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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2 17:49
매번 쫓기듯 뛰고 예민하게 날이 선 모습 말고
일상적인 느긋한 텐션으로 시간 보내는거 보고싶다






"추워어어....."

잠결에 잘못 들었나 하고 돌아누우려는 순간 팔 안에서 무언가 곰실대는 느낌에 손을 뻗어 더듬어 보니, 체온보다 살짝 서늘한 피부가 손끝에 와 닿았다.
웅크린 등을 쓰다듬자 손바닥을 통해 잔기침의 울림이 전해졌다.

"으응, 추워어.... 춥다, 나....."

밤새 활짝 열려 있던 머리맡의 창문을 닫았는데도 여전히 이어지는 수겸의 칭얼대는 목소리에 현준이 겨우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려 옆자리를 살폈다.

"그러게, 추워졌다. 옷 입고 자라."
"그거 말고오, 너 이리 와아... 와서 나 안아... 응?"

도무지 이기기 힘든 수마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수겸의 어리광 때문이었을까.
찬 공기에 무방비하게 드러나 있던 맨살끼리 부벼지자 차갑던 몸이 조금씩 달아오르는 것 같은 기분을 핑계삼아 현준은 결국 못 이기는 척 수겸의 어깨를 고쳐 안고는 허리께에 걸쳐져 있던 얇은 이불을 머리 끝까지 당겨 덮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닫힌 창 너머로 스며들어온 햇살이 실내를 기분 좋게 덥혀 주고 있을 때까지도 여전히 침대와 한 몸이던 수겸의 옆쪽 매트리스가 가볍게 일렁였다.

분명 지난 금요일, 그러니까 바로 어제, 이번 주말엔 부 활동도 연습도 전부 빼 줄 테니 각자 푹 쉬고 체력도 정신도 재정비한 뒤 다음 주부터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자고 말한 뒤 해산했었다.
그렇다는 건 오늘 아침엔 조금 늑장을 부려도 된다는 이야기인데...
아니, 그 전에 내가 자진해서 연습을 통째로 쉬자고 한 이유가 뭐였더라.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채 끙끙대는 수겸의 몸 위에 덮여 있던 얇은 이불이 홱 나꿔채어졌다.
그리곤 이어서 시트 째로 몸이 굴려지는 중 현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수겸, 그만 자고 일어나라. 시트랑 베개 커버 얼른 다 걷어내야 돼."
"왜애.. 간만의 휴일인데 좀 자자, 좀."
"이불 빨래 하기로 했잖아. 잊었어?"
"어으.. 맞다아, 그러치, 빨래애애...."

그제서야 잊고 있던 기억이 두둥실 떠오른다.
게으른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올리자 창 너머로 새파란 하늘이 보였다.

빨래하기 딱 좋은, 그런 날이다.





여름 동안 쓰던 얇은 침구류부터 평소엔 일광소독만 하던 바디필로우며 쿠션들, 여름 교복과 여름용 저지며 홈과 어웨이 유니폼에 트레이너 같은 본인의 짐에다가 안방에서 꺼내온 빨래거리까지 꽉꽉 눌러담은 커다란 런드리백 서너 개를 바리바리 들고 멘 현준 대신 현관문을 잠그고 엘리베이터를 누른 수겸이 현준의 손에서 제일 작은 가방 하나를 빼앗듯 건네받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너랑 나랑 사고치고 부모님 몰래 집 싹 털어다 야반도주하는 줄 알겠다. 도대체 짐이 몇 개야."
"그래도 여름 빨래라 한 번에 끝이잖아. 겨울 물건 정리할 땐 둘이서 서너 번 왕복해도 모자라던 거 기억 안 나?"
"어으, 고작 둘이 타는데 6인용 엘리베이터가 꽉 차다니.."

계절이 바뀔 때마다 고층 맨션이라 공간이 좁은 현준의 집 대신 마당 딸린 널찍한 단독주택인 수겸의 집에서 두 집 분의 빨래를 해결하는 게 자연스러워진 일상.
채 100미터도 떨어지지 않아 창문을 통해서도 보이는 수겸의 집에 도착하자 현준이 청바지 뒷주머니를 뒤져 꺼낸 열쇠꾸러미로 대문을 열고는 마당 한가운데에 빨래거리가 든 백들을 던지듯 내려놓으며 어깨를 휘휘 돌렸다.

