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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3 00:54

해연갤 - 샘딘 결별해놓고 다음 에피에서 우연히 만나서 스리슬쩍 같이 사건해결하고







성장통

 

바람이 분다.  낮은 하늘 아래로 바람이 불었다. 어두워진 하늘에는 누비이불 같은 구름이 빠르게 뭉치고 흩어졌다. 황야에서 날아온 모래가 창을 가끔씩 긁었다. 창문은 얇고 흰 홈이 패여 부옇다. 샘은 그 부연 창문에 눈을 박고 아래로 딱정벌레 같은 자동차들이 몇 개나 지나가는지 세었다. 창틀의 실리콘은 삭아서 잘못 만졌다간 빠질 것 같았다. 눌어붙은 먼지를 손끝으로 긁다가, 딱!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작은 돌멩이가 유리창에 맞았다.

샘은 엉덩방아를 찧었다. 바람이 너무 셌다. 형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도 그렇다. 그들은 그에게 너무 늦게까지 깨어있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너무 이르게 혼자 있었다. 시터가 샘에게 양해를 구하며 일찍 퇴근했던 탓이다. 온통 구름만 두텁더라도 너머에는 여적 떠있는 낮은 해가 있었다. 힐끗 눈을 새치름하게 뜬 샘이 침대에 걸터앉았다.

비가 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딘이 진흙을 화장실 타일에 덕지덕지 붙일 테니까. 딘은 어느 순간부터 아빠와 시간이 날 때마다 함께 사냥을 하러 떠났다. 다음날 학교에 가는 게 늦어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발목이 시렸다. 딘이 학교에 가지 않게 될까봐 걱정 되었다. 그는 발목을 덮고도 손가락 두 마디 올라오는 양말을 끌어 올리곤 침대에 누웠다. 얇은 시트에서 먼지 냄새가 났다. 너무 오래 널어놨던 모양이었다. 딘은 졸업시험을 따로 치고서라도 일찍 고등학교를 뛰쳐나올 것 같다. 하지만 샘은 딘이 학교를 제대로 다녀야 된다고 생각했다. 정확한 이유를 설명하긴 어려웠다. 바람이 불때마다 무릎이 시렸기 때문에, 샘은 고민을 멈췄다. 팔꿈치도 당기고, 허벅지가 시큰시큰했다. 형이 걱정됐다. 생각이 맴돌 때마다 무릎이 아팠다. 숙제는 모두 끝마친 이후였다. 그가 고민할 수 있는 종목은 몇 개 남지 않았다. 골똘한 생각이 마디마디를 휘감았다.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을 성장통이라 일컬었다.

 

***

 

4년 만에 본 딘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마치 어젯밤에도 그를 봤던 것 같았다. 콧잔등과 뺨의 주근깨는 늘었으면 늘었지 줄진 않았고, 두 개의 초록색 홍채 또한 여전했다. 그는 열여덟,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해였을 적에 아버지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임팔라를 끌고 나타났다. 존이 결혼을 하기 전에 샀다던 그 차는 영 헤진데 없이 그의 아들 곁에 있었다. 흔한 흠결 하나 없는 차체를 보면서 그는 제 형이 어련히 잘살았으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딘은 별반 달라진 게 없는 채로, “아버지가 사라졌어.” 아주 그대로인 채로, 그를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샘은 잠시 자신의 결론이 섣부른 것은 아닌지 재고해야 했다. 얼굴과 매끈한 차체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딘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가죽재킷을 입고 있었다. 존이 딘에게 가죽재킷을 준 것은 샘이 윈체스터가와 절연을 하고 난 이후에 생긴 일이었다. 샘은 그 부분에 대해서 예상할 수 없었고 못해야 했다. 그들은 4년간 일체의 연락도 하지 않았고…… 샘은 꿈을 꿨을 뿐이었다. 음,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데. 긴장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형을 바라보며 샘이 혀를 찼다. 어젯밤 꾸었던 꿈속의 딘과 제 앞에 서있는 딘은 꼭 닮아있었다. 아니, 완전히 같았다.

 

샘은 기어코 집을 기어 나왔던 4년 전의 자신을 기억했다. 그의 독립은 돈 관리에 철저하지 못한 존과 딘 덕분에 손쉽게 이루어졌다. 이따금씩 샘이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은 물론이고, 존은 가끔 정비소 일을 하곤 했는데 때마다 받은 사례비의 십분의 일은 뚝 떼어 아들들에게 넘겨주었던 것이다. 그를 샌프란시스코에 태워다 줄 버스표를 충당하는 것은 당연하고 풀칠할 돈까지 남겨주었다. 그가 대학을 결심하고부터 모은 돈은 이백달러가 조금 넘었다. 급하게 잘 수 있는 곳을 구해야 했고, 주린 배를 채워야 했다. 그는 네 명이서 방 하나를 갈라 쓰는 집을 찾아 들어갔다. 놀랍게도 몸을 접어 눕기만 해도 주마다 기십 달러가 빠져나갔다. 모텔에서 생활하는 게 더 쌀 판이었다. 그러나 그는 모텔로 돌아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입학 수속을 밟은 샘은 들어온 장학금으로 새로운 집을 구했다. 더불어 새벽 청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잠이 적은 그는 남는 시간에 돈을 벌기로 했다. 학교를 다니던 중에는 도서관에서 사무업무를 보며 교내에서 근무료를 받았다. 분명 장학금으로도 빠듯하게나마 생활이 가능했지만 그는 쉴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학교생활은 생각보다 별로였고, 상상이상으로 새로웠다. 중산층이거나 상류층인 아이들은 그가 고등학교에서 만나던 아이들과도 달랐다. 어쩌면 그처럼 지루하고 이상한데에나 관심이 있는 인간들만 모인 집단이어서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맞춤 정장을 입은 것처럼, 샘은 비로소 자신의 인생을 찾았다고 느꼈다.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나 짧은 조깅을 하며 빌딩에 들렸고, 사무실들을 청소했다. 일곱 시, 아래에 위치한 카페테리아에 들려 샐러드 따위로 배를 채웠으며 일곱시 이십분, 그는 전철을 탔다. 여덟시에 학교에 도착해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도서관에 들렸다. 아홉시부터 업무를 보며 공부를 하고, 강의를 듣고, 오후 6시면 모든 일과가 마무리 지어졌다. 저녁까지 모든 것을 완수하고 나면 그는 제시카를 만났다. 그의 일과표는 벗어나는 법이 없었다.

