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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6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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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ㅌㅈㅇ 알오



길을 걷던 위안은 볼을 타고 흘러내려 턱에 맺히는 눈물방울을 수시로 닦아냈다. 기쁨의 눈물도, 슬픔의 눈물도 아닌 그저 거대한 공포감이었다. 조금도, 정말 손톱만큼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목적지도 없이 그저 걷고 또 걸으며 눈에서 더 이상 흐를 눈물이 없을 만큼 울었을 때 위안의 주변은 온통 낯선 곳이었다. 

이방인이 된 것 같은 이질적인 느낌도 잠시, 위안은 주변에 보이는 까페로 무작정 들어가 따듯한 우유 한 잔을 시켰다. 여전히 입맛은 없었지만 뱃속의 아기를 위해서라면 뭐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고소한 우유의 향이 위안에게는 그저 비릿하게 느껴졌지만 위안은 한 모금씩 우유를 의무적으로 삼켜냈다.

몇 시간이나 정처 없이 걸은 데다가 머리가 띵할 정도로 울기까지 한 위안은 온 몸에 진이 빠져 그저 멍하니 흘러가는 시계를 바라봤다. 가만히 앉아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던 위안은 마냥 유약하기만 하던 아까와 달리 조금은 결연해진 표정으로 평소 친하게 지냈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대뜸 물었다.


- 내 목소리 어때?

- 갑자기 뭐 그런걸 물어.

- 얼른. 지금 내 목소리 어떠냐구.

- 좀… 잠겼나? 감기 걸렸어?

- 아니야. 나 오늘 너희 집에서 자도 돼?

- 왠일? 아버지랑 싸웠냐?

- 쓸 데 없는 소리하지 말고. 돼, 안돼? 빨리 말해.

- 돼. 지금 올거야?

- 좀 이따가. 도착해서 다시 전화할게.


전화를 끊은 위안은 제 목소리가 잠긴 것 같다는 친구의 말에 몇 번 헛기침을 해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조금 떨리는 손으로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 몇 번의 신호에 이어 들려오는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고, 냉정했다.


- 여보세요.

- 저에요.

- 서류 받았니?

- 네. 이거 그냥 동사무소에 내면 된다던데 제가 바로 내도 돼요?

- 그래주면 우리가 편하겠구나.

- 그동안 감사했어요.

- 그래. 잘 살아라.


위안의 양부모는 몇달만에 위안에게서 걸려온 전화에도 사과는 커녕, 집에서 나간 이후로 어떻게 지냈냐는 그 흔한 물음조차 건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위안은 이런 의미 없는 일에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오늘 자신에게 일어난 그 엄청난 일에 비하면 이런 것쯤은 문제 축에도 끼지 못하는 듯 했다. 제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문제를 하나라도 덜어낼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것만 같던 위안은 친구의 집으로 향하는 길에 곧바로 동사무소에 파양신고서를 제출했다. 고작 몇 장짜리 서류를 제출한 것뿐인데, 왠지 어깨를 짓누르는 가방이 조금은 가볍게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위안의 친구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마룻바닥에 대자로 드러눕는 위안에게 맥주를 권했지만 위안은 당연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제는 위안의 거절이 익숙하다는 듯 위안의 곁에 철푸덕 주저앉은 친구는 심상치 않아 보이는 위안의 표정에 걱정스레 물었다.


- 너 무슨 일 있지?

- 나 휴학할까?

- 미친놈.

- 나 엄청 진지해.

- 학기 끝나려면 한 달밖에 안남았는데 이제 와서 휴학은 무슨 휴학이야. 정신차려.

- 한 달…. 그 정도면 괜찮을 거 같기도 하다.


의사가 이제 막 5주를 넘어갔다고 말했으니, 앞으로 한 달 정도라면 그리 티가 많이 날 것 같지는 않았다. 위안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친구를 피해 집 밖으로 나와 근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낮고 부드러운 근경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었지만, 위안은 덜덜 떨리는 제 목소리를 숨기려 무던히도 애쓰며 말했다.


- 아빠. 저 오늘은 친구 집에서 잘게요.

- 잠은 집에 들어와서 잤으면 좋겠구나.

