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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호숫가엔 깃털을 불린 오리들이 모여있었다. 커다란 담요 뭉치는 팔만 슬쩍 뻗어 오리들에게 밥을 주고 있었다. 로버트였다. 피네건은 상체를 뒤로 쭉 뻗어 두 팔로 땅을 짚고 몸을 고정했다. 근육으로 빼곡한 두 다리는 아무렇게나 널부러뜨렸다. 피네건은 로버트를 바라보았다. 로버트가 던진 빵조각은 포물선을 그리고 날았다가, 플라타너스 낙엽이 겹겹 쌓인 지상과 물의 경계로 떨어졌다. 그러면 오리는 종종거리며 빵조각을 쫒았다. 그러면 피네건은 버터가 가득 든 소프트롤을 똑 떼어다 로버트에게 내밀었다.



“동물 친구들만 챙기지 말고 후배도 좀 챙기세요. 형.”



로버트는 난감하게 피네건이 내민 빵을 내려다보았다. 이걸 받아서 다시 입 안에 넣어달라는건가? 로버트는 눈을 가늘게 뜨고 피네건을 흘겨봤다. “먹여달라고요? 후배님도 손 있으시잖아요.” 로버트는 가증스러움을 가득 담아 피네건을 바라보았다. 그 표정 근육의 움직임에 안경이 조금 흘러내렸다. 피네건은 어깨를 으쓱였다.



“누가 먹여달래요? 쟤들만 주지말고 형도 먹으라고요. 난 관심이면 돼요. 딱 형때문에 깨진 머그 값만큼만 주면 좋겠어요.”



아 그 머그! 로버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저를 잡으려 피네건이 길바닥에 내던진 그 머그. 피스가 그려진 그 머그는 무게로 보나 크기로 보나 꽤나 비싼 물건이었을테다. 로버트는 입술을 말아물었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성정이 양심통에 괴로움을 호소했다. 피네건은 고개를 떨구고 바들바들 떠는 로버트의 머리꼭지를 가만 보았다. 피네건은 소리없이 웃었다. 한 살 많은 이 형은 가끔 나이를 잊고 귀엽게 구는 경향이 있었다. 피네건은 버터롤을 한입 크게 베어물었다. 로버트는 빵을 씹는 작은 소리에 눈을 뜨고 피네건을 보았다. 아! 나 먹으라고 해놓곤. 황당함에 입을 아 벌리는데 피네건은 마치 골대에 공을 넣듯 남은 버터롤 반쪽을 로버트의 입 안에 쏘옥 넣었다.



“머하믄거아!”



입이 작은 로버트가 다 뭉게진 발음으로 말했다. 피네건은 이번엔 크게 웃었다. 볕이 따스한 가을 오후가 지나가고 있었다. 하늘을 비춘 호수는 잔잔하고 새파랬다. 로버트가 오리에게 밥을 던지면 피네건은 그만큼 로버트의 입 안에 간식을 넣어주었다. 로버트는 매번 자기 입에 새 간식이 들어올 때마다 질리지도 않고 화들짝 놀랐다. 그렇게 '오리-로버트-화들짝' 프로세스를 한참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해는 뉘엿 뉘엿 지고 있었다. 느긋하게 허리를 뒤로 젖히고 있던 피네건이 앓는 소리를 내며 허리를 똑바로 했다.



“집에 데려다 줘요?”


“집에? 왜요?”



로버트는 의아한 얼굴로 피네건을 올려다 보았다. 두 가지 의미였다. 왜 갑자기 집에 가자고 하느냐는 의미와 네가 굳이 날 왜 집에 데려다 주냐는 의미를 담은 중의적 메시지였다. 로버트 너머 먼 곳에 시선을 두었던 피네건이 시선을 거두곤, 로버트를 똑바로 보았다.



“오늘 학과 모임 있잖아요.”


“네?”


“술자리요. 형 지금 안들어가면 다른 형들한테 걸려서 끌려갈걸요?”