4년간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제시카의 부모님이 구해다준 집에서 더불어 머물게 되었던 것뿐이었다. 제시카와 샘은 퍼즐조각처럼 아주 잘 맞았다. 태초부터 서로를 위해 설계된 것 같았다. 아. 정말로, 샘은 그를 적절히 사랑했다. 지나치지 않은 사랑은 그를 격려했고 샘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샘은…… 그 누구에게도, 자신과 관심사가 같은 친구들이나 멘토를 자처하는 교수들 그리고 제시카, 아버지와 형이 하는 일에 대해서 입을 연 적은 없었다. 제시카는 샘의 가족관계에 대해 그저 서로 좋지 않은 사이란 정도만을 알았다. 처음 제시카는 변변찮은 가족싸움이라고 생각했다.

‘얼른 괜찮아 질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분명 아버지도 널 사랑하셔.’

샘은 존이 어떤 생각으로 자신을 방목하고 있는지, 예의주시하며 없는 목줄에 견제하는 것이 진정 자유인지 따위에 대해 알고 싶지 않았다. 그를 애닳게 하는 것은 4년간 딘이 일언반구의 연락도 없었다는 사실에 있었다. 그의 무의식이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경험이 쌓은 데이터가 미래를 도출해냈을 것이다. 아버지와 언쟁을 할 때면 딘은 미적지근한 간섭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것처럼 굴었으니. 그럼에도 샘은 넷이서 방을 나눠 쓸 때 핸드폰을 품에 껴안고 잤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샘은 잠을 잘 때마다 앓는 소리를 냈다. 처음 머문 집에선 위 침대에서 자는 마이크가 워낙 코를 심하게 골아 아무도 그에게 무어라 말하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잠버릇이 고약한 마이크와 달리 제시카는 조용한 편이었다. 그는 난생 처음 자신의 잠버릇에 대해 들었다. 언제부터 있었던 것일까? 존은 알았을까? 딘은 알았을까? 무엇이 문제였을까? 한동안 제시카는 샘에게 핸드폰에서 나오는 전자기장에 대해 권고했다.

더 이상 전화기를 끼고 자지 않는 샘은 잠들기 전에 딘을 생각했다. 그의 정해진 일과는 바뀌는 법이 없었다. 딘이 아직도 아버지 곁에 있는 것이 참을 수 없이 좆같았다. 딘이 그냥 살기를 바랐다. 복수에 미쳐버린 아버지를 따르지 않고 그냥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처럼 대학을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하지만 그의 형은 대학을 다닐 성격은 아닐 것 같았다. 아예 일찍 일자리를 잡아서… 긴 꿈은 그런 식으로 시작되었다.

 

 

샘의 희망과는 달리 꿈속의 내용은 한결 같이 사냥을 하고 아버지를 따르는 딘이었다. 회사원이 되었다든지, 정비공이 되었다든지, 총을 모르는 너드가 된다든지, 공상에서는 존재하던 것들이 꿈속에는 영 나타날 기색을 안보였다. 샘을 이해해주는 형은 꿈속에도 없었다. 현실의 시간 선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끝없이 진행되었다. 밤마다 하루가 바뀌었고, 도입과 절정 마무리가 없었다. 이 꿈들은 전개뿐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딘은 혼자 다니기 시작했다. 존이 딘을 믿을 만한 사냥꾼이라고 인정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꿈속에서 딘은 그렇게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의 인정이 제일 중요한 게 아니었던가? 그는 존에게 자신이 이제 혼자 다녀도 되는 것이냐며 물었지만 그것은 즐거운 반문이 아니었고, 오히려 두려움에 젖은 목소리였다.

“너를 믿는다.” 정말일까? 그 의문이 꿈을 꾸는 샘에게도 적나라했다. 존은 으레 하는 소리로 딘을 다독였고 자신의 가죽재킷을 벗어주었다. 그리곤 떠났다. 딘은 존의 행동에 짙은 의문을 느끼고 있었다. 형이 아버지가 하는 일에 생각을 한단 말이야? 샘은 딘이 자유를 만끽하거나, 존의 말에 기뻐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비껴나갔다.

그는 외로워 보였다.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어찌할 바를 몰라 하기도 했고, 길거리를 지나며 알게 된 여자들과 실없는 메시지를 나누기도 했다. 그는 때때로 샘의 전화번호를 눌렀지만 전화한 적은 없었다. 술집을 전전하며 여자들을 꼬시기도 했다. 눈을 맞추고 술집을 나가는 모습까지만 보여줘도 충분히 알아들었을 텐데 이 꿈은 시청연령가가 없었다. 이름 모르는 여자와 발가벗고 부둥켜안는 모습까지 그려지곤 했는데, 샘은 때마다 찌푸린 얼굴로 아침을 맞이해야 했다. 불편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다. 딘이 존과 떨어지는 순간부터 샘은 딘이 무언가 다른…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샘이 원하는 이야기나 전개는 없었고, 모든 꿈은 그의 안락을 의심하게만 만들었다.

무의식은 제 맘대로 조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잠자코 수면을 취해야만 했다.

그가 자면서 앓는 소리를 내는 이유에 대한 추측중 하나가 이것이었다. 밤마다 제 뜻대로 풀리지 않는 꿈을 끝없이 꾸는 것. 때때로 별 상관없는 꿈도 섞어 꾸긴 했지만, 대부분의 꿈들이 샘의 무의식이 실행한 모의실험이었다. 그 것도 절연한 가족의. 그것은 고문에 가까웠다.

두 번째 추측은 그의 성장통이었다. 그는 대학을 다니는 중에도 키가 자랐다. 대학 친구들은 입학할 때보다 훨씬 더 자란 샘을 보며 무스라고 놀리곤 했다. 그는 잠에 들고 나면 무릎이 아팠고 뼈가 시렸다. 지랄맞은 통증은 끝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샘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딘이 자신을 찾아오는 꿈을 꾸었다. 4년 만에 만난 딘은 어제 꿈속의 얼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게 있다면, 이제 동생은 형보다 시선이 높았다.

