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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0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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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를 넘긴 시각, 언제 켜뒀는지도 잊어버린 책상 스탠드 불을 제외하면 빌의 방에 불빛이라고는 없었음. 열어둔 창문에서 밤바람이 들어와 남색 커튼이 작게 흔들렸음. 침대 옆 바닥에 내려놓은 재떨이에는 종일 피운 담배꽁초가 수북히 쌓여있었음. 빌은 이미 불이 꺼진 마지막 담배를 입에 문 채 넋을 놓고 누워있었음. 부모 운은 최악이었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빌은 그래도 원하는 건 대체로 가지는 인생을 살아왔음. 그런데 요즘은 이상하게 자꾸 일이 꼬이기만 했음. 가지고 싶은 것은 손에 들어오지 않고 오히려 다른 누군가가 제것을 빼앗으려고 들었음.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게 있다는 그 기분을, 빌은 아주 오랜만에 맛보았음. 빌은 어두운 천장에 대고 자신의 미래를 그려봤음. 처음 시작은 결국 집에서 먼 대학을 가게 된 자신과 옆집 남매에게 더욱 의지하게 되는 허니의 모습이었음.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 더는 허니가 저를 받기지 않게 되고, 필요치 않게 되어 버려진,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으로 끝이 나자 빌은 욕지거리는 뱉으며 침대에서 일어났음. 온몸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우울감은 불쾌하기 짝이 없었음.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대충 바닥에 던져버리고 샤워라도 할 생각으로 방에서 나왔는데 그제서야 빌은 오늘 허니를 데리러 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음. 이 등신 진짜. 속으로 제 욕을 하며 곧장 허니 방으로 가서 방문을 열어봤음. 다행히 허니는 알아서 집에 왔는지 램프를 켜둔 채 잠들어있었음. 안도의 한숨을 쉰 빌은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갔음. 램프 불만 꺼주고 나오려는데 쌔근쌔근 잠든 허니의 얼굴을 보니 발이 멈춰버렸음. 빌은 허니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침대 맡에 걸터앉았음.







'그냥 너 가져라. 난 필요없으니까.'







왜 또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는. 빌은 짜증스럽게 머리를 마구 헝클이며 스스로를 탓했음. 빌은 전형적으로 기분이 태도가 되는 유형의 인간이었음. 거기다 머리도 좋아서 어떤 말을 해야 상대의 마음에 칼을 꽂을 수 있는지도 잘 알았음. 지금까지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줬지만 빌은 한번도 저가 뱉은 말을 후회하지 않았고 신경조차 써본 적이 없었음. 그런데 오늘 길에서 홧김에 허니에게 했던 말은 계속 마음 한켠에 남아서 빌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음. 겨우 회복 시기에 접어든 허니와의 관계를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기에 충분한 말이었음. 정 마음이 쓰이면 사과를 하면 될 일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빌에게 그것은 불가능한 얘기였음. 빌이 생각하는 허니와 자신의 관계는 수직이었음. 매달리는 쪽은 허니여야했고 사랑을 갈구하는 쪽도 허니여야했음. 이 관계만은 절대 뒤집혀서는 안됐음. 그리고 딱히 저가 사과를 하지 않아도 허니는 그 일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음. 저가 이러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허니라면 이해할 거라고. 빌은 잠든 허니의 이불 위에 손을 뻗었다가 이내 어색하게 손을 거두었음. 손가락이 버튼을 누르자 방 안이 어둠에 잠겼음. 빌은 그 어둠 속에 잠시 앉아있다가 허니의 방에서 나왔음.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음

다음날 아침 빌은 평소보다 30분 일찍 일어났음. 그리고 씻고 나와서 바로 주방으로 들어가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음. 곧 집안에는 팬케이크를 굽는 달콤한 냄새가 퍼졌음. 제 동생에게 사과를 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이 불편한 마음을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은 빌의 몸부림이었음. 팬케이크를 구운 다음 스크램블을 하고 있으니 허니가 하품을 하며 주방에 들어왔음. 등뒤에서 의자를 당기는 소리가 들리자 빌은 저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음.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아무렇지 않게 일어났냐고 말을 걸어봤는데 허니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음. 잠이 덜 깼나? 빌은 의문스럽게 느끼며 팬케이크 옆에 스크램블을 담았음. 접시를 양손에 든 빌이 식탁으로 걸어 왔음. 하나는 허니의 앞에 놓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자리에 둔 다음 냉장고에서 오렌지 주스를 꺼냈음. 유리컵 두 잔에 주스를 따르면서 빌은 힐끔 허니를 살펴봤음. 두 손으로 시럽을 뿌리는 허니는 평소와 다름없어보였음. 역시 신경 안 쓸 줄 알았어. 속으로 안도한 빌이 한껏 편안해진 얼굴로 자기 자리에 앉았음. 허니는 팬케이크를 오물거리며 빌을 쳐다봤음. 그리고 빌이 컵에 입을 댐과 동시에 입을 열었음







"나 필요없어?"







생각지도 못한 말에 마시던 주스가 목에 콱 걸려버렸음. 빌은 얼굴이 빨개지도록 기침을 했고 허니 또한 깜짝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음. 겨우겨우 진정하고 손등으로 입가를 훔친 빌의 눈에는 당혹감이 역력했음. 지금까지 홧김에 온갖 말을 다 했지만 허니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물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음. 손이 멈춘 식탁에는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음. 빌은 큰 눈을 꿈뻑이며 제 동생을 쳐다봤음. 허니는 제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음. 뭐라고 해? 필요하다고 해? 그럼 왜 그랬냐고 할 거 아냐. 뭐지? 얘가 지금 나한테 사과하라는 건가? 빌이 지금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팽팽 굴리는 동안 허니는 다시 식사를 이어갔음. 제 오빠가 아침에 손도 못 대는 사이에 식사를 마친 허니는 접시를 치우고 자기 방으로 가버렸음. 식탁에는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빌만이 남아있었음.

방으로 돌아와 문을 닫은 허니는 콩닥콩닥 뛰는 가슴 위에 손을 올리고 크게 심호흡을 했음. 방금 그게 사실상 처음으로 허니가 빌에게 화를 낸 것이었음. 오빠가 미운 짓을 하면 화를 내고 미안하다고 할 때까지 절대 말을 걸지 말라고, 늘 빌에게 지고사는 허니를 보다 못한 엘리가 전수해준 방법이었음. 처음에 이 얘기를 들었을 때는 설마 자신이 정말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음. 빌이 무서웠던 것도 있었지만 괜히 그런 짓을 했다가 그나마 주는 관심마저 받지 못하게 될까봐 두려웠음. 하지만 이제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음. 지금은 둘도 없는 단짝인 엘리가 있고 제 오빠가 되어주겠다는 조지도 있었음. 자신을 필요로 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이 허니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줬음. 전날 옆집에서 엘리와 짜둔 계획은 빌에게 직설적으로 쏘아붙이는 거였음. 그런 말 싫다고, 하지 말라고. 하지만 막상 제 오빠가 앞에 있으니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음. 그래서 살살, 더 살살 말할 수 없을지 생각하다가 나온 말이 그 질문이었음. 그 말을 들은 빌은 생전 처음으로 허니 앞에서 당황한 표정을 지었음. 그게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해서 허니는 입을 가리고 작게 웃었음.

