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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7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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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나이가 들었는지 요즘 부쩍 아이가 예뻐보이더군요.
혹시 결혼을 서두르는 이유라고 추측해도 될까요?
글쎄요.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화면 속 토니는 난처하게 웃었다. 이후 기자가 더 질문했지만 스팁은 티비 소리를 줄였다. 뉴욕시가 내려다보이는 거실의 전방에는 푸른 하늘이 보였다. 간간히 흐르는 흰구름은 오늘의 날씨를 알려준다. 그 화창함 사이로 거실은 아까부터 적막이다. 다급히 저를 찾음에 무슨일인가 싶던 토니는 소파 등받이에 한팔을 건 채 느긋이 있었다. 길다란 소파와 테이블, 그리고 벽에 달린 티비 사이에 서 있던 스팁이 머리를 문지르며 말했다.

토니, 나한테 설명할 거 없나?
무슨 설명?

태연한 토니 품으로 폰이 던져진다. 스팁의 것이다. 폰에는 콜슨의 문자들이 뜨워졌다. 이미 스팁의 폰을 해킹한 토니는 나타샤와의 통화도 모두 알고 있지만 눈썹을 들썩이며 새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어째서 이런 오해를 한 거지?
자네의 태도가 문제겠지.
오, 스팁. 난 원래 아이들을 싫어하지 않았어. 저기도 예전부터 내가 후원하던 곳인데?

토니는 정말 모르겠단 얼굴이다. 티비는 이제 후원받는 고아원 원장과의 인터뷰로 바뀌었다. 원장은 토니에 대해 입이 마르게 칭찬했다. 친절하게도 자막이 겸비된 화면은 소리 없이도 토니가 얼마나 인간적인 남자인지 알려줬다. 토니를 따라 쳐다보던 스팁이 다시금 한손에 얼굴을 묻는다. 다른 손은 허리를 짚고 있었다. 오늘 하루 집에 있던 스팁은 편한 복장이다. 다만 그 편한 복장이란 게 굴곡진 라인을 따라 흐르는 통에 허리를 짚은 손이 시선을 잡았다. 토니는 손 위치가 적절하다 생각하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폐부 가득 들어차는 향기는 제것과 섞여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 당연하게도 히트싸이클이지 않는 한 오메가의 페로몬을 알파의 것에 잠식된다. 때문에 집안에도 토니의 향이 더 진하게 베어있었다. 물론 스팁에게도. 더욱이 며칠전의 교합은 건장한 체격의 스팁을 알파로 오해할만큼 진한 체취를 남겼다. 토니는 이게 좋은 건지 싫은 건지 곤란해졌다.

토니, 자네가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이런 오해는 곤란하네. 자네가 바쁜 사람이란 건 알지만....

스팁이 주절주절 말하는 동안 토니는 그에게 다가올 것을 종용했다. 해명 기사나 인터뷰를 요청하면서도 토니에게 나서길 부탁하는 게 미안한 스팁이다. 토니가 아무리 얼굴 팔린 유명인사라도 싫을 때가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하자니 모양새가 우스워질 것 같다. 그런 복잡한 심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토니는 스팁이 곁에 앉기 무섭게 허리를 안으며 목덜미에 코를 박았다. 이제는 이렇게 해야 스팁의 냄새가 온전히 느껴졌다. 이것은 즉, 임자 있는 오메가란 소리다. 깊게 숨을 마시자 움찔한 스팁은 여전히 설명을 덧붙였다. 토니가 얼마나 집요하게 냄새에 집착하던지 이쯤은 익숙해진 스팁이다. 그래도 교합이 있던 그날로부터 시간이 제법 지나 이삼일간 향수를 들이부은 듯 나던 토니의 향기가 많이 옅어져 다행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우성알파의 강함이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자네가 더 잘할테지만 자연스럽게 얘기해줬으면 좋겠어. 사실도 아닌 일로 오해받는 건 좀.....
스팁, 향 좀 개방해봐.
내 말 듣고 있는 건가?
듣고 있어. 그러니까 개방 좀 해봐.

손이 허리를 지분거린다 싶더니 토니가 목덜미를 혀로 핥아올린다. 목덜미의 분비샘을 자극하는 것이다. 형질개방이 자유로운 알파에 비해 오메가는 의지로 조절할 수 없다. 그리 된다면 히트싸이클도 없지 않은가. 히트싸이클은 종족번식을 위한 최적의 장치였고, 오랜 세월 진화하는 과정에 본능은 생존 논리를 따랐다. 때문에 오메가가 형질개방을 위해서는 알파 페로몬의 유도가 필요하다. 그것은 알파가 오메가에게 유사발정기를 일으키는 것과도 같은 맥락인데 이 역시 우성일수록 능력치가 높다고 볼 수 있다.

토니, 난 지금 얘기를!
알았어. 뭐라고 했든 원하는 대로 해줄게.
자네 내 얘기 안 듣고, 읏!

오메가의 형질개방은 알파의 유도로 이뤄져 강제성이 짙다. 스팁이 신음을 삼키며 잘게 떨었다. 그럴수록 토니는 연신 목덜미를 핥아올리며 타액으로 분비샘을 자극했다. 페로몬은 분비샘을 통한 향기도 있지만 체액도 포함된다. 그중 알파에게서 가장 짙은 페로몬은 당연하게도 ㅅㅈ시 분비되는 ㅈㅇ이다.

뭐든 들어준다고 했잖아? 당신이 말한 거 무엇이든.

여유롭게 목덜미를 핥아올리며 토니가 그릉거렸다. 스팁의 향이 짙어지며 체온이 상승했다. 스팁은 견디지 못하고 토니에게 기댔다. 턱밑에 닿는 머리칼에서 땀과 섞여 짙어진 오메가향이 느껴진다. 정수리에 키스한 토니가 느긋하게 셔츠 사이로 손을 넣어 맨살을 지분거렸다. 미끈하게 빠진 복부가 손바닥 가득 닿는다. 스팁은 힘없이 숨을 몰아쉬었다.
분비샘에서 향이 개방되면 오메가의 몸은 체온을 올려 땀을 분비했는데 이는 향기를 더 짙게, 멀리 퍼뜨리기 위함이다. 이 또한 오메가식 진화랄 수 있는데 그에 반해 알파는 제 의지로 완벽히 페로몬을 조절했다. 실로 불합리한 태생적 한계였다.

제길, 언제 맡아도 부족하잖아.
토니, 하아. 그만.
많이 힘든가?

향으로 인해 흥분한 토니가 거칠어지자 스팁이 말했다. 무방비상태의 스팁을 보자 토니가 감정을 갈무리했다. 날씬하게 빠진 배를 쓸던 손이 올라가자 스팁이 옷 위로 막았다. 힘없는 만류에 기꺼이 멈춰준 토니가 배부른 사자처럼 웃었다. 이 얼마나 만족스럽던가. 지금 토니라면 스팁이 제 목을 내달래도 줄 것 같았다. 실로 역사는 오메가로 인한 폐해를 곳곳에 증명했는데 토니는 그 역사를 몸으로 체험하는 기분이었다.

이쯤하면 되지 않았나?
그렇게 힘들어?
자네는 절대 모를거야.

토니가 페로몬을 거두자 스팁도 안정돼갔다. 잠깐사이 흘린 땀에 옷이 젖었다. 스팁은 형질개방의 여파로 몸이 나른해 움직이지 못했다. 거실은 스팁의 향으로 진동했다. 반나절도 못가 잠식당할 테지만 당장이 만족스러운 토니의 얼굴이 온화했다. 그는 스팁의 정수리에 연달아 짧은 키스를 퍼부으며 소파등받이에 기댔다. 눈을 감고 목을 젖흐 토니는 스팁의 향에 둘러싸여서 마치 엄마 배속에 있는 듯한 안온함을 느꼈다. 기댄 몸을 일으킨 스팁은 토니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잠시 뒤, 페퍼가 도망간 사장을 찾으러 왔을 때 토니는 드물게도 매우 깊게 잠든 상태다. 그녀는 스팁이 검지를 입술에 대자 고개를 끄덕이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밖으로 나온 그녀는 보면 안 될 것을 본마냥 얼굴이 화끈거렸다.



