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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0 22:28







01. 루크

 

 

 

 

 

루크 스카이워커는 그 날의 일을 바로 어제 일어난 일인 것처럼 생생히 기억한다. 그날도 오늘과 같았다. 늦가을의 바람이 쌀쌀히 불어오는 날, 자신은 사원의 계단에 걸터앉아 무료한 표정으로 착륙하는 레이저 크레스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의 기다림 후엔 늘 그렇듯 무뚝뚝한 만달로리안이 한 보따리 짐을 싸들곤 내려선다. 일정치 않은 주기마다 그는 늘 그로구에게 줄 선물을 잔뜩 이고 제다이 사원을 찾곤 했다. 평소와 같은 보폭, 평소와 같은 목소리. 그러나 들려오는 내용은 평소와는 달랐다.

 

 

 

좋아한다고 했던가, 사랑한다고 했던가. 갑작스레 튀어나온 고백은 너무 단조로워 일견 평범한 인사말처럼 들렸다. 어떤 설렘도 기대도 없이 배출만을 위해 툭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리곤 그는 평소처럼 그로구를 만나기 위해 사원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평소와 같은 보폭, 평소와 같은 행동이었다.

 

 

 

루크를 지나쳐 가는 만달로리안의 보폭은 평소와 같았으나 그를 감싼 포스는 쉼 없이 요동침을 영민한 제다이는 놓치지 않았다. 평소와는 달리 빠르게 뛰는 심장소리라던가, 이마에 맺혀 떨어지는 땀방울 같은 것들. 사랑에 빠진 평범한 사람들이 고백직후에 나타날 법한 증상들을 그 무뚝뚝한 만달로리안 또한 겪고 있다는 것을.

 

 

 

그러나 그것이 루크 스카이워커에게 와 닿진 않았기에.

 

 

 

루크는 그저 제 머리를 헝클이는 늦가을의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무료하게 앉아 시간을 죽이고 있었을 뿐이다.

 

 

 

 

 

 

 

 

 

-

 

 

 

 

 

 

 

 

 

그로구는 꽤 영민한 아이였다. 눈치도 빠르고 배움에 있어 노력 또한 아끼지 않았다. 하나를 알려주면 열까진 깨우치진 못하더라도 그 하나만은 반드시 마스터했다. 포스를 운용하고 뿌듯한 표정으로 저를 올려다보는 그 모습은 아이가 없는 루크마저 아이를 가진 부모의 마음을 실감하게 만들었다. 저도 모르게 웃으며 그로구의 머리를 쓰다듬고 아이가 이곳에서 행복해지길 진심으로 바라게 되었다. 결국 루크는 제 삶에 불쑥 끼어든 그 아이가 자신에게 꽤 큰 자극이 된다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실로 오래간만의 생동감이었다.

 

 

 

 

 

 

 

 

 

-

 

 

 

 

 

 

 

 

 

아빠가 보고 싶어요.’

 

 

 

 

 

 

 

 

 

-

 

 

 

 

 

 

 

 

 

첫 만남은 제국의 순양함 안에서. 두 번째 만남은 제다이 사원의 앞에서 이뤄졌다. 만달로리안은 그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제다이를 향해 고개를 숙여보였고, 제다이 또한 그를 외면함으로써 이 만남을 묵인했다. 제다이는 애착을 경계해야한다지만 그런 고리타분한 옛 규칙에 얽매여 그동안 힘들고 외로웠을 아이의 부탁을 외면할 순 없었다. 그로구는 벌써 버선발로 뛰어나가 만달로리안의 발치에 매달려 칭얼댔다. 그 모습은 루크에게 있어 꽤 씁쓸한 패배감을 맛보게 했다. 아이는 사원 안에서 항상 투정 한 번 부리지 않고 의젓하게 지내왔기 때문이다. 아직은 온전히 이 곳과 자신을 신뢰할 순 없었으리라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서운했다. 루크는 쓰게 웃으며 계단참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이가 당신에게 애착을 많이 느끼는 군요.’

그게 문제가 될까요?’

 

 

 

만달로리안은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아이에게 있어 만달로리안이 특별했던 것처럼 만달로리안 또한 아이가 특별하리라는 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루크는 잠시 침묵했다.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이었다. 제다이의 대답이 항상 옳진 않았기에.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죠.’

 

 

 

그래서 루크는 애매하게 대답했다. 어쩌면 비겁한 회피일지도 모를 답변을 입에 담곤 잠시 먼 허공을 응시했다. 과거는 가끔 불쑥 그의 눈앞에 모난 돌처럼 튀어나온다. 루크는 그때마다 속수무책으로 휩쓸려 끌려가곤 했다. 어머니를 너무 많이 사랑하여 끝내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게 되어 버린 아버지. 아나킨 스카이워커는 그를 과거로 끌어내리는 늪과도 같았다. 그 마지막을 눈에 담지 않았다면 자신은 지금과는 조금은 다른 모습이지 않았을까.

 

 

 

문제가 되지 않게 하면 되겠군요.’

 

 

 

담담한 목소리가 루크를 현실로 끌어올린다. 눈앞에 사람을 두고 딴 생각에 골몰하는 무례를 저질렀음을 깨달은 루크는 잠시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꾹 닫곤 그를 응시한다. 어느새 그로구를 품에 안고 그 작은 손을 조심스럽게 매만지는 만달로리안이 루크의 앞에 서 있다. 반짝이는 베스카 헬멧 때문에 만달로리안의 표정은 알 수 없다. 다만 그를 감싼 포스는 거친 현상금 사냥꾼의 삶을 잇는 자라고는 볼 수 없을 만큼 평온하고 잔잔하다. 마치 깊은 호수와도 같다.

