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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7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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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엉덩이가 딱 잘 익은 사과같다고. 샤워할 때 물 떨어지는 곡선을 보면 여기가 천국이지 싶어. 허리는 잡는 맛이 얼마나 일품인지....
그거 꼭 저한테 말해야 해요?

토니의 캡틴 자랑질에 참다못한 바튼이 말했다. 각각 무장해제 돼 벽에 붙은 쇠고랑에 양손목이 매달린 채다. 천연 동굴같은 장소는 멀리 매달린 작은 램프 불이 전부다. 쉬지 않고 들려오는 바다소리는 이곳이 바다와 근접해 있음을 알려준다. 섬에서 어디가 바다와 안 가깝다고는 할 수 없지만 동굴 전체를 울리는 묵직함은 아예 바다에 둘러싸인 느낌까지 준다.
며칠을 물이나 겨우 마신 정도인 둘은 사실 제대로 서 있을 기운도 없다. 하지만 지금 바튼을 더 괴롭히는 건 토니의 부부 성 라이프다. 저희들을 잡아두고 뭘 하려는지 놈들은 묶어둔 채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아마 쉴드나 스타크사와 협상하려 들지 않을까 싶다. 거액의 몸값을 요구하거나 기술력, 아니면 신무기를 요구할 수도 있다. 요구할만한 게 워낙 많으니 짐작하기도 어렵다. 첫날에는 토니를 끌고 나갔는데 아이언맨 수트 제작법 등을 물어본 모양이다. 그런데 어떻게 구슬린 건지 녀석들은 금방 다시 토니를 바튼과 함께 처박아뒀었다. 바튼이 궁금해서 물어보니 토니는 공장을 돌려 아이언맨 수트만 수천벌이니 스타크사에 제 몸값으로 요구하라며 친히 페퍼 번호까지 알려줬다고 말했다. 뭐가 좋다고 실실거리기까지 하는 폼에 바튼은 잘 알지도 못하는 페퍼가 측은해졌다.

상처는 괜찮아요?
쑤시고 아파. 너는?
견딜만해요.

서로 말만 그렇게할뿐 상태는 좋지 않았다. 토니는 교전당시 맞은 복부를 방치한 덕에 이제 곪기 시작했다. 총알도 빗겨가서 상처 자체는 그리 심하지 않았으나 바다에 빠지고 갇히는 동안 체력이 바닥을 쳤다. 놈들은 하루에 한번 물을 먹여주는 게 다였다. 덕분에 바튼도 심한 탈수 증상에 시달렸다. 동태를 보아하니 저쪽이 충분히 애닳은 다음에나 연락할 모양이다. 몸값을 협상해도 어차피 둘을 살려보낼 생각도 없으니 이쪽은 느긋했다. 교전의 영향인지, 아니면 해적이라선지는 모르나 요즘 섬은 제법 시끄러웠다. 간간히 여자들 소리도 들리는 게 즐길 건 다 즐기는 모양이다. 개중에는 바튼이 오메가라고 의심하는 놈 몇이 술에 취해 안을 쳐다보고 가기도 했다. 바튼은 토니가 일부러 조금 개방한 알파 페로몬의 덕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토니의 체력이 떨어지며 그나마도 향이 옅어지는 중이다. 아무리 태연한 척해도 바튼은 현재 속이 타들어가는 중이다.

걱정 마, 놈들한테 끌려가게 두지 않을테니.
자기 몸이나 챙기세요. 절 신경쓰느라 더 빨리 지치잖아요.
오, 캡틴. 캡틴이 있어야 하는데. 캡틴의 향기는 날 발ㅈ나게 하거든.

성실한 사람처럼 킬킬거리는 토니에 바튼이 한숨쉬었다. 사실은 바튼을 보호하려 일부러 제 체력을 깎아먹으며 계속 페로몬을 개방한 거면서도 고맙단 소리를 듣지 않으려 저러는 거였다. 토니는 누군가 자신에게 고마워하는 걸 굉장히 못견뎌했다. 토니가 그런 말을 하게 두는 건 아마 스팁 정도일 거다.

고마워요.
아.... 진짜. 너 뭐 잘못 먹었냐?
뭐라도 먹은 거나 있으면 좋겠네요.

기습적으로 내뱉은 말에 토니는 진심으로 짜증을 냈다. 하소연하듯 답하면서도 바튼은 참 어지간히 뒤틀린 성격이라 생각했다. 이어 저 성질머리를 받아주는 캡틴도 참 대단타 느끼며 바튼은 이래서 캡틴이구나 다시 존경심을 느꼈다. 그와중에도 배는 고팠고 뭐라도 먹고 싶었지만 말이다.



럼로우가 건네준 지도는 방수처리된 종이로 젖지 않았다. 덕분에 물속에서 적진 내부로 진입하기까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물 밖으로 나오니 천연 동굴이 펼쳐졌다. 적진은 이 천연동굴 위에 위치한 듯했다. 멀지 않은 곳에 사람 소리가 들렸다. 스팁과 나타샤는 잠수복을 벗었다. 둘은 이미 속에 수트를 착용한 상태다. 거기다 스팁은 방패까지 짊어지고 여기에 들어왔다. 손에 방패를 쥐고 잠영하던 그는 덕분에 꽤 지쳐보였다. 등에 방패를 장착하자 나타샤가 미련스럽다는 듯 쳐다봤다. 하지만 이고지식함이 스팁이니 어쩌겠는가. 둘은 수신호를 주고받은 뒤 본격적으로 동굴 탐사에 들어갔다. 바다와 연결된 동굴은 꽤 여러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나타샤가 든 GPS 수신기는 지상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둘은 만약을 위해 동굴을 좀더 탐사했다. 퇴로 확보나 해적들을 몰래 처리할 때 유용하도록 말이다. 갈래마다 더 아래로 향하는 곳, 낭떠러지로 연결된 곳, 막혀 있는 곳 등등 길이 다양했다. 섬은 보이지 않는 부분이 더 큰 듯했다. 그리고 드디어 둘이 위로 향하려던 때 멀리서 발소리가 들렸다. 둘은 재빨리 랜턴 불을 끄며 몸을 숨겼다. 술냄새를 풍기며 남자 하나가 지나간다. 램프에 의지한 채 스팁과 나타샤를 지나친 남자가 머지않아 멈췄다. 그는 통로 한쪽에 놓인 바위를 힘껏 밀었다. 그러자 어른 하나가 간신히 통과할 구멍이 보였다. 어두운데다 워낙 자연스러워서 둘이 의심하지 않았던 자리다. 남자가 비좁은 곳에 꾸역꾸역 들어가며 욕을 뱉었다. 그러고보니 어깨에 뭘 걸치고 온 남자는 들어가기 전, 그것을 내려놔싸 통과한 후 끈을 접고 가방을 잡아당겼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다시 나온 남자가 온길을 돌아갔다. 스팁과 나타샤는 조금 후 눈빛을 교환하고 나왔다. 둘은 남자가 제자리로 돌려놓은 바위 앞에 있었다. 스팁의 허리쯤 오는 바위는 꽤 묵직해보였다. 나타샤는 랜턴으로 바닥을 비춰 돌이 끌린 자국을 살폈다. 스팁이 시험삼아 돌을 슬쩍 밀었다. 꿈쩍하지 않았지만 전달되는 무게가 예상외로 가볍다. 가만보니 바위는 구멍에 맞추기 위해 뒤쪽으로 많이 잘려나간 상태다. 구멍과의 이음새 부분이 그럴듯하게 정교했다.

주기적으로 끌린 자국이에요. 일정한 흔적이 남아있어요.
무게가 생각보다 가볍네. 잠시 비켜주겠나?

