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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2 23:48
ㄴㅈㅈㅇ
날조ㅈㅇ
고증, 개연성, 현실성 따윈 없음
전편: https://hygall.com/559716173





심호흡을 한 번 하자. 갑작스럽게 칼에 찔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엔 조금 부족한 감이 있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허니는 그때 그 여자가 손을 빼는 것을 막았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날카로운 물체에 찔렸을 때 그 물체를 뽑지 말라고 누누이 들어왔던 상식은 막상 실전에선 활용하지 못했다. 굳이 실전 실패에 대해서 두 개의 변명을 하자면 첫째로 그 누구도 칼에 찔릴 상황을 대비해 칼을 고정하는 순발력을 갖고 있지 않았고(갖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허니는 아니었다), 두 번째로 칼을 뽑는 데 허니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자는 천천히 칼을 빼냈다. 정신이 여즉 신발 끈을 묶는 사이 몸은 먼저 현실 밖으로 뛰쳐나왔다. 허니는 칼이 빠지고 나간 빈자리에 두 손을 가져갔다. 차가운 손가락에 뜨겁고 미끈거리는 액체가 느껴졌다. 미숙한 손짓으로 허니는 상처를 틀어막았으나 무너지는 댐을 손가락으로 막는 일에 지나지 않았다. 

누군가 말을 했다. 솔직히 허니는 듣지 못했다. 귓가에 울리는 자신의 심장박동 소리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두근, 두근—
바닥에 무언가 후두둑 떨어졌다. 시야에 검붉은 것이 보였다.
두근, 두근—
허니는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여자의 입이 열린다. 


“—어—ㅅ..”

허니의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성 라파엘로 병원의 인턴 앨런 러드리지는 ‘그 말’을 해버렸다. 응급실 내 모든 의료인은 그를 향해 두 눈을 부릅떴다. 찔리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은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선배 의료인들에 앨런 러드리지는 비굴하게 몸을 움츠렸다. 당장 ‘그 말’을 취소하라며 포화 같이 쏟아지는 말에 그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말을 주워 담을 수 있는 시간이 초과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쾅–!

폭발음과 함께 응급실 문이 날아가 반대편 벽에 처박혔다. 맥아리 없이 바닥에 나뒹구는 문짝을 그 장소에 있던 전원이 망연히 바라봤다. 그동안 묵묵히 많은 환자를 맞이했던 응급실의 문은 그렇게 운명을 다했다. 모두 앨런 러드리지를 탓했다.

앨런 러드리지는 그 후 의사 생활을 통틀어 ‘한가’라는 단어를 다시 입에 담는 일은 없었다.












허니는 점점 정신이 깨는 것을 느꼈지만 눈 뜨기를 망설였다. 침대가 너무 푹신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침대가 아니라 구름 같네. 허니는 온몸을 부드럽게 삼키는 포근함에 취해 있다가 뒤늦게 이 포근함은 절대 제 침대가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걸 떠올렸다. 눈을 뜨자 보이는 저 천장도 제가 아는 것이 아니었다. 낯선 천장에게 개인적으로 기분이 상한 사람처럼 천장을 뚱한 얼굴로 쳐다보는데 옆에서 움직임이 느껴졌다. 고개를 틀자 너무 잘 아는 사람이 보였다.



“로즈?”



말을 뱉은 순간 허니는 제 목소리가 형편없다는 것에 흠칫했다. 목구멍에 한낮의 사막 모래를 치덕치덕 발라놓은 것 같았다. 소파에 널브러져 있던 로즈는 꺼끌거리는 목소리를 들었는지 몸을 꿈틀거렸다. 부스스 일어난 로즈는 어리둥절한 눈동자를 발견하곤 벌떡 자리에서 튀어 나왔다.



“허니! 정신이 들어? 나 누군지 알겠어? 어디 아픈 데는 없고?!”
“로즈, 너 왜 여기-”
“목소리가 엉망이네, 물 줄까? 아니, 물 줘도 되는 건가? 간호사 불러야 하나?”
“로-”
“가만있어 봐, 너스콜 눌러줄게. 몸 불편하지 않아? 침대 올려줄까?”



사람 말을 들을 생각이 없는 친구를 허니는 무력하게 바라봤다. 로즈가 멋대로 침대를 올리고 물을 탁상에 두고 이불을 매만져 주는 걸 허니는 가만히 두었다. 원래라면 로즈가 만족할 만큼 부산을 떨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누군가 허니를 불쌍히 여겼는지 허니를 구원해 줄 사람이 등장했다. 



“일어났구나, 허니!”



