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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9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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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밥댄(?)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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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댄, 모쏠이라며. 소개팅 하지 그래?"]



그 한마디가 준 충격으로 인해 아침부터 찰리는 얼이 나가있었다. 상사의 커피도 챙기지 못하고 빈 손으로 갔다가 한 소리를 들었고 그것도 모자라 상사에게 자기 아들 과제나 해달라며 양 손 가득 레몬을 받아왔다.

그에게 지금 <레몬으로 초등학생 과학 과제 만들어주기> 같은 업무보다 더 현실감 없는 건 <댄의 소개팅>이었다.

댄과 동료 개발자가 나누던 대화내용은 점심시간까지 발이 달린 것 마냥 찰리의 뒤를 쫓아왔다. 도저히 그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찰리는 점심으로 먹던 송로버섯 케일 햄버거 포장지를 테이블에 던지며 허, 하고 바람빠지는 소리를 낸다.




그렇지, 그래. 댄과 찰리의 사내연애는 비밀이었으니까.
댄은 회사 사람들에게 찰리와 교제하고 있던 지난 2년8개월 간 자기는 모태 "쏠로" 라며 얘기하고 다녔겠지.


찰리는 창자가 뒤틀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찰리는 자신이 연애중이라고 항상 광고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는 과대포장된 미소와 친절이 몸에 베어있었기 때문에 종종 그걸 플러팅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댄과 교제 중일때도 혹시나 남에게 오해를 살까봐, 방어막처럼 연애중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다녔고, 연애상대가 댄이라는 사실은 또 댄을 위해서 철저하게 숨겼다. 

근데 내 모든 노력에 비해서 댄은 그냥 싱글이라고 하고 다녔던 거야 지금?

다 헤어진 마당에 그게 무슨 상관이냐 싶지만 2년넘게 사귄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한 것 같아서 기분 나쁜건 사실이었다.


이제서야 다른 부서 직원들 중 가끔 몇몇이 댄에게 친한척하던게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댄은 자각하지 못했지만 친해지려고 들이댄다기에는 그들의 눈빛이 너무 끈적끈적했었다.

"아 짜증나.." 

찰리는 주머니를 가득 채운 레몬중 하나를 꺼내 짜증스럽게 테이블 위로 올려놓았다.




쏠로인척 하던 댄의 요망한(?)행동보다 찰리에게 더 충격을 준건, 그 뒤에 소근소근 따라붙던 댄의 대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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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모쏠이라며. 소개팅 하지 그래?"]

["...저요? 갑자기 소개팅이요...?"]

["북클럽에서 만난 직업 군인인데 마음씨가 착해. 댄이랑 어울릴 것 같아."]

["....사진 있어요?"]





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그 말을 끝으로 댄과 동료 개발자는 인파들과 우르르 내렸다. 그래서 그 뒤에 댄이 소개팅을 하게 되었는지, 누구랑 소개팅을 하는 건지는 찰리가 알 수 없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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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찰리 손에 들고 있던 레몬이 신선한 즙을 내뿜으며 사방으로 튀었다. 그의 점심인 햄버거에 레몬즙이 촉촉하게 내려앉는다.
건너편 테이블에서 점심을 먹던 사람이 슬그머니 일어나 찰리에게서 멀리 떨어져 앉는다. 


왜? 왜? 왜? 사진은 왜 물어보는건데!

아니, 그러면 사진보고. 마음에 들면?

그러면 뭐 막, 막 소개팅 하는거야 ? 응?

그러다가 사귀고? 아니. 우리 지금 헤어진지 한 달 되지 않았나?

2년 넘게 사귀었으면 최소한 두 달은 힘들어하는게 서로에대한 예의아닌가? 이거 환승 아니냐고! 너 그렇게 예의없는 애였냐?

그리고 군인?
군인이면 여자든 남자든 몸도 좋을거 아니야?

찰리는 마음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뭔가 조치가 필요했다. 이대로 2년 8개월이 삭제당한채 전남친에게 투명인간 취급을 받고 환승당하는건 찰리의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다. 어떻게해서든지간에 댄의 소개팅을 막아야했다.


찰리의 두 눈에 불꽃이 튀었다. 레몬은 이제 찰리의 손에서 곤죽이 되어있었다.



















2.