맞은편의 나타샤가 일어나자 스팁이 바위를 밀었다. 새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놈들이 항상 밀어놓던 방향으로 밀었다. 바위가 밀리며 작은 구멍이 드러났다. 구멍을 타고 바닷바람 냄새가 났다. 랜턴으로 구멍을 비추자 금방 내부가 드러났다. 큰 홀처럼 뻥 뚫르 공간에 인위적으로 만든 게 분명한 감옥들이 보인다. 돔 형태의 벽을 따라 양옆을 막고 앞에는 쇠창살을 박았다. 천장은 따로 막지 않았다. 스팁이 방패를 따로 들고 간신히 들어왔다. 이어 나타샤도 따라 들어왔다. 안은 조용했다. 입구 쪽에 램프 불이 하나 있지만 넓은 안을 비추기는 터무니없이 작았다. 둘도 만약을 위해 랜턴을 켜지 않았다. 그러나 진한 소금기 사이로 스팁은 희미해진 제 알파의 냄새를 구분했다. 스팁이 어둠 속 한 지점을 주시하자 타이밍 맞게 덜그럭 소리가 들린다. 그는 지체없이 소리가 난 곳으로 달렸다. 당황한 나타샤도 얼른 뒤따랐다. 스팁이 채 가까이 가기도 전이었다.

지저스, 스팁?! 제길, 정말 당신 맞아?

쉬어 갈라진 목소리가 동굴을 울린다. 바튼이 정말 캡틴이냐 되물었다. 토니는 놀란 나머지 짜내듯 개방하던 페로몬마저 사라졌다. 안그래도 좀전 물을 주고 나간 놈이 바튼에게 정말 오메가가 아니냐며 추파를 던졌다. 토니의 향에 긴가민가한지 내일 다시 보자며 누런 이를 드러내고 갔었다. 그렇게 토니도 내심 한계를 느끼던 차에 스팁의 향이 나는 것이다. 발정기가 아닌 이상에야 본딩 상대가 아니라면 제 오메가의 향을 한번에 알아보기 어렵다. 특히 본딩된 오메가는 다른 알파로부터 향이 숨기 때문에 더 알 수 없다. 때문에 토니가 스팁을 알아본 거다. 토니의 페로몬이 걷히자 바튼의 향을 알아챈 나타샤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사이 스팁은 방패로 자물쇠를 부쉈다. 잠시 철그렁 소리가 동굴을 크게 울렸다. 누가 들어도 어쩔 수 없다 생각하며 둘이 안으로 들어왔다. 스팁이 방패로 쇠고랑을 절단내는 사이 나타샤는 아예 총질을 했다. 유난히 크게 울르 두 발의 총성에 바튼은 자유의 몸이 됐지만 심장이 충격을 받았다. 그는 오랫동안 구속됐던 어깨와 팔, 손목에 통증이 몰려옴에도 나타샤를 먼저 힐난했다.

우릴 다 죽일 셈이야, 냇?
시끄러. 멍청하게 잡히기나 하고.
이 무식한 여자 같으니라고!
닥쳐, 병신아! 너 토니 아니었으면 아다 뚫릴 뻔한 거는 아냐?
뭐라고? 이...!

한쪽에서 둘이 유치한 말싸움을 벌였다. 덕분에 토니와 스팁은 감격의 재회가 식어버렸다. 바튼은 제가 오메가라는 걸 이유로 상스러운 말이나 해대는 나타샤에 열이 뻗치는지 좀전까지 다 죽어가던 게 살아났다. 그러다 결국 나타샤에게 펀치를 먹고 다시 고꾸라졌지만.
나타샤는 바튼을 부축하며 로키 때도 자기한테 도움받더니 별수 없는 녀석이라며 혀를 끌끌거렸다. 바튼은 도움따위 거절하고 싶었지만 방금 맞은 펀치로 다리에 힘이 풀려 어쩔 수 없었다.



간신히 둘을 구출했으나 문제는 문제였다. 얘기를 종합해보면 하루 한번 물을 주는 것 빼고는 들르지 않았다니 약 24시간의 유예가 있었다. 구멍을 빠져나온 뒤 바위도 복구했고 흔적을 지우며 이동 중이니 이들은 스팁과 나타샤를 아직 모르는 거다. 나타샤의 총성을 듣지 못한 거 천만다행이었다. 그러나 요행수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있었다. 상처가 곪은데다 페로몬 때문에 무리하게 체력을 소진한 토니를 데리고 약속된 시간 안에 목표 장소까지 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약속 시간은 앞으로 18시간 남았다. 출발하며 나타샤와 스팁, 럼로우는 손목시계를 타이머에 돌려놨다. 이들의 손목시계는 초단위로 숫자가 줄어들며 남은 시간을 알려줬다.

이 접속단자를 붙이면 레이더망에 구멍이 생긴다고?
네. 통신장비를 무력화시키는 방해전파는 못 잡아도 레이더망은 교란시킬 수 있어요. 그때 백업 팀이 약속 장소로 접근할 겁니다. 못해도 한 시간은 벌 수 있을 테고 그쯤이면 우리도 배에 오를 수 있을 테니까요.
흐음... 통신만 되면 자비스한테 수트 하나 이리로 보내라고 할 텐데.

접속단자를 손에서 굴리며 관찰하던 토니가 아쉬운 듯 말했다. 이들은 아직 동굴 안이었다. 토니는 이번에 제 생체 신호에 반응하는 새 타입의 수트를 개발했다. 물론 아직 최종테스트를 거치지는 못했으나 도망치기는 충분할 테다. 아쉬움에 미간이 구겨지는데 스팁이 나타샤과 시선을 주고받았다. 바튼도 둘이 은밀하게 눈빛교환하는 것을 눈치챘다. 접속단자로 뭘 더 어떻게 할 수 없나 머리 굴리느라 바쁜 토니만 몰랐다.

바튼, 몸은 괜찮나? 뛸 수 있겠어?
네, 괜찮습니다.

캡틴의 물음에 바튼이 답했다. 제 무기만 있다면 당장 싸울 수도 있었다. 바튼과 토니는 두사람이 챙겨온 초콜릿바와 이온음료로 당장의 에너지가 생겼다. 그러나 토니는 상황이 다르다. 이대로는 제대로 뛸 수도 없다. 뒤에서 토니를 쳐다보던 스팁이 움직였다.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 스팁이 갑자기 입을 맞췄다. 입 막히는 소리와 함께 토니가 놀라 동그랗게 눈을 떴다. 그러나 이내 뒤에서 가격한 나타샤에 정신을 잃었다.

미안해, 토니.

스팁이 쓰러지는 토니를 받치며 말했다. 그는 토니의 손에서 접속 단자를 받아들었다. 바튼도 예상했는지 별말이 없었다. 그리고 나타샤와 스팁은 손목시계를 리셋했다. 잠시 화면이 깜박이더니 타이머가 네 시간에서 초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바튼도 당황했다. 스팁이 바튼에게 토니를 건네며 빠르게 브리핑했다.

당시 아이언맨이 부상을 입었다는 건 나타샤를 통해 알고 있었네. 그래서 나와 나타샤는 무엇보다 인질구출에 집중하기로 했어.

이는 럼로우도 모르는 일이다. 토니가 부상당했다는 걸 염두한 스팁이 고무보트에서 나타샤에게만 계획을 얘기했다. 토니의 부상 정도에 따라 계획을 변경함에 있어 마지막은 캡틴이 미끼가 되는 거였다. 나타샤는 반대했지만 스팁은 완고했다. 시간 끌어봐야 모두가 위험해질 뿐이다. 그렇다고 누구 하나 두고 올 수조차 없다. 그러다 모두 죽는 것이다. 스팁이 보고 겪은 전쟁은 그랬다. 그럴바에야 한 명의 희생이 낫고 이기적이지만 스팁은 토니가 살기를 바랐다. 바튼이 토니를 등에 업었다. 캡틴은 방패를 등에 매고 일어섰다.

한시간. 그 안에 끝내겠네.

캡틴이 손에 쥔 접속단자를 보이며 말했다. 단자가 부착되면 백업팀 쪽 레이더망에 신호가 갈 것이다. 그러면 이들은 바로 움직일 테고 종료시간에 상관없이 모든 건 그로부터 한 시간 안에 처리돼야 한다. 나타샤가 고개를 끄덕이자 캡틴이 먼저 움직였다. 어둠속으로 캡틴 아메리카가 사라졌다.



18


토니가 정신을 차린 건 요란한 소리 덕분이다. 눈을 뜬 그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동시에 곪은 상처로부터의 통증에 신음하자 멀리 섬을 보던 중인 나타샤 쳐다봤다. 눈이 마주친 둘은 침묵했다. 정적을 깬 건 귀를 때리는 폭발음이었다.