- 오늘 하루만요. 있잖아요 아빠…. 아, 아니에요. 안녕히 주무세요.

- 아가, 얘기하렴.

- 그냥…. 별 거 아니에요. 그… 파, 파양신고! 그거 했다구요….


위안은 서둘러 핑계를 찾아 적당히 둘러댔고, 꽤나 그럴듯한 핑계거리를 준 양부모에게 고마워질 지경이었다. 파양문제로 우울해했던 위안을 잘 알기에 근경은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 집으로 오지 그러니.

- 이미 버스도 끊겼구…. 오늘만 여기서 자고 갈게요.

- 속은 좀 어때. 오늘은 뭐 좀 먹었니?


근경은 여태 위안이 파양문제로 속병을 앓았다 생각했기에 어쩌면 당연한 물음이었다. 위안은 솔직하게 말할 수 없는 제 처지와 자신을 향한 걱정스런 근경의 목소리에 갑자기 서글퍼져 차오르는 눈물을 억지로 참아내고는 조금 용기를 내어 물었다.


- 아빠. 부생이 형한테 진짜 동생이 생기면 어떨까요?

- …….


위안은 자신의 물음에 생각보다 근경의 침묵이 생각보다 길어지자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지는 기분이었다. 무언가 실수를 한 것 같다는 생각에 서둘러 화제를 돌리려 입을 연 순간 근경이 먼저 말했다.


- 아가. 혹시 내가 널 입양해줬으면 하는거니?

- 아니요, 아니에요. 그냥… 못 들은걸로 해요. 요즘 너무 우울해서 이상한 소리 한 번 해봤어요. 아빠, 나 피곤해요. 끊을게요.


위안은 근경의 대답도 듣지 않고 대뜸 전화를 끊어버린 스스로의 대담한 행동에 헛웃음을 짓다가도, 빠르게 어두워지는 표정을 숨기지는 못했다. 



***



다음날 강의를 듣던 위안은 입학하고 처음으로 수업이 끝나지 않기만을 바랬다. 마지막 강의 하나를 남겨둔 위안은 이 강의만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한숨을 끝도 없이 내쉬었다. 머릿속에 자꾸 떠오르는 근경의 얼굴을 강의에 집중하며 겨우 떨쳐냈던 위안은 강단의 교수가 야속하게 강의를 끝내고 나가자 무너져 내리듯 책상에 얼굴을 파묻었다. 

여전히 근경을 볼 자신은 없었던 위안은 그렇다고 좁디좁은 친구의 자취방에서 또 신세를 지기도 미안해져 결국 호텔로 향했다. 작지만 깨끗한 방은 혼자 지내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새하얀 린넨이 덮인 싱글침대에 누운 위안에게 손목시계의 초침이 돌아가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릴 정도로 방은 고요했다. 숨막히는 침묵은 길어졌고, 자연스레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어지는 생각에 꼬리를 물며 한숨도 쉬었다가, 울기도 했다가, 그러다 지쳐 짧은 조각잠에도 빠졌다.

자꾸 우울해지기만 하는 기분에 위안은 호르몬 때문에 기분이 가라앉을 수 있다던 의사의 말을 떠올렸다. 알파와 가까이만 있어도 훨씬 기분이 나아질 거라 덧붙인 말도 또렷이 기억하는 위안이었지만, 도저히 근경에게 이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야할지 답을 구하지 못했다. 이런 문제에 무지해 처신을 잘못한 제 잘못도 분명 있었지만, 적어도 근경이라면 몰랐을 리 없다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친 위안은 근경이 어쩐지 미워지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근경이 자신의 뱃속에 자리 잡은 생명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고, 그 막연함이 위안은 너무나도 무서웠다.


- 지우라고 하시면 어떡하지….