사고를 하게 되면서부터 토니는 외로웠다. 두 발은 온전히 땅을 딛고 섰지만 마음은 둘 곳 없어 부유했다. 토니의 인생은 방랑자의 그것과도 같았다.
처음 스팁을 발견했을 때는 분노가 컸다. 일찌감치 비뚤어져버린 토니는 모든 것에 냉소적이었다. 그런데 사실은 어디에라도 분노를 풀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70년만에 깨어나 당황한 스팁을 모른척했다. 어쩌다 마주쳐도 싸우고 비난하기 바빴다.
사귀었던 것도 나쁜 의도가 컸다. 토니는 비뚤어진 아이처럼 스팁이 괴로워하는 걸 보고 싶었다. 덕분에 스팁은 연애기간 동안 많이 힘들어했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토니는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희열도 옅어지고 스팁이 괴로워하는 걸 봐도 기쁘지 않았다. 그래서 답지않게 진심이 된 기억도 있었다. 헤어질 무렵의 권태기쯤 해서는 다시 처음의 날을 세우던 때로 돌아갔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별을 고할 때조차 몰랐었다. 사실 자신이 스팁과 사귀는 동안 평생에 처음으로 가장 평화로웠단걸. 평생에 걸친 방황은 토니를 무디게 했고 때문에 스팁과의 재회에서야 비로소 깨닫게 했다. 처음부터 없던 것과 맛본 뒤 잃어버린 것의 갭은 크다. 스팁에게 인사한 그 복도에서 토니는 태연했던 것과 달리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었다. 그래서 두번째인 지금 이토록 집착하며 매달리는 거였다.

잠, 으윽!

스팁이 급히 입을 다물며 소리를 삼킨다. 아직 완전히 준비되지 않은 그곳에 알파의 ㅅㄱ가 침입했다. 노팅되지 않았음에도 밀고 들어오는 압력에 속이 거북했다. 숙면 뒤 깨어났던 토니는 스팁이 말도 없이 한 외출에 불안해했다. 쉴드의 호출을 받은 스팁이 자비스를 말을 남겼지만 오히려 불안은 짜증으로 바뀌었다. 토니가 세상물정 모르는 루키였다면 바로 스팁에게 연락해 닥달했을 터다. 그러나 그는 숙성된 와인과도 같았다.
스팁이 쉴드를 나오자 정문에는 토니가 차와 함께 대기중이었다. 스팁은 놀랐다가도 곧 토니에게 다가갔다. 재규어처럼 잘빠진 차체에 몸을 기대 있던 토니는 낮에 잠들었던 차림 그대로였다. 목이 헐거워진 넥타이, 걷어올린 와이셔츠에 조금 구김이 간 수트는 그를 능력있는 ceo로 보이게 한다. 스팁은 타고 온 바이크를 두고 토니의 차에 올랐다. 마중나왔다는 소리에 스팁은 아직 낯설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도착한 타워 안, 지하주차장에서 토니는 자연스레 키스를 시도했었다.

힘을 빼, 허니.
아직 안, 아흡!

토니가 목에 매달린 스팁의 입술을 물었다. 한껏 뒤로 밀어 벌린 의자에 토니와 스팁이 겹쳐 있었다. 아무도 없는 지하주차장에는 희미한 백열등뿐이다. 짙게 썬팅된 차안에서 스팁은 여전히 소극적이다. 40년대식 인간인 스팁은 토니가 카ㅅㅅ를 하려는 것에 기함했엇다. 결국 고집에 못이겨 창부처럼 알파 위에 올라탄 꼴이지만 저항은 여전했다. 셔츠도 바지도 제대로 벗기지 않아 옷끼리 사부작대는 소리가 유난했다. 스팁은 무릎으로 버티며 주저앉지 않으려 했다. 토니가 억지로 밀어부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는 위로 말아올려진 셔츠 아래 드러난 ㅇㄷ를 입에 물었다. ㅇㄷ를 혀로 핥으며 빨아올리자 스팁이 헉 소리를 내며 힘이 빠진다. 때를 맞춰 토니의 것이 좀더 깊숙이 ㅅㅇ됐다. 긴장 때문인지 충분치 않은 ㅇㅇ에 스팁의 얼굴에 아픔이 비쳤다. 그럼에도 토니는 허리를 쓰다듬으며 달래듯 제것을 마저 밀어넣었다. 편하게 하자면 페로몬을 이용해 유사 발정기를 유도할 수 있지만 이미 낮의 형질개방으로 스팁에게 부담이 될 수 있었다. 물론 혈청이 있으나 토니는 그렇게까지 스팁을 무리시키기는 싫었다.

이렇게 뻗뻗해서야 처녀같잖아. 긴장을 풀라고.
토니, 여기는, 아아 움직이지!
제길, 너무 뻑뻑해. 스팁, 스티브! 날 봐봐. 옳지, 그래, 나한테 집중하라고. 여기 우리 둘뿐이야.

작은 들썩임에도 스팁이 민감하게 반응하자 토니가 주의를 돌렸다. 간신히 눈을 맞춘 스팁에게 버드키스를 하며 토니는 한 손을 아래로 내렸다. 그의 손끝이 교접부를 배회하자 스팁이 움찔했다. 토니는 스팁의 주의를 잡으려 목덜미를 쥐고 달래듯 짧은 키스를 이었다. 그러고는 손끝에 비져나온 ㅇㅇ을 묻히더니 교접부를 살살 쓰다듣었다. 간지러움과 묘한 느낌에 아래가 움찔거리며 반응했다. 스팁이 다시 떨어지려 하자 이번엔 목덜미를 강하게 잡아채 입에 혀를 밀어넣었다. 동시에 손가락 하나가 기어코 안을 비집고 들어가더니 안을 자극했다. ㅅㄱ와는 별개로 섬세하게 긁어내리는 손길에 입술새로 ㅅㅇ이 흐른다. 동시에 왈칵 물이 쏟아졌다. 그순간 토니가 손을 빼더니 ㅊㅅㅈ을 시작했다. 거칠게 쳐올리는 몸짓에 입술이 떨어지고 스팁이 중심을 일었다. 상체가 뒤로 넘어가며 등이 핸들과 부딪쳤다. 동시에 클랙슨이 크게 울리며 조용한 주차장에 파문을 던졌다. 소리에 놀라 잠시 멈칫하고 자비스의 음성이 들렸다. 소리는 스팁이 핸들과 부딪치며 클랙슨도 눌러 난 것이다.

자동 경비 시스템 가동. 곧 무장 경비가 도착합니다.
제길, 도착까지 몇분 남았지?
약 오분 남았습니다.
토니, 자네 설마, 아아앗!

불안한 예감대로 토니는 예고 없이 움직였다. 거의 스팁을 밀어붙이는 듯해 ㅊㅅㅈ에 스팁은 소리를 죽이지도 못했다. 그사이 자비스는 분마다 경고했고 토니는 이를 꽉 물었다. 그리고 오분 뒤, 한무리의 무장 경비가 도작했을 때는 거친 숨을 가다듬지도 못한 토니가 땀에 흠뻑 젖어 흐트러진 차림으로 굳게 잠긴 차 옆에 있었다. 이상함을 느낀 남자 하나가 차창을 흘끗거렸으나 워낙 짙게 된 썬팅에 보이지 않았다. 토니 스타크가 얼마나 괴짜같은지야 유명한 얘기니 남자도 이 건물주가 어떤 미친짓을 했는지 걱정이 된 거다. 괴짜라도 스타크 타워의 직원대우는 좋았다. 때문에 남자는 토니의 미친짓으로 회사가 없어지길 바라지는 않았다.

