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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3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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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하지. 아까는 그렇게 쉽게 저에게 잡혔으면서 따라가기가 왜 이렇게 힘든지. 다리 길이도 기껏해봐야 제 한 뼘쯤이나 될까말까 한데 어떻게 저렇게 걸음이 빠르지 싶어서 가만 보니 새끼 여우가 빠른게 아니고 제 걸음이 느렸던거야. 다리에 추라도 매단 것마냥 무거웠어. 톰의 무덤 앞을 떠나기 싫었나봐.

자신이 따라가지 못 하자 여우는 다시 돌아와서 손가락 끝을 깨물었지. 그 작은 이로 손가락을 깨물어봤자 얼마나 아프겠어. 겨우 제 발목쯤에나 올법한 작은 새끼여우가 저를 이끌려고 옷자락을 물고 낑낑대. 날 어딜 그렇게 데려가려고 하니. 안쓰럽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따라가봐. 눈밭을 헤쳐나가는 솜뭉치가 안쓰러워서 안아주고 싶은데, 그랬다가는 또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는데다가 여우한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하는수 없이 새끼 여우를 따라가는데 모르던 길이 나타나서 신기하지. 옛날에 선황후의 무덤 옆에 죽치고 살아서 길은 다 안단 말이야. 이런 길이 있었다고? 싶은 길이 나타나.



길을 처음 닦은 것처럼 울퉁불퉁하고, 고르지도 않는데다 심지어 바르지도 않고 약간 비탈진 길이야. 황궁 내에 이런 길이 있었나? 더군다나 톰의 무덤 옆에 이런 길이 있었다고? 사당과 무덤은 그리 멀지 않기 때문에 사당을 자주 찾았던 황제는 이게 꿈이라 현실의 길과는 다른거라 짐작해. 인부들이 흙을 날라다 봉분을 만들었을테니 이런 고르지 않고 비탈진 길로는 흙을 나르기 어려웠을거야. 아무래도 꿈이라서 그런가봐. 그걸 증명하듯이 길은 여전히 울퉁불퉁한데, 눈으로 덮여있던 길이 점점 본래 제 색을 되찾아가. 눈이 없어지고 흙바닥이 드러나지. 동시에 풍경도 바뀌어. 굵은 눈발이 휘날리던 풍경에서 가을로 풍경이 바뀌어. 온통 단풍이 든 나무숲을 지나서, 녹음이 푸르른 숲을 지났지.

그동안 길은 점점 더 험해졌어. 지금까지 지나온 길은 양반이라는듯이 험하게 변한거야. 이거 완전 암벽 등반 아니야? 이거 길 맞아? 산 아니냐고. 저도 이렇게 힘든데 저렇게 조그만 새끼 여우가 어떻게 저렇게 재빠르고 날래게 움직이나 몰라. 이미 눈밭을 한참 걸었는데다가 점점 축축 처지는 몸이 무거워 짜증이 난 황제가 잠시 걸음을 멈추지.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서 헐떡이며 무릎을 짚어. 운동을 좀 할걸 그랬나. 멈춰서서 숨을 고르고 있자니 새끼 여우가 쫑쫑쫑 다가와 재롱을 피우네. 제 뺨을 날름거리며 핥다가 작게 울어. 알아듣지도 못 하면서 괜히 힘내라는 것처럼 들리지.
아마 듣고 싶은 말이어서 그랬나봐. 호박색 눈동자가 깜빡 깜빡거리더니 호선을 그리며 휘어. 여우도 웃는구나. 주저 앉아서 여우의 머리며 등을 살살 쓰다듬고 있자니 여우가 꼬리를 살랑이며 다가와 고개를 숙이지. 처음보는 여우가 친근하게도 구네. 아직 새끼라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없어서 그런가. 잠시 그렇게 쉴 틈을 준 여우는 금세 제 품에서 멀어져 달아나. 아이고, 언제 저걸 또 쫒아간담. 