안도의 미소를 크게 달고 들어오는 미카엘라가 허니는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웠다. 진정 미카엘라는 천사였다. 감사와 피곤이 섞인 얼굴로 미카엘라를 맞이하는데 미카엘라 뒤로 낯선 이가 따라 들어왔다. 아까 로즈가 토하듯이 뱉어내던 말 중 ‘간호사’라는 말이 생각났다. 간호사는 친절한 웃음을 달고 짧게 인사를 한 뒤 허니의 상태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간호사가 차트에 무언가를 기록하는 동안 테이블을 두드리는 로즈의 손톱 소리가 거슬렸다. 잠시 후 의사가 회진을 올 것이라고 안내해준 간호사는 왔던 대로 조용히 퇴장했다. 간호사의 존재로 깔렸던 임시 침묵이 사라졌다. 허니의 오른쪽에 자리를 잡은 미카엘라가 입을 열었다.



“오늘로 사흘째인데 오늘도 일어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이야.”
“너 오늘도 안 일어나면 수술 잘못한 거 아니냐고 의사 멱살 잡으러 가려고 했어.”
“그런 불상사를 막게 되어 정말 기쁘다.”



허니는 제 친구가 진심으로 그럴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알았다. 고개를 저으며 자세를 고쳐 앉으려는데 둔하게 느껴지는 통증에 허니는 고개를 숙였다. 환자복이 아닌 붕대의 질감이 복부를 두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허니는 마지막으로 봤던 식칼의 잔상을 그리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꿈이 아니었구나.”
“절대 아니지. 차라리 꿈이었으면 한다. 웬 미친 여자 때문에 이게 무슨 봉변이야.”
“그 사람은 어떻게 됐어?”
“현장에서 바로 체포됐고 인근 서에 구금되어 있어. 조사는 진행 중이야. 하지만 정황은 정확하니까 곧 구치소로 송치될 거야.”



허니의 질문에 미카엘라가 차근히 대답하였다. 허니는 시선을 미카엘라에게 옮기고 약간의 망설임 뒤에 다시 입을 열었다.



“왜 그랬대요?”
“그건….”



미카엘라가 로즈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가 말끝을 흐렸다. 눈치가 빠른 로즈는 커피 좀 마시고 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둘만 남은 병실에서 미카엘라의 깊은 한숨 소리가 울렸다.



“가해자가 그렇게 조사에 협조적이지 않아. 뭘 물어도 별말 없이 묵묵부답이라고 하더라. 그런데 경찰 쪽에선 일단 다임 하사와 관련되어 있을 거라고 짐작하고 있어.”



허니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름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약간 멍했던 정신이 확 들었다. 허니를 바라보는 미카엘라의 얼굴도 착잡해 보이기 그지없었다.



“그 사람이 유일하게 하는 말이 ‘데이비드 다임의 가이드는 죽었나요’ 라더라.”



병실 안에 적막이 깔렸다. 허니는 조용히 시선을 내려 식칼이 꽂혀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데이비드 다임의 가이드 되시나요?’, 라고 여자는 물었다. 허니는 물음에 그렇다 대답했을 때 여자의 눈빛을 떠올렸다. 정적이지만 어딘가 고집스럽게 자신을 뜯어 보던 눈빛이 여전히 뇌리에 선명했다. 일직선을 닮은 눈빛이라고 생각했다. 살 위로 시선의 압박감을 느낄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집요한 시선의 목적지는 ‘데이비드 다임’이었다. 그리고 제가 지금 있게 된 장소를 두고 짐작건대 분명 시선이 품고 있는 의도는 선한 것이 아닐 것이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떠한 원한이 있어 이런 일을 벌였다면 허니가 알고 싶은 것은 왜 자신이냐, 였다. 물론 원한 대상의 주변인에게 보복하는 경우가 있지만 자신은 너무 뜬금없지 않은가. 오래 알고 지낸 사이도 아닐뿐더러 특별히 깊은 관계도 아니었다. 그의 가이드이긴 하지만 매칭도 아닌 임시 가이드일 뿐인데 이렇게까지 과격한 수를 쓰기에는 너무 과하지 않나. 너무 순진한 생각인가, 그냥 아무나 상관없었던 흔한 범죄자의 치졸한 사고였던가. 깊이 생각의 골에 빠져있던 허니는 자신을 부르는 미카엘라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오는 미카엘라에게 허니는 웃어 보이고 조금 늦은 질문을 건넸다.



“하사님은 괜찮으세요? 무슨 해코지는 안 당하셨죠?”
“어… 그게 말이지….”



확실히 대답을 못 하는 미카엘라에 허니는 미간을 좁혔다. 알 수 없는 불안함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미카엘라는 굉장히 난처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다치지는 않았는데….”



미카엘라는 자신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점점 굳어가는 허니의 얼굴을 보면서 입안이 씁쓸해졌다. 모든 상황을 전달받은 허니는 아무 말이 없었다. 허니는 완벽한 무표정이었지만 누군가 허니의 얼굴을 그린다면 미카엘라는 그 그림에 ‘분노’라는 이름을 붙여줄 것이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지나고 허니가 미카엘라에게 자신의 핸드폰의 행방을 물었다. 로즈의 혜안으로 충전까지 되어 있던 핸드폰을 집어 든 허니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얼마 가지 않아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소장님. 제가 방금 하사님이 있지도 않은 폭주 위험 때문에 센터에 구금되어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소식을 들었는데요. 어떻게 된 일일까요?”