 

 

 

문제가 되지 않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세요?’

 

 

 

만달로리안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루크는 문득 작은 심술이 치솟는다. 깊은 호수에 돌멩이를 던져 파문을 일으키고 싶은 못된 마음이다.

 

 

 

만약 문제가 된다면요? 당신이 감당할 수 있을까요?’

‘....’

그로구가 포스를 제대로 운용할 수 있게 된다면 당신은 그로구를 이길 수 없을 겁니다. 제다이가 애착을 경계해야하는 건 바로 그 점 때문이에요. 우리의 힘은 평범한 사람들이 이기기 요원하죠. 그런 힘을 가진 자가 누군가를 미친 듯이 사랑하다가 어떤 일로 잃게 된다고 생각해봐요. 그게 사고든 누군가의 악의로 인해서든. 그로구가 과연 복수를 하지 않으려 할까요?’

‘.....’

당신들은 다크 트루퍼 한 대조차 제대로 상대하지 못했죠.’

 

 

 

그리고 저는 다크 트루퍼 한 부대를 몰살했고요. 마지막 말은 꿀꺽 삼킨다. 필요 이상으로 적의를 가지고 쏘아붙였다. 루크는 피곤한 한숨을 쉬며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성적이지 못했다. 대체 그의 어떤 점이 자신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을까. 돌멩이가 던져진 건 만달로리안이 아니라 루크 자신이었다.

 

 

 

죄송합니다. 너무 공격적이었군요.’

선생님께서 사과하실 일이 아닙니다.’

 

 

 

만달로리안은 답했다. 무심한 어투였지만 그 속의 다정함을 루크는 기민하게 눈치 챘다. 그로구가 저 만달로리안을 믿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그는 기본적으로 상냥한 사람이었다.

 

 

 

선생님 말씀대로 그로구가 이 이상 강해진다면 아이가 엇나갈 때 저는 이길 수 없겠죠.’

‘....’

하지만..’

 

 

 

만달로리안의 그림자가 루크의 머리 위로 진다. 루크는 망설이는 만달로리안을 무언의 눈빛으로 재촉한다.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던 베스카 헬멧은 태양이 기움과 동시에 그 빛을 잃고 암흑 속에 들어갔다. 역광이 져 새까만 우물 같은 그의 모습이 루크의 시야를 가득 메운다. 침묵하던 만달로리안은 이내 담담한 목소리로 답한다.

 

 

 

선생님이 그로구를 지켜주실 테니까요.’

‘....’

 

 

 

틈 하나 없는 단단한 신뢰였다. 마치 그것만이 유일한 답인 것처럼. 루크는 미소 지으며 소득 없는 문답을 마무리 지었다. 속이 미치도록 울렁거렸다. 높은 파고가 황폐한 마음을 휩쓸고 지나간다. 루크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소리 없는 비명이 전신을 할퀸다.

 

 

 

당신을 막지 않겠습니다.’

‘...?’

그로구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 이 사원으로 오세요.’

 

 

 

자리에서 일어나 사원으로 돌아가는 루크의 등 뒤로 만달로리안의 따가운 눈빛이 느껴졌다. 그러나 루크는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

 

 

 

 

 

 

 

 

 

우울은 터진 둑과 같이 심장을 좀 먹어 들어간다. 삶이 권태롭고 무료했다. 무얼 해도 시시했고 허무했다. 이 삶의 끝이 종국엔 그저 죽음에 불과하다면 과정이 어떤들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명성과 영예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스러져갈 것임을 그는 알았다. 따스한 체온, 말캉한 살결들은 죽음이 스쳐 지나가면 한순간에 돌처럼 딱딱해진다.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었다. 상냥하고 다정하며 현명했다고 들었다. 들었다는 건 결국 실감하지 못한다는 것과 같다. 겪어보지 않았으니 상실이 아프지만도 않았다. 처음부터 없던 것과 있었던 것을 잃는 건 까마득하게 다르다는 걸 그는 숙모와 숙부의 죽음으로 알았다. 깨닫지 않는 편이 좋았을 진실 중 하나였다.

 

 

 

타투인의 뜨거운 모래바람이 목구멍을 때렸다. 루크는 불타는 집을, 시신들을 눈앞에 두고 고개를 숙였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복수를 하기 전까진 흘릴 수 없었다. 잿더미가 되어가는, 제 삶의 전부였던 세상을 바라보며 다짐했다. 당신들을 위해 싸우겠다. 당신들을 위해 복수하겠노라고.

 

 

 

그러나 그것이 어찌 죽은 자들의 복수가 될 수 있었을까. 그 싸움은 결국 살아있는 루크를 위한 것이었다. 한순간 세상에 내팽개쳐진 젊은 청년은 증오와 복수를 토대로 반란군이 되었다. 삶을 살았다. 불꽃같은 찰나였다.

 

 

 

그 찰나의 순간 이후에, 루크는 잿더미가 되어 주저앉았다. 세상은 변했다. 그를 위한 싸움이었으니 그 변화는 기꺼웠으나 문제는 루크가 그 변화의 흐름에 편승해 흐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루크는 아직 그 시간에 묶여있었다.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자신의 품에서 딱딱하게 굳어가는 그 순간에.

 

 

 

수많은 상실 끝에 마주한 마지막 상실이었다. 아버지라고 했다. 훌륭한 제다이였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 끝은 어떻던가. 마주한 눈빛에 온기가 깃들었기에 루크는 제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아 가슴팍을 더듬었다.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았는데 우습게도 가슴은 여전히 판판했다. 어디에도 구멍같은건 보이지 않았다.