학교 갈 준비를 마치고 현관으로 가니 빌이 벽에 기대서 허니를 기다리고 있었음. 남매의 눈이 잠깐 마주쳤음. 허니는 멈칫했다가 빌의 앞을 지나 현관문으로 걸어갔음. 학교 잘 갔다와. 빌은 팔짱을 끼고 딴청을 부리며 툭 내뱉었음. 허니는 문고리를 쥔 채로 제 오빠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가 흥, 하고 고개를 홱 돌린 다음 밖으로 나가버렸음. 닫히는 현관문 사이로 경악한 빌의 얼굴이 보였음.







"엘리!"







밖에서 스쿨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엘리를 보자마자 달려간 허니는 방금 있었던 일을 전부 얘기했음. 얘기를 들은 엘리는 자기가 더 흥분해서 잘했다며 허니의 손을 잡고 폴짝거렸음. 스쿨버스 안에서 엘리는 허니에게 며칠이 걸려도 빌이 먼저 사과할 때까지는 말도 걸지 말고 대답도 하지 말라고 했음.







"빌이 화내면 어떡해?"

"화내는 사람이랑 말 안할거라고 하면 돼."







엘리는 조지에게 매번 써먹는 방법이라면서 키득거렸지만 허니는 조금 걱정이 됐음. 조지와 빌은 다른데 그래도 될까…. 허니가 자신 없는 표정을 짓자 그게 마음에 들지 않은 엘리는 두 손으로 허니의 볼을 쭉 잡아당겼음.







"할 수 있어!"

"아파…."

"할 수 있어!!"







엘리가 소리를 버럭 지르는 바람에 다른 학생들이 웅성거리며 허니와 엘리 쪽을 쳐다봤음. 주목이 불편해진 허니는 할 수 없이 알겠다고 했음. 그 대답에 만족한 엘리는 허니의 뺨을 놓아주고 콧김을 뿜었음. 허니는 얼얼한 뺨을 두손으로 문지르며 엘리에게 물었음







"자기 전에 인사도 하면 안돼?"

"절대 안돼."







굿나잇 인사를 하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엘리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신신당부를 했음. 어릴 적부터 빌에게 혼이 나든 무시를 당하든 자기 전 인사만은 매일매일 꼭 했기 때문에 정말 할 수 있을지 불안해졌음. 허니의 얼굴은 더욱 수심에 잠겼음



학교를 마치고 늘 그렇듯 옆집에서 시간을 보낸 허니는 엘리와 거실 테이블에 앉아 학교 숙제를 하고 있었음. 오늘 숙제 중에는 장래희망을 써오는 게 있었는데 두 아이 모두 종이에 아무것도 적지 못했음. 엘리는 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하나를 고르지 못하고 있었고 허니는 되고 싶은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쓰지 못하고 있었음. 연필을 입술 위에 올리고 고민을 하던 엘리는 드디어 결심을 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소리를 질렀음







"나 카레이서 될래!"

"카레?"

"카레가 아니라! 카레이서!"

"그게 뭐야?"

"아까 TV에 나왔잖아! 차 운전하는 거!"







엘리는 TV에서 해준 레이싱 경기를 보고 푹 빠진 것 같았음. 경기에 나온 드라이버 흉내를 내며 거실을 뛰어다니던 엘리는 걸어오던 조지를 머리로 들이받은 후에야 다시 숙제를 하러 테이블로 돌아왔음. 조지는 고통스러운 얼굴로 옆구리를 쓰다듬으며 두 아이의 곁에 와서 앉았음. 엘리는 종이에 열심히 글씨를 쓰고 있었지만 허니는 여전히 연필도 들지 않고 하얀 종이만 내려다보고 있었음.







"허니는 되고 싶은 거 없어?"







조지의 물음에 허니는 다시 곰곰이 생각해봤음. 장래희망과 관련된 질문이야 매년 받는 것이었지만 허니는 그때마다 제대로 대답을 해본 적이 없었음. 유치원 다닐 적에 딱 한번 있었던가. 그 이후로는 다른 친구들이 하는 얘기를 듣고 따라 쓰고는 했음. 장래희망 숙제를 끝낸 엘리는 과자를 가지러 뛰어갔음. 거실에는 잠시 허니와 조지 둘만 남았음. 조지는 울적해보이는 허니 옆에 조금 더 붙어 앉아 작은 목소리로 말했음







"사실 나도 허니 나이 때는 되고 싶은 게 없었어."

"정말?"

"응. 그런데 신기하게 크니까 생기더라구. 그러니까 천천히 생각해도 돼."







조지의 위로 덕에 허니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음. 조지는 뭐가 되고 싶어? 허니가 속닥거리며 묻자 조지는 허니의 귀에 귓속말을 해줬음.







"엘리한테는 비밀이야. 쉿."

"쉿!"







조지와 허니는 검지를 입에 대고 속닥거리며 즐겁게 웃었음. 그 후 허니는 엘리가 가져온 과자를 먹으며 수학 숙제를 했음. 허니가 문제를 푸는 동안 심심해진 엘리는 허니의 장래희망 숙제를 가져가 대신 해줬음. 엘리가 허니의 답을 다 베꼈을 무렵 초인종 소리가 울렸음. 두 아이는 동시에 고개를 번쩍 들었음







"빌이다!"

"허니. 알지?"

"응."






허니와 엘리는 서로를 쳐다보며 진지한 눈빛을 주고받았음. 현관에서 내일 보자는 인사를 나누고 옆집에서 나온 허니는 빌을 지나치고 자기네 집으로 앞서 걸었음. 그게 꼭 아직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는 의사 표시를 하는 것 같아 빌은 헛웃음이 나왔음.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빌도 오기가 생겨 허니에게 말을 걸지 않았음. 집 안은 쥐죽은 듯이 조용했음.

잘 시간이 되어 이를 닦고 나온 허니는 곤란한 표정으로 욕실 문앞에 서있었음. 빌이 거실 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욕실에서 허니 방으로 가려면 꼭 거실 소파 옆을 지나야 했음. 빌이 굳이굳이 거실에 나와서 책을 읽고 있는 이유였음. 눈앞에 제 오빠가 있는데 무시하고 지나칠 정도로 허니의 배짱이 두둑하지 않다는 것을 빌은 알고 있었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있던 허니는 버스에서 엘리와 나눴던 얘기를 떠올렸음. 잘자라는 인사도 하면 안돼. 사과할 때까지 먼저 말 걸면 안돼. 그 말을 되뇌며 마음을 굳게 먹은 허니는 두 눈을 질끈 감았음. 그리고 쌩하니 거실을 가로질러 자기 방으로 이어지는 복도로 쏙 들어갔음. 복도 끝에서 작게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음. 그 소리가 나자마자 빌은 책을 옆으로 던져버리고 주먹으로 지끈거리는 미간을 꾹꾹 눌렀음. 지금까지 저런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생전 처음 동생에게 당해본 무시는 생각보다 타격이 컸음. 사실 이 상황의 해결법은 간단했음. 예전처럼 소리를 지르면 될 일이었음. 그럼 허니는 겁을 먹고 다시 순종적으로 굴겠지만 그랬다가는 저와 허니의 관계는 완전히 파탄날 것임이 분명했음. 그 방법을 제외하면 사과를 하는 것뿐인데 그 또한 빌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음. 유치한 남매 싸움에 불이 붙은 순간이었음

