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 수르가 그렇게 찌질했던 걸 보면 아빈 수르는, 딱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 이런 느낌이야. 좋은 랜턴이었을지 몰라도 현명한 아버지는 되지 못했겠지. 그래서 그날 할한테도, 현명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을 것 같다. 물론 그 날 그 순간 그 말을 듣고 제정신으로 남을 수 있을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말임. 아빈은 할한테 일단 차분히 앉아서 자세히 설명해보라고 하겠지. 아빈이상으로 당황한 할은 얌전히 시키는 대로 하겠지. 하지만 이미 머리가 반쯤 멍해진 상태였으면 좋겠다. 아빈이 그렇게, 당황해서 말도 제대로 못해는 애를 앞에 두고, 자기도 모르게 약간 다그치듯, 범죄자들을 취조하듯 캐물었으면 좋겠다. 코루가의 양육법상 아빈 앞에서는 아무 권한도 행사할 수 없는 시네는 가만히 뒤에서 지켜보기만 하겠지. 할은 더듬더듬, 나오는 대로 자기 얘기를 하겠지.

그러다 필연적으로, 마운팅을 당했던 날까지 이야기를 하게 됐으면 좋겠다. 모든게 까발려지니까 할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겠지. 결국 할의 불안증세가 심해져서 할이 손을 덜덜 떨기 시작했으면 좋겠다. 이상상태를 제일 먼저 알아챈 건 시네겠지. 시네가 그 날 처음으로 아빈을 막아서고, 할 어깨에 손을 얹어줬으면 좋겠다. 할은 눈을 꽉 감아버리겠지. 어깨에 닿는 시네의 손 말고는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어라. 호흡이 서서히 정상 범위로 돌아오겠지. 시네가 제법 익숙하게 할을 달래는 걸 보고, 아빈은 시네가 마운팅에 대해 모두 알고 있었단 걸 눈치채겠지.

아빈은 할의 말을 들으며 이게 유사 각인이 된 거라고 믿게 됐어. 쉬운 말로 애착감을 느끼는 대상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거였지. 그런 케이스를 수도 없이 봤었고, 할이 그 일을 당했을 때는 어릴 때였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믿었음. 무엇보다, 할이 시네스트로를 정말로 사랑할 리 없었으니까. 그래서, 아빈의 화가 어른이고 모든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자신에게 그런 중요한 일을 숨긴 시네한테로 옮겨갔으면 좋겠다. 사실, 아무리 할이 숨겨달라고 했다고 하더라도, 아빈에게만은 알려야 했던 게 맞으니 그 부분만큼은 정당한 주장이었지. 하지만 시네는 시네스트로니까 나름대로 아빈에게까지 그 일을 함구했던 이유가 있겠지.

언성이 점점 높아지자 시네스트로는 할을 잘 달래 옆 방에서 쉬게 하겠지. 하지만 문짝 하나가 모든 소리를 막아주는 건 아니었어. 멍해진 정신으로 두 사람이 싸우는 소리가 들려오겠지. 절반의 절반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오래된 사상 문제인 것만은 분명했음. 아빈은 시네가 근본적으로는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고 느낄 거고, 시네는 시네대로 답답하겠지. 그걸 듣고있던 할은 이성적으로는 그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모든 걸 자기 탓으로 돌려버렸으면 좋겠다. 

바보같이 말을 꺼내지만 않았어도, 아니 말을 하기 전에 적어도 주위를 한 번이라도 둘러봤더라면 두 사람이 싸울 일은 없었을텐데 싶었겠지. 내가 똑바로 처신했더라면, 그 생각이 할을 꽉 붙들고 놔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네스트로를 곤란하게 만든 것이 죄스러웠고 아빈을 실망시킨 게 너무 죄송했고 몇 년의 시간이 흐르도록 감정하나 정리하지 못한 자기가 제일 바보같았음.

할은 결국 새벽까지 뜬 눈으로 밤을 새우다가, 충동적으로 집을 나갔어. 거의 본능적으로 이상함을 느낀 시네스트로가 마시고 있던 음료를 내려놓고 할이 자고있어야 할 방 문을 열었을 때, 할은 이미 마당을 가로질러 달려나가고 있었지.

할은 그 길로 공군에 입대했어. 아무 생각도 나지 않도록 일부러 독하게 굴어서 진짜 위험하고 힘든 일만 골라서 했겠지. 그러다 정말 죽을 뻔한 적도 여러 번이었고, 한 번은 정말로 전사처리돼서 고향집으로 전사 통지서가 날아간 적도 있었어. 할이 죄송하면 죄송할수록, 군대에서는 겁 없는 인간으로 유명해졌지. 하지만 그렇게 몸을 혹사해도 가끔씩 꿈에 시네스트로가 나오겠지. 

집이랑은 연락도 끊고 살아라. 아빈쪽에서 만나고 싶다고 하는데도 할이 아버지를 볼 면목이 없어서 피하는 거였으면 좋겠다. 시네랑도 딱히 연락은 안 하겠지. 다만, 가끔씩 익명으로 소포가 도착하곤 하겠지. 반송할 주소가 없어서 반송은 못 하고, 할은 그걸 집 구석에 조용히 쌓아두고 뜯어보지도 않겠지. 썩는 물건들은 아닌 것 같아 차라리 다행이었음.