내가 확인했는데 아무 이상 없더군.
cctv를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것도 내가 확인했어! 정말 내가 클랙슨을 잘못 울린 것뿐이야.
그것도 cctv를 확인하면......
자비스!
Sir, 방금 전 프로그램 오류로 약 한시간가량 녹화분량이 지워졌습니다.

차체 외부스피커를 통해 울린 목소리에 남자는 더 할 말이 없었다. 토니는 어색하게 웃었다. 영상이라봐야 차가 주차되고 카ㅅㅅ로 실랑이 도중 스팁이 먼저 올라간다며 문을 열고 반쯤 나왔다 끌려들어가는 장면, 문이 닫히고 얼마 뒤 클랙슨이 울리는 장면, 이어 차체가 좀 심하게 덜컹거리다 멈추는 게 전부였다. 사실 토니는 보든 안 보든 상관없지만 문제는 스팁이다. 지금 차안은 스팁이 내뿜는 암흑 오오라로 충만했다. 만일 그 영상을 다른 이가 본다면 스팁의 성격상 혀를 깨물지도 몰랐다. 그래서 토니는 미심쩍은 기색으로 할수없이 차로 돌아가는 남자를 보면서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자비스, 영상 지우도록 해.
Yes, sir.

남자가 차에 오르자 토니가 말했다. 이어 타이어 마찰 소리와 함께 차가 멀어졌다.




6


토니는 좀 억울해졌다. ㅅㅅ내내 같이 좋아해 앙앙 울어댔으면서 토니만 짐승이 됐다. 그러나 카ㅅㅅ 이후 무장경비까지 출동한 일에 스팁은 정말 화를 냈다. 거기다 스팁은 야외ㅅㅅ라는 문화를 처음 접한데다 그것도 경험까지 한 데에 컬쳐쇼크를 느꼈다. 토니로서는 슬슬 스팁이 고대 유물로 보이기 시작했다.
헤어지기 전까지는 토니도 제 속을 몰랐던 터라 스팁과의 ㅈㅅ는 거의 교본적이었다. 40년대 사람이 납득할 지극히 노멀한 시간에 노멀한 장소, 노멀한 포지션만 구사했던 거다. 그러다보니 토니로서는 다소 지루한 감도 있었으나 굳이 스팁을 달래가며 모험하고 싶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막상 해보고 나니 토니는 제대로 구미가 당겼다. 지금도 지난밤을 생각하면 아래가 찌르르한 느낌이었다. 비록 그 여파로 스팁의 방에 접근금지를 당했지만 말이다. 현재 둘은 스팁의 고집으로 각방을 쓰고 있다. 다시 스타크타워로 들어오며 스팁이 내건 유일한 조건이었다. 토니가 한쪽에 띄워진 스팁의 영상을 보며 입맛을 다시자 눈살을 구긴 페퍼가 이젠 모르는 척했다. 말한다고 들을 상대면 애초에 이지경도 안 왔을 거다.

요즘 계속 파티마다 거절하던데 오늘은 꼭 얼굴비춰야 해요. 우리 쪽에서 주최하는 파티니까요.
쉴드 녀석들, 방어 시스템을 재구축한 것 같지 않아? 자꾸 화면이 지직거려. 목소리는 아예 들리지도 않고.
토니, 제 말 들었어요?
아아, 얼굴 비추라고? 덤으로 얼간이들 돈을 싹쓸어줄게.
우린 평화적으로 모금할 거예요.

오늘은 스타크사강 주최하는 자선파티다. 스타크사는 경영자의 박애주의 정신을 실천하듯(토니의 개인적 주장이지만) 자선 활동을 많이 했다. 일찌감치 기업 기부문화를 조성했던가 하면 정기적으로 자선파티를 열어 기부금을 모았다. 대개는 스타크사에 잘보이려는 기업들이 보이기식 돈을 내는 거지만 금액이 쏠쏠했다. 작년에는 기부금으로 오지지역에 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페퍼, 어때? 이러면 각도가 좀 나아?
음... 그보다는 삼번이랑 화면은 안 잡혀도 칠번 카메라를 잡으세요. 그리고 음성인식을 이렇게 바꾸면..... 아, 들린다!
오오, 역시 페퍼야.

소리가 잡히는 카메라는 또 어떻게 알고 키보드를 조작하니 음성지원이 훨씬 좋아졌다. 어느새 토니의 범죄에 동참한 그녀가 헉했지만 토니는 줌인으로 잡히는 스팁의 얼굴과 목소리에 만족스러워했다. 저번 호출과 연관된 듯 다시 쉴드에 간 그는 퓨리 국장과 면담중이었다. 퓨리는 스팁과의 대화 중간중간 제쪽으로 열린 노트북을 힐끔거리더니 불쾌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스팁이 국장실을 나섰을 때, 문이 닫히기 무섭게 삼번 카메라를 응시했다.

토니, 언제부터 내 방에 이렇게 관심이 많으셨나?

닉이 노트북을 잘 보이게 돌린다. 화면에는 보안팀에서 보낸 침입 경보에 대한 메세지와 침입 경로 등에 대한 정보가 떴다. 토니는 놀랍지도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닉도 토니의 반응쯤 짐작한듯 한숨 쉬었다.

자네가 이러는 걸 스팁도 아는지 모르겠군. 토니, 나한테 한번 빚진 거야. 기억해두라고.
깐깐한 양반 같으니.

경고하는 말을 끝으로 쉴드쪽에서 회선을 끊었다. 토니가 툴툴거리며 GPS를 추적했다. 스팁의 바이크가 이동하는 경로를 따라 좌표가 찍혔다. 원래도 스팁의 일상은 추측 가능할만큼 규칙적이었다. 예전엔 참 재미없게도 산다 싶었건만 지금은 그마저 좋았다. 외출하며 스케치북과 연필을 챙겼다더니 공원으로 향한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바이크는 익숙한 공원에서 멈췄다.

자비스, 공원내 cctv 영상 검색해.
Yes, sir.

그로부터 잠시 뒤, 한창 뚱땅거리며 작업하던 토니의 앞으로 영상이 띄워졌다. 공원 cctv가 그렇듯 조잡하기 그지없는 화면에 눈살이 구겨진다. 희미한 흑백화면에 벤치에 자리잡으려는 스팁이 보인다. 그러나 다가온 한 사내로인해 스팁은 앉지 못했다. 말을 거는 듯 두 사람이 얘기를 나눴다. 보호 안경을 쓰고 있던 토니가 벗으며 화면을 주시했다.

자비스, 화면 키워봐.

줌인되자 화면이 형편없이 깨졌다. 결국 원상태로 복귀해야 했던 토니는 이번엔 음성 지원을 요구했다. 영상 하단에 작은 화면이 뜨더니 잡음과 섞여 대화가 들렸다.

여기 자주 오시나 봐요? 몇 번 본 기억 있는데. 여기서 그림 그리지 않았어요?
아, 네.
저도 디자인 전공이라 눈여겨봤었죠. 그림 잘 그리시던데.

대화는 남자가 이끌었다. 스팁은 칭찬이 어색한지 웃을 뿐이다. 영상과 겹치는 음성에 토니의 얼굴에 불쾌함이 가득했다. 상대는 스팁보다도 컸다. 큰 키와 벌어진 어깨, 시원한 골격 등이 누가 봐도 남자가 알파임을 증명한다. 그리 따지자면 스팁도 알파처럼 보이지만 그건 모두 혈청의 영향이다. 토니는 자비스에게 스팁과 전화 연결을 명령했다. 스피커로 전환돼 들리는 몇번의 신호음에 스팁이 얘기를 중단하고 폰을 꺼내든다. 예의바르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받는 모습에 토니는 배알이 꼴렸다.

토니, 무슨 일인가?
내가 깜박하고 말 안 한 게 있어서. 오늘 저녁에 나와 함께 꼭 갈 곳이 있어.
공식적인 자리인가?

