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591070511
view 2087
2024.04.15 18:29
며칠간 대장님은 총사령관이 부재했던 하루를 만회하기 위해서 바쁘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한 번은 스모크스크린을 데리고 정말 드라이브를 가주었다. 파울러 요원의 접견이 취소된 날이었다. 스모크스크린은 표정 관리하는 시늉이라도 내려고 했지만 시종일관 입꼬리가 옵틱에 닿을락 말락 하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아크가 위치한 격납고 기지 안쪽에서 메인 모니터룸으로 향하고 있을 때, 알씨가 대장님에게 접근했다. 디셉티콘의 새로운 동향에 대한 보고를 마친 그녀가 히죽거리는 스모크스크린을 수상쩍게 바라보더니 대장님께 물었다.


“옵티머스, 어디 나가세요?”

“스모크스크린과 바람 좀 쐬고 오려고 하네.”


대장님이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알씨가 커진 옵틱을 깜빡였다. 데이트를 대놓고 광고하는 발언도 놀랄 노자겠지만 그 옵티머스가 이렇게 이른 시간에 한숨 돌리려고 한다는 사실 역시 만만치 않게 충격적이었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대장님이 반쯤 농담하듯, 또 반쯤은 변명하듯 덧붙였다.


“자네도 가끔은 해가 지기 전에 이곳의 아름다운 풍광을 찬찬히 둘러보게.”


그 말에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아담하고 정겨운 생태계가 떠올랐다. 대장님도 같은 장면을 떠올리며 말씀하시는 듯 했다. 알씨는 어쩐지 애틋한 기색으로 스모크스크린과 대장님을 번갈아보더니 발걸음을 옮겼다. 모니터룸에서는 라쳇을 만났다. 아까 알씨와의 대화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몇 마디가 오갔다. 라쳇은 검지와 중지로 자신의 옵틱을 가리킨 후 스모크스크린의 옵틱을 향해서도 같은 제스처를 취하고 나서 둘을 보내주었다. 저런 지구식 바디 랭귀지는 또 언제 배우셨대.


“라쳇의 언사에 크게 개의치 말게.”


트럭의 모습으로 모래를 밟은 대장님이 말했다.


“라쳇도 나름대로 자네를 귀여워하네. 단지 돔들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것 뿐이야.”


돔‘들’이라는 단어에서 대장님과 메가트론의 과거가 어쩔 수 없이 연상되었다.


“메가트론이 대장님한테 했던 짓 때문에요?”

“...그것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일세.”

“뭐, 신경 안 써요. 저도 라쳇 좋아하고, 대충 이해가기도 해요. 치료하는 메크 눈에는 부상 입히는 메크가 특히 얄밉겠죠.”


둘은 한동안 한적한 황야를 달렸다. 대장님이 혹시라도 도마뱀이나 벌레를 밟지 않도록 천천히 달리고 있었으므로 그 역시 비슷한 속도를 유지하게 되었다. 시원하게 과속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대장님과 함께 있으니 이건 또 이것대로 오붓하게 산책하는 것 같아서 나쁘지 않았다. 눈앞에 펼쳐진 길이 아니라 곁의 연인에게서 새어나오는 엔진소리나 바퀴가 회전하는 모양새 등에 보다 집중할 수 있었다.


높은 언덕 꼭대기에 올랐을 때 둘은 로봇 모드로 돌아와서 자리를 잡았다. 스모크스크린은 절벽 아래로 다리를 흔드는 장난을 치며 앉아있었다. 대장님이 그를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때로는 겁낼 줄 아는 지혜도 필요하다네.”


요즘 따라 스모크스크린의 안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대장님이었다. 그는 대장님이 악몽에 시달리던 밤을 기억했다.


“그러고 보니 저한테 그 날 무슨 꿈 꿨는지 알려주기로 하셨잖아요.”


부패하여 지표면 아래로 파고드는 유기물처럼 대장님의 눈빛이 가라앉는 동안, 스모크스크린은 덧붙였다.


“우리 숨기는 일 없기로 해요. 힘든 일일수록 더더욱.”


대장님은 멀리 떨어진 여러 개의 다른 절벽으로 시선을 옮겼다. 따뜻한 손가락 사이로 기어들어가서 손을 얽어보았지만 그는 대답이 없었다. 아직 말하기 싫으신 걸까? 한동안 기다리던 스모크스크린이 화제를 전환할만한 다른 이야기를 생각해내고 있을 즈음 대장님이 입을 열었다.