 

***

 

기어코 딘이 화장실을 진흙 구덩이로 만든 날, 그때까지만 해도 샘은 딘보다 훨씬 작았다. 딘은 단 한 번도 또래 애들 사이에서 작아본 적이 없었는데, 이 무슨 조화인지 샘은 언제나 다른 아이들보다 한 뼘은 작았다. 존의 체격도 작은 체격은 아니었으니…

딘이 생각하기에 샘은 윈체스터 가에서 특별한 아이였다. 다만 그의 소중함과는 별개로 딘은 작아서 생기는 불상사에 전혀 공감을 하지 못했다. 기어오르면 쥐어 패면 되지. 여섯 살부터 총을 쥐었던 사내애는 대강 그런 사고에서 머물렀다. 어찌나 거칠게 구는지 같은 학년의 남자아이들은 그를 건드릴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런 그가 유순한 동생이 체격을 이유로 표적이 되는 것에 대해 이해를 할 수 있을 리가. 딘은 그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착하고 작은 아이가 당하는 게 당연한 세상 아닌 가? 선함과 나약을 혼동하는 딘에게 있어서 샘의 고질병은 나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딘은 샘의 선함이 사라지길 진심으로 바란 적은 없었다.

 

기묘한 그의 걱정은 신묘한 해결법을 착안해냈는데, 샘이 빨리 자라나는 것이었고, 샘이 빠르게 자라나기 위해서 자신이 돕는 것이었으며, 그의 도움은 아마추어 마사지로 구체화되었다. 늦게 귀가하고 난 이후에 잠든 동생의 다리를 주무르고 당기며 밀가루 반죽처럼 동생이 늘어나길 바라면서…

“왔어?”

동생은 칭얼거리는 소리로 형을 맞았다. 끔뻑거리는 눈꺼풀이 아직 잠에 취해있었다. 쉿, 그가 작은 숨소리로 샘에게 경고했다. 존은 이미 누운 이후였다. 샘은 잠자코 입을 다물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열 두 살짜리 인내가 뭐 얼마만큼 길겠는가. 딘이 부드럽게 주물러 대고 있다곤 하지만 마디가 굵어지기 시작한 손가락이 다리위를 배외하는 것을 모두 무시해 내긴 어려웠다. 이내 동생은 형을 발로 밀어냈다.

“딘… 그만 하고 이리와.”

덮고 있던 이불을 들어 올려 손짓한다. 딘은 피식 웃으며 동생의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샘이 13살이 되기 몇 달 전의 일이었다.

딘은 동생의 이불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그 것은 딘이 가진 사명이자 특권이었다. 샘이 너무 달라붙는다거나 귀찮을 때는 그를 밀어냈지만 저 자신이 샘의 이불 속에 손을 집어넣을 때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문제는 형제의 생각이 일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샘은 사정이 달랐다. 그의 마사지는 샘의 열 한 살 때부터 시작되어서 열 다섯이 된 이후에도 줄곧 반복되었다. 딘이 말하던 샘의 특별함은 때로 유별난 것으로 둔갑했다. 그래놓고선 그가 내킬 때는 밤마다 포장한 부리또라도 되는 듯 자신의 다리를 주무르고 싶어 했다. 가끔은 그냥 손을 녹이고 싶어 만지작 거리는 것 같았으니 호르몬이 잔뜩 날뛰는 사춘기 어린애는 짜증으로 응어리가 맺히기 직전이었다.

여느때처럼 딘은 차가운 새벽바람을 한 아름 안고 샘의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왔다. 그리고선 샘의 팔을 주무르고 다리를 주물렀다. 체온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항온동물의 본능답게, 샘은 차가운 손끝이 닿는 게 싫었다. 만국의 동생들은 알고 있겠지만 형이란 존재들은 동생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법이 없다. 밀어내면 밀어내는 대로 딘은 허허롭게 웃으며 동생 녀석을 제압했다. 그리곤 안마를 거듭했다.

13살을 기점으로 샘은 하루가 다르게 자랐다. 콩나물마냥 길게 뻗는 샘의 뼈는 아무 무리 없이 자라났다.

“형 덕분이니까 뽀뽀한 번 해보지 그래?”

그에 딘은 만족스럽게 입술을 쭉 내밀고 거들먹거렸다.

샘이 달라지는 풍경에 적응하지 못한 것처럼, 뼈에 붙은 살점들 또한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단순히 여자애들이 그에게 은근한 미소를 보내오는 것처럼 달콤한 종류의 변화가 아니었던 것이다. 육체의 불협화음은 고통이었다. 입이 닳도록 샘은 딘의 손길을 거부했지만 솔직히 샘의 근육통에 있어 딘의 마사지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었다.

사춘기 소년의 비극은 대개 이런 식으로 시작되었다. 샘이 딘이 허벅지를 쥐거나 팔뚝을 매만질 때마다 불편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대부분의 경우 어둠에 눈이 익어 이놈의 안마사는 전혀 모르는 듯 했다. 그러나 때때로 딘은 샘이 발기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조금 더 어릴 때에 샘은 부끄러움을 느껴서 자발적으로 고해 받쳤다. 이게 왜 이러지? 어버버, 놀란 게눈을 하고 샘은 몇 번이고 딘을 밀어냈다. 하지만 하루에도 열두 번 더 헷갈리는 사춘기 꼬맹이들의 고추사정을 알고 있는 딘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내가 네 기저귀도 갈아줬는걸, 그런 것 가지고 유난은.”

샘도 다섯 번 이상 세우고 보니 흔한 일 같아서 별 일이 아닌 척 내버려두었다. 그러나 어느 날이었던가, 샘은 리틀 새미가 바짝 긴장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꾸벅 꾸벅 조는 새벽의 딘은 허벅지 근육을 풀어주다가 둔한 손이 가랑이 사이로 들어왔다. 반사적으로 샘은 다리 근육을 조였다. 단숨에 샘의 다리 사이 낀 - 샘은 축구소년단에서 상을 받았을 정도로 준수한 다리 근육을 가지고 있었다. - 딘이 멍청한 소리를 냈다.

