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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7 16:07

변변찮은 영지를 꾸려나가는 처지에 비범한 자식을 바랄 욕심은 없다만은 내 아이가 태어나는 날 꾸었던 꿈이 영 마음에 걸려 자네를 불렀네. 그대가 사람 앞날을 점치는 재주가 있다하여 어렵게 청하는데 내 아들이 앞으로 어찌 될 지 자네는 알 수 있겠는가

 

이름 깨나 날리는 사제는 영주의 앞에 무릎 꿇고 얼마간 말이 없었다. 이보게 왜 그러나. 포대기에 싸여 안긴 갓난 아기를 고개 들어 흘끗 올려다본 노인은 힘겹게 입을 떼고 말을 뱉었다. 많은 존경과 미움을 받을것이고 행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당최 이애가 무엇이 되기에 그리 말하는가.

 

아셔도 막을 수 없습니다

 

사나운 운명이라면 피해갈 방법이 분명 있을 진데 칼을 잡을 팔자면 칼을 빼앗고 글을 읽을 운명이면 펜대를 부러뜨리면 될 것이 아닌가.

 

아드님은 한낱 역할놀이에 갇혀 살 사람이 아니옵고 평생을 진리에 몸바칠 사람입니다. 달린 눈과 뚫린 귀로 세상을 살피고 스스로 깨달은 것들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할 것입니다. 아무도 지키지 않는 옳은 일을 행하다 사람들의 눈총을 받을 것이고 진리 앞에 배고픔도 목마름도 느끼지 못해 굶주림에 진리를 버린 이들을 수치스럽게 만들 것입니다. 아드님의 눈과 귀를 막지 않는 이상 이 운명은 피할 길이 없습니다.

 

힘든 삶이 되겠는가

 

아드님은 힘들기보다 외로울 것입니다 아무도 올라가지 못한 가장 높은 곳에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어리석은 짓을 하는 사람들을 내려다볼 것입니다.

 

그 길을 같이 가줄 이조차 없는가.

 

힘을 다하여 축복을 빌겠으나 미천한 능력이 어디까지 닿을지 감히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두꺼운 천에 갇혀 머리만 겨우 나온 아이는 두런두런 목소리가 오가는 내내 울지 않았다. 다만 눈을 굴리며 방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아주 유심히 보았다.



 

 

겨울이 되면 굶주림에 지친 이들이 거리로 나와 바짓가랑이를 잡는다. 뒤집어 쓴 낡은 모포 아래로 보이는 바짓단이 닳지 않고 말끔하여 땅바닥에 앉은 소년은 서둘러 지나가던 남자의 모포 끄트머리를 잡았다. 아이야 무슨 일이니. 아무것도 먹지 못 한지 이틀이 훌쩍 넘었습니다. 빵 한조각만 주신다면 은혜를 갚겠습니다. 금발의 소년은 물끄러미 저를 내려다보는 남자와 눈을 맞췄다. 아주 키가 큰 남자는 모포를 이마까지 푹 눌러썼으나 그 눈빛만큼은 전혀 수상한 자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사사롭게 한 사람만을 도울 수는 없단다. 곧 구휼이 시작될 테니 그 때까지 기력을 잃지 말고 부디 버텨주렴. 남자는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아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서둘러 그 손을 붙잡으려 팔을 뻗던 아이는 제 머리를 떠나던 남자의 손을 실수로 치고는 제가 다 놀라 숨을 삼켰다.

 

남자는 두려움을 담은 눈으로 저를 보는 소년에게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여보이고는 손에 들려있었을 무언가를 줍기 위해 몸을 숙였다. 그것은 분명 동전으로 빵 몇 덩이는 살 수 있을 액수였다. 아이는 냉큼 무릎으로 기어 그것을 주워들었다. 손으로 흙을 몇 번 털고는 남자에게 동전을 내밀면서도 푸른 눈동자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져버리지 못했다.

 

얘야.

 

남자가 숨을 뱉자 하얀 공기가 허공에서 부서졌다. 남자는 제 품 안에 든 종이 봉투 하나를 아이에게 건네고는 덮고 있던 모포를 둘러주었다. 지금 곧장 성문 앞으로 가면 큰 마차를 여럿 가진 상단이 있을거란다. 게 중 가장 화려한 옷을 입은 남자에게 이걸 전해주렴. 남자는 마지막으로 아이의 손에 동전을 쥐어주고는 아이의 볼에 묻은 검뎅이를 닦아주었다. 모포를 벗고 제 눈높이까지 내려온 남자의 눈이 빛을 받아 순간 태양빛을 띄었다. 아이는 할 수 있겠느냐 묻는 얼굴에 홀린 듯 고개를 끄덕여보이고는 품 안에 든 종이 봉투를 꽉 쥐었다.

 

저기,

 

그래

 

여기에 든 게 무엇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아이는 본래 영특하여 어린 나이임에도 쓸데없는 것을 묻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굳이 물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봉투를 건네는 남자의 눈이 아주 아주 이상한 빛을 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봉투를 잠시 내려다보더니 설핏 웃으며 말했다. 아주 중요하고 꼭 세상에 알려야 하는 일이 적혀있지. 그게 알려지고 나면 나리가 바라던 일이 이뤄지나요? 어떤 일은 나를 구하기도 또 망치기도 해서, 바란다 아닌다로 나눠지지 않을 수도 있단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여보이고는 걸친 모포를 여민 채 그대로 성문을 향해 뛰었다. 남자는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은 채 길다란 천자락을 끌며 저에게서 멀어지는 아이를 아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남자는 거리 구석에 앉아 빵을 뜯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제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서도 겁을 먹기는 커녕 먹던 것을 마저 씹는 아이는 눈이 아주 투명해서 영 잘못이라고는 한 적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얘야. 아이는 고개를 많이 들어서 남자와 눈을 맞췄다. 내가 준 물건은 지금 어디에 있니. 묻는 말에 아이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를 생각하듯이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없습니다. 그리고 뱉는 말은 아주 당돌하고 또 생각지 못한 것이어서 남자는 잠시 말을 잃었다.

 

나리를 괴롭게 만드는 물건같아 아무에게도 전하지 않았습니다.

말한 것을 지키지 못했으니 다른 일을 시키신다면 제대로 그 값을 하겠다고 아이는 말했다. 남자는 더 듣지 않고 등을 돌려 그대로 거리를 벗어났다. 남자는 조그만한 어린아이에게 일을 맡길 게 아니었다고 부러 속으로 중얼거렸다. 계속, 계속해서 일부러 그 말을 중얼거리며 남자는 아주 큰 저의 집으로 돌아갔다.

 





퀸퀺

2021.04.17 16:40
ㅇㅇ
모바일
헉헉 프롤로그 잘 읽었읍니다 센세 나 이런거 환장하네
[Code: e7df]
2021.04.17 16:41
ㅇㅇ
모바일
배터져 죽어도 좋으니 억나더로 밀려와주십시요
[Code: e7df]
2021.04.17 17:14
ㅇㅇ
모바일
헐 미쳤다.... 내 센세가 문학수인이라니ㅌㅌㅌㅌㅌㅌㅌㅌㅌ 대작의 시작에서 찰칵📸📸📸📸
[Code: bf3e]
2021.04.17 20:2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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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미쳤다 토지나더 기대할게 센세
[Code: ce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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