댄은 오늘도 재빠르게 엘리베이터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다.


어제 동료에게 제안받은 소개팅은 사실 조금 혹했지만, 사무실로 돌아와 정중히 거절했다.

찰리와의 이별의 여파로 당분간 연애는 손에 잡히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오랜만에 받아본 소개팅 제안 때문일까? 한동안 우울했던 마음 한 켠에 솔솔 봄바람이 날리는 것 같기도 하고..

거의 끝물이지만 아직 20대였음을 자각한 댄은 아침부터 힘이 솟았다. 오늘은 일찍 일어나 찰리가 해주던 아침처럼 꾸며보고 출근하기로 결심했다. 

남자답게 2대8로 넘겨본 머리, 오랜만에 뿌려본 향수에
새로 장만한 스트라이프 셔츠에 베이지 바지를 입었는데, 유리에 비친 모습이 꽤 마음에 들었다. 30번 출근하면 한 번정도는 이렇게 마음에 드는 날도 있기 마련이다.
(참고로 같은 부서인 줄리아는 댄의 (끔찍한) 패션센스를 보고 그가 20대일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한다.) 

오늘의 외모 컨디션이 마음에 쏙 든 댄은 오늘만큼은 그 인간이랑 마주쳐도 나쁘지 않겠다, 이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따위 생각을 한 자기자신에게 놀라 커다란 손바닥으로 얼굴을 후려쳤다.
댄의 옆에 서 있던 사람이 슬그머니 멀리 떨어져 엘리베이터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댄이 뺨의 얼얼함을 느낄 새도 없이 띵동, 인사팀 층에 다다른 엘리베이터가 문을 활짝 열고, 익숙한 듯 개발팀 사람들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며 공간을 만든다.

찰리가 탈까봐 반사적으로 눈을 내리깐 댄은 어쩐지 위화감을 느끼고 다시 고개를 들어 사방을 살폈다.

어라? 오늘은 익숙한 갈색 뒷통수가 보이지 않는다.
댄은 엘리베이터 안의 사람들을 샅샅이 쳐다봤지만 거기에 찰리의 뒷통수는 없었다. 

뭘 기대했던 걸까, 약간의 현타를 느끼며 댄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오늘도 서류뭉치가 쌓여있는 자신의 지저분한 자리로 향했다.








3.


한창 업무를 보다보니 향수 냄새가 은은하게 올라오는 것 같았다.


향수 냄새가 너무 진한가? 

사실은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아야 향수의 분자라도 느껴질까 말까한 정도였지만, 평생 그루밍과는 담을 쌓고 살아온 댄은 혹시라도 남의 눈에 튀어보일까봐 걱정이 되었다.

벌떡 일어나 화장실 세면대로 달려간 댄은 수도꼭지를 최대로 틀고 머리를 박은 뒤 목덜미를 벅벅 문대기 시작했다.

등목 수준의 세수가 끝나자 아침부터 신나게 무스를 떡칠한 이대팔 머리는 축축하게 젖어 평소처럼 우울하게 변해있었다.

이러니까 찰리가 칠칠치 못하다고 했던 거겠지?
걔랑 사귈때는 항상 찰리가 예쁘게 소라빵을 말아줬는데..

"에휴"

일상속에서 지뢰처럼 터지는 전남친의 존재감에 다시 우울해진 댄은 커피나 좀 타올까 싶어서 페이퍼 타올로 머리를 탈탈탈 털며 탕비실로 향했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언제부터 있었던건지 익숙한 갈색의 뒷통수가 웅성거리는 개발팀 사람들 사이에서 신나게 떠벌거리고 있었다.




"저는 완전히 이쪽에 젬병이라니까요! 우리 컴퓨터 광신도 개발자분들 덕분에 한시름 놨네요!"

"아니 찰리씨, 이렇게 재밌는 사람인줄 몰랐네?"


뭐야 저 미친놈? 여기서 뭐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인사팀 탕비실에 온건가?



와글와글 모여있던 개발팀 사람들과 찰리 사이에는 레몬과 전구, 전선이 놓여져 있었다.
찰리와 개발자들은 레몬과 전선을 이어 전구에 불을 켜고 있었다. 

이윽고 개발자 중 한 사람이 탕비실 문 앞에 멀뚱멀뚱 서있는 댄을 발견했다.

