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583323342
view 866
2024.02.06 19:15
사망소재ㅈㅇ









호열은 가끔 욕조에 물을 가득 담아 그 안에 누워있는 걸 좋아했다. 옷은 다 입고 들어가거나 속옷 한 장 정도. 그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입욕제를 푸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물 안에 가만히 누워있는 것, 그게 다였다.
백호는 멀뚱히 욕조에 누운 호열을 보며 너는 왜 그렇게 물을 좋아하냐 물은 적이 있었다. 호열은 그때마다 물에선 아무 생각도 안 해도 되니까. 하고 웃었다. 참방참방 소리가 나는 욕실은 곧이어 츕, 츄읍, 츄 같은 소리도 같이 났다. 중3 여름, 백호는 호열과 입을 맞췄다. 서툰 입맞춤에 푸하하 웃은 후 둘은 진지하게 숨을 나눴다. 첫 키스는 칼피스 맛이었다.

호열이 물을 너무 좋아하자 백호는 그런 호열이 인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허무맹랑했지만서도 그 의심을 지울 순 없었다. 혼자 바닷가에도 자주 갔고 비 내리는 날을 좋아하고 물이 찰랑이는 소리를 좋아하는 양호열. 이날도 호열은 3시간 넘게 욕조 안에 있었다. 백호는 3시간 동안 조그만 욕실 의자에 앉아 호열을 바라봤다. 중간에 너도 들어올래? 하던 호열은 욕조가 좁아서 네가 날 안아야겠지만 하고 쿡쿡 웃었다. 이제 슬슬 나가자며 일어난 호열은 가볍게 씻은 후 수건으로 몸을 닦았다. 백호는 그런 모습도 전부 지켜봤다. 호열은 부끄러우니 등 돌리고 있어. 하고 부탁했고 백호는 등을 돌렸다. 호열은 욕실에서 나와 곧바로 이불로 직행했고 백호는 반바지를 입은 호열의 종아리를 빤히 봤다. 비늘이 있나 확인해보려고. 보인 건 작년, 그러니까 18살 봄에 생긴 흉터 뿐이었다.
백호는 호열의 종아리에 짧게 키스를 했다. 매끈한 종아리에 이를 박아넣었다가 호열에게 혼이 났다.



-



백호는 아이스바를 잔뜩 산 후 호열의 집으로 향했다. 호열이 집 냉동실 비었나? 백호는 소다맛 아이스바를 까서 입에 넣었다. 여름이라기엔 그리 덥지 않은 날, 기상청에선 한 풀 꺾인 더위지만 다음 주 부터는 또 더워지겠다 했다. 지구온난화 때문인지 날씨가 오락가락했다. 백호는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백호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도쿄의 프로농구팀에 들어갔다. 매일매일 기록을 갈아치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비시즌에도 오로지 농구였다. 아님 호열이. 호열이는 백호가 도쿄로 올라가자 본인도 도쿄로 갔다. 일자리는 구했어. 도쿄는 정비소도 더 많으니까.
둘은 도쿄에서도 붙어다녔다. 백호의 비시즌엔 같이 여행도 다녔고 평일 홈 경기가 끝나면 백호는 더 좋은 본인 집을 두고 작고 낡은 호열의 집으로 갔다. 둘의 세계는 더욱 견고해져서 백호는 미래에, 가깝지 않은 미래에 본인이 미국으로 가게 된다면 꼭 호열도 데리고 가리다 마음을 먹었다.

