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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4 01:16

ㄴㅈㅈㅇ ㅇㅌㅈㅇ ㅇㅇㅈ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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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빙은 요즘 남편의 눈치를 보느라 여념이다. 눈치를 본 다기보다는 갑자기 변한 남편의 동태를 파악하려는 것에 가까우려나.

 

‘오늘 저녁에 시간 괜찮으면 데리러 갈게요.’

‘혹시 시간 괜찮으면 같이 영화 보는 거 어떨까요?’

‘비 온대요. 따듯하게 하고 가세요.’

 

남편은 근래에 자꾸 시간이 괜찮은지 물었고 살갑게 다가왔다. 마중을 나오는 때도 있었고, 배웅을 나올 때도 있었으며, 정말 갑자기 저녁을 같이 먹자 한다던가, 꽃이나 시계 뭐 그런 선물을 사 오는 경우도 늘었다.

특히 식사. 그는 거의 매일 같이 저녁을 먹자 얘기했고, 이젠 일종의 암묵적인 규칙으로 굳어져 함께 저녁을 먹는 게 당연한 일상으로 변하고 있었다.

 

“조금 더 먹어요. 오늘 하루 종일 바빴다면서.”

“배부른데.”

“이거 하나만 더. 그러면 더 먹으라고 안 할게요.”

 

그는 권위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재계와 정계에서 내로라하는 집안에서 그의 또래인 이들 대부분은 식사를 할 때 자신이 상석에 앉고, 자신의 아내, 혹은 애인을 바로 옆도 아닌 그와 직각으로 된 자리에 앉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쓸데없이 큰 식탁을 가지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한 변에 세 명씩, 총 여섯 명이 앉을만한 식탁에 앉았고, 선이 짧아 혼자 앉을 수 있는 쪽에 앉지도, 그렇다고 세 자리 중 중앙에 앉지도 않았다. 문과 떨어진 끝 자리에 앉았고, 어빙은 그 맞은편에 앉았다. 그만큼 그는 다정했다.

 

이 모든 행동도 그의 다정함일까? 갑자기 함께 저녁을 먹게 된 것도, 갑자기 사 오는 선물도, 갑자기 신청하는 데이트도?

 

갑작스러웠다. 그는 갑자기 다가왔고, 갑자기 다정해졌고, 갑자기 가까워지려 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부담스럽기도 했고, 당황스럽기도 했고, 왜 이러는지 저의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좋았지. 좋았다. 10년이 넘도록 짝사랑 한 상대가 다정히 대해주는데 싫은 건 또 무언가. 그러나 갑자기 바뀐 남편의 사랑에 젖어 황홀해 하고 있기엔 어빙은 동심이나 환상, 뭐 그런 것들을 잊은 지 오래였다. 그런 거 찾는 사람이면 정치인을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것도 공화당 소속 정치인은 더더욱.

 

내기라도 했을까? 친구들과? 그렇게 뒷소문 안 좋던 사람과 결혼해 쇼윈도처럼 산다는 소식이 자극적이긴 하지. 몸이 닳은 만큼 마음도 닳은 건지 확인하고 싶었을까? 그래서 내기를 하고, 그가 건 쪽에 승기를 쥐여주기 위해 이러는 것일까? 갑자기 쏟아지는 애정에 무너질 것이라 그는 판단한 걸까?

아니면 갑자기 측은해졌을까? 아비한테 사랑도 못 받고 어미한테 버려진 그가? 미친 듯이 공부하고 사랑이라곤 배워 본 적도 없는 그가 불쌍해졌을까? 그래서 갑자기 그렇게 사랑을 주는 걸까? 평소엔 관심도 없다가, 갑자기 본 해외 기아들의 후원 광고를 보고 묘하게 걸리는 마음이 불편해 자기 위안으로 얼렁뚱땅 후원을 하는 것처럼?

 

그러나 그는 그럴 이가 아니었다. 그는 그런 내기는 하지 않았고, 친구들과 깊게 어울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항상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다. 회사를 운영하는 일이던, 누구를 돕는 일이던 자세히 조사하고 최선을 다해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는 사람이었다. 얼렁뚱땅, 불편하니까, 뭐 그런 이유로 행동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왜 그는 갑자기 하루아침에 다정해진 걸까?

 

-

 

브루스는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기로 했다. 예상보다 재스퍼에게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저를 보고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뻔했다. 그는 재스퍼를 사랑한다. 적어도 좋아한다고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다.

 

처음에는 그저 제 앞에서 사람이 죽는 것이 싫어서, 사람들 구한다고 설친 주제에 정작 제 아내는 죽음으로 몰았다는 죄책감이 싫어 그를 가까이하려 했다.

그러나 갈수록 그는 계속해서 재스퍼의 곁에 있고자 했고, 정신 차리고 보면 그에게 실없는 말이라도 건네고, 그를 위한 것을 사거나 시간을 내고 있었다. 재스퍼가 웃는 것이 좋았고, 그가 가까이 있어줬으면 했다.