"댄 ! 우리가 레몬으로 전구를 켰어."

찰리의 손에 들린 꼬마전구가 희미하게 깜박거리고 있었다.  

뭐지, 그동안 잘 피해다녔는데.

그동안의 수고가 물거품이 될만큼 갑작스럽게 닥쳐온 면대면 상황에 당황해서 댄은 멍청하니 서서 큰 눈만 깜박였다.

댄의 당황스러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찰리랑 개발팀 사람들은 레몬과 전구에만 열중을 쏟고있었다.

"이걸 더 연결하면 더 큰 전구도 켤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리고 단추도 프로그래밍해서 자동으로 키고 꺼지는 전구를 만들면 더 멋질 것 같은데요?"

개발자들은 이제 머리를 맞대고 누가누가 초등학교 과학과제를 환상적으로 만드는지 대결을 하고 있었다.

눈치없는 동료가 댄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알고싶지도 않은 찰리의 정보를 늘여놓았다.


"찰리 영씨라고, 인사팀이래. 꼭두새벽부터 레몬을 들고 왔더라구. 임원 초등학교 아들 과학과젠데 도통 모르겠대서. 이공계열이 도와서 다같이 도와주는중."


가끔 이런 돌발 이벤트도 재밌네, 라며 허허 웃는 동료가 이렇게 밉상인건 처음이었다. 대충 네네, 하고 대답한 댄은 당혹감에 팔짱을 끼고 종종걸음으로 탕비실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찰리의 목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을 때까지 자기 자리에 콕 박혀 파티션 밖으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4.

퇴근시간, 창사 이래 처음으로 시끌벅적했던 개발팀 층을 나서며 찰리는 방글방글 웃고있던 사회적 가면을 벗었다.
그의 표정은 차갑다 못해 냉기가 흘렀다.


찰리를 아래위로 훑어보고, 언짢은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던 댄의 모습은 찰리 내면의 어떤 버튼을 연타했다.

환승도 모자라서 이제 아주 무시를 해?

찰리는 앞으로 전남친이라는 본인의 특급 영향력을 이용해서 댄의 머릿속을 신나게 간섭하기로 마음먹었다.
찰리가 알고있는 유리멘탈 댄이라면 분명 타격을 입을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렇게해서라도 댄의 새로운 만남을 간접적으로나 망치고싶었다.


난 너 혼자 나 잊어버리고 다른 새끼랑 사귀는 꼴 절대 못 봐!


찰리의 손에 들린 레몬과 전선으로 연결된 꼬마 전구의 필라멘트가 마지막 사력을 다하더니 틱, 소리를 내며 끊어졌다.














5.

그 뒤로 찰리는 매우 노골적으로 변했다.

마치 댄의 인맥을 죄다 뺏어갈 것 처럼 틈만 나면 개발팀을 휘젓고 다녔다. 한 손엔 레몬과 전선을 든 채로. 이게 자기 업무라나 뭐라나?
설상가상으로 개발팀 사람들은 모두 사랑의 묘약을 먹은 것처럼 찰리를 좋아했다. 찰리가 오고나서는 사무실에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찰리는 아침에 30분 정도 레몬과 전구와 씨름하고, 나머지는 자기 데스크탑을 가져와 업무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퇴근시간까지 농담따먹기나했다. 물론 댄에게 말을 걸지는 않았지만, 전방 50m 내에서 하루종일 존재하는 전남친이라니. 댄은 그의 모든 행동이 매우매우 불편했다.

댄은 찰리를 최대한 피하려고 의자에 본드를 붙인 것 처럼 하루종일 앉아서 업무를 봤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댄이 업무상 질문을 하러 다른 사람의 데스크로 걸어가면 어디선가 찰리가 불쑥 나타나 그 사람의 대화를 가로챘다.
댄은 그러면 말을 섞기 불편해서 자리로 돌아와 그 동료에게 사내 메신저로 대화를 하는 식의 이상한 의사소통이 며칠간 이어졌다.
찰리는 그런 식으로 자꾸만 댄의 눈에 띄면서, 미꾸라지처럼 댄의 기분을 흐려놨다.

