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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7 12:58
사보가 갑판 바로 아랫층인 세컨드 데크 복도를 달리는 동안 머리 위로는 크고 작은 진동이 이어졌다. 검은 부츠에 청바지, 푸른 계통의 셔츠와 투 버튼 조끼를 걸친 사보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정의라는 글자가 등에 새겨진 코트는 그의 뒤로 크게 나부꼈다.
조로가 위험하다. 한 손에는 길다란 파이프를, 그리고 다른 손에는 흰색 바탕에 위아래 금색 깍지로 마무리된 검집을 든 사보의 머리 속이 한 가지 생각으로 가득했다. 복도 바닥에 버려진 검집을 발견했을 때 사보는 제 눈을 의심했었다. 눈과 손에 익숙한 그것의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서다. 그래서 사보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복도를 내달려 조로를 찾기 시작했다.

“찾았다! 조로!!!”

사보가 조로를 발견한 건 외부로 노출된 일직선 통로에서였다. 그 끝에 누군가에게 안긴 채 뒤로 축 늘어진 조로의 머리가 보였다. 소도시만큼 넓은 함선 내부를 뛰어다닌 사보가 또다시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큰 덩치에 가려진 상대가 누군지도 상관없었다.

“먼저 가라!”
“멈춰!!”

시류의 말에 차를로스가 통로 끝에서 아랫층으로 가는 계단을 밟았다. 사보는 이 외부 통로로 연결된 계단을 사용한다는 것의 의미를 알고 있다. 크게 도약해 두 손으로 내려친 파이프를 시류가 가뿐히 튕겨내니 뒤로 물러나며 힐끔 바다쪽을 본 사보의 두 눈이 무섭게 타올랐다. 계단이 끝나는 배의 후미쪽에는 출항 준비를 마친 쾌속정 하나가 대기 중이었다.

“네가 소문의 사보 대령인가? 얼굴을 보니 알겠군.”

시류가 사보의 화상 흉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릴 적 마을에 난 큰 화재로 인해 부모를 잃고 그 자신도 죽을 뻔한 사보는 한쪽 눈 주변을 감싸는 화상 흉터가 얼룩처럼 남아 있었다. 당시 해군이었던 루피의 아빠가 구해주지 않았다면 사보도 화마에 휩쓸려 죽었으리라. 지금은 얼굴의 화상 얼룩이 트레이드 마크처럼 돼서 어디서든 곧잘 사보를 알아봤지만 말이다. 시류 역시 소문이 자자한 가프의 세 손자에 대해 들은만큼 화상 흉터로 사보를 알아맞춘 거였다.

“방해 마라, 시류! 왜 조로를 납치하는 거지? 차를로스가 시킨 거냐?!”
“…….”
“비키지 않으면 널 넘어트리고 간다!”
“아아… 그렇군… 그거였어!!”

사보는 기다려줄 생각이 없었다. 다시 도약해 달려들던 사보의 말에서 뭔가를 눈치챈 듯 중얼대던 시류가 요도 뇌우를 뽑아들었다. 가프가 직접 훈련시킨 녀석이라더니 파이프와 부딪힌 검에 찌릿한 진동이 느껴졌다. 어리다고 애송이로 봤던 시류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던 순간이다. 이번에는 뒤로 밀리는 대신 버티고 선 사보가 파이프를 움켜쥔 손 하나를 재빨리 뒤로 물렸다.

“용의 발톱!”

용의 발톱과 같이 구부러진 손가락이 총알처럼 앞으로 튀어나왔다. 찰나에 손이 무쇠처럼 변화되는 걸 발견한 시류가 검을 떼고 몸을 물렸다. 한끗 차이로 두꺼운 코트는 물론 살이 드러나도록 뜯겨져 나간 옷에 시류는 제 판단이 맞았음을 실감한다. 체급 차이를 믿고 힘으로 밀어붙였다면 내장까지 뜯겼으리라. 상대 역시 이를 고려한 듯 손에 잡힌 쪼가리들을 집어던진 뒤 공격에 들어갔다. 한손, 또는 두 손을 이용해 파이프를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경화된 펀치를 날리던 사보의 공격은 예측 불가능한 것이었다. 특히 그의 갈고리와 같던 손 모양은 단순히 타격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을 넘어 낫처럼 파고드는 위력이 있었다. 한번만 잘못 맞아도 싸움의 승패를 결정하는 요인이 될 터, 시류는 이내 결심을 굳혔다. 사보를 죽이기로.

