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엔 당연히 서로 이름도 얼굴도 몰랐으니 드류슾은 덷풀을 데드풀이라고 불렀을 거고 덷풀은 온갖 애칭이란 애칭은 다 갖고 와서 써먹었을듯. 제일 많이 쓰는 건 자기야, 거미야 이거 두개고 그 외에도 달링, 허니, 스위티, 펌킨, 베이비 기타등등 그때그때 땡기는 걸로 막 부름.

근데 함께하는 시간이 늘면서(정확히는 덷풀이 졸졸 쫓아다님) 어쩔 수 없이 시크릿 아이덴티티가 까발려지는 순간이 올 거임. 드류슾이 크게 다쳤을 때라던가. 데드풀은 자기 집으로 드류슾을 데려와서 치료한 후에 자기 눈을 가리고 더듬더듬 드류슾 마스크를 벗겨서 편히 쉬게 해줬을듯. 드류슾이 정신을 차렸을 때 덷풀은 종이 쇼핑백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리모콘을 찾으러 집안을 돌아댕기느라 여기저기 부딪히고 있었겠지.


자기야 일어났어? 나 절대 자기 얼굴 안 봤다? 브루넷이 만져보고 싶을 정도로 탐스럽긴 했는데, 아니 얼굴은 하나도 안 봤어. 내 데드풀 주니어를 걸고 맹세해. 머리카락은 좀 만져보긴 했지만, 내가 사이코메트리가 있는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마.


드류슾은 그렇게 저 멀리서 큰 목소리로 둘러대는 덷풀을 불렀음. 드류슾의 부름에 또 식탁 모서리에 허벅지를 갖다 박은 덷풀이 얼렁뚱땅 다가왔음. 드류슾은 손을 뻗어서 덷풀이 쓰고 있던 종이 쇼핑백을 벗겼음. 그랬더니 그 안에는 직접 그린 것 같은 키티 종이가면을 쓰고 있어서 그것도 벗겼음. 그 뒤엔 덷풀 마스크를 쓰고 있었을 거임.


자기야? 내가 지금 필사적으로 눈을 감고 있긴 한데 얼마 안 가서 호기심이 내 이성을 이기고 눈을 번쩍 뜰 것 같거든?? 그러니까 얼른 마스크를 쓰는 게 좋을 거야. 이대로 가다간 자기가 브루넷이라는 거 말고도 내가 자기의 모든 걸 알게 될테니까.
그럼 전 호기심을 응원할게요.


드류슾의 웃음기 머금은 목소리에 덷풀이 눈을 번쩍 떴음. 그러자 눈 앞에는 천사같은 밤비가 있었을 거고 덷풀은 홀리 쒯 하고 욕을 내뱉었겠지. 혹시 지금 조명팀 출근했어? 거미 뒤에 후광이 너무 강한데.


전 피터 파커에요.


그리고 그날 둘은 처음으로 통성명을 했음.



그렇다고 둘의 관계가 특별하게 달라진 건 없었을 거임. 그냥 덷풀이 드류슾을 부르는 애칭에 밤비나 앤드류 가필드가 포함됐다는 것 정도? 대체 앤드류가 누구냐고 물어봐도 알 수 없는 말만 지껄이는 탓에 이해하길 포기한지 오래지만.

아무래도 보통 데드풀과 스파이더맨으로 만나다보니 서로 본명을 부르는 일은 없었을 거임. 남들한테까지 정체를 다 까발릴 순 없으니까.


그런데 덷풀이 빌런한테 몸통 절반이 날아간 날(아마 스파이디가 직접 목격한 데드풀표 고어쇼 중에 제일 화려했다고 볼 수 있음) 빌런을 겨우 해치우고 온 드류슾이 다급하게 웨이드를 불렀을 거임. 통성명을 한 날을 빼곤 처음이었음. 어디 쓰레기장에서 몇 년 구른 가죽마냥 너덜너덜해진 몸뚱이에 차마 손도 대지 못하고 웨이드... 웨이드. 이름만 불렀겠지.