위안은 자신이 생각해낼 수 있는 수많은 근경의 반응 중 가장 최악의 선택지를 꼽아 혼자 중얼거렸다. 아이를 져버리는 일. 위안에게는 말도 안 되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부모에게 버림받는 것이 얼마나 큰 상처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위안은 설령 자신의 뱃속에 자리잡은 이 작은 생명이 아무것도 모른다 할지라도 절대 똑같은 짓만은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뉘엿뉘엿 지던 해가 완전히 저물고, 푸른 달이 떠오를 때 까지 자신이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위안은 서둘러 편의점으로 향했다. 손에 집히는 도시락과 작은 쿠키를 사서 방으로 돌아온 위안은 도시락 뚜껑을 열자마자 뒤집히는 속에 곧바로 화장실로 뛰쳐갔다. 먹은게 아무 것도 없으니 게워낼 것도 없었지만 좀처럼 속이 가라앉지 않아 한참동안 헛구역질을 한 위안은 화장실 문을 열고 나가기만 해도 풍겨져오는 도시락 냄새에 코를 틀어막고 겨우 쓰레기통에 도시락을 쳐박았다. 

같이 사온 쿠키는 그나마 조금 먹히는 듯 했지만 그 마저도 새모이 만큼이었다. 도저히 더 이상은 먹지 못할 것 같아 남은 쿠키를 탁자 구석으로 밀어둔 위안은 갑작스레 서러움이 복받쳐 찔끔 눈물을 흘리는데 벨소리가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한 위안은 치열한 고민 끝에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근경으로부터의 전화였다. 위안이 어떤 형태로든 근경의 뜻을 거스른 것은 처음이었다. 그 후로도 몇 번이고 울리던 벨소리를 애써 무시한 위안은 눈물로 뿌얘진 시야를 애써 밝히며 근경에게 짤막한 메시지를 보내고는 그대로 핸드폰 전원을 꺼버렸다.


[오늘까지만 친구네 집에서 자고 갈게요. 안녕히 주무세요.]


몇 번을 전화해도 받지 않던 위안에게서 온 메시지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근경은 곧바로 믿을만한 부하 조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위안의 행방을 파악하도록 했다. 근경이 위안의 소재를 보고받은 것은 다음날 이른 새벽이었다. 근경은 위안이 머무르고 있는 호텔 이름을 듣자마자 재빠르게 움직였고, 핸들을 쥔 손에는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개운치 않은 잠에서 깬 위안은 세수로 잠을 몰아내고 곧바로 어제 갔던 편의점으로 향했다. 아무 생각 없이 잡히는대로 골라 고생했던 지난 저녁을 떠올리며 위안은 조금 신중하게 자신의 아침식사를 골랐다. 심사숙고 끝에 작은 캔에 든 인스턴트 죽을 골라 계산하고는 따듯하게 데워 방으로 돌아온 위안은 과연 이번에는 자신이 먹을 수 있을지 한껏 걱정하며 조심스레 뚜껑을 열었다. 냄새를 맡지 않으면 그나마 조금 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숨을 참던 위안의 노력은 별 소용이 없는 듯 했다. 뚜껑을 열자마자 곧장 올라오는 헛구역질에 위안은 화장실로 뛰어갈 수 밖에 없었다. 

텁텁해진 입안을 물로 헹궈낸 위안이 한껏 찌푸린 얼굴로 나왔을 때, 딩동- 하는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찾아올 사람이 있을리 없었으니 초인종 소리에 한껏 의아해하던 위안은 아직까지도 울렁거리는 속을 달래려는 듯 가슴부터 배까지 쓸어내리며 문에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


- 누구세요?

- 아가, 문 열어.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근경의 목소리에 위안은 그대로 얼어버렸다. 사고가 정지돼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어진 위안의 몸이 조금씩 떨려오기 시작했다. 위안이 무의식중에 자신의 아랫배를 감싸 안았을 때, 근경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 귀찮게 직원을 부르고 싶지는 않구나. 얼른 열어, 아가.


근경의 말에 위안이 잠에서 갑자기 깬 사람처럼 몸을 흠칫 떨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발을 동동거리던 위안이 결국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열자, 그 어느 때보다 굳은 표정의 근경이 위안을 마주했다. 근경은 별 말없이 뚜벅뚜벅 방으로 들어와 의자에 느긋하게 걸터 앉으며 말했다.


- 여기가 친구 집이니?

- 그, 그게 아니라….

- 다른건 다 돼도 거짓말은 안된다고 분명히 말하지 않았니.