피네건은 눈짓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플라타너스 나무 너머로 시끄러운 무리가 지나가고 있었다. 로버트도 익히 아는 무리였다. 로버트보다 한 학번 위지만 복학을 해서 학년이 같은 복학생 무리였다. 시끄럽고, 사고치길 즐기며, 술 먹기가 인생 유일의 목적이요 생활인 이들이었다. 좌우간 껄끄러운 사람들이었다. 더구나 저들 중 한명은 지난 학기 로버트와 전공 수업에서 조별과제를 했던 선배였다. 그 선배는 음주에 빠진채 소심한 로버트에게 과제를 떠넘기려다 로버트가 학기말 과제에 이름을 빼버리는 바람에 사이가 불편해졌다. 로버트는 그 사건 이후로 원래도 거북하던 학과 모임에 아예 발길을 끊었다. 학점으로 평가되는 수업에선 로버트가 주류였지만, 술판에서는 그들이 주류였으므로. 로버트는 부러 범 아가리로 들어갈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로버트는 자라처럼 목을 움츠렸다. 피네건은 움츠러든 로버트를 가만히 보았다. 그리고 몸을 틀어 교묘하게 로버트를 가렸다. 벙벙한 셔츠를 입은 근육질 몸은 절묘하게 담요 뭉치를 가렸다. 물론 그렇다고 화려한 패턴의 옷까지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감출수는 없었다. 멀리서도 그 시대착오적인 페이즐리 패턴을 발견한 시끄러운 무리들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그들은 피네건에게 반가움을 숨기지 않았다. 피네건은 소위 말하는 인싸였다. 그렇고 그런 인성의 선배라고 할지라도 일단은 두루두루 친하게 지냈다. 그러니 그 불량한 무리들도 피네건을 보고 반가워했다. 플라타너스 잎이 엉망으로 밟히는 소리가 났다. 로버트는 그들이 마치 숲을 망가뜨리는 밀렵꾼처럼 느껴졌다.



“야! 피네건! 너 오늘 오냐?”


“예, 형님!”



피네건은 넋살좋게 손을 흔들며 대답했다. 피네건이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담요를 끌어올려 로버트의 얼굴을 덮었다. 베이지색 와플 뜨개 짜임이 로버트의 시야에 가득 찼다. 무리 중 한 명, 그러니까 로버트와 사건이 있었던 선배B는 피네건 너머 담요 더미를 슬쩍 보았다. 로버트는 시선이 느껴져 바짝 움츠렸다.



“저건 뭐냐?”


“우리 과 애인거 아냐?”


“야, 선배 보고 인사 안하냐?”



주머니에 손을 꽂고 삐딱하게 선 이들이 툭툭 담요뭉치에 말을 걸었다. 로버트는 난감했다. 학년은 같아도 선배였다. 이대로 숨으면 후배인 피네건이 곤란해질 것이 분명했다. 로버트는 눈을 딱 감고 인사를 하려했다. 그러나 피네건이 한발 더 빨랐다.



“그냥 같이 교양 듣는 사람이에요.”


“아, 교양?”



그 말을 적당히 다른 과 사람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인 선배 무리는 순순히 담요 근처에서 물러났다. 피네건은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형들은 축구하고 오는 길이세요?”


“어어, 너 안왔더라.”


“교양 듣느라고요. 다음엔 갈게요. 저 공강인 날에 좀 빼주십쇼.”


“오케 오케.”



담요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발끝 뿐이었지만, 대화를 듣는 것 만으로도 로버트는 쉽게 담요 바깥 상황을 상상할 수 있었다. 당연히 예상한 일이지만 특이하고 개성 강한 피네건은 로버트 뿐만아니라 모두와 두루두루 잘 어울렸다. 튀는 구석 없이 평범한 로버트보다 더 쉽게 사람들에게 스며들었다. 로버트는 어쩐지 스스로가 굉장히 겉도는 사회 부적응자같이 느껴졌고, 또 소외감을 느꼈다. 아무 말도 못하고 숨어있는 스스로가 찐따처럼 느껴졌다. 피네건은 싫은 기색 없이 그 불량한 무리들과 능숙하게 대화했다. 사실 얜 아무한테나 다 이렇게 친근하게 구는게 아닐까? 나도 그냥 저런 애들과 마찬가지로 피네건의 두루두루 그럭저럭 인간관계 범주의 한 사람이 아닐까? 담요가 만든 암실 속으로 로버트는 한없이 가라앉았다.