넌 나중에 얘기해. 윽!
상처가 나빠요. 움직이지 말아요.

화를 낼 거란 예상과 달리 토니는 억지로 일어섰다. 문을 열고 나오니 멀리 섬에서 불길이 치솟는다. 토니는 배의 선미에 위치한 조타실로 들어갔다. 안에는 조타수와 럼로우가 있었다. 토니가 배를 움켜잡고 들어서자 럼로우는 빤히 쳐다봤다. 약 십분 전, 캡틴으로부터 짧은 교신이 들어왔다. 최종목표 탈출. 지직거리는 소리 사이로 작게 들려온 목소리는 거친 호흡을 달래지도 못했다. 어떻게 통신 기회를 잡은지는 몰라도 그것으로 끝이었다. 뭘 얼마나 헤집고 다녔는지 방해전파도 사라진 지금, 럼로우는 쉴드에 지원요청을 했다. 지금 이 인원으로 들어가면 몰살이다. 그래서 그도 구출이 아닌 탈출이라지 않은가. 제발 지원팀이 올 때까지 스팁이 버티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는데 토니가 통신장비로 절뚝이며 걸어갔다. 기절하느라 맞은 여파로 토니는 안에서 누가 망치로 때리는 듯한 두통을 느꼈다. 곪은 상처는 위치가 좋지 않았다. 박테리아에 감염돼 그대로 장기까지 파고들어갔을 수도 있었다. 배에서 응급조치는 했으나 그뿐이었다. 그럼에도 럼로우는 토니를 말리지 않았다. 그사이 능숙하게 장비를 조작한 토니가 자비스를 불렀다.

자비스, 지금 내 위치 추적해.
Yes, sir.
그리고 내 좌표로 마크 406을 보내.
마크 406은 최종단계를 거치지 않은....
여기까지 혼자 올 수 있는 놈이 그것뿐이잖아?
하지만 Sir.
피터는 잘 있어?
예. 미스터 콜슨과 함께 있습니다.
그럼 됐어. 보내.
......Yes, sir.

사람이었다면 망설였다 생각할 수도 있는 공백 뒤 자비스가 답했다. 어쩌면 정말 망설인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곧이어 수트가 날아오는 속도, 시간 등을 말하는 음성은 정확했다. 토니는 배를 움켜쥐며 신음했다. 사실 여기서 더 움직일 자신도 없었다. 장비에 팔을 올려 기댄 토니가 힘겹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사이에도 섬에서는 몇차례 자잘한 폭발음이 들렸다. 그렇게 몇분이 흘렀을까. 동상처럼 있던 토니가 여지껏 없는 취급하던 럼로우에게 말했다.

연락할 애인 있어?
없습니다.
잘됐군.

뭐가 잘됐다는 건지 물으려던 차 멀리서부터 소리가 들렸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는 순식간에 가까워지더니 조타실의 벽이 뚫렸다. 토니의 옆으로 뚫고 들어온 것은 내부를 크게 돌아 순식간에 미사일같던 몸체를 펼쳤다. 그것은 토니를 향해 돌진하는 것 같았는데 혼비백산한 조타수가 정신을 차렸을 땐 휑하니 뚫린 벽과 망가진 기기들만 있었다. 그리고 럼로우는 섬을 향해 돌진하는 아이언맨을 보고 있었다.



토니가 해동된 스팁에게 전과 다른 관심을 보인 계기는 우스웠다. 어느 날, 캡틴은 굉장히 곤란한 얼굴로 토니를 찾아왔었다. 그로부터 시간을 잠시 돌려보면 캡틴은 쉴드에 있었다. 그는 막 임무를 마친 뒤라 수트와 얼굴이 먼지와 검정 때 범벅이었다. 쉴드는 다소 늦은 시간이라 건물 창 대부분이 어두웠다. 다만 퓨리가 국장실에 아직 남아있어 보고를 위해 온 거였다. 그런데 불 꺼진 복도를 지나던 중 멀리 휴게실에서 불빛이 새어나왔다. 호기심이라기보다는 그곳을 지나쳐야 했던 캡틴은 그러나 무심코 돌린 시선에 돌이 돼버렸다. 남자들이 너댓 모여있는 사이로 티비가 비쳤다. 휴게실은 문을 닫아도 창이 있어 내부가 보였다. 덕분에 소리는 들리지 않았는데 금발의 미녀가 입은 옷은 아무리 봐도 캡틴 아메리카 수트였다. 다만 여성에 맞게 미니원피스로 변형됐고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파란 부츠는 족히 십센티는 돼보였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캡틴 코스튬의 그녀가 어설픈 아이언맨과 뒹굴고 있다는 거다. 플라스틱 가면을 쓴 아이언맨은 터질듯한 근육질의 소유자였다. 닮은 거라고는 머리색뿐이랄까. 21세기를 경험하며 수많은 컬쳐쇼크를 겪었지만 이건 재앙 수준이었다. 패닉에 빠진 스팁은 얼굴을 돌리지도 못했고 마침 화장실에 가려 일어서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당황한 남자는 멈칫하더니 화면에 들어갈듯하던 동료들을 후려치며 리모콘을 찾았다. 문 밖으로 들릴 정도로 짜증내던 그들도 캡틴을 보고 허둥거렸다. 덕분에 코앞에 둔 리모콘을 찾는데 시간이 걸렸고 그사이 여자는 거의 헐벗은 상태였다. 남자 하나가 급히 문을 열며 어색하게 웃었다. 성인 남자끼리 야동 보는 걸 들켰다고 그러는 게 아니다. 하필이면 히어로 컨셉의 영상을 당사자에게 들켰다는 게 문제였다. 사실 본인만 몰랐지 캡틴 아메리카는 히어로와 오메가가 주는 갭에 AV물에서 인기가 많았다. 이들도 주변에서 자꾸 들린 얘기에 호기심에 본 거였다.

-저게.....
-하도 주변에서 난리길래 얼마나 대단한가 싶어 본 거예요. 절대 나쁜 뜻은 없었습니다!

안에서는 CD를 빼고 전원을 뽑고 난리가 났다. 괜히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는 놈도 있었다. 스팁 앞의 남자가 눈치를 살피며 어색하게 웃는다. 스팁은 여전히 충격 속에 있었다.

-저... 혹시 상부에 보고하시는 건...
-보고? 아, 그렇지. 보고.

스팁은 이제야 자신이 뭘 하러 왔는지 깨닫고 중얼거리며 돌아섰다. 하지만 그 말을 오해한 남자는 차마 잡지도 못하고 죽을상이 돼 멀어지는 캡틴을 보기만 했다. 그리고 지금, 그는 보고도 잊고 토니를 찾아왔다.
자비스가 총 맞은 듯한 스팁의 영상을 비추며 방문을 알림에 토니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토니가 생활하는 최상층으로 올라온 스팁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안내받은 대로 소파에 앉아있었다. 기다리던 퓨리가 연락했을 때도 토니가 전화받으라고 하자 반응했다. 그러고는 스팁이 폰을 꺼내자 제가 받아 대충 둘러댔다.

-미안하네.
-왜?

한참의 침묵 후 들린 음성에 토니가 물었다. 그는 스팁과 마주한 위치에 팔짱을 끼고 서있었다. 이때만해도 둘은 부딪치기 일쑤였고 스팁이 찾아올만한 일도 없었다. 더욱이 그는 전투에 온힘을 쏟아낸나머지 그대로 쓰러질 것 같은 몰골이었다. 때문에 토니는 표만 안 냈지 스팁이 무슨 말을 할지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그는 대뜸 사과하더니 말하기를 주저했다. 기다리는 걸 싫어하는 토니는 짜증이 났다.

-밤새 이러고 있을 거야? 나 바쁜 사람이라고.
-아... 미안하네.
-유령이라도 봤어? 꼴이 왜 이래? 뭐하면 샤워라도 하고 오든가. 당신 지금 장난 아니야.