“어?”

샘은 놀란 눈으로 눈꺼풀을 끔뻑이는 딘을 밀쳐냈다. 사타구니와 닿았던 감촉이 선연했다.

“뭐였어?”

가끔씩 자다 깨서 깜짝 놀라 진저리를 치는 동생이었기에 딘은 사태파악이 더뎠다. 얼얼할 만치 꽉 조여졌던 손을 쥐고 어벙하게 묻는 그의 얼굴은 참 순진했다. 기하학 문제를 두고 동생이 열변을 토하면 그러냐? 하며 시덥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던 그 얼굴과 다르지 않았다. 형이 먼저 물어 봤었으면서! 딘은 샘의 볼륨을 높이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그냥… 나가!”

“야,”

“나가라니까?!”

딘은 샘의 눈망울이 젖어있는 것을 보고 잠자코 방문을 닫았다. 섬세한 녀석이야. 아직 왼쪽 허벅지는 손도 안 댔는데.

샘은 서러웠다. 이불을 끌어 모아 안고 축축한 속눈썹을 닫으며 들끓는 화를 참았다. 그렇게 졸리면서 왜 굳이 내 침대로 기어 들어와서 나를 귀찮게 하는 거야, 왜 나를 당황스럽게 하는 거야, 내 인생을 주무르고 만지려고 하는 거야… 실제로 딘이 만진 것은 제 거시기였지만 당시 샘에게는 그런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샘과 딘은 적막한 식탁에서 시리얼을 말았다. 의아한 낯으로 정적을 가늠하다가 농담처럼 입을 열었다.

“사내 녀석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샘은 딘의 놀림이 길어질 만약이 싫어 입을 꾹 다물고만 있었다. 그의 침묵시위에 딘이 농담조로 혼자 하는 대화를 이어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건전하게 사는 것 아냐? 공부도 좋지만…”

샘의 플라스틱 그릇에서 우유가 튀었다. 그는 바삭한 겉면을 적신다는 명목으로 거친 스푼 질을 하고 있었다.

“혼자 하는 법 몰라? 형이 한발 빼줄까?”

샘이 눈을 치켜뜨고 딘을 쳐다봤다. 워… 성난 짐승이라도 달래듯이 딘이 너털웃음을 냈다. 그의 동생이 입을 열었다.

“다시는 내 침대 위에 올라올 생각 하지마.”

마디마디 꾹꾹 눌러넣은 감정이 넘실댔다. 대체 뭐가 그렇게 대단한 일이었다고. 딘은 억울했다. 계속해서 동생의 응석을 들어주는 건 그의 심기도 뒤틀리게 했다.

“내가 그것도 못하냐?”

“허, 뭐?”

“됐다. 나도 싫다는 사람 안 건드려.”

존이 헛기침을 내기 전까지만 해도 형제의 사나운 분위기는 사그라들 줄 몰랐다. 샘은 더 이상 형과 대거리를 하고 싶지 않은 듯 스푼을 내려놓았다.

“꼬맹아, 너 그러다 키 안 큰다?”

샘이 딘을 바라보며 고개를 꺾었다. 윗 턱과 아래턱이 시비조로 맞물리지 않았고 그의 턱근육이 긴장하는 게 보였다. 제 형을 빤히 바라보며 그가 그릇에 입을 대고 마시기 시작했다. 점차 솟아오르고 있는 목젖이 바쁘게 움직였다. 마침내 그릇을 내려놓고 볼이 홀쭉해질 때까지 샘은 입안의 우유를 마시고 시리얼을 짓씹었다. 대화가 끊기고 채 삼분이 지나기도 전에 아침을 마셔버린 샘이 엉덩이를 뗐다. 그런 식으로 형제의 전통이 하나 사라졌다.

 

***

 

미국 전역의 모텔들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모텔 주인들의 은밀한 연합이라도 있는 걸까? 그들끼리 단합이라도 한 것처럼 모든 천장은 낯이 익었다. 건축 자재비의 단가 문제일게 빤했지만 샘은 자주 그런 음모론을 이어가는 걸 즐겼다.

낯익은 천장은 그의 머리맡에 있었다. 딘은 그의 옆에 누워 있었다. 새근새근 숨을 쉬며 꿈도 없이 잠을 잤다. 잠에 몰두할 때면 딘은 거친 숨소리를 뿜었다. 예민한 샘의 귀는 그 소리가 거슬릴 법도 하건만 마치 자장가라도 되는 듯 심장이 온화했다. 그가 슬핏 눈을 돌리면 푸른 밤이 딘을 매만지고 있었다. 흉곽이 부풀었다가 낮아진다. 약간은 건조한 공기가 샘의 폐부에도 찼다. 흐릿한 곰팡내, 먼지냄새와 싸구려 방향제, 그런 것들. 형제는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었다. 노랗게 바란 커튼은 모든 달빛을 차단하지 않았다. 얇아진 창이 전하고 바라진 커튼이 전한 빛 아래에서 딘이 매끈한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지나치게 느린 감각. 조용한 행동거지로 그가 샘을 바라봤다. 시트가 비벼지는 마찰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몸을 일으킨 딘이 샘을 바라봤다. 딘은 샘의 침대 쪽으로 다리를 빼고 앉았다. 손을 곰질거리면서 가만히 앉아있는 딘은 제 동생을 바라봤다. 딘은 다시 침대에 누웠다. 샘의 취미처럼 천장의 무늬를 세아 리는 듯 하다가 돌아누웠다. 샘은 입을 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는 꿈을 꾸는 중이었다. 함께 있는 형에 관한 꿈을.

꿈속에서 딘은 점점 과감해졌다. 가만히 앉아있던 게 닷새 전이었다면 나흘부터는 우뚝 섰다. 사흘부터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발을 떼기 시작했고 이틀 전에는 샘의 침대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어제는 샘의 침대에 앉았다. 그의 모든 행동이 샘을 향하고 있었다. 그들이 있는 공간은 미묘하게 변하고 있었다. 벽지는 붉은 색이었다가 노란 색이었다가 초록색이 되었다. 침대의 간격은 넓어졌다가 좁아졌다가 아주 넓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딘이 점점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그의 입술은 호선을 그리다가 낙하하기도 했고 눈물이 맺히다가 마르기도 했다. 소리 없는 행복이 느껴졌다. 형의 행복의 냄새는 동생의 코에서 뿜어져 나오는 모텔방의 향기였다. 샘은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했다.

