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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3 02:19
두서없음ㅈㅇ
당돌한 영헨리와 자낮 털사과 조합 조치요...






1.



그에 대한 정의는 딱 한 가지였다. …어리군. 그 카빌 가의 도련님이라, 알파나 오메가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아선지, 그 부분에선 저보다 뛰어났다. 그러나 그것 뿐이었다. 치기 어린 청소년. 청년과 소년의 경계선에 있는 이 남자는, 태양처럼 빛나는 시선과 달리 품에선 파란 눈동자를 닮은 겨울 바다의 냄새가 미약하게 난다. 완전히 갈무리 하지 않은 페로몬은 잠시 드러나는 것 뿐인데도 그 위압감이 엄청나서, 아직 완성 되지 못한 향은 묵직히도 감돌았다. 냄새에 질식할 것 같이, 수업을 마치자마자 교실 문 밖으로 나선 벤은 그제야 한숨을 내뱉었고, 미약하게 떨리는 손으로 입을 닦아내고 만다.



악연이다. 그것도 최악의 관계라고, 벤은 적어도 그런 생각 뿐이었다. 스승과 제자이기 이전에, 그 헨리 카빌이 제 약혼자라니. 아직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정략결혼이 미루어진 대신인 걸, 벤 자신도 몰랐던 사실이었기에.




2.



벤이 교사로 있는 하이스쿨은 명문교완 거리가 먼, 늘 주변에 있을 법한 학교였다. 평범한 수업과 평범한 교사들, 그렇기에 베타들의 비율이 교내에 대다수였고 벤은 드물게도 남성체 오메가였다. 보기완 다르게 우성이기까지 한. 객관적으로 보아도 벤은 오메가의 전형적인 생김새완 퍽 달랐다. 뽀얀 살결, 호감가는 인상, 평균이거나 그보다 작은 체구, 남녀 불문하고 알파들에게 보호받을 만한 사랑스러운 존재. 과일 또는 꽃의 향기를 가져서, 모두에게 사랑받는 이들. 벤은 그런 부분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외양만으론 오히려 알파에 가까웠다. 우선 알파보다 더 위압적인 덩치가 그렇다. 평균 수준에 훨씬 웃도는 커다란 체격과 몸집, 인중과 뺨을 뒤덮은 덥수룩한 수염과 가까스로 정리된 머리털마저, 그리 탐스럽지 않은. 요컨대, 적어도 벤은 매력 없는 오메가라고, 본인을 그렇게 생각하곤 한다.



그는 분명 우성오메가였으나, 향을 가진 것을 빼곤 거의 베타와 비슷했다. 애초에 오메가라 밝히기 싫어 몸에 나는 페로몬을 완벽히 지우는 탓도 있지만, 일단 오메가라 내보이면 아무리 차별이 드문 요즘이라도 무언의 멸시는 여전히 있었다. '향기 없는 오메가.' 저를 거쳐간 알파들은 제게 그런 언어를 하고 떠나가도, 벤은 아무렇지 않았다. 이미 그런 소리에 무뎌졌으니까.




3.



그런 그에게 갑작스레 온 소식은 달갑지 않은 것이었다. "카빌에서 널 보고 싶다고 하더라. 이참에 기회일 수도 있으니, 선 자리에 한 번 나가보는 것도…." 관심 없는 귀는 카빌에서부터 듣지 않은 덕분에, 뒷말이 점차 흐려져 가는 걸 건조하게 듣는 둥 마는 둥 구는 벤을, 말을 끝낸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30줄이 넘어가도록 알파에게 정착할 생각 않는 자식.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젊을 때만 해도 여느 알파들이 알아서 다가올 만한, 너무나도 매력적인 오메가였던 제 아들. 지금도 친모 눈에 아름다운 아이었지만 그녀의 걱정은 줄을 기미가 없었다. 알파에 대해 감정 하나 없이, 말 그대로 무관심의 대상임은 물론, 몰래 만난다는 여지조차 없으니 말이다.



"피곤한데 먼저 들어가 볼게요."


