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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0 22:37







03. 루크

 

 

 

 

 

 

아이를 피신시켰다. 일련의 사정을 설명하는 편지를 동봉해 아이의 품에 넣었다. 레아는 그 편지를 읽고 루크를 이해해줄 유일한 사람이었기에 아이를 레아에게로 보내기로 했다. 아이를 보내기로 결정한 건 기억이 드문드문 끊기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아이는 자신의 도피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 보였으나 루크의 간절한 부탁에 결국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순하게 자신을 올려다보는 아이를 마지막으로 온전히 품어보았다. 따스하고 말캉한 체온이 느껴진다.

 

 

 

살아있었다.

 

 

 

아직까지는.

 

 

 

 

 

 

 

 

 

-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처음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변화에 편승하지 못했을 때, 우울이 터진 둑처럼 자신의 정신을 장악하는 걸 느꼈을 때부터 그는 스스로의 파멸을 예감했다. 모두가 있는 곳에서 주저앉을 순 없었기에 그는 도망치듯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한적한 곳에 자리했다. 이곳이 그의 무덤이었다. 차라리 그렇게 되길 간절히 바랬다.

 

 

 

루크는 모든 기력이 쇠퇴한 늙은 노인처럼 사원의 한 구석에 박혀 느리게 생을 유영했다. 삶이 되지 못한 채 짧은 들숨과 긴 날숨으로 생을 직조했다.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 막막한 어둠 속을 한참동안 그렇게 배회했다.

 

 

 

루크. 넌 도움이 필요해.”

 

 

 

레아는 그렇게 말했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그는 도움을 요청할 손을 뻗을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불타고 남은 도시에 휘날리는 잿더미처럼 조용히 가라앉는다. 이대로 잠들 듯 영원토록 깨어나지 않는다면 제 뒷덜미를 끊임없이 채가는 악몽을 완전히 떨쳐낼 수 있을 텐데.

 

 

 

<우릴 도와주세요.>

 

 

 

어둠 속에서 불현 듯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의 목소리였다. 담담하지만 절박하고 무엇보다 생을 향한 열망으로 찬란히 빛나는.

 

 

 

<저는 힘이 필요해요.>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던 루크가 그 목소리에 부응하듯 서서히 눈꺼풀을 밀어 올렸다. 푸른 눈이 창문을 여과한 햇빛을 머금고 완전히 열렸다. 포스의 부름이었다.

 

 

 

 

 

 

 

 

 

-

 

 

 

 

 

 

 

 

 

우리. 루크의 마음을 움직인 건 그 단어 하나였다. 나와 너. 결코 단일 되지 않는 것. 잿더미처럼 가라앉은 회색빛 세상에 작게 불씨를 틔운 건 그보다 작은 호기심이었다. 너는 누구를 그토록 지키고 싶어 하는 걸까. 공포조차 이겨낼 정도로 지키고 싶은 사람은 누구일까?

 

 

 

마침내 바위처럼 묵직한 몸을 일으키며 루크는 이곳에 온 이후 처음으로 심장이 박동하는 걸 느낀다. 어떻게 보면 기분 좋은 울림이기도, 어떻게 보면 기분 나쁨 술렁임이기도 했다. 뭐가 됐든 일단은 만나보자고, 루크는 만남과 외면의 갈림길에서 선택한다.

 

 

 

당신을 만나는 것을.

 

 

 

 

 

 

 

 

 

-

 

 

 

 

 

 

 

 

 

갈색 눈망울이 물기를 머금고 아래로 떨어진다. 발치에 있던 아이는 두 손을 뻗다가 이내 방으로 들어온 R2에게로 향한다. 아이는 영민했다. 떠날 시간임을 알았던 아이는 스스로의 미련을 억지로 끊어내며 그에게로 향했다. 루크는 아이를 들어 올리곤 갈색 눈을 마주했다. 물기가 가득 머금어진 눈은 그러나 단단하고 차분하게 그를 직시한다. 루크는 잠시 그 눈을 마주보다가 이내 몸을 돌려 그 방을 나왔다.

 

 

 

기분이 이상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예감이 그의 가슴에 불안의 파고를 일으킨다. 루크는 미약하게 미간을 찌푸리다 이내 평온을 되찾았다. 뭐가 됐든, 다시는 볼 일 없으리라.

 

 

 

 

 

 

 

 

 

-

 

 

 

 

 

 

 

 

 

제다이의 예감은 예감이 아닌 예지와도 같음을 간과한 것이 첫 번째 잘못이었다. 그는 알았어야 했다. 이 만남이 훗날 그를 어떻게 뒤흔들 것인지, 그리하여 충돌된 두 삶이 어떤 궤도로 삶을 이탈할 것인지.

 

 

 

알았어야 했다.