그러다 아빈이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아빈에게 전화를 걸었으면 좋겠다. 직업병의 일종이라는 설명을 들었지만, 이미 죄책감으로 찌들어있는 할은 그것마저 자기 탓인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실제로 그 직업에 종사한다고 하더라도 스트레스 관리만 제대로 되어 있으면 발병 확률이 낮다고 하니 말임. 아빈은, 그 일로 시네와는 완전히 결별했다는 소식을 전해주며 하지만 할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믿는다고 말하겠지. 다만, 마음은 이제 확실히 정리한 거냐냐고 물어보겠지. 할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겠지.

전화가 끊기고 나서도 한참을 고민하던 할은 그날 바로 상담소를 찾겠지. 

상담사가 그건 각인일 거라고, 가끔 사랑과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고 그래라. 근데 그게 각인인진 몰라도 이게 확실히 사랑이 맞다는 건 할이 제일 잘 알겠지. 지금도 가끔 샤워가운을 느슨하게 걸치고 나온 시네가 침대에 걸터앉아 전라 상태인 할의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꿈을 꾸니까. 하지만 할은 동시에, 아빈과 시네를 위해서라도 포기해야만 한다는 것도 알겠지. 하지만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으면 좋겠다. 묻어버리고 싶은데, 각인이랑 단단히 얽혀버려서 도저히 그럴 수가 없는 거야.



그러나 피나는 노력 끝에, 할은 자기 마음을 숨기는 법을 터득하겠지. 여전히 시네스트로를 사랑하긴 했지만, 적어도 '정상'인 척은 할 수 있었음. 이성이든 동성이든,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나 가벼운 만남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어. 성격도 훨씬 밝아졌지.

아빈 앞에서도 그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고 확신했을 때, 할은 '정상'이라고 적힌 상담지를 들고 투병중인 아빈을 찾았어. 아빈은 생각했던 것보다 할을 반갑게 맞아줬음. 할이 알던 것보다 많이 수척해졌다는 것만 빼면 예전과 거의 똑같았어. 둘은 정상적인 부자인 것처럼 제법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었지. 아슬아슬해 보였지만 할은 그 정도로 만족했지.

하지만 할이 그 이후로 아빈을 더 찾지는 않았을 것 같다. 아빈을 그렇게까지 속이고 싶진 않았던 거지. 대신에, 가끔 안부전화정도는 하겠지. 아빈이 죽기까지 육 년을, 그렇게 애매한 사이로 지냈으면 좋겠다.



그때까지도 시네랑은 모든 연락이 끊긴 상태겠지. 아빈의 서류를 정리하다가 변호사가 다른 행성 이야기를 꺼낸 걸로 시네가 이사를 갔다는 걸 처음 알게 될 정도여라. 할은 아 그래요? 라고 최대한 가볍게 넘겼지만, 그 이후로 계속 속이 답답해서 그날 점심하고 저녁을 전부 걸렀겠지.


그러다 결국 시네와 다시 마주치게 된 건, 아빈의 장례식장에서였음. 할은 단단히 각오를 하고 있었겠지. 할은 여전히 아빈 수르의 유일한 아들이었고 시네스트로는 이혼한 상태이긴해도 반려자였으니 피할 길도 없었음.

할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반사적으로 시네스트로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걸 느끼겠지. 몸이 확 굳을 거야. 할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겠지. 하지만, 시네를 발견한 순간, 할은 그 자리에 멈춰서겠지. 뒤에서 따라 들어오던 사람이 걱정스럽게, 괜찮냐고 물었어. 할은 그제서야 자기가 숨도 쉬지 않고 있었다는 걸 깨닫겠지. 하지만 뭐라고 반응할 새도 없이, 할이 기억하던 모습 그대로인 시네스트로와 눈이 마주쳤어. 당연한 말이겠지만 시네스트로의 눈은 여전히 노란색이었지.

-

할을 발견한 시네스트로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올 것 같다. 살짝 인상을 쓴 채, 시네스트로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할이 이상해보이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악수를 청하겠지. 할은 한참 망설이다 끝내 손을 잡을 거야. 단단한 감촉부터해서 천천히, 주위 상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겠지. 할이 기침을 했으면 좋겠다.

그 뒤, 3일 내내 둘은 거의 붙어 있겠지. 살가운 대화를 나눌 장소도 아니었고 그럴 기분은 더더욱 아니어서, 둘 다 꼭 필요한 대화가 아니면 거의 하지 않았겠지만 말이야. 그래도, 그동안 그토록 억누르려고 했었다는 것 자체가 무색해질 만큼, 할은 자기도 모르게 시네스트로를 먼저 찾고 그 뒤에 나머지 모든 정보들을 받아들이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다 장례식 절차가 모두 끝난 후에, 가장 먼저 빠져나가려는 할을 시네스트로가 붙잡았으면 좋겠다. 아직 자기가 떠나기까지 시간이 남아있으니, 얘기를 좀 하자는 거였지. 아니라고 하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할은 딱히 거절할 구실을 못 찾겠지. 시네스트로가 자길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할은 시네스트로가 에스코트 차원에서 차 문을 열어주는 대로 얌전히 타겠지. 하지만 문이 닫힌 그 순간부터 타지 말걸, 하고 후회했으면 좋겠다.
2018.05.07 21:17
ㅇㅇ
모바일
오ㅓ 센세 진짜 너무좋아여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센세 우리집지하실에 이번여름을 대비해서 웰치스랑 비비고 군만두와 에어컨을 두엇는데 들어오지않을래..?
[Code: 720c]
2018.05.07 23:08
ㅇㅇ
모바일
끼요오오오오오오오오오ㅗ옷🎺🎺🎺🎺🎺🎷🎷🎷🎷센세가 오셨어
[Code: b8a1]
댓글 작성 권한이 없음
성인글은 제외된 검색 결과입니다.
글쓰기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