둘이 하도 붙어다니니 오죽하면 열애설이 나기도 했다. 고향에서부터 이어진 사랑, 뻔한 헤드라인이 나오고 자극적인 기사가 쏟아졌다. 현 프로농구 최고의 루키, 미국 프로농구 진출 가능성이 높은 젊은 선수는 입방아에 오르는 게 당연했다. 호열의 집 앞에서 얘기를 나눈 게 화근이었다. 입술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 백호가 회식이 끝난 후 잔뜩 취해 호열의 집으로 간 그 날이었다. 호열은 무너져내리는 백호를 꼭 껴안았다. 백호는 자주 호열에게 응석을 부렸으니까. 카메라 렌즈가 본인을 찍고 있었는데도 백호가 먼저였으니 움직일 수 없었다. 호열의 내려온 앞머리가 백호에 손길에 의해 눈이 훤히 드러났을 때 기자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셔터를 눌렀다. 낡은 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리고 닫힐 때까지, 셔터 소리가 끊기지 않았다.

둘은 입은 맞췄지만 그 이상은 하지 않았다. 종종 백호는 호열을 깨물었다. 그건 목이 되기도 했고 종아리가 되기도 했고 손이 되기도 했다. 호열도 백호를 마주안아 귀 같은 부분을 합 하고 깨물었다. 백호는 그 이상을 바랐고 호열은 그런 백호를 꼭 안아주기만 했을 뿐, 그 이상은 받아주진 않았다. 걸림돌이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백호는 처음으로 호열에게 화를 냈다. 네가 뭘 아냐고. 그 다음 날 백호는 호열과의 열애설을 부인하는 기사를 냈다.



-



'할아버지 세상에 인어가 있을까요?'

백호는 오랜만에 꿈을 꿨다. 호열의 집에 가기 전날, 눈꺼풀이 무거워지더니 자기도 모르게 잠에 들었다. 지금은 안 계시는 모든 걸 알려주시는 할아버지가 계실 때의 꿈. 백호는 할아버지 집 마당에서 팔랑팔랑 날아가는 나비를 구경했다. 하얀 나비와 노란 나비가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해가 쨍쨍이었던 어느 여름, 할아버지는 백호에게 수박을 썰어주셨다. 할아버지도 자기마냥 빨간머리셨는데 나이가 나이인지라 군데군데 하얗게 된 부분이 있었다. 백호는 그걸 보곤 할아버지 머리가 훨씬 멋지다며 바닥에 누워 빼액 울었던 적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하나뿐인 손자에게 뭐든 대답을 해주고 싶었다. 뱃일을 하며 본 것들을 얘기해주시던 할아버지는 바다는 이렇게나 넓은데, 인어도 어딘가에 있지 않겠니? 하고 머릴 쓰다듬어주셨다. 바다가 싫다던 늙은이는 평생을 바다와 함께 해서 그런지 바다 얘기만 나오면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백호는 퉁퉁 부은 눈으로 수박을 먹었다. 과즙이 줄줄 흐르지만 축축한 느낌이 들지 않자 백호는 아 꿈이구나. 했다.


-



백호가 호열의 집에 도착했을 때 호열의 집은 초인종을 아무리 눌러도 대답하지 않았다. 결국 백호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언젠가 호열이 아무때나 오라며 준 열쇠였다. 철커덕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백호는 사온 아이스바를 냉동실에 넣었다. 겉이 약간 녹은 아이스바는 좁은 냉동실에 꽉 들어찼다.


"호열아 너 어딨냐? 또 욕실이냐?"


뜨끈한 집 내부에 백호는 창문부터 열었다. 물을 좋아하는 호열은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면 발이라도 담그고 있었다. 희한하게 호열의 집은 금방 더워지고 금방 추워졌다. 저번에 호열이 뭐 때문이 그렇다고 했는데 그건 또 까먹어서... 백호는 뒷머릴 긁적이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밖에 나갔나?

호열에게서 나는 향은 포근하지만 집 안 향기는 포근보다는 서늘해서 백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 기분은 썩 좋지 않다. 백호는 창 밖을 보다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욕실로 걸어가 문을 흔들기 시작했다.


"야, 호열아. 문 좀 열어. 호열아. 양호열."