 

 

 

 

 

 

 

 

 

-

 

 

 

 

 

 

 

 

 

아이의 그리움을 허락한 게 문제였을까, 그 갈색 눈을 마주하며 어쩌면 자신도 어떻게든 살 수 있으리라 희망한 게 문제였을까. 그도 아니면 당신이 나를 좋아해도 되냐는 허락에 그저 눈물만을 흘린 채 외면한 게 문제였을까. 문제가 너무 많아 자꾸만 과거를 더듬으며 가정해본다. 이러지 않았더라면, 저러지 않았더라면. 거슬러 올라가 끝내 하나의 선택에 귀결한다.

 

 

 

애당초 만나지 않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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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달로리안은 참 이상하고 어색한 존재였다. 첫 만남이 마지막 만남일거라 섣불리 판단한 게 우습도록 그는 참 꾸준히도 사원을 방문했다. 표정을 알 수 없이 언제나 베스카 갑옷으로 온 몸을 무장한 채, 그는 그로구를 위해 꼬박꼬박 아이에게 줄 선물을 포장해왔다. 나아감에 거침이 없는 그 단정한 걸음걸이는 어느 새 루크에게 있어 꽤 익숙해진 일상의 소음이었다.

 

 

 

시간이 늦어 하룻밤을 허락한 것 뿐 이었는데, 꽤나 뻔뻔한 만달로리안은 일주일이 넘도록 떠나지 않고 사원에 머물렀다. 밤마다 살금살금 문턱을 넘어 제 머리맡을 지키는 것을 보면 헛웃음이 다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대체 누가 누굴 지킨단 말인가. 다크 트루퍼 한 대 조차 쩔쩔매며 겨우 처치한 그 이는 밤마다 팔짱을 낀 채 엄숙한 모습으로 그의 잠자리를 지켜보았다.

 

 

 

짜증이 난다. 신경이 쓰여 미칠 것만 같다. 그냥 내쫓으면 그만인데. 우습게도 이제 그만 떠나시라는 말을 하려고 그의 앞에 서면 입에 아교라도 붙인 듯 그 말의 어두조차 떼어지지 않는다. 그저 입술만 질끈질끈 씹다가 뒤돌아서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 날도 여느 때와 같은 날의 밤이었다. 지긋지긋한 악몽의 한복판에서 루크는 타는 듯한 가슴을 움켜쥐며 몸을 한쪽으로 웅크리곤 고통의 여파가 멎길 한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실체가 있는 적이라면 차라리 가슴 한 켠을 내어주고 온전한 평화를 누릴 텐데. 질끈 감긴 눈꺼풀 안 쪽에서 자꾸만 그 밤의 노랫소리가 그를 스친다. 어떤 기억은 잊고 싶어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해지는 법이다.

 

 

 

“--.”

 

 

 

그 밤. 그 공허한 밤에 불현 듯 낯익은 목소리가 낮은 허밍을 그리며 적막을 채운다. 낮게 이어지는 목소리는 드문드문 끊기기도 하고, 잠시간의 침묵을 지키기도 했지만 이윽고 온전히 완성된다. 루크는 고개를 돌려 팔짱을 낀 채 의자에 앉아 다시금 침묵을 지키는 그를 올려다본다. 당신은 왜 내게 이토록 상냥할까. 의문은 그러나 의문으로만 남을 뿐이다. 어쩌면 그건 뻔히 보이는 미래를 어떻게든 회피하고자 하는 어리석은 발악이었을지도 모른다.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실체를 가지고 현실에 안착한다. 루크는 그 현실을 마주하기가 두려웠다. 이 두려움이 어디서 기인하였는지, 그는 알았으나 침묵했다. 대신 루크는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그에게 묻는다.

 

 

 

원래 가사가 없는 노래인가요?

 

 

 

 

 

 

 

 

 

-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감정이라면, 그 모든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터다. 아니킨과 파드메. 어머니와 아버지 또한 그러했을까. 어떻게든 멈춰 세우려 노력했지만 사실 그건 개인의 힘으론 해결할 수 없는 재앙과도 같음을, 그들 또한 알았을까. 죽은 자는 말이 없으므로 그 의문에 해답은 영영 알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짐작해볼 따름이다. 그들 또한 제 눈 앞을 덮치는 폭풍우를 알면서도 피할 수 없었을 거라고.

 

 

 

 

 

 

 

 

 

-

 

 

 

 

 

 

 

 

 

감정은 거침없이 흐른다. 현실에 안착하지 못하고 그저 가슴 속에서만 끊임없이 범람한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스스로가 인정하지 않은 그 감정이 밖으로 뛰쳐나오지 않도록 홀로 둑을 세우는 것뿐이다. 다행히도 루크는 그 일을 꽤 잘했다. 이전보다 자주 웃게 되었고, 악몽 또한 더는 그를 괴롭히지 않았지만. 그는 언제나 그들에게서 한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일정한 궤도를 그렸다. 더 멀어지지도 않고 더 가까워지지도 않은 채로. 이 정도의 거리라면 괜찮을 거라 생각하며.