“미안하게 됐군, 사보 대령! 로우 왕자의 신부는 우리가 데려간다!”

잠시 틈을 벌린 사이 시류의 검날이 까맣게 경화됐다. 흑도화된 검이 보름달 아래 번쩍일 때, 역시 파이프를 경화시킨 사보 또한 달려들었다. 그에 검날을 수평으로 눕힌 시류 역시 좁혀지는 거리를 가늠하며 공격의 때를 기다렸다. 그는 영웅 가프가 끔찍히 아끼는 손자를 건드린다는 게 무슨 뜻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로우의 연락을 받은 베포와 샤치는 방이 텅 빈 것을 확인한 순간부터 패닉에 빠졌다. 조로의 길치력을 몸소 체험한 둘이 아닌가. 이중에도 베포는 조로가 특히 예뻐해서 더 고통받은 케이스였다. 물론 예쁨받는만큼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좋았다지만. 특히 조로가 쓰다듬어줄 때의 손길은 믿음직하고 다정하고 따스한 애정이 듬뿍 느껴져서 좋았고 말이다. 때문에 둘은 바로 조로를 찾는데 착수하며 전보도 넣었으나 로우가 받을 상황이 못됐다. 이쪽도 상황이 급박하긴 매한가지였으니까.

“커헉!”
“나를 상대하려면 백만년은 이르다, 로우야.”

갑판에 떨어진 귀곡이 굴렀다. 그 위로 두 팔이 넓게 펼쳐진 채 붙잡힌 로우가 피를 토한다. 뚫린 복부를 실실 열매의 능력으로 수복한 도플라밍고는 잡은 먹이감을 전시하듯 로우를 눈높이로 들어올렸다. 그는 싸늘한 미소와 함께 깊고 낮은 울림 가득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너와 난 차원이 다르다는 걸 잊지 마라. 이건 내가 주는 교훈이다.”

말 끝에 소름끼치는 여운이 남는다. 로우는 뭔가를 예감한 듯 눈을 부릅뜨더니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다. 한쪽에서 지켜보던 쿠잔 역시 섬뜩함을 느끼지만 설마 싶었다. 두 사람은 한 나라의 왕과 왕자가 아니던가. 그러나 로우는 도플라밍고가 어떤 사람인지 가장 잘 알고 있다. 자신과 가족을 죽음으로 몰고 간 녀석들을 향한 도플라밍고의 복수심 또한. 이를 위해서라면 상대는 마리조아 왕녀를 죽이고도 남을 인간이다. 때문에 로우는 어떻게든 그를 막아야 했다.

“도망쳐, 중장! 더는ㅡ!!!”
“실톱!”
“크아아악!!!”
“꺄아악!!”

로우가 필사적으로 저항하고자 한 건 쿠잔에게 왕녀를 데리고 달아날 시간을 주려 함이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하나 그 순간 한 다리를 높게 치켜든 도플라밍고에 의해 로우의 오른팔이 종이처럼 잘려나갔다. 허벅지 안쪽에서 뒷꿈치까지 와이어처럼 연결된 실의 절삭력은 어떤 명검보다 예리했다. 때문에 잘린 팔뚝에서 터져나온 핏물이 웅덩이를 이루고 로우는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끔찍한 광경을 본 샤를리아에게서 비명이 터져나올 때 충격을 받은 쿠잔은 금새 정신을 차렸다. 천야차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큭…! 그만둬! 도플라밍고!!”
“역시… 천야차라 이건가. 피도 눈물도 없는 왕이네.”
“훗. 이제 네놈 하나만 처리하면 끝이다.”