굳게 닫힌 문은 흔들어도 열리지 않았다. 문이 흔들리며 나는 끼익 소리에 백호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언젠가 호열이 마스터키는 여기있다고 한 것도 같은데... 백호는 그딴 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힘을 주고 문을 열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쾅 소리를 내며 열린 문에 백호는 눈을 질끈 감았다. 무엇이든 심호흡을 한 번 한 후에나 볼 수 있을 거 같았다. 풀이라도 바른 듯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억지로 열자 커다란 욕조 안에 물을 가득 채워놓은 채 호열이 누워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잠긴 채.



호열은 취직한 정비소에서 약간 먼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유는 하나. 이 집의 욕조가 커서 좋다고 했다. 그리고 백호의 홈구장이 가까워서. 호열의 집들이 날 고향에서 올라온 친구들이 축하한다며 술을 잔뜩 사왔다. 태생적으로 술이 센 호열은 그 날 조금 과하게 마셨고 친구들 또한 오랜만에 본다며 부어라 마셔라 잡히는 대로 술을 털어댔다. 백호는 엎어진 친구들을 전부 바로 눕혔다. 좁은 집이라 옹기종기 모인 친구들을 보며 픽 웃었다. 백호는 제일 끄트머리에 누운 호열을 바라봤다. 언젠가 김대남이 한 말이 있었다.
백호야 네 이상형 자세히 보면 호열이다. 알고 있냐?
백호는 그때 대남이에게 대꾸를 하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었다. 굳이 대답을 하지 않는 친구의 모습에 대남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백호는 호열의 얼굴을 눈으로 천천히 훑었다. 지금 눈 뜨면 사르르 웃으며 백호야 하겠지. 호열이는 항상 그랬으니. 백호는 평소보다 더 붉은 호열의 입술을 내려다보다 도둑키스를 했다. 입술에 닿는 쌉쌀한 술 맛에 얼굴이 붉어졌다. 예민한 호열은 백호의 입술이 닿자 눈을 떴다. 백호인 걸 확인한 호열은 사르르 웃다 입술을 쭉 내밀었다.


"더 하자."


둘은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을 망각이라도 한 듯 오랫동안 입술을 빨았다. 혀를 섞었고 타액이 나눠졌다. 백호는 몽롱해졌다. 이게 호열에게 취해서인지 호열의 입 안에 남아있던 술 때문인지는 몰랐다.



-



백호는 호열을 물 밖으로 꺼냈다. 차가운 물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호열을 끄집어내 뺨을 내리쳤다. 호열아 라고 부를 생각은 못 했다. 그저 눈을 뜬 호열이 보고 싶어서. 호열은 축 늘어진 채 백호가 흔드는 대로 흔들렸다.



"백호야?"



백호는 호열의 목소리에 고갤 들었다. 차가웠던 피부가 금방 열이 올라 미지근해졌고 호열은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로 백호을 쳐다봤고 백호의 품에 폭 안겼다.



"너 이 새끼야..."


호열은 축축한 자기 몸과 얼굴이 하얗게 질린 백호, 물이 잔뜩 넘친 욕실을 보다 입을 다물었다.




호열은 자기가 인어라고 했다. 가끔은 숨을 쉴 수 없어서 이렇게 해야한다나...
봐 나 멀쩡하잖아. 하하 웃는 호열은 거슬리는 앞머리를 다시 쓱 넘겼다. 호열은 정말 멀쩡했다. 금세 하하 웃으면서 잘만 걸어다녔다. 무슨 인어가 저렇게 잘 걸어? 백호는 눈물이 고인 눈을 벅벅 닦았다. 생각해보니 호열은 지상에서도 꽤 살았으니 걷기도 잘하겠지 싶었다.

입이 툭 튀어나온 백호를 달래주겠다고, 호열은 간만에 요리에 힘을 줬다. 백호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가득 해서 평소엔 먹지도 못 하게 하는 식사 중 콜라도 허락을 해줬다. 백호는 뼈가 툭툭 불거진 호열의 손을 보며 꾸역꾸역 음식을 씹어삼켰다.


