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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8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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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킨.

 

닿을 리 없는 이름만 애타게, 심중에서 되뇐다. 답은 없다. 고요한 시간만이 흘렀다.

 

뜨거운 태양은 중천을 빗겨 갔지만, 바닥에는 여전히 그 열기가 남아 자글거렸다. 화려하고 웅장한 궁 처마의 위용에 걸맞지 않게 옹졸하게 삐쭉 튀어나온 그늘은, 그 아래에 조아려 앉은 누군가의 몸을 절반도 채 가리지 못했다. 검거나 붉거나, 꽃이 그려진 다채로운 풍경 가운데, 그만이 유독 순백했다. 얇고 하얀 여름옷 너머로 인고의 살결이 비쳤다.

힘겨운지, 단정하고 동그랗게 빚어진 작은 머리가 자꾸만 앞으로 쏠렸다. 그의 머리칼은 태양 빛 가운데서도 섬세하고 결이 고운 것만을 가져다 만든 것 같았다. 누군가는 그의 여러 부분 중에서도 특히 그것을 사랑해, 그 기분이 내킬 때면 몇 번이고 입을 맞추어대곤 했다.

괜한 생각을. 벌어진 입에서 턱 막힌 숨이 흘러나왔다. 날이 너무 뜨거워서 오히려 차갑게 느껴지는 숨이.

 

달구친 오후의 볕에 흠뻑 젖어서도, 오비완은 땀과 턱, 눈꺼풀에 맺힌 땀을 닦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황제의 침전 앞에 무릎을 꿇은 채 하명을 기다릴 뿐이었다. 하다못해 축객령이라도. 속이 마구 들썩거렸다. 어제도 결국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물 한 모금 마시는 것조차 힘든 나날이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부아가 치미는 것에 이제까지 제 젖은 얼굴을 훔치는 작은 동작마저도 허하지 않는 오기를 부리던 그였지만, 때때로 복중에 손이 가 닿는 것은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저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는 조금의 동정심도 들지 않았다.

다만 아이는,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괜한 배에 들어서서 함께 이 고생이라니.

 

혹 뙤약볕에 태동이 약해지진 않았는지, 노심초사하던 오비완이 등 뒤의 기척을 느끼곤 곧바로 자세를 다잡았다. 서둘러 내리깐 푸른 눈동자가 돌바닥에 그려지는 그림자를 날카롭게 응시하다가 이내 그리운 형상을 발견하곤 힘없이 탁 풀렸다.

 

콰이곤.”

무언가를 간청하기에 좋은 날이 아닌 듯한데요. 날이 무척 덥습니다.”

 

복중 태아를……생각하셔야지요. 콰이곤의 입에서 직접 듣길 원하지 않았던 이야기가, 생각보다 스스럼없이 나오는 것에 오비완은 눈을 질끈 내리감았다. 턱이 파들거렸다. 안 그래도 곧 쓰러질 것 같은 파리한 등이 동요하는 것에, 콰이곤이 서둘러 다가갔지만 결국 닿지 못했다. 오비완은 뒤도 돌지 않은 채 손을 들어 간단히 콰이곤의 걱정을 물리쳤다.

 

이 고집스러운 녀석이. 제자리에 머문 콰이곤이 속으로만 혀를 찼다. 반쯤은 진심을 담은 안타까움이었고, 반쯤은 답답함이었다. 그는 너무 꼿꼿했다. 콰이곤은 어느 날, 어디에서라도 뚝, 하고 부러져버린 오비완을 발견하게 될 것 같아 두려웠다.





 