스팁은 난처한 얼굴이다. 물론 토니가 표정까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 목소리에 묻어난 기색이 그러했다. 원래라면 스팁을 데려가지 않으려던 토니다. 캡틴 아메리카는 전시홀까지 있음에도 의외로 사람들이 잘 못 알아봤다. 구식 전쟁영상만으로는 얼굴을 인식하기 힘들다. 더욱이 그는 캡틴 아닌 스팁으로 대중 앞에 나서길 꺼려 했다. 덕분에 스캔들 이후 관심이 쏠렸을 때도 캡틴 수트를 입은 사진이나 캡모자를 깊게 눌러쓴 모습만 돌았다. 여기에는 물론 스팁을 배려한 토니의 방어도 한몫했다. 때문에 토니가 공식석상에 함께하길 요청하는 건 처음이었다.

스팁, 역시 안 될까?
어떤 자린데 그러나?
스타크사가 주최하는 자선파티야. 기금을 모아 전쟁고아같은 불우한 이들을 돕고 있어. 작년에는 기금으로 오지에 학교도 세웠다고. 당신이 함께 온다면 분명 이슈가 될 테고 사람도 많이 몰릴거야. 기금을 모으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될 테고.

파티는 초대장이 있는 이들만 출입 가능했다. 어중이떠중이를 배제하기 위함이다. 또 사업가들의 지갑을 여는 건 토니만으로도 충분하다. 지금도 그는 표정 하나 변화 없이 구구절절한 언변을 뽐내지 않던가. 마음을 움직이는 달변가란 토니 스타크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정말 괜찮겠어?
좋은 일에 내가 도움이 된다는데 어찌 거절하겠나.
그럼 당장 타워로 와주겠어? 준비할 게 많거든.

준비는 이미 다 돼있다. 타워 내 파티 장소로 사용될 홀은 완벽한 상태다. 그러나 토니는 스팁 앞의 남자가 꼴보기 싫었다. 갑자기 마음을 바꾼 것도 스팁의 얼굴을 한번쯤 제대로 보일 필요가 있다는 걸 방금 깨달아서다. 정확하게는 벌레를 퇴치하기 위한 과시를 한번쯤은 해둘 필요가 있다는 거다.
전화를 끊고 스팁은 앞의 남자에게 양해를 구했다. 스팁이 사리진 방향으로 남자가 아쉬운 듯 눈을 떼지 못했다. 그에 토니는 가슴에서부터 알 수 없는 일렁임이 드는 것을 느꼈다.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다. 시간, 상황, 주변의 모든 게 지금 ㅅㅅ를 할 때가 아니란 걸 알려준다. 벌써 몇번째 토니의 전화가 진동했다. 자비스는 페퍼의 재촉을 알리는 사이 어느새 뮤트됐다. 소파 위에서 스팁은 밝은 불빛이 부끄러운지 주먹 쥔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흰 피부는 드러난 곳곳이 붉게 달아올랐다. 부드럽기짝이 없는 ㅅㅅ에 스팁은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토니가 더할 수 없는 부드러움으로 이미 녹진하게 풀어진 곳에 들어왔다. 안타까울 정도로 느리게 밀려들어옴에 스팁은 도리질쳤다. 소파 주위는 스팁이 애써 입은 턱시도가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그에 반해 토니는 까만 턱시도와 함께 멀끔하게 풀세팅한 모양새로 ㅅㄱ만 드러냈다. 그나마도 스팁에게로 자취를 감추는 중이지만 말이다. 속옷 하나 없이 발가벗겨진 스팁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제발.
제발?
.......
스팁, 허니. 제대로 말해야 내가 듣지.

토니가 진입을 멈춘다. 안그래도 안타까울만치 느린 움직임이 멈추니 스팁은 헛숨만 삼켰다. 채우지 못한 갈증이 스팁을 미치게 했다. 그사이 진동하던 토니의 휴대폰이 멈췄다. 스팁이 다리에 힘을 줘 토니를 제쪽으로 당기던 순간이다.

그렇겐 안 되지.
흐읍!
제대로 말로 해, 스팁. 제발 뭐? 내가 어떻게 해주는 게 좋아?

토니가 뭉근히 허리를 돌렸다. 약올리듯 전해진 자극에 스팁은 기어코 발개진 눈가에 눈물을 흘렸다. 토니는 테크닉에 있어 전문가나 다름없다. 그런 토니가 작정하고 녹였으니 스팁이 우는 것도 당연하다. 이미 몇번이나 ㅈㅈ의 문턱에서 좌절한 스팁은 결국 이성을 잃었다. 그순간 문너머에서 페퍼의 목소리가 들린다. 토니의 명령에 이곳은 현재 누구도 출입할 수 없었다.

토니! 날 죽이려고 작정했어요? 삼십분밖에 안 남았다고요! 대답해요! 거기 있는 거 다 알아요!

머리끝까지 화난 페퍼가 구두굽으로 문을 뻥뻥 차기 이르렀다. 토니가 반사적으로 상체를 일으키자 오해한 스팁이 목을 끌어안았다. 조절하지 않은 힘에 토니가 억 소리를 내며 스팁의 가슴팍에 처박혔다. 스팁은 이미 그만둘 수 없는 상태다.

제발 어떻게 좀 해주게! 토니, 제발! 날 이대로 두고 가면 안 돼! 자네가 그러면 난, 아!
누가 두고 간다고?
아아, 토니! 좀더, 더, 아흑!
누가, 하아! 누가 당신을 두고 간다고 그래, 응?

한번에 찔러 들어온 토니가 거칠게 움직였다. 스팁은 믿을 수 없게도 그순간 ㅅㅈ했다. 그럼에도 애타던 시간 때문인지 연달아 터지는 정점에 스팁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페로몬을 최대로 죽인 채임에도 스팁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는 순전히 토니의 테크닉이 이뤄낸 쾌거다. 그 희열에 토니도 머지않아 안에 ㅅㅈ하자 스팁도 다시 정점에 올랐다. 둘은 긴 여운에 한동안 교합한 채 서로를 안고 있었다. 그로부터 문이 열린 건 페퍼가 문을 부수려 무기를 찾던 때였다.



토니도 파티 직전에 일을 치루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스팁이 나비넥타이 매는 법을 물어봤고 토니가 도와주던 것뿐이다. 토니는 타이를 매는 동안 뭐가 부끄러운지 목부터 달아오르던 스팁이 잘못이라 생각했다. 절대 그 순간에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됐다. 그러니까 토니가 직접 매준 타이를 다시 풀게 만드는 짓을 하도록 하면 안 됐던 거다.

캡틴 아메리카? 아.... 내 우상이었던 이가 이리도 미인이라니! 토니 자네는 운이 좋구만.

늙은 알파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토니는 영감탱이의 눈을 뽑고 싶었지만 대신 지갑을 열기로 했다. 토니의 언변에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 남자는 큰돈을 흔쾌히 기부했다. 그의 지시에 따라 비서가 기부대 쪽으로 움직인다. 이곳에서는 모든 기부금을 전산으로 처리했다. 늙은 알파는 스팁 앞에서 재력을 과시하듯 어깨를 폈다. 늙으나 젊으나 알파는 알파다. 스팁은 영문도 모른 채 늙은 알파와 악수하며 웃었다. 토니는 지체없이 스팁을 낚아채 자리를 떴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당신이 있으니 다들 호의적이잖아?
그런가? 난 잘 모르겠는데.
캡틴의 도움이 얼마나 큰데 무슨 소리를!

스팁은 난처하게 웃었다. 그 난장판이 있은 지 고작 한시간여밖에 안 지났다. 제대로 뒷처리도 못해 스팁은 아래가 매우 신경쓰였다.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도 이런 고민이 없었다. 한시간 전, 무기를 찾아헤메던 페퍼는 스트레스로 머리가 산발이었다. 덕분에 급히 머리를 다시 했다. 급히 옷을 추스른 둘은 누구라도 알만큼 짙읍 정사의 냄새를 풍겼었다. 간신히 향수를 들이부어 냄새도 가리고 꾸몄으나 울어 발갛게 달아오른 스팁의 눈가나 다 펴지 못한 옷의 주름이 남았다. 또 스팁의 것으로 와이셔츠가 얼룩진 토니는 상의 단추를 절대 풀 수 없었다.