"죽는 거 아니지?"


"넌 인어가 익사하는 거 봤어?"


"네가 첫 인언데 어떻게 알아..."


"하하 그렇네~ 안 죽어. 안 죽어. 난 원래 물이 더 편한 사람이야. 그래서 그래."


호열은 백호의 등을 쓰다듬으며 푸핫 웃었다. 평소와 다름 없는 날, 백호는 아까 낮에 있던 일들이 전부 거짓말 같았다. 멀쩡하게 눈을 뜨고 자길 보며 웃는 양호열은 자기가 알던 양호열이라.

호열은 백호에게 남들에게 비밀로 해줘. 하고 부탁을 했다. 평소엔 전혀 부탁을 하지 않는 호열이기에 백호는 바로 고갤 끄덕였다. 붕붕거리는 빨간 머리에 호열은 피식 웃었다.


"너도 아가미 있어?"


"아니. 아가미는 없지만 숨은 쉴 수 있어"


백호는 콜라를 마셨다. 탄산이 목을 긁고 내려갔다. 입 안에 들쩍지근하게 남은 콜라에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러더니 아 배불러 하고 호열을 붙잡고 누워버렸다. 밥 먹고 바로 누우면 안되는데...

호열이 좋아하는 색은 빨간색 그리고 파란색. 호열은 백호가 또 짧게 밀어버린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머리카락에 호열은 입술을 깨물었다. 빠져나가네. 또.

호열은 간만에 백호에게 자고 가라고 했다. 그리곤 백호가 사온 아이스바를 먹었다. 한 손엔 담배를, 한 손엔 아이스바. 백호는 본인이 농구를 시작한 후, 본인 앞에선 담배를 피우지 않던 호열이 저러는 게 어색했다. 그래도 그리운 냄새라 다시 뒤로 발라당 드러누웠다. 호열은 백호의 가슴을 두드렸다. 아기를 재우는 부모님처럼.


백호는 그날 호열의 집에서도 할아버지 꿈을 꿨다. 인어로 변한 할아버지. 몸은 반쯤 물에 잠긴 채 휘황찬란한 꼬리를 자랑했다. 나두요 나두요. 하고 손을 뻗었지만 안된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뱃일 하던 양반이라 바다는 이제 그만 보고 싶다 했는데 인어? 백호는 그런 생각을 하며 할아버지를 쳐다봤다. 항상 자기를 보면 개구지게 웃었지, 정색을 하는 사람이 아닌데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보자 백호는 이게 꿈인 걸 알아차렸다. 아 꿈이구나. 라고 말하는 순간 백호는 꿈에서 깨버렸다.




-




욕조에서 호열을 꺼낸 일 이후, 호열은 더 이상 욕조에 누워있지 않았다. 백호의 표정을 보니 하고 싶지 않아졌다고 했다. 호열은 백호를 만나는 일도 점점 줄여나갔다. 백호는 괜찮다 했지만 호열은 너무 미안하다고 내가 너무 미안해서 그렇다 했다. 백호가 매일매일 집에 오자 씁쓸하게 웃으며 백호야 이제 넌 해야 할 일이 있잖아. 하곤 머릴 쓰다듬었다. 대신 농구 시즌이 개막하면 경기는 꼭 보러 가겠다 했다. 이제 한 3달 남았지? 백호는 호열의 정수리를 보다 그냥 고갤 끄덕였다. 알았어. 호열은 점점 말라갔다. 인어인데 물에 안 들어가서 그런가? 시즌 개막 전에 바닷가에 가자고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왕이면 고향 바다가 더 좋겠지.