 

 

 

구원받았다고 했던가. 비로소 살아있다고 했던가. 그 마지막 말이 가물가물하다. 흐린 시야 끝에 걸린 건 학살자의 평온한 얼굴이었다.

 

 

 

숙모 부부를 죽이고 제 삶의 터전을 파괴한 자였다. 수많은 무고한 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인 자였다. 그런 자가 자신의 아버지였다. 그런 사람조차 용서해야만 했다. 아버지라는 말을 듣는 순간 솟구친 애정이 자신의 눈을 가렸던가. 이기적이었지만 그와 함께하는 미래를 잠시나마 꿈꿨었다. 겪어보지 않았기에 아프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이상할 정도로 지독하게 고통스러웠다. 루크는 그 시신을 붙들고 소리 없이 오열했다. 누구도 용서하지 않을 애도였다.

 

 

 

루크..’

‘...?’

 

 

 

루크는 제 품의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어느 새 아버지의 시신은 다른 누군가로 바뀌어 있었다. 눈물로 시야가 엉망으로 일그러진 가운데 피에 젖은 갈색의 곱슬머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품에 안긴 인영이 거친 숨을 내쉬더니 이내 잠잠해진다.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손 안에서 온기가 식어간다. .

 

 

 

그 만달로리안이다.

 

 

 

 

 

 

 

 

 

-

 

 

 

 

 

 

 

그 날을 악몽으로 마주하는 건 종종 있는 일이었지만, 오늘처럼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난 적은 별로 없었다. 그 끝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는 일도 오늘이 처음이었다. 루크는 희게 질린 얼굴로 일어나 맨발로 사원 밖으로 뛰어 나갔다. 발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달리고 또 달렸다. 얼굴을 흠뻑 적신 눈물이 궤적을 그리며 루크의 뒤로 방울져 떨어졌다.

 

 

 

..’

 

 

 

울창한 숲의 한가운데에 이르러 루크는 멈춰 섰다. 허리를 수그리고 무릎을 짚어 벅찬 숨을 가다듬었다. 후들거리며 떨리는 무릎이 이내 땅바닥에 닿았다. 루크는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감쌌다. 그러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비명을 지를 것만 같았다.

 

 

 

도망치고 싶다. 도망가야만 한다. 덫에 걸린 기분이었다. 루크는 가져본 적도 없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에 몸부림쳤다. 기이하게도 그 고통이 한 번 겪어본 것처럼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익숙한 절망이었다.

 

 

 

고요한 숲의 적막 가운데 작은 발소리가 들린다.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였다. 땅을 밟는 묵직한 걸음은 루크에게 있어 화가 날 정도로 익숙한 소리였다.

 

 

 

선생님.’

‘....’

 

 

 

부름에 고개를 돌리니 만달로리안이 담요를 손에 든 채 고목나무처럼 고요히 서 있었다. 루크는 뺨에 후드득 떨어지는 눈물들을 감출 생각도 못한 채 그를 올려다봤다. 달빛에 산산이 부서지는 그 인영이 금방이라도 신기루처럼 흩어질 것만 같았다.

 

 

 

잠시..실례하겠습니다.’

 

 

 

답이 없는 루크의 모습에 만달로리안이 조심히 다가선다. 루크는 곧 어깨를 감싸는 담요의 푹신한 감촉을 느낄 수 있었다. 늦가을이었다. 서늘함을 머금은 숲의 바람이 송곳처럼 몸을 찌르는 시간이었다. 루크는 그제야 자신의 모습을 살필 수 있었다. 얇은 잠옷 차림에 맨발로 고르지 않은 숲길을 뛰어오느라 발이 엉망이었다.

 

 

 

업히세요.’

 

 

 

어느새 만달로리안은 자신에게 등을 보이며 자세를 숙이고 있었다. 루크는 웃었다.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촌극이었다.

 

 

 

제가 제다이라는 사실을 가끔 잊으시는 것 같군요.’

잊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제 상처정도는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을 알 텐데요.’

 

 

 

말이 필요이상으로 뾰족하게 나간다는 걸 알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치부를 들킨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루크는 서슴없이 상대방을 공격했다. 혼자 있고 싶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제가 두려워서 그럽니다. 이곳은 낯선 행성이고, 저는 길을 모르니까요.’

‘....’

선생님의 길안내가 없다면 저는 밤에 숲속을 헤매다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겠군요.’

 

 

 

뻔뻔한 만달로리안은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술술 해댔다. 포스가 이토록 평온한데 그가 두려울 리가. 거기다 저 만달로리안은 악명 높은 현상금 사냥꾼이지 않던가. 어처구니가 없어진 루크가 헛웃음을 짓자 만달로리안이 다시 한 번 손짓으로 채근한다. 루크는 엉망이 된 얼굴을 한 번 더 쓸어내리곤 이윽고 만달로리안의 등 위로 제 몸을 뉘였다. 고작 몇 마디 섞었을 뿐인데, 날선 기분이 한순간에 쓸려 내려갔다.

 

 

 

길안내가 필요하다는 만달로리안은 자신이 한 거짓말을 그새 까맣게 잊었는지 루크에게 길을 묻는 시늉조차 없이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망설임 없이 성큼 걷는 그 걸음걸이는 누구보다 단단하고 강인해 보였다. 길을 걷는 내내 만달로리안은 침묵을 지켰다. 왜 오밤중에 뛰쳐나가 소란을 피웠는지, 왜 얼굴이 흠뻑 젖도록 울고 있었는지.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루크는 만달로리안의 등 뒤에 얼굴을 기대곤 그가 나아가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사원의 어슴프레한 불빛이 별빛처럼 시야에 아롱아롱 잡힌다. 루크는 제 품에 들이찬 베스카의 시원한 감촉을 느끼며 까무룩 잠이 들었다. 기절과도 같은 잠이었다.