 

 

 

 

 

 

 

 

 

-

 

 

 

 

 

 

 

 

 

때때로 만달로리안은 그의 눈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그때마다 루크는 머쓱하게 눈길을 피하거나 딴청을 부리며 그 시선을 피하곤 했다. 그 날도 그러했다. 얼어붙을 만큼 추운 겨울의 어느 날, 나뭇잎이 떨어져 앙상한 나뭇가지마다 전날 내린 함박눈들이 흰 옷을 입은 듯 소복이 쌓여있었다. 안개처럼 흩어지는 입김사이로 만달로리안은 루크의 앞에 서 있는다. 좋아한다고 했던가, 사랑한다고 했던가. 대지에 두껍게 쌓인 눈 더미들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묵직하게 발목을 짓눌렀다. 덫에 걸린 짐승처럼 루크는 꼼짝도 못한 채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만달로리안을 응시했다.

 

 

 

봄은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당신은 이미 봄의 한복판에 서 있는 것처럼 찬란하게 빛이 난다.

 

 

 

루크는 웃었다. 그 웃음을 본 만달로리안은 흠칫 놀라더니 이내 한 발자국 그에게서 멀어졌다. 그는 답하지 않고 그저 웃으며 그에게서 멀어지는 만달로리안을 바라보았다. 뜨거운 눈물이 양 뺨을 적시고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한 발자국 멀어진 만달로리안은 이내 중력에 이끌리듯 두 발자국 가까워져 온다.

 

 

 

루크.”

 

 

 

양 뺨을 조심스레 움켜쥐는 그 뜨거운 체온에 루크는 모든 것을 토로하고 싶어졌다.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이곳을 그의 마지막 정착지로 선택했던 이유를, 아나킨과 파드메를,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오비완의 마음을, 자신을 걱정하는 레아의 눈에 언뜻 비친 두려움을. 모든 것을 고백하고 그의 품에 안겨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다. 당신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살아지고 싶어진다고. 죽고 싶어지지 않는다고.

 

 

 

미안합니다.”

 

 

 

그러나 그는 제다이였고.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애착은 언제고 상실을 부르기에.

 

 

 

만달로리안의 손이 힘없이 양 뺨에서 떨어져 나간다. 베스카 갑옷을 입고 있어 그의 표정이 보이진 않지만 요동치는 포스로 인해 그의 진심은 느껴졌다. 루크는 다시 한 발자국 그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공전하는 밤하늘의 별처럼 그 또한 그들 곁에서 같은 궤도를 그리며 머무는 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했다.

 

 

 

. 그 얼마나 어리석은 판단이었는지.

 

 

 

 

 

 

 

 

 

-

 

 

 

 

 

 

 

 

 

만달로리안이 떠났다. 당연한 일이다. 거절당한 상대와 함께 지내는 건 아무리 무던한 그라도 힘에 부치는 일일 터다. 루크는 납득했고, 이해했다. 변하는 건 없었다. 그는 여전히 제다이고, 그로구를 가르쳤으며, 텅 빈 사원에 남아있었다.

 

 

 

변하는 건 없을 터다. 늘 그렇듯, 그는 다시 돌아올 것이므로.

 

 

 

 

 

 

 

 

 

-

 

 

 

 

 

 

 

 

 

당신은 봄에 떠났다. 어떤 작별 인사도 없이, 그저 홀연히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따스한 봄 바람이 창문 너머 흘러들어오던 날, 작은 쪽지에 건강히 잘 지내시라는 마음 한 조각만 덩그러니 남겨놓은 채 사라졌다. 루크는 그 쪽지를 오랜 시간 내려다보았다. 그 한 글자 한 글자를 눈에 담아보며 그의 마음을 되새겨 본다.

 

 

 

나는 당신을 얻은 적조차 없는데.

 

 

 

당신을 영영 잃어버린 것만 같다.

 

 

 

 

 

 

 

 

 

-

 

 

 

 

 

 

 

 

 

루크는 눈을 뜬다. , 또옥 소리를 내며 팔을 타고 내려온 핏물이 손끝에서 방울져 떨어진다. 바닥에 웅덩이진 핏물이 붉은 거울처럼 그를 비춘다. 푸른 눈이 언뜻 노랗게도 보이는 듯하다. 루크는 허망하게 자신의 방 안을 둘러본다. 거울은 산산조각이 나 방 안 여기저기 무수히 많은 파편으로 흩어져 있다. 당신이 고친 의자는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버렸다. 손바닥을 깊이 베였는지 욱씬거리는 통증이 손끝을 타고 올라온다. 바닥에 흩뿌려진 거울 파편 위로 루크의 얼굴이 수십 개로 조각나 보인다.