덤덤히 입을 열고서 방으로 들어간 그는 문을 닫자마자 기대어 주저앉는다. 피곤함에 힘이 탁 풀려서 주륵 앉은 벤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꾹 짓눌렀다. 저를 두고 혼사에 대한 얘기가 오갈수록 숨이 막히는 것만 같아, 입술을 짓씹고 만다. 칠흑색 커튼을 친 탓에 빛이라곤 한 줌 없는 공간은 시야 확보가 어려울 정도로 캄캄했지만, 이 순간만큼 안정적인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시는 일이 드물기에 벤은, 나직한 탄식으로 끝을 맺는다. 마른세수 한 번, 바싹 마른 입술을 한 번 핥은 벤의 무표정한 낯빛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카빌이라면…."


수학 교사인 제게 그 흔치 않은 성을 가진 이름을, 제아무리 남한테 관심이 없다 한들 모를 리가 없었다. B반의 헨리 카빌. 원래 영국에서 사립학교를 거처 퍼블릭 스쿨을 다녀야 하는, 예정된 것이라면 상류층 자제의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아야 하는데, 그 가문이 특이한 건지 미국으로 전학와서는, 예상 외로 조용히 학교를 다니고 있다. 전학하기 전부터 떠들썩한 소문을 더해, 입이 가벼운 몇몇 교직자들에 의해서, 벤도 어렴풋이 알 뿐이었다. 그 아이는 벤이 들어가는 반의 학생 중 한 명이었고, 가르치는 입장에선 꽤 모범생에 속했다. 교사들 사이에서 집안을 빼더라도 외적으로나 대외적으로나 그는, 평판 좋은 '우성알파'였기 때문이다. 2차 성징을 겪으면서 판별도 대부분 이때 넘기게 되는데, 이른 경우엔 이미 조절도 가능하다는 점이었고 그런 '집안'이라면 분명 형질 따위야 가볍게 지울 수 있을 수준일 테니.




하지만 그 애는, 너무 어려. …게다가, 어린 나이는 그렇다 쳐도 자신이 그 아이의 상대 오메가로 붙어있는, 찰나의 대입까지 미치자, 저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입 밖으로 꺼내는 벤이었다. "…미쳤군, 벤자민." 어린애를 대상으로…. 양심의 가책이 느껴져, 답답한 마음에 머릴 털자, 금세 헝클어진 머릿결을 정리도 하지 않은 채 자릴 털고 일어난다. 아까보다 피로는 배로 쌓인 것 같아, 어서 씻고 침대에 눕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찬물로 샤워하면 그나마 개운해지려나, 그리 생각하고서 머릴 긁적인다. 혹시라도 그런 일은 절대 없길 바랄 뿐이고,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어디까지나 헨리 카빌은 법적으로 보호 받는, 엄연한 미성년자니까.



그곳에서도 생각이 있다면 그 아이를 보내진 않겠지, 하던 어설픈 생각을 훗날 후회하게 될 줄은.




4.



우려하던 일이 현실로 되어 버린 상황이라고 해야하나. 뭘 준비할 절차도 없이, 퇴근하자마자 평소 벤이라면 가격 때문에 근처에 다가가기는커녕 구경도 못할 고급 레스토랑에서, 직원이 건네준 메뉴를 훑다가 금방 덮어버리곤 일행이 나중에 올 거니 물 한 잔만 달라 주문했다.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고 물어보기에도 주변은 나이프로 고기를 썰며 저들끼리의 대화를 하고 있고, 그렇다고 묻기에도 서버는 벌써 바쁜 걸음으로 저만치 떨어진 후였다. 잔에 담긴 물을 벌컥 마시고, 그리고 달려온 터라 손등으로 이마에 송골송골 맺은 땀을 훔쳐낸다. 학교에서부터 자가용을 끌고 지체 없이 온 거라, 빛 바랜 구닥다리 정장 차림의 벤은 흐트러진 넥타이를 도로 고쳐 매고, 가만 상대를 기다리는 자신이. 색색의 화려한 작품이 있는 곳에 덜렁 흑백 그림 하나 걸려있는 것처럼, 한 공간에서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괴리. 어울리지 않는 거리감. 테이블 위에 있는 냅킨을 반히 바라보던 벤의 어깨가 묘하게 축 처진다.