자리가 많이 불편해?
그게 아니네.
표정이 좋지 않다고. 많이 힘들면 조금만 더 있다가 상황 봐서 올라가도록 해.
아....!
스팁?

원래도 이런 자리를 불편해하던 스팁은 계속 안절부절못했다. 토니는 스팁이 갑자기 멈추자 걸음을 멈췄다. 스팁은 다시 얼굴이 붉어지며 굉장히 곤란해했다.

흐, 흘러....
스팁?
그... 자네 그게.... 흘러나왔어......
......오.

스팁이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스팁은 그자리에 굳은 듯 서있었다. 이번만큼은 토니도 당황했다. 아까 미처 뒤처리할 시간이 없었단 게 떠오른다. 스팁이 못박힌 듯 서있었다. 잠시 생각하던 토니가 조용히 자비스를 부르고는 스팁에게 말했다.

쓰러져.
무슨... 토니!
쉿! 어서 눈 감고 쓰러져.

갑자기 고층 창문이 열리며 날아온 뭔가가 토니의 몸을 감쌌다. 티비에서나 보던 아이언맨 수트였다. 파티장에 바람이 불었지만 이목은 다른 곳에 집중됐다. 순식간에 주변이 술렁이고 스팁은 아이언맨에게 안겨 눈을 질끈 감았다. 아이언맨은 지체 없이 창문을 통해 날아갔다. 사색이 된 페퍼가 분위기를 가라앉히려 애썼지만 그날은 역대 파티 중 가장 최악의 기부금이 모였다. 토니 스타크의 빈자리는 그만큼 컸고 다음날 스팁의 임신설은 뿐만 아니라 유산위기, 건강위기설 등이 돌았다. 파티에 있던 한 여성은 캡틴의 하체가 조금 젖어있던 것을 봤다며 피였음을 확신했다. 인간의 뇌는 오류의 산물이라 보고 싶은 것만 본다지만 그녀가 너무 확신한 나머지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7


읍!

그 일은 점심 때 벌어졌다. 쉴드 내 식당으로 들어선 스팁이 헛구역질을 했다. 그 뒤로도 연이어 나오는 헛구역질에 식은땀까지 흘린 스팁은 결국 식당을 등져야 했다. 좀전, 간단한 쉴드 임무를 처리하고 돌아온 캡틴의 방패가 애처롭게 등에 매달려 있었다.



스팁!
아... 토니도 불렀나? 부르지 말라니까.

스팁은 의무실에 누워 있었다. 곁에는 콜슨과 나타샤가 있었다. 토니는 이들을 비집고 스팁의 곁으로 갔다. 토니의 새치기에 말할 타이밍이 엇나가서 그렇지 여기서 그를 부른 사람은 없다. 스토킹질 중 스팁의 이상함을 눈치채고 토니가 달려온 거다. 스팁은 별일도 아닌데 한달음에 달려온 토니에게 미안해했다.

요즘 계속 속이 좋지 않았네. 그래서 그런 거야.
하지만 당신이 아플 리가 없어요. 정밀검사를 해봐야 해요.
나도 사람이니 이럴 수도 있겠지. 더구나 요즘은 피곤하기도 했고.

콜슨의 말에 스팁은 대수롭잖게 넘겼다. 실로 약 한달 전 파티에서 아이언맨이 스팁을 안고 사라진 일로 미디어가 시끄러웠다. 임신설로 모자라 유산위기설까지 도는 걸 안 스팁은 정말 힘들어했다. 토니가 해명하고 나선 것도 그 때문이다. 결국 임신설은 사그라들었고 그사이 스팁은 쉴드에서 임무를 받아 처리하고 돌아온 거다.
이제 콜슨은 토니를 매우 못마땅하게 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토니는 스팁의 손목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았다. 콜슨이 저도 모르게 총을 잡자 나타샤가 만류한다. 토니를 향한 스팁의 시선이 다정하기 그지없었다.

정말 이상 있는 건지도 몰라. 그렇지 않더라도 충분히 대비해두고 싶으니까 스팁, 검진 받자.
토니.
세상에 당신을 위한 백신은 없어. 만일 아프기 시작하면 마땅한 치료법도 없겠지. 스팁, 나 이런 기분 다신 느끼고 싶지 않아.

토니는 진지했고 필사적이었다. 대수롭잖게 여긴 스팁은 미안함이 커졌다. 토니가 이런 생각까지 할 줄은 몰랐다. 동시에 큰 감동이 밀려와 스팁은 고개를 끄덕였다. 비로소 토니가 안심해 활짝 웃었고 콜슨은 서글픈 얼굴이 됐다. 이젠 그도 토니의 진심을 알아줄 때가 됐다.



토니의 고집에도 콜슨의 강경한 태토에 스팁은 쉴드에서 검사를 받게 됐다. 그 일련의 과정에서 이상은 의외로 쉽게 발견됐다.

임신입니다. 사주째예요.
임신....

무려 수퍼솔저, 캡틴 아메리카의 임신이다. 제 말을 따라하는 콜슨에 의료진도 얼떨떨한 얼굴이다. 스팁은 검사부스 안에 있어 아직 사실을 몰랐다. 아직 결과를 모르는 안에서는 심폐기능을 본다며 스팁의 몸에 장비를 부착 중이었다. 의료진이 급히 마이크를 열어 검사를 중지시켰다. 멍하니 스팁을 보던 콜슨이 정신차렸다. 뭔가 이상하다 싶더니 같이 말을 들은 토니가 조용했다. 그는 충격 받은 얼굴이다. 이제와 아이가 부담스럽다는 둥의 얘기를 하면 이자리에서 총알을 먹이겠다 다짐한 콜슨이다. 그사이 스팁이 나왔다. 토니는 스팁에게 다가가더니 와락 끌어안았다.

토니?
이 아둔한 노친네 같으니라고! 둔하다 둔하다 했더니 어떻게 자기 몸 상태도 모를 수 있어!

토니는 조금 울먹이는 듯도 했다. 당황한 스팁이 떨어뜨리려 했지만 토니는 움직이지 않았다. 스팁을 나무라는 음성에는 복잡한 감정이 묻어났고 콜슨은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동질감에 코를 훌쩍였다. 토니의 말대로 정말 사람 철렁하게 하는 데 일가견 있는 스팁이었다.



얼떨떨하기는 스팁도 마찬가지다. 쉴드와 토니 사이에서는 당장 스팁을 누가 관리하냐로 신경전이 붙었다. 수퍼솔저의 임신이다. 유래가 없던 일인만큼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가령 아이도 수퍼솔저로 태어날 것인가 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쉴드의 관심사가 실험적인 것에 치우쳤다는 걸 모를 토니가 아니다. 때문에 콜슨까지 합세해 편을 드니 이번에는 토니가 승리를 거머쥐었다. 타워로 돌아온 뒤에도 토니는 즐거움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어차피 임신을 노림수로 두고 있던 것도 있으니 잘된 일이다. 그러나 스팁은 토니처럼 편하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기본 상태는 매일 자비스가 체크할 테지만 곧 전담 의료진도 구성할거야.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
하지만 토니.
걱정할 거 없어. 우선은 쉬도록 해. 참, 그러고보니 오늘 아무것도 안 먹었지?

토니가 스팁을 끌어 소파에 앉혔다. 배에 손을 댄 스팁은 여전히 혼란스러워했다. 혈청이 그를 우성오메가로 만들었다면 알파인 나타샤는 불임이 됐다. 예측할 수 없는 혈청에 스팁은 생각지도 못한 임신보다 아이의 안위부터 걱정했다. 토니는 부엌에서 우유라도 데워온다며 부산스러웠다. 동시에 자비스를 통해 스팁의 상태를 백업했다. 임신을 노림수로 뒀을 때 이미 자비스에게 의료 프로토콜을 구동했었다. 덕분에 자비스는 토니를 매우 만족스럽게 했다.