 

 

 

..하하..

 

 

 

루크는 웃었다. 웃으며 울었다. 그러나 겨울의 어느 날처럼, 그의 눈물을 닦아줄 다정한 손은 존재하지 않았다.

 

 

 

 

 

 

 

 

 

-

 

 

 

 

 

 

 

 

 

폐부를 찢는 봄의 훈풍이 루크의 숨통을 죄인다. 그는 작살에 궤인 물고기처럼 깊게 숨을 들이쉬다 얕게 내뱉으며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몸부림친다. 숲의 공터 위로 벨벳처럼 수놓아진 별무리들이 파도처럼 출렁이며 그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린다. 루크는 소리친다. 외침은 그러나 허공으로 안개처럼 흩어진다. 누구도 듣지 못할 진심을 그는 숲의 밤바람에 담는다. 돌아와 줘요. 당신이 필요해요. 외침은 이내 애원으로 변한다. 애원은 이내 흐느낌으로, 흐느낌은 이내 오열로 변한다. 짐승처럼 흐느끼는 그의 등 뒤로 새벽빛이 희미하게 밝아진다. 태양이 붉게 타오르며 지평선 너머로 올라온다. 밤의 시간이 끝났을 때, 루크의 푸른 눈이 발광하는 주홍빛을 온전히 담는다. 그는 이를 악물고 일어선다.

 

 

 

되찾아야 해. 그에게는 이제 그것 외엔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성큼 다가오는 온기를, 그의 유일한 안식을 어떻게 거부할 수 있었을까? 만달로리안이 있었을 때, 그는 더는 밤이 무섭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밤의 시간이 어서 빨리 돌아오길. 느리게 유영하는 낮의 시간에서 벗어나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빠르게 꺾이길 남몰래 바라기도 했다.

 

 

 

그건 이상한 감각이었다. 삶이 제 궤도를 되찾는 감각 같기도 했으며, 온전한 평화가 낮이 아닌 밤에 밀려들어오는 감각 같기도 했다. 한때, 식은땀에 푹 젖어 몸부림치던 침대 위는 이제 평화로운 노랫소리만이 온전히 자리를 차지했다. 루크는 그를 사랑했다. 낮게 흐르는 허밍을, 언제나 곁을 지켜주던 그의 다정한 만달로리안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

 

 

 

 

 

 

 

 

 

돌아오지 않는다. 루크의 시간 또한 그에 멈춘 듯 드문드문 끊겼다가 이어진다. 방 안은 하루가 갈수록 삭막해진다. 어서 빨리 돌아오길. 한 달이 지날 무렵, 그는 낮의 수업조차 잊고 사원의 계단에 앉아 내리 하늘만 올려다본다. 돌아올 것이다. 이곳에는 그로구가 남아있었다. 이곳은 만달로리안이 돌아올 장소였다. 언제나 그는 돌아왔으므로 이번 또한 마찬가지일 터다.

 

 

 

한 달이 두 달이 되고, 두 달이 석 달이 된다. 루크는 여전히 사원의 계단에 앉아 애석하게도 맑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 여름의 하늘은 태양을 정중앙에 걸고 뜨겁게 지상을 달구고 있었다. 루크의 머리카락이 땀에 푹 젖어 흰 이마 위를 가로지른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뜨겁게 익은 계단 위에 앉아 하늘만을 올려다본다. 루크의 노란 눈이 사납게 번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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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피신시켜야 했다. 거의 두 달간 방치당한 아이는 그럼에도 의연하게 그의 곁을 지키고 있었지만. 한계였다. 이제 자신은 그 아이를 이용해 만달로리안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하루가 지날수록 자신의 마음이 검게 물들어가는 것을 그는 무력하게 받아들였다.

 

 

 

맞서 싸울 힘조차 남지 않았다. 눈꺼풀 아래로 힘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고개를 숙인채로 그는 아이를 안는다. 따스하고 말캉한 체온이 품 안에서 느껴졌다. 한때의 희망이었고 지금은 유일한 현실의 밧줄이었다. 그러나 어둠에 잠식되어 가는 그의 곁에 남는다면 언제고 꺾일 여린 생명이기도 했다. 루크는 가까스로 웃으며 작별했다. 다행히도 아이는 영특해서, 모자란 스승 밑에서도 빠르게 지식을 습득했다. 다시는 오지 마. 작게 속삭인 소리가 아이에게 닿았을까. 그는 떨리는 손을 움켜쥐며 행성을 떠나는 비행선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본다.

 

 

 

이곳이 부디 그의 무덤이 될 수 있기를.