토니가 부러 물러나자 스팁이 팔에 코를 묻었다. 땀과 먼지 냄새가 코를 찌른다. 그러나 토니는 스팁의 오메가향을 말했다. 우성이라 어지간해서는 오메가에게 영향받지 않건만 이상하게 스팁의 향에는 동요했다. 그라고 특별할 것도 없건만 있다보면 저도 모르게 코를 박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더 캡틴에게 시비를 걸었던 거다. 하지만 이를 알 리 없는 스팁은 실례했다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얼른 말하고 가야겠다 생각했다.

-저... 그... 성인물을 봤는데.

여기서 토니는 저 고지식한 캡틴이 성인물 본 거로 제게 고해성사라도 하는 줄 알았다.

-자네와 날 소재로.... 그.... 영상이 있던데....
-그래서 뭐, 당신도 봤다고?
-아니, 아니네! 내가 본 게 아니야! 쉴드에 보고하러 갔는데.
-으웩. 국장이? 아, 제길. 정조대라도 차야 하나?
-그것도 아니야! 그게 아니고..... 자네, 알고 있었나?

허둥대던 스팁이 이제야 깨닫고 묻는다. 토니는 어깨를 으쓱했다.

-시리즈물 다. 솔직히 캡틴 역 여자배우가 취향이라서.
-자네는 절제도 모르나?!

저도 모르게 나온 소리에 스팁이 당황했다. 그는 목부터 얼굴까지 달아오른데 반해 토니는 태연했다. 스팁은 더 할 말이 없는지 돌아가려 했다. 그제야 토니가 스팁의 손목을 잡아세웠다.

-정말 그거 때문에 온 거야? 나한테 사과도 하고?
-.....
-정말 그래서 사과한 거야?

혹시나 했는데 토니는 어이가 없었다. 흰 피부가 빨갛게 달아오른 걸 보니 잘 익은 사과같다. 문득 그 여자 성인 배우보다 캡틴이 더 예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별것도 아닌 일로 혼자 괴로움에 몸부림쳤을 걸 생각하니 웃기기도 했다. 하지만 토니가 뭔가 말해주기도 전 스팁은 손을 뿌리치고 나가 버렸다. 토니는 스팁을 잡지 않았다. 대신 방금까지 체온이 머물던 손을 펴볼 뿐이었다.



섬에 가까워질수록 연기와 냄새가 심해졌다. 토니는 지체없이 연기를 뚫고 본거지로 들어갔다. 낡은 외부에 비해 안은 견고했으며 또 복잡했다. 쓰러진 놈들은 대개 기절하거나 어딘가가 부러져 있다. 토니는 지체없이 이곳저곳을 비행했다.

자비스, 스팁은 찾았어?
아직입니다.
생체신호가 제일 많이 잡히는 곳이 어디지?

토니는 멈추지 않았다. 간간히 정신이 붙어있는 놈들이 공격했지만 간단히 피하며 토니는 자비스의 안내를 받았다. 그러나 도착한 곳은 제 살길 바쁜 놈들만 있었다. 약탈한 물건을 둔 곳인지 열린 두꺼운 문 사이로 서로 돈이며 금 등을 챙기기 바빴다. 토니는 실망과 함께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6시 방향 바주카 조준입니다.

자비스의 경고에 토니가 빔을 발사했다. 몰래 뒤를 노리던 남자가 쓰러졌다. 토니는 다시 낮은 복도를 빠르게 비행했다. 오로지 비행기능에 맞춰진 수트는 때문에 사용 가능한 무기에 제한이 많았다. 때문에 만약을 위해 무기를 아껴야 했다. 자비스는 다시 생체 신호에 따라 토니를 안내했다. 여기저기 치솟은 불길에 미완성인 수트를 통해 열기가 느껴졌다. 더욱이 자비스는 용암처럼 달아오른 건물 중심부로 안내 중이다. 거리가 가까워지며 수트 안으로 매케한 연기가 들어왔다. 토니는 이와중에도 수트의 이음새를 좀더 보완해야겠다 체크했다. 포탄에 의해 뻥 뚫린 벽을 통과하니 바닥이 무너져 있다. 그리고 이 구멍을 통해 뜨거운 연기가 피어올랐다. 한쪽 벽에는 간신히 흔적만이 남은 기계들이 보였다. 스팁이 제조한 즉석폭탄으로 이곳을 터뜨린 잔해였다.
지하동굴까지 꺼진 바닥으로 토니는 지체없이 몸을 던졌다. 연기로 막혔던 시야는 곧 숨막힐 듯한 열기를 전달했다. 동굴 바닥에 착지한 토니에게 방패가 꽂힌다. 그는 급히 날아올랐다.

스팁! 나라고!
.....토니? 윽!

기관총 소리가 들린다. 연기에 시야 확보가 어려웠다. 스팁이 총에 맞은 모양이다. 토니를 부른 소리 때문에 위치가 발견된 거다. 토니는 다시 날아올랐다. 그를 향해서도 한차례 총알이 쏟아졌다.

스팁! 제길, 어딨는 거야?! 스팁!

토니가 쉼없이 날아다니며 스팁을 찾았다. 연기 덕분에 토니를 향한 총구는 엉뚱한 곳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그래서 토니도 스팁을 찾기 힘들다. 이미 한계치를 넘어선 육신은 제 오메가향도 구분할 수 없게 했다. 지금 토니는 제 몸이 목숨 걸고 짜낸 아드레날린으로 움직이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잠시잠깐 동굴에 파도가 몰고 온 바람이 불었다. 토니는 그 잠깐의 순간 스팁을 발견했다. 그는 언젠가 토니를 찾아왔던 때처럼 먼지와 검정 때로 뒤덮여 있었다.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몰골에 토니가 스팁을 향해 하강했다. 빠른 속도에 수트가 덜덜 떨릴 정도였다. 그는 저를 향한 총알도 피하지 않았고 그래서 스팁을 만날 수 있었다.

자비스, 현재 화력으로 벽을 뚫을 수 있는 위치는?
세시 방향, 15도 아래입니다. 그리고 동굴 밖은 바다입니다, sir.

스팁의 허리를 단숨에 낚아챈 토니는 지체없이 손을 뻗었다. 그사이에도 수트에 맞은 총알이 튕겨나갔다. 그러나 이음새 사이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아이언맨의 손에서 붉은 빔이 쏘아졌다. 동굴이 한번 진동하더니 벽이 뚫렷다. 압력을 이기지 못한 구멍은 순식간에 무너졌고 범람하는 물에 아래에서 비명이 쏟아진다.

자비스, 좌표 수정 없이 자동모드로 비행기능 최대치로 올려.
수트가 속도를 감당 못합니다.
상관없어.
토니! 무모하게 뭐하는 짓인가!
눈 감아. 키스할 거야.

물이 가슴까지 차올랐다. 스팁의 항의에 토니가 마스크를 열었다. 방금 빔을 쏴댄 손쪽 수트는 열기에 녹아내렸다. 토니는 손바닥이 화상을 입었다. 아직 상황을 모르는 스팁의 머리를 화상입은 손으로 바친 토니가 키스했다. 동시에 자동모드설정이 완료된 수트가 바다에 잠겼다.



19


-아! 음.. 퍽 미, 아이언맨. 플리즈, 퍽 미!

AV가 다 그렇듯 남자를 자극하는 소리가 많기 마련이다. 시각적 요소야 기본이니 말할 것도 없지만 지금 이곳은 대낮의 쉴드 회의실이었다. 최근 벌어지는 일들 때문에 어벤져스가 소집됐고 두번째로 도착한 스팁은 봉변을 당하는 중이다.

-지금 뭐하는....
-아, 왔어?

토니가 앉은 채로 알은 체했다. 스팁은 차마 입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토니는 뻔뻔하게도 야동을 끄지도 않았다. 그것도 캡틴과 아이언맨 AV다.
이것도 양심이라면 양심인지 그는 휴대폰으로 영상을 보던 중이다. 하지만 스팁은 충분히 당황했다.

-당장 끄게! 자네는 부끄러움도 모르나?
-내가 벗는 것도 아닌데 뭘.
-토니!
-이 여자 가슴이 큰데 예쁘단 말이야. 보통 크면 처지기 마련인데.