도플라밍고의 뒤로 로우가 고통 속에서 몸을 일으키려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쿠잔은 그와 천야차를 번갈아보며 두툼한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싸워야 한다면 싸워야지. 딱히 마음 굳힐 시간도, 결심도 필요 없다는 듯 머리를 한차례 긁적인 이는 손끝을 간단히 튕기는 동작으로 왕녀를 구속하던 얼음 주박과 기둥을 부쉈다. 산산이 가루가 돼 흩어지던 얼음에 왕녀가 털썩 주저앉는다. 그 앞을 가로막듯 선 쿠잔이 도플라밍고와 대치한 채 말했다.

“달아나십쇼, 왕녀. 이제 놀이는 끝났습니다.”
“어림없지!”
“아이스 블록 파르티잔.”

샤를리아도 더이상 고집피우는 건 무리였는지 쿠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도플라밍고가 손을 뻗으니 와이어처럼 팽팽한 실이 다섯갈래로 쏘아졌다. 이에 쿠잔이 가슴 앞에 팔을 크로스시키자 순식간에 공기 중의 수분이 얼어 창과 같은 모양이 됐다. 반달 형태의 작은 창이 중앙의 긴 창을 받치는 란세어 형태로 응집된 얼음 조각들은 약 오미터 거리에서 쏘아져 젊은 왕에게 날아갔다.

“오색실!”

그러나 다른 쪽 손을 허공에 대고 크게 그어내린 도플라밍고에 얼음조각들이 다섯갈래로 부서졌다. 때맞춰 뒤에서 왕녀의 비명이 들리지만 밑에서 치고 올라온 빙벽 덕분에 다섯개의 창과도 같던 실에 몸이 뚫리는 건 면했다. 하지만 약 이십센티미터쯤 되는 두터운 빙벽을 뚫고 박힌 실의 위력은 쿠잔을 긴장케 하기 충분했다. 도플라밍고 역시 탐색은 이쯤하겠다는 양 씩 웃어보였고 말이다. 그때 배 아래쪽에서 두어차례 커다란 폭음 들리더니 갑판 위까지 크게 흔들리는 진동이 있었다. 고요한 바다마저 요동칠 정도로 큰 에너지가 이 배의 아래쪽에서 느껴지는 것에 쿠잔과 도플라밍고가 휘청이던 순간이다.

“도플라밍고!!!”

그것은 성별이 다른 세 명의 목소리였다. 둘은 배의 바깥쪽에서 타고 올라왔으며 다른 하나는 바로 뒤에서였다. 그러나 전부 악에 받쳐 있다는 건 마찬가지다. 기세에 눌린 쿠잔이 움찔할 정도였으니, 그의 시야에 잘린 팔의 지혈 처리만 급히 마친 로우가 귀곡을 쥐고 힘겹게 일어서는 게 보였다. 이어 밤하늘 아래 온몸에 피칠갑을 한 레이주와 크로커다일이 보이니 도플라밍고를 둘러싼 세 사람은 마귀와도 같아 보였다. 물론 쿠잔은 하는 짓을 보며 원한을 탑처럼 쌓아도 이상할 게 없을 사람이구나를 느꼈다지만 이 와중에도 갑판 위의 한 사람만은 유일하게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레이주님!”

심히 감격한 목소리가 기쁨에 가득 차있다. 홀로 머리 속에서 천사가 팡파레를 울리고 꽃을 뿌리니 무엇이 두려우랴. 드디어 절 구해주러 날아온 공주님에 벌떡 일어난 왕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




쾅! 콰광! 두어차례의 폭음과 큰 진동에 배가 흔들릴 때 사보가 중심을 잃고 말았다. 이는 찰나였지만 강한 적과 대치 중일 때는 승패를 가르는 요인이 된다. 구름 사이로 희미하게 산란하던 보름달 아래, 시류의 검이 피를 머금고 불길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헉…….”

사보의 손에서 떨어진 파이프가 바닥을 굴렀다. 검은 쇄골을 부수고 몸을 관통했지만 그래도 심장과 폐는 무사했다. 뼈를 내주고 목숨을 구한 거였다. 시류도 사보의 순간적인 판단 능력에는 내심 혀를 내둘렀다. 그에게도 살아있다는 건 무엇보다 중요했다. 죽은 것을 도륙하는 일만큼 무의미한 것은 없었으니. 그가 검을 휘두르는 이유는 생명을 베기 위함이었다.