"내가 세탁물 걷어서 나올 테니까 넌 풀장 설치해서 물 채우고 세제 풀어 놔. 바로 물에 담가도 되는 거랑 얼룩 빼고 빨 것들 따로 구분해 놨으니 저번처럼 뒤섞어서 일 몇 배로 만들지 말고 딱 시킨 것만 하는 거다."
"한두 번 하냐. 잔소리는."
"열 몇 번을 해도 할 때마다 일거리를 늘리니 그러지."
"아아~ 시끄럽다. 얼른 들어갔다 나오기나 해. 물 온도 세 가지로 맞춰 둔다?"
"어. 찬 거, 뜨거운 거, 그 중간. 그리고-."

까지 말을 하다 뒤를 돌아본 현준이 제 뾰족한 눈빛을 확인하곤 급히 입을 다물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걸 확인한 수겸은 잔소리로 아픈 귀를 후비적대며 현관 앞 창고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제법 큰 사이즈의 공기주입형 풀장부터 어른 둘은 충분히 들어가 앉을 정도의 접이식 욕조에 초대형 대야 등 물이 담길 만한 것들을 죄다 끄집어내서 먼지를 한 번 털어내고는 차곡차곡 펼쳐 순서대로 물을 채우고 있자니, 집 안에서 현준이 빨랫감을 한아름 챙겨들고 나와 이미 쌓여 있던 세탁물의 산 위에 던져올렸다.

"이게 전부야? 안방이랑 네 방에 있는 것까지 다?"
"어. 그리고 그게 왜 내 방이야. 알파룸이지."
"네 책에, 네 옷에, 네 침대까지 들어가 있으면 그게 네 방이지 어딜 봐서 알파룸이냐. 심지어 내 방보다 그 방이 더 넓구만."
"그럼 네가 거기 쓰던가."
"안방이랑 딱 붙어서 사생활 보호고 뭐고 없는 공간은 싫거든요? 포기하고 얼른 네가 우리 집 들어와 살아라. 우리 부모님이 너 몸만 오면 되게 준비 싹 다 해 놓고 기다리신다."
"지금도 시집살이 중인데 얼마나 더 부려먹게. 그만 입 다물고 이리 발이나 올려."

조잘대는 수겸의 발목을 잡아 꿇어앉은 무릎 위에 올린 현준이 수겸의 바짓단을 차곡차곡 접어올린 뒤 드러난 무릎 언저리에 입을 맞추자, 수겸이 키득키득 웃으며 손을 뻗어 현준의 머리칼을 아프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그러쥐었다.

"하지 마라. 간지럽다."
"저거 다 빨려면 다리가 종일 고생일 테니 미리 기름칠 해 두는 거라고 생각해."
"내가 하나. 어차피 네가 다 할 거면서."
"올해부터는 너 좀 시켜 보려고."
"말로만. 어, 어? 야!! 아, 아하하-!!"

현준이 수겸의 허리를 잡아 가뿐히 들어서는 빨랫감이 들어찬 풀장 안으로 내려놓자, 발에 밟힌 하얀 시트 틈바구니로 터지듯 보글대며 올라온 물거품들이 발가락을 간지럽히는 감각에 결국 수겸은 크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이제 이것도 끝이네."

무슨 소린가 하고 고개를 돌려 보니 수겸이 빨래더미 안에서 여름 교복과 저지를 골라내 한쪽에 모으고 있었다.
찌푸린 표정만으로 현준이 하려는 말을 이해한 수겸은 현준의 저지를 집어들어 툭툭 털고 어깨 위에 걸쳤다.

"알아, 네 거 안 버려. 하여간 너도 참 무슨.. 초등학교 때 유니폼부터 중학교 교복에 유니폼으로 모자라 고등학교 것까지 모아 두게? 다른 건 잘만 버리면서 교복이랑 유니폼엔 왜 남들 몇 배로 집착하는데?"
"그냥."
"보고 있으면 패배한 기억이 떠올라 갑갑해지지 않나. 나는 그런데."

씁쓸하게 웃으며 어깨를 움츠리는 수겸의 말에 현준은 얼룩 위로 솔질을 하는 손을 멈추지 않은 채 고개만 가로저었다.