- 죄송해요. 

- 이리 오렴.


근경의 부름에 위안이 쭈뼛거리며 다가갔다. 위안을 제 무릎에 앉히는 근경의 손길은 평소와 전혀 다를 바 없었지만, 위안은 자신을 향한 근경의 눈빛에서 왠지 모를 냉기가 느껴져 몸을 떨었다.  


- 내가 걱정할거라는 생각은 안 들었니?


근경의 물음에 위안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저 슬픈 표정으로 아랫입술을 꾹 깨무는 위안의 모습에 근경은 위안을 당겨 안아 토닥거렸다. 위안은 근경의 품에 안기자 그 어느 때보다 안락함을 느꼈다. 수많은 걱정은 뒤로하고 오롯이 근경에게 기대어 있던 위안은 근경이 목덜미를 지분거려오자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 안돼요! 


안정기에 들어설 때까지 관계는 절대 안된다고 강조하던 의사의 말이 퍼뜩 떠오른 위안은 마치 스프링이 튕겨나오듯 근경의 품에서 떨어졌다. 역시나 평소와 다른 위안의 모습에 근경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얼마나 놀랐는지 눈이 동그랗게 커진 위안의 모습이 꽤나 귀여워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팔을 엑스자로 겹쳐 제 가슴팍을 가리고 있는 위안의 모습에 입가에서 미소를 거두지 못하던 근경의 눈에 탁자에 놓인 작은 캔 하나가 들어왔다. 몸이 성치 않은 위안이 고작 이런 것으로 아침을 해결하는 것이 못마땅해진 근경은 별 생각 없이 뚜껑을 열었고, 그를 지켜보던 위안이 다급하게 말했다.


- 아니, 열면 안…!


이미 식을대로 식은 죽에서는 별로 그렇다할 냄새도 나지 않았지만, 위안은 곧장 입을 틀어막으며 급하게 화장실로 향했다. 위안의 갑작스런 행동에 놀란 근경은 곧장 위안을 따라 들어와 위안의 등을 아프지 않게 두들겼고, 위안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속에 힘들면서도 목소리를 쥐어짜내 말했다.


- 나 괜찮으니까…. 아빠 나가요.

- 괜찮기는. 얼른 병원을,

- 얼른 나가요. 아빠한테… 이런거 보여주기 싫단말이야아-.


이런 흉한 모습까지는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위안의 마음을 알 리 없는 근경은 고집스레 버티다가 위안이 결국 울먹거리며 자신을 흘겨보는 지경에까지 이르자 할 수 없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위안이 걱정돼 좁은 방을 답지 않게 종종걸음으로 서성이던 근경은 이윽고 화장실 문이 열리자 득달같이 위안에게 다가갔다. 


- 괜찮니?

- 내가 나가라고 했는데… 아빠 내 부탁도 안들어주고…. 


위안은 근경을 보자마자 왠지 모르게 그가 너무 미워져 입술을 삐죽이며 울음을 터뜨렸다. 너무 서럽게 엉엉 소리를 내며 우는 위안에 놀란 근경은 서둘러 위안을 품에 안아 달랬지만, 위안은 그런 근경을 밀어내며 소리 높여 말했다.


-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빠 진짜 미워어….

- 아가, 무슨 일인지 얘기를 해야지. 그만 울고. 응?


답답하다는 듯한 근경의 표정에 위안은 더 서러워져 홧김에 바지 주머니에 꼬깃꼬깃 넣어놨던 초음파 사진을 꺼내들고는 주먹을 쥐어 근경의 가슴팍을 수도 없이 때렸다. 위안 딴에는 분을 풀기 위한 행동이었다지만, 작디작은 주먹이 콩콩 두드리는 듯한 미약한 타격감에 근경은 위안의 손을 잡아 멈출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도통 울음을 멈추지 못해 히끅거리면서도 위안은 조각난 말들을 힘겹게 뱉어냈다. 


- 아빠가, 싫다고 하면…. 나 혼자 키울게요. 나중에라도, 절대 아빠 귀찮게 안할게요. 그러니까….   