드럽게 아픈 와중에도 눈물 뚝뚝 흘리며 울고 있는 드류슾 얼굴을 보자 누가 뒤통수라도 한 대 때린듯 정신이 번쩍 들었음. 세상에 자기야 지금 울어?! 썩은 아보카도가 좀 물러터졌다고 우는 거야? 이런 천사같은 밤비를 봤나. 우유 잘 마시고 잠 잘 자면 이런 것쯤이야 금방 뭉개지기 전 썩기만 한 상태로 돌아올텐데! 그나저나 자기는 목소리도 귀엽네. 내 이름이 이렇게 감미로웠나? 아니면 지금 이 분위기 덕분? 히어로 곁에 있는 히로인이 된 기분이야. 몸뚱이 반 갈라주고 거미의 히로인이 되는 거면 나야 대환영이지. 그러니까 지금은 로맨틱하게...


피터.


망할! 내 목소리는 지옥에서 올라온 머저리같군. 하반신이 날아간 몸뚱이 뿐만 아니라 모가지도 덜렁거리고 있다는 걸 깜빡했어. 미리 녹음이라도 해올 걸 그랬네. 간만에 폼 좀 잡아보려다가 다 망했잖아!

그런데 드류슾의 표정이 미묘함. 역시 방금 내 목소리가 그리 듣기 좋은 목소리는 아니었지? 덷풀은 덜렁거리는 모가지가 제대로 붙을 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야 겠다고 생각했음. 그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었음.



그리고 그게 아니었다는 사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금방 드러났음. 드류슾은 어느샌가 둘이 있을 땐 덷풀을 웨이드라고 불렀고 그에 호응하듯 덷풀이 피터라고 부르면 아주 풀어지는 얼굴을 했어. 덷풀은 마치 아주 까칠해서 얼굴만 마주보면 하악질을 하던 길고양이를 길들인 기분이었지. 아주 짜릿했다는 뜻이야.

그리고 난 뒤에는 드류슾이 (창문으로) 덷풀의 집을 들락날락거리기 시작했고 덷풀이 집에 없을 때도 쇼파에 누워 뒹굴대는 정도까지 발전했음. 웨이드와 피터는 일종의 신호였지. 데드풀과 스파이더맨이 아니라 그 안쪽에 숨은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자는. 아직도 덷풀은 본인의 문드러진 아보카도를 공개하길 꺼리지만 드류슾은 계속 기다려줄 거임.



스파이더맨이 아닌 피터 파커는 보통 사람보다도 더 마음이 여렸음. 죽기는 커녕 팔다리가 잘려도 다시 돋아나는 덷풀의 상처를 매번 마음 아파했고 머릿속을 장악한 개소리를 필터링조차 거치지 않고 지껄여도 타박을 하거나 한숨만 좀 쉬고 말았지.

그리고 피터라고 부르는 것에 굉장히 약했음. 처음에는 착각인가? 싶었는데 거미야, 하고 부를 때랑 피터, 하고 부를 때의 반응이 너무 다르니까 알 수밖에 없었겠지. 그치만 덷풀은 굳이 그걸 써먹지는 않았음. 아직도 자기야 허니 달링 밤비야 그렇게 부르는 경우가 훨씬 많았음. 정작 본인은 알지도 못하는 약점을 가지고 드류슾한테 우위를 점하고 싶지 않았거든. 어차피 덷풀은 거미한테 치대고 거절당하고 져주는 맛에 살아가니까.



근데 그러다가 덷풀이 거미에 대한 애정이 샘솟다 못해 아주아주 흘러넘친 날, 수트를 입고 빌딩 위에서 쉬고있다가 대뜸 피터, 하고 불렀을 거임. 야경을 내려다보는 드류슾의 옆모습이 너무 외로워 보여서일 수도 있음. 이 어린 밤비를 내가 지켜줘야 하지 않아? [누가 누굴 지킨다고?] 밤비가 나를 지켜주는 건가? 좀 양심이 없는 것 같긴 한데, 너무 좋아.