"패배도 승리도 전부 다 너와 함께한 건데 그렇게 속상할 일인가. 나에겐 그 사실 하나만으로 어느 것 하나 빠짐 없는 영광스런 순간들이었다. 그러니 전부 기억하고 싶어서 간직하는 거지."

듣는 쪽이 되려 더 낯부끄러워져 어찌할 바를 모를 말을 태연하게, 사람 설레게 하는 웃음까지 덤으로 얹어 가며 뱉는 현준의 행동에 이번에도 당황하는 건 수겸의 몫이었다.
대꾸할 말을 찾으며 부산하게 옴지락대던 수겸의 손이 걸치고 있던 저지 주머니에서 조그맣고 딱딱한 덩어리 하나를 집어올렸다.

"어라? 너 여기 주머니에 사탕 있다. 물에 집어넣기 전에 발견해서 다행이네. 이거 나 먹어도 되냐?"
"마음대로 하... 어? 아니 아니 수겸아 그거 안..!"

채 말릴 겨를도 없이 입 안에 사탕을 쏙 넣은 수겸의 잇새에서 버릇대로 와그작 하고 사탕 씹히는 소리가 들린 순간 현준은 반사적으로 두 눈을 질끈 감고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세엣, 네에엣...."

난 죽었다.

공포영화의 클라이막스를 현실에 옮긴다면 이럴까.
첨벙, 하는 물소리에 살그머니 눈을 떠 보자,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수겸이 물 속에 주저앉아 있었다.
얼굴은 귀 언저리까지 새빨개져 있고, 충혈된 두 눈에선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꼴을 보고 슬슬 뒷걸음질을 치던 현준은 등 뒤에 무언가 닿는 순간 말 그대로 다리에 힘이 풀리는 걸 느꼈다.

이제 카운트 다섯을 세면 아마도-.

"아악!! 이거 뭐야악!!! 매워!! 그냥 박하, 후-, 하-, 박하사탕, 박하사탕 아니었어?!?!"

현준은 정신을 차리기 위해 고개를 탈탈 털고는 오열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를 치며 허우적대는 수겸에게 다가가 수겸을 안아 일으킨 뒤 입가에 손을 가져다 받치고 등을 두드려 주었다.

"뱉어. 먹지 말고 그냥 뱉어."
"..삼켰단 말이야아...."
"하아.. 아무거나 막 주워먹지 말랬지 내가."
"귀, 귀에서... 삐- 소리가 들려어..."
"우유 가져다 줄게."

패닉 상태에 빠진 수겸을 진정시키려면 당장 뭐라도 입에 물려야겠다는 데 생각이 미친 현준이 수겸을 품에서 떼어놓고 돌아서려는 순간, 성질머리가 가득 담긴 손길이 현준의 뒷덜미를 잡아채 당겼다.

아, 내가 저 사탕을 하필 왜 저기 넣어 놔서는.
세탁 전에 기본적으로 주머니 속 체크부터 했어야지.
뭔지 쳐다도 안 보고 그냥 먹으라고 해 버린 게 문제였나.

잡아먹을 듯 자신을 노려보는 수겸과 눈이 마주친 짧은 순간 머리를 스쳐지나가는 오만 가지 자아비판이 채 끝나기도 전, 현준의 멱살을 고쳐 쥔 수겸이 있는 힘껏 현준을 당기며 까치발을 들어 현준에게 입을 맞췄다.

도톰하니 부어오른 입술 하며 입 안을 마구잡이로 훑어대는 혀끝의 열기.
성적 의도라고는 손톱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분풀이같은 키스에 현준은 결국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적당히 키를 낮추어 눈을 꼭 감은 수겸의 입맞춤에 어울려 주었다.
어느 정도 입 안의 불길이 진정된 뒤에야 현준의 멱살을 놓아 준 수겸은 참고 있던 숨을 몰아쉬며 주먹으로 현준의 가슴을 퍽퍽 내리쳤다.

"누구 죽이려고 들고 다니는 거야? 저거 뭔데? 너 자해하는 취미 생겼어? 내가 그렇게 널 괴롭혔냐? 반사회적 인격장애 생길 만큼? 인터하이 예선탈락하더니 요즘 세상이 죄다 꼴보기 싫고 삶의 낙이 없고 막 그래?"
"....알긴 아.... 는 게 아니라, 아냐, 그런 거 아니다."

