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577972438
view 1919
2023.12.25 20:29

ㄴㅈㅈㅇ ㅇㅌㅈㅇ ㅇㅇㅈㅇ

보고싶다

----

어빙은 의문을 담은 눈으로 상을 차려주는 가정부를 바라보았다. 그의 남편이 자리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 하고 작게 탄성을 낸 가정부가 입을 열었다.
“오늘 일이 바쁘시다고 아침은 함께 하지 못 할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에 어빙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서류를 훑어보며 식사를 하던 어빙은 몇 번 시계를 확인하더니 이내 얼마 들지 않고 일어났다.
“이렇게 조금만 드시면 어떡해요. 몸 상한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미안해요. 약속이 있어서요.”
“점심이랑 저녁이라도 잘 드세요. 항상 이렇게 남겨서야……. 몸이 남아나지를 않겠어요.”
“알겠어요, 알겠어요. 걱정 고마워요.”
어빙은 작게 푸스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안방으로 들어갔다. 안방이라 해도 특별할 것은 없었다. 책 한 두권, 묘하게 거리감이 드는 물건들. 넓고, 뉴욕 시내가 한 눈에 보이는 안방은 잠을 자기 위한 공간, 옷 방, 부엌에서 가장 가까운 욕실이 있는 곳으로 전락한 지 오래였다.



어빙은 평소처럼 완벽하게 준비를 마치고 평소보다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그리곤 주변 주민센터로 들어갔다. 이제 막 문을 연 참이라 한산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어빙은 조용히 이혼 서류를 발급받고 다시 차에 오를까 하다 초겨울의 묘하게 서늘한 공기가 마음에 들어 주변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살 겸 가벼운 산책을 즐겼다.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서류철 사이에 두었던 협의이혼 서류를 펼쳐 하나하나 읽어내렸다. 따듯한 커피는,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맛없었지만, 오전의 한산한 분위기를 돋구는 데에는 제 몫을 독특히 해내고 있었다. 어빙은 잔잔한 미소를 띤 채로 마저 서류를 읽다 적당한 시간이 되자 자리를 떠났다. 벤치에 어중간하게 남은 그의 온기가 이내 사라졌다.


-


그 날은 결혼기념일이었다. 어빙이 이혼 서류를 받아온 날 말이다.
결혼 기념일에도 아침 일찍부터 홀연히 떠난 남편을 떠올리면 이 결혼이 끝에 다다랐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빙은 이 관계에서 철저하게 질 수 밖에 없으니, 무거운 마음을 뒤로 하고 그와의 이혼을 선택한 것이었다.
선물을 주지 않아서, 결혼기념일을 축하해 주지 않아서. 그런 탓은 아니었다. 그런 얘기를 하며 슬퍼하고 속상해하기엔, 글쎄, 어빙의 남편은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 없었고, 어빙은 이미 반쯤 체념한 상태였다. 남편은 평소처럼 이번 기념일도 잊은 것이었고, 그렇게 무덤덤하게 결혼의 끝을 직감한 것이었다.


그의 남편, 브루스 웨인은 완벽한 남자니까 결코 기념일을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었다. 비서에게 전해 듣고, 삼 분만에 선물을 정해 그걸 사 와달라 부탁한 다음, 어빙의 서재 책상에 선물을 두고 잠자리에 들겠지. 그게 둘 사이의 거리였고, 분위기였다.
어빙은 가만히 제 주머니에 들어있던 사각형의 작은 박스를 꺼냈다. 시계였다. 남편의 청회색 눈을 담은 그런 색이었고, 손이 크고 뼈대가 두꺼워 남성스러운 그의 손에 맞게 적당히 컸으며, 재벌이지만 사치를 하지 않는 그의 성정처럼 적당히 화려했다.

어빙은 이 선물을 고르는데 육개월이 걸렸다.

-

“결혼 축하드려요.”
“음?”
“결혼이요. 오늘 기념일이시잖아요.”
“그랬었군.”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무의식적으로 소리를 내는 상사에 그녀는 질린다는 눈빛을 하며 서류를 책상에 두었다. 이제야 돌아오는 눈빛에 그의 비서는 그의 아내가 도대체 어떻게 이 결혼을 버티는 건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또 잊으신 거겠고요.”
“그래요.”
“선물은 뭐로 할까요?“
“겨울이니 코트 어때요?”

