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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1 20:10
Aeluit de Granville de Mortain
알루윗 데 그헝빌르 데 모흑땅

모르탱 백작 데 그랑빌의 기록

어머니는 이십 중반의 나이로 요절하셨다. 뱃속에는 성별 모를 둘째 동생이 곧 생일을 앞두고 있었는데, 함께 떠났다. 출산을 앞두고 일선에서 물러나 요양을 하시던 어머니가 후원을 거닐다 사고를 당하신 것이다. 고작 발을 잘못 딛어 생긴 어머니의 대못 창상은 빠르게 악화되었다. 고열에 시달리던 어머니는 만삭의 몸을 더 일으키지 못하셨고 사고를 당한지 수 일 만에 영영 세상을 떠나셨다. 내궁 의사셨던 아버지는 손을 쓰지 못했다. 장례를 마친 아버지는 교회에 들어가셨다. 젊은 날 그쳤던 신학 공부를 다시 해야겠다 하셨다. 때문에 승계식에 아버지는 없었다. 나는 7-8세의 나이로 어머니의 백작위를 이었다. 하나 뿐인 여동생은 겨우 한 살이었다.

세상이 뒤집힐 만한 일이었지만 두려움은 몰랐다. 어머니는 원래도 바빠 뵙기 힘든 분이었고 아버지는 늘 침전하여 곁에 있어도 고요하기만 한 분이었다. 나이 어린 나는 달라진 게 무언지 차이를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동생은 말 배우기가 바빴다. 만삭의 어머니 대신 섭정을 보던 숙부는 좋은 사람이었으므로 나는 계속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궁정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있었고 예쁜 숙모도 있었다. 모두가 우리 자매를 어여삐 여겼으므로 나는 세상 모른채 나를 귀애하는 어른들의 말씀들을 따라 어머니가 정해둔 공부를 계속했다. 동생이 태어날 때까지 여섯 해를 넘도록 백작가의 유일한 후계자였던 나의 의무는 변한 게 없었고, 나는 훗날 국외의 저명인사를 찾아 몰래 파리에 유학할 정도로 내 공부가 재미가 있었다.

필요할 때 수완이 좋은 아버지와 언제나 성실한 관리인인 숙부는 내 나이가 열 살이 되던 해에 로타링기아 왕실에서 내 혼처를 구했다. 엄밀히 말하면 왕실은 아니었으나 왕의 아들이었다. 로타링기아 왕의 사생아 위그 카롤링거. 이미 고향 땅의 주교가 되어 계셨던 아버지가 교황 성하께 예를 올리러 로마로 가시던 길에 차분히 알아본 모양이었다. 로타링기아의 왕 로타르 5세가 사랑하는 정부와 성혼하기를 원해 꾸준히 교회에 이혼을 요청하고 있다고. 교회가 정실 왕비의 간통 누명을 믿지 않아 번번히 승인을 거절했으나 왕과 정부에겐 위그 말고도 딸이 셋이나 더 있었고, 위그는 왕의 하나뿐인 아들이자 장자였다. 성씨도 카롤링거를 썼으며, 가문의 인정이 없어도 다만 아비의 사랑을 받았다. 교회가 왕실의 이혼을 승인하고 재혼을 허락하다 다시 그것을 취소했을 때, 위그는 결국 카롤링거의 끊어진 줄이 되었다. 로타링기아의 왕 로타르 5세는 내 아버지의 귀국길에 나와 위그의 모계 약혼을 승인하는 문서를 동봉해 보냈다. 나는 어른들의 결정에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아버지가 가져온 초상화 속 위그는 검은머리가 짙은 화려한 미남이었다.

열네 살이 되던 해에, 나는 수학하던 아버지의 주교령에서 탈출해 파리로 떠났다. 서프랑크의 수도 왕궁에서 재무관직을 역임하고 있는 발드윈 반 플랑드르 공작은 내가 아는 가장 저명한 행정관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유지대로 그와 같이 훌륭한 관리자가 되어 영지를 잘 보살피고 싶었다. 이미 성년이 되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위그를 잘 데리고 살고 싶기도 했다. 도망치던 날 우연히 나를 발견한 동생이 울음을 터트리고 원망을 했지만은 이건 그애를 위해서기도 했다. 나는 동생의 눈물을 뒤로 하고 숙부에게만 긴 편지를 써 남긴 채 영지를 떠났다. 자국의 후견인도 반대하던 어른들이 뒤집어지는 줄도 모르고 나는 이국의 명사들을 만나고 배울 것이 그저 기대가 되었다.