“옛날에 엘리타 원이라는 친구가 있었네. 좋은 메크였지. 나보다 훨씬 리더의 자질을 많이 갖춘…”


간혹 혼자 상념에 빠져계실 때 그러곤 하는 것처럼 대장님의 입꼬리가 처져 있었다. 스모크스크린은 귀를 기울였다.


“프라임으로 발탁되었던 내전 초기에, 나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네. 견고한 외갑과 무기를 얻었지만 그것들을 어떻게 다뤄야하는지 몰랐고 오토봇을 규합하는 데에도 서툴렀어. 다른 이들은 나를 옵티머스 프라임이라고 불렀지만 난 아직도 사서 오라이온이었네. 할 줄 아는 것은 오직 어설픈 말과 글로 디셉티콘의 반발을 부추겨서 나를 따르는 메크들을 공격당하게 하는 일 뿐이었지.”


스모크스크린이 아이아콘에서 읽은 역사 데이터에 따르면 당시 새로운 프라임의 연설은 디셉티콘의 정치적 존립에 크나큰 위협이었다. 디셉티콘에 비하면 군사력도 재원도 턱없이 부족한 소규모의 신흥 정치 단체를 상대로 메가트론이 현재까지 집중 공세를 펼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스모크스크린은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대장님의 말을 정정하는 대신 그저 마주잡은 손에 힘을 더했다.


“언젠가부터 측근들이 족족 죽임당하기 시작했네. 엘리타는 진작부터 이를 예상하고 내 호위를 맡고 있었지. 그녀야말로 오토봇의 귀감이었다네. 정의롭고 용감하며 결단력 있었지. 프라이머스가 엘리타를 먼저 만났다면 매트릭스는 그녀를 선택했을 거야. 그녀는 마지막까지 충성을 다해주었네. 내가 메가트론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게 될 때까지, 야심한 밤을 틈타 암살자가 나를 감싸고 방어하는 그녀의 스파크를 추출해갈 때까지….”


스모크스크린은 엘리타원과 젊은 옵티머스가 서로를 끌어안고 잠든 마지막 밤을 상상했다. 마치 지금의 자신과 대장님이 그러듯이. 역사서 속에서 엘리타원이라는 이름은 오토봇 결성 초기에만 간략하게 언급되었다. 래커즈나 엘리트 가드가 창설되기도 전이었다. 둘은 아마도 아주 짧은 기간동안 연인이었던 것 같았다.


“그날 밤 그녀의 최후에 대한 꿈을 꾸었어. 그런데 그 꿈에서 엘리타는 자네의 모습을 하고 있었네. 나는… 믿지 않았어. 꿈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 서둘러 깨어났지만 자네가 다시 나를 감싸 안더니 그대로…”

“.…”

“그 다음에야말로 나는 꿈에서 깼다고 생각했네. 내 뺨까지 때려보았지. 아팠네, 스모키, 아팠단 말일세… 그러나 또다른 암살자가 그늘 속에서 나타나고, 자네는 다시 나와 추출기 사이를 가로막고, 또, 또다시…”

“대장님…”


중첩된 악몽의 기억을 되살리는 대장님의 손가락이 차갑게 식고 있었다. 스모크스크린은 그를 조심스레 끌어안았다.


“스모키, 가장 끔찍한 부분은… 그날 엘리타의 목숨을 빼앗은 자가 디셉티콘 출신이 아니었다는 점일세. 그는, 그는 변절하여 평의회의 사주를 받은 오토봇이었어. 엘리타와 함께 일하며 몇 번 나와 마주친 적도 있었네.”

“...대장님, 저 안 죽어요. 제 한 몸쯤은 건사할 수 있어요.”

“제발, 죽지 않겠다는 말조차 하지 말게. 그냥, 그냥… 그 어떤 나쁜 상상도 하지 않게 해줘.”


스모크스크린을 고쳐잡는 손길이 떨리고 있었다. 그의 어깨 너머로 고개를 묻어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 채로, 대장님이 어둠처럼 속삭였다.


“너무 많은 메크들이 가버렸어… 절대 그런 대접을 받아서는 안될 좋은 메크들이 너무 많이….”