미국에서 러브콜이 왔다. 그것도 여러 곳이었다. 백호의 에이전시는 축하할 일이니 저녁을 같이 하자고 했지만 오늘은 미리 잡아둔 급한 일이 있다고 거절했다. 그까짓 저녁보다 호열이 더 중요했다. 거기가 왠지 오늘은 호열이 집에 있을 것만 같았다. 감이 좋은 편이니 아마도 맞을 거다. 저녁도 사줘야지. 우리는 좋은 일이 있음 돈을 모아 스시를 먹곤 했으니 오늘 저녁도 스시를 먹자고 해야겠다. 인어라 친구들 못 먹는다 하면 어떡하지? 백호는 생각이 많아지는 머리를 탈탈 털고 엑셀을 꾹 밟았다.


백호는 무려 2달 만에 호열의 집으로 갔다. 갈 때마다 집에 없던 녀석이라 매번 허탕만 쳤다. 남겨진 음성메시지엔 요새 일이 너무 바빠 정비소에서 숙식을 해결한다는 거였다. 사장님이 남는 방을 줘서. 그래서 거기서 숙식해. 이럴 거면 집 구하지 말 걸. 하하. 조만간 만나자. 곧 바쁜 일 끝난다.


백호는 초인종을 누르기 보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걸 택했다. 여전히 서늘한 집은 백호를 끌어당겼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오면 안 될 곳에 온 느낌. 물비린내가 났다. 백호는 미친듯이 떨리는 손을 욕실 손잡이에 얹었다. 날카로운 느낌에 이를 꽉 깨물었다.

백호는 욕실 문을 조심히 열었다. 예상이 빗나가길 바랐다. 감이 좋아도 너무 좋으면 안 좋다.

호열은 또 욕조 안에 있었다. 평소와 다르게 핏기 하나 없는 얼굴. 누가 보면 인형인 줄 알았을 거다. 백호는 급하게 호열을 끄집어냈다. 인어는 익사하지 않는다.
그건 거짓말이었다. 구급차를 부른 백호는 호열을 꼭 끌어안는 거 밖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무엇을 하든 이제 호열은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백호는 호열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맞대곤 뭐라뭐라 중얼거렸다. 감히 그 누구도 들을 수 없게 아주 작은 목소리로.



-



호열의 집은 평소와 다른 게 없었다. 매일 단정하게 정리 되어 있는 식탁엔 흰색 편지봉투가 하나 있었다. 봉투 겉면엔 백호에게라고 적혀있었다.
호열이 남긴 편지 곳곳엔 젖었다 마른 흔적이 있었다. 백호는 그것마저 인어인 애가 물에 들어간 채로 써서 그렇다며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백호야로 시작된 편지는 짧았다. 더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거였다.

백호는 글자가 잔뜩 번진 부분을 읽고 또 읽었다. 몇 번을 지웠다 썼는지 그 부분이 엉망이었다. 평소 호열의 글씨체완 다르게 죄다 구불구불거려서 백호는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놀랍게도, 그렇게 지렁이 같은 글씨였는데도 백호는 막힘없이 읽어내려갔다. 울지 않았음 좋겠다는 호열의 마지막 말에 백호는 편지를 곱게 접어 다시 봉투에 넣었다. 턱이 형편없이 떨렸다.

백호는 호열과 관련된 일이라면 바보 같을 정도로 믿어서, 그게 인어였다는 말이어도 끝까지 믿었다. 호열이가 나에게 거짓말을 할 리 없잖아. 백호에게 호열은 그냥 친구가 아니었다.



평소에도 아주 작은 호열은 정말 작게 돌아왔다. 백호는 화장이 진행될 때도 그 후에도 놀랍도록 평온했다. 호열이 남긴 말 때문에라도 울지 않았다. 가족이 없던 호열이라 모든 걸 백호가 진행했다. 어디 절로 갈 거냐는 관계자의 말에 일단 유골함을 받아든 백호는 집 가서 생각해본다 했다. 하지만 백호에겐 절이라는 선택지는 없었다. 백호는 유골함을 만지작거렸다. 널 불구덩이에 넣어서 미안해.