허니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침착했다.







허니는 십 분도 안 되어서 소장과의 전화를 마무리했다. 그 사이에 돌아온 로즈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통화가 끝나자 참고 있던 웃음을 터트렸다. 모든 걸 지켜본 미카엘라는 제 상사의 상사의 상사를 가볍게 주무르는 후배의 유능함에 자기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멍해지는 정신에도 미카엘라는 일단 감탄사를 터트렸다.
















사흘 만에 정신을 차린 허니는 여기저기 불려 다녔다. 반복되는 채혈에 허니는 문득 과다출혈이 있었는데 이만큼이나 피를 뽑아도 괜찮은 것인지 궁금해졌다. 주삿바늘을 보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으나 허니는 재빨리 지워버렸다. 별의별 검사와 진료를 받다 보니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배에 구멍이 뚫리고 비장이 절반 정도 사라진 것 외에는 특별히 문제는 없는 것 같았다. 남아 있겠다 고집을 부리는 로즈를 겨우 돌려보내고 나니 별달리 할 일도 없어 허니는 일찍 잠이 들기로 했다. 초저녁이었지만 무슨 성분인지는 몰라도 제 혈관에 꽂혀 있는 약물은 이른 잠에 드는 데 충분히 도움이 되었다. 

어스름하게 밝았던 하늘이 눈을 감았다가 뜨니 빛을 잃고 새까맣게 칠해져 있었다. 병실 문에 달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복도 조명만이 실내를 희미하게 밝히고 있었다. 잠의 기운이 역력한 눈을 끔뻑이며 창밖을 바라보던 허니는 왜 잠에서 깨어난 것인지 의아해했다. 멍한 머리를 굴려보다 허니는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그리고 허니는 자신이 잠에서 깬 이유를 깨달았다. 커다란 사람의 실루엣이 침대 바로 옆에 붙어 있었다. 위협적인 크기였으나 허니는 놀라지도 않고 그 실루엣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실루엣의 주인은 위험한 존재가 아니었다. 비논리적이지만 허니는 그냥 알았다. 



“하사님?”



잠에 잠긴 목소리가 물었다. 그러자 큰 실루엣에서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굵고 저음의 목소리가 반가워 허니는 씩 입꼬리를 올렸다.



“센터에서 언제 나오셨어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구금 해제가 된 건 몇 시간 전이지만 복귀 절차가 오래 걸렸습니다.”
“그랬구나. 연락하셨다면 죄송해요, 제가 자느라 연락 못 받았을 거예요.”
“…아닙니다, 제가 미처 연락을 드리지 못하고 방문했습니다.”



사무적인 어조에 당황이 묻어났다. 



“휴식을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방해 아니에요. 그냥 계세요.”



몸을 일으킬 준비를 하는 다임을 허니가 다정한 목소리로 붙잡았다. 그 말에 어정쩡하게 일어나 있던 실루엣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자세를 바로 한 다임이 적막한 공기를 살피다 말을 꺼냈다.



“소장님께 직접 연락을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허니 덕에 빠르게 나올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당연한 건데요, 뭘. 사람이 당황해서 동요한 거로 구금까지 한 센터가 이상한 거죠. 사람이 눈앞에서 칼에 찔렸는데 당황 안 하면 그게 이상한 거지.”



다임이 사람 머리가 눈앞에서 터져도 평정을 잃지 않는다는 건 허니가 모르는 일이었다. 다임은 그 사실을 굳이 말하지 않고 침묵했다. 허니가 침묵 사이로 물었다.



“혹시 센터에서 중세 시대에나 있어야 할 제어구도 차게 했어요?”
“센티넬 제어구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맞습니다.”



어두운 실내이나 더러운 오물을 본 것처럼 찌푸려지는 허니의 얼굴이 다임에게 보였다. 허니가 꼼꼼하게 덮여 있던 이불 사이로 손을 쑥 내밀었다.



“손 좀 잠깐 빌려주세요.”



다임은 의아했으나 허니의 말대로 따랐다. 이불에 파묻혀 있던 탓인지 잡은 손이 무척이나 따뜻했다. 평소보다 높은 온기에 본인도 모르게 가지고 있었던 다임의 불안이 풀렸다. 허니는 다임의 손이 잡히자 몸을 뒤척이더니 옆으로 누웠다. 상처가 있는 쪽은 아니었으나 다임은 잔뜩 걱정어린 말로 허니를 말렸다.



“그러지 마십시오. 상처에 좋지 않습니다.”
“잠깐만 이러고 있을게요.”