아직 불안정한 상태다 이거지?
원래 임신 초는 안정을 취해야 하는 시기로 스티브 로저스씨의 경우 돌발상황에 대비해야 합니다.
아직 태아 상태는 볼 수도 없겠군.
그렇습니다.

자비스의 대답에 토니는 덥힌 우유를 들고 거실로 갔다. 여전히 긴장한 스팁에 토니가 머그컵을 쥐어줬다. 스팁이 우유를 마셨다. 그는 여전히 굳은 얼굴을 풀지 못했다. 곁에 앉은 토니의 시선이 부담스러우리만치 스팁을 봤다.

....그렇게 좋은가?
당신은 좋지 않아?
......
스팁?
좋지 않을 리가. 그저 마음의 준비가 안 돼있어 당황한 거네. 또 자네가 이렇게 기뻐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고..... 무엇보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돼서.....

스팁은 말을 아꼈다. 반 정도 마신 우유를 테이블에 내려놓은 그는 제 배를 쳐다봤다. 토니를 향한 동그란 정수리가 의기소침해 보였다.
남성 오메가의 출산이 희귀한 건 아니다. 다만 남성이다보니 위험률이 다소 높다는 게 있었다. 더욱이 스팁의 경우는 유래없는 일이다. 나타샤는 스팁을 부러운 듯이 쳐다봤었다. 덕분에 스팁은 어깨가 더 무거워짐을 느꼈다. 그때 토니가 스팁의 어깨를 감싸며 정수리에 입맞췄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다시 청혼할게. 나랑 결혼하자. 내가 정말 잘할게. 당신이 나 못 믿는다는 거 알고 이해도 해. 그러니까 그거로 서운하지 않아. 하지만 한번만 기회를 줘. 이제 우리... 우리 아이도 생겼잖아.

토니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큰 눈이 스팁에게 같은 말을 했다. 제 속을 알고 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이렇게까지 말하니 스팁은 정말 뭐라 할 도리가 없었다. 스팁은 토니에게 청혼받은 반지를 끼지 않았었다. 토니도 마찬가지다. 스팁은 반지교환을 하고 끼겠다 말했지만 토니는 다 알고 있었다. 잠시 일어선 토니가 방으로 향했다. 돌아온 그는 전의 그 벨벳 케이스를 들고 있었다.

이번에도 거절할 거야?

토니에게 쓴웃음이 걸린다. 그것은 조금 두려움을 담기도 했다. 그리고 스팁은 더이상 토니를 밀어낼 수 없었다. 상처받은 아이같은 토니에 가슴이 아팠다. 사랑이든 연민이든 스팁은 절대 토니를 그냥 둘 수 없었다. 그가 슬퍼하는 모습은 늘 스팁의 숨을 막히게 했다.



혈청에 대해 잘 알면서 스팁을 봐줄 존재라면 당연히 한 사람이 떠오른다. 그는 토니의 제안에 굉장히 난처해했다. 어나더 가이를 걱정해서다. 그러나 토니는 이미 준비가 다 돼있으니 몸만 오라며 성화였고 배너는 어벤져스 일 이후로 오랜만에 뉴욕 땅을 밟았다.

축하해요, 캡틴. 이거, 선물이에요.

마중나온 스팁과 타워 정문에서 만난 배너다. 몸만 오라며 성화인 토니에 급한대로 짐을 꾸린 배너는 축하선물이라며 주섬주섬 뭔가를 꺼냈다. 누런 종이에 얼기설기 싸진 포장을 풀자 안에는 작식용 목각인형이 나왔다. 임신한 여인의 형상인 그것은 아이를 안고 젖을 먹이는 모습이었다. 스팁이 의아해 쳐다보니 배너가 어색하게 웃는다.

부족 사람들에게 친구가 임신해 가봐야 한다고 했더니 선물로 주더라고요. 그 부족이 모시는 다산의 신이에요. 당신과 아이를 보호해줄 거래요.
고맙네. 잘 보이는 곳에 놓도록 할게.

스팁은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그제야 안심한 배너는 스팁에게 방을 안내받았다. 토니는 업무로 현재 타워에 없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저녁은 함께하자며 배너를 부른 자리에서 스팁이 설명도 하기 전, 거실에 놓인 흉상을 두고 재앙의 주둥아리를 시전한 토니는 하마터면 어나더가이를 볼 뻔했다고 한다.



결혼은 스팁이 원하던 대로 이뤄졌다. 간소하고 조용하게. 그것보다 중요한 건 스팁과 아이였다. 요즘 토니는 확실히 다른 행보를 보였다. 그는 매일을 사람이 어디까지 달라질 수 있는지를 갱신하는 사람같았다.

왜 이렇게 배가 안 부르지?
이제 12주야. 벌써 그럴 리가 없지.

정기검진을 막 마친 뒤다. 배너가 핀잔을 주자 토니가 불퉁한 얼굴이다. 침대에서 일어나던 스팁은 난처한 웃음을 보였다.
혈청이 앞으로 어떻게 작용할지는 두고봐야 했다. 배너는 요즘 혈청 수치가 들쑥날쑥한 것을 두고 걱정했다.

스팁, 정말 괜찮다고요?
그렇네만.
흠... 그래요. 당장은 눈에 띄는 게 없으니 가서 쉬도록 해요. 그런데 토니, 전에 말한 양자물리학 논문 말이야. 궁금한 게 있다고 했지 않나?

잠시 뜸을 들인 배너가 화제를 바꿨다. 토니는 그런 말한 적이 없음에도 표정 하나 안 변하고 맞장구를 쳤다. 스팁은 아무것도 모르고 먼저 자리를 비켰다. 둘의 얘기를 듣다보면 영어인데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 문이 닫히고 잠시 눈을 마주치던 둘 중 먼저 입을 연 건 토니다.

요며칠 계속 재채기를 했어. 체온도 0.5도 차이로 변화를 보이던데. 저녁에는 쌀쌀한지 가디건을 챙겨입었다고.
요즘 일교차가 크니 그야 당연한 일이겠지. 일반인이라면. 며칠새 혈청 수치가 계속 떨어지는 것과 상관있을지도 몰라.
그 혈청이 큰 변수가 될까?
그야 두고봐야지. 전례가 없다는 건 예측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거니까.
제길.

토니가 답답한지 탄식했다. 배너도 그의 걱정을 알기에 침묵했다. 매일 자비스를 통해 체크하지만 스팁이 전과 다르다는 것만 인식됐다. 도와줄 수도, 대신해줄 수도 없는 현실에 토니는 자신의 무능력함을 느꼈다. 임신 전에도 혈청이 날뛸 것만 예상했었지 감소할 줄은 몰랐다. 또 그 혈청이란 놈이 이렇게 필요할 줄도 몰랐다. 둔감한 스팁이 재채기를 하고 본능적으로 가디건을 찾을 때마다 토니는 알게 모르게 철렁했었다.

스팁이 일반인이 된다면....
이런 말하기는 싫지만 스팁을 잃을 수도 있어. 이전 스팁이 어떤 상태였는지는 자네도 알잖아? 더욱이 태아는 토니, 당신 아이야.

배너의 말에는 여러 뜻이 내재돼 있다. 토니의 아이니 우성알파일 확률이 매우 높다. 그리고 만일 그렇다면 어느정도 성장한 뒤에는 모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아이는 태어났다. 우성알파란 그런 존재다. 태고적부터 완전무결한 힘을 그대로 간직해온 순혈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성알파에 목을 매는 건 순수한 힘을 숭배하는 논리와도 닿아 있다. 숭배란 목숨을 던져서라도 지켜내고픈 것 아니던가. 하물며 스팁이다. 그는 아이를 위해 백번, 천번이고 저를 희생할 이다.

배너, 당신은 우성알파라 확신하는 거야?
대부분의 주요기관이 벌써 만들어졌어. 달리 생각할 수가 없다고.