처음에는 우연이겠거니 했는데 며칠간 그런 날들이 계속되자 이게 우연이 아닌 고의라는게 느껴졌다. 매사에 냉정하지만 은근 유리멘탈인 댄은 찰리의 행동에 슬슬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유일하게 댄이 입을 여는 점심시간에도 댄은 혼자였다. 평소 댄과 함께 점심을 먹던 동료에게는 어떻게 다가갔는지 찰리는 시끄럽게 떠들며 개발팀 사람들과 섞여 점심을 먹고 있었다.
찰리가 거기 있으니 댄은 도저히 다가갈 수 가 없어서 며칠 간 회사에서 입을 꼭 다물고 항상 홀로였다. 머릿 속은 엄청나게 시끄러웠다.

이게 대체 뭐지? 혹시 신종 사내 괴롭힘이 이런건가?

돌이켜보니 이 모든 상황이 억울하기 짝이없었다.

댄은 갑자기 소극적으로만 행동하는 자기자신에게 화가 났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숨어있어야해? 나만 헤어졌어? 왜 자기도 나랑 헤어져놓고는 뒤늦게 복수질이야?

너 설마, 내 소개팅 얘기 훔쳐듣고 혼자 긁힌거냐?





마침 소개팅을 제안한 동료와 찰리가 나란히 앉아있었는 걸 본 댄은 먹던 타코와 은박지를 소리나게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발을 쿵쿵 구르며 동료와 찰리가 앉아있는 테이블에 냅다 머리를 들이밀었다.


댄의 등장에 찰리의 얼굴에 '나 엄청 당황했음' 표정이 나타났다. 마치 댄이라는 돌발상황에 미처 대비하지 못한 사람처럼. 
댄은 찰리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응수했다.
어이가 없었다. 본인도 저렇게 푸딩멘탈이면서, 왜 나한테 시비질이야?

그는 멈추지 않고 전에 소개팅을 제안했던 동료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낮고 작은 목소리로, 그러나 찰리에게는 아주 똑똑히 들리도록.


"저, 소개팅 할래요."


워낙 시끄러운 카페테리아여서 작은 목소리였지만 찰리가 무조건 들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찰리의 '나 엄청 당황했음'은 곧 '나 엄청 충격받았음'으로 변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표정을 본 건 댄 뿐이었지만.

너만 매번 열받게 만들 줄 아는 것 같아?
나도 너 열받게 할 수 있어.

동료는 잘생각했다며 내일이 휴무이니 약속을 잡아놓겠다고 했다. 무르기 없음! 이라며 박수를 치는 동료 옆에 앉은 찰리는 어느새 말이 없어졌다. 찰리는 패전한 노장수같은 얼굴로 먹던 음식의 포크를 내려놨다

댄은 속으로 승자가 없는 승리의 노래를 부르며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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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약속 시간 보다 30분이나 일찍 들어간 바는 80년대 올드팝이 주크박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렌지색 눈아픈 조명에 컵과 파일럿 스티커가 천장에 주렁주렁 달려있고
중앙에 뜬금없이 위치한 피아노, 그리고 사이드에는 지저분한 다트게임과 당구대까지. 민간인들보다는 군인들이 많아보였고 한마디로 정신없는 곳이었다.

댄은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며 크로스백을 고쳐맸다. 인싸냄새가 너무 나는 곳이었다. 이런 곳은 찰리에게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이 시장바닥같은 술집에서 제일 조용해보이는 구석 자리가 간절했다. 기둥을 돌아 구석 자리로 가려는데 기둥에 기대있는 익숙한 투브릿지 안경이 보였다.

"플로이드씨?"

소개팅 상대는 팝콘을 우걱우걱 씹으며 그 시끄러운 와중에도 책을 보고있었다. 이름을 불렀으나 책에 푹 빠진 것 같아 댄이 안녕하세요 , 인사하며 인기척을 냈다.

그제서야 상대는 우왕좌왕 벌떡 일어나며 댄의 손을 덥썩 잡았다. 군복에 팝콘 부스러기가 칠칠치못하게 묻어있었다.
달콤한 팝콘이었는지 댄의 손에도 끈적한 설탕이 묻는다. 댄은 그의 앞에 앉으며 테이블에 슬쩍 손을 문질러 닦았다.

폼나게 병나발을 불거나 멋진 근육을 뽐내며 당구를 치는 주변의 해군들과는 달리 군복을 입은채 혼자 얌전히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이 귀여웠다.