“어? 저거 로버트 플로이드 아니냐?”


“뭐? 플로이드?”


“이거 그새끼 가방 아니냐고, 와 시발 이걸 아직도 들고 다니네?”




내가 아주 이 가방만 보면 지금도 치가 떨린다. 치가 떨려! B선배는 아예 담요 안에 둘둘 쌓인 것이 로버트라고 확신한 모양이었다. 고작 가방 하나로 그는 건수를 잡은 것처럼 굴었다. 흙발로 로버트의 메일백을 툭툭 찬 그는 험악한 말로 로버트를 부르기 시작했다. 피네건은 말이 없었다. 로버트는 이번에야말로 숨길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담요를 거두고 자수하는 편이 피네건에게 낫지않을까? 로버트는 입술을 꾹 말아물었다. 그때 우악스러운 B선배의 손길에 와플담요가 뒤집어 까졌다. 로버트는 코 끝에 안경을 걸친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러 쌍의 곱지않은 시선이 로버트에게 쏟아졌다. 로버트는 약간의 공황과 심한 수치를 느꼈다. 그러나 승냥이 떼 같은 선배들의 시선은 일제히 피네건에게 향했다.



“야 너 뭐냐?”


“교양 같이 듣는 사람이라며. 로버트 플로이드잖아. 너 우리한테 거짓말 치냐?”




아, 그들에겐 원래부터 눈엣가시였던 로버트보다는, 로버트를 숨기고 얼버무린 피네건이 훨씬 괘씸하다는듯 굴었다. 아무래도 피네건이 제일 후배이기도 했고, 그들의 요상한 서열의식 체계에서는 피네건이 훨씬 더 큰 괘씸죄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로버트는 몸이 굳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다급하게 눈을 굴려 피네건의 얼굴을 살폈다. 애써 로버트를 감춰준게 무색한 일이 되었다. 이런 도박을 하는 후배를 두고 자신은 사회성을 운운하며 값싼 열등감이나 느꼈다. 로버트는 이제 자괴감이 들기 시작했다. 뭐라도 해야해. 로버트는 허공에 손짓을 하며 입을 뻥긋거렸다. 그러나 피네건은 꼿꼿하게 서서 아주 뻔뻔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로버트형이 저희 과였어요?”




일순 플라타너스 숲엔 정적만 남았다. 정확히는 사람 소리는 없이 오리가 꽥꽥 우는 소리나 났다. 로버트는 입을 벌리고 피네건을 쳐다보았다. 선배들의 존재야 전부 우주 어딘가 쓰레기처럼 굴러가 버리고 오로지 피네건만 남았다. 왜, 왜, 모른척 해? 너 나 신입생 환영회에서 봤다며, 너 내 usb도 찾아줬잖아. 나는 몰라도 너는 안다며. 나는 기억 못해도 너는 기억한다며! 로버트는 서러웠다. 그것이 나름대로 피네건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둔 수임을 알면서도,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수 없었다.




“아 그러냐?”



퉁명스러운 선배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의외로 너무 쉽게 납득했다. 좀 전까지 로버트의 머리 속을 빼곡히 매운 오류 창 같던 서운함들이 한순간에 날아가버렸다. 대신 어째서? 라는 의문이 둥둥 떠다녔다.



“하여간 피네건 이새낀 진짜 아무하고나 친구먹는다니까?”


“통성명 정도는 하고 살아라 새끼야!”


“어휴 저새끼 유명하잖아 학장님하고 친구 먹는다고 설친거!”


“하긴 하고 다니는 거만 보면 쟤도 좀 교수같긴 해!”




선배들은 유쾌하게 웃으며, 한 명씩 피네건의 말에 확신이 될만한 근거들을 제 손으로 더하고 거들었다. 흡사 피네건이 자신들을 기만할리 없다고 믿고 싶은 것 같기도 했다. 로버트의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어쩌면 자신의 생각보다도 피네건은 그렇게 이상하지 않고 주변 신임을 사는 타입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까 머리 속을 가득 메우던 경고창들이 양을 불려 떠오르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해 어쩌면 정말 이상한건 피네건이 아니라 자신일지도 모른다고 로버트는 생각했다.