"애플렉 씨?"


느리게 흘러가는 클래식의 음악 소리. 손목의 시계를 보던 벤은 뒤편에서 들리는 구두 소리가 한 곳에 우뚝 멈춰서고, 연이어 울린 음성에 반사적으로 일어나 악수를 하러 고갤 들었다.


"아, 네. ……아아…."


벤은 저도 모르게 표정을 굳히고 우두커니 서있었다. 일순 다갈색의 눈이 크게 떠졌다가, 가까스로 내색을 풀고서 고갤 가로젓는다. "…후." 벤의 한숨과도 같은 목소리에, 맞은편 남자의 벽안이 잠시 놀란 빛을 띄어 몇 번 깜박이다, 곧 가늘게 뜨고 벤을 쳐다보았다.




"……선생님?"


"제 상대 오메가가, 선생님이에요?" 세미포멀 차림의 남자가 순수한 호기심을 가지고 물었다. 바닥을 딱딱 두드린 검정 로퍼, 어두운 남색 자켓 안의 흰 셔츠, 그 위엔 넥타이가 없는 대신 은은한 크림색 니트가. 적당히 격식을 갖추면서도 마냥 가볍지 않은 복장에, 깔끔히 가라앉은 흑발과 뚜렷한 이목구비 속, 시리도록 푸른 눈. 그의 주목을 끄는 외모에 몇몇의 이목이 그에게로 쏠린다. 그에 비해 초라한 자신을 내려다본 벤은, 아직도 얼떨떨한 실제에,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있지 말고, 우선…앉을까요?"




5.



"그 애플렉이 벤자민 선생님이셨구나."

"…나도 너일 줄 몰랐어."

"그래요?"

"그래."


의자에 앉아서, 서로를 마주보며 처음 뗀 대화였다. 의외였다는 어투여도 헨리는 닥친 현실에 익숙한 듯 아무렇지 않아, 도리어 벤이 겪고 있는 이 상황이 너무도 낯설기만 했다. 맞선 대상이 학생이라니. 잘 사는 집안이란 건 나이 같은 조건은 따지지도 않은 건가. 복잡한 머릿속, 배고프냐며 묻는 헨리에게 저녁도 거르고 온 걸 깨닫고 고갤 끄덕인다. 벤에게서 메뉴판을 넘겨받은 그가 눈으로 쭉 살피더니, 다시금 말을 걸었다.


"스테이크할 건데. 많이 굽는 거 안 좋아하시죠?"

"…어. 중간 정도."

"알겠어요."


웨이터를 부른 헨리는 영국식 억양이 묻어나는 언사로, 티본과 립아이를 각각 미디엄, 미디엄 레어 하나씩 주문했고 "와인 마실래요?" 질문에도 긍정적으로 고갤 끄덕인 벤에 의해, 기어이 두 잔을 부탁하고 말았다. 메뉴판을 치운 종업원이 가고 난 후, 벤은 물을 들이키는 헨리를 마주하다, 한순간에 비어진 잔을 테이블 위로 턱 놓는 행동에, 담담히 그에게 고동빛 시선을 던진다.



"…너도 마시려고?"

"안 될 거야 없잖아요?"

"안 돼. 어린애가 무슨 술이야."

"…저 애 아니에요, 생일도 지났고. 어차피 졸업반이라, 머지않아 졸업하면 바로 성년인데."


"그리고 와인은 술도 아니잖아요. 도수도 낮고, 이건 포트와인이라서 더 그렇고." 정갈히 따른 와인을 벤에게도 주고서, 자신의 와인잔을 휘휘 돌리던 그가 향을 맡더니 한 모금 마시고, 퍼지는 단 맛에 음미하듯, 입을 고이 움직이고 삼킨다. 그 작은 몸짓마저 섬세하고도 우아해서, 벤은 무심결에 그의 미세한 손짓 하나하나를 응시하다, 본의 아니게 허공에서 눈길이 마주쳤다. 얼마 안 가 파란 눈이 벤을 향해 호선을 그리며 웃은 그가 무뚝뚝하게 저를 바라보는 벤을, 입가에 미소까지 띄우고 앞으로 허릴 슬쩍 숙인다.