허니는 제어구가 채워졌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손목을 두 손으로 가볍게 그러쥐었다. 다임은 약하게 가이딩이 실린 손으로 살살 제 손목을 매만지는 허니에 잠시 숨을 멈추었다. 다임은 목소리의 떨림을 감추며 말했다.



“…회복에 지장이 갈 수 있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지금까지 가이드 생활을 해보고 말씀드리는데 고작 이 정도로는 제 몸에 어떠한 무리도 안 가요. 고양이가 털 빠짐으로 대머리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랑 똑같으니까 걱정 마세요. 그리고 이러고 있는 게 제 심신의 안정에 도움이 돼요.”



확실한 어투로 말하는 허니에 다임은 하는 수 없이 물러났다. 사실 못 이기는 척하는 것에 가까웠다. 허니는 계속 다임의 손목을 만지작거렸다. 저번에 맥카이에게 들은 이야기로 제어구는 허니 안에서 고문 기구 따위로 분류되었다. 그런 비인도적인 물건을 제 센티넬에게 사용했다는 사실이 허니는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짜증이 나고 슬프고 서러웠다. 허니가 짐작하기로 제어구는 고통을 주는 기구이고 때문에 그런 걸 달고 있어야만 했던 다임에게 일종의 상처가 남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보이지는 않아도 혹시라도 남아 있는 아픔을 지우고 싶었다. 허니는 새끼에게 난 상처를 핥는 어미 짐승처럼 두 손으로 센티넬의 손목을 조심히 쓸었다. 

한동안 다임의 오른 손목을 만지던 허니는 어느 정도 만족했는지 손목을 놓아 주곤 다른 쪽을 내어달라고 부탁했다. 다임은 이번에도 주저 없이 손을 내밀었다. 허니는 아까와 똑같이 왼쪽 손목을 가운데에 두고 두 손을 포갰다. 가만가만 제 손목을 어루만지는 손길에 다임은 한없이 안심되었다. 손목으로부터 따스함이 번져 온몸이 나른해졌다. 고요라는 베일로 가려진 공간에 누군가의 숨소리만 간간이 들려왔다.



“탄원서 넣을 거예요.”



병실 안에 드리워진 베일을 해치지 않을 만큼의 목소리로 허니가 웅얼거렸다. 몸에 힘을 풀고 가만히 손을 내어주고 있던 다임이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무엇을 말입니까.”
“그 제어구 다시는 사용하지 말라고요.”



어둠 속에서 허니는 심술이 단단히 난 얼굴을 하였다. 그것을 지켜본 다임은 은은한 미소를 걸고 대답했다. 



“그게 제일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효과적이면 뭐해요. 방식이 글러 먹었는데.”



약물과 잠기운으로 혀가 느슨해졌는지 허니의 입에서 거친 말투가 튀어나왔다. 허니는 불만에 가득 차 툴툴거리기 시작했다.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그런 야만적인 물건이 있을 수가 있어요. 만들 거면 고통을 주지 않는 것으로 만들 수는 없었나. 폭주를 막는 건 중요하지만 꼭 아프게 할 필요는 없잖아요.”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억제제와 진정제를 주입해 가사 상태를 유도하기도 합니다.”
“그게 뭐예요. 센티넬이 무슨 동물도 아니고, 요즘엔 동물도 그런 식으로 안 다뤄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센티넬에 대한 처사가 부당하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져요.”



허니의 말소리가 점점 입안으로 말려들어 간다. 혈관 속에 흐르고 있는 약물의 영향이 수면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것 같았다. 아직 힘겨루기에서 이성이 우세였던지라 허니는 눈을 몇 번 깜박이고 말을 계속했다. 



“들었어요, 하사님이 절 병원으로 데려다주셨다고. 고마워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런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절 챙겨줄 정신이 있으신 건 대단하신 거예요. 그리고 비장을 아예 적출을 했어야 했는데 하사님이 처치를 잘 해주셔서 적출은 피했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해주셨어요. 하사님 덕분에 제 비장 절반이 살아남았네요. 여러모로 정말 감사드려요.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보답은 필요 없습니다.”



사람이 너무 좋으시네, 허니는 이 말을 실제로 했는지 생각만 한 것인지 헷갈렸다. 허니는 가물가물한 정신으로 최대한 입을 움직여 보았다. 현실과 무의식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탓에 허니의 말은 드문드문 이어졌다.



“그나저나, 저 2주는 입원해야 한다던데… 가이딩 어떡하죠?”
“허니가 충분히 회복한 다음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너무 힘드시잖아요. 다른 가이드분께 받고 계세요… 제가, 센터에 말해놓을게요.”



눈꺼풀을 들어 올리기가 점점 힘겨워지고 검은 실루엣이 부옇게 흐릿해져 갔다.