파리에서 공작의 사용인으로 사는 동안 별일은 없었다. 접경국의 수도에서 신분을 숨기고 사는 것이 녹록치는 않았지만 나는 어머니를 닮아 머리가 영리했고 아버지를 닮아 몸이 튼튼했다. 웬만한 어려움은 질베르와 함께 모두 헤쳐갈 수가 있었다. 처음에는 공작가의 사용인이 되는 것도 별따기와 같았지만 할머니의 친화력과 할아버지의 잔꾀를 발휘하자 다른 경로를 찾을 수도 있었고, 나는 무역소 어르신들의 추천을 받아 금세 공작을 대면하는 자리에 이르렀다. 결국 공작에게 직접 일을 받게 되면서 가끔 식은땀을 흘릴 일이 있기도 했지만, 언제 적국이 될지 모를 나라에서 이만하면 나쁘지 않았다. 그냥 스릴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공작에게서 많은 것들을 배웠다. 다 자란 나는 이제 공작보다 내가 더 낫다는 것을 자신했다.

정월 초에 있을 성년식에 맞춰 나는 영지로 돌아왔다. 우는 모습이 마지막이었던 동생은 나를 몹시 미워하고 있었지만 나는 단순히 다독여주면 될 거라 생각했다. 나는 어른들에게 혼이 나느라 바빴고, 포옹을 받느라 더 바빴다. 숙부에게 모든 영지 권한을 돌려받고 현황을 익히느라 쉴 새가 없었고 아버지를 추기경으로 선출시키기 위해 자금을 쏟는 데도 온 신경을 기울였다. 내 성혼을 준비하는 데도 시간이 많이 들었다. 성혼 전에 내게 흠모하는 마음을 고백한 리도헤드 낭트가 더이상 헛마음을 품지 않도록 당장 부인을 구해주는 것도 바빴고, 영지로 들어온 남편에게 정신없이 반해 틈만 나면 그를 찾는 것도 바빴다. 남편은 초상화와 똑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남편이 사내에게 마음 끌려하는 것은 문제도 안됐다. 나는 이 행복을 동생에게도 주고 싶었다. 나는 동생의 혼처를 구하기 위해 온 귀족의 초상화를 쓸어 모으느라 또 바빴다.

나는 저 멀리 바다 건너의 웨일즈 지방에서 동생의 혼처를 찾았다. 내 성혼 직후 저도 부친의 작위를 승계 받아야 한다며 떠나간 내 지휘관이 떡하니 포이스의 왕좌 위에 그려져 있었는데, 그 아저씨 정체야 무어든 알 바 없고 옆에 딸려 온 다섯 살 배기 조카의 초상이 잘생겼었다. 왕의 동생인 조카의 아버지 역시 귀네드의 공작으로 왕보다 인물이 훨씬 좋았으며 나바라 왕국의 공주인 공작부인 또한 상당한 미인이었다. 동생보다 일곱이나 어린 게 흠이었지만 아무리 보아도 이만한 얼굴은 더 없었다. 나는 나의 옛 지휘관에게 온 예를 다하여 약혼서한을 보냈다. 동생을 아는 왕은 흔쾌히 허락을 했고 나는 모든 마음이 평안했다.

그 뒤로는 내게도 딸이 태어났다. 예쁘고 건강하고 똑똑한 내 딸. 날이 갈수록 어머니를 닮는 내 동생을 너도 같이 닮으라고 이름도 똑같이 아위라 지었다. 함께 아이를 돌보고 영지를 돌보며 남편 위그에게도 어느새 사랑이라 할 만한 것이 싹텄고 나는 매일이 행복했다. 앙주 공작 위고 벨프가 내 영지를 뺐겠다고 침략전쟁을 일으켰어도 새로 즉위한 젊은 왕께선 의욕이 넘쳤다. 나의 왕께서 봉건 계약에 충실해 모든 영지를 단단히 지키니 위고 벨프는 얼마 못 가 패주하고 말았다. 우리는 안전했다. 동생이 성년이 될 때까지 평화는 계속 지속되었다.