"왜요. 새삼 잘생겨 보여서? 그렇게 쳐다보면 제 얼굴 닳겠는데요, 선생님."

"…됐다."

"선생님이니까 닳을 때까지 보셔도 되는데."


천연덕스러운 태도와 더불어, 훅 다가온 그에 반해서 상체를 뒤로 뺀 벤은 의자를 다시 끌어 있자,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깰 으쓱이고서 싱겁게 웃은 헨리였다. 그 틈에 스테이크가 테이블 위로 자리하고서, 식사는 무난히 흘러가는 듯 싶었다. 실은 교사와 학생으로의 관계를 두고 봤을 때도 철저히 수업에 대한 몇 마디의 필요한 대화만 나눴을 뿐, 이렇게 직접 대면으로 사적인 말을 이어가는 건 처음이었기에. 부모 호출도 아니고 진로 상담도 아니고, 다른 공간에서 단 둘이서만. …그것도 알파, 오메가의 정략결혼을 목적으로 한 만남. 사제 관계에서 어딘가 모르게 뒤바뀐 듯한 느낌이었지만 말이다.




6.



"……."


이 시간만 지나면 어른들께 정중히 거절해야지, 하고 와인을 마신 후에 필름이 끊겼는지 벌떡 몸을 일으킬 때에는, 어느 낯선 침대 위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높은 천장과 커다란 샹들리에의 은은한 전등 빛, 새하얀 방과 침대보, 햇살이 들어와 반쯤 올린 블라인드마저 새하얗고, 호텔인가 싶을 만큼 호화로운 방 안. 가구들이 한 공간에서 있을 만큼만 있으면서도, 하나같이 고풍스러운 가구들이 즐비해서, 결코 껍데기만 반지르르한 호텔도 아닐 법한 풍경이었다. "…맙소사…. " 어지러운 머릴 짚은 채, 벤은 답지 않게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그 누구도 아닌 자기 몸이 술에 약하다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식도에 냅다 들이붓더니, 결국 이런 결과일 줄은. 부스스한 머릴 털고 얼굴을 쓸어낸 벤의 안색에 그늘이 진다.




아까부터 살결에 닿는 천의 감촉에 소름이 돋아, 설마하는 마음에 재빨리 이불을 걷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있는 것이라곤 하체를 가린 속옷 하나 뿐이었다. 그 천 쪼가리에 핏기가 싹 가신 듯해서, 허릴 움직여 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아, 비로소 벤은 작게 탄식을 뱉는다. 입었던 정장은 어디에 있는지 찾으러 몸을 일으키려던 때, 와이셔츠를 갖춘 상태로 욕실에서 나온 그와의 시선이 부딪친다. 쪽빛 바다처럼 새파란 눈과 더해 문을 닫자, 확 들어온 싸한 물비린내에, 본능적으로 몸을 움찔 떨었다. 선반에 있는 타이를 집어 두르던 손길은 그런 벤에 의해, 막히고 만다. "…아." 제 변화가 파악이 되었는지, 지독히도 넘실대는 파도 냄새를 단번에 고인 호수로 바꾼 그의 페로몬에, 벤은 간신히 떨리는 숨을 삼키었다.



"죄송해요. 오늘 전 과목 테스트 하는 날이라, 신경이 좀…예민해져서. …언제부터 일어나 있었어요?"

"어, 방금 전에. …근데 내 옷은…."

"그거요? 세탁소에 맡겼는데."

"왜?"