 

옅은 갈색으로 익은 빵이 흘러내리도록 높게 쌓인 햄버거였다. 저품질의 소고기 패티는 지방이 박혀있었고 두 개나 추가한 치즈는 열기에 녹아내리고 있었다. 머스타드 소스와 데리야끼 소스가 빵사이를 비집고 나왔다. 각 빵의 안쪽면마다 얇은 상추가 있었다. 외의 야채라고는 피클이 전부 일게 분명했다. 코팅된 종이로 햄버거를 두 손으로 잡고 코끝으로 냄새를 들이켰다. 그리고선 입을 쩍 벌리고 밀어 넣었다. 양껏 베어 물은 입술이 번들거렸다. 우물거리는 채로 물어온다. 안 먹어? 자칫하면 터져 나올 것 같은 입매무새를 보며 샘이 고개를 저었다.

“잘 먹고 있거든.”

몇 번 씹지 않고 삼킨 입이 물었다.

“그런 걸로 배가 차냐?”

네가 그러니까- 그러고는 묵음. 딘은 또다시 새로운 한입을 쑤셔 넣었다. 눈을 반짝이며 햄버거를 씹는 얼굴에 샘은 피식 숨이 빠져나가듯이 웃었다. 샘은 번들거리는 입술을 보며 형이 바보같다고 생각했다. 4년전에도 그랬다.

새삼스러울 정도로, 딘은 함께했던 시간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딘.”

“왜”

“여전히 조용히 자질 못하는 거 알아?”

샘의 한마디에 딘은 눈썹을 들어 올렸다.

“한 번 잘 때 제대로 자야지. 형이 제대로 못하는 게 있었냐?”

딘은 잠이 깊게 들면 코를 골았다. 시끄러웠다.

“야, 내놔.”

“됐어.”

어깨에 어깨를 부딪히며 열쇠를 빼앗아가는 손은 재빨랐다. 딘은 운전대 잡는 걸 좋아했다. 때때로 짜증나는 고집이었다.

"이발기를 어디 뒀더라.“

“왜? 괜찮은데.”

“하지 마,”

“뭘?”

“변태 할아범같이 내 머리를 더듬지 말라고.”

“내가 깎아줄까?”

샘이 딘의 뒷머리에서 손을 떼며 물었다. 딘은 머리카락의 길이를 일정하게 유지했다. 촌스러웠다.

“헤헤.”

“머저리같이 굴지 마, 물어보긴 했어?”

“글쎄. 번호는 얻었지.”

숫자가 적힌 쪽지를 주머니에서 꺼내며 딘이 웃었다. 그제나 저제나 그는 여자들에게 헤프게 굴었다. 확실히, 머저리 같았다.

“우리 새미, 엉덩이가 종마 같은 걸.”

“샘이라고 부르랬- 종마? 그게 동생한테 할 소리야?”

“성난 엉덩이가 예뻐서 그런다 왜.”

성적인 농담을 지껄였다. 등신 같다.

“업데이트 좀 하면 안 돼?”

“대학도 간 녀석이 클래식은 영원한 거 모르니?”

딘은 샘에게서 카세트 테이프 상자속의 메탈리카를 빼앗아 들고는 씩 웃었다. 딘은 여전히 구식인 노래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버지가 들려줬던 쓰레기들이었다.

형을 마주할 때마다 샘이 느낀 것들이었다. 꿈속의 딘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쉽게 웃었고, 생각이 짧았다. A4용지 반쪽에도 채울 수 있는 게 딘이었다. 샘은 언제나 고개를 가로저으면서도 자신이 웃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곤 했다.

 

새로 얻은 방의 벽지 색은 옅은 갈색이었다. 중늙은이 같은 금색 무늬가 그려진… 샘은 오늘 자신이 어떤 꿈을 꿀 지 궁금했다. 꿈속의 딘이 궁금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고 싶었다. 꿈속의 딘은 뭐가 그렇게 어려운 걸까? 그가 가까워 질수록 샘의 심장이 떨렸다. 손끝이 축축하게 젖는 듯도 했다. 발끝부터 열감이 올랐다. 긴장. 샘은 꿈속의 그가 거리를 좁히는 것이 여러 방향으로 읽힐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렴풋이 샘은 꿈속의 그 남자가 샘과 닿고 싶어 한다고 느꼈다. 그러나 모든 행동양상은 비참한 고뇌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좁아든 미간 축축해진 눈가 가만두지 못하는 손가락. 심장이 떨렸다. 딘의 베개 밑에는 직접 만든 총이 잠들어 있었다. 어쩌면 그가 자신을 죽이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가 어떤 짓을 저지를지에 대하여 추측했다. 맨 손으로 목을 조를 지도 모르겠다. 샘은… 꿈속의 딘이 얼마나 알 수 없는 존재인지에 주목했다.

젖은 머리카락을 털어내겠다고 저에게 물을 튀기는 남자와는 달랐다. 반음 올라간 올드 락을 흥얼거리는 딘의 얼굴이 발그랗다. 샘은 튄 물방울을 손등으로 훔쳐내곤 침대에 드러누웠다. 딘보다 빠르게 잠에 들 예정이었다.

샘의 의식은 추를 단 시체처럼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던 누런 모텔불도 꺼진 이후였다. 잠시 동안 샘은 제시카에 관한 꿈을 꾸었다. 뺨으로 떨어졌던 따듯한 방울들…… 그 방울들이 샘의 얼굴을 완전히 적셨을 때 샘은 눈을 떴다. 그리고 또다시 어두운 모텔 방안이었다. 여행을 떠난 형제가 함께 머무는 방 안이었다. 침대에 이미 딘이 앉아있었다. 그가 손을 뻗어 오고 있었다. 샘이 침을 삼켰다.