다음날부터 빌과 허니는 아침에 마주쳐도 인사 한마디 하지 않았고 밤에도 집에서 어떤 대화도 나누지 않았음. 부모님이야 원래 자식들에게 관심이 없으니 둘 사이가 어떤지 알지 못했고 신경도 쓰지 않았음. 남매만이 아는 냉전 상태는 며칠간 이어졌음. 허니는 평소에도 말수가 적고 빌에게 먼저 말을 거는 일도 많지 않아 사실 지금까지와 별 차이가 없었음. 하지만 빌은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음. 말을 못 거니 매일 옆집에서 뭘했는지 물어볼 수도 없게 됐고 매일 당연했던 아침 인사와 밤 인사가 없어지니 허전하게 느껴지기까지 했음. 게다가 어째 보면 볼수록 허니는 자기 도움 없이도 잘 지내는 것 같았음. 생각해보면 허니는 원래 그랬음.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자기 할 일을 혼자 할 줄 알았고 애초에 빌이 허니에게 뭘 해준 적이 거의 없었음. 똑부러지는 동생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빌은 허니에게 자신이 필요 없는 것처럼 느껴졌음. 그날 입에 담았던 말이 스스로에게 돌아오고 있었음







그렇게 며칠이 더 지나 주말이 됐음. 집에는 허니와 빌 둘만 있었음. 여느때처럼 옆집에 놀러갈 준비를 마친 허니는 혼자 주방 여기저기를 열어보고 있었음. 엘리와 같이 먹을 쿠키를 가져가려고 찾는 중이었는데 손이 닿는 곳은 다 뒤져봤지만 쿠키통은 보이지 않았음. 고민을 하던 허니는 주방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음. 빌에게 쿠키통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일주일 가까이 대화를 하지 않은 탓에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하는지 모르게 되어버렸음. 빌의 방 쪽을 쳐다보며 망설이다가 결국 포기하고 다시 주방에 들어온 허니는 싱크대 위쪽에 있는 상단장을 올려다봤음. 전에 빌이 상단장에서 쿠키를 꺼내는 걸 본 적이 있었지만 상단장은 허니에게는 너무 높았음. 어떡하지…. 허니는 손톱을 깨물며 다시 한번 주방 밖을 쳐다봤음. 사실 빈손으로 가도 상관 없었지만 허니는 엘리와 쿠키를 꼭 나눠먹고 싶었음. 망설이던 끝에 혼자 해결하기로 결심한 허니는 식탁 의자를 끌고 왔음. 그리고 의자를 밟고 올라가 상판 위에 한쪽 발을 올렸음. 허니가 움직일 때마다 의자는 삐걱이면서 싱크대에 부딪혔고 상판에 놓여있는 칼꽂이가 위태롭게 흔들렸음

같은 시각, 빌은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음. 노트를 팔랑팔랑 넘기며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오늘따라 집중이 안 되는 것 같아 바람이라도 쐬려고 방에서 나왔음. 집안은 아무도 없는지 조용했음. 이 시간이면 허니는 늘 옆집에 놀러를 가니 조용한 게 당연했지만 오늘은 어쩐지 그 정적이 신경 쓰였음.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본능에 가까운 무언가였음. 그때 주방 쪽에서 의자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났음. 아무래도 허니가 아직 집에 있는 것 같았음. 이번에는 쿵 하고 뭔가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음. 왠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든 빌은 주방까지 한달음에 달려갔음. 빌이 주방에 들어섰을 때 허니는 한쪽 발은 의자 등받이에, 다른 발은 상판 위에 까치발을 들고 서서 상단장 맨윗칸에 있는 쿠키통을 꺼내려고 하고 있었음. 허니가 발에 힘을 줄수록 의자는 뒤로 밀려났음. 위험천만한 광경에 깜짝 놀란 빌이 지금 뭐하는 거냐고 버럭 소리를 지른 것과 동시에 발이 미끄러진 허니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음. 옆으로 뻗은 발에 채인 칼꽂이가 공중으로 치솟았음.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안으로 뛰어들어간 빌은 가까스로 몸을 날려 아래로 떨어지는 허니를 구했음. 칼꽂이에 꽂혀있던 칼들도 바닥에 함께 떨어졌기 때문에 빌이 제때 가지 않았으면 주방에서는 끔찍한 일이 일어날 뻔했음. 제 위로 떨어진 허니를 감싸 안고 있던 빌은 바로 일어나 앉아 허니의 몸을 확인했음







"안 다쳤어?"







많이 놀랐는지 허니는 빌의 말에 반응을 하지 못했음. 답답해진 빌은 제 손으로 직접 허니의 얼굴과 목, 팔다리 등을 살펴봤음. 다행히 어디 다친 곳은 없어보였음. 빌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넘겼음. 그리고 왜 이런 위험한 짓을 했냐고 제 동생을 혼내려고 했는데 그보다 먼저 허니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음







"피…."

"피? 어디!"







빌은 급하게 다시 허니의 몸을 살폈지만 피가 나는 곳은 아무데도 없었음. 허니의 팔다리를 돌려보며 어디냐고 보채고 있으니 작은 손이 빌의 뺨에 닿았다가 떨어졌음







"얼굴에 피 나…."








목소리가 파르르 떨리더니 곧 눈에서 큼지막한 눈물 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했음. 피가 나는 건 허니가 아니라 빌 자신이었음. 흥분이 가라앉자 뺨에서 열감과 함께 따끔거리는 통증이 느껴졌음. 그래도 일단 먼저 해야할 일이 있었음. 빌은 우는 허니를 내려놓고 바닥에 떨어진 칼과 칼꽂이를 정리해서 다시 싱크대 위에 올려뒀음. 그리고 의자까지 제자리에 돌려놓은 후에야 욕실에 들어가 제 얼굴을 확인해봤음. 오른쪽 뺨에서 피가 줄줄 나고 있었음. 이정도면 보고 울만하네. 빌은 작게 혀를 차며 세면대 물을 틀었음. 얼굴을 씻으면서 상처를 살피고 있으니 뒤따라 온 허니가 열린 욕실 문 앞에 서서 훌쩍거렸음







"왜."

"병원…."

"안 가도 돼."







어차피 주말이라 열린 곳도 없을 테고 피가 좀 나긴 하지만 상처 자체는 그렇게 심해보이지는 않았음. 그렇게 말에도 걱정이 되는지 허니가 울면서 그 자리에 계속 서있기에 빌은 구급상자를 가져오라고 시켰음. 빌은 마지막으로 얼굴을 씻고 수건으로 뺨을 누르며 나왔음. 허니는 울면서 구급상자를 안고 서있었음. 빌은 바로 거실 소파 쪽으로 걸어갔고 허니도 훌쩍이는 소리를 내며 그 뒤를 따라갔음. 소파에 앉은 빌이 수건 위치를 바꿔가며 지혈을 하는 동안에도 옆에 앉아있는 허니의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음. 보다못한 빌이 그만 울라고 허니를 다그쳤지만 별 소용이 없었음. 빌은 제 얼굴에 난 상처보다 허니가 너무 오래 우는 게 더 마음에 걸렸음







"그러니까 그런 위험한 짓을 왜 해."

"…."

"나한테 꺼내달라고 했으면 됐잖아."








제 딴에는 분위기를 바꾸어보려고 가볍게 타박한 건데 허니는 바르르 떨면서 호두턱을 만들더니 주먹으로 눈을 가리고 더 크게 울었음. 미치겠네 진짜. 머리가 울리는 것 같아 빌은 소파 등받이에 제 뒤통수를 들이받았음. 그냥 처음에 미안하다 한마디만 했으면 끝났을 일을 질질 끌어서 이 지경을 만들었다는 게 스스로도 기가 찰 노릇이었음. 뺨에 대뒀던 수건을 확인해보니 피는 멈춘 것 같았음.







"나 봐."







빌은 피가 묻지 않은 수건 반대쪽으로 허니의 얼굴을 벅벅 닦은 다음 눈물 범벅인 작은 손도 닦아줬음







"약 발라줄거야?"