되레 그걸 왜 물어보냐는 눈빛을 한 헨리가 세워진 옷깃을 정리하며 벤이 앉아있는 침대 위로 자리를 잡자, 풀썩 흔들리는 매트리스의 푹신한 감촉이 손안에 잡히고, 그걸 느껴 보기도 전에 호흡이 닿을 정도로 코앞에 있는 남자가. 벤은 가까이 붙은 헨리를 피하려 엉덩이걸음으로 슬슬 물러났지만, 점점 뒤로 피할수록 그는 벤의 모양새에 괜한 오기가 생겨 앞으로 다가섰으며, 벤이 정신을 차렸을 땐 침대 헤드가 등에 닿은 후였다. 툭, 막다른 곳에 다다랐음을 직시해주는 형편에, 그간 고요하기 짝이 없는 얼굴빛이 삽시에 동요로 물들었다. 몇 시간 같은 몇 분의 침묵 속에서, 푸르른 동공이 물결처럼 일렁이듯 벤을 바라본다. 이윽고 아무 짓도 안 하고, 어제도 아무 일 없었다며 결백하다는 듯, 양손을 흔들어 보인 헨리는 찬찬히 입을 뗐다.


"어젯밤에 기억 안 나요? 선생님 거하게 취해서는, 차로 데려가는데 제 옷에다 토하셨잖아요."

"…내가?"

"니트하고 재킷에 묻고, 선생님 정장에도 좀 묻어서…세탁에 맡겼어요, 그래서."


"이건 그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교복 입은 거고요." 화장대에 있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살피며 넥타이의 매듭을 대강 짓고는, 단정히 단추를 채운 와이셔츠와 목을 꼭 죄는 것이 답답한지 이리저리 타이를 쥐고 비틀어대다 마지못해 인상을 찡그린 헨리였다. 전날에 대한 부끄러움에, 자책 섞인 상기된 낯빛으로 이불을 끌어올려 덮고 있던 벤은 서툰 손으로 고군분투하는 뒷모습을 지켜보다, 결국 더듬듯 그의 이름을 부르고 만다.



"…헨리."

"?"

"그렇게 매는 거 아니야."

"그럼 선생님이 묶어 줘요."




7.



몸을 돌려, 둘레에 맨 스트라이프 형식의 넥타이를 손으로 흔들어 보인 그가 장난스레 웃자, 벤은 거리낌 없이 이리로 오라는 손짓으로 침대를 손바닥으로 툭툭 두드렸다. 푼 타이를 넘긴 헨리는 벤을 마주보는 자세로 그에게 바투 다가앉고, 잠시 멈칫하던 손은 조심히 헨리의 셔츠 위로 타이를 휘감고 차차 묶는다. "…고개 들고." 벤의 말을 듣고 순순히 머릴 든 그의 날렵한 턱선과 내려보는 두 푸른 눈이 오롯이 저를 대해, 벤은 그 눈길을 피하려 더욱 집중할 뿐이었다. 내리깐 두 속눈썹 아래로 매는 것에 몰두하는 고동빛 눈이, 말갛고 청아해서 빠져들 것처럼. 부드럽기 짝이 없는 손길을 하나하나 눈에 담는 헨리의 시선이 진득하다, 보단 남들에게 잘 보이려는 아이와 같이 반짝인다.



"……미안해."

"뭐가요?"


매준 넥타이를 정돈하며 대뜸 사과를 하는 그에 의해, 헨리는 입꼬리를 살짝 들어 웃었고 "내가 네 옷에다 토했다며." 차분한 음성에 또 한 번 샐쭉 웃고 만다. …아아. 이 사람 정말 어쩌면 좋을까, 하고 숨기려 해도 자연히 드는 미소에 헨리는 몇 번 입을 달싹였다. 어떻게 말을 해야 그가 불편해 하지 않을까 고민하다, 마침내 말을 붙인다.


"어차피 교복은…오늘 입어야 하는 거였어요, 교내 행사 때문에. 그러니까 미안해 하실 필요 없어요. 아, 선생님 옷은 새 걸로 안쪽 선반에 넣어놨고. 룸 서비스 시켰으니 식사 하시고, 이따가 학교에서 보자고요."

"그래, …고마워."