“괜찮습니다.”
“괜찮긴요…. 지난번에…”

임무에서 돌아오셨을 때 엄청 힘들어하셨으면서. 뒷말이 허니가 수마에 삼켜진 탓에 이어지지 못하고 허니의 입안에서 사라졌다. 가물어서 쩍쩍 갈라진 땅 같은 형질을 마지막으로 떠올리며 허니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병실 안은 깊게 잠이 든 허니의 고른 숨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우두커니 그 숨소리만 듣고 있던 다임은 입을 열었다.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허니가 듣지 못하는 목소리와 허니가 보지 못하는 얼굴로 다임은 빌었다. 다른 이의 가이딩 따위 다시는 받고 싶지 않았다. 자신은 이미 물이 무엇인지 알기에. 자신을 적시는 그 포만감과 안정감을 맛보았는데 내가 감히 다른 것에 만족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허니가 아닌 이가 제게 닿는 것이 싫었다. 허니의 것이 아닌 이물질이 자신을 채우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다임은 자신의 손을 여전히 잡은 손을 힘주어 그러잡았다. 허니가 이대로 잡고 있어 주길 바랐다. 자신을 놓지 말고 계속 이 손으로 잡아주기만 한다면 무슨 짓이든 할 텐데. 그러나 이 사람은 매번 매몰차게 흘려보내기만 한다. 속박 따위는 아예 생각도 없는 것처럼. 지금도 수십 번이고 생각하는 자신과는 다르게. 

어두운 공간 속에서 자는 이를 내려다보는 이의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다임은 서로 얽혀 있는 손들로 시선을 옮겼다. 그때에도 이렇게 그들은 손을 잡고 있었다. 피범벅이 되어 한데 뒤엉켜서. 처음 마주 잡았던 날보다 더 차가운 손을 자신은 지금처럼 간절히 붙잡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발달한 감각이 저주스러웠다. 무서우리만치 익숙한 피 냄새와 심장박동에 맞춰 피가 쏟아지는 소리가 온통 제 감각을 틀어막았고 한 번도 무너지지 못한 평정이 최초로 균형을 잃었다. 

그 장소에 있던 사람들 중 반은 혈관이 터져 코와 눈에서 피를 흘리며 비명을 질렀고, 반은 숨통과 심장의 혈류가 가로막혀 목과 가슴을 움켜쥐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지옥도를 그리는 그곳에 다임만이 멀쩡하게 존재했다. 가이드의 피 웅덩이 사이에서. 언제나처럼 완벽한 모습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그러나 붕괴의 잔해가 지면에 닿기도 전에 다임의 손을 잡아 오는 이가 있었다.


‘데이비드.’


서늘한 손과 다정한 목소리가 자신을 잡아 왔다. 시선을 맞추니 검은 두 눈동자 속에 비치는 자신이 보였다. 본 적이 없는 얼굴이었다. 저건 무슨 얼굴이지?



‘진정해요.’



손의 떨림이 멈췄다. 숨통이 트이고 얼어붙은 심장이 들썩거렸다. 거짓말처럼 딱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공포가 물러났다. 

그제야 다임은 이해할 수 있었다. 제 삼촌이 당부처럼, 경고처럼 남긴 유언을 말이다. 그 말을 남기고 눈을 감은 삼촌은 기뻐 보였다. A급 센티넬임에도 큰 흉터가 남아 있는 왼쪽 가슴 위에 손을 올려 두며 다임은 그 표정을 위안 삼아 남아 있던 주저함을 몰아냈었다. 삼촌 또한 지금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겪었던 것인가. 방금 저가 죽인 센티넬도 이런 기분이었나. 그동안 죽여온 센티넬들이 이와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라면 다임은 그들을 죽일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가이드를 잃다’라는 명제에 ‘살다’라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았다. 이치에 맞지 않은 삶을 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데이비드 다임’ 이라는 본질이 의미를 잃고 조각이 났다. 한데 그 조각이 완전히 떨어져 나가기 전 한 존재가 걱정스럽게 바라봐주는 것이 아닌가. 그 시선 한 줄기만으로도 충분했다. ‘데이비드 다임’이 의미를 되찾기에. 그는 자신의 가이드였고 자신은 그의 센티넬이였다. 존재의 의의가 재정립되는 순간이었다.

센티넬이 이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저를 잡아 오는 피 묻은 손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날 아무도 죽지 않은 이유는 당신이 나를 불러주었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살아서 누구도 죽지 않은 것이다. 그것이 그날의 진실이었다.

다임은 잡은 손을 끌어올렸다. 자세를 낮춘 다임의 입술에 허니의 손등이 닿았다. 허니의 손등은 따뜻했고 보드라우며 피비린내는 나지 않았다. 다임은 손등 혈관 속에서 흐르는 가이드의 피를 느끼며 눈을 감았다. 유일무이한 존재에게 기도를 올리듯 경건한 마음으로 다임은 입술에 무게를 실었다. 보드라운 살갗에 희미한 형질이 스며들었다. 손등을 맴돌던 형질은 주인의 지시를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흩어져 사라졌다. 제 형질이 허공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다임은 한탄했다.