 

 

 

 

 

 

 

 

 

-

 

 

 

 

 

 

 

 

 

만달로리안은 변함이 없다. 그는 여전히 한 달에 한 번, 혹은 그보다 자주 제다이 사원을 방문한다. 여전히 손에는 그로구에게 줄 짐이 한 보따리다. 아이는 기쁜 탄식소리를 내뱉으며 만달로리안에게 달려 나간다. 작은 웃음소리가 들린다. 달려온 그로구를 들어 올려 그 품에 안은 만달로리안은 사원 계단에 앉아 물끄러미 그들을 응시하는 젊은 제다이에게 고갯짓으로 인사한다.

 

 

 

루크는 침묵한다.

 

 

 

 

 

 

 

 

 

-

 

 

 

 

 

 

 

 

 

지루할 정도로 평온한 일상이 지속된다. 낮에는 아이에게 포스를 이용하는 방법과 절제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밤에는 몰려오는 상념을 뿌리치기 위해 눈을 감고 명상에 빠져든다. 하루하루가 똑같은 궤도를 그리며 지나간다. 지나치게 평화롭다.

 

 

 

선선한 바람이 시원스레 그의 이마를 스치고 지나간다. 루크는 제다이 사원의 계단에 앉아 청명한 가을 하늘을 바라본다. 티끌 하나 없는 파란 하늘이 루크의 푸른 망막을 매끄럽게 유영한다. 선생님의 눈동자는 가을 하늘처럼 푸르군요. 만달로리안은 가끔 아무렇지도 않게 툭 제 마음을 고백하곤 했다. 루크의 반응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푸른 하늘을 향해 고개를 양껏 치켜든 채로.

 

 

 

쿵쿵, 심장소리가 힘차게 박동한다. 귓가에 울리는 이 작은 북소리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어 어디로 도달하는 것일까. 시작점과 끝점을 이제는 알 수 없다. 루크는 만달로리안을 따라 깊은 하늘 위로 고개를 들어올린다. 청명한 가을 하늘이 푸른 바다처럼 그들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린다.

 

 

 

 

 

 

 

 

 

-

 

 

 

 

 

 

 

 

 

그것이 마지막 상실이라고,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었을까?

 

 

 

 

 

 

 

 

 

-

 

 

 

 

 

 

 

 

 

만달로리안이 반년이 지나도록 사원을 찾지 않는다. 그로구는 아이답지 않게 의연한 태도로 만달로리안을 기다린다. 아빠는 곧 올 거예요, 선생님. 단단한 신뢰가 아이를 안정되게 만든다. 루크는 미소 짓는다. 그래, 그는 곧 올 거야. 손바닥을 파고드는 손끝이 이내 피를 머금는다. 루크는 제 손을 등 뒤로 돌리곤 그로구를 내려다본다. 다정한 눈길이 그를 바라본다.

 

 

 

문득, 루크는 궁금해진다. 그 만달로리안은 어떤 표정과 눈빛으로 자신을 보며 고백했을까?

 

 

 

 

 

 

 

 

 

-

 

 

 

 

 

 

 

 

 

빠뚜!’

‘....’

 

 

 

아이가 걱정 어린 눈으로 루크를 올려다본다. 젖은 머리카락이 늘어지며 물방울을 뚝뚝 흘린다. 루크는 희게 질린 낯으로 고개를 돌려 거울을 본다. 금이 잔뜩 간 거울이 파편마다 루크의 모습을 비춘다. 창백한 얼굴위로 형형한 노란 눈이 음산하게 빛을 발한다. 루크가 두 손으로 제 눈을 감싸며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른다. 벌린 입이 붕어처럼 뻐금뻐금 열렸다 닫힌다. 속절없이 무릎이 꺾이며 축축한 바닥으로 몸이 추락하는 걸 막을 수 없다. 나오지 못한 비명은 빙글빙글 회전하며 루크의 속으로 파고들어간다. 그를 난도질한다.

 

 

 

아악! 아아악!

 

 

 

루크는 계속해서 비명을 지른다. 누구도 듣지 못할 소리였다.

 

 

 

어둠 속에서, 만달로리안의 조각난 몸이 보인다.

 

 

 

그가 죽었다.

 

 

 

 

 

 

 

 

 

-

 

 

 

 

 

 

 

 

 

수많은 상실 끝에 마주한 마지막 상실은 아나킨 스카이워커였다. 자신의 앞에 무력하게 누워 다정한 눈빛으로 루크를 바라본다. 그 눈길이 루크의 영혼을 찢는다. 당신은 수많은 사람을 죽인 학살자야! 터지지 못한 진심이 루크의 심장에 고인다. 열기를 머금은 사막의 모래바람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타오르는 불길이 루크의 푸른 눈에 번진다.

 

 

 

루크는 비명을 삼킨다. 꿀꺽꿀꺽 속으로 삼키기만 한다. 나오지 못한 진심을 대신하여 루크는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죽어가는 몸뚱이를 붙잡고 오열했다. 눈물이 뺨을 흠뻑 적실 때까지 그는 오래도록 울기만 했다.

 

 

 

 

 

 

 

 

 

-

 

 

 

 

 

 

 

 

 

괜찮으신가요, 선생님?’