 

 

 

눈을 감으며, 그는 어둠 속에서 유일한 구원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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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긋하고 톡 쏘는 향을 가진 허브는 아주 오래전, 그가 이 행성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 찾았던 독초였다. 소량을 사용하면 현실을 잊고 몽롱한 기분에 감싸여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중독성도 없었기에 잠이 오지 않는 날, 차에 소량을 타 마시며 버티기도 했다. 다만, 정량을 어기고 많은 양을 섭취하면 현실이 아닌 환각에 취해 여생을 버릴 수도 있기에 섣불리 사용해선 안 되는 약 중 하나였다.

 

 

 

독초라 명명한 것은 레아였다. 중독성은 없지만 현실을 외면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무엇보다 강력한 중독성을 보일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레아가 옳았다. 루크는 제 손에 쥐어진 약초 한 웅큼을 내려다보며 쓰게 미소 지었다.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모두가 떠난 텅 빈 사원에서 느리게 죽어가는 것도, 더 이상 오지 않는 당신을 한없이 기다리는 일도. 아득히 먼 곳에서 당신의 허밍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선원이 세이렌의 노래에 이끌려 결국 제 몸을 깊은 바다 속으로 던지는 것처럼, 그는 제 손아귀에 쥐어진 죽음을 내려다본다.

 

 

 

환각에 취해 현실을 잊는다면, 적어도 그 스스로가 재앙이 되진 않을 터다. 정량의 수 십배는 거뜬히 넘을 독초를 입 가까이로 가져간다. 향긋한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레이저 크레스트의 착륙음이 들린 건 루크가 느리게 눈을 감았을 때였다. .

 

 

 

당신은 돌아와선 안 되었는데.

 

 

 

그는 눈을 떴다. 푸른 눈이 노란 절망에 물들어간다.

 

 

 

 

 

 

 

 

 

-

 

 

 

 

 

 

 

 

 

왜 돌아온 걸까. 차라리 영영 떠나버렸더라면. 딱 한 발자국 남은 벼랑의 끝에서, 그 깊은 어둠속에 침잠해 들어가기 직전 당신은 돌아왔다. 온 몸이 터져 피 웅덩이를 그 발치에 고이게 만들고선. 마치 잠든 것처럼 조종석에 앉아 있던 만달로리안은 일견 평화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루크는 힘없이 무릎 끓으며 끝내 패배를 시인한다. 그는 만달로리안의 발치 아래로 기어가 그 발끝에 입술을 맞춘다. 둑을 쌓아 올린 제방은 어느 새 터져 폭우처럼 마음을 휩쓸고 현실로 토해진다. 억누른 모든 감정이, 눈물과 함께 유성처럼 쏟아져 내린다.

 

 

 

당신을 사랑해요.”

 

“....”

 

어쩌면 처음부터였을지도 모르겠네요.”

 

“....”

 

왜 돌아왔나요?”

 

“....”

 

제 아버지 아나킨 스카이워커는 다스 베이더예요. 그는 수많은 무고한 자들을 죽였죠. 어머니를 너무 많이 사랑해서..그렇게 되었다고 들었어요. 저는 아버지를 기껏해야 몇 시간 정도밖에 보지 못했죠. 하지만 구하고 싶었어요. 그도 그럴게, 제 아버지잖아요. 저는 아버지의 마음 속에 분명히 남아있는 빛을 봤어요.”

 

“....”

 

모두가 말했어요. 죽여야 한다고. 나만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그거 알아요? 아버지는 저를 지키기 위해 죽었어요.”

 

“....”

 

제 고향을 불태우고, 제 부모와도 같은 존재를 죽인 자가. 제 아버지였어요. 그래서 구하고 싶었고, 그래서 죽이고 싶었어요.”

 

“....”

 

아버지는 저를 사랑했어요. 마지막 순간 저를 담던 눈엔 온전한 애정만이 자리했죠. 묻고 싶었어요. 왜 그랬냐고. 왜 그렇게 쉽게 어둠에 굴복했냐고. 왜 우릴 버렸냐고!”

 

“....”

 

왜 우린 태어나야 했던 걸까요? 나의 운명이 정말 아버지를 죽이기 위해서만 존재한다면, 이후의 제 운명은 무엇일까요? 그들의 희망은 전쟁에서 이기는 거였죠. 우린 이겼어요.”

 

“....”

 

쓸모를 다한 희망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요? 제게 남은 건 텅 빈 미래뿐이었죠. 나는 죽기 위해 이곳에 왔어요. 누구도 모르는 곳에서 모두에게 잊어지며 스러지길 원했죠.”

 

“....”

 

레아는 절 걱정했어요. 어쩌면 현명한 그녀는 이미 알았는지도 모르죠. 나의 어둠이 내 그림자 속에 숨어 있는걸. 그녀는 절 걱정했고, 두려워했어요. 아버지의 수순을 똑같이 밟아 언젠가 제가 변질될까봐. 시스가 되어 세상에 재앙을 몰고 올까봐.”