온통 울음이 섞여 알아듣기 힘든 위안의 말을 이해하려 집중하고 있던 근경의 얼굴에 점차 놀라움이 번졌고 이내 위안의 손에 들려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을 때 근경은 위안을 품안 가득, 아주 꽉 끌어안았다. 아직 진정이 되지 않은 위안은 자신을 안아오는 근경을 밀어내려 버둥거렸지만, 근경이 고작 그 움직임에 밀릴 리 없었다. 위안의 동그란 머리통과 가느다란 어깨, 매끈한 등을 끝없이 쓸어내리며 귓가에 위안을 달래는 말을 쏟아내던 근경은 위안이 버둥거리던 것을 멈추고 울음을 그치자 그 어느 때보다 따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 몸은 괜찮니?

- 안 괜찮아요. 아프고 힘들어. 아빠 진짜 나빴어어….

- 얼마나 됐는지 알고 있니?


근경의 물음이 정확히 무엇을 묻는지 몰라 위안이 대답 없이 가만히 안겨있자 근경은 다시 말했다.


- 아이가 언제쯤 태어나는지 말이야.

- 돌아오는 겨울….

- 이번 겨울은 좀 따듯했으면 좋겠구나.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근경이 물어오기에 대답한 위안은 근경의 대답에서 무언의 허락을 느끼고는 근경에게서 떨어져 그를 바라봤다. 위안은 너무 울어 벌겋게 익은 얼굴로 훌쩍거리며 물었다.


- 낳아도 돼요?

- 당연한걸 묻는구나.


대답과 동시에 다시 위안을 품에 안은 근경은 그대로 조금 더 위안을 안고 있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이 나이에 어린 부인을 얻으면서 식을 올리기에는 내가 좀 민망하구나. 부생이랑 같이 근사한 저녁식사 하는걸로 대신해도 되겠니?

- 아무거나 다 상관 없는데… 부생이 형한테 말 안하면 안돼요?

- 배가 불러오면 어차피 알게 될거야.

- 그래도…. 창피하단 말이에요. 


위안의 말에 작게 웃음을 터뜨린 근경은 위안을 조금 더 힘주어 안으며 말했다.


- 그럼 조금 천천히 얘기하도록 하자.


울음을 멈춘 위안이 완전히 진정될 때까지 근경은 침대에 위안을 안고 누워 어르고 달랬지만, 근경의 어깨를 베고 누운 위안은 여전히 조금 뾰로통한 얼굴로 물었다.


- 아빠. 근데 나한테 왜 그랬어요?

- 뭘 말이니?

- 이거 말이에요 이거!


위안이 자신의 배를 통통 치면서 묻자 근경이 웃음을 터뜨렸다. 자신은 진지한데 자꾸 장난으로 치부하는 근경의 모습에 골이 난 위안이 표정을 찌푸렸지만, 근경은 그런 위안이 그저 귀여울 뿐이었다. 천장을 보고 똑바로 누워있던 근경은 고개를 돌려 제 곁의 위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 글쎄…. 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단다.

- 거짓말! 아빠만 거짓말 싫어하는거 아니거든요? 나도 싫어요!


결국 위안이 제 분을 이기지 못해 근경의 가슴팍을 내리쳤다. 여전히 타격감이라고는 티끌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손길에 근경은 위안의 미간에 패인 주름을 손으로 쓸어 펴주며 말했다.


- 일일이 설명하기엔 복잡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알아두렴. 넌 나한테 아들이 아니야 아가. 다시 만난 후로 단 한 번도 그랬던 적이 없었단다. 


근경은 위안과 다시 만났던 날을 떠올렸다. 산전수전을 겪어내고 조직 전체를 움직이는 위치에 오르고 난 후로 모든 사람들은 근경을 무서워하기만 했다. 모두가 근경을 떠받들었지만, 그럴수록 맘 속 깊은 곳에 있던 고독감은 더 깊이 뿌리를 내릴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위안을 다시 만났다. 무려 10년 만에 다시 만난 자신에게 반갑게 안겨오며 보여주었던 해맑은 미소를 근경은 그 날 이후로 단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다. 스스럼없이 자신을 대하는 누군가가 아직까지 있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낯설기까지 해 적응하는데 적잖은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함께 지내면서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위안이 눈치챘다는 걸 알았을 때 근경은 곧 위안이 떠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위안은 근경의 곁을 지켰고, 그런 위안에게서 근경이 받은 위로감은 감히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다. 