말쑥하게 맨 넥타이를 확인하고서, 핸드폰의 시간을 본 헨리의 행동이 분주해졌다. 너른 등이 보이고, 쥐색 교복 베스트 위로 채도 낮은 붉은색 마이를 껴입은 그가 두 손으로 머릴 삭 넘기더니 침대에 있는 가방을 챙긴다. 나가려 발걸음을 옮기려는 때에, 문고릴 잡던 손을 내리고 뭔가 떠오른 듯 뒤쪽으로 파란 시선을 던지었다.


"…아, 그리고 벤."

"……."


크게 뜬 갈색 눈동자를 피하지 않고 응한 눈이 살가우나, 그 안의 서늘한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서. 침대보를 끌어 쥔 손을 더듬던 벤은 입을 꼭 닫았다.




"당신의 약혼자로서, 앞으로 잘 부탁해요."



싱긋 웃으며 그리 내뱉은 헨리의 낯을 살피던 그는 본능적으로 드는 두려움에, 앞으로 닥칠 일들이 아찔해져, 한숨부터 꺼내었다. 뭘 답할 새도 없이 굳게 닫힌 문을 치어다보던 벤은 더욱 심란한 마음만 들 뿐이었다. 선반에 가지런히 놓인 옷가지를 든 벤은 고의적인지 모를, 떼지 않은 가격표에 0이 족히 여섯 정도 붙은 걸 보고 깨달은 사실은. 이 대단한 가문에서 자란 대단한 아이를 가르치는 것도 모자라, 그 애의 미래를 약속한 결혼 상대가 되어 버렸다는 것을. …이제는 돌이킬 수도 없는 사실에 직면했다는 것을. 느리게 알아차렸다. 결과는, 번하다. 돈 많은 가문에 팔려가는, 늙고 매력 없는 오메가. 싸구려 삼류소설에 나올 법한 지루하디 지루한 소재였으나, 그 말도 안 되는 내용의 주인공이 자신이었으니까.




8.



"오늘 아침에 뜬 기사 보셨어요?"

"아, 카빌의 막내가 약혼했다는 기사요?"

"그 애의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지만, 우리와는 완전 다른 세계 이야기죠."


교무실에서 교사 둘이 커피를 마시며 오가는 말들이 귓가에 감돌았다. 대화의 주제는 저와 헨리의 얘기였으며 비밀리에 진행된 약혼식과 베일에 싸인 그 헨리 카빌의 약혼자도 대중의 많은 관심이 쏟아지었다. 소식에 느린 편인 벤조차도 아침마다 읽는 신문 덕에 알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 외부인의 통제가 철저한 학교 덕분에 미디어나 언론의 직접적인 출입은 불가했지만, 당장에 교문 밖에선 파파라치와 기자들이 자극적인 사진과 헤드라인을 위해 배회하고 있는 건 피할 수 없었다. 내 주변의, 그것도 어느 학생이자 약혼자 한 명이 이 정도의 주목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벤에겐 무척 어줍어서, 물을 마시려 머그잔을 들었다, 한 모금도 못 마신 채 툭 내려놓고 만다. 부담. 아마 두려움 보단 부담에 가까웠다. 사람에게 이리저리 치어서, 무언가에 두렵다기 보단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와 자신이라는 거리가, 조금은 벅차게 느껴졌다.


<헨리 카빌의 신데렐라>
<재벌가와의 세기의 결혼식 되나>
<전날에 성사된 비공개 약혼, 카빌 가의 예비 신부>
<카빌 가 관계자, "사실무근이다">
<헨리 카빌, 오전 카빌 저택에 수억대 호가하는 자가용과 기사까지 대동하여 등교>
<상대가 베타일 확률로도 대중들의 관심을 끌어…>



- 방과 후에 기다릴게요. 일 끝나시면 곧장 후문으로 와요.


울리는 진동에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을 멈추고, 마우스 근처에 있는 핸드폰을 들어 플립을 열었다. 구형 핸드폰의 액정 속,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지만 누군지 짐작이 가는 인물은 단 하나였다. 벤은 문자를 읽고 닫으려다, 진동과 함께 톡 뜨는 문자창에 눈을 깜빡인다.