점점 가파르고 이젠 돌까지 박힌 울퉁불퉁한 길을 걸어가. 저렇게 솜뭉치 같이 작은 여우도 날래게 가는 길인데 왜 이렇게 힘들지. 상식적으로 저 여우가 이상한거 아냐? 다 때려치고 선황후의 무덤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어. 얼마나 남은 길인지 몰라도 걸어온 길이만 생각해봐도 억울해서 못 돌아가지. 씨근덕 거리며 주변을 둘러보면 어느새 주변은 봄의 풍경으로 바뀌어있어. 으레 봄이면 피곤하는 벚나무와 꽃들이 길가에 피어 있었어. 그리고 황제는 확신했지. 계절이 역행하고 있었어. 처음엔 겨울 그 다음엔 가을 그리고 여름을 지나서 이젠 봄이야. 이 여우가 나를 도대체 어디까지 데려가는걸까. 그리고 풍광은 왜 바뀌는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걷는데 저 멀리 익숙한 구조물이 보여. 어라, 저건 톰의 사당인데.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사람은....

순간 숨이 멎었어. 이게 꿈인걸 아는데도, 꿈 속에서 환상을 보는걸 아는데도 믿기지 않아. 처음엔 그게 톰인줄 알았어. 당연히 톰인줄 알았지. 몇 년동안 그리워해도 꿈에서조차 얼굴을 보여주지 않더니. 매일 죽는 그 날만 되풀이하는 꿈만 꾸다가 처음으로 얼굴을 보는건가 싶어 황제는 냉큼 달려갔어. 그리고 깨달았지. 
선황후가 아니었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건 톰이 아니라.... 제이크였지. 그것도 울고 있는 제이크 말이야. 순간 시야가 일렁이다가 일그러지며 강한 두통이 일어. 처음엔 기일이라 톰이 꿈에 나타난줄 알았지만 제이크인걸 알고 나니 이상하지. 왜 꿈에 톰도 아닌 제이크가 나왔을까. 톰을 잃고 제이크를 책봉한건 자신이야. 기일즈음이면 매해 톰의 장례식에 관한 꿈을 꾸었기 때문에 당연히 톰인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어느새 제이크 곁으로 간 아기 여우가 앙! 하고 짖어. 사당 근처에서 울고 있는 제이크와 저를 여기로 이끌었던 아기 여우. 웃기게도 톰의 무덤에서 출발해서 톰의 사당에 이르렀지. 그리고 그 끝엔 울고 있는 제이크가 있고. 울고 있는 제이크에게 저를 데려오려고 그렇게 애를 썼구나. 혹시 이 길은 제이크에게 향하는 길이 아니었을까. 심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황제는 저를 인도해준 아기 여우에게 인사를 하려고 다가가려 했지만 그 순간 다시 이명이 울리는 바람에 그러지 못 했어. 앙! 아기 여우가 다시 한 번 짖자 황제는 심장이 철렁 내려 앉아. 잠들기 직전의 기억이 떠올랐거든. 어떡하지. 황후에게 큰 일이 생겼는데. 앙! 다시 한 번 여우의 구슬픈 울음소리와 함께 황제는 깨어났지. 



소스라치게 놀라며 깨어난 황제가 침상을 박차고 일어났어. 벌써 아이를 낳았으려나. 아니면 무슨 일이 생겼으려나.












한달이 흘렀어. 원래도 황제는 직접 아이를 돌보는 법은 없다지만 황제는 아예 아이를 보려고 하지도 않았지. 그 때문에 황실의 웃어른들이 난리가 났어. 드디어 고대하던 적자가 태어났고 후사가 생겼는데, 그래도 한 번은 안아보셔야 하지 않느냐고 난리였지. 사실 선황후의 일이 없다면 더 난리를 쳤을텐데 선황후 일도 있고 해서 그런지 생각보다는 잠잠했어. 생각보다는. 그래도 한 달이 다 되어가도록 태어난 원자에게 이름도 지어주지 않다니 이건 말이 안 된다며 신하들이 목소리를 높였지.  