“야! 플로이드 오늘 올거지?”


“형들 오는데 와야지 그럼.”


“빼지 마라.”


“야! 피네건 그래도 저거 선배니까 잘 모셔와라.”


“네,네, 형님들 이따 뵙겠습니다.”




피네건은 느긋하게 선배들에게 인사를 했다. 까마귀 떼 같은 무리는 플라타너스 숲을 떠났다. 그 와중에 B는 로버트의 메일백을 실수인척 한 번 더 걷어찼다. 선배들이 보이지 않은 후에야 피네건은 말없이 로버트의 가방을 들어 올려 맨손으로 툭툭 흙을 털었다. “나아 참. 왜 신발 신고 돗자리 안으로 들어오는거야.” 피네건이 태평한 소리를 했다. 로버트는 맹하니 쪼그려 앉아서 피네건을 올려다 보았다. 가방을 턴 피네건은 쪼그려 앉은 로버트 앞에 털썩 앉아 가방을 어깨에 둘러주었다.




“어떡해요 형? 가야겠는데.”




로버트는 불퉁하게 볼을 부풀렸다. 제 눈을 보는 피네건의 녹안은 능글맞다. 그러나 그 아래 숨겨진 감정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익살맞은 콧수염 아래 숨겨진 입매엔 걱정이 어려있었다. 미워 너. 로버트의 안엔 이유없이 유치한 감정 따위가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몰라, 후배님 너 때문이잖아.”


“그러게 내 옷이 너무 눈에 띄었나보다.”




피네건이 미간을 찌푸려 웃긴 표정을 지었다. 머스크 향은 또 포근하고 난리였다. 로버트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지만, 굳이 말로 정리해 구체화하면 자신만 속 좁은 사람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철저히 모른체 하고 잊어버리려 애썼다. 물론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면 코끼리만 생각나듯, 치사하고 아니꼬운 속 좁은 짜증은 자꾸만 가슴 속에서 부글부글 끓었다.



***



술집든 로버트의 상상보다도 더 시끄러웠다. 로버트는 초저녁의 술자리가 거북했다. 크지않은 술집은 로버트의 과가 전부 전세를 냈는지 사람들로 가득했다. 로버트는 사람 없는 구석 낡은 소파 자리에서 터져서 솜이 삐져나온 소파를 대충 수선한 덕테이프 귀퉁이를 만지작대고 있었다. 덩그러니 1인용 테이블에 올려진 팝콘과 맥주 한잔이 애처로웠다. 로버트는 가게 중앙에 선 피네건을 곁눈질했다. 평범하고 무난한 성격의 후배부터 아까 그 밀렵꾼 같은 선배 무리까지 전부 그의 주변에 있었다. 국제무대에서 성공적으로 골을 넣은 선수라도 된 것처럼, 피네건은 이 대학 외향성 서열 중앙에서 군림하고 있었다. 로버트는 조금 힘빠진 얼굴로 피네건을 보았다. 분명 피네건은 술집까지는 같이 걸어왔다. 그러나 술 자리가 시작되자마자 로버트는 뒷전에 두고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이따금씩 먼거리에서 눈이라도 마주치면 구렁이 담넘듯이 자연스레 시선을 흘리고는 다른 사람들과 말을 섞었다. 오지 말라고 할때는 끈질기게 따라붙더니, 사람이 많아졌다고 냉담해진 피네건의 반응에 로버트는 일말의 배신감마저 느껴졌다. 기분나빠. 로버트는 미지근해져 송글송글 땀을 흘리기 시작한 맥주잔을 들었다. 묵직한 것이 마음에 들지않았다. 비워서 가볍게 만들고 싶었다. 로버트가 꿀꺽꿀꺽 맥주를 마셨다. 받지않는 술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그때 로버트의 앞에 시커먼 인영이 쓱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야, 재미있냐? 술도 찐따처럼 마시네”