문제는 동생이 성년이 되던 해에 쏟아져 나왔다. 앙주 공작의 패퇴 이후로 또 다시, 이번에는 서프랑크의 왕이 직접 나의 왕에게 전쟁을 걸어온 것이다. 분쟁 지역은 또 한번 나의 영지였다. 이제 막 즉위하기가 매한가지인 루이 3세는 봉신들과의 관계가 모두 좋았고 왕정을 운영하거나 봉신을 아우르기에 직할지 역시 모자르지 않았다. 전쟁은 없던 빚이나 새로 만드는 일이었다. 이 전쟁이 나라 안의 문제를 돌리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젊은 사내 둘의 가열찬 힘겨루기일 뿐이었다는 뜻이다.

이래도 저래도 새우등이 터질 거라면 나는 현재에 머무르고 싶었다. 이 땅이 본디 프랑크인들의 것이고 선왕께서 빼앗은 땅인 걸 알기야 했으나 나는 켈트인이었다.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어머니도 켈트인, 아버지도 켈트인이었다. 이 땅에 뿌리 박힌 프랑크인들의 문화가 아직 변화하지 않았더라도 이 궁정의 거의 모두가 켈트인으로 채워져있었다. 더불어 나는 나의 남편을 버린 카롤링거 가문의 왕에게 머리를 숙일 수 없었다. 이 궁정의 유일한 프랑크인인 남편은 말은 않아도 내심 가문을 향한 상처가 깊었다. 나는 나의 모든 애를 쏟아 전쟁에 몰두하여 내 왕을 도왔다.

군의 위치를 확인하고 군의 물자를 살피느라 매일이 바쁘던 어느날, 궁정에 약혼을 파기한다는 서한이 날아들었다. 분개하는 마음으로 열어본 편지에는 우리 측의 귀책사유가 적혀 있었다. 내 동생의 임신. 그리고 사생아. 전쟁 때문에 성년식도 챙겨 주지 못한 내 어린 동생이 나 모르게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다. 황망한 마음으로 달려가 내궁 별관을 열어젖히자 과연 아기가 있었다. 이 사실을 모두가 알았다. 내궁의 모두가 아는데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알았다. 아이의 아버지는 질베르였다. 파리까지 나를 따라갔었던 나의 시종아이. 당장 끌고 오라 노성을 지르자 이미 죽었다는 답이 따라왔다. 아이가 태어나기 석 달 전 장가를 들러 가는 길에 유명을 달리 했다고. 장가는 무슨 장가냐 했더니 내가 보냈다 했다. 대체 무슨 정신이었는지, 내가 그놈을 미망인이 된 루이 3세의 넷째 고모에게 모계혼을 시켜 보냈다는 거다. 동생은 내가 알고 그런 줄 알았다고 했다. 떨어뜨리려 생이별을 시킨 줄 알았다고. 질베르는 울며 떠나다 죽었고, 내 동생은 울며 아이를 낳다 몸이 상했다. 어려서부터 전쟁놀이나 하며 뛰어 놀기를 좋아한 내 동생의 건강한 팔다리는 여기 없었다. 쇠약한 동생은 하염없이 울었다. 나도 동생을 붙잡고 울었다. 미안했다.