보통 원자의 이름은 태어나기 전에 정해두는 편이지만 황후가 태어나면 어울리는 이름으로 지어주고 싶다고 해서 황제는 특별히 미뤘어. 태어난 아이를 보고 직접 지어주고 싶다고 해서 아직 이름도 생각해두지 않았는데. 이럴줄 알았으면 미리 이름을 지어둘걸 그랬나 싶기도 해.
차라리 황후를 닮은 구석이 한 군데라도 있었다면 좋았을까? 눈 색깔이나 생김새가 저와 판박이라 황후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어. 녹음을 닮은 푸른 눈동자도 아니고 저를 닮은 갈색 눈동자에 짙은 곱슬머리. 성별이나 형질은 아무래도 좋으니 황후를 닮기를 내심 바랐는데 황궁 한 복판에 떨구어 놓아도 제 판박이야. 안 그래도 저를 닮은게 아쉬운데 제이크마저 그렇게 되버렸으니.



태의 말로는 발견자체가 너무 늦었기 때문이래. 자다가 하혈을 시작했을텐데, 본인도 그걸 너무 늦게 알아차렸고 혼수상태에 빠졌기 때문에 자신의 상태를 알리지 못 했을거라고. 궁인들은 황후가 일찍 잠들었다 생각했으니 당연히 잠을 깨우지 않으려고 근처에 가지 않았다는거야. 황제 또한 궁인들에게 죄가 없다고 생각해. 윗전이 잘못되면 아랫것들까지 모두 죽임을 당하는 경우가 왕왕 있어. 이게 다 저희의 불찰이라며 벌벌 떠는 이들을 치죄할 생각은 들지 않았어. 사실 아무런 생각이 안 들었다는게 옳겠지. 그래서 이 모든 일을 되돌릴수만 있다면 황제는 열명이고 백명이고 목을 베었을테니까. 

차라리 힘들더라도 황후를 제 옆에 두었어야 했을까. 그렇다면 이상을 바로 알아차렸을텐데. 황후를 위하는 마음이 이 파국으로 이끈 것일까? 후회로 점철된 몇 년을 보내놓고 이제는 또다른 후회를 시작해야 하다니. 그렇게 조심했는데, 그렇게 신중을 기했는데. 내일부터 불침번 당직을 설 명단까지 만들어놨는데 하루가 모자라서.




황후가 후사를 낳고 그대로 혼수상태에 빠져버린 덕분에 황궁은 냉궁이 따로 없었지. 선황후 때는 이런 일이 처음이라 다들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저 숨죽여 지내기에 바빴는데, 똑같은 일이 두번째잖아. 거기다 하필 같은 날에 똑같이 생긴 사람이 똑같은 이유로 그리 되었으니 황궁 내 분위기가 흉흉해지다못해 아주 그냥 얼음장같이 변해버렸지. 반쯤 정신줄을 놓은 황제가 황후 곁을 떠나려고 하지 않아서 얼마나 애를 먹었나 모랄. 몇 년만에 똑같은 일을 당한 황제는 정작 황후가 낳은 아이에겐 관심도 없었어. 그러다보니 한 달 동안 원자는 이름도 받지 못 했지. 굳이 안 주려고 했던건 아니야. 태감의 조심스러운 권유에 확인해보니 원자의 이름을 짓지 않았다며 상소문이 한가득 쌓여 있었거든. 

사실 그마저도 황제에겐 중요한 일이 아니었어. 그깟 이름 좀 나중에 받으면 어때. 한 달정도 일찍 태어난게 뭐 대수라고. 아직도 읽어주지 못 한 편지가 저렇게 많이 쌓여있는데. 딱히 의도한건 아니지만 예상한 출산일이 약 한 달 정도였단 말이야. 하루에 두 장씩 읽어주면 백통의 편지를 모두 읽게 될거라 그리 생각했는데 정작 들어야 할 황후가 혼수상태가 되어버렸으니 읽어줄 편지가 줄어들지 않고 계속 쌓여있을 수 박에. 



