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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1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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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도왔다고 생각했어. 그야말로 천운이라고. 여태까지 회임하지 않은건 하늘이 도운거라고 말이야. 누군가는 회임이 되게 해달라고 제를 지내고 별 난리를 다 피우니 사실 웃긴 일이기도 해. 그에 반해 자신은 회임하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으니. 회임을 하지 않게 해주는 약을 썼다면 마음이 편했을거야. 하지만 안 그래도 안 좋은 몸에 또다른 약을 들이부을 순 없었고, 궁여지책으로 한다는게 그냥 마음속으로 회임이 되질 않길 기도한 것 뿐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황후를 사랑하지 않아서, 이 사람의 소생이 태어나질 않길 바라서 그랬던건 아니야. 황후가 건강한 몸이었다면, 회임에 문제가 없는 몸이었다면 얼마든지 회임을 반겼을거야. 태의 말로는 저번에 워낙 몸을 심하게 망치기도 했고, 그래서 회임이 잘 안 될 뿐더러 된다고 해도 또 저번처럼 큰일이 날 가능성이 있다는거야. 그 말을 듣고 세상 어느 지아비가 그 말을 듣고 회임을 바라겠어? 거기다 후사가 없는것도 아니고 어리긴 하지만 이미 잘 자라고 있는 알버트까지 있는 마당에야. 제이크의 말대로 동생이 하나쯤 있어도 나쁠건 없고, 제이크를 꼭 닮은 공주도 나쁠건 없지만 황후의 목숨을 도박까지 삼을 정도는 아니야.

후사가 없는 황후의 자리라는게 얼마나 위태로운지 모르지 않아. 그냥 일개 후궁과는 엄연히 다른 지위의 사람이라, 적자가 태어나지 않으면 황궁이 얼마나 소란스러워지는지 알아. 그렇기 때문에 알버트가 그만큼 소중하고, 또 소중한거지. 혹시나 내가 약을 쓴다고 생각했을까? 딱히 약을 먹고 있었던 것도 아니니 일부러 회임을 피한다고 생각하고 있진 않았을거야.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지. 황후도 딱히 황제가 뭔가 손을 썼다고 생각하진 않아. 자신의 회임을 반기지 않는게 건강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건지...


사실 다른 이유가 없다는 것도 알아. 만우절을 핑계로 그저 투정이나 부려보려고 했던게 너무 커진것 같아. 그렇기 때문에 더 미안한것도 있고. 진짜로 투기하는 것도 아니면서 투기하는 척만 했잖아. 그마저도 황제의 심중이나 떠보려고 한 기만 가득한 거짓말. 찔리는게 많은 황후는 자연히 황제의 눈을 피하게 돼. 그러면 황제는 괜히 또 심장이 덜컹하지. 




"....그동안...그렇게 생각했다니."



생각지도 못 하게 황제의 얼굴이 슬프게 일그러지자 황후도 마음이 좋지 않아. 황제가 저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기 때문이야. 천천히 걸으면 티가 잘 안 나지만 절뚝거리는건 숨길 수 없어. 황후가 제 발로 걸어다닐 일이 얼마나 많겠냐만은, 그래도. 살짝 발을 끌며 걷는 탓에 아예 티가 안 나는건 아니야. 그래도 황제는 아무렇지 않았어. 그 사람이 저를 바라보고, 사랑한다 말을 하고, 손을 잡을 수 있다면 그냥 다 괜찮아서, 그래서 내버려뒀던건데. 후사를 바라지 않는다는걸 넘어서 회임이 안 되는걸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는걸 알아버렸으니. 이유가 어떻든 아이를 가지지 않기를 원했다는데 마음을 안 상했겠어? 그런게 아니라고, 그대가 생각하는 그런게 아니라고 대답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더 이상 서로를 속이지 않기로 한 약조가 떠오르는 바람에. 



"내가....한 달간 원자를 냉대한 것을 아직 마음에 두-"
"그건, 그건....아니에요."



냉대 한 것 때문에 아이를 갖는걸 꺼려한다고 생각했을까? 그게 아닌데. 애가 닳은 황제가 황후의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말해. 이 사람이 오해하는게 죽기보다 싫거든. 다른 어린 꽃들에게 눈을 돌렸다 오해라도 할까봐 전전긍긍 안달이 났어. 이 사람이 왜 이런 말을 할까. 만우절은 그냥 핑계고 평소에 계속 그렇게 생각했던게 아닐까. 그러다 이 사람이 마음의 병이라도 얻어서 앓아누우면 어떡하지.
 