이미 한 번 그럴 뻔한 적이 있었다. 바로 오비완의 제자로 수련 받던 어린 황자가 쑥쑥 장성해 친부를 살해하는 패륜을 저지르고 황위에 올랐던 때였다. 그는 그것으로 멈추지 않았다. 오비완의 스승이자 차기 부군으로써 집안끼리 일찍이 혼약이 오갔던 콰이곤과 케노비 가의 혼담을 파하는 기행까지 저질렀다. 유난히 해가 붉게 지던 저녁, 심상치 않은 소식이 전해지고 궁의 상황을 속히 파악해 돌아오겠다던 제 유일한 제자는, 고결한 약혼자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래, 그것으로 끝이었다. 마치 죽은 사람처럼, 소식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무답조차 일종의 통보가 아니었을까. 일찌감치 머리 아픈 정계를 떠나 산세에 파묻혔던 콰이곤은, 오비완이 신혼집에 꾸리자던 정원을, 그의 입으로 말했던 꽃들을 하나하나 홀로 심으며 계절을 보냈다. 몇 년 후, 궁에서 사람을 보내 콰이곤을 불렀다. 두말없이 제 발로 입궁해, 그 극악한 참살극은 다 거짓이었다는 듯, 기쁘게 새 황제를 섬기는 대신들을 따라 열을 맞춰섰다.

 

오비완.

 

황제가 대전에 들어섰을 때, 콰이곤은, 지체와 격조가 높다며 사람들이 입이 마르게 칭찬하던 콰이곤은, 감히 허리를 굽히지 않았다. 예를 올리는 것을 잊었다.

이제 태양을 닮은 금이 아닌, 태양 그 자체로 빛나게 된 앳된 황제의 옆에 그가 서 있었다. 황제이자 한때 제가 가르치기도 한 제자 아나킨의 부축을 받으며 대전으로 걸어들어왔다. 그에 어울리지 않는 선명한 붉은색 옷을 입고서. 그가 그런 옷을 입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래서인지 가끔, 홀로 남게 된 어둠 속에 가만히 명상하노라면 그 타는 듯한 선홍색과, 불길 같은 옷에 잡아 먹히는 것 같은 어린 제자의 모습이 선명해서 콰이곤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 오비완. 그들이, 네가 아끼던 그 아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이냐? 꿈에서 그렇게 물으면, 겨울 호수 못지않은 푸른 눈동자는 깜빡이지도 않은 채, 이쪽을 노려보며 뚝뚝 눈물을 흘렸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은 채로.

짐작컨대, 난리통에서도 저를 찾아 헤매고 치이며 울고 있을 어린 제자가 마음에 걸려 한달음에 궁으로 간 오비완은 그 날 어렵지 않게 아이를 찾았을 것이다. 안도하며 품에 안았을 때, 이미 그 품이 저보다 한참을 넉넉히 자라있다는 것을 모른 채. 오비완의, 아니, 저의 완전한 패착이었다. 해가 산의 경계를 넘기 무섭게, 오비완은 품에 있던 것을 놓쳐 버리고, 품에 안기게 되었다. 궁에 어둠이 내렸다. 다음 날 그는 황제의 유일한 중궁이 되어있었다. 아무도 반박하지 못했다. 감히, 오비완 자신조차도.

 

아나킨을 알현할 때면, 가끔 콰이곤조차 놀라웠다. 어쩜 이런 악의 화신이 그처럼 해맑고 순수한 얼굴 뒤에서, 단 한 번도 본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도사릴 수 있었을까? 이제 황제가 된 그는 거리낄 게 없었다. 그의 눈은 절멸하는 불꽃의 색이었다. 번들거리는 욕망이 커다란 눈 속에서 일렁거렸다. 포식자. 그는 정기적으로 콰이곤을 궁으로 초청했다. 그 옆에는 항상 아름답게 꾸민 오비완을 데려다 앉혀두고서. 치장은 너무 과해서 눈꺼풀에 붙여둔 작은 보석 알갱이들이 무겁게 쳐져 시야를 가릴 정도였다. 그야말로 꾸며놓은 인형 같았다. 아나킨은 그 앞에서 마치 들으란 듯이, 꼬박꼬박 콰이곤 대스승님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그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현재의 자리를 인지하고 있으라는 명령처럼 들렸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더 깊게 생각하길 포기하게 된다던가.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었다. 콰이곤은 이제 더 바꿀 수 없는 문제를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그에게 흠뻑 빠진 황제의 눈이, 늘 그렇게 영원히 멀길 바랐다. 그러면 적어도 그 위태로운 자리에서도 오비완을 함부로 해코지할 이는 없을 테니. 사실 집안에서의 오랜 혼약이었기에 책임감과 그간의 유대관계에서 비롯된 정으로 임했을 뿐, 자신이 정말로 오비완을 사랑했는지는 콰이곤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만일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오비완이 앞뒤 볼 것 없이 궁으로 떠나려 할 때, 한 번이라도, 두 번, 세 번이라도 그 손을 잡아 세웠더라면 어땠을지.