플로이드씨는 키가 껑충하게 커서 약간 위압적인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웃을때 동그랗게 솟는 뺨이라던지 서글서글하게 큰 눈 때문에 참한 느낌이 있었다.

댄은 속으로 로버트의 외모에 합격점을 주기로 했다.

"언제부터 계셨던 거예요? 30분이나 일찍 왔는데..."

"어,어,어, 전 여기 계속 있었어요..."

"로버트 플로이드씨 맞으시죠, 말씀 많이 들었어요. 책 좋아하신다고... 안그래도 책 읽고 계시네요."

"이,이,이거요? 이거 그냥 매뉴얼 책이예요. 그냥 편하게 밥이라구 불러주세요"

그는 부끄러운지 허둥지둥 전투기가 잔뜩 그려진 책을 가방에 쑤셔넣으며 얼굴을 붉혔다. 딱봐도 전투기 오타쿠네. 장르는 달랐으나 서로의 덕후기질에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7.

맥주가 한잔 두잔 들어가니 서로 어색해서 뚝딱거리던 대화가 훨씬 수월해졌다.

군인이라기에 엄청 딱딱할 줄 알았는데 로버트는 생각보다 말랑말랑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가 무기 관제사이며, 복좌기에 탄다고 말해주었다. 댄은 우다다다 쏟아붙는 그의 말 중 50프로는 이해하지 못했으나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놀랍게도 밥과 댄은 서로 죽이 잘 맞았다.
유머코드도 비슷했고, '기계돌이'라는 점이 맞아서인지, (댄은 소프트웨어고 로버트는 하드웨어였으나) 업무상 공통점도 꽤 존재했다.


그리고.... 최근의 관심사도 매우 유사했다.

"저어... 댄씨는 사내 괴롭힘, 이런거 당해본적 있으세요..?"

밥은 비밀얘기를 하는 것처럼 갑자기 얼굴을 바투 붙이더니 낮게 속삭였다.

".....비슷한걸 최근에 겪어보긴 했죠."

밥은 정말요? 라고 눈을 똥그랗게 뜨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제가 근무하는 부대에 같은 직급인 사람이 있는데, 어쩜 말을 그렇게 상처주는 말만 하는지 모르겠어요. 성차별은 기본이고 동성인 저에게도 늘 성희롱성 발언을 하는데. 군대다보니 한다리 건너면 아는 사이라... 윗선에 찌르기도 뭣하고."

"네? 사기업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인데요..."

"그쵸, 그래서 전역도 고려하고 있어요. 국방연구소 엔지니어직 같은 자리도 관심있거든요."


아, 이 사람 스트레스 제대로 받고 있구나..
전투기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전역까지 고려하다니, 댄은 오늘 처음 본 밥에게 강렬한 동정심을 느꼈다.

댄은 유리멘탈일지라도 바보는 아니었다. 그는 밥에게 "똥"은 더러워서 피하는거지만, 그렇다고해서 밥이 피해보며 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오늘 처음 본 사이지만, 그런 똥 때문에 플로이드씨의 꿈을 망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뭐냐...w..so..? 인가? 그것도 엄청 어려운 직업같고, 복...좌기? 그것도 아무나 타는게 아닐텐데요.."


사실 밥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아무거나 갖다붙인 단어였지만, 밥은 자기 프라이드를 높이 사준 댄의 조언에 진정으로 감동한 것 처럼 보였다.

감동으로 척척히 젖은 그 눈망울이 조금 부담스러워서 댄은 맥주를 들이키며 애꿎은 시계만 쳐다보았다.




8.


시간이 늦었다며 플로이드씨가 택시를 잡아주겠다 했으나, 댄은 한사코 괜찮다고 했다.

"댄씨, 오늘 너무 즐거웠어요."

"음.. 저도요."


"그리고 댄 씨 말이 맞아요. 제가 얼마나 노력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전역한다면 그 똥이 전역을 해야죠. 앞으로는 당하고만있지 않으려고요."


이 사람, 내 가식에 얼마나 감명을 받은거여...

민망하기도 하고 군인이 저러는걸 보니 순진하게 귀엽기도 해서 댄은 허허허, 헛바람 소리를 냈는데 택시가 도착했다는 푸시알림이 떴다. 택시의 문을 열고 탑승하는데 갑자기 플로이드가 손을 덥썩 잡아왔다.