 

그래. 다가간 이유에는 불편한 마음도 있었고, 죄책감도 있었지. 자신의 아내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게, 알레르기의 여부도 몰랐으면서 사고가 난 직후에 이름이 불리는 그런 불편한 영광을 얻었다는 게 신경 쓰였고 미안했다.

애초에 충동적으로 공화당의 일원과 결혼한 것도 동정심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심에도 9살에 부모를 잃은 저보다 더 추억이 없는 그의 모습에 결혼했다. 아버지와 그, 그리고 자신. 이렇게 셋이 갖는 식사 자리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미소나 지은 채 식사를 깨작이던 그가 묘하게 걸렸다. 그때 결혼을 결심했었지. 그렇다고 해서 딱히 그에게 관심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이젠 아니었다. 그에게 관심이 기울게 되었고, 기왕 보는 김에 재스퍼의 의기소침해진 모습보다는, 당당하게 연설하고 말하고, 농담하는 그의 모습을 더 보고 싶었다. 아니면 웃는 미소? 묘하게 간질거리게 만드는 그의 묘한 손길과 웃음? 여하튼 그의 웃는 모습, 그의 행복한 모습. 그런 것들을 더 보고 싶어 하고 있었다.

 

“요즘 일찍 퇴근하시네요.”

“그래도 저녁은 같이 들고 싶어서요.”

브루스는 아담이 들어 준 정장 겉옷을 입으며 대답했다. 재스퍼의 생일 선물로 뭘 고를지 생각하던 중이었기에 그의 표정은 잘 보지 못했으나 이어진 아담의 말에 브루스는 옅게 미소 지었다.

 

“요즘 사모님이랑 시간 많이 보내시는 것 같아 보기 좋습니다.”

“……그래요?”

“아무래도 그렇죠. 전에는 저녁도 따로 드시더니, 요즘엔 항상 일도 일찍 끝내시고. 얼마 전엔 애인 선물로 뭐가 좋냐 물어보시기도 하셨고요. 덕분에 저도 조기 퇴근하고.”

“그랬었나…….”

하며 머쓱하게 목덜미를 손으로 감싸며 미소 짓는 그의 모습에 쑥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담은 그런 상사의 모습에 키득였다. 이럴 때마다 그의 상사가 자신의 또래라는 걸 실감한다.

 

“회사 사람들 다 알걸요. 요즘 애처가 되신 거.”

브루스는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더니 이내 고개를 들어 매무새를 정리하며 서류 가방을 챙겼다.

 

“뭐, 사실인 것 같네요. 월요일에 봅시다.”

그러고는 특유의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사무실을 나갔다. 묘하게 붉어진 상사의 귀에 아담은 피식 웃으며  남은 서류를 정리했다. 오늘도 조기 퇴근이었다. 여자친구에게 꽃다발을 깜짝 선물로 주고, 예쁨 받을 걸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

 

한 직원이 컵에 물을 받으며 말한다. 생수통에서 나오는 공기방울 소리가 생각보다 크다. 그 소리가 직원의 용기를 돋운다. 점심시간이니 들을 사람도 없을 것이다.

 

“너 와이프 분 임신하신지 몇 개월이지?”

“5개월. 왜?”

“요즘 와이프가 아기 문제로 너무 스트레스 받더라. 너희 부부도 난임 문제 있었던 것 같아서. 팁 좀 얻을까 하고.”

“난임이 진짜 스트레스 심하게 줘. 여자라 그런가 더 그러더라고. 난 애 없어도 와이프만 있으면 된다 싶었는데 와이프는 진짜 힘들어했어. 여하튼 스트레스 안 받고 마음 느긋하게 먹으면 와주더라.”

“부모님 압박도 엄청 심해. 그러지 말라고 말씀을 드려도 계속 그러시더라.”

“야, 잘 해라 진짜로. 네 선에서 쳐내고. 그걸 못 하냐.”

“그냥 전화를 거시는데 전화 바꿀까 고민 중이야.”

“스트레스 심하게 받으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네가 잘 달래드려. 다정하게 대해주고, 화내지 말고, 섬세하게 챙겨주고.”

 

직원은 수전에서 컵을 떼고 티백을 넣는다. 그러고는 동료 직원 옆에 서서 휴게실 소파에 앉아 작게 한숨짓는다.

“어휴 하여튼…… 진짜 학생 때부터 연애하고 결혼한 거니 그나마 다행이지. 솔직히 이거저거 재고 주선자가 맺어줘서 하는 결혼에는 아기 얘기 나올 거 아냐. 그런 상황에 난임? 난 진짜 못 견딜 것 같다.”

“그러니까……. 야 너 그거 알아?”

담배를 문 직원이 동료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동료는 작은 소리로 뭐라 말을 잇자 담배를 문 직원의 눈이 커진다.

 

“진짜로? 유산? 그 어빙이?”

“쉿! 진짜래. 얼마 못 가고 잃었다던데. 그래서 극소수만 안 다나 봐.”