B였다. 그는 여전히 로버트가 지난 학기 과제물에서 자기 이름을 뺀 일을 마음에 담고 있는 모양이었다. 로버트는 저도 모르게 거부감에 몸을 물리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자 B는 그것이 경멸이나 모멸의 표현이라고 느꼈는지 무어라 무어라 격앙되게 폭언을 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급하게 들이켠 맥주 덕분에 로버트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알아 들을 수 없었다. 돼지가 멱을 따는 것 같았다. 로버트는 대답없이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얼굴을 찌푸렸다. 기어이 제풀에 흥분을 이기지 못한 B가 벌떡 일어나 로버트의 멱살을 잡으려했다. 로버트는 테이블 너머로 제게 팔을 뻗는 B가 게임 속 몬스터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어떡하지? 피해야하는데.. 그러나 멍한 머리로는 아무 것도 할수없었다. 그때 로버트의 무릎이 차갑게 젖어들었다. 로버트는 그 감각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바지가 젖는 감각에 잠이 다 깼다. 로버트는 고개를 훽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피네건이 무표정한 얼굴로 로버트의 바지에 맥주를 쏟고 있었다. 로버트는 저와 눈을 맞추지않는 무표정한 피네건의 얼굴에 벙쪘다. 저런 아무 온도감도 감정도 없는 피네건의 얼굴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낯설었다. 로버트는 술기운과 더불어 그 무감한 얼굴에 이유모르게 상처받았다. 맥주 한잔을 고스란히 다 흘린 바지가 거의 다 젖었다. 입술을 말아무니 버튼이 눌린 것처럼 눈물이 솟았다. 남들이 보면 후배 피네건이 선배 로버트를 괴롭히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아무도 로버트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고, 단순한 B에게는 그게 피네건이 제 앙갚음을 대신 해준 것처럼 보였다.




“아 피네건 이 미친새끼!”




B는 깔깔대며 피네건의 어깨를 팡팡 치면서 존나 웃긴 새끼! 골때리는 새끼라며 치켜세워주었다. 그 와중에 제 딴에는 비꼰답시고 큼큼대며 너는 아무리 그래도 풀로이드가 선배인데 임마! 하고 꼰대인척꺼지 화룡점정까지 찍었다. 피네건은 조금 유들한 얼굴로 “아 죄송함다. 선배님.” 하고 설렁설렁 인사를 했다. B는 만족스러워져서 자리를 떠났다. 피네건은 멀리 인파속으로 사라지는 B를 확인하자마자 로버트 앞에 무릎을 꿇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냅킨을 한주먹 꺼내 로버트의 바지를 눌렀다.




“형 우리 나가요.”



걱정하는 얼굴. 그런 얼굴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로버트는 기어이 후두둑 눈물을 쏟았다. 피네건은 로버트의 말끔한 뒷목을 쓸었다. "내가 미친놈이에요 형. 잘못했어요 형." 피네건은 그 설렁한 말투로 로버트를 달래고는 손목을 잡고 술집을 나섰다. 로버트는 제 팔뚝에 얼굴을 묻고 피네건의 손에 이끌려 나갔다.




***




이제 로버트는 대놓고 질질 울고 있었다. 술집에서 조금 떨어진 골목 가로등 아래, 피네건은 무릎꿇고 앉아 밥의 바지를 닦고 있었다. 로버트는 술기운에 비틀대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훌쩍대고 있었다. 피네건은 왜 우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 대신 로버트의 손 한 쪽을 잡아다 제 어깨에 놓았다. 비틀거리지 말고 잡고 기대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 말없는 다정함에 로버트는 더 서럽게 울었다.



“야아.”


“네 형.”



피네건은 꼬박꼬박 대답은 잘했다. 로버트는 우는 와중에도 얄미워 입술을 비틀었다.



“왜, 왜 아까 호수에서 나 모르는척 했어? 너 내가 너랑 같은 과인거 나보다 먼저 알았잖아.”


“그냥.. 안그러면 형들이 형한테 뭐라고 할거 같아서요.”




당연한 얘기였다. 그리고 그 정도는 로버트도 알고 있었다. 로버트는 괜히 피네건의 어깨를 꼬집었다. 피네건은 아픈 티 하나 내지 않았다.