눈을 맞추고 손을 잡고 찬찬히 들여다봐. 늘 어리다 생각했던 황후의 눈은 늘 그렇듯 온화한 녹음이야. 물막이 반질하게 반사되는 장면은 늘 그렇듯 마음이 아리고 또 아파. 여간해선 제 마음 속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황후가 오늘이 만우절임을 핑계삼아 꺼낸게 틀림없어. 내도록 몇 년이나 마음속에 담아두었던걸까 싶어 또 마음이 조급해져. 새벽녘의 넋두리를 듣지 못 했다면, 우연히 깨어있지 못 했다면 아직도 황후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줄도 몰랐을거 아냐. 미워하고 있다니, 듣지 못 했다면 큰일날뻔 했지. 삼개월동안 속을 그렇게 썩여놓고 기껏 한다는게 새벽녘의 넋두리라니. 그러니 만우절을 핑계삼아 털어놓는거니 얼마나 마음을 졸이다가 꺼낸 얘기겠어? 그걸 생각하면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가.

 

 혹여나 이 사람 눈에 또 눈물이 맺힐까. 애가 타서 이리 보고 저리 보고 숙인 고개에 눈을 맞추려 허리를 숙이고 머리를 들이밀고. 채신머리 없는 짓이란 짓은 다 해도 부족해. 이 사람 눈에서 혹시라도 눈물이 떨어질까봐. 황제로서의 위엄이야 황후의 눈물 앞에서야 무슨 대수겠어. 장난이라 말하는 그 속내가 어떨지 감히 상상도 못 하겠는데. 



"그럼, 최근에 들인 후궁 때문인가?"



짚이는데라고는 그것밖에 없으니 황제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지. 황후의 성정이라면 투기를 크게 할 것 같지도 않았고 무엇보다도, 후궁은 제 의지로 들인게 아니었거든. 그리고 그 점은 황후도 알고 있는 점이야. 사실 황제가 이례적으로 후궁을 극히 적게 두는 편이었던거지. 태자시절 들였던 양제나 양원을 제외하면 없는 수준이었거든. 최근에 들인 후궁도 들이려고 한게 아니라 정치적 거래의 일환으로 들인거라. 어차피 후궁을 들이는건 황제의 마음이긴 하지만 그래도 형식적으로라도 황후의 승인을 필요로 했거든. 당연히 황후에게 사정 상황을 설명했고, 이전과 다름없을거라고 약속도 하고 장담도 했지만 과연, 글쎄. 지금 상황을 보면 그다지 와닿지 않았던것 같아. 이럴까봐 그렇게 조심했던건데. 



"설마하니 내가 후궁에 빠졌다 생각하는건 아닐테고"



그 순간 황후가 고개를 숙이며 시선을 회피하자 황제의 표정이 급변해. 



"그런거 아니에요. 신첩을 저어해서 그런게 아니라는걸 알아요."



황급히 황후가 덧붙여도 그다지 변하는건 없을거야. 오해를 한게 아니라는건 반갑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안심할 수도 없어. 기껏해야 '아이가 생기는걸 원치 않는다'에서 '아이를 반기지 않는다' 정도로 바뀌었으니까. 아이를 반기지 않는 이유가 다른 사람때문이 아니라는걸 제이크가 알아야,


뭐, 알아?



생긋 웃는 미소는 처연하기만 해서 더 안타까워. 알고 있다니 모르는 것보다는 낫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도 없어. 건강을 생각해서 아이를 반기지 않는다는걸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건 분명 다른 일이니까. 그러고 저 처연한 얼굴을 보면 그닥 그런것 같지도 않아. 황제는 일신의 안위만을 위할 수가 없기 때문에 후사를 최대한 많이 두어야하거든. 그 중에서도 황후의 소생이 중요하고. 알버트가 잘 자라고 있으니 아무 걱정도 다 생각했는데 황후는 그게 아니었나봐. 태평하게 저 혼자 아무 문제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황후의 속은 말이 아니었던거지. 

내가 또 이기적으로 굴었나봐. 황후를 잃기 싫다는 마음만 앞서서 황후의 마음은 미처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황후의 회임을 바라지 않기만 했지. 은연중에 티가 났을까. 한 달간 알버트를 방치해둔걸 들켰나. 하긴 황후가 다리가 아픈거지 눈과 귀는 멀쩡할텐데 아무리 입단속을 한다 한들 이 넓은 황궁의 궁인들이 얼마인데 그들을 모두 입단속을 한다는게 현실적으로 어렵긴 해. 한 달간 방치해둔 원자를 다시 사랑하는게, 혹시 곱게 보이지 않았나. 못미더워 보였나 별 생각이 다 들지. 황후가 믿어주면 고마운 일이고. 