비서는 잠시 진심이냐는 얼굴로 웨인을 보더니 말했다.
“……작년에 드리셨잖아요.”
“머플러?”
“그것도요.”

심각하게 변한 상사의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당황한 얼굴에 곤란하다는 기색이 섞인 그 얼굴, 말이다. 그 표정을 지을 때면 그의 상사는 너무 단호해 보였다. 칼같이 보였다. 아내의 선물을 고르는 게 당황과 곤란씩이나 할 일인가 싶었다.

“……가는 길에 뭐라도 좀 사가세요.”
웨인은 머쓱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바라보던 비서는 이내 오늘의 일정, 처리해야 하는 서류, 뭐 그런 것들에 대해 늘어놓았다. 오늘도 일이 많았다. 평소에도 많았지만, 오늘은 특히나. 전달을 마치고 나니 다른 비서가 문을 두드린다. 웨인이 들어오라 신호를 주자 비서가 들어온다.


“사모님께서 오늘 저녁 어떠시냐고 여쭈십니다.”
“조금 어려울 것 같다고 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나가려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또 다른 비서가 그를 멈춰 세웠다.
“최대한 노력하시겠다고 전해줘. 오후 일곱 시에 보자고도.”
“제인?”
“그러면 결혼기념일에 혼자 저녁 드시게 두실 건가요? 아담, 빨리 가서 전해드려.”
아담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나섰다.
제인은 약간 당황한 눈으로 절 쳐다보는 상사의 눈을 맞받아치며 서류를 가리켰다.



“빨리하세요.”
그를 바라보던 웨인은 고개를 작게 끄덕이곤 서류를 훑었다. 뭐 이리도 유난인지 알 턱이 없었다.

그래, 중요한 날이지. 소중한 날이다. 부부를 결혼에 이를 수 있게 해 준 그들의 사랑을 축하하고 축복하는 시간. 그러나 이해관계로 묶인 이들은? 이해관계를 축하할 수는 없었고, 그의 아내 또한 이런 날을 특별하게 여기는 성정도 아니었다. 바쁘고, 효율적인 사람이니까. 그래서 이들은 결혼생활 내내 그래왔다. 생일, 기념일. 그런 날에 우연히 일정이 맞을 때면 저녁을 먹고, 가벼운 선물을 주고받았지만, 굳이 무리하게 일정을 맞추지는 않았다. 그게 둘 사이의 거리였고, 분위기였다. 굳이 바꾸고 싶지 않은, 그런 상황.

도리어 정략혼 치고는 깔끔한 관계 아니던가? 바람을 피우는 이도 없었으며, 매일을 싸워대지도 않았다. 타인으로 결혼했으니, 타인으로 생활해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게 웨인의 입장이었다.


-


“음식 서빙을 해도 될까요?”
“아,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하지만 손님…….”
곧 여덟 시였다. 어빙은 작게 한숨을 쉬며 와인 한 병을 사고 집으로 돌아갈까 싶었다. 음식이 준비되었으니 먹고 가는 게 나으려나 하는 고민을 하는 순간 누군가가 그의 팔을 잡아 왔다.

아, 하는 작은 탄식과 함께 어빙의 눈이 아주 잠시 이채를 머금었다 이내 사라졌다. 팔에 닿아오는 온기, 손의 크기, 사람의 인기척 만으로도 그의 남편임을, 웨인임을 알 수 있었다.

“브루스.”
“미안해요. 같이 식사하죠.”
웨인은 예의 그 시원하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동시에 눈썹은 약간 솟아있는 것이, 미안해하는 듯했다. 어빙은 저런 표정이면 뭐라고 하지도 못하는데, 하고 생각하다 이내 자신은 웨인에게 그 어떤 잘못도 탓하지 못 한다는 걸 새삼 깨닫고 피식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웨인이 맞은 편에 앉고 둘 사이에 내려앉은 침묵이 어색해 질 즈음 음식이 나왔다.


-


‘그래서 이번 상장은 다른 방식으로 진행 할 겁니다.’
‘당신 아버님 손은 안 빌려도 되니 걱정하지 말아요.’
‘이런 내용으로 진행할 건데 어떻게 생각해요?’


가만히 음식을 먹으며 둘은 비즈니스에 관한 얘기를 나누었다. 웨인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었고, 정치계 인물의 의견이 필요했는데 마침 어빙이 정치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빙은 가만히 음식을 먹으며 제가 들고 온 서류를 생각했다.