오갈 데 없어진 처지가 된 위안이 어쩔 수 없이 남았다고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누군가 제 곁에 남았다는 그 사실만이 중요했고, 되도록 그 사람이 자신의 곁에 오래 남아있으면 좋겠다고 여겼다. 위안의 임신은 근경 역시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그렇다고 전혀 의도치 않았냐 묻는다면, 일말의 가능성이 있음을 알면서도 위안의 안에 집요하게 흔적을 남겼던 근경이었기에 결백하게 그렇노라 대답은 할 수 없었다. 어떤 의도였건, 결과적으로는 위안을 좀 더 곁에 둘 수 있다는 만족감이 차올라 아주 잠시 공상에 빠져있던 근경에게 위안이 말했다.


- 그럼 처음부터 말해줬어야죠! 아빠 진짜 나빴어…. 내가 아빠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데!

- 처음부터 말했으면 네가 날 이렇게까지 따르지는 않았을 것 같구나.


태연한 근경의 말에 위안의 입이 쩍 벌어졌다. 우스꽝스러운 위안의 표정에 다시 한 번 웃음을 터뜨린 근경은 아래로 쭉 떨어진 위안의 턱을 올려 입을 다물게 하고는 아주 깊은 입맞춤을 퍼부었다. 



***



소란스런 우여곡절 끝에 집으로 돌아온 위안은 주말 내내 근경에게 조금 더 늦게 말했어도 좋았겠다는 후회에 휩싸였다. 손 하나 까딱 못하게 하는 근경 때문에 위안은 책을 읽으며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에도 근경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여태까지 살며 받았어야 할 호강을 주말 이틀 동안 몰아 받는 듯한 느낌에 위안은 어쩐지 조금 버거웠다. 감당키 어려운 근경의 과보호에 나름 힘겨운 주말을 보낸 위안은 당장 휴학하라며 재촉하는 근경을 뒤로하고 도망치듯 빠져나와 학교로 향했다. 근경은 위안의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전화를 걸어왔고, 위안은 거의 울상이 되어 전화를 받았다. 


- 네, 아빠.

- 수업 끝났니?

- 네. 

- 데리러 가고 싶은데 바빠서 갈 수가 없구나. 대신 차 보냈으니 타고 오렴.

- 아니에요. 저 병원 가야돼요.

- 어디 아프니?


병원이라는 말에 근경의 목소리가 단박에 심각하게 바뀌었다. 근경의 걱정을 곧장 눈치챈 위안은 그런 근경을 달래듯 서둘러 말했다.


- 아니에요. 의사 선생님이 이번 주에 다시 오라고 해서…. 그냥 잘 크고 있나 확인하는거랬어요.

- 기다리렴. 내가 가마.

- 저 혼자 가도 돼요. 아빠 바쁘다면서요. 아빠? 여보세요? 아빠!


위안의 만류에도 기어이 학교까지 온 근경은 조금 설레는 마음으로 병원을 향해 차를 몰았다. 아직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자신의 아이가 주는 설렘은 오랜만에 느껴봐도 언제나 새로웠다. 아이의 심장소리를 처음 들은 위안은 신기함에 작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초음파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위안이 잠깐 시선을 돌렸을 때,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숨기지 못하는 근경을 본 위안은 두 볼을 발갛게 물들이며 예쁘게 웃어보였다. 

위안을 입양했던 순간부터 위안이 알파로 발현하길 바랬던 양부모 아래서 자란 위안은 늘 오메가였던 자신이 싫었다. 자신이 알파였다면 부모님이 자신을 조금이라도 더 예뻐해주지 않았을까 하는 짙은 아쉬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순간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만족스러웠고 뿌듯했다. 위안에게도, 근경에게도 참 행복한 날이었다. 