“대장님…”


스모크스크린은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몰랐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우물 속에서 억겁의 시간동안 살고있던 누군가를 꺼내려면 얼마나 긴 밧줄이 필요할까? 만약 응답이 없다면 그게 단순히 지쳐서인지, 아니면 우물 밖으로 나오길 거부해서인지는 또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스모크스크린이 할 수 있는 건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든 기필코 그를 끌어내서 몸을 말리고, 또 더운 물을 먹이고 말겠다는 다짐 뿐이었다.


“이거 하나는 약속할게요. 저 객기 부리지 않고 최대한 안전하게 싸울 거에요. 저번 미션 때도 다 잡은 디셉티콘 포기했다는 보고 기억하시죠? 믿겨지세요? 제가, 대장님 말씀을 듣고 자제란 걸 했다니까요? 덕분에 이렇게 사지 멀쩡하게 돌아왔잖아요.”


대장님은 대답이 없었다. 어깨에 진한 키스가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스모크스크린이 이어말했다.


“그러니까 대장님도 기지 안팎에서 최소한의 컨디션은 유지하겠다고 약속해주세요. 위험한 곳에는 저 데려가는 거 잊지 마시고, 물론 어떤 이유에서건 세이프 워드도 제때 말씀하시고요. 아시겠죠? 제가 방금 한 것처럼 약속해주세요.”

“....”

“대장님, 약속해요.”

“......”

“대장님.”

“...알겠네. 약속함세.”


대장님이 어두운 눈빛으로 응답했다. 미적지근한 반응에 토달 새도 없이 그가 한탄처럼 내뱉었다.


“자네는 너무 다정해서 탈이야.”

“다정해서 나쁠 게 있나요?”

“자네를 너무 좋아하게 되니까…”


스모크스크린은 씩 웃었다. 드디어 대장님을 안심시키고 장난칠 만한 주제가 나온 것이 반가웠다.


“새삼스럽게 저한테 또 반하기라도 하셨어요?”

“....”

“진짜인가 본데요.”

“응…”


대장님이 그의 목을 부드럽지만 강하게 끌어안았다. 수줍어하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시려는 게 느껴졌다. 그는 모른 척 넘겨주었다. 대신 백 플레이트의 골을 따라서 손가락을 미끄러뜨리기 시작하자 대장님이 간지러운 것처럼 부르르 동체를 진동시켰다. 스모크스크린은 그의 오디오 리셉터에 대고 속삭였다.


“언제에요? 말해주세요.”

“이제는… 너무 많아서 셀 수도 없네.”

“그런 말로 넘어가시기에요? 듣고 싶은데.”

“자네한테 또 미끼를 줘버린 게 후회되는군.”

“세 번째로 반했다고 하시던 건요? 그건 전에 말씀해 주시려다가 마셨잖아요.”

“자네가 나중에 듣고 싶다고 해서였지 않은가..”

“지금 듣고 싶어졌어요.”


그러자 놀랍게도 대장님의 눈빛이 일순간 장난기를 띠었다.


“첫 밤을 보내고, 헤어지자는 말에 자네가 펑펑 세척액을 쏟았을 때.”


그건 좀 가오가 상하는데. 사실 지금 생각하면 쪽팔려서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었다. 립 플레이트가 저절로 불퉁해지고 도어윙이 내려가는 게 느껴졌다. 대장님이 그의 얼굴을 보고 작게 웃었다.


“거짓말이죠?”

“진심일세.”

“그게 왜요…?”

“글쎄… 아무튼 귀여웠어. 자네가 이 관계를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했는지도 절절하게 느껴졌고.”

“쳇, 그냥 물어보지 말고 있을걸.”

“이 맛에 자네가 평소 나를 놀리는 거군.”

“이상한 거 따라하지 마세요.”


둘은 잠시간 서로에게 기대앉아서 발밑의 풍경을 구경했다. 간혹 한 무리의 철새가 지나가는 걸 보니 이 황폐한 협곡에도 생명체가 살고 있긴 한 것 같았다. 사이버트로니안 기준으로는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작지만 부단한 노력 끝에 생을 연장하고 있을 그 많은 것들. 호기심 많은 까마귀 한 마리가 대장님의 안테나 끝에 착지하더니, 곧 안면 플레이트 위로 옮겨갔다. 다큐멘터리에서 들었던 해설처럼 빛나는 것을 탐내는지 조그만 부리가 푸른 옵틱을 콕콕 쪼았다. 요게 감히 어딜. 손을 내저어서 내쫓자 까마귀는 짖궃게 웃는 것 같은 울음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대장님이 오래된 앨범을 살피는 것처럼 까마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새가 블래스터를 닮았군.”