토니의 반박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몸속에 깊이 뿌리박힌 아이는 이미 스팁을 양분삼아 빠른 성장을 보였다. 빠른 성장은 알파의 특성 중 하나다. 토니도 20주를 채우기 전에 완전체가 됐었다. 그리고 그의 아이도 그럴 것이다.

가설이지만 아이의 성장을 스팁이 따라가지 못하는 걸지도 몰라. 그래서 혈청수치가 계속 감소하는지도. 아마....
아마 혈청 덕분에 지금 스팁이 버티는 거겠지.
안그래도 묻고 싶었는데 우성알파의 성장 속도가 그렇게 빠른가?
보통의 경우보다야 빠르지. 내 경우에도 다섯달 이전에 모든 기관이 만들어졌으니까.

우성알파는 희귀해서 학회에 보고된 전례도 극히 적었다. 토니의 말에 배너는 조금 놀란 듯했다. 원래가 알파는 언제 모체에서 나와도 살 수 있게 완전체를 이룬 뒤 여타 태아들과 맞춰 몸집을 불린다. 그런데 우성은 이를 더 앞지른다니 들어보기는 했지만 놀라울 따름이다. 하지만 그러다보니 수가 희귀할 수밖에 없다. 모체가 견디지 못할 힘에 수정 자체가 어려운 것이다. 그러다보니 점점 우성알파와의 결합에서도 같은 형질을 찾기 어려워지고 이들의 명맥이 거의 끊기게 됐다는 게 학자들의 가설이었다.

배너, 미리 말해두지만 둘 중 선택하라면 난 스팁이야. 혹시 위험할 것 같으면 지체없이 수술 진행하도록 해.
토니.
망설일 필요 없어. 어차피 내게 아이는 어울리지 않으니까.

토니의 얼굴에 깊은 괴리감이 담겼다. 그럼에도 단호한 시선에 배너는 입을 열 수 없었다. 어쩌면 가장 아이를 원한 건 토니일지 모른다. 모든 걸 가진 화려한 인생으로 보이지만 누구보다 고독했을 아이, 소년, 그리고 남자. 토니가 살아온 인생에 걸친 외로움을 배너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살짝 열린 문너머 얘기를 모두 들은 스팁도.




8


스팁의 검진에 짬을 내서 온 터라 토니는 다시 돌아가야 했다. 그러기 전 스팁을 보러 올라온 토니다. 스팁은 거실에 있었다.

뭐하고 있어?
그냥 책읽고 있었네. 아이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

토니는 씁쓸함을 숨기며 곁으로 다가왔다. 스팁은 동화책을 보던 중이다. 주책맞게도 임신을 알기 무섭게 토니가 장만한 전집이다. 백권도 넘는 동화 전집에 스팁은 토니의 호들갑을 마뜩찮아 했었다. 거실 한쪽에 새로 들인 붙박이 책장은 앞으로 또 아이를 위한 도서 목록을 채울 요량이었다. 아직 찰 곳이 많은 책장이 훤하다. 책을 골라오면서 스팁은 빈 공간에 괜한 허전함을 느꼈다.

얘기는 잘하고 왔나?
물론이지.
얘기가 통하는 친구가 있어 좋겠군.
아아, 그럼. 그래도 몸이 통하는 게 더 좋긴 하지만.

토니가 장난스레 스팁의 옷속으로 손을 넣었다. 스팁이 움찔하며 긴장했다. 성적 뉘앙스가 가득한 손길이다. 토니는 스팁의 목덜미에 코를 박으며 깊게 숨쉬었다. 이어 자극하듯 혀를 내어 핥자 스팁이 몸을 물린다.

자네, 바쁘지 않나?
조금 늦지 뭐.
토니, 토니!

대놓고 목을 깨물어오는 토니에 스팁이 아예 멀찍이 떨어진다. 반사적으로 옷깃을 쥔 스팁의 눈에는 공포마저 서려있다. 토니는 정색했던 얼굴을 감추며 장난이라 달랬다. 토니의 너스레에 스팁의 미간에 주름이 새겨졌다. 그가 소파에서 일어서며 축객령을 내렸다. 토니가 머리를 쓸며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소파 위로 툭하고 떨어진 지갑이 펼쳐졌다. 둘은 잠시 침묵했다.

가볼게. 무리하지 말고 쉬라고. 외출할 거면 꼭 말해주고.
알았네.

스팁은 열린 지갑에서 눈떼지 못했다. 토니가 자연스레 지갑을 주워 돌아섰다. 며칠 전, 처음 찍은 초음파 사진이 어디갔나 했더니 토니의 지갑에 있었다. 다시금 누구보다 아이를 원하는 건 토니라는 확신이 든다. 스팁은 묵묵히 멀어지는 토니의 등이 외로워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우성알파에 가까울수록 임신한 배우자와의 교합은 어려웠다. 다 그런 건 아니고 배안의 아이가 어떤 형질을 가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형질발현은 보통 태어나고 사춘기를 보내며 나타나지만 알파는 성장속도로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때문에 아버지와 태아가 같은 알파인 경우 임신 중 교합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열성인 경우에도 태아가 민감하게 반응해 최악의 경우 유산되기도 했던 것이다. 우성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알만한 사람이 성적 페로몬을 풍겼다는 건 뻔하지 않은가. 스팁은 낮의 일을 생각하면 가슴 한쪽이 싸해지는 기분이었다. 더욱이 그 행동은 아이를 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모질지 못한 남자라 스팁을 살리려는 거다. 그러나 스팁은 지갑에 초음파 사진까지 가지고 다닐만큼 원하는데 토니의 바람을 들어주고 싶었다. 낮에 몰래 들은 얘기를 종합해보면 위험이 크다는 거지 꼭 자신이 죽는 것도 아니지 않던가. 스팁은 결심한 듯 배를 쓰다듬고는 문을 열었다. 안에는 배너가 있었다.

할 얘기가 있다고요?
시간내줘서 고맙네.
별소리를. 어차피 남는 시간에 여기서 연구나 하고 있는데요.
저... 배너, 자네는 혈청에 관해 많은 연구를 하지 않았나? 난 그쪽으로는 자네만큼 해박하지 않지만 그래도 알고 싶어. 내가 얼마나 버텨야 아이가 무사할까?

부드럽던 공기가 얼어붙는 건 순간이었다. 배너는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숨기는 데 재능이 없었다. 배너가 할 말을 찾지 못하자 스팁이 다 알고 있음을 얘기했다. 배너는 긴 한숨과 함께 양손으로 머리를 싸맸다. 기도하듯 상체를 숙인 배너는 캡틴만 연달아 불렀다. 맞은편의 스팁은 태연히 앉아 있었다.

오, 캡틴.... 캡틴.... 난, 난 사람을 살리고 싶어요. 지금껏 그래왔고 앞으로도 마찬가집니다. 지금 당신은....
이 아이를 살리는 거잖나.
지저스, 스팁!

배너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눈치로 낮의 얘기를 스팁이 모두 들었다는 걸 알아챘다. 하지만 분명 토니 모르게 왔을 그가 이토록 빨리 결정했을 줄은 몰랐다. 반나절이다. 고작 반나절만에 그는 자신을 포기했다. 배너는 도저히 숭고한 희생정신이라며 그를 추켜세워줄 수가 없었다.

난 상황이 꼭 최악으로 치닫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네.
의사들은 항상 최악을 염두에 둬야 해요.
사실 토니와 나는 본딩도 하지 않았어.
그게 지금 무슨 상관....
그러니 토니는 괜찮을 거란 소리야.
스팁, 제발 그만해요!

결국 배너는 화를 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괴로운 듯 숨을 몰아쉬었다. 스팁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위험을 감지한 자비스가 경보 시스템을 가동했다. 어나더 가이를 대비한 이 시스템은 위험도에 따라 자비스가 단계별로 대처할 수 있게 프로그램돼 있다. 일단계로 토니에게 먼저 정보가 전달됐다. 배너의 몸이 초록색을 보이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스팁은 여차하면 싸우려는 기세로 문앞에 자리잡았다. 자비스는 연신 스팁에게 대피할 것을 말하며 건물 전체에 경보를 울렸다. 하지만 마침내 숨을 고른 배너는 위험에서 벗어났다. 어느새 차분히 이성을 차린 배너가 방금 전 제 손에 아작난 안경을 보며 한숨쉬었다. 그러나 그때 멈추기엔 늦어버린 아이언맨이 창문을 뚫고 들어오며 배너를 덮쳤다. 덕분에 둘은 볼품없게도 구석에 처박혔다. 건물내를 시끄럽게 울리던 경보가 꺼지던 순간이었다.