뻔뻔하기로는 우주 최강일 토니가 양손으로 가슴을 받치는 시늉을 한다. 얼굴이 터지기 직전인 스팁은 곤란하다못해 잘하면 울 것 같았다. 그밤 이후로 건수를 잡은 토니는 스팁만 보면 꼭 이런 장난을 쳤다. 덕분에 스팁은 이제 토니와의 만남이 두려울 지경이다.

-아앗! 아이언맨!

영상 속, 갑자기 비명을 지르는 여자에 스팁이 움찔했다. 퍽퍽 부딪치는 소리가 더 거세고 빨라진다. 그럴수록 여자의 비명도 커졌다. 이제 스팁은 식은땀이 흐를 지경이다. 토니는 어떻게 하려나 싱글거리고 있었다. 그때, 스팁의 뒤로 문이 열렸다.

-캡틴? 왜 여기.... 지저스, 토니!
-오, 냇. 일찍 왔네?
-지금 뭐하는 거예요? 미쳤어요?
-왜? 니가 제일 좋아하는 시리즈잖아. 빌런 아이언맨 버전이라고.

스팁을 밀치고 들어온 나타샤는 토니의 말에 조용해졌다. 눈치를 보느라 돌린 시선이 스팁과 마주쳤다. 나타샤도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시리즈까지 있단다. 스팁은 농락당한 숫처녀마냥 부들부들 떨었다.

-둘 다! 한동안 말 섞고 싶지 않네!

거의 울기 일보직전인 듯한 모습으로 스팁은 홱 돌아섰다. 하지만 연달아 터지는 사건에 쉴드가 경계태세인지라 스팁도 며칠 수트를 입은 게 문제였다. 절정을 향해 달리는 영상 속 여자와 돌아선 스팁의 뒷태가 겹쳐보였다. 하필이면 여자도 뒤를 보인 상태라 그런지도 모른다. 재빠르게 눈을 굴린 나타샤가 여자와 스팁을 스캔했다. 토니도 눈치챈 상태다. 스팁이 나가고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을 때다.

-저 옷이 원래 저렇게 야했나요?
-그걸 이제 알았어?

토니의 대꾸에 나타샤가 끄덕이며 동조했다. 아무리 나타샤가 거부해도 그녀는 토니와 매우 닮은 데가 있었다.



둘은 거의 처박히다시피 배에 돌아왔다. 도착한 지원팀은 둘을 먼저 이송했다. 헬기 착륙장에는 페퍼가 나와 있었고 둘은 스타크사 산하에 있는 병원으로 이송됐다. 행인지 불행인지 스팁은 타박상 외에는 큰 부상이 없었다. 초반, 총에 맞은 듯한 자국이 있었으나 총알을 빼낸 흔적뿐이었고 그나마도 상처는 빠르게 아물었다. 덕분에 스팁은 몇가지 검사만 받았으나 토니는 상태가 심각했다. 화상 입은 손은 물론 배에 처박히며 산산조각난 수트로 인해 갈비뼈에 금이 갔다. 총알에 맞은 어깨와 곪아터진 복부는 육안으로 봤을 때 매우 심각해 보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곪은 상처가 보기보다 쉬운 치료를 요했던 거다. 비록 어깨는 박힌 총알이 깊숙이 들어가 부서진 덕에 모두 제거하느라 고생했지만 말이다. 거기에 지속적인 체력 소진과 과도한 아드레날린 후유증으로 생체반응이 더없이 더뎠다. 치료과정에서 두 번이나 심정지가 일어나면서 고비를 간신히 넘겼던 토니의 곁에는 항상 스팁이 있었다. 본딩된 관계란 서로의 신체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토니에게서 두 번의 심정지가 일어났던 것도 스팁이 자리를 비운 잠깐 사이였다. 때문에 스팁은 이후 절대 토니에게서 일정거리 이상 멀어지지 않았다.

피터는 어때요?
잘 있어요. 이도 다 나오고 말도 하기 시작했어요. 정말 빨리 성장하더군요.
이유식은....
이가 다 나온 뒤 바로 일반식으로 바꿨어요.
그래요?

스팁이 힘없이 웃었다. 영상통화너머 콜슨은 걱정 가득한 모습이었다. 그일로부터 한 달 반이 흘렀다. 토니는 신체기능이 안정적으로 회복중이지만 깨어나지는 않았다. 섬에서의 후처리는 쉴드 쪽에서 해주고 있었다. 섬 자체가 다른 영토권에 있던지라 외교분쟁이 쉬이 가라앉을 생각을 안 했다. 퓨리는 복직할 것을 강력히 어필했으나 콜슨은 아예 휴직서를 제출했다. 토니와 스팁이 이지경으로 돌아온 직후였다. 덕분에 피터가 제일 먼저 한 말은 콜슨이었다. 마미, 대디에 비하면 발음도 어려운 콜슨을 처음 소리냈을 때 당사자는 감격에 눈시울을 붉히기까지 했었다. 그리고 이어 자비스를 말한 뒤에야 콜슨으로부터 제대로 마미, 대디를 말할 수 있도록 교육받았다. 아이가 놀랄까 상황을 숨겼던지라 피터는 제 부모가 일 때문에 멀리 가 있는 줄 안다. 부쩍 말이 늘은 아이는 요즘 콜슨에게 가족사진을 보이며 마미, 대디를 말했다. 부모가 그리워 찾는 거였다. 그럴 때면 콜슨은 아이를 가만히 끌어안았다.

토니는 어때요?
....좋아요.

스팁이 토니의 손을 잡았다. 상처는 순조롭게 아무는 중이다. 나타샤에게 맞은 얼굴의 멍은 이제 흔적도 없다. 이렇듯 다 좋아지는데 토니만 깨지 않았다. 하지만 스팁은 약한 소리는 하지 않았다. 콜슨도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전화를 끊은 뒤 언제나처럼 피터의 사진을 보내줬다. 폰으로 전송된 그림 하나 볼 줄 모르던 스팁이 이젠 능숙하게 아이 사진을 띄운다. 하루가 다르게 자란 아이는 벌써 세네살은 돼보였다. 빠른 성장은 익히 알지만 새삼 그 속도가 느껴질 정도다. 옆에서 지켜보지 못함에 비로소 스팁의 얼굴에 슬픔이 서린다. 조용한 병실 안, 누군가의 훌쩍임이 들렸다.



헤어지는 순간은 너무 짧아서 허무했다. 토니는 내가 진짜 나로 드러나는 순간이 두려웠다. 늘 자신을 둘러싸 가면을 만들었고 그건 토니 스타크가 가진 진정한 무기였다. 그러나 스팁은 아무 저항없이 토니를 열게 했다. 헤어지던 순간은 토니에게 그로 인한 두려움이 극에 달했던 순간이다. 본질로써 사랑받지 못한 소년은 가면을 쓰기 시작하자 대중에게 선망의 대상이 됐다. 지극히 욕망으로 점철된 그의 행보를 비난하는 이도 많았으나 그는 명실상부한 핫가이였다. 때문에 토니는 외로울지라도 아름답고 화려한 그때로 돌아가고자 했다. 외로움따위 밤새 흥청망청하다보면 잊어버리기도 쉬웠다.

-요부가 따로 없더군. 남자를 기쁘게 할 줄 아는 여자야. 그런 여자를 누가 마다하겠어?

토니는 처음처럼 당당했다. 스팁 앞에서 보란듯이 AV를 틀던 남자다. 이제와 그러지 못할 이유따위 없었다. 그래서 스팁은 생각보다 덤덤했다.

-긴 말 않을게. 헤어지자.

자질구레하게 늘어놔봐야 결국 할 말은 이것이다. 토니는 이런 데 시간 끌지 않았다. 냉정해보일 수 있지만 괜한 동정심에 여지를 주는 게 더 나쁘다. 토니는 그리 생각했다. 그때까지도 스팁은 조용했고 토니는 누가 제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이상했다. 헤어짐을 요구하는 쪽이 더 초조해 보였다.

-계속 그러고 있을 거야? 뭐라도 말해야....
-내일 짐정리하러 오겠네. 두고 가는 물건은 번거롭겠지만 처분해주겠나?