"제 건강을 생각해서 그러신거잖아요"



사실 그래. 그냥 다 못난 제 자격지심 같은거야. 새로 책봉된 후궁은 어리고 한창 피어나는 꽃인데다가, 다리도 절지 않아서. 그리고 혹시나 황제가 저를 죄책감으로만 대할까봐. 혹은 미안한게 많아서 보상으로 다정하게 대해주는걸까봐.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걸 알면서도. 그럴때면 죄책감이 숨쉬듯이 찾아왔어. 제 곁에 붙어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는 궁인들을 물리지 않았다면, 혼자 잠들지 않았다면 아무일도 없었을까. 무사히 알버트를 낫고 다리에도 아무 문제가 없지 않았을까. 

괜한 자책이 시시때때로 찾아왔지. 혹시나 또 황제가 저로 인해 죄책감을 느낄까봐. 저를 아끼고 자주 얼굴을 들여다보는게 혹시나 자책감 떄문이 아닐까. 한때 그렇게 생각한 적도 있었어. 선황후의 기일이라 온통 거기에 정신이 쏠린 나머지 저를 내팽개쳤다 이런 일이 벌어졌다 소릴 들을까봐 그러는걸까 생각해보기도 했고, 알버트에게 미안해서 그런걸수도 있다고 한때는 생각했었어.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황제의 사랑이 너무 지극했어.  


오래된 흉터처럼 옅어진 의심의 자국과도 같아. 흉터 위로 새살이 돋아오르지만 아예 원래와 똑같을 순 없듯이 마음의 상처도 마찬가지야. 상처라고 대단히 말할것까지는 없지만, 덮힌 흉터 위로 새살이 차올라도 처음처럼 똑같아 질 수 없어. 다리에 물리적인 상흔을 남겼다면 마음에는 보이지 않는 상흔을 남았어. 죄책감을 가지지 않을까 거짓 가면 뒤에 숨어서 걱정하는 반면, 저에게 쏟아지는 온전한 관심과 애정이 또 싫었던건 아니야. 양가적인 감정에 괴로울 때도 있었고. 





"혹시 그대가 황제의 책무만으로 보살핀다 생각할까봐, 나는...."



말로는 하지 않아도 태도와 얼굴에 다 드러났을거야. 아이를 원치 않는다는 것쯤은 황후도 알았을거고. 지난 몇 년간 같이 산게 허송세월은 아니거든. 숨기려고 해도 이제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잘 알아. 아이를 원치 않은것까지는 사실이지만 다만 그 이유를 오해했다는게 마음에 걸려서. 하지만 모든게 해결되고 나니 또 걸리는게 있어.



"내가, 죄책감 때문에 그대를 아꼈다고."
"....아닌거 안다니까요."



아까 괜히 말을 덧붙였나. 혹시나 신첩에게 의무감이라도 가지고 계시다면 그러실 필요 없다고 한게 화근이었나봐. 어디서 그런 말이 술술 튀어나왔을까. 차마 어린 꽃들이 더 예뻐보여서 그러냐는 말은 장난으로라도 못 하고,  혹시 신첩에게 죄책감을 느껴서 저를 아끼셨냐고, 그 아끼는 방식의 일환으로 아이를 반기지 않은 거냐고 그리 말했었지. 사실 황제가 따로 약을 먹는거 같지도 않았고 자신도 먹고 있지 않았으니 정말 태의 말대로 회임이 안 되는게 맞긴 맞을거야. 그러니 황제도 딱히 무언가를 한 것 같지도 않고. 




물론 황제도 아예 죄책감이 없지는 않아. 기일날 사당에서 미적거리지만 않았어도 황후를 조금 더 일찍 발견했을 수 있을텐데, 하혈하는 황후를 보고 놀라서 멍청하게 굳어있는 동안 상황이 더 악화됐을거야. 아니척 하고 있지만 황후도 예민해졌을 날인데, 어쩌면 가장 필요했을 때에 옆에 없었지. 그래놓고 평생 곁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하면 뭐하나. 이젠 정작 황후가 바라는데도 아이를 반기지 못 한다는게 괴로워. 못난 지아비라고 해도 좋고, 겁많은 겁쟁이라고 해도 좋아. 그리 은애한다면서 원하는것 하나 제대로 들어주지 못 하고, 겁이 많아서 아예 문제가 생길만한 부분을 원천 봉쇄하는것 밖에 할 줄 모르고. 