“어쩌다가 그랬대. 임신한 것도 안 믿기는데 유산한 건 더 안 믿긴다.”

“고담의 황태자가 상대잖아. 정계 재계 합쳐서 나오는 후곈데 누가 안 낳겠어? 그리고 어빙과 웨인의 결합이잖아. 낳는 게 당연하지.”

"하기야……."

                                                        

두 남자는 뭐라 더 대화를 나누더니 사무실로 들어선다. 열린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자 그들의 체온이 공기 중으로 흩어진다. 체중에 맞춰 들어갔던 스펀지가 원 상태로 돌아오는 데 단 1분도 걸리지 않는다. 그들의 흔적은 1분 만에 자취를 감추지만, 소문은 맴돈다.

 

“의원님? 여기 계셨어요?”

“아, 줄리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직원 중 한 명인 줄리아가 들어온다. 남자들이 앉았던 소파 뒤편, 약간 구석진 곳에 있는 일인용 소파에 앉아있던 어빙은 입꼬리를 끌어올려 시원하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왜 여기 혼자 계세요. 다른 직원이나 절 부르시지.”

“그냥, 생각할 게 있어서요.”

“식사는 하신 거죠?”

“대충 잘 먹었어요.”

“같이 있을 수 없는 말인데.”

어빙은 어깨를 으쓱이며 미소 짓는다. 줄리아는 못 말린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생각할 게 있으시다니 물러갈게요. 다음엔 잘 챙겨드세요.”

“걱정 고마워요. 그럴게요.”

 

어빙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다시 들고 있던 신문으로 시선을 내린다. 세로로 반을 접고, 가로로 반을 접은 신문은 한 손에 잡기에 편하다. 그러나 어빙의 머리엔 기사가 들어가지 않는다.

 

‘임신이라…….’

충분히 가능성 있는 가설이다. 갑자기 다정해진 남편과 이전에 겪었던 유산. 그 이후에 생긴 난임. 그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갑자기 남편이 친절해진 이유가 보이는 것 같다.

 

그도 아이를 원했던 걸까? 말은 없었는데. 정말 당연한 건가? 그래서 말을 안 한 거고? 결혼을 하면 합의는 안 했지만 불문율 뭐 그런 것으로 다들 당연하게 아기를 갖는 것일까? 그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어빙은 자리에서 일어나 신문을 있던 자리에 둔 뒤 휴게실을 나섰다. 묘하게 절도 있는 동작이 사관학교의 영향인 것인지 날카로워진 신경 때문인 건지는 몰랐다.

 

여하튼 답을 알았으니 되었다. 그는 다정해졌고, 둘은 정략결혼이고. 그러니 그는 아기를 원해 그리 구는 것일 테지. 그게 아닌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것이 가장 유력했고, 말이 되었다.

어빙은 비서에게 부탁해 샌드위치를 먹었다. 그에겐 이제 자신의 남편에게 아기를 안겨주어야 하는 의무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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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어빙 입장에서는 갑자기 다정해지고 별 보여주는 브루스가 좀 뭐지 어디 아픈가 싶었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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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린다 올린다 하다가 늦어버림,,,
읽어줘서 오늘도 고맙

웨인어빙 아이스매브 

문제시삭제

2024.03.04 01:2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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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ㅠㅠㅠㅠ 내 센세 오셨다ㅠㅠㅠㅠㅠㅠㅠ 센세사랑해ㅠㅠㅠㅠㅠ
[Code: c63f]
2024.03.04 02:33
ㅇㅇ
모바일
어빙은 진짜 영문도 모를테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그거 아니라고 ㅠㅠㅠㅠㅠㅠ 웨인이 그런 이유 없이 순수히 좋아한다는거 알게 됐을 때 어빙 반응이 너무 궁금해진다 센세 고마워..
[Code: 156c]
2024.03.04 03:11
ㅇㅇ
아직도 어빙은 자신이 브루스에게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인식이 너무 큰 것 같아....ㅠㅠㅠㅠㅠㅠㅠ 아니야 재스퍼ㅠㅠㅠㅠㅠㅠㅠ 브루스는 지금 널 정말로 좋아하고 염려하고 아낀다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9305]
2024.03.04 06:5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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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ㅠㅠㅠㅠㅠㅠ 제목보고 개같이 달려왔어 ㅠㅠ
[Code: b43e]
2024.03.04 21:4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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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빙은 웨인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가설은 아예 세우지 않네 그래서 그의 아이를 낳아줘야하는 의무로 결론지어버리는거 찌통 ㅠㅠㅠㅠ이건 다 웨인의 업보니까 더더 어빙에게 직진해💦💦💦💦💦💦💦💦💦💦💦💦💦💦💦
[Code: e87c]
2024.04.27 07:4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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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나 아직 기다려 ㅠㅠㅠㅠㅠㅠ 아기 낳아줘야 하는 의무로 결론낸거 어빙은 고통이지만 나는 존좋 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e73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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