현준은 여전히 벌건 수겸의 눈가며 입술을 조심스럽게 눌러 닦아 주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나도 인간인데 농구부 활동에 학교 수업에 두 가지 다 해내려면 그 외에 뭐 하나는 포기해야 하잖아. 잘 시간 깎아 가며 전부 소화해 내는 거라고. 저 정도는 돼야 잠이 확 달아나지."
"그렇다고 저런 걸 찾아내서 먹냐. 변태같이."
"내가 내 돈 주고 저런 걸 왜 사."
"그럼 무슨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라도 했어?"

어라? 이 반응...
옳지, 딱 걸렸구나.
네가 아무리 시치미를 떼 봤자 내 예상 범위 안이지.

아닌 척 표정은 태연하지만 도무지 눈을 맞추려 하지 않는 현준을 보니 의혹은 확신으로 변해 간다.
사탕의 충격에서 간신히 벗어난 수겸은 재빨리 머릿속의 데이터 조각들을 끄집어내어 맞추기 시작했다.

"입에 남은 잔향이 익숙한 거 보니 하루 이틀 먹은 건 아닌데.. 분명 어제 키스했을 때도 똑같은 맛 났거든. 시원하면서 살짝 달콤한 게 키스할 때 기분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그래, 올해 초, 새학기 시작 전부터였다. 2월인가 3월. 그렇다 치면-."
"내가 졌다. 취조 그만 해. 내 입으로 말할게."

말은 그리 해 놓고서도 한참을 수겸의 눈치를 보며 시간을 끌던 현준은 미적미적 허리를 굽혀 바닥에 떨어진 사탕 포장지를 집어들었다.

"발렌타인 때 섞여 들어와 있었어. 대놓고 네 팬이라고 이만한 박스에 떡하니 적어서 보냈는데, 열어 보니 이거더라. 내가 네 옆에 붙어 있는 게 어지간히 꼴보기 싫었던 모양이지. 자."

현준이 내민, 사탕 주제에 검은 바탕에 시뻘건 해골이 불을 뿜는 디자인의 포장지를 본 수겸의 눈빛이 더한층 사나워졌다.

"누구야."
"모르지. 알려 주지도 않았고, 알고 싶지도 않고, 설사 안대도 치사하게 네게 일러바치는 짓 안 하고 싶으니까."
"그냥 무시하거나 버리지 그걸 또 무식하게 먹고 있어."
"그러면 지는 것 같잖아. 다른 것도 아니고 너 가지고 싸움을 걸어 오는 건데, 보란 듯이 받아쳐야지. 처음엔 희석 안 한 가글액 한 통 들이키는 기분이었는데, 먹다 보니 익숙해져서 이젠 아무렇지도 않아. 오히려 멍하거나 피곤할 때 정신 차리기는 딱 좋더라."
"그러다 만성 위염 생긴다. 어린 게."

핀잔을 주며 딱밤을 놓으려 다가온 손을 잡은 현준이 가지런한 수겸의 손톱 끝에 입을 맞췄다.

"대신 너 잡았잖아."

진심으로 뿌듯한 말투에 못마땅하게 혀를 찬 수겸은 손바닥 안의 사탕 포장지를 바스락 소리가 나게 구기며 현준의 어깨에 팔을 걸었다.

"너 이제부터는 이거 먹고 나면 나한테 와서 키스해. 그냥 먹는 건 고문인데 먹고 난 잔향은 마음에 든다. 혀끝에서 사라지는 게 아쉬울 만큼."

유혹하듯 눈웃음을 치며 느릿하게 입술을 할짝이는 수겸의 이마에 현준이 웃으며 가볍게 이마를 마주댔다.

"남은 건 금방 다 먹겠는데."
"떨어지기 전에 더 사 줄게."

확실히 수겸의 말대로 혀끝에 남은 캔디의 잔향은 강렬한 첫인상과는 달리 은근히 중독성이 강한 달콤한 맛이었다.