 

 

 

꺼칠한 목소리가 루크의 안부를 묻는다. 반년 만에 듣는 만달로리안의 목소리는 루크가 기억하는 것보다 조금 낮아져 있다. 눈꼬리를 따라 길게 흘러내리는 눈물이 베갯잇을 적신다. 만달로리안이 창문을 열어났는지 침대에 누워있는 루크의 머리카락이 바람결에 살짝 흐트러진다. 목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 베스카를 착용한 만달로리안이 평온하게 앉아있었다. 어느 한 군데 사라진 부위 없이, 멀쩡하다.

 

 

 

..’

 

 

 

울컥, 치솟는 이 감정을 무어라 정의해야 할까. 그의 멀쩡한 모습에 안도하다가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 풍랑이 인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웃음이 나오다가도 눈물이 흘러나온다. 루크는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묻는다. . 그 짧다면 짧은 물음에 만달로리안이 안절부절 못하며 입을 연다. 까슬하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송곳처럼 루크를 찌른다.

 

 

 

죄송합니다. 걱정하실 까봐 빨리 오고 싶었는데..’

다쳤습니까?’

 

 

 

물음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튀어나온다. 만달로리안의 어깨가 살짝 움찔하는 것을 루크는 놓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희미한 소독약 냄새가 난다. 온몸을 감싸는 베스카 갑주가 오늘만큼 답답해 보였던 적이 없었다.

 

 

 

‘...걱정하실 정도는 아닙니다.’

 

 

 

만달로리안이 긍정한다. 베스카 헬멧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루크의 눈이 만달로리안의 답에 정처 없이 흔들린다. 침대에 놓여진 손이 살짝 떨리는 게 느껴졌다. 루크는 눈을 감았다. 치솟는 열기가 가슴팍을 어지러이 뒤흔든다. 포스가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당분간은 사원에서 지내도록 하세요.’

굳이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은 거의 나았으니까요.’

그로구를 위해섭니다. 아이가 당신을 많이 걱정했어요. 아이가 안정을 찾을 때까지만이라도 머무세요.’

..’

 

 

 

만달로리안이 머쓱하게 대답한다. 루크는 이불을 어깨까지 끌어올리며 만달로리안에게서 등을 보이며 뒤돌아 눕는다. 머리맡에 위치한 창문에서 늦봄의 훈풍이 흘러들어온다. 향긋한 꽃내음이 두 사람의 어색한 거리를 뒤덮는다. 루크는 작게 한숨을 쉬곤 속삭이듯 덧붙였다.

 

 

 

‘...몸이 나을 때까지 이곳에서 지내다가 가세요.’

‘....’

부탁입니다.’

 

 

 

 

 

 

 

 

 

-

 

 

 

 

 

 

 

 

 

왜 당신은 아무것도 묻지 않을까? 어둠 속에서 루크는 살짝 열린 창문 너머 밤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그 만달로리안의 이름이 뭐였더라.

 

 

 

 

 

 

 

 

 

-

 

 

 

 

 

 

 

 

 

딘 자린입니다.’

 

 

 

만달로리안은 담담하게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실망한 기색도, 화가 난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이름은 모르는 게 당연하다는 듯한 그 태도에 도리어 기분이 상한 건 자신이었다.

 

 

 

그래요. 자린 씨. 앞으로 잘 부탁해요.’

 

 

 

루크는 복잡한 심정을 애써 외면하며 그의 이름을 입 속에서 굴려보았다. 딘 자린.

 

 

 

딘 자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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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크. 넌 도움이 필요해.’

 

 

 

그 말을 했던 건 레아였다. 제다이 사원이 사원이기 이전, 그저 숲의 일부였을 때의 일이다. 다스 베이더와 황제의 죽음 이후, 구심점을 잃은 제국은 빠르게 몰락했다. 반란군은 혁명군이 되었고, 이윽고 신공화국이 되었다. 그 모든 변화의 물결 속에서 루크는 한 발자국 떨어진 채 그저 관망할 뿐이었다.

 

 

 

도움?’

 

 

 

루크는 웃으며 고개를 갸웃 기울인다. 지평선 너머 해가 저물며 눈부시게 빛을 발한다. 마치 하늘이 불타는 것 같은 그 광경에 루크는 어째선지 눈을 뗄 수가 없다. 숲의 오래된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팔을 괴곤 앞을 보는 루크의 표정은 평온하기만 하다. 레아는 앉아있는 루크의 옆에 서서 간곡히 부탁했다.

 

 

 

함께 신공화국으로 가자.’

 

 

 

정면의 붉은 빛을 막연히 담기만 하던 푸른 눈이 레아를 향한다. 올려다보는 동생의 얼굴은 일견 평화로워 보이나 그 잔잔한 표면 아래 너울대는 절망의 파고를 레아는 느낄 수 있었다. 루크는 희미하게 웃어 보인다. 걱정 말라는 듯 어깨까지 으쓱이면서.

 

 

 

걱정하지 마, 레아. 난 괜찮아.’

 

 

 

어떻게 괜찮을 수가 있을까. 레아는 막막한 심정에 아랫입술을 질끈 물며 눈을 감는다. 감긴 눈꺼풀 너머 다스 베이더의 시신을 품에 안고 걸어오는 그 밤의 루크의 모습이 생생하다. 여린 얼굴이 온통 눈물에 젖어 있다. 희게 질린 뺨과 오갈 데 없이 허공을 맴도는 푸른 눈이 옅게 떨린다. 레아, 아버지가.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가늘게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이 가냘프다. 그 밤의 너를 홀로 두는 게 아니었다. 늦된 후회가 레아의 몸을 잠식한다. 열기가 몰려오는 눈가를 문지르며 레아는 한숨을 쉰다.