빌의 물음에 허니는 울어서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음. 그리고 테이블에 둔 구급상자를 열고 안에서 연고를 꺼냈음. 빌은 제 동생의 손이 닿도록 허리를 앞으로 숙였음. 연고가 묻은 손가락이 뺨에 닿자 빌은 순간적으로 움찔하며 숨을 삼켰는데 그 반응에 또 허니의 눈에 눈물이 가득 맺혔음.







"미안해…."







허니는 연고를 발라주는 내내 울면서 빌에게 사과를 했음. 미안하다는 그 말이 빌은 얼굴에 난 상처보다 더 쓰라렸음. 여태까지 빌은 허니에게 단 한번도 미안하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음. 이유 없이 화를 내고 소리를 질렀을 때도, 방에 가둬뒀을 적에도. 바로 얼마 전에도 그랬음. 상처가 될 줄 뻔히 아는 말을 해놓고 허니라면 이해할 거라고 안이하게 생각했음. 빌은 저가 걱정돼서 우는 어린 동생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음. 얘는 나같은 놈이 뭐가 걱정된다고 이렇게 우는 걸까. 내가 자기를 어떻게 대했는지 알면서.







"넌 내가 안 싫냐?"







빌의 말에 밴드 포장지를 뜯던 허니의 손이 멈췄음. 고개를 들고 제 오빠를 한번 쳐다본 허니는 포장지를 마저 뜯은 다음 빌의 얼굴에 붙였음.







"안 싫어."







동생의 대답에 빌은 쓴웃음을 지었음. 빌의 귀에 허니의 말은 그저 제 심기를 거스리지 않기 위한 말로밖에 들리지 않았음. 목 안이 따끔거려 고개를 위로 들고 숨을 내쉰 빌이 허니를 다시 쳐다봤음.







"그럼 내가 좋아?"








그렇게 묻는 빌의 표정이 너무 고통스러워보여서 허니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음. 빌이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도, 원하는 대답이 무엇인지도 허니는 알 수 없었음. 고개를 떨구고 있는 오빠를 힐끔힐끔 쳐다보던 허니는 티셔츠 끝을 쥔 손에 힘을 주었음







"좋아."







아무리 빌이 저에게 상처를 줘도 허니는 한 번도 빌을 싫어하거나 미워해본 적이 없었음. 빌은 오빠였지만 허니에게는 부모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음. 무서워도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사람이 빌이었음. 단짝이 생기고, 다른 오빠가 생겨도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음. 애초에 사랑의 종류가 다르니까.







"내가 좋다고?"







하지만 그것을 알리 없는 빌에게는 예상조차 하지 못한 대답이었음. 고개를 번쩍 든 빌은 허니의 낯빛을 살폈음. 저가 무서워서 그렇게 대답을 한 건가 싶었지만 허니의 표정은 딱히 겁을 먹은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음. 뱃속이 간지럽고 마음 속에서 무언가가 일렁거렸음. 빌의 입에서 생각을 거치지 않은 말이 튀어나왔음







"옆집보다 더?"







마음이 앞선 탓에 목소리가 조금 갈라졌음. 평소였다면 절대 묻지 않았을 질문이었음. 그 질문은 빌에게는 너무나도 두려운 질문이었음. 허니가 조지를 좋아하고 잘 따랐음. 누구라도 그럴 거임. 틈만 나면 화내고 소리지르고, 상처 받을 말만 골라하는 인간만 보다가 정반대인 인간을 보면 그쪽으로 마음이 가기 마련이니까. 그걸 알기에 빌은 그 질문을 가장 깊은 곳에 숨겨두었음. 나중에, 아주 나중에 허니의 마음이 저에게로 완전히 향한 것이 보이면 그때 물어보려고 했던 건데. 절박한 나머지 지금 물어보고 만 거였음. 대답을 기다리는 심장이 빠르게 뛰었음. 마주치고 있던 허니의 눈빛이 흔들리더니 이윽고 시선을 피하고 고개를 숙였음. 그게 대답이었음. 그럼 그렇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씁쓸하기는 매한가지였음. 담배가 절실해져 빌은 소파에서 일어나 허니의 옆을 지나치려고 했음. 그런데 그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던 허니가 두 손으로 빌의 옷을 붙잡아 멈춰세웠음








"더 좋아."

"뭐?"

"옆집보다 더 좋다구…."








거의 알아듣기도 힘들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지만 빌의 귀에는 똑똑히 들렸음.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제 동생 정수리만 내려다보고 있던 빌은 쪼그려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허니의 얼굴을 가까이서 살펴봤음. 얼굴은 물론이고 귀까지 새빨개진 허니는 제 오빠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애꿎은 옷만 자꾸 쥐었다폈다 했음. 가지지 못해서 안달이었던 것은 알고 보니 처음부터 제 손을 떠난 적이 없었던 거였음. 빌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음








"다시 말해봐."

"그만 말할래…."

"빨리. 나 보고 다시 말해봐."







빌의 재촉에 허니는 어색하고 민망해서 작게 한숨을 쉬었음. 그리고 망설이듯 머뭇거리며 제 오빠를 마주봤음. 마주친 초록색 눈동자는 빛을 머금어 반짝거렸음.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아기일 적, 언제나 저에게 사랑을 쏟아주던 그 보석 같은 눈동자. 지금 빌의 눈빛은 그때와 아주 닮아있었음.








"빌이 더 좋아…."








홀린 듯 입에 담았다가 부끄러움이 몰려와 허니는 얼굴을 가리고 빌을 피해 반대쪽으로 쪼르르 도망가버렸음. 빌은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서 허니가 한 말을 곱씹었음. 내가 더 좋대. 옆집보다. 그 자식보다 내가 더. 몸 안쪽에서 터져나오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빌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머리를 쓸어넘기며 같은 곳을 몇번씩 서성거렸음. 그러다가 갑자기 우뚝 멈춰서더니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오른듯 씩 웃으며 주방으로 갔음. 조용해진 거실에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가까이 다가오는 남매의 말소리가 들렸음







"아까 말했으니까 줘!"

"한번 더 말하면 준다니까?"







거실로 돌아온 허니와 빌 사이에는 쿠키통이 있었음. 허니는 앞서 걷는 제 오빠 주변을 빙빙 돌고 폴짝거리며 어떻게든 쿠키통을 빼앗아보려고 했음. 하지만 빌은 그런 허니를 놀리듯 일부러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는 높이에 쿠키통을 들고있다가 제 동생이 폴짝거릴 때마다 그만큼 팔을 더 높이 들었음







"얼른 말하고 가져가."







친구 기다리잖아. 허니의 머리 위로 쿠키통을 흔드는 빌의 얼굴에는 장난기와 기대가 넘실거렸음. 한 번 말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했는데 왜 몇 번이나 시키는 건지. 허니는 부끄러워서 울고 싶은 건 처음이었음

옆집에서 허니를 기다리는 엘리는 식탁에 앉아서 뚱한 얼굴로 빨대를 입에 물고 있었음. 빨대에 숨을 불어넣으니 주스에 거품을 보글보글 생겼음. 뒷모습만 봐도 불만이 가득한 게 보여 조지는 조금만 더 기다려보라며 동생을 달랬음. 죄없는 시계와 눈싸움을 하며 5분만 기다렸다가 안 오면 허니를 데리러 갈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마침 현관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렸음. 왔다! 엘리는 신이 나서 의자에서 폴짝 내려와 현관으로 뛰어갔음







"허니! 왜 이렇게 늦게…."