마음 같아서는 하루 종일 황후 곁을 지키고 싶었지만 황제에겐 그런 여유는 사치야. 어쨋든 아이는 무사히 태어났으니 이름 짓는게 뭐 그리 대수인가 싶어. 황후가 눈을 한 달이나 못 뜨고 있는데 지금 그게 대수겠어. 그 말은 한 달동안 황제가 아이를 보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지. 황후의 적자이자 장자이기 때문에 따로 원자 책봉을 할 필요도 없이 자동적으로 원자에 책봉됐어. 어차피 평생 이름보다는 직위로 불릴텐데 이름이 뭐 그렇게 중요한가. 내가 안 불러줘도 어차피 알아서 잘들 원자라고 부르면서. 몇 년 뒤면 태자전하로 불릴텐데 뭣하러. 괜한 분노의 불똥이 엉뚱한데로 튀고 있다는걸 알면서도 분노를 금할 길이 없어. 그나마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서 황후 곁에서 손을 잡고 잠드는게 황제의 낙이야.

황후가 눈을 뜨지 않은 지 벌써 한 달이 지났어. 죄책감과 후회가 황제를 좀먹었어. 어느날 새벽에 했던 자책이 떠올라. 황후로 책봉하지 말 걸. 그러면 이런 일이 안 벌어졌을텐데. 차라리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황제의 후회는 거기까지 올라갔지. 후사를 이어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에 그랬을까. 아니면 역시 저를 오랫동안 좋아하느라 심병이 나서 그런걸까. 조금만 더 일찍 발견했더라면, 사당에서 조금만 더 일찍 돌아왔더라면 황후를 구할 수 있었을까. 불행중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그나마 제이크는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어쩌면 똑같이 생긴 사람들이 똑같은 이유로 똑같은 날에 비슷한 처지가 될 수 있을까. 




꿈에서 본 아기 여우가 정말로 우리 아이일까. 그러고보니 태명이 아기 여우였지. 아비가 멍청하게 알아보지도 못 하고, 멍청하게 춥지나 않을까 걱정만 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무덤 앞에서 떠나려고 하지 않는 저를 이끌어준건 분명 그 새끼 여우야. 꿈에서 그 어린게 저를 깨운답시고 이리저리 고생했던걸 떠올리면 마음이 묵직해져. 물론 그저 단순히 꿈일수도 있고, 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수도 있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말이 안 되는 일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그 아기 여우가 정말로 저를 깨우러 온 것 같단 말이지. 극적인 순간에, 마지막으로나마 황후와 인사를 할 수 있게끔 도와준게 아닐까. 실제로 아까 그 때가 아니었다면 황후와 제대로 된 대화는 선황후의 기일 전날 밤이 되었을테니까.

오랜만에 꾸는 꿈이라 만성적으로 그 당시라고 생각했나봐. 꿈 속에서 시간 감각을 잃어버리기라도 했는지 제이크에 대한 생각은 전혀 나지 않았거든. 꿈을 꾸는 시점이 언제가 됐든 늘 선황후의 장례에 대한 꿈을 꾸니까, 습관적으로 그 당시라고 생각했나?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보통 현실에 대한 자각은 있었거든. 가령 이 지긋지긋하고 그리운 꿈을 또 꾸는구나 싶으면서도 어제 정무를 너무 오랫동안 봐서 피곤해서 꿈을 꾸나? 이런 생각은 들었단 말이야. 하지만 이번 꿈 속에서는 현실에 대한 자각도 전혀 없었고 당연히, 이 꿈에서 빨리 깨어나 황후의 상태를 살펴야 한다는 생각도 없었어. 그저 장례식 그 당시의 기억에 매몰되어 있었지. 