스팁이 토니의 말을 잘랐다. 분명 흔치 않은 일이다. 그리고 토니의 말문이 막히는 것도 그랬다. 토니는 간신히 침을 삼켰다. 목이 꽉 메었다. 고개를 끄덕인 게 그가 할 수 있던 전부다. 스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울고불고 매달리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사귄 정을 봐서라도 슬퍼하거나 화라도 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 순간 토니는 화가 났다. 빌어먹을 캡시클이 저를 가지고 놀았나 싶은 거다. 하지만 스팁은 이미 나가 버렸다. 생각해보면 사귀게 된 것도 반은 토니가 밀어붙여서다. 연애 동안에도 스팁은 유난히 자기 주장이 없었다. 좋게 보면 맞춰주는 거지만 헤어지잔 말에 미련없이 돌아서는 걸 보니 토니는 오만가지 의심이 다 들었다.
스팁은 몇달 전, 토니의 성화에 부르클린의 아파트도 처분했다. 순전히 같이 살고 싶다는 토니의 고집 때문이었다. 토니는 이밤에 스팁이 갈 데가 어디있나 싶었다. 고지식한 노친네의 인간관계는 그도 다 꿰고 있다. 배너는 의료봉사로 오지에 있고 이계인인 토르는 말할 필요도 없다. 나타샤나 바튼, 콜슨은 현재 임무 때문에 같은 도시에 있지도 않았다.

-자비스, 스팁이 어디로 가고 있어?
-쉴드로 향하고 있습니다.

방금 헤어진 주제에 스팁의 행선지를 추적한 토니는 내심 안심했다. 무의식에 숨을 깊게 마시자 스팁의 향기가 들어찼다. 스팁이 간 지도 한참이건만 아직도 주변에 있는 듯 향이 짙었다. 잠시 의아했던 토니는 안정되는 기분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자, 그럼 나가볼까?
-어디 가십니까?
-어디는 어디야. 파티하러지.

여기서 토니는 눈치챘어야 한다. 자비스가 먼저 물음을 던졌다는걸. 하지만 점점 진해지기 시작하는 스팁의 향에 기분이 좋아진 토니는 신나서 입을 열었다.

-솔로된 기념으로 페로몬을 뿌리러 가봐야지 않겠어?
-그렇게 좋으십니까?
-어허! 대디 하는 일에 말이 많다, 자비스!
당신은 내 대디가 아닌데요?

자비스가 갑자기 여자 목소리로 바뀌었다. 그제야 토니는 뭔가 잘못됐음을 느낀다. 갑자기 두드려맞은 듯한 몸의 통증과 함께 시야가 어두웠다. 토니가 신음하며 눈을 떴다. 창을 타고 넘어오는 햇살에 눈이 부시다. 흐릇한 시야에 붉은머리가 아른거렸다.

어... 나타샤? 여기는.... 스팁은?
스팁! 깼는데요?
그냥 더 자라고 하게.

상황파악도 안 된 상태에 통증이 온몸을 쥐고 흔드니 토니는 비몽사몽이었다. 그런 토니를 위에서 내려다보던 나타샤가 고개 돌려 말했다. 그리고 이어 들리는 목소리는 한 달 반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차가웠다. 토니는 저를 내려다보며 씩 웃는 나타샤에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냇, 내가 너한테 뭐 크게 잘못했어?
아니요. 난 당신이 무사히 깨어나서 정말 기뻐요.

악마같은 여자. 토니는 속으로 생각했다. 깨어나는 와중에 꿈과 현실을 구분 못하고 중얼거리던 걸 끄집어낸 그녀다. 덕분에 실실거리며 솔로, 파티 블라블라 하는 걸 스팁이 다 들었고 감격적인 재회는 물건너갔다. 스팁은 얼굴도 안 보여주고 병실을 나섰다. 토니는 반갑지도 않은 나타샤만 삼십분 째 보고 있었다.

바튼 지켜준 거 정말 고마워요. 인사하고 싶었어요. 바튼도 여기 자주 들렀지만 임무 때문에 지금은 다른 곳에 있어요. 당신 소식 전하면 정말 기뻐할 거예요.
웃지 마, 이 여자야.
어머, 토니. 그런 말하면 나 상처받아요.

말과 달리 표정 하나 안 변하는 그녀에 토니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사이 그녀는 답지않게 수다스러웠다.

의식불명 상태에서의 꿈은 무의식의 반영이라던데 토니 솔로일 때가 그립나봐요? 이젠 애까지 있는데 그러면 안 돼죠. 스팁이 당신 간호한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제발 입 좀 다물어. 시끄럽다고.

토니가 단어 하나하나에 악센트를 줬다. 나타샤의 웃는 소리가 들렸다. 토니는 속에서부터 울컥 감정이 올라왔지만 참았다. 그는 아직 몸을 완전히 돌려받지 못했다. 길었던 혼수상태만큼 몸의 주도권을 다시 쥐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고마워요.
뭐야, 너! 쉴드에서 나 죽이라고 임무 받았어?!
정말 고맙다고요, 토니.
닥쳐.
스팁도 다 알아요. 당신이 어떤 마음으로 스팁을 구하러 갔는지. 그저 스팁은 우는 걸 보이기 싫었을 뿐이라고요. 당신도 알잖아요?
몰라.

토니는 어린애처럼 굴었다. 그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타샤가 고맙다고 하는 말도 듣기 싫었다. 그러니까 이런 분위기가 죽을만큼 어색하고 진심으로 싫었다. 그에게 예외는 스팁뿐이다. 그러나 토니는 바튼과 스팁을 위해 죽을 뻔했다. 그런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바튼도 얼마나 병실을 찾으며 토니를 걱정했던가. 나타샤는 진심으로 토니가 고마웠다.



20 완


으아아앙!

토니 앞에서 쭈뼛거리던 피터가 갑자기 눈물을 터뜨렸다. 호텔 스위트룸처럼 돼있는 VIP병동은 침대도 더블 퀸사이즈다. 쓸데없이 넓은 침대를 기어온 피터의 얼굴이 눈물콧물로 엉망이다. 아이는 토니의 다리에 매달려 서럽게 울었다. 스팁을 봤을 때도 그저 웃으며 기뻐하던 아이다. 전까지만 해도 못 알아본 듯 쭈뼛거려 토니를 서운하게 하더니 이제 깨달은 모양이다. 토니도 어느새 눈가가 빨개졌다.



정말 빠르긴 빠르군.
그러게요. 저도 놀랐어요. 듣기만 했지 우성알파의 성장은 처음 봐서요.
콜슨, 고생했어. 뭐, 내 아들이라 고생이랄 것도 없었겠지만. 애가 워낙 똑똑해서 돌보기 편했지?

토니가 잠든 피터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침대 헤드에 기대 앉은 토니는 아직 환자다. 그래서 콜슨은 참았다. 피터 때문에 밤을 지새우던 날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역시 그의 노고를 알아주는 건 캡틴뿐이다.

보기는 이래도 아직 걷지 못하시니 신경 쓸 게 많아요.
알파의 성장은 원래 제멋대로니까. 이대로 한동안 멈춰있다가 또 순식간에 자랄 거야.

콜슨의 말에 토니는 겪어본 일이라 익숙하게 말했다. 스팁은 현재 자리를 비운 상태다. 콜슨이 병문안이라고 가져온 꽃을 꽂을 병을 찾으러 갔다. 꽃다발을 본 토니는 촌스럽다며 토를 달았었고 그때부터 콜슨의 정신수양이 시작됐다. 콜슨에게 토니는 피터보다 더 스트레스다.

아, 참. 내가 줄 게 있었는데 몸이 이래서. 거기 서랍장 보이지? 그래 거기 창문 아래. 두번째, 아니 위에서 두번째 말이야! 이 답답이 같으니!

타박에 아바타가 된 콜슨은 서랍을 열며 한숨 쉬었다. 토니는 환자라고 몇번이고 속을 다스렸다. 그렇게 고난의 서랍 열기가 끝났을 때 콜슨은 내용물에 의아했다. 왠 약상자가 나왔다.

이게 뭔가요?
얘기 들었어. 시판되는 약 중에 그게 제일 좋다더라.
.....그러니까 이게 뭔데요?

콜슨은 왠지 불안해졌다. 토니는 그저 씩 웃었다. 그가 깨어나고 많은 사람이 병문안을 왔다. 물론 럼로우도, 그외 쉴드 요원들도 왔었다. 그리고 토니는 콜슨에 관한 비보를 듣게 된다.