 

 

 

난 가지 않을 거야.’

그럼 어디로든 떠나! 여기서 대체 뭘 하겠다는 거야? 여긴 아무것도 없잖아!’

나무도 있고, 물도 있고, 바람도 있지.’

루크!’

 

 

 

어린 청년은 맑게 웃는다. 그 웃음을 들어본지가 까마득하게 오래된 것만 같아 레아는 잠시 숨을 멈추곤 한껏 귀를 기울인다. 루크의 웃음소리가 조금씩 잦아들자 그 사이를 숲의 실바람이 채운다. 레아의 걱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기에 루크는 한 가지 약속을 한다.

 

 

 

도움이 필요하면, 그때 꼭 부를게.’

 

 

 

그러나 그 약속이 지켜질리 없다는 것을 레아도, 루크도 알고 있었다.

 

 

 

 

 

 

 

 

 

-

 

 

 

 

 

 

 

 

 

반년 만에 돌아온 만달로리안은 언뜻 보면 이전과 별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여전히 무뚝뚝했으며 여전히 제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렇지만 자세히 관찰해보면 이전과 완전히 똑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살짝 절룩이는 왼쪽 다리로 인해 보폭이 이전보다 좁아졌으며 담담히 말하는 그 목소리도 평소보다 낮게 들려왔다. 어디서 무얼 하느라 다쳤는지. 많이 위험했는지. 궁금증이 일었지만 묻지 않았다. 어쨌든 돌아온 사람이었다.

 

 

 

만달로리안과 함께하는 일상은 조금 어색했고 낯설었지만 나쁘진 않았다. 함께 아침을 먹고 언제나 홀로 산책하던 숲길에 말동무가 생긴 것 정도였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나던 시절보다 마주치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자연스레 그 존재에 익숙해져 갔다.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지 간에.

 

 

 

언제나 규칙적이던 일상이 타인에 맞춰 조금씩 변해간다. 늘 일어나던 시간이 아니라 조금 더 늦게, 늘 먹던 식단보다 조금 더 영양가 있게, 늘 걷던 숲길보다 조금 더 길게 걸을 수 있는 숲길로. 루크가 앞서 가면 만달로리안은 세 걸음쯤 떨어진 거리에서 느긋하게 따라붙었다. 봄의 훈풍이 향긋한 꽃내음을 머금고 그들 사이를 묵직하게 채웠다. 그 고요하지만 평화로운 시간이 생각 외로 마음에 들었다. 루크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저도 모르게 지어진다.

 

 

 

선생님.’

 

 

 

그 날도 여느 날과 같이 아침 식사 후 산책을 나가던 길이었다. 숲길의 절반쯤 왔을까, 만달로리안이 등 뒤에서 루크를 불렀다. 둘의 산책시간에 만달로리안이 말문을 연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두 사람은 암묵적으로 이 시간 동안 침묵을 지켰기 때문이다. 루크는 의문을 품고 고개를 돌렸다. 만달로리안이 어색하게 뒷짐을 진 채로 루크 가까이 서 있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꽤 가까워진 거리다.

 

 

 

오늘이 선생님의 생일이라고 들었습니다.’

..’

별 거 아니지만..’

 

 

 

만달로리안은 그렇게 말하며 뒷짐을 쥔 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작은 상자가 투박하게 포장되어 만달로리안의 손바닥 위에 놓여있었다. 돌아온 이후 떠나지 않았으니 이 선물은 그가 이곳에서 구한 것이거나 이곳에 돌아오기 전 구한 물건일 터였다.

 

 

 

‘...감사합니다.’

 

 

 

가까스로 대답한 루크는 만달로리안의 손바닥 위의 작은 선물상자를 거칠게 낚아챈다. 곧바로 등을 돌려 성큼 성큼 나아간다. 등 뒤로 당황한 듯 불규칙적인 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손에 쥔 선물 상자를 온 힘을 다해 쥐어본다. 상자를 쥔 손이 불덩이를 움켜쥔 듯 뜨겁다.

 

 

 

쿵쿵, 어디선가 북소리가 들린다. 밖에서 들리는지 안에서 들리는지 알 길이 없는 소리다.

 

 

 

 

 

 

 

 

 

-

 

 

 

 

 

 

 

 

 

도와줘, 레아. 나 좀 살려줘.”

 

 

 

 

 

 

 

 

 

-

 

 

 

 

 

 

 

 

 

눈물이 눈꼬리를 타고 길게 흘러내린다. 베갯잇을 적시며 소리 없이 추락하는 눈물들은 이내 맞닿은 면에 흡수되어 사라진다. 루크는 한 쪽 손을 들어 눈가를 꾹꾹 눌렀다. 꿈의 여운이 잔물결처럼 온몸에 퍼진다. 그건 그냥 꿈이었을 뿐이다. 애써 되뇌어봐도 심장이 불안하게 술렁인다. 그게 정말 꿈이었을까? 제다이는 미래를 예지할 수 있다.

 

 

 

미래를 알 수 있는 건 행운일까, 불행일까?

 

 

 

 

 

 

 

 

 

-

 

 

 

 

 

 

 

 

 

만달로리안이 루크에게 준 것은 사파이어 빛의 목걸이였다. 여성들에게나 해 줄 법한 선물이었음에도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루크는 그 주 내내 목걸이를 목에 걸고 다녔다. 그로구를 안아들고 사원을 거닐던 만달로리안은 루크의 목 위에 걸려있는 목걸이를 발견했다. 그를 감싸고 있는 포스가 환희에 차 일렁인다. 루크는 물끄러미 베스카 헬멧에 투영된 자신의 얼굴을 마주본다.