자그마치 한 달이야. 그 말은 황제가 불면증을 앓게 된 지 한 달이 됐다는 소리지. 매일 밤 황제는 황후 곁에 잠들었어. 자신이 없는 곳에서 또 황후가 잘못되는걸 이제는 견디지 못 할 것 같거든. 
















여전히 꿈 속이야. 제이크는 잃어버린 아기 여우를 찾고 있었어. 제 두 손바닥을 겨우 넘을만큼 작았던 여우야. 조금전까지 저를 끌고 가려고 낑낑 거렸는데 어딜 갔지? 그러고보니 어느덧 물 속이 아니야. 그건 좋은데 이번엔 옷이 문제였지. 혼례식때 입었던 혼례복을 입고 있는거야. 치렁치렁하다못해 바닥에 질질 끌리는 옷을 입고 걸으려니 안 그래도 힘든데, 거기다가 길까지 험하고 엉망진창이야. 흙길에 커다란 자갈이 군데군데 박혀있어서 길이 험악하기가 그지 없었지. 혼례복을 입었던 그 해의 겨울처럼 풍경도 똑같이 겨울이야. 소복하게 내린 눈밭은 앞이 어딘지 뒤가 어딘지 구분도 하기 힘들게 만들었어.

그 사이에 내가 길을 잃었나? 잠시 멈춰서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자니 저 멀리서 솜뭉치가 달려와. 앙! 저 멀리서 그 짧은 다리로 열심히도 달려오지. 어쩜 이렇게 작은 솜뭉치 같은게 다 있을까. 이렇게 작은게 자라서 흔히 아는 여우가 되는걸까? 이렇게 작은데? 다리가 아플까봐 안아주려고 하면 쌀알같은 발톱이 허공에서 바둥거려. 알았어. 너 따라갈게. 



 
머리로는 잠시 쉬어가고 싶은데 마치 누군가 제 몸을 멋대로 움직이고 있는것만 같아. 풍경은 혼인식을 치렀던 초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되었지. 겨울이 가서일까? 매서운 추위가 지나고 나서 봄이 온 덕분에 추위는 그나마 없어졌지만 그만큼 거추장스러운 혼례복은 불편하기만 해. 길은 여전히 험하고 가팔라서 걷기 힘들고 하필 혼례복에 맞춘 신발이라 운신하기에도 편하지 않은 신발이야. 보기에만 예쁜 신발이지 막상 신으면 불편한데 왜 하필 이런 차림인지 몰라. 꿈이니까 좀 편하면 좋았으련만. 저보다 한참 작은 아기 여우는 어떻게 저렇게 날래게 움직일까 싶어. 


풍광이 녹음이 우거진 여름으로 바뀌고 나니 봄은 양반이었어. 그나마 길은 좀 평평해지고 군데 군데 박혔던 자갈들도 사라졌지만 땀이 비오듯 쏟아졌어. 뙤약볕 아래서 몇겹의 혼례복을 입고 걷자니 짜증이 안 날 수가 없어. 꿈인걸 알지만 깨지도 않고. 이상하네, 이쯤 시간이 지났으면 아침이 오지 않았으려나? 나를 아무도 안 깨우나? 꿈 속에서는 시간의 개념이 없어. 걷는 속도에 바뀌는 퐁경이 신기하긴 하지만 이젠 그것도 짜증나. 뙤약볕 아래서 이렇게 걷기가 힘든데 저 어린 여우는 어떻게 지치지도 않고 걷는거지? 좀 쉬었다 가려고 길바닥에 털썩 주저 앉으면 기가 막히게 알아채고 돌아와서 깽깽 짖어. 어딜 그리 급히가야 한다고 서두니. 어차피 누군가 나를 깨울 때까지 꿈은 깨지 않을것 같은데 너도 좀 쉬었다 가.