 

잡념을 멈춘 것은, 마른하늘에서 우레와 같은 천둥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장마철이었다. 언제 굵은 빗줄기가 떨어질지 몰랐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는 다시 눈앞의 등을 본다. 버티려고 하지만, 계속해서 굽는 마르고 젖은 등. 얇은 옷에 비친 등가죽으로 거뭇거뭇한 반점 같은 것이 드러난다. 크고 작은 멍울들. 콰이곤이 주먹을 말아쥐었다.

 

그래, 차라리 오비완이 행복하길 바랐다. 미친 방식으로라도 길들여져서, 설령 끝까지 찾아와 구해주지 않은 제 스승이 야속하다 하며, 어느 날 제 목을 갖고 싶다 황제의 무릎 맡에서 아양을 떨더라도.

하지만 그는 대쪽같을뿐더러 타협점을 찾을 수 없는 비상식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불같은 성미를 드러냈다. 그가 원하지 않는 황제의 정실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언쟁과 무력이 오갔을지 상상할 수도 없었다. 특히나 콰이곤이 다녀간 직후에 치러지는 합방은 얼마나 지옥도에 가까울지. 콰이곤을 미치게 만드는 것은, 제가 오비완과 대면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만나지 않게 조치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아나킨이 그런 자리를 나서서 즐긴다는 점이었다. 그는 콰이곤 앞에 내놓은 오비완을 가장 먹음직스러운 것을 보듯이 쳐다봤다. 새파란 동공이 더욱 파랗게 질려 어디에도 눈 둘 곳을 찾지 못하고, 그 쉬운 다도의 예법조차 까먹어 여러 번 손이 미끄러지곤 하는 것을, 덜덜 떨리는 손가락을, 그토록 사랑스럽게.

 

그다지 길지도 않은 애증의 세월이 흘러, 또 다른 변곡점이 찾아왔다. 오비완이 회임을 한 것이다. 나라의 경사였지만, 다급한 부름을 받고 방문한 드넓은 침궁에서 오비완은 습관처럼 턱을 매만지며 홀로 수심에 잠겨 있었다. 콰이곤의 등장과 함께 그가 쏟아지듯 앞으로 달려나왔다. 걱정이 되어 저도 모르게 스스럼없이 팔을 내밀어 전처럼 안으려 들지만, 그렇게 길지도 않은 세월이, 감시의 시간이 두 사람 틈을 어느새 비집고 들어왔다. 두 사람은 안지도, 안긴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로 서로의 팔만 겨우 꼭 붙들고 서 있었다. 옛 제자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언젠가 정원이 될 좁은 땅을 함께 둘러보던 봄날에 가득 퍼졌던, 그의 향이 아득하게 넘쳐흘러 콰이곤을 자극했다.

 

스승님, 스승님. 이럴 수는 없습니다. 이럴 수는…….

 

이런 법은 없습니다. 그가 알던 똑똑한 제자는 어디 가고, 이미 일어난 일을 마구 물리라며 떼를 쓰고 성이 나서 펑펑 우는 아이만 눈앞에 있었다. 입이 써서, 그는 끝내 아무 말도 건네줄 수 없었다. 중심을 잃고 흔들리는 금발의 머리통이 팔꿈치 사이로 파고들었을 때, 그 위로 손을 올려두는 것이 고작이었다. 자제력을 잃은 아이가 혹여라도 도망을, 구원을 요청할까 두려웠을까? 울음이 잦아들고도 오비완 역시 아무 말이 없었다. 제가 키운 제자는 눈치가 빠른 편이었으니까. 그만 가보세요. 죄송합니다 스승님.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에요.

 

그 후로 아나킨도 잠잠했고, 오비완도 제가 뱉은 약속을 지키려는지 따로 전갈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오늘이었다. 콰이곤은 새벽부터 문을 두드려 깨우는 사람들을 따라 궁으로 왔다. 황제가 날로 성대한 연회를 여는데, 오늘 그것에 초청받은 것이다. 궁으로 향하며 사람들에게 듣기로, 요새 유난히 크고 작은 연회가 빈번히, 질펀하게 열린다고 했다. 질펀히? 모른 척 묻자 대꾸하는 사람은 새삼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설명도 귀찮다는 듯이 툭 내뱉었다.