 

“....”

 

그거 알아요? 아나킨 스카이워커는 포스의 균형을 되찾아줄 선택받은 자로 불리었어요. 그는 강했고, 그 시대에 모두의 기대를 받는 제다이 기사였죠. 그런 그가 어머니를 만났고,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어요. 애착을 경계해야 하는 제다이에겐 치명적인 실수였죠. 어머니를 잃는 꿈을 예지한 그가 미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어요.”

 

“....”

 

“...당신을 사랑해선 안 되었는데.”

 

“...루크.”

 

 

 

딘이 말한다. 한숨처럼 토해진 그의 이름을 가까스로 부르곤 힘없이 자신의 무릎에 얹어진 그의 머리카락을 다정히 쓰다듬는다. 피에 번진 그 손길에 루크의 머리카락도 축축한 붉은 빛으로 물들어간다.

 

 

 

괜찮아요.”

“....”

내가..당신의 곁에 있을게요.”

“....”

미안합니다. 말없이 떠나서.”

“...당신은 정말..”

 

 

 

힘이 다했는지, 만달로리안의 손길이 멎는다. 힘없이 떨어지는 그의 몸을 마주 안으며 루크는 웃는다. 노란 눈 아래로 눈물이 방울져 낙하한다. 이제 그는 스스로를 멈추지 못함을 깨닫는다.

 

 

 

바보예요.”

 

 

 

 

 

 

 

 

 

-

 

 

 

 

 

 

 

 

 

만달로리안의 베스카 갑옷을 벗기고 그의 몸을 치유한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그에게 입 맞추며 향긋한 허브차를 목구멍 안으로 흘려보낸다. 루크는 그의 뜨거운 체온을 원 없이 품으며 웃었다. 우리 모두 잊어요. 현실은 전부 지우고 우리만의 낙원에서 영원히 살아요. 쉼 없이 중얼거리며 그의 옆에 눕는다.

 

 

 

날 버리지 마요.”

“....”

영원히 함께 있어줘요..”

 

 

 

축 처진 딘의 손을 깍지껴 잡아 올려 그 손등에 키스하며 루크는 눈을 감는다. 더는 어둠이 두렵지 않았다.

 

 

 

 

 

 

 

 

 

-

 

 

 

 

 

 

 

 

 

현실을 알게 되면 당신은 나를 떠날까. 매일 그에게 주는 허브차로 그의 기억을 통제했지만, 그럼에도 일말의 불안감은 루크를 좀먹어 들어간다. 이걸론 부족하다는 속삭임이 루크의 인내를 갉아먹는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지나가는 바람을 그 품에 담아두려는 것만 같은 헛됨이다. 몸이 나으면 만달로리안은 떠나겠지. 일전에 그러했던 것처럼 쪽지 한 장만 남겨둔 채 사라질 터다. 루크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렇게 둘 순 없다. 그렇게 두어서는 안 된다. 핏발선 노란 눈이 거울 너머 그를 노려본다. 이대로 다시 잃을 셈이야? 그는 너를 버릴 거야!

 

 

 

아니야!!”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거울이 산산조각난다. 조각난 파편의 그가 비웃으며 자꾸만 말을 건다. 그를 붙잡아 둬야해. 그를 안아. 그를 망가뜨려.

 

 

 

닥쳐! 나는 딘 씨에게 절대로 그런..”

 

 

 

, 루크.

 

 

 

너는 이미 그를 망가뜨렸잖아.

 

 

 

 

 

 

 

 

 

-

 

 

 

 

 

 

 

 

 

괴로워하는 그의 몸을 억누르며 그 속에 파고든다. 그가 희미하게 신음을 흘리며 도리질 친다. 강제된 쾌감에 몸을 떠는 그를 안으며 루크는 웃었다. 이제야 비로소 완전해진 기분이다. 충만감이 텅 빈 가슴을 채운다. 전립선을 짓누르자 딘의 눈이 크게 뜨인다. 붉어진 얼굴이 사랑스러워 그의 입술에 키스해본다.

 

 

 

눈을 깜빡이자 눈꺼풀에 아롱진 눈물이 딘의 얼굴로 낙하한다. 방울져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딘의 양 뺨에 흘러내린다. 물기를 띈 갈색 눈이 순하게 그를 올려다본다. 심장이 쿵,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린다. 걷잡을 수 없는 절망의 화마가 그의 심장을 새까맣게 태운다.

 

 

 

놓아줘야 한다. 자신에게서 멀리 달아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만 한다.

놓아줄 수 없다. 현실에 익사하며 느리게 죽어가는 그의 유일한 갈망이었다.

 

 

 

그로구..”