이 사람이 이걸 받으면 좋아하려나? 정치계 뒷배가 사라진다고 슬퍼할 이는 아니니 좋아하겠지. 애초에 정치에 별 뜻도 없었고. 헤어지고 나면 좋아하는 사람이랑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아기도 가지겠지. 멋진 사람이니까. 다정하게 대해주겠지. 나한테도 매너 있게 대하는 걸 보면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그의 옆에 서고 싶었지만, 글쎄 그 정도 욕심을 부리자니 어빙에게도, 아니, 정확하게는 제스퍼에게도 일말의 양심이 있었기에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어차피 정략혼이고 웨인 입장에서는 이제 헤어져도 아쉬울 건 없으니 이제 헤어지면 되는 것이었다. 웨인 입장에서는 이득이고, 어빙의 입장에서는 본전이니까. 물론 웨인이라는 대부호가 사라진 만큼 제스퍼가 뛰고 구르며 돈을 충당하긴 해야겠지.


‘재스퍼!’
아버지는 어빙을 때리실까? 육군 사관학교 반지가 끼워진 그 손으로 뺨을 때릴까? 책상에 있는 물건을 던지시려나? 아니면 혀만 쯧, 하고 차면서 시선도 안 주고 고개를 돌리시려나? 몸이라도 팔아 가문에 도움이 되어야 하는 자식이 도대체 왜 그러느냐 하시려나?
어느 방향이던 어빙에겐 그리 큰 충격은 아닐 터였다. 이미 부모의 화와 무관심에는 도가 튼 그였으니까. 또 어떻게든 하면, 날 봐주시겠지, 하며 다음을 기약할 뿐이었다.
실제로 그는 모든 다음의 기회에서 성과를 내었고, 그때마다 지어지는 아버지의 미소라던가, 어깨를 툭툭 두드리는 손길에 더 열심히 일했다. 일회성이 짙은 미소였고 독려였지만, 그래도 좋았다.
차라리 아버지가 끝까지 무관심한 사람이었다거나, 그가 무능한 사람이었다면 달랐을까?
무슨 가정이 되었든, 그를 우울 그 비슷한 분위기로 끌고 가는 것은 같았기에 그는 다시 식사를 이어갔다. 우울이라고 하기도 뭐했다. 체념과 무감함 그 사이 즈음 어딘가였다.


옆을 보니 한 가족이 사이좋게 앉아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남편은 스테이크 한 조각을 집어 아내의 입에 먹여주고 있었고, 아내는 그 손을 잡아 아이의 입에 스테이크를 넣어주었다. 맛있는지 손뼉을 치는 아이의 모습에 부부가 웃었다. 아내는 스테이크를 집어 남편에게 먹여주었고, 남편도 그렇게 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로 사랑했더라면 나도 저렇게 클 수 있었을까? 손뼉 짝짝 친다고 칭찬 받는 아이로 클 수 있었을까?

만약 그와 내가 서로 사랑했더라면?

그랬으면 뭐가 좀 달랐을까?

어빙은 가만히 맞은 편에 앉은 제 남편을 바라보았다. 무감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뉴욕 시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결혼기념일에, 아내와 근사한 저녁을 먹는 정도로는 그의 미소를 끌어낼 수 없었다. 그는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고, 지금은 그냥 비즈니스 업무 같은 거였으니까. 그러니까, 서로 웃는 얼굴로 음식을 먹여주는 장면은 절대로 둘의 것이 될 수 없을 터였다.


“재스퍼.”
그러고 보면 어빙 본인도 참 웃겼다.

“재스퍼?”
놔준다,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결국 스스로가 지쳐 나가떨어질 때 까지 붙들고 있다가 힘들어지니 포기하는 것 아닌가.

“재스퍼?”
제 손을 감싸는 온기에 어빙은 놀라며 제 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묘하게 걱정하는 듯 의문을 품은 눈빛과 맞닿은 손에 그의 귀가 붉어질 것만 같았다.

“아, 미안해요. 왜요?”
봐, 결국 행동 하나에, 눈빛 하나에 마음이 설레는 주제에 ‘놔준다’고? 비련의 여주인공 납셨군.