어쨌든 덷풀이 마스크를 벗기로 결심한 건 아주 크나큰 결심이고 발전이었을 거임. 아무 말 없이 웨이드 옆에 있어준 피터 덕분이었겠지. 데드풀 뒤에 숨은 웨이드가 썩은 아보카도든 잘 삶아진 반숙 계란이든 그런 건 아무 상관 없다고 말해줄테니까.

그래서 예쁜 눈망울로 올려다보는 드류슾 앞에서 아주 크게 심호흡을 했음. 뉴욕 한복판에서 스트립쇼를 해도 이거보단 안 떨릴 거야. [당연하지 그건 짜릿하잖아.] 마지막으로 긴장해본 게 언젠지 기억도 안 날 정도임. 덷풀은 결국 드류슾의 손을 가져다가 제 마스크 위에 얹으면서 말했음.


자기야 나 지금 마음의 준비가 됐으니까 벗겨줄래? 말이 좀 이상하게 들리는데 그런 뜻 전혀 아냐! 물론 자기가 마스크 말고 그 아래 수트까지 벗겨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젠장!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내 말은,
웨이드.


드류슾의 손이 아주 조심스럽게 움직였음. 비상 비상! 머릿속의 상자들이 난리를 치는데도 데드풀은, 아니 웨이드는 꿀먹은 벙어리 상태로 굳어져있었음. 그리고 마스크가 완전히 벗겨졌을 때 피터는 아주 환하게 웃었음. 피터 파커는 정말 하늘에서 내려왔나? 웨이드가 그렇게 중얼거릴 때 피터가 웨이드의 품에 가득 안겨왔음. 그리고 말랑한 입술이 부벼지겠지. 그 애들 장난같은 접촉에 웨이드는 아주 속절없이 무너졌음. 나를 이렇게까지 말랑하게 만드는 사람이 얘 말고 또 있을까?


피터라고 불러줘요.
...피터.


피터 파커는 웨이드의 목소리가 좋았음. 웨이드가 애정 가득 담긴 목소리로 부르는 제 이름을 듣는 건 아주 포근한 이불에 감싸여서 사랑받는 기분이겠지. 소중한 사람을 모두 잃은 피터 파커에게 그런 감각을 느끼게 해주는 건 웨이드가 유일했음. 스파이더맨이 아니라 피터 파커로 존재하게 해주는 사람 말이야.



이게 이렇게 길어질 내용이 아니었는데...
아무튼 그렇게 사랑 확인하고 둘이 처음으로 섹스하는데 웨이드가 피터 이름 부르면 피터 존나 느꼈으면 좋겠음ㅠ
2022.01.15 20:27
ㅇㅇ
모바일
어어? 잠만 나 막줄이 이해가 안가는데?? 무슨뜻인지 압해좀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제발 어나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1434]
2022.01.15 20:33
ㅇㅇ
모바일
아..아...아악.... 센세 나 너무 좋아서 기절할 것 같아
[Code: 7b1e]
2022.01.15 20:3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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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막줄 압해가 필요해요. 아주 시급.
[Code: 3127]
2022.01.15 22:3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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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ㅠㅠㅠㅠㅠ너무너무 힐링돼 ㅠㅠㅠㅠ
[Code: abcf]
2022.01.15 22:3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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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줄이야기 더주세요 !!!!!!!!
[Code: abcf]
2022.01.15 23:1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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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진짜 눈물나와 너무 좋아서....... 진짜 ㅠㅠㅠㅠㅠㅠ진짜로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ad7e]
2022.01.15 23:4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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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줄...압해야되잖아...이러고 가는건 아니지...
[Code: 921c]
2022.01.16 00:49
ㅇㅇ
악!악! 이게 길다니 반지의 제왕만큼 써 줘 이 아름다운 띵작이 한 편으로 끝난다는 건 무순 역사에 길이 남을 오점이야
[Code: 042c]
2022.01.16 15:5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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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나 이렇게 대작을 이렇게 그냥 읽어도 되는건가 싶어 센세...센세 최고야...
[Code: 513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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