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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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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은 책상에 엎드려서 잠을 청했다. 밤새 책을 보고 그대로 수업에 나왔더니 눈이 뻑뻑했다. 잠이 들면 또 그 꿈을 꿨다. 꿈속에서 ‘나’는 잊었다고 생각했던 그곳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어둠이 가라앉아 발목을 붙잡았다. 다가가지도, 나가지도 못하는 그 장면에 갇혀버렸다. 등에는 땀이 흐른다. 꿈인 것을 알고 있었다. 깨면 멈출 수 있는데 그마저도 자유롭지 않았다. 대앵! 댕! 댕! 둔한 금속음에 무거워진 눈을 겨우 떴다. 흐릿했던 시야에 초점이 돌아왔다. 눈을 몇 번 더 깜빡거렸다. 속눈썹에 붙은 눈곱이 느껴져 손가락으로 비볐다. 오후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성당에서부터 울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창문이 닫혀있어서 거리감이 느껴졌다. 깨기 전엔 엄청 크게 들렸는데 깨고 나니 그렇게 크지도 않다. 팔을 쭈욱 펴서 스트레칭을 했다. 오후에는 있으려나.

 

톰의 바람과 다르게 피터는 오후에도 수업에 참석하지 않았다. 큰 기대를 하지도 않았다. 출석을 부르는 교사의 목소리에 톰이 손을 들었다.

“무슨 일이니. 톰.”

톰이 의자를 가볍게 밀고 일어나 교사의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피터는 몸이 안 좋아서 양호실에 있습니다.”

“그렇구나. 톰이 잘 챙겨주렴.”

“네.”

동급생들 사이에 웅성임이 퍼졌다. 사실은 피터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 예상은 간다. 시선은 항상 그를 쫓고 있으니까. 계속 톰은 피터의 무단결석에 이유를 만들어주었다. 양호실은 교사가 상주하지 않아서 누가 왔다 갔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그리고 피터와 톰은 성적 우수생, 특등생이라 교사와 단독으로 마주하는 일이 많았다. 수업이 없는 교사의 이름을 대며 피터를 불러갔다고 하면 다른 교사들도 의심하지 않았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피터와 라이벌인 톰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톰은 다시 자리에 앉아서 책을 펼쳤다. 이렇게 변명을 잔뜩 해놨으니 피터가 이번 시험도 잘 쳐야만 했다. 안 그랬다간 자리 비운 것들에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하려고 할 테니까 말이다.




 

“피터.”

고개를 한껏 들어 올렸다. 위에는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피터가 있었다. 밋밋한 나무 기둥은 발을 기댈 곳도 없는데 어떻게 올라간 건지……. 원숭이가 따로 없군. 피터는 제 이름을 불러도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톰은 무턱대고 나무에 오르지 않았다. 손수건 바닥에 깔고 바닥에 앉아 피터처럼 나무 기둥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한참 높은 곳에 앉아있는 녀석과 같은 곳에 앉아있다고 생각하기 어려웠지만 톰은 그저 같은 것,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싶었다.

“뭐야.”

톰이 떠날 생각이 없어 보이자 피터는 책을 덮었다. 다리를 걸치고 있던 가지에서 발을 살짝 옮겼다.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사락거리는 소리가 책장을 넘기는 듯하다.

“너, 이제 그만 수업에 들어와. 핑곗거리도 다 떨어졌다고.”

“나한테 신경 꺼.”

톰의 옆으로 신발이 툭 떨어졌다. 구두 코가 다 벗겨진 구두 한 짝이 보인다. 잘못하면 머리에 맞았겠구나… 톰이 슬쩍 팔을 들어 손으로 머리를 가렸다.

“곧 2학기 기말고사란 말이야.”

결국 다른 한 짝도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번에는 톰의 머리를 정확하게 노려서. 톰은 손등에 맞아서 제 다리 사이로 떨어진 신발을 주워들었다. 위를 올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예상 안에서 움직이는 건지, 아님 기대에 맞춰 움직여주는 건지.

“내가 거짓말한 게 들키면 너도 혼나.”

“잘 됐네.”

“하나뿐인 재킷도 빌려줬는데 살려주라.”

피터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게 빚이라고 생각하긴 하나보다. 톰이 마저 이야기를 이었다.

“어차피 작아서 못 입는 교복인데 처치 곤란하니까 교복도 좀 가져가고.”

“싫어.”

“왜 그렇게 화가 났어.”

“화 안 났어.”

“그래, 화 안 났다고 하자. 바느질하던 채로 집어던져서 네가 입을 것도 없지?”

“…….”

“교복이 없어서 수업 못 들어오는 거잖아.”

“다 너 때문이잖아…….”

“그래, 내 잘못이니까 제발 가져가.”

피터가 마지막 남은 책도 톰에게 던졌다. 얼른 고개를 숙이고 손으로 머리를 가렸다. 손등이 찍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좀 더 앞쪽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났다. 바닥은 마른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있어서 두꺼운 책이 푹신하게 떨어졌다. 막상 보니 모서리에 찍히기라도 했으면…… 식은땀이 났다. 웃음기가 쏙 들어갔다. 톰이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를 털었다. 팡팡, 옷을 털고서 손수건도 들어 올렸다. 적당히 흔들어 낙엽 조각을 털고 주머니에 넣었다.