“오늘 늦어서 미안해요.”
웨인은 그리 말하며 꽃다발을 어빙에게 건넸다. 어빙은 가만히 꽃다발을 바라보다 고맙다는 말을 하며 꽃다발을 받았다. 가만히 꽃다발을 바라보던 어빙은 작게 재채기를 몇 번 하더니 이내 꽃다발을 적당한 위치에 두고 식사를 이어갔다.


“아…….”
이내 그만두어야 했지만.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재채기 때문에 식사를 이어가기 어려울 것 같았다. 어빙은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최대한 몸을 진정시킨 다음, 다시 멀쩡한 미소를 지으며 웨인을 불렀다.


“브루스.”
“네.”
“죄송하지만 저 몸이 조금 안 좋아서 먼저 들어가 볼게요. 여기 6개월 전부터 예약한 곳이니까 식사 잘 하고 와요.”
웨인은 잠시 어빙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어빙은 거의 잊어버릴 뻔 했던 서류와 선물을 건네고 그 미소를 지으며 식당을 빠져나갔다.


---



어빙 꽃가루 알레르기나 그런 디테일한 건 전부 알못,,
+메리크리스마스!



문제시 삭제 
웨인어빙 아이스매브

2023.12.25 20:40
ㅇㅇ
모바일
센세가 압나더를 주시다니 크리스마스선물이다 하.....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Code: 57d7]
2023.12.25 20:43
ㅇㅇ
모바일
내센세가 어나더를 주셨어 ㅠㅠㅠㅠㅠ 센세 사랑해 이제 정독하러 간다 ㅌㅌㅌㅌㅌㅌ
[Code: 39a4]
2023.12.25 20:52
ㅇㅇ
모바일
어빙 너무 찌통인데 ㅠㅠㅠㅠㅠㅠ웨인을 사랑하지만 돌아오지 않는 마음에 지치고 이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관계에도 익숙해지고 무감해진거 너무 슬퍼 ㅠㅠㅠㅠ사실 끊임없이 상처받고 있는게 보여서 마음이 아프다 ㅠㅠㅠㅠ브루스 너무해 어빙 꽃 알레르기도 몰랐다는 거잖아
[Code: 39a4]
2023.12.25 20:54
ㅇㅇ
모바일
이제 이혼서류를 남기고 어빙이 떠났으니 브루스가 구를 일만 남은건가? 센세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 어나더 플리즈 ㅜㅜㅜㅜㅜ
[Code: 39a4]
2023.12.26 00:18
ㅇㅇ
모바일
하 센세 찌통 대작의 서막에 함께해서 행복해요 억나더 주세요
[Code: 277d]
2023.12.26 00:31
ㅇㅇ
모바일
브루스 업보쌓네 어빙한테 무슨 일이 생기는건 아니겠지? 센세 어나더 플리즈 ㅠㅠㅠㅠㅠ
[Code: 5d55]
2023.12.26 04:19
ㅇㅇ
모바일
추천할수없음 추천할수없음 추천할수없음 추천할수없음 추천할수없음 추천할수없음 추천할수없음 추천할수없음 추천할수없음 추천할수없음 추천할수없음 추천할수없음 추천할수없음 추천할수없음 추천할수없음 추천할수없음
[Code: 8804]
2023.12.26 04:20
ㅇㅇ
모바일
하 ㅠㅠㅠㅜㅜㅜ 센세가 어나더를 주셨어 브루스 업보 어쩌려고 저러냐 아 어빙 너무 짠해 ㅠㅜ 선물 고르는데 차이나는거 진짜 너무슬프다 감정의 크기와 비례하다니 ㅁㅊ ㅠㅜ
[Code: 8804]
2023.12.26 20:18
ㅇㅇ
모바일
ㅜㅠㅠ 어빙이 너무 짠해서 브루스 데굴데굴 굴러라 ㅜㅜㅜㅜ
[Code: f0ed]
2023.12.26 22:51
ㅇㅇ
모바일
웨인 얼마나 후회하려고ㅠㅠ모질게 구는거보다 저런 무관심이
더 찌통이네ㅠㅠㅠㅠ
[Code: 6444]
2023.12.26 23:51
ㅇㅇ
모바일
아무리 그래도 배우자인데 하필 알러지인 꽃다발 사다주는 웨인.... 후회업보의 시작이구나..
[Code: 7cd2]
댓글 작성 권한이 없음
성인글은 제외된 검색 결과입니다.
글쓰기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