 

 

 

푸른 눈이 반달처럼 휘어있었다.

 

 

 

 

 

 

 

 

 

-

 

 

 

 

 

 

 

 

 

딘 씨가 사라졌어. 제발 도와줘, 레아.”

 

 

 

 

 

 

 

 

 

-

 

 

 

 

 

 

 

 

 

루크가 선물을 버리지 않았다는 걸 안 이후, 만달로리안의 행보는 꽤 거침이 없었다. 그는 간혹 사원 계단에 앉아 노을 진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는 루크의 얼굴 앞에 불쑥 본인이 꺽은 꽃다발을 건네거나, 그로구와 함께 간 계곡에서 발견한 알이 푸르고 반질반질한 작은 조약돌들 따위를 유리병에 모아서 루크의 방 앞에 수줍게 놓아두곤 했다. 그때마다 루크는 난감한 얼굴로 꽃다발을 받아들거나, 방 앞에 놓여진 유리병을 모른 척 자신의 방 창가에 옮겨놓았다. 조약돌들이 모아진 유리병 옆엔 봄꽃들이 화병에 꼿혀져 방 안을 화사하게 만들었다. 무채색의 방 안이 색색깔로 물들어 갔다.

 

 

 

참으로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

 

 

 

 

 

 

 

당신은 내가 왜 좋나요?’

선생님은 다정하고 상냥하시니까요.’

제가 다정하고 상냥하지 않다면 절 좋아하지 않으실 건가요?’

 

 

 

만달로리안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루크는 열어둔 창문으로 들어오는 봄바람을 만끽하며 눈을 지그시 내리깔았다. 짧은 정적 후, 만달로리안은 대답했다. 방금 전의 침묵이 무색할만큼 단호하고 단정적인 어조였다.

 

 

 

‘....’

 

 

 

루크는 만개한 봄꽃처럼 웃었다.

 

 

 

 

 

 

 

 

 

-

 

 

 

 

 

 

 

 

 

간혹, 루크는 밤의 숲으로 뛰어나가 발치에 끈질기게 달라붙는 악몽의 그림자들을 떨쳐내려 애쓴다. 한껏 벌린 입으론 비명대신 가파른 숨소리만 터져 나온다. 목이 콱 틀어 막히는 기분에 손톱을 세워 목덜미를 긁어내린다. 피가 날 정도로 긁다보면 영문 모를 가슴팍의 술렁임이 사라지곤 했다. 어느새 뺨이 온통 젖어들었다. 숲의 공터에 주저앉아 무심하게 지상을 관조하는 별들의 장막을 올려다본다.

 

 

 

선생님께선 도움이 필요하신 것 같군요.’

 

 

 

어느새 다가온 만달로리안이 루크의 어깨에 담요를 두르며 말한다. 그 어느 날엔가, 레아가 했던 말과 같은 말이다.

 

 

 

왜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나요?’

물어보길 바라시나요?’

‘...’

누구에게나 말 못할 사정은 있는 법이죠.’

 

 

 

만달로리안은 그렇게 말하곤 루크를 안아든다. 속눈썹에 매달린 눈물방울들이 그제야 중력에 의해 아래로, 아래로 떨어진다. 루크는 눈을 감았다. 익숙한 진동이 제 불안을 해소시킨다. 베스카의 딱딱한 감촉이 여느 요람보다 부드럽고 푹신해서 루크는 속절없이 잠에 빠져든다. 기절과도 같은 잠이었다.

 

 

 

 

 

 

 

 

 

-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촉망받는 제다이에서 타락한 시스로 전락한 이유는 어찌 보면 단순했다.

 

 

 

누군가를 너무 깊이 사랑했기 때문이다.

 

 

 

 

 

 

 

 

 

-

 

 

 

 

 

 

 

 

 

그 밤의 일을 레아 또한 기억하고 있을 터다. 반란군이 승기를 잡고 제국군이 몰락하기 시작하던 날의 밤. 루크는 자꾸만 어깨에서 쏟아져 내리는 무거운 시신을 끌어안고 레아가 기다리는 숲으로 향했다.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제 안의 무언가가 함께 쏟아지는 기분이었다. 감정의 편린들이 조각나 발치에 흩어진다.

 

 

 

살리고 싶었다. 이기적인 바람이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의 마음속에 남은 선량한 마음이 루크를 살렸지만 그 자신은 살리지 못했으리라는 것쯤은 마주한 눈빛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온전한 선의를 되찾은 아나킨 스카이워커는 과거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을 터다. 동료를 죽이고 무고한 자들을 학살하며 마침내 자신의 아들마저 위험에 빠뜨린 그 스스로를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길 바랐다. 함께하지 못한 모든 과거의 나날들이 미친 듯이 억울하고 가여웠다. 그 손에 수천의 목숨이 스러진 걸 알면서도. 눈물이 소리 없이 뚝뚝 떨어진다. 그들 부자의 발자취를 따라 길게 이어진다.

 

 

 

어깨에서 자꾸만 미끄러지는 묵직한 체중을 감당하며 루크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먼 곳에서 승리를 자축하며 흥겹게 노래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노랫소리를 이정표 삼아 걸었다. 딱딱하게 식어 나무토막처럼 뻣뻣한 아버지의 시신을 이고.

 

 

 

그리하여 마침내 마주한 유일한 혈육이 루크를 눈에 담곤 안아줄 때까지.