“나는 사과했다. 오늘 저녁 미사 시간에 신부님이 물어보면 아프다고 해둘 테니까 네 바지 가져가.”

톰은 할 말을 마치고 다시 교정을 향해 걸었다. 운동장으로 걸어가면 누군가는 톰의 모습을 발견할 텐데 그는 거리낌 없이 넓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버렸다. 피터는 나뭇가지에 아슬아슬하게 앉아 재수 없는 참견쟁이를 노려봤다. 그에게 욱해서 화풀이를 한 건 이쪽인데 찾아와서 사과까지 하는 모습이 못마땅했다. 그렇다고 해도 그의 말처럼 계속 이렇게 수업을 빠질 수만도 없는 일이다. 다른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교복을 받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나는 거지가 아니다. 그가 주는 동정과 적선은 필요 없었다. 하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아무도 모르게. 아주 비밀스럽게.



 

저녁 미사의 종이 울렸다. 학생부터 교사까지 전부 성당에 가버렸는지 평소의 잡음이 무색할 정도로 고요했다. 그런 기숙사에는 쥐새끼만 남아 조심스럽게 발소리를 냈다. 사감이라도 남아있는 건 아닌가 바짝 긴장하고 구두도 벗고 맨발로 살금살금 걸었다. 1층 복도 제일 끝, 하필 사감의 방 옆이다. 방과 방 사이에 끼여있지 않아서 조용하고 복도의 발소리도 적은 좋은 방이긴 했다. 사감이 옆에서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 좋은 게 전부 무슨 소용이냐만. 문고리를 돌리자 불편하게 걸리는 소리 없이 문이 스르르 열렸다. 방 안으로 몸을 넣고 경첩에서 소리가 나지 않게 천천히 문을 닫았다. 좀도둑처럼 방에 무사히 들어오고 나서 고개를 돌려보니 먼저 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정돈된 이불 위에 잘 개켜진 교복이 올려져 있었다. 그 옆으로 잘 접어둔 소포 용지도 있었다. 각 잡아서 접어 풀칠까지 마친 종이는 마치 상점에서 나눠주는 봉투처럼 튼튼했다. 이쪽이 톰의 자리구나. 재수 없는 자식. 들고 온 구두를 들고 침대 중앙을 내려쳤다. 하얀 시트에 거뭇하게 발자국이 남았다. 흥. 종이봉투에 교복을 넣고 들어올렸다. 어떻게 잡아도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한숨을 쉬고 봉투에서 교복을 빼냈다. 다시 침대에 던졌다. 피터는 입고 온 재킷을 벗어 의자에 걸쳐놓았다. 그리고 침대에 던져둔 교복 중에서 재킷을 입었다. 마치 제 몸에 맞춘 것처럼 어깨도 길이도 딱 맞았다. 약간 팔이 길긴 하지만 손등을 살짝 가리는 정도였다. 그의 재킷을 빌렸을 때도 느꼈지만 안감이 부드럽고 두꺼워 자신의 얇은 교복과 비교도 되지 않게 포근했다. 알맞는 옷을 입자 조금 기분이 풀렸다. 남은 바지를 옆구리에 끼고 신발을 들고 다시 살금살금 복도로 나왔다. 손목시계를 보니 미사를 시작한 지 10분이 채 지나지 않았다. 기숙사에 남은 쥐새끼는 무사히 자신의 쥐구멍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2024.04.11 20:0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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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센세와 동접! 센세 와락!!! 언제 오시려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렇게 와줬어 이제 정독하러 간다ㅌㅌㅌㅌㅌㅌㅌㅌ
[Code: 493c]
2024.04.11 20:3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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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헉 센세 이즈유? 미국갔던 내 센세가 돌아오셨다 ㅠㅠㅠㅠㅠㅠㅠ센세 사랑해 ㅠㅠㅠㅠㅠㅠ
[Code: a087]
2024.04.11 20:4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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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가 담담하고 건조한데 톰과 피터 사이의 텐션은 아슬아슬 긴장감 넘치고 또 간질간질 설렌다 미쳤어ㅠㅠㅠㅠ톰의 친절에 괜한 심술을 부리는 피터의 감정이 어떤건지 알듯말듯 존잼이야 피터가 톰에게 자기의 진짜 마음을 보여주고 더 가까워질 날을 기대하게 돼 센세 이제 어디가지 말고 나랑 지하실에서 함께 하는거다?
[Code: a087]
2024.04.11 21:1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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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오셨구나 오셨어 !!!!!!
[Code: 1403]
2024.04.11 21:2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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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정결히하고 아껴읽어야지 기다렸어요
[Code: 1403]
2024.04.12 11:2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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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자존심 지켜주려고 톰 진짜 최선을 다하는구나
[Code: 61f6]
2024.04.11 22:5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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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데도 항공모합탑의 자질이 흘러넘치는 아이스
[Code: 8c4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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