 

***

 

언젠가 샘은 농구시합을 보러간 적이 있었다. 스탠포드 카디널과 캔자스 제이호크스와의 경기였다. 해가 높고 뜨거운 여름이었다. 홧홧해진 정수리를 쓰다듬으며 실내 경기장에 들어섰던 기억이 선명했다. 출입과 동시에 열기를 식히던 에어컨 바람아래 수백이 웃고 떠들고 있었다. 단란한 가족들, 저처럼 애인이나 친구와 와선 떠드는 얼굴들이 보였다. 샘은 표를 살피며 성큼성큼 걸어갔다.

“꺽다리들이라 그런 가 너무 빨리 걷는 다니까.”

뒤에서 잭이 투덜거리는 소리에 제시카가 저보다 작은 남자애의 머리를 흐트러 뜨렸다. 소란한 중에도 제시카는 샘에게 이전에도 제이호크스 경기를 본적 있느냐 물어왔다.

“아니.”

제이호크스가 소속된 대학은 샘이 태어난 고향에 위치한 학교였다. 하필이면 농구로 꽤나 알아주는 대학교인지 잭은 어떻게 로렌스에 살면서도 보지 않았냐며 놀라워했다. 애당초 로렌스에서 태어났을 따름이지 오랜 시간 거주를 한 것도 아닌 그는 그렇다할 정도 붙이지 못한 동네였다. 게다가 샘은 제이호크스의 농구경기만 놓치지 않았다. 그 이전까지 농구경기를 본 전례가 없었다.

 

그가 경기장까지 와서 본 경기라고는… 저물어가는 레슬링 극단의 무대가 전부였다. 윈체스터 일가도 이곳저곳 떠돌기 마련이었지만 레슬링 극단 또한 그들과 처지가 마찬가지였다. 우연찮게 그들이 머물게 된 곳 주변에 천막이 세워지면 아버지는 형제에게 표를 사주었다. 딘과 샘은 과자봉지 하나와 서로의 손만을 잡고 천막 안으로 들어섰다. 아버지와 함께 레슬링을 보기도 했던 그들은 레슬링이 얼마나 재밌는지 잘 알고 있었다. 들어서자마자 링을 감싼 간이 의자들이 보였다. 지정석은 따로 없었다. 먼저 가서 엉덩이를 대는 사람이 임자였으므로 형제는 바쁘게 움직였다. 딘은 널찍한 보폭으로 뛰는 것처럼 걸었고, 형의 손에 매달린 모양새의 동생은 짧은 다리를 최대한 빠르게 놀려야 했다. 샘의 손과 손목이 빠질 것처럼 빠르게 달린 결과로 그들은 앞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옥외 서커스 천막 안은 먼지 냄새가 났다. 가끔씩 샘은 콜록 거리며 기침했고, 딘은 감기에라도 걸렸냐며 물어오곤 했다. 딘이 손수건으로 샘의 코를 닦아주는 사이 관중석이 차기 시작했다. 서커스단이 머무는 동안만 아르바이트를 하는 고등학생이 경기가 시작하기 전에 탈취제를 뿌리면서 다녔다.

“너희 과자 다 흘리고 그러면 안 된다?”

분무기를 쥔 여자애가 딘에게 경고했다. 딘이 샘에게 손수건을 넘겨주었다. 대용량 봉지과자를 뜯으며 딘이 예의 느끼한 표정을 지었다.

“흘리면 주우러 와 주게?”

지리멸렬한 추파를 던졌다. 당돌한 꼬마의 -딘은 14살이 되기 직전이었다.- 치근덕거림이 영 싫지는 않았는지 그가 피식거렸다. 샘은 그 헛짓거리들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면서 딘의 품에서 나초 칩을 빼앗아 갔다.

“뭐하는 짓이야?”

나초칩 대신 코묻은 손수건을 쥐어준 샘이 링을 쳐다봤다. 새미? 그들의 대화가 더 이어지기 전에 천막 안의 불이 꺼지기 시작했다. 과장된 목소리와 협의된 결투가 주어지는 레슬링은 어린 시절 윈체스터 형제에게 소중한 시간이었다. 낮은 관중석과 레슬링이 진행되는 동안 사라지는 아버지를 알면서도 둘은 우락부락한 남자들이 나와 소리 지르고 엎어지는 걸 보면서 즐거워했다.

상대에게 눌려 아파하는 소리를 들으면 샘은 저도 모르게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할 수 있다며 소리를 질러댔다. 여물지 않은 목소리는 튀어나온 못처럼 모두의 귀를 사로잡았을 것이다. 그러나 딘은 그런 샘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딘은 제 동생과 별반 다를 것 없이 발을 동동 굴렀었다.

경기가 끝나고 난 뒤 밖은 어두웠다. 그 여자애가 우려했던 것처럼 형제는 과자의 대부분을 흘렸고 봉지에는 아주 조금만 남아있었다. 딘은 아르바이트생의 번호를 따지 못했고 그럴 겨를도 없었다.

“젠장.”

그 날 유난히 하늘이 낮더라니. 빗방울에 흙바닥이 패이고 있었다. 딘은 아직 열 세 살이었다. 윈체스터가의 차는 존에게 있었고 존은 일을 하고 있었다. 그의 일을 방해할 순 없었다. 딘은 휴대전화를 꺼낼 생각도 못하고 비가 내리는 전경을 바라보았다. 십대 후반의 남자애들이나 삼사십 대의 남자무리들이 빠른 걸음으로 뛰어가는 것이 보였다. 간혹 아버지와 아들도 있었다. 모두들 그들의 차로 뜀박질을 했다. 형제만이 멀뚱히 비가 쏟아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사람 겨우 서있는 처마 밑에서 하늘을 올려보면 시커먼 먹구름이 꾸물거리며 비를 토해내고 있었다. 줄기가 굵은 빗방울은 맞기만 해도 정수리가 따가울 것 같았다. 그칠 기미도 없었다. 비만 내리지 않았더라면 걸어서도 갔을 테지만…….

문득 딘이 입을 열어 샘에게 당부했다.

“조금만 가면 마트가 있어. 내가 수잔에게 말해 놓을 테니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알겠지?”