“좋은 판단이다, 대령. 쉽게 죽었다면 내가 아쉬울 뻔했어.”
“아악!!”
“역시, 가프의 손자로군.”

하마터면 놈의 손에 명치가 뜯길 뻔했다. 칼에 꿰뚫리며 근접한 거리를 이용해 남은 손을 뻗을 줄이야. 놈을 걷어차며 검을 뽑지 않았더라면 저 갈고리 같은 손에 당할 뻔했다. 이래서 맨몸으로 이름을 알린 놈들이 더 위험하다. 악마의 열매 능력자는 그 힘에 기대는 이가 대부분이라 시류에게는 특성만 파악한다면 도리어 이쪽이 상대하기 쉬웠다. 하지만 수많은 능력자들 속에서 살아남은 비능력자라면 그만큼 빈틈도 약점도 없는 게 당연하다. 제가 처핫 위기마저 이용할만큼의 근성은 있다는 소리다. 하니 상대의 곱상한 외모에 이 중요한 점을 깜빡했던 시류는 또 이번엔 옷만 뜯긴 게 아니었다. 명치에 선명하게 그어진 자국은 비록 스크래치 정도였지만 시류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겼다. 시류에 의해 한차례 바닥을 뒹군 사보 역시 방금의 행동이 무의미한 게 아니었음을 깨닫고 미소를 보였다. 부서진 쇄골을 부여잡으며 일어난 그는 다시 싸울 기개가 넘쳐흘렀다. 아무리 강한 상대라도 완전무결한 건 아니다. 저놈에게도 충분히 파고들 틈이 있다는 걸 안 이상 사보는 이 싸움에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고작 한 팔로 날 상대할 건가? 대령.”
“처음부터 나한테 답은 하나였어. 당신이 내 동생의 소중한 걸 훔쳐간 이상 반드시 되찾아온다. 자, 어서 덤벼. 여기서 너따위나 상대할 시간 없으니까!”
“건방진 놈 같으니! 전리품으로 네 머리를 가프에게 보내주마! 손자의 머리를 선물받은 노인네의 얼굴이 볼만 할 거다!!”

사보의 도발에 넘어간 시류가 목소리를 높였다. 시종일관 냉철하던 이가 흐트러졌다. 이 또한 노림수였던 사보는 시류와 정면대결을 할 듯 망설임 없이 달렸다. 그러나 달리던 기세 그대로 복도 난간을 움켜쥔 이는 순식간에 밑으로 뛰어내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시류가 난간 밖을 쳐다보니 한층 아래 복도를 내달리는 사보가 있었다. 말 그대로 그에게는 시류를 상대할 시간이 없다. 바다 위 소형정은 물 밑에 잠겨 있던 해왕류가 부상하며 금방이라도 출발할 듯했으니. 아직 일곱층이나 아래에 있던 소형정의 위치를 고려하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여기서 저 배를 놓친다면 이 근처 바다 어딘가에서 대기 중일 마리조아 함선을 수색해야 할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는 최악의 수로 상대는 세계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다. 지금의 문명이 있게 한 세계정부 설립의 초대 국가이며 약 팔백년이라는 세월 동안 초기 왕조의 명맥을 이어온 유일한 나라가 아니던가. 때문에 역사적으로도 다른 나라의 존중을 받던 마리조아 왕실 함선을 함부로 수색한다는 건 가프라도 무마시킬 수 없을 터였다. 설령 그곳에 진짜 조로가 있고 왕실의 누군가가 납치한 게 사실일지라도 말이다. 이는 마리조아에서 마음만 먹으면 무마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골치는 좀 썪겠지만. 그에 반해 조로는 네펠타리 왕가의 보호를 받았다 할지라도 평민에 가까운 한미한 가문이라는 게 걸림돌이었다. 하니 다른 나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마리조아의 잘못이 명백할지라도 전혀 문제거리가 아닌 것이다. 다만 사보는 루피를 잘 알기에 쾌속정이 마리조아 함선과 합류하기 전에 반드시 조로를 탈환해야 했다. 루피는 설령 조로가 아니더라도 눈앞에서 사람이 납치당하는 걸 절대 가만 두고 볼 녀석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사보는 동생에게 부끄럽지 않은 형이고 싶었다.