 

 

 

 

 

 

 

 

 

-

 

 

 

 

 

 

 

 

 

눈물이 눈꼬리를 타고 길게 흘러내린다. 축축한 베갯잇이 루크의 눈물을 흠뻑 머금는다. 누운 자신 옆에 누군가가 있다. 소스라치게 놀란 루크가 상체를 벌떡 일으켜 앉는다. 그 격한 움직임에도 침대 옆 작은 의자에 앉아 팔짱을 끼고 태평하게 졸고 있는 만달로리안은 별 반응이 없다.

 

 

 

‘....’

 

 

 

루크는 다시 조용히 침대에 눕는다. 눈을 감자 아늑한 어둠이 자신을 감싸는 게 느껴졌다. 깊은 수마가 그를 안식으로 인도한다. 어느 새 눈물이 멎어 있었다.

 

 

 

 

 

 

 

 

 

-

 

 

 

 

 

 

 

 

 

매일 밤마다 초대받지 않은 만달로리안은 밤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루크의 방문턱을 넘는다. 루크는 모른 척 그 밤손님을 묵인한다.

 

 

 

루크의 베갯잇이 점점 뽀송뽀송해진다.

 

 

 

 

 

 

 

 

 

-

 

 

 

 

 

 

 

 

 

루크. 넌 도움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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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이 쌓일 무렵, 만달로리안은 떠날 채비를 한다. 루크는 만달로리안의 방문 앞에 서서 그가 부산하게 짐을 싸는 모습을 지켜본다. 푸른 눈이 무력하게 깜빡인다. 루크는 무어라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윽고 뒤로 돌아선다. 기간은 그가 나을 때 까지만. 봄에 돌아오고, 여름을 지나, 이제 가을이다. 보내주어야 할 때다.

 

 

 

방문을 연다. 색색깔의 조약돌들이 햇볕에 반사되어 다채롭게 빛난다. 그 옆의 꽃들이 생생하게 박동한다. 침대 머리맡에 놓아둔 의자 위로 창문 너머 투과된 햇볕이 비춘다. 그 소름끼치는 온기가 루크의 숨통을 죈다. 어느 새 루크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달리고 있다.

 

 

 

 

 

 

 

 

 

-

 

 

 

 

 

 

 

 

 

가지 마세요.’

 

 

 

레이저 크레스트의 발판에 올라선 만달로리안은 제 망토를 거세게 휘어잡은 루크의 손아귀에 잠시 휘청이다가 이윽고 균형을 잡는다. 베스카 헬멧에 비친 루크의 얼굴은 땀과 눈물로 엉망이다. 루크는 떨리는 손으로 만달로리안을 붙잡는다. 가득 품에 안으니 딱딱한 베스카 감촉이 루크를 찌른다. 루크의 온 몸이 떨린다.

 

 

 

날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그랬잖아요.’

‘....’

이곳에 있어줘요. 제 곁에..영원히 함께 해줘요.’

루크.’

 

 

 

루크는 놀란 눈으로 만달로리안에게서 한 발자국 멀어진다. 그가 자신을 이름으로 부른 건 처음이다. 그에게 있어 자신은 언제나 선생님이었다. 벌어진 거리만큼 만달로리안은 성큼, 앞으로 한 발자국 다가온다. 가까워진다.

 

 

 

절 사랑하시나요?”

 

 

 

 

 

 

 

 

 

-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죽음이 마지막 상실이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루크는 더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

 

 

 

 

 

 

 

 

 

당신을 사랑해요. 떠나려는 만달로리안의 발치에 무릎을 꿇으며 그는 끝내 패배를 시인한다. 한때 만달로리안이 가을 하늘과 닮았다고 명명한 푸른 눈이 너울지며 투명한 눈물을 자아낸다. 루크는 소리 없이 오열한다. 당신을 사랑해요. 사랑해요, 딘 씨.

 

 

 

그런 저를 용서할 수 없어요.

 

 

 

 

 

 

 

 

 

-

 

 

 

 

 

 

 

 

 

그렇다면.”

 

 

 

만달로리안은 고저 없이 말하며 무릎을 꿇는다. 루크의 얼굴을 조심스레 들어 올린 그가 이마를 맞붙이며 애달프게 애원한다. 그가 말을 이을 때마다 루크의 세상이 조각조각 흩어진다. 신기루처럼 흘러내린다. 푸른 하늘과 빽빽이 들이찬 숲들이 안개처럼 흩어지는 가운데, 만달로리안은 종막을 선언한다.

 

 

 

이제 그만 그곳에서 나와요, 루크.”

 

 

 

루크의 세상이 깨진 거울처럼 조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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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업 별전쟁 루크딘





 

2023.12.20 22:32
ㅇㅇ
모바일
미쳤다 내 센세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진심 최고
[Code: 293e]
2023.12.20 22:49
ㅇㅇ
모바일
만달로리안 발치에 무릎꿇고 사랑한다고 고백해버리고야 마는 루크 미쳤다 시발 센세 어디가지마 평생 함께야 시발!!!!
[Code: bd7e]
2023.12.23 13:04
ㅇㅇ
모바일
ㅅㅂ딘을 경계하고 쳐내다가 결국 패배를 선언해버리고 마는 제다이 마스터가 너무 맛도리에요 센세가 올려준 다음편들도 달리러 간다 끼요오오옷
[Code: f252]
2023.12.30 02:40
ㅇㅇ
모바일
센세!!!!!!!!센세가돌아오다니ㅜㅜㅜㅜㅜ재업이라니 이것이 새해선물?????ㅜㅜㅜㅜㅜ
[Code: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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