"오늘... 말씀 정말 고마웠어요. 다들 저보고 구형 스텔스기라고 놀리는데, 댄씨 앞에 있으면... 제가 마치.."

댄은 그의 돌발행동에 놀라서 그의 손 안에 꽉 갇힌 자신의 손만 꿈뻑꿈뻑 바라보았다.
플로이드는 볼을 발갛게 물들이며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덧붙였다.

 "제가 마치... 다크스타가 된 느낌이예요."

뭔......뭐시기 스타???????



어버버거리는 댄의 택시 문도 야무지게 잘 닫아준 플로이드는 손으로 전화기 모양을 만들며 입모양으로 이렇게 말했다.

'연락할게요. 잘 들어가요.'


뭐지? 이게 너드식 직진인가? 댄은 택시가 출발하는 것을 느끼고도 한동안 얼어 시트 위에 빳빳하게 앉아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기괴한 플러팅에 댄의 뺨도 빨개진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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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루틴 시간보다 30분 일찍 들어간 헬스장은 시끄러운 힙합 음악이 스피커에서 터져나오고 있었다. 환하고 눈아픈 조명에 사람들의 신음소리와 무게치는 소리가 울렸고, 어딜보나 헬스 꽤나 한다는 느낌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찰리는 세상에서 가장 우울한 얼굴로 스포츠백을 내려놓았다. 지금쯤 댄은 그 몸짱군인(?)이랑 한 잔 하고 있겠지. 어쩌면 이미 술은 다 마시고 또 다른 걸 하러(?)갔을지도 모르지... 
이 고문장같은 헬스클럽에서 눈물을 닦을 수 있는 구석자리가 간절했다. 기둥을 돌아 바벨스쿼트 존으로 가려는데 누군가 먼저 앉아있었다. 약간 옆으로 비켜줘야 찰리가 운동을 할 수 있겠는데 싶어서 찰리는 상대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그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우울한 얼굴로  덤벨 숄더프레스를 조지고 있었다. 이름을 불렀으나 슬픔에 푹 빠져 듣지도 못하는 것 같아 찰리가 실례합니다, 하며 인기척을 내며 다가갔다.
그제서야 그가 찰리를 바라보며 덤벨을 내려놨다. 그의 아몬드같은 초록색 눈에 물기가 어려있는게 보였다.

뭐야 이사람, 헬스장에서 울고있어 ... 헬창들은 울어도 헬스장에서 운다는게 정말인가

"아, 죄송해요."

그 사람은 가슴이며 팔다리며 근육이 성나보여서 약간 위압적인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신사적인 어투라든지 세련된 외모때문에 호감형인 느낌이 있었다.
찰리는 약간 무서웠지만 그에게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안좋은 일 있으신가봐요."

"네, 좀... 그 쪽도 표정 안좋은데요."

"그러게요, 저도 오늘 기분이 별로네요."

그는 씩 웃으며 덤벨을 바닥에 내려놓고 손을 내밀었다. 팔뚝이 얼마나 굵은지 운동 좀 했다 하는 찰리의 두 배는 되어보였다. 딱봐도 헬창이네. 근육량은 달랐으나 서로의 운동광기질에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제이크 세러신입니다. 해군 파일럿이예요."

"찰리 영입니다. 저는 요 근처 회사다녀요."




10.

옆에서 서로의 루틴을 봐주니 어색했던 분위기가 풀리고, 둘 다 외향형이었던 탓일까, 둘은 어느샌가 하나 둘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제이크는 부대내에도 헬스장이 있지만, 항상 사람이 많고 기구도 낡고 오래되어서 그는 부대에서 꽤 멀리 떨어진 이 곳까지 일부러 자가용을 끌고 온다고 했다.

참 까탈스러운 양반이네, 하면서도 찰리는 그에게 인간적인 호기심을 느꼈다.

놀랍게도 찰리와 제이크는 서로 죽이 잘 맞았다.
유머코드도 비슷했고, 운동을 좋아한다는 점이 비슷해서인지, 꽤 대화가 잘 통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최근의 관심사도 매우 유사했다.

" 왜 기분 안좋으신지 여쭤봐도 되나요?"

"그냥 개인적인 일이죠. 찰리씨는 애인있으십니까?"