“거기 서라! 감히 날 농락하다니 널 반드시 죽이겠다!”

써드 데크 외부 복도를 내달리던 사보의 뒤로 역시나 난간을 뛰어넘은 시류가 따라붙으며 외친다. 저를 따돌린 사보에 잔뜩 화가 난 모습은 그 냉철하고 귀신 같던 임펠다운의 간수장이 아니었다. 새파란 애송이에게 상처 입고 속아넘어가기까지 한 게 어지간히 자존심을 짓밟은 모양이었다. 그에 사보가 난간을 타고 또 한층 아래로 뛰어내리려 하지만 두 번은 안 된다는 양 날아온 참격이 있었다. 가까스로 공격을 피한 사보가 크게 구르고 난간 일부가 산산히 부서져내렸다. 이어 시류의 검날이 일어나지 못한 사보를 향해 찔러 들어오던 순간이었다.

“아이아이아이잇!!!”

시류의 뒤로 커다란 흰곰이 번개처럼 날아들었다.




살면서 이토록 격렬하게 달려본 적은 처음이었다. 간신히 쾌속정에 오른 차를로스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했다. 하지만 그는 곁으로 달려온 병사와 가신들에도 고집스레 조로를 내주지 않았다. 그새 열이 더 오른 조로의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의사! 당장 의사를 불러라이!!”

갑판 위에 무너지듯 주저앉으면서도 그는 조로를 품에 안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처음 보는 남자의 등장에 어리둥절하면서도 왕자의 성질을 건드리지 않으려 부산스러웠다. 이어 들것과 함께 의료진이 달려오니 후들대는 다리를 애써 일으킨 차를로스가 조로와 함께 오른다. 졸지에 키만 이미터를 훌쩍 넘는 거구까지 짊어지게 된 의료진이 기우뚱하지만 조로를 제 다리 위로 눕힌 차를로스가 진노해 소리쳤다.

“뭐하는 게냐이?! 이몸이 다칠 뻔하지 않았느냐이! 약해빠진 놈들 같으니! 빨리 가지 못하겠느냐이?? 만일 조로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너희들 전부 경을 칠 줄 알아라이!!”

백키로는 거뜬히 넘는 거구가 들것 위에서 방방 뛰며 소리쳤다. 그에 체격 건장한 병사 둘이 들것을 대신 손에 쥐고 움직이니 차를로스가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쓸모없는 것들!”

이들은 왕실 전담의 내로라 하는 의료진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차를로스의 일갈에 머리를 조아리며 뒤를 따를 뿐이다. 이 와중에 정체 불명의 사내는 들것 아래로 늘어진 손에 보기도 섬뜩한 장검을 꾹 쥐고 있으니 그들은 왕자가 대체 무엇을 주워온 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침실에 도착한 뒤에도 오로지 왕실 사람만 진찰 가능한 그들에게 조로를 살피라 닥달했으니 말이다. 그에 왕실 의료장인 중년 남자가 앞으로 나서니 침대로 옮긴 조로 곁에 있던 차를로스의 시선이 심상치 않았다. 그에게는 이곳의 누구든 파리만도 못한 목숨이었다.

“외람되오나 왕자님, 저희는 오직 마리조아 왕실만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니 이 청년을 치료할 수는…….”
“내 열한번째 부인이다이! 어서 치료해라이!!”
“예? 아, 예, 예!”