문을 열어주고 친구를 반갑게 맞이하던 엘리는 하던 말을 멈추고 어리둥절하게 허니를 쳐다봤음. 뛰어왔어? 얼굴 엄청 빨개. 엘리의 말에 허니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지만 차마 이유를 말하지는 못하고 들고있던 쿠키통을 엘리에게 안겨줬음. 저를 지나치고 집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가는 허니를 눈으로 좇던 엘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쿠키통을 내려다봤음







그 일이 있고 빌과 허니 사이에는 두 가지 루틴이 생겼음. 첫번째는 빌은 매일 아침 씻고 나오면 꼭 허니를 거실로 부르는 거였음. 그리고 자기가 해도 될 것을 굳이 허니에게 구급상자를 안겨줬음. 빌은 허니가 제 뺨에 연고를 발라주고 밴드 포장지를 찢는 모습을 보는 것을 좋아했음. 얼굴에 생긴 상처가 다 아물 때까지 그 루틴은 계속됐음. 두번째 루틴은 식탁에서였는데 마주보고 앉아서 아침을 먹고 있으면 빌은 꼭 허니에게 조지와 자신을 비교하는 질문을 던졌음. 하지만 누가 더 착한지, 누가 요리를 더 잘하는지 같은 자신에게 불리한 질문은 절대 하지 않았음.







"나랑 옆집 중에 누가 더 잘생겼어?"







빌은 자기가 생각했을 때 승산이 있어 보이는 유치한 질문만을 골라서 했음. 허니가 그 질문은 어제도 하지 않았냐고 묻자 빌은 멋있는 것과 잘생긴 건 다르다고 했음. 수준이 허니의 반 친구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음. 허니가 아침에 집중하고 싶어 대답을 회피하면 대답을 할 때까지 뚫어져라 쳐다보거나 아예 허니의 접시를 자기 쪽으로 당기는지라 결국 허니는 제 오빠가 원하는 대답을 해줘야 했음







"빌이 더 잘생겼어…."







허니가 떨떠름한 얼굴로 대답하자 빌은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양껏 올리고 아침을 해치웠음. 그날 이후 빌은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사람처럼 표정에서부터 여유가 넘쳐보였음. 짜증이 줄고 웃는 날이 많아졌고 허니가 옆을 지나가면 장난을 치기도 했음. 어린 허니의 눈에도 제 오빠가 뭔가를 떨쳐낸 것처럼 보였고 그것은 남매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음.

주말이 되어 빌은 처음으로 허니와 나가서 저녁을 먹기로 마음먹었음. 그런데 그 말을 들은 허니가 파랗게 질려 방으로 도망가 문을 걸어잠그는 바람에 외출하기 전부터 진땀을 흘리게 됐음







"아 버리러 가는 거 아니라니까!"







아무리 말을 해도 문을 열어주지 않기에 빌은 할 수 없이 방 열쇠를 가지고 와서 문을 열었음. 그리고 나가기 싫다는 허니를 억지로 안아서 차에 태웠음. 운전하는 내내 옆에서 자기를 버리지 말라며 우는데 빌은 이것이 바로 제 업보라는 생각이 들었음. 어찌어찌 식당에 도착을 했지만 안에 들어와서도 허니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음. 주문을 받으러온 여자 직원은 둘 사이가 의심스러운지 허니에게 몇 살인지, 왜 우는지를 캐물었음. 주변 손님들까지 웅성거리는 게 이러다가 정말 신고라도 당할 것 같아 빌은 할 수 없이 밥보다 먼저 허니에게 아이스크림을 시켜줬음. 예쁜 유리그릇에 담긴 초코 아이스크림이 앞에 놓이자 허니의 울음 소리가 눈에 띄게 잦아 들었음. 빌은 스푼으로 직접 아이스크림을 퍼서 허니에게 내밀었음.







"아 해."







훌쩍거리면서도 거부는 하지 않고 얌전히 아이스크림을 받아먹은 허니는 그제야 눈물을 뚝 그쳤음. 손에 스푼을 쥐여주니 언제 울었냐는 듯 야금야금 아이스크림을 퍼먹는 제 동생을 보며 빌은 지친 얼굴을 쓸어내렸음. 그 과정을 외출할 때마다 3번 반복했는데 4번째 외출날 드디어 신뢰 관계가 구축되어 허니는 빌과 밖에 나가도 울지 않게 됐음. 저녁을 먹고 식당에서 나오니 식당 앞은 인파로 시끌시끌했음. 주차장으로 가려고 몸을 돌리니 가는 길에 꽃집 트럭이 서있는 게 보였음. 밝은 조명 아래 예쁜 화분과 꽃다발로 둘러싸인 트럭을 본 허니는 작게 탄성을 터뜨리며 그 자리에 서서 눈을 떼지 못했음.







"보러 갈래?"

"갈래!"







제 오빠의 제안에 신이 난 허니는 잡고 있던 빌의 손을 잡아당기며 꽃집 트럭 앞까지 씩씩하게 걸어갔음. 밤색 앞치마를 두른 아주머니가 밝은 목소리로 허니와 빌을 맞이했음. 빌이 허니에게 갖고 싶은 걸 고르라고 하자 아주머니는 사근사근한 어투로 허니에게 이 꽃 저 꽃에 대해 알려줬음. 화분과 꽃다발을 찬찬히 살펴본 허니는 마음을 정하고 빌을 올려다봤음







"나 저거."

"뭐, 저 하얀거?"







허니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은 새하얀 리시안셔스 꽃다발이 었음. 빌은 주인 아주머니에게 그 꽃다발을 사서 허니에게 안겨줬음. 집으로 돌아가는 차안에서도 허니는 내내 꽃다발에서 눈을 떼지 못했음. 그 모습을 슬쩍 쳐다본 빌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음. 집에 와서도 허니는 자기 전까지 꽃다발을 손에서 놓지 않았음. 자기 전에 잠깐 방에 와서 살펴보니 허니는 꽃다발과 아예 같이 누워잘 생각인 것 같았음. 저러다 몸으로 뭉개버리면 또 종일 울 것 같아 빌은 안 쓰는 꽃병에 물을 채워서 가져왔음







"안고 자면 안 돼?"

"시들어서 안 돼. 여기 넣어둬."







예쁜 포장을 푸는 게 아쉬웠지만 오래 볼 수 있다는 빌의 말에 허니는 순순히 꽃을 꽃병에 담았음. 협탁에 올려두기에는 램프 때문에 자리가 없어서 꽃병은 책상 위에 자리잡았음. 허니가 침대에 누웠을 때 잘 보이는 위치였음. 세심한 위치 조정을 마친 빌은 손을 탁탁 털고 램프 불을 끄려고 다가왔음. 빌이 침대 옆에 와서 몸을 숙였을 때 이불 밑에서 나온 작은 손이 빌의 옷자락을 붙잡았음.







"꽃 사줘서 고마워. 잊지 않을게."







동생의 속삭임에 버튼을 누르려던 빌의 손이 멈칫했음. 또 사줄 거니까 잊어버려도 돼. 무심코 뱉은 말에 제 동생이 감동한 표정을 짓자 빌은 괜히 민망스러워져 빨리 자라고 보채고는 방에서 나왔음. 그날 이후 빌은 꽃병에 있는 꽃 시들 무렵이 되면 똑같은 꽃다발을 사오게 됐음. 그래서 허니의 방 책상에는 늘 리시안셔스가 담긴 꽃병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빌이 질리면 다른 꽃을 사온다고 해도 허니는 그 꽃을 고집했음. 빌이 처음 사준 꽃이라는 것이 허니에게는 큰 의미였음.