아르르 거리는걸 무시하고 답싹 안아들어서 품에 껴안고 길바닥에 누워버렸지. 나름 나무 그늘가를 찾아서 자리를 잡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이상하게 길가를 벗어날 수가 없거든. 저 멀리 산도 보이고 들판도 보이는데, 길가를 벗어나려고 하면 신기하게 다시 길가로 돌아와버려. 어린 여우는 앵앵 우는 소리를 내며 가슴팍을 박박 긁지. 아야야. 아픈척을 하면 미안한건지 아니면 제가 아픈거라 생각하는건지 박박 긁기를 멈추었고.  
그렇게 오래 걸었는데도 안 지치나봐. 여우를 가까이서 볼 기회가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털이 주황색이라는건 알아. 흙색을 띄는건 어린 새끼 여우들이 보호색을 띄는거고 성체가 되어갈수록 주황색털이 되어간다는 것도 알고. 그러니 밤색에 가까운건 분명 한참 어리단 뜻이야. 태어난지 두달은 됐을까? 털도 민들레 홀씨마냥 보송보송한 솜털이야. 익히 하는 '모피' 같은 느낌이라고는 전혀 없어. 너는 날 어딜 그렇게 데려가려고 하니.


안아든채 빤히 여우를 쳐다보자 붉은 혀를 빼꼼 내밀어 뺨을 핥아. 처음 보는 여우인데도 이상하게 친근감이 들어서 쳐다봐. 우리 만난적 있니? 코 끝을 톡 치자 간지러운듯이 눈을 접으며 찡긋거리게 귀여운데, 그것과는 별개로 누워서 그런지 잠이 또 솔솔 쏟아져. 꿈을 꾸면서 꿈에서도 졸리다니 이상한 일이야. 잠이 솔솔 몰려오는데 또 귀신같이 알아차린 아기 여우가 좀 전까지 할짝이던 뺨을 또 앞발로 탕탕 내리치지. 아야야. 거 참. 잠 좀 자면 무슨 큰일이 난다고.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아기 여우는 제 품을 달아나 쪼르르 달아나. 





풍경은 겨울, 봄, 여름을 거쳐 가을이 됐어. 온 세상이 붉고 노랗게 물들었지. 그동안 길은 점점 바르고 고르게 변해. 험하고 거칠었던 길이 그나마 고르게 변하자 걷는것도 쉬워졌어. 봄의 풍경에는 길바닥에 꽃잎이 수북하게 깔렸는데 이젠  울긋불긋하게 물든 나뭇잎이 깔렸지. 처음엔 혼인식을 올렸던 초겨울부터 시작된 여정이 가을까지 이어진거야.  
바닥에 수북하게 깔린 알록달록한 색깔의 나뭇잎의 향연에 생일날 호숫가에서 띄웠던 그 불빛이 떠올라. 황제가 저를 위해 백가지의 소원을 써서 백개의 연등을 띄운 날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 할거야. 새카만 하늘 위를 수놓던 수많은 색색깔의 연등과 연등에 달린 소원쪽지들이 아름답게 휘날리며 하늘을 수놓았던 밤. 가장 행복한 날일거야. 


길가에 멈추어서서 회상을 하려고 하면 아기 여우가 득달같이 쫒아와서는 옷자락을 물고 늘어져. 흙바바닥에 더러워지고 쓸렸는데 아랑곳 하지 않고 무는거야. 지지야, 지지! 손을 떨어뜨리려고 하면 오히려 세게 물고 끌어당겨서 황후는 주춤주춤 발걸음을 옮길 수 밖에 없어. 그러면 아기 여우가 떨어지거든. 알았어, 알았어. 한 눈 안 팔고 잘 쫒아갈게.

아쉬운듯이 늦가을날의 호수를 지나치면 울의 풍광이 시작돼. 다행이 눈발은 날리지 않지만 어느새 소복하게 쌓인 눈길에 다시 걷기가 불편해져. 길바닥 자체는 고르고 평평하게 변했어. 맨 처음 겨울로 시작할 때는 추웠던것 같은데 이젠 춥지도 않아. 반듯하고 고른 바닥은 마치 황궁의 흙바닥 같이 고른 평지로 변해버린 길을 걸었지. 그러고보니 이 길의 끝은 어딜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어.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뀔 동안에도 들지 않았던 생각이지.