 

, 모르시오? 황제의 명으로 온갖 주색과 놀음이 허용된다지 않소. 미녀에, 광대에……다들 아주 살판들이 났지. 일각에서는 원성도 자자하오만, 누가 감히 뭐라 하겠소?

 

이상한 것이,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힐끔 콰이곤의 안색을 살피곤 한 마디를 더 덧붙였다.

 

물론 우리 훌륭하신 황후께서는 더는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던지, 그것 때문에 하루가 멀다하고 고역을 자처하고 있소만.

 

 

오비완을 중궁으로 삼으며 반대가 적지 않았지만, 가장 극심했던 것은 역시 그 친정인 케노비 가문이었다. , 콰이곤이 보기에도 그들 집안은 오비완이 과연 어디에서 났는지를 확인시켜주는 인상과 성품의 소유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 대단한 집안이 몰락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정말 장난 아니었어요. 오비완 님……, 죄송해요. 황후마마의 그런 모습은 그 날 처음 봤어요.

 

아나킨이 직접 가르친 무신 집안의 귀족 자제이자, 지금은 그의 측근 호위로 있는 아소카가 한 번은 그런 얘기를 꺼냈다. 측근 호위인 만큼, 아주 은밀한 내실의 일까지도 꿰고 있었는데 이성을 잃고 발악하는 오비완의 고성이 밤새 끊기질 않았다고 했다. 물건을 내던지는 소리, 산산조각이 나며 파편이 튀는 소리. 그 소란 한 가운데서 오로지 제 주군의 목소리만 들리지 않았다. 곧이어 꺽꺽,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리고 헐떡거리는 소리가 났다.

촛불이 꺼졌다. 더는 시중드는 이가 필요 없다는 뜻이었다. 그의 거친 입에서 직접 나왔다면, 꺼져 애송아, 정도. 그래서 수순 대로 아소카는 물러날수 밖에 없었지만, 오비완이 심히 걱정되는 밤이었다고.

다음 날, 아나킨은 황제에게 있어서는 안 될 멍과 할퀸 상처 같은 것을 가득 달고 나타났다. 그뿐이랴, 한쪽 눈에는 길게 그인 자상에 피가 엉겨 붙은 그대로였다. 그래도 이 배알이라곤 없는 주군은 그 후로도 몇 번을 얹히고 늘어나는 상처가 꽤 자랑스러운 듯이 고개를 쳐들고 다녔다며, 아소카는 다소 질린 듯 말했다. 오로지 그 험악한 상처를 이용한 것은, 다시 중궁의 자격을 논하는 이들이 괜한 파장을 일으켜 오비완을 끌어내리려 했을 때뿐이었다고. 한층 잔혹해진 얼굴이 주는 위압감에 반기를 들던 이들도 곧 케노비 가의 전철을 따르지 않고자 몸을 사렸다. 반면 오비완은 외관은 멀쩡했는데, 예리한 아소카는 물론이고 평범한 사람이 보기에도 그는 심하게 다리를 절뚝이며 걸었다. 거기까지 말한 아소카는 무거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시침이야 매일같이 드는데, 아마 그 이유는 아니겠죠.

 

 

 




 

이제 정말 비가 내릴 것 같다. 사위가 진녹색 음영으로 물들었다. 바람이 거세지고, 눈치 빠른 궁인 몇몇이 빠르게 뛰어다니며 문을 닫고 장막을 치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콰이곤은 허리를 꺾어 하늘을 우러러보다가 문득 물었다.

 

대신들의 압력이 있었습니까?”

제 선택입니다.”

오비완.”

 

콰이곤이 눈을 감고 탄식했다. 무더운 여름날 이 개고생을 하는 이유가, 제 선택이라니. 그렇지.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원치 않은 자리에 올라, 원치 않게 아이를 가져도 차차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에 맞게 방향을 설정한다. 미련한 제자는, 순진한 옛 연인은 아마 이제 그 무뢰한의 아내로서 소임을 다하며 그의 아이를 낳아 잘 기르기로 작정한 듯 보였다. 콰이곤의 바람처럼, 모든 것을 놓아 쉽게 지낼 성정의 사람이 아니기에 더 걱정이었다.

