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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3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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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해보이는 말을 골랐다.

"......그래."


나는 그 날 바로 필요한 짐을 챙겨 그 집을 나왔다. 야니스는 나가라는 뜻이 아니라며 나를 붙잡았지만 그 집에 있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웠다.




며칠 재워줄 만큼 친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근처 모텔에 짐을 풀었다. 삐걱거리는 모텔 침대에 누워 부동산 앱을 뒤적거리다가 갑자기 모든 것이 후회됐다. 내가 왜 하필이면 그 카페에 갔을까. 5분만 더 걸어서 24시간 빨래방이나 갈걸. 밀렸던 빨래나 하고 건조기 돌아가는 거 보면서 멍 때리고 있을걸. 처음부터 야니스를 몰랐다면 이렇게 마음 아프지도 않았을 텐데. 나는 폰을 내려놓고 엉엉 울다가 도피성 수면을 취했다.



꿈에는 야니스가 나왔다. 나에게 보여준 적 없는 차가운 얼굴로 "그쪽처럼 평범한 사람이 나와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까? 생각보다 눈치가 없네요."라 말하며 24시간 카페의 문을 내 면전에서 쾅 닫았다. 잠깐 잠에서 깨 정신을 차렸다가 다시 잠들었더니 이번에는 나를 죽이려는 야니스에게 끝없이 도망치다가 숨을 헐떡이며 일어났다. 더 이상 잠들 수가 없어 나는 노트북을 켜고 업무를 봤다.



메일을 보낸 뒤 시계를 보니 벌써 새벽 한 시였다. 지금 자봤자 악몽을 꿀 게 뻔해서 나는 배낭을 메고 24시간 카페에 갔다.



수백 번도 더 열었던 24시간 카페의 문이 이 날따라 왜 이렇게 무거운지. 혹시 야니스가 건너편에 앉아있지는 않을까 기대하며 문을 열었지만 카페에는 피곤해보이는 알바만 서 있었다. 실망한 나는 늘 앉던 테이블에 앉아 턱을 괴고 해가 뜰 때까지 카페에 머물렀다.





그 뒤로 24시간 카페에 가는 일은 없었다 말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제 야니스가 없어도 잠들 수는 있으나 그가 나오는 꿈을 꾼다. 꿈 속에서의 야니스는 나를 비웃고, 때리고, 괴롭히고, 아주 가끔 상냥하다. 그러나 상냥한 야니스를 마주하는 날에도 앞으로 그런 모습을 보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괴로웠다. 그래서 나는 잠 대신 불면을 선택했다. 졸려서 눈이 감기는 날에도 24시간 카페에 매일 들러 억지로 깨어있는다. 여전히 야니스는 카페에 오지 않는다. 너는 나를 그리도 깔끔하게 털어냈구나.











매일 밤 샷 4개 넣은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얻은 것은 정신 착란이었다. 정신 착란이 아니면 이런 짓을 저질렀을 리가 없지. 나는 지금 야니스의 연구실 앞에 서 있다.


그의 집에서 나온 지 한 달 정도 됐나, 업무를 하다가 책상에 엎드려 눈을 붙인 나는 어김없이 야니스 꿈을 꿨다. 야니스의 그림자만 붙잡다가 깬 나는 곧바로 야니스가 일하는 대학으로 향했다.

왜 하필 집을 대학 근처로 구했을까? 걸어서 30분쯤 걸렸다면 가는 도중 정신을 차리고 돌아섰을 텐데 7분이면 도착하는 거리다보니 후회할 새도 없이 연구실에 와 있었다.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찔러나 보자는 심정으로 연구실 문을 노크했다.



"들어오세요."



재생다운로드야니스05.gif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야니스가 휘둥그레한 눈으로 의자에서 일어났다. 야니스가 입을 열기 전에 내가 와다다 말을 쏟아냈다.

"불쑥 찾아와서 미안한데, 사실 지금도 후회하고 있는데 이 말 안 하면 진짜 후회할 것 같아서 말할래."

야니스는 입을 굳게 닫고 나를 바라봤다.

"매일 밤 악몽을 꿔. 항상 꿈에 네가 나와. 꿈 속에서 너는 나를 거부하고, 떠나고 도망을 쳐. 그게 무서워서 한 달 동안 밤을 샜어. 현실의 너도 나를 떠났다는 걸 그만 떠올리고 싶어서. 하지만 고작 꿈 때문에 여기 온 게 아니야. 그냥.... 그냥 네가 그리워."