 

 

 

딘이 말한다.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그에게서 달아나려 몸부림친다. 루크의 눈이 노랗게 발광한다. 그의 목덜미 속에 얼굴을 파묻곤 이를 세운다. 그 피부 결을 거칠게 물어뜯으며 난폭하게 치미는 폭력성을 가까스로 억제한다.

 

 

 

도망가지 마요.

 

내 곁에 있겠다고 했잖아.

 

 

 

움직임이 점점 더 격해진다. 루크는 스스로의 움직임을 더는 통제할 수 없었다. 아파하는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노려보며 그 속에 파묻을 듯 허리를 밀어 넣었다. 이윽고 딘이 크게 경련하며 눈동자가 눈꺼풀 위로 올라간다. 기절한 그를 끌어안고 루크는 숨죽여 흐느낀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딘 씨.

 

 

 

 

 

 

 

 

 

-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

 

당신은 나의 스카이워커가 아니니까.”

 

 

 

 

 

 

 

 

 

-

 

 

 

 

 

 

 

 

 

텅 빈 방 안에서 홀로 눈을 뜬다. 이명이 그의 머리를 뒤흔든다. 혀끝에 향긋하고 톡 쏘는 독초의 맛이 느껴진다. 언제부터였을까. 아이를 기억해낸 바로 그 날부터였을까? 눈 꼬리 밑으로 길게 눈물이 쏟아져 내린다. 가슴이 타들어가는 것처럼 아프다. 구멍이 뻥 뚫린 것처럼 휑하기도 했다. 정신을 잃기 전, 딘이 했던 말이 비수가 되어 루크의 온몸을 뜯는다. 찢겨지는 아픔에 그저 고통스러웠다면 나았을 텐데, 마음 한켠에 자리 잡은 감정은 안도감이다. 이제 당신은 모든 걸 다 알았구나. 멀리 달아나줘요. 내가 찾을 수 없게.

 

 

 

루크는 비척이며 일어선다. 퀭한 눈 밑으로 새까만 절망이 방울이 되어 바닥에 떨어진다. 빛에 이끌린 부나방처럼 그는 사원을 벗어나 딘에게로 향한다. 절벽 끝으로 향하는 걸음을 다시 이끌 수 있는 사람은 그 걸음을 멈춘 자 뿐이다. 당신이 나를 죽음에로부터 구원하였으니 나를 버릴 거면 다시 죽음으로 이끌어 주세요.

 

 

 

이제 나에게 남은 갈망은 그 하나뿐이니.

 

 

 

 

 

 

 

 

 

-

 

 

 

 

 

 

 

 

 

밤의 어두운 장막이 하늘을 뒤덮는다. 새까맣게 물든 하늘 위로 하얀 점처럼 별들이 총총히 빛이 난다. 한 때, 그 별들을 올려다보며 그 사이로 여행을 가는 미래를 그려보았더랬다. 지루한 고향별을 떠나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이면 얼마나 즐거울지, 웃으며 친구들과 함께 웃었던 과거가 까마득히 멀다. 이제 루크는 별들을 올려다보면 검은 강에 익사하는 기분만 들었다. 갈망도, 생에 대한 열망도 모두 희미해져만 간다.

 

 

 

레이저 크레스트는 숲의 중앙에 위치해 있었다. 이 행성에 남은 비행선은 이제 그 뿐이니 좋든 싫든 딘은 이곳으로 올 터였다. 루크는 수풀 사이로 자세를 숙이곤 숨죽였다. 그가 오길 바라는 마음 반, 그가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반이었다. 그 모순 속에서 시간은 느리게도 흘렀다.

 

 

 

작게,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난다.

 

 

 

 

 

 

 

 

 

-

 

 

 

 

 

 

 

 

 

숲의 밤바람이 만달로리안의 포근한 갈색 머리카락을 작게 살랑인다. 얇은 로브가 바람결에 펄럭이며 그의 몸을 감싸고 돈다. 망설임 없이 걷는 그의 등에는 어떠한 결연함과 단호함이 엿보인다. 루크는 입술을 사려 물었다. 그래. 이대로 떠나는 편이 그에게도 자신에게도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 어느새 양 뺨이 온통 눈물로 젖어든다. 심장이 큰 소리를 내며 박동한다. 숨이, 막힌다.

 

 

 

 

 

 

 

 

 

-

 

 

 

 

 

 

 

 

 

만달로리안이 멈춘다. 레이저 크레스트의 발판 코앞에서 그는 차마 그 한걸음을 떼지 못한다. 망설이는 그의 등 뒤로 루크는 조용히 다가선다. 왜 가지 못해요? 나를 버리면서까지 도망가려 했잖아.

 

 

 

그의 주저하는 발걸음이 저주스럽다.

 

망설이는 그의 모습이 눈물 나도록 사랑스럽다.