진실로 나를 미워할 뻔했던 동생은 오해가 풀리자 서서히 몸을 회복했다. 전쟁은 서서히 승기를 잡고 있었고 나는 조금이나마 낼 수 있는 모든 시간을 동생에게 쏟았다. 매일 선물을 보내고 이야기를 나눴다. 동생은 내가 제게 관심이 없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제게 관심이 없어 홀로 두고 떠나고, 관심이 없어 공부를 권하지도 않고, 관심이 없어 심통을 부려도 봐주고 마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혼처도 대충 정해 제가 곧 팔려가는 줄만 알았다고 했다. 나는 얼른 너를 잘 돌보고 싶어 공부를 하러 갔다고 말했다. 네가 뛰어 놀기를 좋아해 그대로 즐겁게 두고 싶었고, 요 얼굴이 너무 예뻐 심통을 부려도 미운 줄 몰랐다고 말했다. 네가 어머니를 닮고 나를 닮아 사내 얼굴만 볼 줄을 알고 있는대로 초상화를 쓸어 모은 것도 말해줬다. 그렇게 정해둔 어린 공자가 아주 잘생겨서 다 크면 우리 성으로 데려갈 거라고 꼭꼭 약속을 하고 약혼을 했는데 아깝게 되었다고. 나는 너를 먼곳에 보낼 생각이 조금도 없었노라고. 그 말을 들은 동생은 애매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질베르가 왜 좋았냐고 물었다. 동생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놈 별로 안 잘생겼다고 하자 조금은 잘생겼다고 말했고, 아마 파리에서의 생활을 듣는 것이 좋았다고 답했다. 파리 말고, 내가 궁금했다고.

울음이 나오는 마음을 삼키고 깊게 반성을 새기며 나는 다시 동생의 혼처를 구했다. 오랜시간 홀로 외로워했던 어린 동생의 마을을 달래줄 마음이 어른인 사내. 나이는 적당히만 어른이되 귀족이고 그러나 승계 받을 작위가 없어 떠나갈 위험이 없으면서 얼굴까지 잘생긴 사내. 나는 또 바다 건너 잉글랜드 땅에서 괜찮은 이를 찾았다. 옛 머시아 왕이 숨을 거둘 때 고작 한 살이었다는 막내 왕자가 마땅한 혼처도, 머무를 정처도 없이 아버지의 옛 땅을 떠돌고 있었다. 그에게는 어디 있는지 몰라 만나기 힘든 형도 하나 있었다. 처지가 동생과 비슷하게 들렸다. 나는 그 이유를 들어 선물을 보내며 그를 성으로 초대했다. 의도가 없는 척 자리를 꾸며 동생과 나누는 시간을 보았다. 이름 뿐인 왕자는 동생에게 금세 마음이 생긴 듯 보였다. 어머니를 찍어낸 듯 꼭 닮게 자란 내 동생은 정말 보기가 드문 미인이었으므로, 당연했다. 동생도 왕자의 관심이 싫지 않은 듯했다. 혼사는 물흐르듯 자연스레 진행되었다. 머시아 왕의 왕자로 났어도 실질적 작위가 없으니 그의 권위는 백작가의 2순위 계승권자인 동생만 못했다. 혼인은 모계혼으로, 태어날 아이는 모두 데 그헝빌르의 아이로.

서프랑크 왕은 아직 전쟁을 끝내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전투가 그들의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우리는 앙주의 대부분을 점령했다. 전란은 이미 우리의 것이 아니다. 루이 3세는 결국 휴전을 청할 것이다.

사 년 여의 전란을 거치고, 나는 오늘이 지나면 어머니가 죽음을 맞은 나이가 된다. 곧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해 또한 보게 될 것이다. 가문에는 아직도 사내가 하나도 없다. 여전히 나와 내 동생, 내 딸과 내 동생의 딸 뿐이다. 이 가문은 앞으로 어찌 될 것인가. 우리는 앞으로 어떠한 삶을 살게 될 것인가. 나는 내 이 여인들을 얼마나 지킬 수 있을까. 어떻게 지켜야 하는 것일까.

해가 저무는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이 길었다. 내궁으로 돌아가 나의 세 아이들에게 좋은 꿈을 꾸라는 인사를 남겨야지. 내일 아침에는 내 딸과 예의 그 잘생긴 조카의 약혼을 제안해 온 포이스 왕에게 동의의 편지를 써야겠다. 성년이 다 된 숙부의 딸에게도 혼처를 찾아줘야지. 할일이 많다. 감상은 끝났다. 주께서 다만 나의 어린날을 돌보시듯 다시 이 땅의 아이들을 돌보기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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