***



입덧 때문에 내내 고생하며 근경의 마음을 새까맣게 태웠던 위안은 3개월 반을 넘기자 조금씩 식욕을 되찾았다. 요즘 들어 하루에도 몇 번씩 망고주스를 찾아대는 위안은 근경이 사준 망고주스에 야무지게 빨대를 꽂아 쪽 빨아들였다. 근경은 조수석에 앉아 맛있게 주스를 마시던 위안에게 말했다.


- 아가, 아르바이트는 제발 그만 하면 안되겠니?


위안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카페에 데려다 줄 때마다 똑같은 말을 지겹게도 해대는 근경이었다. 하루에 열댓번씩 휴학하라며 위안을 들들 볶던 근경은 위안이 학기를 마치고 방학을 맞은 이후부터는 아르바이트 문제로 위안을 귀찮게 했다. 분명 배가 불러오기 전까지는 계속 하게 해주겠다던 약속과는 다른 근경의 말에 위안은 아직 판판한 배를 쓰다듬으며 속상하다는 듯 말했다.


- 아가야. 아빠가 자꾸 너랑 나랑 집에만 있으래. 응? 뭐라구? 그럼 심심해서 죽을거같다구? 


위안은 제 뱃속의 아이와 이야기 하듯 능청스레 떠들고는 눈을 예쁘게 깜빡거리며 근경을 바라보고는 말했다.


- 그렇다는데요? 우리 아가 죽으면 어떻게 해요….

- 후우…. 내가 널 어떻게 이기겠니. 조심해서 다녀오렴. 혹시나 손등에 연꽃….

- 연꽃무늬 문신 있는 사람들 보면 바로 전화 할게요. 아빠, 나 바보 아니에요. 그 얘기 몇 번만 더 들으면 진짜 백 번 채울거 같아요. 갈게요!


임신한 이후로 근경과의 관계에서 어쩐지 우위를 차지한 듯한 위안이었다. 위안은 활짝 웃으며 근경의 볼에 쪽- 입맞추고는 차에서 내려 신나는 발걸음으로 나풀나풀 뛰었다. 요즘 들어 눈에 띄게 몸집을 키운 상대 조직의 끊임없는 도발에 평소보다 예민해진 근경은 위안이 카페에 무사히 들어갈 때까지 걱정스런 눈빛으로 지켜봤다. 

유니폼을 갈아입고 나온 위안은 당장 치워야할 테이블이 없는지 가게를 쭉 훑다가 요즘 들어 얼굴을 익힌 단골손님과 눈이 마주치자 가볍게 고개숙여 인사를 건넸다. 늘 맨 구석자리에 앉는 남자는 위안이 교대하기 전부터 와있었고, 거의 마감시간이 다 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매일같이 적어도 반나절씩은 앉아있었으니 얼굴을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어지럽혀진 서비스바를 정리하던 위안은 단골손님이 다가오자 곧장 고개를 들어 밝게 웃어보이고는 기다렸다는 듯 컵을 받아들며 말했다.


- 저 주세요! 제가 할게요.

- 매번 죄송해요. 손이 이래서….

- 괜찮아요. 깁스 꽤 오래 하신거같은데 언제 푼대요?

- 그러게요. 답답해 죽겠어요.


남자의 오른손을 감싸고 있는 두꺼운 석고붕대 아래로 무엇이 숨겨진지 알 리 없는 위안은 불편해보이는 남자를 진심으로 안타까워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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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근경씨 위안이 임신한거 알고 좀 져주는거 보니 최소한의 양심은 있...는거 같긴 한데
그깟 양심 좀 없으면 어때 그래도 왕감자는 맛있다 냠냠