“그건 또 누구에요?”

“자네처럼 천방지축인 대원이 하나 있었네.”

“저보단 덜 잘생겼겠죠?”


또다른 경쟁자일까? 맞닿은 어깨를 부비적거리며 묻자 대장님이 등을 토닥여주었다.


“질투할 것 없네. 지금은 다른 행성에 정착했으니.”

“그럼 됐고요.”

“모두들 잘 살고 있었으면 좋겠군. 다른 은하계에서든, 어디에서든, 올스파크에서도… 사슴과 어치처럼, 코요테처럼 나무 사이에 안전하게 몸을 숨기고 있길. 부디 프라이머스가 그들과 우리를 굽어 살피시길...”


대장님이 하늘을 올려보더니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제야 스모크스크린은 대장님이 얼마 전 다큐멘터리 속 동물들에 무엇을 겹쳐봤는지 깨달았다. 그 작은 생태계의 평안이 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왜 오랜 세월동안 그들과는 면식조차 없었던 지구인들을 그토록 필사적으로 보호하려고 드셨는지도. 대장님은 그들에게서 그가 사랑하는 사이버트로니안들을 보고 있었다. 또한 대장님은 속죄하고 있었다. 온 생명체 앞에 무릎을 꿇고서 사이버트론과 연관된 모든 해묵은 업보를 대신 청산하고자 발버둥치고 있었다. 카르마라는 이름의 그 거대한 청색의 불꽃에 본인의 스파크를 장작삼아 집어넣는 한이 있더라도.





트포 스뫀옵티
약엘리타옵티
2024.04.15 18:32
ㅇㅇ
모바일
센세 나 물결만 봐도 설레...
[Code: bf11]
2024.04.15 18:34
ㅇㅇ
모바일
진심 개존잼이고 대작ㄷㄷㄷㄷㄷ와
[Code: bf11]
2024.04.15 19:03
ㅇㅇ
모바일
아너무 힘들어요 마음이 아파.....프라이머스 일케 고생하는 막내프라임한테 해피엔딩 안주면 뚝배기깬다......
[Code: 6653]
2024.04.15 20:33
ㅇㅇ
센세 사랑해!!!!!
[Code: f512]
2024.04.15 21:26
ㅇㅇ
모바일
엘리타원의 스파크가 뽑혀나갔다는 데에 입틀어막다가 범인이 변절자 오토봇이란 문장 보고서 비명질렀어요 센세 제발 옵대장님 행복해......
[Code: 8945]
2024.04.15 22:17
ㅇㅇ
엘리타..
[Code: 5f2b]
2024.04.15 22:35
ㅇㅇ
모바일
일주일의 시작을 센세의 스뫀옵티와 함께하다니 너무 좋다
[Code: 170b]
2024.04.15 22:45
ㅇㅇ
모바일
세상에 옵대장 어깨에 짊어진 짐이 너무 무겁네..ㅜ
또 소중한 메크를 잃게 될까봐 두려워할 수 밖에 없는 옵대장 안쓰럽고 이해된다..ㅠㅠㅠㅜ
스뫀옵티에게 행복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으면 좋겠다
[Code: 170b]
2024.04.15 23:28
ㅇㅇ
모바일
옵대장이 '돔들'이라고 언급하는 부분에서 궁금해진 건데 혹시 메각하 만나기 전에도 자기 성향을 알고있었던 걸까..? 언제 자각하게 된 건지도 궁금하다

스뫀옵티는 드라이브하면서 데이트하고있는데 제 심장은 뜯겨져나갔어요 엘리타...ㅠㅠㅠㅠㅠ
[Code: d88d]
2024.04.15 23:45
ㅇㅇ
모바일
아니 행복한데 왜 마음이 이렇게 아리냐...
[Code: 6ada]
댓글 작성 권한이 없음
성인글은 제외된 검색 결과입니다.
글쓰기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