수잔은 딘과 샘의 과자를 치우느라 아직 천막 안에 있었다. 딘은 급한 기색으로, 샘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형이 우산 사올게.” 샘과 딘은 무사히 그들이 머무르는 모텔까지 갈수 있었다. 샘의 운동화가 젖었을 뿐이다. 축축한 양말을 널면서 형은 유쾌하게 웃었다. 그래도 집에 왔다. 그렇지? 샘은 모텔은 집이 아니라고 투덜거렸다. 딘이 결좋은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새미, 너랑 내가 함께 있으면 그게 우리 집인 거야.”

그 날 딘은 호된 여름 감기에 걸렸었다…….

 

농구 시합은 제이호크스의 승리였다. 경기는 생각보다 지지부진했고 그렇게 재밌지도 않았다. 스포츠맨십이라는 건조하고 듣기 좋은 단어로 쓰인 경기는 샘에게 와 닿지 않았다. 너무 오랫동안 그는 천박한 스포츠에 노출되어 살았다. 중산층의 친구들은 소리를 높여가며 스탠포드를 응원했다. 결국에는 졌지만 재밌었다는 둥 이야기를 하며 그들이 일어났다. 샘은 자기가 응원하던 선수가 지면 울음을 터뜨릴 정도로 이입하곤 했다.

무심코 눈물이 흘렀다. 농구경기가 그렇게까지 감동적이었던가? 레베카가 샘의 등을 건드리며 물었다.

“안 일어나고 뭐해?”

제시카가 그의 등을 쓸며 물어왔다.

“괜찮아?”

아마 딘은 동생이 감기에 걸릴까봐 걱정했을 것이다. 당시 어린애들이 모텔방에서 머물다보면 면역성 비염을 가질 확률이 얼마나 높은가. 딘도 그 못잖게 집구석을 지겨워했다는 것도. 샘은 뒤늦게 깨달은게 꽤나 많았다. 더 이상 샘은 별게 아닌 것으로 콧물을 훌쩍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샘은 이따금 코를 훌쩍였는데 딘이 곁에 없다는 것이 부채감으로 다가올 때였다.

 

***

 

애초에 계획했던 딘과의 여행은 단발 적인 것이었다. 몇 해만에 만난 형과 난제를 풀어낸다.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모든 일을 끝마친다. 그리고선 월요일에 있는 법학대학 면접에 가기 위해 형에게 기한 없는 약속을 하는 것이다.

“나중에 도우러 갈게.”

그렇게 형과 자신은 헤어졌다.

 

그게 그가 계획한 모든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악몽이라고 치부했던 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 문장은 끝날 수 없었다. 샘은 제시카가 죽는 꿈을 꾸곤 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무한한 잠재력을 얕봤다. 해를 끼고 지구가 열여덟 번 돌면서 겪었던 삶이 빚어내는 망상인 줄로만 알았다. 지극히 이성적인 그의 판단은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빌어먹을 세상은 합리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밤중 나타나는 괴물들을 처치하는 형을 그리던 것처럼 관성적인 불안감이었어야 했다. 운명을 점치는 녀석들이 있다면 샘을 필시 경멸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그의 인생에 필요에 의한 가정은 실재한 적이 없었다.

샘은 제 애인을 죽인 그것을 어떻게든 불사르고 싶었다. 숨통을 쥐고 흔들면서 배를 갈라주고 싶었다.

그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그의 집은 불에 탔다. 샘은 드글드글 끓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어쩔 수 없이 형과 남아 여행을 계속 했다. 아버지를 찾고, 복수를 하기 위해서. 복수라는 대명제 아래 일상이 흘러갔다. 4년간 쌓아온 것들이 허투루 사라지지 않길 바랐다. 발버둥 치며 지어온 삶의 방벽이 모래성이라면 참을 수 없을 테다. 지식들, 사람들, 새로 만든 취미들. 그 중 하나는 그의 두개골에서만 자리하는 꿈속의 형이었다. 속을 알 수 없는 꿈속의 딘. 같은가 싶다가도 전혀 다른 남자였다. 샘은 자연스럽게 이 꿈들이 스탠포드에서 꾸던 꿈들의 연장이라고 믿었다. 여태까지의 딘은 아버지와도 떨어져서 혼자 있었다. 그러나 낮에 겪는 일련의 일들이 반영되는 것인지 이 꿈속에서 그는 샘과 함께 있었다. 샘은 특정지을 수 있는 정체성의 존재가 그와 함께 있는 게 흥미로웠다. 그뿐이랴 오늘의 딘은 이미 샘의 침대에 앉아있었고 그에게 손을 뻗고 있었다. 샘이 덮고 있는 이불을 걷어내고 나면 딘은 어쩔 것인가. 차가운 공기가 퍼졌다. 딘의 손끝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는 지금도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가 어깨를 매만진다. 샘의 가슴이 일렁였다. 잠시간 어깨를 쓰다듬다가 손이 조금씩 내려왔다. 손가락 다섯 개가 펼쳐지고, 팔을 감싸 쥔다. 작은 압력이 가해졌다. 근육의 결대로 손가락이 움직였다. 샘은 침음을 흘렸다. 이건… 너무나도 익숙한 것이었다.

끝이 거칠어진 엄지로 꾹꾹 누르는가 싶더니 팔뚝까지 내려온 손이 손목을 조물 거린다. 그러다가 손목에 고리를 만들어 얼마나 굵은지 가늠했다. 힘이 들어가지 않아 뚝뚝 떨어지려는 손을 잡고 맞대어 보기도 했다. 딘은 샘보다 조금 더 손이 작았다. 흠, 숨소리 같은 감탄이 살금 터져 나왔다. 샘은 자신이 계속 끙끙 앓는 소리를 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낑낑거리는 개처럼 그는 조용히 딘이 하는 양을 쳐다보고 있었다. 손을 맞대고 조용한 시간을 보내던 그가 조심스럽게 손을 잡아왔다. 포개어 놓은 손이 비껴나가더니 빈자리를 메웠다. 건조한 손가락과 손가락 새로 온기가 퍼졌다.