이 길의 끝에는 뭐가 있을까. 혹은, 끝이 나기는 할까.


의문을 품은채로 작게 찍힌 여우의 발자국을 따라 사박 사박 눈 위를 걸어. 이제 어렴풋이 이 길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겠어. 소복히 쌓인 눈길의 끝에 드디어 다달았어. 저 끝에는 한 눈에 봐도 선황후의 사당이 있었지. 그리고 그 끝에, 자신이 늘 기다리던 사람이 서 있었어. 
황제는 수심에 잠긴 표정으로 사당을 바라보고 있었지. 불러도 될까. 혹시나 상념에 잠겨서 제 목소리는 안 들리지 않을까. 사당을 보니 멋대로 사당에 발을 들였던 날이 떠올라. 사실 그 때 너무 당황하고 무서워서 황제의 얼굴이 잘 기억 안 나. 얼음장 같던 목소리는 기억나는데, 표정이 어땠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 막연히 화가 나셨겠지 생각했는데, 저렇게 슬픈 얼굴을 하고 있으셨나. 혹시 사당에 비가 들이쳐서 초상화가 망가질까봐 걱정이 되셨나. 아직도 그 때 일을 떠올리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기분이야. 애정은 없지만 다정하던 황제가 처음으로 크게 화를 냈던 날이지. 화상을 입고 그 귀한 옥체가 상하는 것도 개의치 않고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어 겨우 건진 선황후의 마지막 남은 유일한 초상화라 더욱 마음이 쓰였을거야. 


그 사람에게 가는 길이라 이렇게 힘들었나봐. 어느새 아기 여우는 제 몫을 다 했다는듯이 황제의 곁으로 가서 꼬리를 살랑이며 흔들고 있지. 저를 빤히 바라보는게 이리 오라는 것인양. 하지만 황후는 섣불리 황제에게 다가갈 수 없었어. 저렇게 수심에 가득찬 황제에게 무슨 말을 건네야 할 지 모르겠거든. 그러고보니 선황후의 기일이 다가오고 있었지. 그런데 어라? 오늘이 며칠이더라? 기일에 선황후의 제사를 주관하기로 한 것은 황제였지 않나. 그럼 자신은 뭘 하고 있었지? 


누군가 저를 거칠게 흔들어 깨웠던 기억이 나는데. 밤이 되면 황제가 돌아올거고, 수심에 가득찼을 얼굴을 마주하기 그래서 일찍 잠들었는데. 배가 왜 아팠더라? 깨달은 순간 다시 찌르듯이 배가 아파.  