"......."

"앞으로 영원히 못 자도 좋으니까 네가 내 옆에 있으면 좋겠어. 우리 다시 시작하면 안 될까?"


야니스는 책상을 둘러서 나와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내 뺨을 붙잡고 키스했다. 너무 갑작스러워 숨을 쉬기 어려웠다. 내가 그의 팔을 두드리자 마지못해 떨어져 이마를 맞댔다.


"네가 나한테 질렸다고 생각했어. 네가 너무 착해서 차마 헤어지잔 말을 못 하는 거라고... 그래서 내가 먼저 시간을 가지자고 한 건데 잘못 생각했나봐."

"뭐? 대체 왜 그렇게 생각한 거야?"







그러니까 상황의 전말은 이러했다.

컨퍼런스에서 야니스는 큰 실수를 저지를 뻔 했다. 컨퍼런스 직전, 다른 학교의 교수로 컨퍼런스에 참가한 야니스의 전 여자친구가 귀띔해준 덕분에 수습할 수 있었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야니스의 동료 교수들은 비아냥거렸다. 아직도 전 여자친구의 치마폭을 벗어나지 못했구먼, 그렇게 여자친구 뒤만 졸졸 따라다니더니 여전하네, 어쩌고저쩌고.

야니스는 나에게 감정을 전도시키기 싫어서, 그리고 내게 전 연인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무례하다 생각해서 최대한 숨기려고 했다. 나는 그것이 속상해 야니스의 하루가 어땠는지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고 야니스는 그런 내가 자신을 포기했다고 오해해서 나와 거리를 뒀다. 나와 같이 식사하지 않았던 것도 편하게 밥을 먹으라는 나름대로의 배려였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야니스의 마음이 떴다고 오해해 함께 잠들지 않았지. 야니스는 우리가 만나게 된 계기인 "잠"마저도 함께 하기 싫어하는 날 보며 상처를 받았고, 용기를 내 시간을 갖자고 말했다. 그가 24시간 카페에 오지 않은 건 내가 그곳에 갈 걸 알았기 때문에 나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제서야 모든 걸 알게 된 나는 맥이 탁 풀렸다. 이렇게 단순한 일로 사이가 멀어지다니! 솔직하게 말했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고 서로에게 사과하던 우리는 내가 잘못했다, 아니다, 내가 더 잘못했다로 투닥거리다가 서로를 안고 웃었다.


"많이 피곤해보인다."

"네가 떠난 뒤로 한숨도 못 잤어."

나는 그의 손을 잡고 빨리 집으로 가자고 했지만 야니스는 거기까지 갈 힘이 없다며 내 등에 매달렸다. 연구실 소파에 누운 야니스는 내 팔을 잡아당겨 자기 품에 쓰러지게 했다.


"여기에서 조금만 자다 가자."

"15분만 걸으면 집에 가잖아!"

"으응, 너무 피곤해서 못 가겠어."


나는 야니스의 애교에 못 이겨 신발을 벗었고 우리는 비좁은 소파 위에서 간만에 달콤한 잠을 잤다.




야니스너붕붕
2024.03.23 20:5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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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다!! 오해가 잘풀려서 다행이다!!
[Code: 3e6d]
2024.03.23 21:08
ㅇㅇ
모바일
아 다행이다ㅠㅠㅠㅠㅠㅠㅠㅍ퓨ㅠㅠㅠㅠ둘이 대화를 해서 다행이야ㅠㅠㅠㅠㅠㅠㅠ
[Code: 7173]
2024.03.23 21:11
ㅇㅇ
모바일
너무 달다 ㅠㅠㅠㅠ 좋다 ㅠㅠㅠㅠ
[Code: 2202]
2024.03.23 21:2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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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
[Code: a3da]
2024.03.23 23:48
ㅇㅇ
모바일
흐어어어ㅓㅓㅇ 사랑은 계속되어야 한다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26c3]
2024.03.24 01:1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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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ㅠ다행이더 풀려서 다행이야
[Code: 3b5c]
2024.03.24 02:2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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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 풀려서 진짜 다행이다!
[Code: 4eb3]
2024.03.24 02:28
ㅇㅇ
모바일
오해 좋아요ㅠㅠㅠㅠㅠ
[Code: 952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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