돌연 샘은 내던 음성을 끊었다. 딘이 손을 잡는 순간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딘은 정수리를 내어 보이며 손잡고 있기에 여념이 없더니 고개를 돌려 샘을 쳐다봤다. 그리고는 당혹스러워하는 목소리가 삐걱거렸다.

“새미?”

“디……”

아.

샘이 꿈에서 깼다. 자신이 깨어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여태까지 내던 음성들 또한 진짜로 울려 퍼지던 것이란 사실도 파악했다.

"아니, 옆에 있는 녀석이 자꾸 아픈 소리를 내길래-“

샘은 멍청한 낯으로 딘의 변명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가 눈을 끔뻑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15살 때 이후로 처음이잖아. 매일 매일 끙끙 앓는 소리를 내는데 내가 걱정이 생기지 안 생기겠냐?”

형은 얼뜨기 같았다. 어떻게 말해야 사람들이 마음을 여는지를 몰랐다. 같이 탐정흉내를 내고 있다 보면 확실했다. 딘은 말솜씨가 없다. 새삼스레 잡고 있던 손을 빼내려고 하자 샘이 그의 손을 잡아왔다.

“깍지까지 끼고 이게 뭐하는 짓이야.”

조용히 웅얼거리는 샘의 목소리에 딘이 입을 다물었다. 샘은 어둔 밤중에도 옅게 빛나는 형을 쳐다보고 있었다. 잠시간이 침묵이 흐르고 딘이 참지 못해 물었다.

“안 놓을 거냐?”

샘은 실낱같은 시야로 제 손을 잡고 있는 남자를 봤다. 시끄러운 딘. 짜증나는 딘. 촌스러운 딘. 머저리 같은 딘. 등신 같은 딘. 쓰레기 같은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딘. 그래서… 딘은 샘을 사랑한다. 샘은 딘을 증오하는데도. 딘을 미워하려고 노력한 적은 없었지만 샘의 겉잡을 수 없는 화는 이곳저곳으로 뻗쳤다. 샘은 4년간 딘을 보고 싶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형을 종이 한 면에 다 그려낼 수 있다고 착각했나봐. 그러고 싶었나봐. 샘은 새삼스럽게 자신의 잠재력을 깨달았다. 여자 친구가 죽을 걸 예지했듯이 다를 게 없다. 보고 싶어서 죽고 싶었던 그는 형을 밤새 훔쳐보고 있었다.

“딘.”

“…왜.”

“마사지… 해줘도 돼.”

침잠하는 새벽 중에 하는 말은 나른했다. 샘은 단단하게 쥔 손을 풀어주지 않으면서 딘에게 여덟 해는 금지 되어있던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

“대신 나도 마사지 해줄게.”

샘이 천천히 힘을 풀었다. 하얗게 질렸던 손가락에서 짜릿한 기분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딘이 손을 털면서 그의 침대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의 동생은 오히려 상체를 일으켰다.

“뭐, 좋아.”

음성에서 작은 웃음이 뚝뚝 떨어졌다. 그가 자신의 가슴팍을 쓸어내렸다. 샘의 발이 바닥에 닿았다.

“새미 난 네가 환장 하고 달려 들까봐-”

“근데.”

샘이 일어서서 본인의 침대에 엉덩이를 대고 앉은 딘을 슬쩍 밀었다.

“어?”

“새미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딘은 그냥 웃기만 했다. 딘은 샘에게 밀려나듯 엎드려 누웠다. 샘이 그의 목덜미를 문질렀다. 전과는 달랐다. 오랜 시간 딘은 샘보다 컸다. 아직은 샘이 딘보다 작았던 시간이 큰 시간보다 길었다. 손에 닿아오는 딘의 뒷덜미는 생각보다 작았다. 샘은 눈에 그려지는 피붙이의 뒤척임을 기억했다. 정좌로 누워 있다가도 모로 몸을 기울이고 마지막엔 몸을 뒤집어 베개에 침을 흘리고 말테지. 오늘은 애당초 뒤집어 누워있었으니 더 수월하게 잠에 들것이다. 딘의 코끝에서 퍼지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긴장이 풀린 딘이 몸을 축 늘어뜨렸다. 샘이 그의 날개 뼈 부근의 근육을 천천히 눌렀다.

샘은 딘을 사랑한다. 근 4년간 그는 딘을 사랑하고 싶지 않았다. 끝끝내 아버지 편을 들던 목소리에 신물이 났던 것은 진실이었다. 딘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도 마지못할 진실이었다. 이럴 바엔 가족이 없길 바란 것도 그의 진심이었다. 그럼에도 샘은 딘을 기다리고 있었다. 형이 단 한번만 전화를 걸어주길. 말도 안 되는 한마디로도 꼬투리를 잡기 위해 그를 찾았을 것이다. 그래서… 샘은 딘을 보고 싶지 않았다. 샘은 말랑하게 녹아든 딘의 등을 문지르면서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의 성장통이 잦아드는 중이었다.



샘딘


제목 낚시 ㅈㅅ



샘딘. 파라. 슈내. 보자
옥견

2023.12.13 01:12
ㅇㅇ
모바일
미친 금손이시여......존나 몰입해서 읽었다 억나더
[Code: d1c8]
2023.12.13 01:45
ㅇㅇ
모바일
북맠- 정독할 것
[Code: 1547]
2023.12.13 01:50
ㅇㅇ
모바일
오늘 내 생일인가???
[Code: eb6b]
2023.12.13 01:51
ㅇㅇ
모바일
하 뭐지? 뭐지???? 이 금손센세뭐지???? ㅠㅠ 기억해두고 여러번 읽을거야...
[Code: 80ec]
2023.12.13 02:49
ㅇㅇ
모바일
헉헉 개좋아
[Code: 360b]
2023.12.13 22:12
ㅇㅇ
모바일
갑자기 이러는게 어딨어 센세ㅠㅠㅠㅠㅠㅠㅠ 진짜 너무 좋다… 어린 샘딘 분위기 무슨 일이야ㅠㅠㅠㅠㅠㅠ
[Code: 8a9b]
2023.12.29 21:52
ㅇㅇ
이걸 이제보다니...... 다시 처음부터 읽을게.... 이런 문학 ㅜㅜㅜㅜㅜㅜㅜㅜ
[Code: 32d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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