“그럼...술집에서는 왜 모른척 했어? 맨날.. 맨날 교양관에선 그렇게 쫒아다녔으면서...”




울음기에 숨이찬 로버트의 목소리에 피네건이 무릎을 꿇은채로 고개를 들었다. 가로등에 비친 녹안은 언뜻 금빛으로 보였다. 로버트는 힉 하고 숨을 삼켰다. 피네건은 로버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한동안 말없이 로버트의 눈물젖은 푸른 눈만 바라보았다



“내가 아는척 하면 선배는 부담스럽잖아.”



피네건은 다시 시선을 내려 로버트의 바지를 닦는데 집중했다. 로버트는 붕어처럼 입울 뻐꿈거렸다. 하긴 언제나 밀어내는 것운 자신이었다. 만일 사람 많은, 그것도 대부분 아는 얼굴인 학과 사람들 앞에서 피네건이 평소처럼 치댔다 한들 자신은 그것을 반기며 피네건에게 사근하게 굴었을까? 아무리 자문자답을 해도 답은 ‘아니다.’였다. 그럴걸 스스로 알면서도 로버트는 말도안되는 억지를 쓰며 후배에게 투정이나 부리고 있었다. 당장 오늘 낮에만 해도 피네건에게서 도망치던 자신이었다. 무슨 낯짝으로 뻔뻔하게 구는지. 로버트는 얼굴을 붉혔다. 로버트는 피네건의 어깨에서 조심스레 손을 뗐다. 이럴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다시금 고개를 든 피네건이 씨익 웃으며 로버트의 손을 당겨 다시 어깨에 올려놓았다.




“근데 이제 또 둘만 남았으니까, 실컷 아는척 하는거죠 뭐.”




피네건은 벌써 한뭉텅이 냅킨을 다 쓰고도 마르지않는 바지를 툭툭 털었다. 아, 맥주를 너무 많이 부었나봐요. 피네건이 능청스레 말하고 천천히 일어났다. 두 사람의 눈높이가 비로서 맞았다. 피네건이 웃었다.




“업어줄게요. 집까지.”





***






피네건의 등은 거짓말처럼 따뜻했다. 그렇게 얇은 셔츠를 입고도 피네건의 체온은 항상 로버트보다 뜨거웠다. 단단한 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얄팍한 옷을 쉽게 뚫고, 로버트의 손으로 뺨으로 가슴으로 닿았다. 로버트는 어쩐지 울 것 같았다. 자신은 항상 피네건을 밀어냈다. 도망치고 매몰차게 거부했다. 심지어 그 모든 것을 너무도 쉽게 행했다. 남에게 말을 붙이는 일이 쉽지않은 걸 아는 자신이 타인의 붙임성엔 쉬이 거절을 놓고 있었다. 조금만 기온이 내리면 쉽게 추위에 몸을 떨면서, 주변 공기가 조금만 달라져도 예민하게 신경을 곤두세우는 주제에. 자신은 쉽게도 피네건을 밀어냈다. 로버트는 덜컥 자신 곁에 없는 피네건을 떠올렸다. 거짓말처럼 어느 날부터 쫒아다니지 않는다면? 밀어내는 자신에게 그런 일 없었던 것처럼 달려드는 대신 그대로 밀려 돌아오지 않는다면? 쟤가 날 싫어하면? 의문을 더할수록 로버트는 서러웠다. 자꾸만 부정적으로 튀는 생각은 술기운을 빌어 더 멀리 갔다. 로버트는 피네건의 셔츠를 두 손으로 꼭 쥐었다.




“너는 내가 선 그으면 싫지 않아?”




무서운 질문이었다. 실은 답을 알고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물어봐야만 했다. 헛웃음치는 소리가 들렸다. 입김이 길게 담배연기처럼 허공으로 늘어져 올랐다. 로버트는 피네건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그러니 저 연기같은 입김은 로버트에겐 안개였다. 의중을 알 수 없는. 로버트는 멈춰선 것처럼 긴장했지만, 피네건은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형은 선 그으세요. 나는 그거 넘어갈테니까.”