"예?! 없어보이나요?!"

촤하하 웃으며 너스레를 떠는 찰리와 달리 제이크는 장난스러운 표정이 아니었다. 그러고는 묻지도 않은 얘기를 자기 혼자 주절주절 떠들기 시작했다.

"예전부터 좋아하던 동료가 있는데, 처음 겪어보는 타입의 사람이라서요. 엄청 내향적이고 사차원인 친구인데, 귀여워서인지 제 마음과 달리 자꾸 말이 반대로 나가네요. 괜히 안좋은 말만 하게 되는 것 같고, 안좋은 모습만 보여주게 되는것 같고. 이제라도 안좋은 인상을 고쳐보려고 오늘 같이 밥이나 먹자고 했더니,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약속 있다면서 쌩하니 가버리더라고요. 짝사랑은 처음이라, 자존심 상하기도 하네요."

찰리는 왜인지 이 남자에게서 옛날의 자기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댄에게 처음 대쉬를 한 것은 찰리였다. 내향형인 댄은 찰리를 엄청나게 부담스러워했고 그에게 도무지 기회라는걸 주지를 않았다.
찰리가 세 달을 내리 따라다니고 나서야 댄이 천천히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고, 그 다음에 자기 집 문도 열어주고, 파자마 단추도 열어주고....

찰리 눈에는 제이크에게는 여유가 없어보였다. 그는 화끈한 외향형인 자기 자신과는 다르게 천천히 시간이 필요한 내향인을 이해 못하는 것 같았다. 더군다나 상대가 내향인이라면 본인만의 규칙이 있어서 그걸 지켜주어야 할텐데. 받아들일 시간도 필요하고 말이야.


그러자 문득 찰리는 나는 왜 댄에게 그렇게 못해줬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연애 내내 찰리는 덤벙거리고 매사에 느린 편인 댄을 이해하지 못했다. 댄에게 비수가 되는 말도 종종 했었지. 찰리는 제이크만큼은 자기와 똑같은 길을 가지 않았으면 했다.
그에게 동질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헬스장에는 자주 나오세요?"

"훈련할때 빼고는 거진 운동하러 옵니다."

"그럼 종종 와서 얘기해주세요 ㅋㅋ 그 짝사랑하는 분이랑 어떻게 되고있는지. 제 운동도 봐주시고요."

제이크가 촤하하 웃으면서 흔쾌히 수락했다. 짝사랑에 긁힌 에고남의 미소여서 그런지 똥씹은 것마냥 호쾌한 미소는 아니었다.

제이크의 에고 높은 태도를 느낀 찰리는 속으로, 저양반도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마음씨 때문에 편하게 살기는 글렀다고 혀를 끌끌 찼다.





 
2024.03.29 01:1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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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얘기하자마자 행맨이구나 했는뎈ㅋㅋㅋㅋㅋㅋㅋㅋㅋ 행맨쉑도 찰리도 오늘 스트레스 어지간히 많이 받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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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9 02:4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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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마치... 다크스타가 된 느낌이예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투기 오타쿠의 플러팅 미쳤나봐 ㅋㅋㅋㅋㅋㅋㅋㅋ
[Code: f181]
2024.03.29 02:4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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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너무 웃기고재밌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떡하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ode: 85f4]
2024.03.29 06:4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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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랑 댄 만나고 행맨이랑 찰리가 만나서 서로 얘기하는 거 상상도 못했네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ode: 957e]
2024.03.29 07:2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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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시작도 못한 행맨밥까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밥이 들은 성희롱성 발언 아무래도 행맨의 망한 플러팅같은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서로 긁으려고 씩씩대는 찰리댄 ㅈㄴ귀엽다 미련이 한트럭인데 애초에 왜 헤어진거냐고 ㅋㅋㅋㅋㅋㅋ
[Code: 9126]
2024.03.29 07:4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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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마치... 다크스타가 된 느낌이예요."


안히 아니이 플로이드 대위님 그치만 다크스타는 슈팅스타가 되았자나요오...