루스터행맨
 
2024.02.13 00:42
ㅇㅇ
내 연휴의 끝을 행복하게 장식해주는 센세ㅠㅠㅠㅠ우리 물만두 황후 대체 무슨 일이야ㅠㅠㅠㅠㅠ아기 여우가 무사히 세상에 나왔나 싶었는데 황후는 혼수상태래..그리고 그렇게 한 달이나 흘렀어..황제는 애타게 황후가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아이는 이름 없는 원자로 남아있고ㅠㅠㅠㅠ아기 여우가 힘냈으니까 황후도 곧 눈 뜨겠지?
[Code: b449]
2024.02.13 00:58
ㅇㅇ
모바일
어떻게 이렇게 동화같이 아름답게 내 찌찌를 뜯을 수가 있어요 센세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기 여우가 쌀알같은 이빨로 앙앙대는 게 없었으면 두 사람이 그 멀고 궂은 길을 갈 수 없었을 텐데 결국 사계절을 지나서 만나게 되는 거 진짜ㅠㅠㅠㅠㅠㅠㅠㅠ 물만두 얼른 깨어나서 황제랑 오손도손 원자 이름도 짓고ㅠㅠㅠㅠㅠㅠ 편지도 마저 읽어야지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하ㅠㅠㅠㅠㅠㅠㅠㅠ 제발 무사히 일어나줘라ㅠㅠㅠㅠㅠ 매일 밤마다 잠든 황후 옆에서 마음 졸일 루황제도 너무 안쓰럽다ㅠㅠㅠㅠㅠㅠ 자는 건지 떠난 건지 계속 확인해볼 거 아니야... 하ㅠㅠㅠㅠㅠㅠㅠ 센세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제발 행복하게 해주세요ㅠㅠㅠㅠㅠㅠ
[Code: b4c3]
2024.02.13 01:0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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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제이크 아예 죽은줄알고 심장이 내려앉았음ㅠㅠㅠㅠ 이제 깨어나려고 그러는거지 한달이면 충분히 앓았으니까 이제 일어나겠지ㅠㅠㅠㅠ 그래서 아기도 예뻐해주고 해야지ㅠㅠㅠ
[Code: 1989]
2024.02.13 01:0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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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루황제 심정도 말이 아니겠다 그 난리를 두 번이나... 그래도 깨어나면 제이크 얼굴 어떻게 보려고 아기도 예뻐해줘ㅠㅠㅠㅠ
[Code: 1989]
2024.02.13 01:2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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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크 죽은 줄 알고 심장 떨어졌는데 혼수상태였네 한달이나 심정이 말이 아니겠다ㅠㅠㅠㅠ 황제는 계절을 역행하고 황후는 계절을 따라서 그 길 끝에서 서로를 만나는게ㅠㅠ 제이크 빨리 일어나서 아기여우도 보고 황제도 안아줘 편지도 아직 다 못읽어줬는데ㅠㅠㅠ
[Code: d088]
2024.02.13 01:5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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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제이크 죽은 줄 알고 놀랬쟈너ㅠㅠㅠㅠㅠㅠㅠㅠ얼른 일어나 만두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루황제 쓰러지겠다
[Code: f3b6]
2024.02.13 02:1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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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내 찌찌가 만갈래로 찢어진다ㅠㅠㅠㅠㅠㅠㅠㅠ제이크 일어나줘ㅠㅠㅠㅠㅠ아기여우랑 루황제가 기다린다ㅠㅠㅠㅠ
[Code: 486e]
2024.02.13 02:2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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셍세ㅠㅜㅜㅜㅜㅜ해피뉴이어ㅠㅜㅜㅜ
제이크 이제 눈 뜨겟다ㅠㅜㅜ
[Code: 78e0]
2024.02.13 06:5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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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어서와!!!!!!!!!!!
[Code: 67ce]
2024.02.13 08:4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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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이나 누워있었구나ㅠㅠㅠㅠㅠ 루황제님 제이크 한달동안 누워있었지만 죽은거 아니잖아 빨리 아기여우 보러가야지 뭐하시는거예요ㅠㅠㅠ 안되겠다 제이크가 빨리 자리털고 일어나야지 루황제도 정신차리고 아기 이름도 지어주지.. 제이크 일어나ㅠㅠㅠㅠㅠ 아기여우 혼자 이쪽 저쪽 고군분투하네 쪼끄만게ㅠㅠㅠㅠㅠ
[Code: 007d]
2024.02.13 08:4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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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센세가 있어서 평일도 견딜만해졌어.. 사랑해ㅠㅠㅠㅠㅠ
[Code: 007d]
2024.02.13 19:4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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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만두 행복하게 해주세요 ㅜㅜ
[Code: 9bf0]
2024.02.20 15:3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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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아 센세 뒤늦게 따라가면서 오열한다ㅠㅠㅠㅠㅠㅠㅠ 제발 황제 내외 행복하게 해주세요ㅠㅠㅠㅠㅠㅠㅠ
[Code: e142]
2024.03.07 10:4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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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일어나!!!!ㅠㅠ
[Code: 47f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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