빌은 이번 주 내내 기분이 좋았음. 침체기였던 성적도 올라 이번 상담에서는 선생님이 이대로만 가면 목표 대학에 문제없이 합격할 거라고 했음. 게다가 허니도 빌을 많이 따르게 되어 이제 허니 쪽에서 먼저 빌을 콕 찌르고 도망가는 장난까지 치게 됐음. 모든 게 술술 잘 풀리고 있었음. 그래서 주말에 엘리가 집에 와서 놀아도 되냐는 허니의 부탁도 흔쾌히 승낙했음.

그렇게 주말이 되어 엘리가 허니네 집에 놀러를 왔음. 엘리가 오자마자 두 아이는 온 집안을 쏘다니며 꺅꺅거리고 침대에서 폴짝폴짝 뛰어댔음. 그 모습을 지켜보며 빌은 최근 들어 허니가 겁없는 행동을 하게 된 이유를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음. 두 아이를 쫓아다니며 식탁 위에 올라가는 걸 막고 소파 등받이에서 뛰어내리지 못하게 말리느라 빌은 벌써부터 진이 다 빠졌음. 점심때가 되어 셋은 피자를 시켜먹었는데 엘리는 피자를 먹으며 빌에게 재밌는 얘기를 해달라고 졸랐음. 허니도 호기심으로 눈을 빛내고 있기에 빌은 무슨 얘기가 있을지 머리를 굴려봤음. 그러다가 해줄 얘기가 생각났는지 반쯤 먹은 피자를 접시에 내려놨음








"너네 학교 뒤에 산 있지. 거기 늪 있는 거 알아?"







허니와 엘리가 다니는 초등학교 뒤에는 낮은 산이 있었는데 그 산에 나있는 길을 따라 올라가면 절경에 둘러싸인 호수가 있었음. 옛날에 늪이 있던 곳에 인공적으로 호수를 만든 것인데 따로 이름이 없어 지역 사람들은 여전히 그 호수를 늪이라고 불렀음. 빌은 허니와 엘리에게 그 호수에 관한 얘기를 해줬음. 날이 더우면 십대 애들은 다들 그 호수에 모여서 수영을 하며 놀았는데 거기서 애들끼리 즐겨 하는 게임이 있었음. 그 호수는 양쪽으로 위험하니 들어가지 말라는 하얀 표지판이 있었음. 애들은 그 경고를 비웃듯이 물에 들어가기 전에 그 표지판 뒤에 매직으로 자기 이름을 적었음. 그리고 수영을 해서 반대편으로 건너간 다음 또 거기에 있는 표지판에 자기 이름을 쓰는 게 게임 규칙이었음. 성공하면 박수를 받고 학교에서 자랑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수영 좀 한다는 애들은 너도나도 도전하고는 했음. 빌의 얘기에 푹 빠져있던 허니가 조심스레 물었음







"빌도 해본 적 있어?"

"당연하지. 가면 내 이름도 있어."







두 아이의 선망의 시선을 받고 빌은 잠깐 우쭐해졌지만 잘 생각해보니 이 얘기를 괜히 한 것 같았음. 그 호수는 보고만 있어도 뛰어들고 싶을 만큼 아름다웠지만 조심해야할 점이 있었음. 폭이 좁은 곳은 초등학생도 수영을 해서 건너갈 수 있을 정도였지만 진로를 잘못 잡아서 폭이 넓은 쪽으로 나가버리면 성인도 끝까지 건너기가 힘들었음. 실제로 그 호수에서 수영을 하다가 진로를 잘못 잡은 중고등학생 몇명이 빠져죽은 적이 있었음. 허니는 수영을 할 줄 모르니 호수에 들어갈 일은 없겠지만 구경을 갔다가 물에 빠지기라도 하면 큰일이었음. 표정이 굳은 빌은 허니에게 단호한 어조로 경고했음







"너 늪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마. 알았어?"







오랜만에 빌의 저음을 들으니 몸이 긴장돼 허니는 마른침을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음. 그럼 됐다며 다시 표정을 푼 빌은 남은 피자를 먹어치우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음. 허니도 따라 일어나 정리를 도왔는데 엘리는 혼자 앉아서 생각에 빠져있었음. 점심을 다 먹고 허니의 방에서 역할 놀이를 하며 놀던 두 아이는 집에서 노는 게 질렸는지 소파에 앉아있던 빌에게 공원에 가고 싶다고 졸랐음. 빌이 노골적으로 귀찮아하자 엘리는 팔꿈치로 허니를 툭툭 쳤음. 눈빛 교환을 마친 허니는 작게 고개를 끄덕거린 후 빌의 앞에 섰음. 그리고 제 오빠와 한번 눈을 마주친 다음 고개를 숙이고 손을 꼼지락거리며 중얼거렸음







"조지는 데려가줬는데…."







시키는 대로 말을 해보기는 했지만 그게 빌의 성질을 건드렸을까봐 허니는 슬쩍 엘리의 뒤로 가서 숨었음. 빌은 말없이 두 아이를 지켜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음. 정색을 하고 옆을 지나가버리는 빌을 보며 허니는 울상을 지었음. 아무래도 실패한 것 같다고, 두 아이는 서로를 바라봤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 했음. 빌이 걸어간 곳은 바로 현관이었음







"마음 바뀌기 전에 빨리 와라."







현관문을 여는 빌의 모습에 두 아이는 활짝 웃으며 손을 잡고 뛰어갔음. 영 내키지 않아 뒤에서 느릿느릿 걸어오는 빌이 답답해 허니와 엘리는 양쪽에서 빌의 팔을 붙잡고 거의 질질 끌고 갔음. 주말이라 그런지 공원에는 다른 아이들도 많았는데 그 아이들 사이에 섞여 이리 저리 쏘다니는 바람에 허니와 엘리를 잃어버릴까봐 빌 또한 계속 뛰어다니게 됐음. 잠시도 쉬지 않는 아이들을 쫓아다니느라 숨이 턱까지 차올라 헉헉거리며 멈춰선 빌은 진지하게 담배를 끊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음. 결국 빌은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완전히 녹초가 되고 말았음. 집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빌은 거실 소파에 쓰러졌음. 두 아이는 집에 들어가지 않고 열린 현관문 앞에 서서 얘기를 나눴는데 엘리는 슬쩍 집안을 확인한 다음 허니에게 바짝 붙었음







"우리도 거기 가보자."

"거기?"

"늪 말이야."







허니는 빌의 경고가 생각나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음. 가지 말랬잖아. 하지만 엘리는 몰래 가면 된다며, 빌 이름이 정말 써있는지 궁금하지 않냐고 허니를 부추겼음. 그 말에 마음이 혹하긴 했지만 허니는 이내 다시 한번 고개를 흔들었음.







"엘리도 안 간다고 약속해."







허니가 새끼 손가락을 내밀자 엘리는 딴청을 피우며 약속을 하지 않으려고 했음. 허니는 앙 다문 입술에 힘을 주며 손가락을 더 들이밀었음. 마지못해 알겠다며 새끼손가락을 들었지만 엘리는 장난기가 발동해 손가락을 걸려고 하는 허니의 손을 요리조리 피했음. 웃으면서 서로 장난을 치고 있으니 인도 쪽에서 누가 엘리를 크게 불렀음. 동시에 소리가 들린 쪽을 쳐다보니 외출을 하고 돌아오는 길인 조지가 서있었음. 조지다! 엘리는 활짝 웃으며 허니네 집 마당을 가로질러 조지에게 뛰어갔음. 그리고 뒤를 돌아 허니를 향해 두 팔을 크게 흔들었음







"내일봐!"







