는 다 쏘고보나 ㅠㅠㅠㅠ구조용이 아니었다니 제발 사람인걸 알아봐줘
[Code: 225d]
2023.01.17 18:3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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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다죽이고있냐고ㅜㅜㅜㅜㅜㅜ
[Code: debf]
2023.01.20 13:5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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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개재밋다.. 센세ㅠㅠ 개추 4791개만 누르고 싶어ㅠㅠㅜㅡ
[Code: b934]
2023.02.07 13:4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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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재밋어요
[Code: ed0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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