마리조아의 늙은 왕에게는 유달리 아끼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하나는 샤를리아 왕녀고 또 다른 하나는 차를로스 왕자였다. 특히 그는 일찍이 늙은 왕에게서 마리조아의 보배라는 말을 듣고 자라오지 않았던가. 당연했다. 차를로스는 장차 늙은 왕에게 드레스로자를 갖다바칠 존재였으니. 때문에 애정과 상관없이 원하는 건 뭐든 들어주며 키운 아이 아니던가. 이로써 늙은 왕이 귀애한 아이 하나는 애정으로 망쳤고 다른 하나는 욕망으로 망친 셈이었다.

“뭐하는 거냐이?”
“예? 적절한 처방을 위해 지금부터 검진을 하려 합니다. 채혈한 혈액 샘플을 확인 중이니 잠시 기다리시면…….”
“혹시 전염병은 없는 거냐이?”

드디어 배가 출발하려는지 전보벌레를 통한 안내가 나왔다. 이를 들으니 비로소 마음이 놓이는지 뒤늦게 슬그머니 불안 섞인 음성을 내는 차를로스다. 중년 의사는 그러면 그렇지 하는 마음이나 겉으로는 차분히 입을 열었다. 고열에 시름하는 청년의 상태는 위중하건만 자꾸 옆에서 기웃대는 왕자가 보통 방해되는 게 아니었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저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왕자님.”
“그래도 너는 보면 대충 알지 않느냐이?”

이제 왜 의료실을 못 가게 하고 침실로 옮기라 했는지 명확해졌다. 의사는 청년이 안타까웠으나 이내 손짓으로 팔뚝에 수액을 놓으려는 간호사를 저지했다. 차를로스가 걸터앉은 침대 매트리스가 유독 내려앉은 게 보였다. 그리고는 다시 청년에게로 눈을 두니 목까지 찬 한숨을 애써 삼킬 따름이다. 이때 차를로스는 고열에 비몽사몽한 중에도 검을 꾹 쥔 조로의 손을 풀려 애쓰고 있었다. 중년 의사는 그 눈에 진득하니 내려앉은 욕망을 알고 있었다. 실로 차를로스가 이런식으로 납치하듯 데려와 범한 상대가 몇이던가. 다만 그동안은 남성 오메가라도 한떨기 꽃처럼 가녀린 이를 골라잡았으니 눈앞의 청년은 의아스러울 지경이다. 고통에 찌푸린 얼굴에도 곱게 내려앉은 속눈썹이나 매끄러운 콧날, 얄쌍하게 빠진 입술과 수염 하나 없이 날렵한 턱선은 미인이라고 봐야 했다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는 차를로스가 고를 만한 가녀린 이미지와 가장 동떨어진 존재이기도 했다. 그러니 청년이 정신을 차리면 차를로스가 위험할 게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판단을 마친 의사가 넌지시 시선을 주니 간호사가 조용히 물러났다. 이어 다른 사람이 혈액 샘플 결과지를 들고 올 때 이를 확인한 의사는 다시 들어온 간호사로부터 주물을 받아 챙겼다. 네모난 주물에는 각기 약물이 든 두 대의 주사기가 있었다.

“이분은 그저 열이 심할 뿐입니다, 왕자님. 확언할 수는 없으나 심한 병마를 겪고 지금은 후유증만 남은 듯하군요.”

닥달하는 소리에 최소한의 검사를 할 수밖에 없던 이들의 선택지는 왕자에게 해가 되느냐 안 되느냐였다. 때문에 의사는 청년의 팔을 걷어붙인 뒤 첫번째 주사를 놓았다.

“이제 다시 손을 펴시면 열릴 겁니다.”

의사의 말에 차를로스가 콧김을 뿜으며 힘을 주니 검을 굳게 쥐고 있던 손이 조금씩 열렸다. 근이완제를 고용량으로 투여했음에도 검을 빼내기까지 차를로스는 애를 먹었다. 그래도 겨우 검을 빼낸 손은 군데군데 굳은살이 박혀 투박하기 그지없다. 차를로스가 몸서리치며 검을 바닥에 던질 때 의사는 건실하기 그지없는 청년이 어쩌다 이런 놈에게 걸렸나 싶어 입이 썼다. 그리고는 두 번째 주사를 마저 놓으니 시간을 두고 고열로 괴로워하던 조로의 얼굴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이는 촌각을 다투는 순간에만 쓰는 약물이었다. 아무리 높은 열이라도 순식간에 내려주지만 대신 간과 신장에 손상이 많이 갔다. 정사를 치룬 뒤에도 차를로스가 계속 곁에 둔다면 궁에서 치료받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청년은 제 수명대로 살지 못할 것이다. 이를 알고서도 의사는 결국 청년의 얄궂은 운명을 탓할 뿐이었다.