 

끝끝내 자신을 연민하는 만달로리안의 위선이 가증스럽다.

 

그럼에도 발길을 멈춘 그에게 사랑을 구걸하고 싶다.

 

 

 

왜 나를 버렸어요? 날 사랑한다고 했잖아요.

 

 

 

라이트 세이버의 광선이 피처럼 붉게 빛을 발한다. 침묵하는 달과 별의 아래, 그는 검을 휘두른다. 무방비하게 서 있는 그의 만달로리안을 향해.

 

 

 

 

 

 

 

 

 

-

 

 

 

 

 

 

 

 

 

..?

 

 

 

루크는 아이처럼 울며 묻는다. 그의 등을 벤 손이 속절없이 떨리며 라이트 세이버를 떨어뜨린다. 힘없이 떨구어진 그의 무기처럼 그 또한 쓰러진 만달로리안의 앞에 힘없이 무릎 꿇는다. 희게 질린 그 얼굴을 차마 마주볼 수 없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곤 흐느낀다.

 

 

 

날 왜 사랑하지 않아...?

 

 

 

만달로리안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의 무릎을 잡곤 도닥인다. 그 소름끼치도록 다정한 행위에 루크는 끝내 절규한다.

 

 

 

날 사랑한다고 했잖아!

 

 

 

힘없이 고꾸라지는 그의 손을 부여잡곤 눈물로 애원해본다.

 

 

 

이런 나라도 사랑해주면 안돼요?

 

 

 

희미한 한숨이 새파랗게 질린 입술 사이로 힘없이 흘러나온다. 희게 질린 그가 눈을 감는다. 그 눈이 영영 뜨여질 일이 없을 것만 같아, 그제야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가까스로 제정신을 되찾은 그가 떨리는 손으로 딘의 몸을 치유한다. 자꾸만 몸이 덜덜 떨려 루크는 이를 악문채로 딘의 몸을 끌어안는다.

 

 

 

이제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는 길을 잃었다. 그 삶의 유일한 이정표는 범람하는 감정의 호수 속에 잠겨 썩어 들어갈 뿐이다. 루크는 눈물이 아롱지는 얼굴을 거칠게 닦아 내린다. 고개를 내려 딘에게 입술을 맞대곤 작게 속삭인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요, 우리.”

 

 

 

 

 

 

 

 

 

-

 

 

 

 

 

 

 

 

 

정량의 수 십 배는 넘는 독초를 입에 머금고 침대에 누워있는 그의 만달로리안에게로 다가간다. 포스를 이용해 서로의 영혼을 묶곤 그는 죽은 듯이 누워있는 창백한 안색의 만달로리안 옆에 눕는다. 성공한다면, 그들은 환각 속에서 일상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실패한다면 이대로 죽겠지만,

 

 

 

그 또한 나쁘진 않겠다고.

 

 

 

그런 생각이 든다. 차라리 당신이 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우리 모두에게 더 나은 길이 있었을까. 당신은 여전히 저 먼 은하에서 현상금 사냥꾼 일을 하고, 나는 이곳에서 예정대로 죽음을 맞이했더라면.

 

 

 

힘없이 널부러진 그의 손을 맞잡는다. 살아있는 자 특유의 미지근한 체온이 차가운 손끝을 덥힌다. 한없이 쓸쓸한 기분에 그는 쓰게 웃으며 눈을 감는다.

 

 

 

 

 

 

 

 

 

-

 

 

 

 

 

 

 

 

 

삶에 대한 열망이 사그라든 그의 마음은 타투인의 지표면과도 같이 황폐해져만 갔다. 쩍쩍 갈라지며 메말라가는 행성 위로 계절을 잊은 여름의 장맛비가 쏟아져 내린다. 푸른 잎사귀가 갈라진 대지 위로 살짝 그 머리를 올렸을 때, 루크는 그때야말로 울고 싶어졌다.

 

 

 

삶의 끝에서 그는 끝내 다시 살고 싶어졌다. 자신의 눈을 바라보며 푸른 하늘을 닮았다고 작게 고백하는 당신의 서툰 마음으로 인해. 사그라든 열망이 불씨를 피우며 타오른다.

 

 

 

나는 당신과 함께 살고 싶었다.

 

그것이 루크의 유일한 구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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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업 별전쟁 루크딘



 

2023.12.23 13:29
ㅇㅇ
모바일
루크의 마음이 너무 복잡하고 무거워서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ㅅㅂ루크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봄은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당신은 이미 봄의 한복판에 서 있는 것처럼 찬란하게 빛이 난다.
이미 알고 있었잖아ㅠㅠ 루크도 알고 있는데 애써 외면하다가 결국 이렇게 되버린 거잖아 아이고!!ㅜㅠㅠㅠㅠㅠ
[Code: f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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