유골함을 들고 백호는 바닷가로 갔다. 우리 사이에 장갑은 너무 별로니까... 백호는 장갑을 벗었다. 까칠한 손이 닿으면 싫지 않을까 백호는 바닷물에 먼저 손을 적셨다. 축축해진 손을 유골함에 넣고 호열을 꺼냈다.
네가 그렇게 편하게 느끼는 물로 가라. 백호는 물이 좋다며 웃던 호열을 떠올렸다. 아마 지금도 웃고 있겠지. 항상 물을 그리웠했으니.


"인어에게 키스를 받으면 물 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어."


백호는 깔깔 웃으며 키스를 하던 호열을 떠올렸다. 저렇게 말한 후 백호가 잠수를 하면 어때? 숨 쉬어져? 하고 물었던 호열은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로 안 쉬어져? 그럼 한 번 더 해야겠다. 하고 여러 번 키스를 퍼부었다.

백호는 호열이 담긴 함에 입을 맞췄다. 부드러운 입술이 아닌 차갑고 매끈한 함.
넌 인어라 숨을 쉴 수 있지만 난 아니니까. 호열아.

백호는 더 깊은 바다로 한 발 한 발 내딛었다. 발목까지 오던 물이 허리까지 왔을 때, 비로소 웃음이 났다. 그리곤 가슴께로 물이 올라왔을 때 드디어 호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호열아,
물에 잠기면 아무 생각도 안 나네.
진짜로.


익사는 물 밖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니까 우리는 살러 가는 거야. 이 푸르디 푸른 물 속으로.


백호는 귀에 물이 가득 들어차 멍하게 들리는 물소리에 집중했다.
그렇게 깊게 집중한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



백호야

호열이다. 이 편지는 평생 숨기려 했어. 네가 읽지 않기를 바랐는데... 이게 내 손을 벗어나면 네가 읽고 있단 거겠지? 난 의지가 강하다 생각했는데 아닌 거 같다. 점점 날 보는 게 힘들어.
백호야 너에게 거짓말을 했어. 미안해. 인어는 무슨... 그치? 하지만 난 정말 인어가 되고 싶었어. 사실은 고래가 되고 싶기도 했고, 거북이도 나쁘지 않다 생각해. 아니면 아주 작은 물고기여도 좋고 더 작은 플랑크톤이어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
나는 아마 잘못 태어난 거 같아. 난 지상멀미를 하는지 땅에 발을 디디면 속이 울렁거려. 물 속에서 태어났다면 좋았을 걸. 내 몸은 모래가 묻는 몸이라 결국은 까슬거려져. 물에 사는 애들은 당연하게 24시간 내내 축축하잖아. 난 아닌데. 난 정말 잘못 태어났어. 섬에 사는 나날이 괴롭다. 사방이 바다라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을 해. 그래도 땅에 태어나 감사한 게 하나 있다. 백호 너를 만난 거야. 내가 좀 더 용기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미안하다.
가족이 없는 내게 가족이 되어줘서 고마워. 넌 나에게 친구 그 이상이었어. 울지 마. 넌 울면 못생겨지니까. 시체는 아무렇게나 해도 좋아. 기증을 해도 좋고. 담배를 너무 태워대서 안 받아주려나... 마지막까지 너에게 나쁜 짓만 하다 가네. 이런 것들까지 하게 해서 정말 미안해. 고마웠다.

호열이가.









호열백호








-









호열이랑 백호한테 정말 미안하다ㅜㅜㅜㅜㅜ 진짜 미안해짐... ㅇㅒ들아.... 하지만 넘 보고 싶었다.....ㅎ
2024.02.06 23:01
ㅇㅇ
모바일
맴이...찢어진다...ㅠㅠㅠㅠㅠ
[Code: d6e8]
2024.02.12 06:48
ㅇㅇ
모바일
마음이 박박 찢어진다...
[Code: 6956]
댓글 작성 권한이 없음
성인글은 제외된 검색 결과입니다.
글쓰기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