하늘 꼭대기를 향해 오르던 태양이 어느새 정점을 찍고 내려오려는 건지, 살짝 길어진 그림자 사이로 쏘듯이 내려온 햇살이 눈에 꽂힌다.
움직임을 멈춘 채 손그늘을 만들어 정통으로 내리꽂히는 햇빛으로부터 시야를 확보한 현준은, 빨랫감을 밟을 때마다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비누 거품에 아까부터 신이 나 있던 수겸을 빤히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수겸아. 실은 나 예전부터 해 보고 싶은 게 한 가지 있었는데."
"뭔데 그래."

찰박거리며 제게로 다가와 선 수겸을 말없이 내려다보기만 하던 현준이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 수겸의 코끝에 걸치듯 씌웠다.
도수가 높지는 않더라도 먼지며 비누 거품으로 더러워진 안경알 때문에 시야가 불편해진 수겸이 입술을 비죽이며 투덜대려는 모습이 물에 번진 듯 살짝 흐릿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대로 수겸의 허리를 잡고 번쩍 안아 들어올리자, 서로의 눈높이가 크게 역전했다.

"우와앗-!! 너 뭐야!!"

눈이 멀어 버릴 것만 같은 태양이 넘실대는 갈색 머리카락 뒤로 온전히 얼굴을 감춘 순간.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역광을 등에 업은 수겸을 올려다보던 현준이 크게 미소지었다.

"이렇게 하니 네게서 꼭 후광이 비치는 것 같다."

눈이 부시다는 듯 두 눈을 가늘게 뜬 채 함박웃음을 띤 현준을 도저히 마주볼 수가 없다.
평생을 같이 지냈어도 이런 상황에만큼은 아직까지도 면역력이 없어서.
금방 얼굴이며 목덜미에, 아니, 손가락과 발가락 끝에까지, 온 몸에 열이 오르는 기분이다.

"나 내려 줘 현준아, 응? 좀 놔 줘어..."

기어들어가는 수겸의 투정을 못 들은 척 하려는 건지 점점 더 수겸을 높이 들어올리던 현준의 몸이 균형을 무너뜨리고 천천히 뒤로 젖혀졌다.
무릎 아래에서 넘실대던 물이 허벅지를 적시고 허리 언저리를 감싸 온다.
이젠 아예 물에 반쯤 잠겨 드러누운 채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현준의 만족스런 표정에 수겸의 입가에도 이내 장난스런 미소가 어렸다.

수겸이 현준의 팔 위에 올라 있던 손을 천천히 미끄러뜨리자, 두 사람의 간격이 조금씩 좁아들어간다.





[하늘에서]

물에 젖은 머리카락이 바람을 머금고 허공에서 춤춘다.

[짓궂은 천사가]

눈 앞을 떠다니는 비눗방울이 햇살의 각도에 따라 변덕스레 빛을 바꾼다.

[내게 내려와 키스한다.]

천사와의 키스는, 살짝 쌉싸름한 무지개의 맛이었다.





- 네, 여보세요. 아니, 아니에요. 그게.. 원래 예정은 저녁식사 마치고 돌려보낼 생각이었는데, 애들이 종일 물놀이를 너무 신나게 했나... 들어와 봤더니 둘이 꼭 껴안고서는 세상 모르게 잠이 들어서요. 무슨 도토리 끌어안고 자는 다람쥐도 아니고. 네에, 그럼요. 시킨 건 다 해 놨더라고요. 네, 그럼 오늘은 이대로 같이 재우는 걸로 할게요. 내일 좀 늦게 보내드려도 괜찮죠? 짐은요 무슨, 할 수만 있으면 이대로 눌러 살아 줬으면 좋겠는데. 이 김에 그냥 저희 주시면-, 아하하, 그럴까요? 내일 보낼 때 수겸이도 같이요? 괜찮으시겠어요?

멀어지는 웃음소리와 함께 방문이 조심스레 닫히고, 이제는 길어질 대로 길어진 창 너머 오렌지빛 햇살은 차츰 푸른 빛에 먹혀 간다.
살짝 어두워진 방 안을 초가을의 포근한 햇볕 향기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슬램덩크
현준수겸 하나후지
2023.10.02 20:31
ㅇㅇ
모바일
ㅋㅋㅋㅋㅋ 부모님이 서로 데려오고 가져가라 하시네 ㅋㅋㅋㅋㅋ 보송보송하고 햇볕냄새나는거 같아 너무좋다 양가에서 인정받는 현준수겸 개좋아 ㅋㅋㅋㅋㅋ
[Code: 5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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