내가 당신 안에서 흐르면 좋을 텐데.

회한 어린 시선으로 센티넬은 밤을 지켰다.














허니는 차츰 회복했다. 비장을 절반 잃은 사람답지 않게 허니는 활동적이었다. 솔직히 병실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은 너무 제한적이어서 돌아다니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필연적인 산책으로 허니가 알게 된 것은 세 가지였다. 이 병원은 조경이 잘 되어 있다는 것과 시설은 좋은데 응급실 문은 없다는 것, 그리고 지나치게 사람들이 친절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환자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것은 의료계 종사자로 당연히 갖춰야 할 모습이지만 이들이 허니를 대하는 자세는 조금 평균에서 벗어난 것 같았다. 어딜 가든 따라오는 시선, 과한 관심, 부담스러운 미소는 허니에게만 유독 치중되었다. 병원에서 가장 호화로운 1인실을 사용하고 있어 그런 것일 수도 있으나 허니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다고 1층으로 가는 도중 활기찬 열 네 번째 인사를 받으며 생각했다. 분명 몰래 나온다고 해서 나왔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허니는 잘 꾸며진 산책로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착각이라고 되뇌지만 허니는 자꾸 감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찜찜한 마음으로 허니는 산책로를 거닐었다. 걷다 보니 기분 나쁜 감각이 사라지고 머릿속이 침착히 비어져 갔다. 작은 인공 연못의 물소리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한결 정돈되었다. 멍하니 걷고 있는데 연못 맞은편 벤치에 앉아 있는 인물이 보였다. 환자복을 입고 있는 노인이 들고 있는 빵을 조금씩 떼어 연못 안으로 던지고 있었다. 그동안의 입원 기간으로 허니에게 익숙해진 인물이었다. 허니는 그 인물이 앉아 있는 벤치로 다가갔다. 자박자박, 흙을 밟는 허니의 발소리가 들리고 있음에도 노인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허니는 노인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벤치에 앉았다. 



“식사는 하셨어요?”
“먹기 싫어도 여기서 먹여주니 별수 있겠니.”
“메뉴가 마음에 안 드셨나 봐요.”
“여기 음식들은 너무 밍밍해서 원, 있던 입맛도 달아나게 하더구나.”



노인은 투박한 말투로 대꾸했다. 허니는 작은 미소와 함께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난 것처럼 아, 소리를 내었다. 허니는 노인 쪽으로 고개를 조금 돌리고 물었다. 



“병원 근처에 꽤 유명한 샐러드 가게가 있는 거 아세요? 전부터 가보고 싶었는데 친구랑 시간이 안 맞아서 못 가고 있어요. 괜찮으시면 저랑 같이 가보시겠어요?”
“시끄러운 덴 질색이다.”
“그러지 마시고요, 저도 병원 밥 너무 물려서 더는 못 먹겠어요. 저 한 번만 도와주세요. 네? 부탁드려요.”



살짝 울상을 지은 허니의 얼굴을 노인이 힐끗 쳐다봤다. 노인이 미간을 조금 좁히더니 마지못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언제 가려고.”



허니는 눈과 입꼬리를 시원하게 휘며 대답했다.



“이번 주 금요일 어떠세요?”
“그래, 간호사에게 말해놓으마.”


허니는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대답을 돌려주었다. 그 얼굴을 본 노인은 얼굴을 찌푸리려 했으나 입가에 걸린 미미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노인은 입가를 정리하고 옆에 두었던 꾸러미 같은 것을 스윽 꺼내놓았다.



“받으렴.”
“우와, 체리네요?”
“병실에 가져가서 혼자 먹든, 나눠 먹든 하렴.”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허니는 사이에 놓인 체리 상자를 집어 들었다. 잘 익어 검붉은 거죽을 빛내는 체리를 보며 허니는 과일 바구니를 또 받으셨나 보네, 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허니는 노인에게 들리지 않게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허니는 노인과 가벼운 잡담을 이어나갔다. 오믈렛의 버터 적정량에 대해 듣고 있는데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려 허니는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자 전혀 반갑지 않은 얼굴이 보였다. 맥카이가 특유의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여긴 무슨 일이에요?”
“인사도 안 해주는 거예요? 너무해.”
“안녕하세요. 여긴 무슨 일이에요?”



허니는 맥카이가 우는 소리를 늘어놓기 전에 빠르게 꼬리를 끊었다. 허니는 진작 이 자에게 꼬투리를 남기면 안 된다는 걸 배웠다. 딱 끊어내는 말투에도 맥카이는 헤실헤실 웃었다.



“병문안 왔어요.”
“불청객은 거절하고 싶은데요.”
“매정하게 그러지 말아요, 가이드 님 주려고 꽃도 가져왔는걸.”