“왕자님, 적어도 오분은 아량을 베푸십시오. 이분이 워낙 열이 높았던지라 숨돌릴 시간은 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안 좋은 거냐이?”
“최소한 하루 정도는 이분을 돌볼 시간을 주신다면…….”
“오분이랬지? 됐으니 나가라이!”

열에 달뜬 숨이 차분해지기 무섭게 조로에게 붙박힌 눈을 떼지 않던 차를로스는 겉옷을 벗어재끼고 있었다. 그러다 넌지시 한 첨언에 행동을 멈추고 눈을 맞출 때 의사는 어라? 싶었다. 두번째 주사를 괜히 놨나 하고 말이다. 하지만 행여 추후에 왜 몸이 상하는 주사를 놨느냐 문책이라도 당할까 하는 마음에 또 넌지시 입을 여니 차를로스는 더 듣기도 싫다는 양 축객령을 내렸다. 이번에도 역시나 싶던 의사가 조용히 물러날 때 방 안에서는 탄탄하게 빠진 청년과 대비된 육중한 몸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조각
2024.01.07 13:1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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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센세만을 기다렸어 ㅠㅠㅠㅠㅠ 으아아아아 사보가 구하러 갔는데!!!!! 시류 때문에 ㅠㅠㅠㅠ 챠를로스 이 자식이 ㅂㄷㅂㄷ 도피놈 때문에 로우도 저 지경이 되고 ㅠㅠ 하 센세 사랑해 너무 재밌어
[Code: 6075]
2024.01.07 13:2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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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씨 조로 간이랑 신장 손상 많이 가서 어카냐 ㅠㅠㅠㅠㅠ 로우가 치료해주기를 ㅠㅠ 아니 그 전에 일단 탈출부터 ㅠㅠ 로우조로 얼른 다시 만나 ㅠㅠㅠㅠㅠ
[Code: 6075]
2024.01.07 13:1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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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아악 조로 도망쳐•!!!하지만 탄탄한 몸매로 축 늘어뎌있는 조로 넘나 존꼴이구요.....ㅠㅠㅠㅠㅠ센세어나더ㅠㅠㅠ
[Code: b366]
2024.01.07 17:2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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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우 팔ㅜㅜ 도피 이 미친놈 하여간에.......센세도 내가 도피가 되는꼴을 보고 싶지 않으면 어서 내 지하실로 오는게 좋을거야 훗훗훗
[Code: 5bf2]
2024.01.07 20:5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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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돼ㅠㅠㅠㅠㅠㅠㅠㅠ하 너무 조마조마해서 몇번씩이나 멈춰가면서 읽었다 조로 어카냐ㅠㅠㅠㅠㅠ뭔일나기전에 빨리 탈출하거나 누가 구해줘야할텐데ㅠㅠㅠㅠ아니근데 도피...아무리그래도 로우 팔을ㅠㅠㅠㅠㅠ따흐흑 다들 무사하길 제발...
[Code: e3c4]
2024.01.08 02:0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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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ㅠㅠㅠ지금조로가위험한데ㅠㅠㅠ사보도위험하고 로우도위험하규ㅠㅠㅠㅠㅠ베포달려ㅠㅠㅠㅠ 도피야 시발그만좀해봐ㅠㅠㅠ로시의유산이시발미치게생겼다고ㅠㅠㅠㅠㅠ비상이야도피야!!!!!!ㅠㅠㅠㅠ
[Code: 1d46]
2024.01.11 11:1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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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아앍 첫경험 이렇게 뺏기는 건가요 으아아애앍
근데 존맛ㅎ
[Code: bf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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