허니도 엘리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인사를 했고 저에게 손을 흔드는 조지에게도 인사를 했음. 두 남매가 옆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던 허니는 결국 약속을 하지 않은 게 생각나서 제 손가락을 내려다봤음. 집안에서 문 닫고 들어오라는 빌의 목소리가 들렸음. 이제 아무도 없는 옆집 마당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고 허니도 집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음



그날은 아침부터 날이 더웠음. 허니는 학교 가기 전에 몰래 아이스크림을 꺼내먹으려다가 빌에게 딱 걸려서 실패했음. 입을 삐죽 내밀고 집밖으로 나오니 옆집에서 똑같이 입을 삐죽 내민 엘리가 나왔음. 여느 때와 같은 평범한 하루였음. 오늘 빌은 학교를 마치고 오랜만에 친구들과 어울렸음. 내내 공부에 매진해있던 터라 소원해진 것 같기도 해서 친구들의 꼬득임에 못이기는 척 넘어간 거였음. 친구들과 번화가를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늦게 합류한 다른 친구 하나가 심각한 얼굴로 빌에게 빨리 집에 가보라고 했음







"왜?"

"지금 너네 동네 난리났어. 경찰차가 쫙 깔려있길래 물어보니까 여자애들이 없어졌대."







너도 여동생 있다고 하지 않았냐는 친구의 말에 창백하게 질린 빌은 바로 차로 돌아가 시동을 걸었음. 평소에는 널널하던 도로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막히는지 빌은 차라리 뛰어가는 게 더 빠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음. 초조한 얼굴로 운전대를 잡고있던 빌은 거친 손길로 클랙슨을 세게 울렸음. 머릿속을 채우는 불길한 생각에 손이 떨려 몇 번씩 주먹을 쥐었다가 펴야 했음. 늪 얘기를 했던 게 바로 며칠 전이었음. 없어진 애들이 허니와 엘리라면 거기에 갔을 수도 있었음. 만약에 갔다가 늪에 빠진 거라면? 그래서 찾지 못하고 있는 거라면…. 식은땀으로 축축해진 손바닥을 옷에 닦으며 빌은 창을 열고 빨리 가라고 소리를 질렀음

주택가에 들어서니 입구에서부터 이미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음. 집집마다 사람들이 나와 있었고 경찰차뿐만이 아니라 못 보던 차들도 몇 대씩 와있었음. 차고로 들어가는 길이 경찰차로 막혀있어 근처에 대충 차를 세운 빌은 곧장 집으로 달려갔음. 그리 멀지 않은 거리임에도 다리가 쇳덩이처럼 무거워 뛰기가 힘들었음. 제발 허니가 아니기만을 기도하며 빌은 집 주변에 모인 구경꾼들을 밀치고 마당으로 들어갔음. 현관문은 열려 있었고 집을 출입하는 경찰들 사이로 부모님이 보였음. 가슴이 철렁했음. 이 시간에 부모님이 와있다는 것 자체가 집에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증거였음. 순간적으로 다리가 굳어서 문턱을 넘을 수가 없었음. 아니야. 아직 모르는 거야. 벌벌 떠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심호흡을 한 빌은 발을 내디뎌 집 안으로 들어갔음. 부모님은 경찰을 사이에 두고 얘기를 나누고 있었음. 빌은 곧장 부모님 쪽으로 걸어갔음







"허니 어디있어."







하지만 패닉 직전인 빌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아빠는 계속 엄마와 얘기를 이어갔음. 이런 상황에서도 부모의 태도에는 변화가 없었음. 그것이 빌을 폭발하게 만들었음.







"허니 어디있냐고 묻잖아!!"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소리를 지르자 그제야 부부는 당황한 얼굴로 빌을 쳐다봤음. 가운데에 있던 경찰이 진정하라는 듯이 빌을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서 설명을 해줬음. 이 집 딸 허니와 옆집에 사는 엘리라는 아이가 학교에서 없어졌다고, 허니는 늘 타던 스쿨버스를 타지 않았고 엘리는 배구 클럽에 오지 않았다고 했음. 역시 없어진 아이 중에 허니가 있었음. 손끝까지 하얗게 질릴 정도로 충격을 받은 빌의 몸이 휘청거렸음. 두 아이가 갈만한 곳을 모르냐는 경찰의 질문에 빌은 넋이 나간 목소리로 늪에 갔을 수도 있다고 중얼거렸음. 경찰은 바로 동료가 있는 곳에 가서 이 사실을 알렸음. 서있을 수가 없어 빌은 거실 소파에 털썩 앉았음. 자꾸만 물에 빠져 둥둥 떠있는 허니의 모습이 어른거려 눈을 꾹 감고 머리를 쥐어뜯었음. 얘기하는 게 아니었는데. 그랬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죄책감이 목을 조르고 후회가 몸을 짓눌렀음. 웅크리고 있던 빌이 그 호수에 직접 가봐야겠다고 결심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바로 그때였음.







"아이가 돌아왔습니다!"







집밖에서 들린 누군가의 외침에 빌은 허겁지겁 현관으로 달려갔음. 문밖에는 경찰들에게 둘러싸여 겁을 먹은 허니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서있었음. 두 눈으로 허니가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안도감이 몰려와 빌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음. 주변에 있던 경찰들이 괜찮냐며 빌에게 다가왔고 밖에 서있던 허니도 놀란 얼굴로 빌을 쳐다봤음. 부축해주려는 경찰에게 괜찮다는 제스처를 취한 빌은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켰음. 그리고 저를 바라보고 있는 동생에게 팔을 벌렸음







"이리와."







그 한마디에 허니는 울음을 터뜨리며 빌에게 뛰어가 안겼음. 작은 몸이 품에 들어오고 제 목을 껴안는 팔의 감촉이 허니가 살아있음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해줬음. 행복한 나머지 실없는 웃음을 터뜨리며 빌은 허니를 한참동안 껴안고 있었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경찰 중 하나가 빌의 어깨를 두드렸음. 허니에게 물어볼 것이 있다는 경찰의 말에 빌은 허니를 품에서 놓아줬음.







"지금까지 어디 있었는지 말해줄래?"







경찰의 어조는 다정했지만 낯선 사람이 무서운지 허니는 빌에게 더욱 밀착했음. 빌은 동생의 등을 쓸어주며 괜찮으니 말해보라고 했음.






"학교 마치고 버스 타러 가다가…."







허니가 해준 얘기는 이러했음. 평소처럼 학교 마치고 스쿨버스를 타러 가고 있었는데 옆을 지나가던 담임 선생님이 책이 가득 들고 가다가 떨어뜨린 것을 봤다고. 바로 뛰어가서 책을 같이 주웠는데 혼자 들고가기에는 무리가 있어 선생님이 허니에게 자기를 도와줄 수 있겠냐고 부탁했다고 했음. 그래서 같이 책을 들고 도서관에 들르는 바람에 스쿨버스를 놓치고 말았음. 학교에서 집까지는 도저히 아이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어서 허니가 울먹이자 선생님은 도서관 정리가 다 끝나면 집까지 태워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음. 그래서 아예 선생님을 돕고 간식까지 얻어먹고 오느라 귀가 시간이 늦어진 것이었음.







"늪에는 안갔어?"

"가지 말랬잖아."







그 대답이 얼마나 기특한지 빌은 잘했다며 허니를 힘주어 꼭 끌어안았음. 엘리와 같이 있었냐는 경찰의 질문에 허니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음. 질문을 마친 경찰은 동료와 얘기를 나누며 자리를 떴고 빌은 허니를 안아들고 자기 방으로 데려갔음. 그리고 침대에 앉힌 다음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설명해줬음. 단짝 친구가 없어졌다는 소리에 허니는 벌떡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했음. 빌은 다급하게 제 동생을 붙잡아 침대에 다시 앉혔음.