지켜야 할 것이 남지 않은 그에게 다시 지켜야 할 것을 안겨준 이가, 원래부터 있던 모든 것을 무참히 짓밟고 뺏어간 이라니.

 

그때, 다시 한번 우레와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고, 드디어 내전의 문이 열리며 사람이 총총걸음으로 나타나 다가왔다. 앞으로 쓰러질 듯이 숙이며, 오비완이 그에게 간청했다. 콰이곤은 그러는 와중에도 그가 부여잡고 있는 아랫배가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해서는 안 되는 생각이지만, 이상하게도 그가 입은 하얀 옷과 바닥에 붉은 웅덩이가 생기는 환상을 떨쳐버릴 수 없기에. 아마 그도 필시 더위를 먹은 탓일 것이다.

 

다시 한번 고해주시게. 싫은 얼굴은 보지 않으셔도 좋으니, 제발 이 쓸데없는 놀음은 그만두시고 정사로 돌아가…….”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폐하께서 찾으십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 콰이곤 님도요.”

 

그가 마침내 뒤를 돌아본다. 억겁의 세월이 지나 다시 만난 듯한 향수가 스쳐 지나간다. 아주 미약했고, 짧은 새였지만 콰이곤은 똑똑히 그것을 확인했다. 살이 내린 얼굴. 입술을 감춰 문 오비완이 부축을 받아 일어나려 하지만, 오랜 시간 꿇어앉고 있던 터라 쉽지 않아 보였다. 결국, 콰이곤이 나섰다.

오비완은 처음에 파드득 놀라 손을 떨치려 했다. 하지만 내시의 힘만으로는 무게중심을 잡는 데 한계가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콰이곤에게 기대왔다. 콰이곤은 명을 전하러 온 내시를 물리고 오비완과, 채 스무 보가 안 되는 짧은 통로를 천천히 걸었다. 스승님은……. 내시가 멀어진 것을 확인하고 떨어진 마른 입술이 할 말을 한 번, 힘겨운 숨을 한 번 골랐다.

 

스승님은 변치 않으셨네요. 여전히 시원한 향기가 납니다.”

그런가? 무슨 향이지?”

어느 여름의 미풍은……. 아주 깊은 산 속까지 파헤치고 들어왔더랬죠. 산속 외딴 누각에까지.”

 

오비완은 어렵게 말을 잇지 못했다. 콰이곤의 커다란 손이 그의 손등을 가볍게 토닥였다. 그는 서서히 콰이곤에게서 몸을 떼었다. 콰이곤은 소매 안으로 손을 공손히 감춘 채 두 발짝 뒤로 물러나 허리를 굽혔다. 그 조아린 머리 위로, 콰이곤이 기억하는 한 가장 유약해서, 마음을 쇠게 하는 음성이 흩어졌다.

그곳에서 맞던 바람의 향입니다. 스승님.

 

 







별전쟁 아나오비 콰이오비

 