맥카이가 한쪽 손에 들고 있던 것을 허니에게 내밀었다. 맥카이는 노란 튤립 한 송이를 들고 있었다. 허니는 튤립을 보고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이거 병원 화단에 있던 거 아니에요?”
“응, 맞아요. 내가 거기서 가져왔어요.”



내가 병원 화단의 꽃을 꺾었노라고 순순히 자백하는 꼴에 허니는 눈을 꾹 감았다. 지끈거리는 관자놀이에 한숨을 크게 내쉬려다가 옆의 노인을 기억해내고 간신히 참아냈다. 허니는 노인에게 빙긋 웃는 얼굴로 말했다.



“손님이 와서 먼저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요. 금요일엔 제가 병실로 찾아갈게요, 그럼 몸조심하세요.”



허니는 노인이 준 체리 꾸러미를 챙기고 가벼운 목례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병실로 돌아가는 길에 맥카이가 따라붙었다. 옆에서 달랑이는 맥카이에게 허니는 찌푸린 시선을 보냈다. 그런 시선을 뻔히 알면서도 맥카이는 변함없이 웃는 얼굴이었다. 맥카이가 허니의 걸음에 맞춰 걸으며 물었다.



“근데 저 할머니는 왜 저러고 있어요?”
“뭐가 말이에요?”
“왜 저 연못에다 빵을 던지고 있는 거예요? 저 연못엔 아무것도 없는데.”



맥카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허니는 시선을 돌리고 침묵을 유지했다. 허니는 침묵하는 동안 흙을 밟는 감각과 맥카이의 시선이 느껴졌다. 병원 안으로 들어가기 전 허니의 입이 열렸다.



“저분도 아세요.”



맥카이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눈썹을 올렸다.



“저분도, 연못 안에 아무것도 안 사는 거 아신다고요. 그러니까 아무 말도 마세요.”



알 수 없는 허니의 대답에 맥카이는 더 물어보고 싶었으나 허니의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허니의 주먹이 얼마나 매서웠는지 기억하기 때문이었다.










병실로 들어서자 허니는 침대에 걸터앉고 팔짱을 끼며 물었다.



“진짜 왜 왔어요.”
“진짜 병문안이에요.”



맥카이가 빙긋 웃으며 아까의 튤립을 꺼내 들었다. 튤립을 보자 허니는 아까의 두통이 돌아오는 듯했다. 허니는 두 손가락으로 눈 안쪽을 누르며 말했다.



“병원 화단 꽃을 함부로 꺾으면 어떡해요. 대체 왜 그런 거예요.”
“그냥 예뻐서 가이드 님 주고 싶었어요.”



그 소리에 허니는 시선을 들어 맥카이를 삐딱하게 쳐다봤다. 놀이터에서 놀다 꽃을 보고 냅다 꺾어서 엄마한테 달려가는 다섯 살짜리 아이도 아니고. 사고방식이 왜 저러지. 허니는 진지하게 고민해보려다 시간 낭비일 것 같아 그만두었다.



“팔 아픈데, 꽃 안 받을 거예요?”



맥카이는 들고 있던 튤립을 살짝 흔들었다. 손을 흔들면서 드러난 맥카이의 소매 아래에 제어구가 보였다. 허니는 착잡하게 제어구와 튤립을 번갈아 바라보다 한숨을 크게 내뱉었다. 받고 싶진 않았지만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허니는 떨떠름한 얼굴로 맥카이의 손에서 튤립을 빼내었다.



“다시는 화단에서 꽃 꺾지 말아요.”
“응. 그럼 다음엔 사다 줄게요.”
“다음도 없었으면 하네요.”
“그럴 일 없는 거 알면서.”



맥카이가 샐쭉 웃어 보이자 허니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것을 보고 맥카이는 어서 주제를 바꿨다.



“사실 전할 말도 있어요.”
“전할 말이요?”
“미카엘라 가이드가 당분간 못 올 것 같다고 전해달래요.”
“미카엘라 팀장님이요? 무슨 일 있으세요?”
“으음, 무슨 일이 있다고 하면 있다고 할 수 있죠.”



맥카이의 애매한 대답에 허니가 표정을 굳혔다.



“제대로 말해요. 있다는 거예요, 없다는 거예요.”
“있어요. 근데 미카엘라 가이드에게만 생긴 게 아니에요. 센터 소속 모두에게 벌어진 일이지.”



허니가 알 수 없는 말에 눈썹을 좁혔다. 맥카이가 근처에 있던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영상이 공개됐어요. 다임이 폭주할 뻔했던 날의 영상이.”
“네?”



허니는 한순간 사고가 정지하는 것을 느꼈다.



“가이드 님에게 있었던 일은 쏙 뺀 채로요. 얼굴은 안 나왔지만 가이드 님은 마치 다임의 피해자처럼 나와요.”



허니는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최대한 정리해보려고 했다.