- 그냥 가지 말고.


제 속을 손바닥 뒤집듯 반히 꿰뚫고 있어, 몇 분을 고민하던 벤은 핸드폰을 책상 쪽으로 플립을 뒤집었다. - 그래. 간단히 답장 정도는 해야할 것 같아서 단답형의 문자를 보냄을 끝으로 20%의 배터리가 남은 걸 본체만체 미동도 않는다. 어차피 문자를 받은 헨리도 그만 답장하지 않을 걸 알고 있기에 업무 관련 문자, 전화 외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벤에게선 충전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뒤늦게나마 이삿짐 푼다ㅜ
2016.12.03 02:2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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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업이라는거슨,,,,, 어나더가 있다는구시겠지요 센세... 센..세....헤헤.. 어나더 헤헤헤 어나더!!! 어!!!나!!!!더!!!!!!!!!!!
[Code: 18eb]
2016.12.03 02:3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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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ㅜㅜㅜㅜㅜㅜ오셨다ㅠㅠㅠㅠㅠㅠㅜㅠㅠㅠㅠㅠㅠㅠㅠ어나더 짝! 어나더 짝!
[Code: fa51]
2016.12.03 02:5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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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이삿짐은 사랑ㅠㅠㅠㅠ제 웰치스랑 군만두 좀 드셔보세요
[Code: 5a9a]
2016.12.03 03:1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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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니 내센세가 오셨어ㅠㅠㅠ이삿짐 푸시느라 고생많았조ㅠㅠ 자이제 어나더를 집필하셔야죠ㅠㅠ부디 어나더를ㅠㅠㅠㅠ어나더어ㅠㅠㅠㅠ
[Code: cb15]
2016.12.03 05:2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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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어나더가 있어야죠
[Code: da6f]
2016.12.03 07:0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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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왔어센세ㅠㅠㅠㅠㅠㅠㅠㅠ내가많이아껴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c2db]
2016.12.03 07:0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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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더를 보자 센세 어나더
[Code: c2db]
2016.12.03 07:3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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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헉 존잼
[Code: edc0]
2016.12.03 07:3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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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혼생활 어나더는 언제오나 센세
누워서 기다리면 오는것일까 센세....? ㅇ<-<
[Code: edc0]
2016.12.03 08:0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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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재업이라는거슨 어나더가 잌ㅅ다는 뜻이겠죠 센새ㅠㅠㅠ 내가 많이 기다려ㅠㅠㅠㅠㅠ
[Code: a017]
2016.12.03 08:2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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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어 센세ㅠㅠㅠㅠㅠㅠㅠㅠ대존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어나더가 없으면 나는 죽쏘ㅠㅠㅠㅌㅌㅌㅠ
[Code: 769f]
2016.12.03 08:4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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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아 내가 이거 왜 첨보지ㅠㅠㅠㅠㅠㅠㅠㅠ 선셍님 어나더오ㅠㅠㅠ어나더ㅠㅠ
[Code: 820b]
2016.12.03 08:5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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ㅜㅠㅜㅠㅜ 아 너무 좋다ㅜㅠㅜㅠ 센세ㅜㅠ 어나더.......ㅜㅠㅜㅠㅜㅠ아아 진짜 좋네ㅜㅠㅜ
[Code: 85d7]
2016.12.03 14:41
ㅇㅇ
킬킬킬,,,과년한,,,센세가,,,이삿짐을,,,풀었다는것은,,,필히,,,어나더가,,,있다는 것이겠지요,,,
[Code: 15dc]
2016.12.03 18:58
ㅇㅇ
센세 오셨구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다시봐도 존나좋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이제 어나더 주세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ff35]
2016.12.25 08:06
ㅇㅇ
모바일
센세........ 어나더는??????
[Code: f5b4]
2017.01.28 17:25
ㅇㅇ
모바일
센세 미국가셨나요....ㅠㅠ
[Code: 3f7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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