ㅋㅋㅋㅋㅋㅋㅋ ㅅㅂ 아놔 센세 내 아침의 빛이신 센세 얘네 어뜨카믄 조아여 한쪽은 쇠질하면서 눈물 찔끔대고 있고 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제 삽질경악대환장쇼가 남아있겠죠 즐겁게 기다리고 있겠슴다 ㅋㅋㅋㅋㅋ
[Code: 6cf2]
2024.03.29 08:42
ㅇㅇ
헉헉 어나더라니!!!
[Code: e265]
2024.03.29 08:5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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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웃겨ㅋㅋㅋㅋㅋㅋ
[Code: 4699]
2024.03.29 08:55
ㅇㅇ
아 미친 개재밌다 진짜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찰리댄 행맨밥이 이렇게 엮이넼ㅋㅋㅋㅋㅋㅋㅋㅋ 찰리 자기랑 함께했던 2년8개월이 부정당한 기분이라 완전 삐진애처럼 엇나가는데 사실 댄은 그 소개팅도 거절했고ㅠㅠ 간만에 제대로 꾸민거 같아서 찰리 마주치지 않을까 기대했다가 실망해서 또 화장실 들어가서 다 흐트러져 버리고 그러는 순간마저도 전남친 찰리의 존재감이 불쑥 솟아오르고ㅠㅠㅠㅠ 아 그랬는데 찰리 뭐냐고 이렇게 대놓고 훼방놓으니까 오히려 열받아서 소개팅한다고 했잖아ㅋㅋㅋㅋㅋ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아서 열받게 하는 방법은 오지게 잘 알면서 서로가 서로한테 미련철철인건 왜 모르냐고오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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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9 08:58
ㅇㅇ
밥 너드식 직진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소개팅 나와서 외간남자(는 행맨) 욕 하다가 고민상담하고 개운하게 택시타고 돌아가는게 너무 귀여워ㅋㅋㅋㅋ 그 시간에 세상에서 가장 우울한 얼굴로 헬스장 출석도장 찍은 찰리랑 이미 울면서 덤벨 숄더프레스 조지고 있던 행맨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행맨 등장할때 육성으로 터질뻔했다고 센세!!! 찰리는 댄이라는 내향인의 문을 먼저 열어본적이 있는 사람이고 댄도 찰리처럼 자기랑 다른 누군가에게 맘을 열어본적 있는 사람이니까 행맨밥 연결되는데 많은 도움이 되지않을까 싶기도 하고 서로 엇갈려서 오해도 했으면 좋겠고ㅋㅋㅋㅋ 아 어떻게 어나더가 더 재밌냐 나 삼나더도 기대한다? 응?
[Code: e265]
2024.03.29 09:0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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핰ㅋㅋㅋㅋㅋ시트콤같고 너무너무 존잼이얔ㅋㅋㅋㅋ
[Code: 8f74]
2024.03.29 09:3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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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스탘ㅋㅋㄱㅋㅋㅋㅋㅋㅋㄱㅋㅋㄱㅋ아 제발 어나더!!!!!!!!
[Code: e2e8]
2024.03.29 10:0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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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 내 센세가 어나더를 갖고와주셨어ㅠㅠ 고마워 센세 밥댄 찰리행맨만난거 ㅈㄴ 웃김 ㅋㅋㅋㅋㅋ
[Code: 1950]
2024.03.29 10:5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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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ㅠㅜㅜㅜㅜ찰리댄이랑 행맨밥 둘 다 다른 맛으로 맛있다ㅜㅜㅜㅜㅜㅜㅜㅜㅜ개존잼
[Code: febf]
2024.03.29 11:0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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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이랑 밥이 만나고 행맨이랑 찰리가 만나버렸엌ㅋㅋㅋ 존잼ㅋㅋㅋㅋㅋㅋ
[Code: ca7b]
2024.03.29 16:5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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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서로 조언하는거 너무 웃겨 ㅋㅋㅋㅋㅋ존잼ㅋㅋㅋㅋㅋ
[Code: ea85]
2024.03.29 18:0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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갸아아아아아앜ㅋㅋㅋㅋ억나덬ㅋㅋㅋ
[Code: b719]
2024.03.29 18:3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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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잼이다ㅜㅡㅜ
[Code: 0fde]
2024.04.03 23:2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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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기 오타쿠식 플러팅ㅋㅋㅋㅋㅋㅋ
[Code: e7f3]
2024.04.09 19:44
ㅇㅇ
센세 나 기다려요ㅠㅠㅠㅠㅠㅠ
[Code: dc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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