아직 결혼도 못했는데 그러면 안 되지.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겁니다.
에이, 그거면 못한 게 맞지. 그래도 그거 효과 좋다니까 자신감을 가져. 그런 거 안 따지는 사람도 많다더라.
토니, 무슨 말씀인지 전혀 모르겠는데오.
끝까지 시치미 떼기는. 알았어, 알았다고. 아닌 거로 해둘테니 약은 꼬박꼬박 먹으라고.
정말 무슨 말씀인지....

콜슨은 상자 표면의 약의 효능 문구를 봤다. 그랬다. 이건 발기부전 치료제다. 소문은 콜슨이 자리를 비운 사이 발기부전에 조루가 더해졌다. 성격상 담백했던 연애사가 쉴드 요원들에게는 그렇게 비춰졌다. 모든 건 콜슨이 육아에 전념한 사이 벌어졌다.
약상자를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토니는 놀리고 싶어 안달난 자신을 달래기 정신없다. 이런 거로 놀리기에 콜슨의 멘탈은 너무 소녀스럽다. 그래서 참자, 참자 하지만 역시 근질거리는 입이 문제다.

근데 말이야. 정말 아무 반응 없는 거야? 뭐하면 내가 캡틴 코스튬 야동이라도 빌려줄까? 진짜 캡틴 가슴은 보여줄 수 없지만 대신 가짜라도 그 배우 청순 글래머라고. 가슴이...

토니가 손을 펴며 가슴 크기를 재현했을 때 콜슨은 더 참을 수 없었다.

제가 편히 보내드리겠습니다.

철컥, 안전장치 풀리는 소리가 났다. 토니는 다시금 멀리 죽음이 인사하는 걸 봤다.



마침 스팁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토니는 이번에야말로 죽음과 왈츠라도 출 뻔했다. 아무리 토니가 시작했기로서니 애 앞에서 총을 꺼낸 콜슨은 스팁에게 잔소리를 듣고 시무룩해졌다. 그도 자신에게 당황한 듯했다. 콜슨이 피터를 데리고 돌아간 뒤, 스팁은 토니를 쳐다봤다. 깨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콜슨을 놀려댄 걸 보니 어지간하다는 생각이 든다. 스팁이 약상자를 토니 앞에 내밀었다.

이건 언제 사온 건가?
힐한테 부탁했지.

힐은 어제 다녀갔다. 토니가 연락해 부탁한 거다. 어쩐지 병문안 온 지 이틀만에 왜 다시왔나 싶었었다. 스팁이 한숨 쉬었다.

이번엔 자네가 심했네.
난 정말인 줄 알았다고. 걱정돼서 준비한 거야.
.....
왜, 왜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니 이건 자네가 먹어야 할지도 모르겠어.
무슨 그런 소릴! 내가 왜?
토니 자네도 중년이잖나.
나 아직 쌩쌩한 거 모르나? 스팁, 당신 아주 큰일날 소리를 하는데!
알았네, 알았어.
대답에 진심이 없어! 내걸 사용해본 당신이 그런 말을 하다니! 후기가 형편없잖아! 내 특급 물건에 실례라고!
알았다니까.

토니는 어느때보다 열성적이었다. 스팁은 한번 놀려주려다 토니가 너무 열을 내자 아차 싶었다. 그러나 불을 끄기에는 이미 늦었다. 그는 건드려선 안 될 역린을 거드린 거다.



수퍼솔저도 사람이다. 그리고 혈청도 한계는 있다. 더욱이 혈청의 능력은 사람을 지키기 위한 것 아닌가? 즉, 혈청은 이런 일에 특화되지 않았다.

아아, 아! 토니, 흡! 토니 너무 깊...!

말이 이어지지 못한다. 정신없이 흔들리는 몸에 혀를 깨문 것도 몇번이다. 토니는 거친 숨만 토해냈다. 토니는 두툼한 쿠션이 놓인 침대헤드에 기대앉아 있었다. 스팁은 그런 토니 위에 자리했다. 토니가 그러쥔 얇은 허리 아래, 탐스럽게 솟은 엉덩이 사이로 굵은 기둥이 움직였다. 빠르게 치고드는 움직임에 병실은 색정적인 마찰음이 가득했다. 다른 상처에 비해 어깨가 다 낫지 않았건만 토니는 전에 없이 전투적이었다. 처음에 정말 일을 치루려는 토니에 스팁은 기겁했었다.

-자네 미쳤나? 여기가 어딘지 알고! 또 지금 시간이,
-내 생애 이렇게 형편없는 후기는 처음이야. 그래서 증명해보이겠다는 거잖아. 어서 오지 못해?

여차하면 나갈 태세의 스팁이다. 말과 함께 토니가 옆자리를 툭툭 쳤으나 그렇다고 움찔할 스팁이 아니다. 하지만 또 그렇다고 물러날 토니는 더 아니다.

-더 못 들어주겠군. 머리나 식히고 있게.
-어딜 가려고? 윽!
-토니?
-하아, 아, 제길.

스팁이 돌아서자 토니가 기댄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곧 들려온 신음에 돌아보니 배를 움켜쥔 토니의 상체가 기울어져 있다. 미간을 좁히며 미심쩍게 보던 것도 잠시, 혹시 거의 완치된 복부가 덧났을까 싶던 스팁이 다가왔다. 토니가 말한 그자리에 엉덩이가 붙은 순간이다.

-잡았다.

스팁의 어깨를 짚으며 고개 든 토니가 씩 웃기 무섭게 페로몬이 개방됐다. 그리고 지금, 정신차려보니 토니의 위에서 정신없이 흔들리는 중이다. 서로 옷 하나 제대로 벗은 것도 없이 온갖 체액으로 엉망이었다. 스팁은 흐릿한 기억 사이 제가 몇번이나 토니의 손을 꽂은 채 뒤만으로 가버렸던 게 떠올랐다. 그러는 동안 강제적으로 유도 발정기가 터졌다. 본딩과 출산, 육아 등으로 호르몬이 완전히 안정기에 들어선 뒤 굳이 약을 먹지 않아도 히트싸이클이 터지지 않았었다. 안정적인 오메가들에게 으레 찾아오는 순서였다. 그런데 토니가 일부러 제 페로몬으로 싸이클을 유도한 거다. 억지로 끌어올려지느라 이미 체력을 소진하기 시작하고 이후 연달아 오른 몇번의 절정에 스티브도 지치는 걸 느꼈다. 더욱이 순수우성알파인 토니다. 혈청으로 우성이 된 스팁은 그가 호르몬으로 공격하면 본딩까지 된 이상에야 당해낼 재간이 없다. 몸이 제 알파를 품고싶어 아우성인데 스팁에게는 2대1의 싸움이나 마찬가지다. 제 몸도 이때만큼은 제 편을 들지 않으니 그만했으면 싶은 머리와 달리 아래는 또 한차례 액을 쏟아냈다. 그 진저리처지는 느낌에 스팁이 토니의 어깨 위 옷깃을 그러쥐며 덜덜 떨었다. 소리조차 나오지 않는 감각은 고통에 가까웠다. 여전히 안에 머문 채 토니가 느긋하게 올려다본다. 스팁은 쉬이 가시지 않는 여운에 아직 숨도 고르지 못했다.

어때? 아직도 저런 게 필요해?
......
말도 못할 정도로 이게 좋은 거야?
읏! 움직이지....
누가 맞는 거야, 허니? 내 걸 물고 있는 허니는 자꾸 조르고 있잖아.
제발, 토니. 제발, 읏! 제발 잠깐만.