느릿한 목소리. 머스크 향기. 겨울바람에 유난히 졸리는 나른한 목소리가 유난히 따스한 향을 머금고 로버트에게 닿았다. 로버트는 문득 이 단단한 등에 계속 기대고 싶다고 생각했다. 로버트는 흐물거리고 피네건의 등 위로 녹아내렸다. 그게 맥을 못추는거라고 생각한 피네건은 뒤도 돌아보지않고 로버트를 고쳐 업었다. 갑자기 들썩이는 몸에 로버트는 억! 소리를 냈다. 피네건은 작게 키득거렸다. 로버트는 그 고동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계속 그어요. 까짓거 내가 넘어가면 되지.”




피네건은 노래하듯 말했다. 허밍같은 말을 따라 입김은 기분좋게 살랑이며 허공으로 날았다. 로버트는 그제서야 조금 웃을 수 있었다. 여전히 불안했지만 웃을 수는 있었다. 로버트는 업힌채로 긴 두다리를 쭉 뻗었다. “형 그러다 떨어져요.” 피네건이 말했다. 로버트는 나는 기분이 들었다.




“나 술 한잔 더하고 싶어.”




피네건이 웃었다. “다시 돌아서 갈까요 그럼?” 로버트는 다시 소심하게 몸을 움츠리곤 페이즐리 무늬의 어깨에 입술을 묻었다.



“아니이....”


“그럼요?”


“...우리 집 가서 마실래?”




로버트는 제법 선배답게 피네건에게 권했다. 피네건은 잠시 말이 없었다. 걸음은 여전히 늦춰지지않았지만, 기분 좋은 고동은 멎었다. 로버트는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만약 거절 당하면 크로스백으로 피네건의 머리를 죽지 않을 정도로 내리쳐서 기억을 지우고는 도망칠 심산이었다. 피네건은 몇 걸음 더 침묵속을 걷다가 말했다.




“집에 술 있어요?”


“아아니...”


“사가요 그럼.”


“오는거야 우리집?”


“싫다고 할 이유 있어요?”


“아아니.”





두 사람은 길지도 짧지도 않은 밤의 대학가를 걸었다. 물론 걷는 것은 피네건 뿐이고, 로버트는 업혀있을 뿐이었지만. 새까만 밤하늘 위로 두 사람의 호흡이, 입김이, 연기가 되어 흩날랐다. 두 입술에서 각기 나온 숨이 허공에서 하나로 만났다. 로버트는 그 연기를 보며 언젠가 피네건과 입술을 맞추는 상상 따위를 했다가 그만 피네건의 등을 팍팍 쳤다. 피네건은 왜 그러냐는 의문 없이 그저 큭큭 웃을 뿐이었다.













행맨밥 피네건밥

피네건밥 맛있다 다들 츄라이 츄라이
2022.12.13 16:42
ㅇㅇ
모바일
“형은 선 그으세요. 나는 그거 넘어갈테니까.”
“계속 그어요. 까짓거 내가 넘어가면 되지.”

미쳤다 진짜 존나 미쳤다 와 진심 개설레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d660]
2022.12.13 17:12
ㅇㅇ
피네건 진짜 너무 설레고 다정해.. 선배들앞에서 괜히 감싸주면 로버트가 더 곤란해 질 거 아니까 일부러 자기한테로 주의 끌어놓고 밥한테 가는 시선 차단하는거 너무 개발린다.. ㅠㅠㅠㅠㅠㅠㅠ
[Code: 6d61]
2022.12.13 17:37
ㅇㅇ
“형은 선 그으세요. 나는 그거 넘어갈테니까.”
“계속 그어요. 까짓거 내가 넘어가면 되지.”

이거는 진짜 밥이 감길 수밖에 없다 ㅠㅠㅠㅠ 그렇게 밀어내고 도망가면서도 혹시 피네건이 질려서 그만하면 어쩌나 싶은 밥이었는데 이토록 안심되는 말이라니.. 존나 머가리 팍팍 친다 진짜 ㅠㅠㅠㅠ
[Code: 2f44]
2022.12.13 18:00
ㅇㅇ
모바일
피네건 콧수염달고 설레게하지 말라고 ㅠㅠㅠ
[Code: f5ac]
2022.12.13 18:5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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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진짜...감겼다ㅠㅠ감겼어ㅠㅠ로버트가 좋아할 수밖에 없잖아 이거뉴
[Code: d957]
2022.12.13 18:53
ㅇㅇ
모바일
“내가 아는척 하면 선배는 부담스럽잖아.”