"엘리 찾으러 갈래."

"경찰이 갔으니까 기다리면 돼."

"나도 갈래. 갈거야!"







허니는 제 오빠를 뿌리치고 밖에 나가려고 애를 썼지만 저보다 훨씬 큰 빌을 이길 수는 없었음. 결국 허니는 아이인 저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리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음. 고문과도 같은 기다림은 계속됐음. 허니는 걱정과 불안을 견디지 못하고 피가 날 때까지 손톱을 깨물었음. 그러다가 무서운 생각이 들어 울면서 빌의 품에 파고 들었고 빌은 허니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한참동안 달래줬음.

주홍빛이었던 하늘에 어느덧 어둠이 내려앉았고 맑았던 하늘을 먹구름이 뒤덮었음. 도로 위에 빗방울이 한두방울 떨어지기 시작했을 무렵 조용했던 밖이 소란스러워졌음. 빌은 허니에게 방에 있으라고 말한 후 상황을 확인하러 갔음. 방안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허니는 참지 못하고 방에서 나왔음. 아까까지만 해도 사람들로 가득했던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음. 소름이 끼칠 정도로 고요한 집안에 허니 혼자 우두커니 서있었음. 현관문이 열려있는 것을 보아 다들 밖으로 나간 것 같았음. 엘리가 집에 왔나봐! 허니는 밝게 웃으며 집 밖으로 달려나왔음. 그런데 뭔가 이상했음. 마당에 나와있는 부모님과 빌, 경찰들까지도 모두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음. 허니의 뺨에 빗방울이 떨어졌음. 인파 때문에 옆집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마당에서 나가려고 했는데 귀를 찢는 여자의 절규 소리에 파드득 놀라 걸음을 멈춰버렸음. 소리가 들린 옆집 앞에는 경찰들과 한 여자, 그리고 조지가 서있었음







"네가 잘 챙겼어야지 네가!!"







여자는 조지와 엘리의 엄마였음. 아들을 주먹으로 때리며 울부짖던 여자는 말리는 경찰을 뿌리치고 소리를 지르다가 이내 무너져내려 오열했음. 조지는 핏기라고는 없는 얼굴로 정신 나간 사람처럼 그럴리 없다는 말만 중얼거리고 있었음. 저절로 몸이 움츠러드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상황을 채 이해하기도 전에 누군가가 다가와 허니를 안아들고 집으로 들어갔음. 안에 있으라고 했잖아. 빌은 경직된 표정으로 걸음을 재촉했음. 허니는 빌의 어깨 너머로 멀어져가는 현관 밖을 바라봤음. 엄마 아빠가 집에 들어오면서 현관문이 서서히 닫혔음. 그리고 문이 반쯤 닫혔을 때, 밖에서 조지의 절규 소리가 들렸음. 안으로 들어오던 부모님도, 복도를 걷는 빌까지 굳어버릴 만큼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목소리였음. 몸이 벌벌 떨려 허니는 빌을 안은 팔에 더 힘을 주었음. 그 손길에 정신을 차린 빌은 바로 허니의 방으로 들어가 불을 켜고 문을 닫았음. 침대에 내려주자마자 허니는 옆에 있는 인형을 품에 꼭 안았음. 빌은 어두운 얼굴로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음.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는 무겁고 우울했음. 허니가 겁먹은 목소리로 빌을 불렀음. 동생의 목소리에 빌은 작게 숨을 삼키고 이를 꽉 깨물었음. 빌이 침대로 오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음. 허니의 옆에 와서 앉은 빌은 동생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음. 모든 정황이 한가지 결론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허니는 그것을 외면하고 부정했음. 엘리가 이따가 집에서 보자고 말했는걸. 분명 엘리는 무사히 집에 왔을 거라고, 빌이 분명 그렇게 말해줄 거라고 믿으며 허니는 두손으로 제 오빠의 팔을 붙잡았음







"엘리는?"

"…."

"빌. 엘리는?"







하지만 아무리 빌의 팔을 잡아당기고 울며 애원해봐도 원하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음. 억수같은 비가 쏟아졌음.












빌슼너붕붕
약맥카이너붕붕
2024.03.20 23:1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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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개재밌다
[Code: cc98]
2024.03.20 23:2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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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센세 왔구나!
지하실에서 안마해줄게 군만두도 먹여줄게
[Code: 0e0d]
2024.03.20 23:4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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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540f]
2024.03.20 23:5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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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ㅠㅜㅜㅜㅠㅜㅜㅠㅜㅠㅜㅠㅜㅠ암다잉ㅠㅜㅜㅠㅠㅜ
[Code: 07b0]
2024.03.21 00:0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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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Code: 8e09]
2024.03.21 00:0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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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세상에 엘리 우짜냐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0f7c]
2024.03.21 00:3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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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엘리 ㅠㅠㅠㅠㅠㅠ어떡해ㅠㅠㅠㅠㅠㅠㅠ
[Code: 642f]
2024.03.21 00:4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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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나ㅜㅜㅜㅠㅠㅠ조지ㅠㅜㅠㅜㅜㅠㅜㅜㅜㅠ
[Code: 62d7]
2024.03.21 01:0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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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조지ㅠ어떡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3c6b]
2024.03.21 01:0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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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ㅜㅜㅜㅜ 그런 사연이ㅜㅠㅠㅜ 그래도 빌이랑 허니는 사이 많이 회복했네ㅠㅠ
[Code: e14c]
2024.03.21 02:0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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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제 허니 기억상실 사건 나오려나..
[Code: 4e1e]
2024.03.21 02:2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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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ㅠㅠㅠ 기다렸어 ㅠㅠㅠㅠㅠ 이제 전말이 드러나는 구나
[Code: c285]
2024.03.22 00:0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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갸아아악 센세 어나더ㅜㅜㅜㅜㅜㅜㅜ
[Code: 2447]
2024.03.22 06:5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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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ㅜㅜㅜㅜㅜ 아니 ㅜㅜㅜ 그래서 허니는 실어증에 기억상실까지 겪나보다 어떡해ㅠㅠㅠㅠㅠ 센세 필력 미쳤고요...ㅠㅠㅠㅠ
[Code: 401d]
2024.03.22 14:5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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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엘리 어떡해ㅠㅠㅠㅠㅠ
[Code: f9fe]
2024.03.27 02:3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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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식칼 때문에 누구 다칠까봐 너무 조마조마했고 빌이 허니랑 엘리 말리는거 너무 웃겼고 똑같이 입 삐죽 내밀고 마주친 허니엘리 너무 귀여웠는데..... 이래서 이렇게ㅠㅠㅠㅠㅠ 조지도 빌도 허니도 엘리도 그저 눈물만 난다ㅠㅠㅠㅠㅠㅠㅠ
[Code: 40cd]
2024.04.08 23:0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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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보고파요ㅠㅜㅜㅜㅜㅠㅜㅠㅜㅠ
[Code: 05c4]
2024.04.09 10:1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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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있읍니다 선생님.....
[Code: b552]
2024.04.11 17:1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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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보고싶다
[Code: 2502]
2024.04.25 13:0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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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가 떠난지 한달.. 매일매일 생각해요 센세ㅠㅠ
[Code: 9b75]
2024.05.06 01:2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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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어요 선생님ㅜㅜㅜㅜ
[Code: 1e2b]
2024.05.13 22:3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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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
[Code: cf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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