그러니까 이게 다 둘이 나 몰래 해결보려다 치룬 대가라는 거지.
미안하네, 토니.

자초지종을 들은 토니는 아머를 걸친 채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걸쳤다는 게 맞을 정도로 아머는 반파돼 있었다. 담요를 두르고 건물 잔재에 앉아 있던 배너가 사과하자 그가 떨어져 덜렁거리는 아머 손을 휙휙 흔들었다. 스타크 타워는 옆구리가 뚫려 이들이 있는 곳은 야외나 다름없었다.
아이언맨과 뒹군 충격으로 간신히 가라앉힌 어나더 가이가 폭발했다. 스팁과 함께 어찌어찌 막기는 했는데 건물 중간층의 귀퉁이가 날아갔다. 중간이라도 꽤 높은지나 간간히 새가 날아다닌다. 이들은 가기 삼각구도를 두고 부서진 잔해에 앉아 있었다. 스팁도 지쳤는지 말이없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퇴근 시간이 지나 건물내 사람이 몇 없었다는 것과 어나더 가이가 비교적 빠른 시간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덕분에 생각보다 피해는 크지 않았다. 다만 소란에 몰려온 벌떼가 아래 가득하다는 것이 현재 남은 난관이다. 그때 잠잠하던 스팁이 말했다.

이 일은 다 내탓이니 내가 처리하겠네.
어떻게?
일단 설명부터 하고...
설명부터 하고 뭐? 다 당신 탓이니 영웅답게 할복이라도 하려고?!
토니!

스팁을 다그치자 배너가 끼어든다. 나쁜 뜻이 아님을 알지만, 저게 캡틴이라는 걸 알지만 토니는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대체 어디까지 짊어져야 속이 시원할지 토니는 이제 무섭기까지 했다. 토니가 일어나자 파손된 부분들이 덜그럭거렸다. 스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토니는 뛰어내리기라도 할 듯, 붕괴된 끄트머리에 서더니 빔으로 잔해로 막혀 있던 문을 뚫었다.

배너, 스팁을 위층에 데려다줘. 그리고 몸상태도 체크해주고. 부탁할게.

토니는 말을 끝내더니 아래로 뛰어내렸다. 비행 기능이 남아 있던 덕에 수십층 아래로 가뿐히 착지한 아이언맨에 순식간에 기자들이 몰려 소란스러웠다. 멀리서도 들리는 소리에 스팁은 배너가 재촉할 때까지 움직일 수 없었다.



그게 옳은 방법이라고? 태어나지도 않은 세포덩어리에 목숨바치시겠다? 아예 불구덩이에 몸을 던져넣는다고 하지 왜?
토니! 말이 심하잖은가!
누가 심한가, 캡틴? 본딩 하지 않았으니 나는 괜찮을 거라고? 대체 누가! 누가 더 심한 말을 한 건데!

도의적 차원에서 배너의 방에는 cctv가 없다. 때문에 전후사정을 모두 배너에게서 들은 토니는 치솟는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몸상태를 체크한 배너는 빌어먹게도 태아가 지극히 정상이라고 했다. 그에 반해 스팁은 어나더 가이로 인해 입은 상처가 아직 다 낫지 않았다. 심한 상처도 아니고 자잘하게 긁힌 건데도 완전히 아물지 못한 그것은 곳곳에 흉터처럼 남아 있었다. 전이라면 흔적도 없이 아물어야 했다. 그 사실을 모르지 않을 텐데도 신경 쓰는 건 토니뿐인 듯싶다. 그래서 토니는 더 화가 났다.

좋으시겠어! 언제든 떠날 준비가 돼있어서! 혹시 처음부터 애 하나 던져주고 떠날 생각이었어?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리 태연할 수 있을까! 참으로 숭고한 희생정신에 눈물이 다 날 지경이야!
그만! 그만해, 토니! 다퉈봐야 애한테 좋지 않다고!
퍽이나! 당신 배속의 그건 멀쩡하다고 하잖아! 제 어미나 갉아먹고 있는 놈따위 죽어버려야!

짝 소리와 함께 토니의 고개가 돌아간다. 거실은 정적이 흘렀다. 거친 호흡 사이, 토니가 고개 돌리며 입가를 훔쳤다. 입술이 찢어져 피가 묻어났다. 스팁도 고의로 그런 건 아닌 모양인지 당황한 눈치다. 주춤거리며 물러선 스팁을 잡은 건 토니였다. 양손목이 강하게 잡힌 순간 토니의 페로몬이 폭발했다.

본딩해. 지금 당장.

섬뜩한 목소리보다 더 무서운 건 우성알파의 페로몬이었다. 이런 경우는 스팁도 처음이었다. 지독하리만치 독한 향기에 스팁은 순식간에 ㅇㅇ이 흘러넘쳤다. 다리가 후들거리며 힘이 풀렸다. 풀썩 주저앉은 스팁은 동공이 풀리면서도 저항하려 애썼다. 하지만 토니는 스팁을 봐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히트싸이클을 유도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스팁의 형질개방을 유도했다. 동시에, 그것도 억지로 끌어올려진 오메가성에 스팁은 금세 헉헉거리며 숨이 차올랐다. 전력질주한마냥 심장이 두근거렸다. 지금껏 같은 우성으로 토니를 거절할 수 있을 거라 여겼건만 오산이었던 모양이다. 전력으로 강제 본딩을 시도하려는 토니에 스팁은 결국 저항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마지막 의지마저 사라지던 순간, 본능이 몸을 지배하기 직전, 완전히 색을 잃은 스팁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 그만. 아! 아아, 그만. 제발!
엄살부리지 마, 스팁. 여기 느껴져? 이렇게 좋아서 조여드는데.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가 간지러웠다. 풀린 눈으로 간신히 정신이 든 스팁이 애원하지만 오히려 몸은 매달리고 있었다. 페로몬에 중독돼 사지가 나른하게 풀렸다. 원하는만큼 알파를 안지 못하는 것에 몸은 애달파했다. 토니는 그런 오메가를 달래듯 척추를 따라 키스를 퍼부으며 살에 입을 맞대고 속삭였다. 언제 거실에서 침실로 왔는지 침대 시트가 흥건히 젖었다. 스팁이 버티지 못하고 무릎이 꺾이자 허리를 안고 일으키는 손이 있었다. 팔사이에 얼굴을 묻은 스팁이 기어코 울음을 터뜨렸다. 힘들었다. 방전되고도 남을 체력이 중독된 알파의 페로몬에 억지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와중에 처음에는 거부하며 날뛰던 아이가 어느샌가 조용해졌다. 단지 토니로 인해 가득 채워진 배안이 뜨거울 뿐이다. 스팁은 결국 소리내 울기 시작했고 토니는 봐주지 않았다.

제발, 토니! 아이가... 아이가...!
빌어먹을 아이따위 죽어버리라고 해.
토니! 아아!
제길! 아이따위! 그까짓게 뭐라고! 제길, 제길!

토니의 움직임이 더욱 거세졌다. 본딩은 진작 이어진 지 오래다. 아이가 움직임을 멈춘 것도 그쯤이었다. 그럼에도 토니는 확인사살이라도 하려는지 멈추지 않았다. 스팁은 그와중에도 토니가 울고 있다고 느꼈다. 필요없다 외치는 목소리가 애처로웠다. 미안하단 말을 대신하듯 필요없다 버릇처럼 말할수록 스팁의 등으로 뭔가가 후두둑 떨어진다.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그것은 무척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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