와씨 이렇게 설레도 되는거냐 진짜.... 로버트한테 계속 존댓말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반말하는 거 진심 개도랏음.....
[Code: 159c]
2022.12.14 00:14
ㅇㅇ
모바일
아...행복해❤️
[Code: 7c55]
2022.12.14 01:24
ㅇㅇ
모바일
와 피네건이 멋있어보여 미친.. 캠퍼스분위기 미쳤다 나한텐 이게 캐논이다ㅠㅠㅠㅠㅠㅠ
[Code: 38ba]
2022.12.14 01:54
ㅇㅇ
센세다!!!!!
[Code: 8cb8]
2022.12.14 02:23
ㅇㅇ
“형은 선 그으세요. 나는 그거 넘어갈테니까.”
“계속 그어요. 까짓거 내가 넘어가면 되지.”

피네건 미쳤냐.... 와..... 이젠 콧수염도 특이한 옷도 쎅시해보인다고..... 그리고 이상하지않아 그냥 존나...존나 머싯써..... 이정도면 피네건의 사랑은 순애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 가뜩이나 자기가 아는척하면 부담스러워하는 로버트인데 로버트만 괴롭히는 선배들앞에서 자기가 편들면 더 괴롭힐거고 로버트는 더 불편해할거고 피네건입장에서 로버트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모르는척, 무릎에 맥주 붓기였을듯ㅠㅜㅠㅜㅠㅜ 그러고 나서 밥을 보는 얼굴은 걱정가득하고ㅠㅜ
[Code: f4c8]
2022.12.14 02:31
ㅇㅇ
막상 피네건이 모르는척하니까 불편한 선배보다 피네건이 모르는척한거에 더 신경쓰이고 서운한 마음 드는 밥ㅋㅋㅋ큐ㅠㅠㅠ “내가 아는척 하면 선배는 부담스럽잖아.” 라는 말 듣고 이럴 자격 없다는 생각하면서 피네건 어깨에서 조심스러 손을 뗐는데 피네건이 로버트의 손을 당겨 다시 어깨에 올려놓는거 너무 좋다ㅜㅜㅜㅜㅜ 마치 괜찮다고 그럴 자격있고 로버트가 선그어도 자기가 넘어가면 된다고 하는것 같자나ㅜㅜㅜㅜㅜ
[Code: f4c8]
2022.12.14 02:37
ㅇㅇ
낮까지만 해도 도망다니던 그 로버트가 “나 술 한잔 더하고 싶어.”“...우리 집 가서 마실래?” 라고 먼저 말하다니...!!!!! 밥도 선을 넘기 시작하는거지ㅠㅜㅜㅜㅜㅜㅜ 피네건의 그 침묵이 어떤 심정이고 어떤 의미인지 알것 같아서 너무 설레ㅋㅋㅋㅋㅋ
'두 입술에서 각기 나온 숨이 허공에서 하나로 만났다. 로버트는 그 연기를 보며 언젠가 피네건과 입술을 맞추는 상상 따위를 했다가 그만 피네건의 등을 팍팍 쳤다.' ㅋㅋㅋㅋㅋㅋㅋ 밥 선을 넘어 피네건보다 앞서간것 같은뎈ㅋㅋㅋㅋ 아 존나 커여웤ㅋㅋㅋㅋㅋㅋ 아 센세 날 피네건밥에 중독되게 만들어놓고 끝이라니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둘은 이제 시작인데 끝이라니ㅠㅠㅠㅠㅠㅠㅠ 센세 가지마ㅠㅠㅠㅠㅠ
[Code: f4c8]
2022.12.14 16:30
ㅇㅇ
선생님 또 보러왔어요... 이건 행맨밥 피네건밥 캠게의 바이블이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1b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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