2024.02.18 09:4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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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스터피스...... 센세 어떻게 이런글을 ㅠㅠㅠ 오비완 안쓰어워서 어쩌지ㅠㅠㅜㅜㅜㅜ 제대로 나오지도 않았지만 아나킨까지 셋의 관계성에 미쳐버릴것같아 ㅠㅠㅠㅠㅠ 센세 제발 어나더 ㅜㅜㅜㅜㅜㅜ
[Code: 07ec]
2024.02.18 10:3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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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은 왜 한 번인거야༼;´༎ຶ ۝ ༎ຶ༽
[Code: 3263]
2024.02.18 10:3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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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할 수 없음 창이 야속하옵니다 센세...제가 노란 별을 백만 번 찍을 수 있도록 백만 개의 어나더를 주시옵소서
[Code: 3263]
2024.02.18 13:0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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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ㅡ잘 우ㅡㄴ사람이 아닌데 나 울어 센세 하 너무 아름다운 글이야 진짜 너무 최고다ㅠㅠㅠㅠㅠㅠㅠ 글에서 숲 향나는 거 같어 미쳤다 ㅠㅠㅠ
[Code: f2ca]
2024.02.18 18:11
ㅇㅇ
맙소사 센세 흑흑 너무 좋아요ㅠㅠㅠㅠㅠㅠㅠㅠ 강제로 정실이 되고 아이를 배어서도 오비완은 여전히 오비완이라서.. 아이를 걱정하면서도 정사를 살펴달라고 고하는거ㅠㅠㅠㅠ 어떻게 이렇게까지 오비완일 수가 있어ㅠㅠㅠ 콰이오비->아나오비 사이의 관계가 줄 타는 것처럼 아슬아슬하다ㅠㅠㅠㅠㅠ 그 와중에 오비완 다리 절뚝거리는거 미치겠네ㅠㅠㅠㅠ 인형처럼 아름답게 꾸며놓고, 가문이며 지켜야 할 소중한 것들을 없애버리고, 오비완이 남긴 상처를 자랑스러운 듯 달고 다니는 아나킨의 엇나간 사랑ㅠㅠㅠㅠㅠ 콰이곤 앞에 오비완을 내놓고 관찰하는 것도 미치겠다.. 콰이곤과 오비완의 속내가 궁금해ㅠㅠㅠㅠ 화살표의 방향은 어떻게 되는걸까ㅠㅠㅠㅠ 콰이곤이 본 유산의 환상은 현실이 되는걸까ㅠㅠㅠㅠㅠ
[Code: f381]
2024.02.18 18:11
ㅇㅇ
이건 어나더가 있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빈다... 어나더를 주세요ㅠㅠㅠㅠㅠㅠㅠ
[Code: f381]
2024.02.19 02:05
ㅇㅇ
모바일
와 진짜 작품보는것같아.... 콰이곤 견제하는 폭군 아나킨 맛있다
[Code: c6e9]
2024.02.21 02:0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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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너무 슬퍼... ㄹㅇ 글에서 궁궐 바람냄새남 ㅠㅠㅠㅠㅠㅠ
[Code: 420c]
2024.03.03 00:1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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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쓸쓸하고 위험하고..살얼음판이다..
진짜 명작
[Code: 6d54]
2024.03.11 03:50
ㅇㅇ
이걸.... 이제야 보다니 인생을 잘못 산거 같아 ㅠㅠㅠ 콰이곤의 시점으로 이루워진 글인데 아나킨의 오비완을 향한 집착과, 수 없는 반항과 저항 끝에 결국 현실과 타협하게된 오비완이 너무 잘 느껴졌어 ㅠㅠ 그런데 포기 했다고 생각했던 오비완이 콰이곤에게 기대어 짧은 거리를 걸어가는 동안 스승님에게서 시원한 여름의 미풍 같은 향기가 난다고 하는거 보면 ㅠㅠㅠ 아 가슴이 미어진다 이게 도대체 무슨 감정이지 ㅠㅠㅠㅠ
[Code: 7671]
2024.03.11 03:55
ㅇㅇ
콰이곤은 자기가 오비완을 진심으로 사랑했는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다고 독백하는데.... 사랑이 아니긴.... 저렇게 미련이 철철 흐르는데 ㅠㅠㅠ 꿈에 나온 오비완이 질문에는 대답조차 안하고 눈물만 흘리고, 오비완이 아슬아슬한 위치에서라도 살아있기를 바라서 황제의 눈이 영원히 멀어있기를 바라는게 사랑이 아니면 뭐야 ㅠㅠㅠㅠ 아나킨도 정말 아나킨 답다... 콰이곤의 마음에 비수를 꽂는 법을 너무 잘 알아서 일부러 오비완과 항상 대동해서 콰이곤보고 대스승님이라고 부르고 그날 밤에는 험악하게 합방을 하는게..... 오비완의 마음은.... '품에 있던 것을 놓쳐 버리고, 품에 안기게 되었다.'이 문장으로 전부 설명 되는 듯 ㅠㅠ 미쳤어
[Code: 7671]
2024.05.06 11:09
ㅇㅇ
이..이게 뭐지..? 문학이 햎에...?
[Code: 3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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