바닥에는 둘의 정사에 밀려 약상자가 떨어져 있었다. 느긋이 움직이던 토니는 스팁의 애원에 허리를 멈췄다. 그러고도 옷깃을 잡은 손의 떨림이 멈춘 건 시간이 좀더 지난 뒤였다. 스팁은 페로몬을 거두지 않는 토니가 야속할 지경이다. 페로몬에 취해 헐떡거리는 오메가를 보면 있던 성욕도 떨어진다던 건 토니였다. 옛날, 스팁과 사귀기 전에 그는 그런 말을 한 적 있다. 그런데 스팁과의 정사에서 토니는 의도적으로 페로몬을 흘렸다. 덕분에 싫어도 몸이 떨리고 아래가 젖었다. 스팁은 오늘따라 유난히 배덕감과 수치심에 젖어 감정이 요동쳤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원래 이렇게까지 조절력이 없지 않은데 오늘은 힘들었다. 아무래도 시간과 장소 때문인 듯했다. 바른생활맨인 스팁에게 이런 시간, 이런 장소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아직도 더 기다려야 해? 나 힘들어지려 하는데.
아... 미안하네. 내가 생각에 빠져셔, 앗! 뭐, 뭐하는, 토니 왜, 으윽!
한번만 스팁, 흣! 젠장!

시야가 돌더니 천장이 들어온다. 연결된 채 눕혀진 스팁은 갑자기 저돌적으로 밀고 들어오는 토니에 정신이 없었다. 아무리 아래가 흥건히 젖어도 반쯤 노팅되기까지 해서 이성을 잃고 박아대는데 아프지 않을 수 없었다. 노팅은 임신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피터를 낳고 한번도 하지 않던 것이다. 대개 행위 도중 흥분하면 자연스레 일어나는 현상이나 알파는 의지로 이를 조절할 수 있다. 더욱이 우성에 가까울수록 굳이 노팅 없이도 임신률이 높다. 그래서 토니는 스팁과의 행위에서 꽤 조심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스팁에 이성을 잃어버렸다. 예전, AV 히어로물로 미안하다 말하던 그밤의 스팁 때문인지 모른다. 토니는 그밤, 그때의 스팁에게 꽂혔었다.

한번 더 미안하다고 말해봐, 응? 자기 원하는 거 뭐든 들어줄게. 그러니까 한번, 흣! 다시 말해봐.
아파, 토니. 토니, 제발 천천히, 살살 윽!

그날의 청순했던 모습이 그려졌다. 그럴수록 스팁의 내부를 휘젓는 그것도 점점 더 본래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갈수록 커지는 크기는 물론 우둘투둘하게 솟아오르는 돌기에 자극당한 내부가 한계까지 들어찼다. 완전하게 노팅된 그것은 돌기를 통해 페로몬으로 내벽에 직접적 자극을 줬다. 그것은 오메가로 하여금 발정기 때의 기민한 감각에 ㅊㅇ제를 들이부은 듯한 효과를 더한다. 한참을 침대가 흔들리도록 박아대던 토니가 드디어 끝어 다다른 듯 한손으로 스팁의 어깨를 내리찍듯 눌렀다. 푹신한 침대 깊이 스팁이 묻혔다. 그리고 스팁의 허리가 들썩일만큼 토니가 깊이 찔러넣었다. 스팁의 온몸이 경직됐다. 토니를 지나 사선으로 길게 들린 매끈한 다리가 발끝까지 펴졌다. 드디어 맞이한 파정의 순간에 토니도 전신을 휘감는 아찔한 감각을 느꼈다. 발끝까지 짜릿해지는 충격은 짧지 않은 파정의 시간동안 이어졌다. 더 들어갈 수도 없건만 절로 들썩여지는 허리에 스팁의 몸이 흔들렸다. 토니는 습관처럼 스팁의 목덜미에 코를 밖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한지 이내 이를 세워 잘근잘근 씹기까지 했다. 흥분으로 홍채가 짙어진 토니는 아직 짐승에 가까웠다. 스팁도 처음 느껴본 폭풍 같던 감각에 촛점이 돌아오지 않았다. 아직도 가시지 않은 여운에 토니가 뭉근히 허리를 돌리자 반쯤 가라앉기 시작한 돌기가 사ㅈ액 사이로 비벼졌다. 질척한 소리가 귀를 울리고 토니는 스팁의 귓불을 씹어댔다. 곤두선 감각은 토니의 모든 것을 ㅋ감으로 받아들여 자꾸 스팁을 떨게 만들었다. 그럴수록 자극받은 토니가 다시 왕복운동을 시작하려 했다. 침대는 이미 스팁이 쏟아낸 액에 매트까지 흥건하게 젖었다. 간신히 정신이 돌아온 스팁은 저를 옭아매듯 끌어안고 슬슬 허리를 움직이던 토니를 불렀다.

토니, 읏. 토니? 정신 좀 차려보게. 토니!
....스팁? 오, 이런. 괜찮아? 응? 스팁, 내가... 젠장, 제길!
괜찮아, 난 괜찮으니 진정해. 그보다 자네가 문제야.
내가?
이거 자네 피 같지 않나?

이성을 찾은 토니가 서둘러 스팁의 몸에 박힌 물건을 빼냈다. 갑작스런 움직임에 스팁이 앓는 소리를 냈다. 길을 따라아래에서 울컥 쏟아진다. 하지만 스팁을 걱정하며 호들갑떨던 토니는 지적대로 제 어깨가 피에 젖은 건 보지 못했다. 스팁은 몸을 일으키면서도 쓰라린 아래에 움찔했다. 그러자 토니가 또 호들갑이엇다. 그런 토니를 진정시키며 어깨를 들춰보니 아니나 다를까. 아직 완치되지 못한 어깨가 터졌다. 스팁이 고개 숙이며 손으로 얼굴을 덮자 토니가 또 안절부절이다.

스팁, 혹시 피난 거 아냐? 다리 좀 벌려봐. 확인해야겠어.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네. 토니, 자넨 아프지도 않나?

당장은 스팁에 정신이 팔린지라 저 아픈 건 안중에도 없는 토니다. 움직일수록 터진 상처에서 피가 흘렀건만 토니는 스팁의 발목을 잡고 벌렸다. 앗 하는 사이 다시 다리 사이에 자리한 토니가 거침없이 손가락을 집어넣는다. 정사의 여운에 아래가 움찔하며 손가락을 조였다. 스팁은 다시 숨이 가빠졌다.

그, 그만하게. 다친 건 자네야!
가만있어봐. 제길, 이래서 노팅 안 하려고 그렇게 노력한 건데. 내벽에 상처났다고.
그만... 흐으... 토니, 자네 상처가....

손끝이 잔뜩 예민한 곳을 건드리자 스팁은 ㅅ정하고 말았다. 토니의 옷 위로 묽은 액체가 묻었다. 내벽의 상처도 스팁은 금방 나을 것이다. 그럼에도 토니는 제 어깨가 어떻든 스팁의 상처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구겨진 얼굴이 펴질 줄 몰랐다. 그사이 ㅊㅇ제와도 같은 페로몬이 남은 내벽은 토니의 손길에 몇번이고 스팁을 떨게 만들었다. 어느새 쓰러진 스팁은 신음을 참기 위해 입을 막는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둘은 차임벨이 울리는 것도 듣지 못했다.



길 좀 묻지. 토니 스타크를 보러 왔네만.

간호사는 190이 넘는 거구의 남자를 보고 흠칫했다. 금발 남자는 막 티비에서 나온 듯한 요상한 복장이었다. 한손에는 괴상한 망치까지 들고 있어 셰익스피어 연극 대사 같은 말투만 아니라면 범죄자로 오해했을 거다. 그녀가 겁에 질려 쳐다보자 토르가 묠니르를 데스크에서 치우며 사과한다. 그제야 잘생긴 남자의 정중함에 안심한 간호사가 차트를 들고 일어섰다. 이곳은 병원 최상층으로 가운데에는 VIP 병실만 따로 전담하는 데스크와 간호사들이 있었다.

저도 마침 차트를 바꾸러 가야 해서요. 따라오세요, 안내해드릴게요.
고맙네.

토르가 웃어보이자 간호사는 얼굴을 붉혔다. 종종거리며 압장선 그녀가 문 앞에서 멈췄다. 문 앞에는 차임벨이 있었다. 간호사들은 미리 전화해 방문을 알리거나 들어가기 전에 차임벨을 눌러야 했다.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위해서다. 그러나 안에서 아무 반응이 없자 그녀가 마스터카드를 꺼냈다. 문옆의 리더기에 긁으니 문이 열렸다. 그녀는 먼저 들어가라며 문을 열고 비켜섰다. 햇빛 좋은 병실 안으로 아스가르드의 희생양이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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