가만보면 황후가 저보다 항상 용감하고 또 용기를 내는것 같아. 저라면 아마 사당에 들어갔던 날 이후로 크게 마음 상해하고 마음을 접어버렸을지도 몰라. 어차피 이 사람에게는 안 되겠다 싶기도 하고, 내 차례는 영영 돌아오지 않겠다 싶었을지도 몰라. 황후처럼 꾸준히 부딪히지도 못 하고 그냥 미리 지례 겁을 먹고 포기했을거야. 부딪히기도 전에 겁을 먹고, 지레짐작으로 멋대로 재단해서 결론을 내리고 저 사람은 나와 인연이 아니라 단정지었을지도 모르지. 평생 그 누구도 다시 마음에 담지 않고 톰만 그리며 살겠다 다짐했던 것처럼. 




"제이크. 혹시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



맞잡은 손이 떨리고 있어. 황제는 가만히 사랑해마지 않는 녹음을 바라보며 물어보지. 그리고 황후는 생각해. 어찌 잊을까. 붉은 너울 너머로도 얼핏 본 순간에 반해버렸는데. 나에게 애정을 바라지 말라는 말을 들었어도 설렜는데 어떻게 잊을까.








루스터행맨
 
2024.04.21 22:05
ㅇㅇ
센세 오셨다!!!!!! 변명도 해명도 아닌 진심을 전하려는 것 뿐이지만, 황후가 어떻게 받아들일까 계속 초조해하는 황제 신선하다ㅋㅋㅋㅋㅋㅠㅠㅠㅠㅠ황후는 오해한 것도 아니고 질투나 시기로 마음이 상한 것도 아닌데 그걸 알면서도 전적이 있어서 황제 입장에서는 말 한마디가 전부 조심스럽겠네
[Code: a038]
2024.04.21 22:06
ㅇㅇ
역시 루황제 생각대로 황후가 용감하고 용기를 내는 게 맞는 것 같다ㅠㅠㅠㅠ황제가 첫 만남에 대해 이야기 꺼내는데 두 사람 전부 각기 다른 감정을 품고 있던 시기여서 회상하는 것도 크게 다르겠네...이후 어떤 말이 나올지 궁금해! 이제 센세의 어나더를 얌전히 기다려야지ㅠㅠㅠㅠㅠ
[Code: a038]
2024.04.21 22:58
ㅇㅇ
모바일
제이크가 사랑 많이 받고 있는걸 스스로도 알지만 과거의 상처는 어쩔 수가 없나봐 자낮할 필요 없는데ㅠㅠㅠ 첫 만남은 혼인식 때인가 이때 말을 꺼내는 건 왤까 황제가 할 말이 너무 궁금하고 기대돼!!!!
[Code: 6e06]
2024.04.21 23:0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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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오셔따!!!!
[Code: 68ca]
2024.04.22 08:58
ㅇㅇ
모바일
ㅠㅜㅠㅠ내센세오셨었잖어 선설리ㅠㅠㅠㅜㅠ
[Code: 805d]
2024.04.22 17:0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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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ㅠ이제 루황제의 사랑이 더 커지다보니까 황후가 어찌 생각하고 어찌 보일지 모든게 다 걱정이고 근심인가봐ㅠㅠㅠㅠ 계속 불안초조해하고 미안해하고 후회스러워하는게 안쓰러운데 황후 맘고생 했었던거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안심되기도 하네 황후도 이제 루황제의 사랑을 인정하게 됐으니 좀 더 자신감을 가져도 좋을텐데ㅠㅠ 사랑의 총량을 따져본다면 둘이 누구 못지않게 사랑한다는걸 알고 거기에 자신감을 얻었으면 좋겠다!!! 처음 만났을때 얘기는 왜 하는걸까 넘 기대된당ㅎㅎㅎㅎㅎ 센세 와주셔서 넘 고마워요...
[Code: bf31]
2024.04.22 20:0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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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앙 얘들아 행복하게만 살아 괜한 기분 느끼지 말고ㅠㅠㅠㅠ ㅈㄴ맘아픔 근데 이제 또 그게 맛잇는
[Code: 9dc4]
2024.04.22 20:07
ㅇㅇ
모바일
그래도 많이 발전했다 알콩달콩 연애놀음이나 하란말이야ㅠㅠㅠㅠ
[Code: 9dc4]
2024.04.25 22:5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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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내 센세 오셨다 ㅠㅜ
[Code: 9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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