“무슨, 왜, 아니, 그게…, 어떻게, 영상이 있을 수 있어요?”
“영상 각도를 봐선 공중에서 찍은 거예요. 그때 헬기 같은 건 확실히 없었지만 드론 같은 거라면 그 소란 사이로 아무도 눈치 못 챘을 법하죠.”



허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닥을 내려다봤다.



“하필 영상이 공개된 곳도 보수적인 언론사여서 상당히 악의적으로 기사가 나오고 있죠. 그래서 지금 센터가 난리도 아니에요.”



남 일을 말하듯 태평해 보이는 맥카이의 태도에 평소라면 허니는 화를 냈겠으나 지금의 허니에겐 그럴 겨를이 없었다. 그 뒤로 맥카이가 뭐라 더 말한 것 같으나 생각에 빠진 허니에겐 들리지 않았다.



“아마 다임도 당분간 오지-”
“물어볼 게 있어요.”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허니가 불쑥 말을 꺼냈다. 



“뭐든지 물어봐요.”



맥카이는 허니에게 질문을 받은 것이 좋은 듯 씩 웃으며 허니의 입술이 움직이길 기다렸다. 그 입술은 이렇게 말했다. 



“그 여자가 체포된 곳이 어딘지 알아요?”



허니의 물음에 맥카이는 잠시 멈칫했다. 허니는 바닥에 고정해두었던 시선을 돌렸다. 맥카이는 가만히 허니와 눈을 맞췄다. 까만 눈동자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듯 고요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새까만 물이 자신을 마주 보고 있다는 느낌에 등골이 오싹했다. 모든 것에 무심하지만 모자란 자에게 적선하듯 던져주는 시선은 맥카이에게 미지의 전율을 선사했다. 계속 잔잔한 저 눈을 바라보고 있자면 이상하게 갈증이 났다. 맥카이는 혀를 내밀어 입술을 적시곤 대답했다.



“물론이죠.”



눈은 여전히 고요했다. 


아, 저 눈은 무슨 맛이 날까.
창백한 푸른 눈이 짙은 탐식을 담았다. 



















“데이비드.” 잔뜩 먼지가 낀 시계를 연상케 하는 목소리였다. 초침이 먼지가 들러붙은 몸으로 힘겹게 길을 헤쳐가고 있었다.

“가이드를 놓쳐선 안 된다.” 한때 강인함의 상징이었던 눈이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그 눈은 파란색이었으나 이상하게 바라보고 있으면 검다라는 착각이 들었다.

“너는 특히 놓쳐선 안 돼. 널 죽여줄 이는 없을 테니 말이다.” 거멓게 죽은 눈 속에 처음으로 감정이란 게 스쳤다. 어린 조카를 보는 삼촌의 눈이었다.

“지금 들은 말 잊지 말거라.” 오래되고 지친 눈이 닫혔다. 고단으로 주름진 얼굴이 평온해 보였다. 일 년간 제어구와 약물로 다스려온 몸에 다임은 손을 올렸다. 다임은 심장의 박동을 세면서 조용히 고별인사를 삼켰다. 심장이 멈추고 기울어지는 몸을 받았다. 

첫 살인이었다.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지 모르겠네…ㅎ
그동안 무순 전체 전반적으로 조금 수정했음.


다음편: https://hygall.com/586521089


다임너붕붕 가렛너붕붕 맥카이너붕붕
2024.03.02 23:5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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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ㅊ 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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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2 23:5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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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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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3 00:0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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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아아아 센세 너무 재미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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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3 00:0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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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ㅠㅠㅠ 센세가 돌아왔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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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3 00:0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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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사님이랑 허니 행복해졌으면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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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3 01:22
ㅇㅇ
헐헐헐 센세 오셨다!!!!!!!!!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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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3 02:0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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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ㅠㅠ센세 오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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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3 03:0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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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센세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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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3 03:0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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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미친다임 능력이 뭘까 삼촌 심장 멈추게 한걸 보니 저거와 관련된 능력인가 미치겠다 진짜 허니야 무병장수해라 그것만이 지구멸망을 막을 일이다 미친... 센세 무순 너무 좋아서 이마 쳤더니 두개골 함몰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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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3 04:1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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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얼마나 기다렸다구요!!! 다시 와주셔서 감사해요!!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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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3 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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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할 수 없음 추천할 수 없음 추천할 수 없음 추천할 수 없음 추천할 수 없음 추천할 수 없음 추천할 수 없음 추천할 수 없음 추천할 수 없음 추천할 수 없음 추천할 수 없음 추천할 수 없음 추천할 수 없음 추천할 수 없음 추천할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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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3 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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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줘서 고마워 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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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3 21:1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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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와줘서 고마워ㅜ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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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4 00:4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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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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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4 14:5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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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정말 돌아워줘서 고맙고 추천할 수 없음 뜨든게 너무 애속해 이걸 공지로 올려서 모든 사럼들이 봐야하는데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잏어? 나 너무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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