근경위안 룡백 진혼
2019.05.06 13:5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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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다ㅜㅜㅜㅜㅜㅜㅜㅜ센세가 오셨어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Code: 113e]
2019.05.06 13:5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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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속앓이하고 우는 위안이 보다가 근경씨 확 나타나서 감싸주니까 안심이 된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위안이 커엽고 이쁘기만한데 근경씨도 걱정할듯ㅠㅠㅠㅠㅠㅠ같이 병원갔을때 표정관리 안되는거 존좋ㅠㅠㅠㅠ저 단골손님이라는놈 쌔한데 위안이한테 뭔일 생길것같다ㅠㅠㅠㅠㅠㅠㅠㅠ센세 어나더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113e]
2019.05.06 13:5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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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억허억ㅜㅜ센세다 센세ㅜㅜ선개추갑니다ㅜㅜㅜㅜㅜ나붕은 감격사ㅜㅜ
[Code: c46b]
2019.05.06 14:5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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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경씨가 복흑일거라는 오명을 벗었다ㅋㅋㅋ위안이 사랑을 듬뿍받아서 더욱더 사랑스러워졌어ㅜㅜ연꽃타투 기억해두겠다ㅜㅜ위안이 괴롭히면 정의의 이름으로 용서치 않을거다 크아아아ㅜㅜㅜㅜㅜ센세는 사랑 나붕의 빛나는 태양 빛과 소금입니다ㅜㅜㅜㅜㅜㅜㅜㅜ
[Code: 313a]
2019.05.06 14:0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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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고붕대 밑에 먼데요 센세 ㅠㅠㅠㅠㅠㅠ불안해ㅜㅜㅜㅜㅜㅜㅜㅠㅠㅜㅠ 그나저나 오늘도 개존잼이네요 센세의 존잼컨시에 감격하고갑니다
[Code: 4644]
2019.05.06 14:0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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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센세ㅠㅠㅠㅠ근경이 잘보살펴줘서 좋은데 붕대가ㅠㅠㅠㅠㅠㅠ어나더ㅠ
[Code: 9016]
2019.05.06 14:1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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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이 제대로 삽질 할 틈도 안주는 노양심 벤츠남 근경씨!
의외의 상식인 부생이라면 자기 아버지 멱살잡을 것 같닼ㅋㅋㅋㅋㅋ
[Code: 20eb]
2019.05.06 14:1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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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대밑에연꽃이냐ㅜㅜㅜㅜ우리위안이행복해져야하는데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Code: 21b2]
2019.05.06 15:0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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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깁스 뭐야ㅠㅠㅜㅠㅠㅠㅜㅠ 근경위안 달달하게 잘 지내고 있는데ㅠㅜㅠㅜㅠㅜㅠ 센세 어나더!!!
[Code: 2133]
2019.05.06 15:3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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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가 여기서 자르면 붕붕이들이 미칠까요 안미칠까요ㅠㅠㅠㅠㅠㅠㅠ
[Code: 82ba]
2019.05.06 15:3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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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이에 어린 부인을 얻으면서....이 나이에 어린 부인을 얻으면서....넌 나한테 아들이 아니야 아가...넌 나한테 아들이 아니야 아가. ...아 근경씨 ㅋㅋㅋㅋㅋㅋ크흡 부생이한테는 언제? ㅋㅋㅋㅋㅋㅋ
[Code: cfc0]
2019.05.06 16:0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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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위안이 혼자 끙끙 앓는 거 보면서 가슴이 찢어질 거 같다가 근경이가 알고 둘이 꽁냥거릴때는 또 광대가 터질 거 같고 넘 좋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한번도 아들로 본 적이 없다니 근경씨 그런 건 미리미리 말해조야조......아니 근데 석고붕대 무슨일이야...우리 위안이 건들지말아라.............
[Code: 1581]
2019.05.06 17:0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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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고붕대 불안타 ㅠㅠ
[Code: 5c9b]
2019.05.06 17:41
ㅇㅇ
석고붕대 밑에 연꽃인건가ㅜㅜㅜㅜㅜㅜㅜㅜㅜ불안하다 불안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42d2]
2019.05.06 18:0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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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붕들 전부 석고붕대남이 근경씨가 보냈을거라고는 한치의 의심도 않고있어ㅋㅋㅋㅋㅋ
[Code: f82e]
2019.05.06 18:0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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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어디 편인거냐 진짜ㄷㄷㄷㄷㄷㄷㄷ
[Code: f82e]
2019.05.06 23:1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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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진짜 근경씨라면 카페 씨씨티비라도 해킹해서 보고있을거 같은데 ㄷㄷ 아기 다치지않게 해주세오 ㅠㅠㅠㅠㅠ
[Code: 2b7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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