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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짹으로 번역 허락 받음. 작가님 개인적인 이야기는 지웠다.
- 현대 AU
- 의역 많음, 심각한 오역 및 맞춤법 지적 감사




a dark alley, a bad idea

Chapter 2






어쩌면 퀸란은 좋은 의도로 도움을 주었을 수도 있지만 오비완은 퀸란이 지하에서 개싸움을 붙여두고 돈을 거는 데서 즐거움을 찾는 부류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퀸란이 건네는 오페라 표를 의심하는 건 오비완의 잘못이 아니었다.

"오페라는 너한테 너무 교양 있는 문화생활 아니야?"

"오비완이 내 마음에 비수를 꽂네. 진짜 아프다. 이 표는 내 고객께서 주신 거야. 지난 10달 동안 너에게 재미있는 일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걸 알아서 내가 친히 한 장을 넘겨주는 거라고. 마침내 번쩍이는 모자를 쓰고 어른이 되었음을 증명할 기회가 온건 데 정말로 안갈 거야? 게다가 저녁도 포함되어 있다고. 공짜 음식을 거절하면 그게 사람이냐." 퀸란이 말했다.

"그날 벌써 약속이 잡혔어." 오비완은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그럴 리가 없잖아." 퀸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오비완이 규칙적으로 만나는 사람은 퀸란이랑 상담사와 아나킨 뿐이었다. 게다가 아나킨과는 50cm 카운터를 사이에 두고 만나야 했다. 그리고 이 세 사람 중 아무도 오비완에게 브런치나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초대하거나 아니면 사교 목적으로 여겨질 만한 만남을 추진하지 않았다. 오비완은 진전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그저 글쓰기라는 진흙탕에 빠져 허우적거리느라 마지막으로 운동 바지 말고 다른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던 게 작년 크리스마스에 삼촌을 만나러 나갔을 때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가 지금에서야 떠올리게 되었다.

오비완은 다시 한 번 고양이를 키운다면 인생이 얼마나 극적으로 나아질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음..... 하지만 당장 고양이를 키울 수는 없었다. 그리고 만일 가기 전에 배를 채우고 따스한 침대 속에서 충분히 누워 있다면 오페라에 가도 나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당일 저녁에 오비완은 오페라를 보러 가는데 적절히 입을만한 옷을 찾으려고 옷장을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 대부분 정장을 세탁소에 맡기고 찾아오지 않았다는 사실과 그나마 남아있는 옷은 더 이상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차곡차곡 쌓이는 패닉에 당황했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마침내 소매에 얼룩이 거의 없는 옛날에 구입한 재킷과 다락방 상자에 오랫동안 넣어두어 곰팡이 냄새가 은은하게 나는 갈색 코르덴바지를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웃길 정도로 작은 빗으로 수염을 다듬는 동안 오비완은 이런 식으로 외모를 꾸미는 게 정말로 오래간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비완은 거울 속의 자신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턱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배에 힘을 주어보고, 어깨를 오므렸다가 다시 펴보고는 관리가 필요한 부분이 수 없이 많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서 자신을 바라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새틴이 지금의 오비완을 봤으면 틀림없이 머리를 자르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비완은 젊었던 시절을 상기시켜주는 아무렇게나 자란 긴 머리가 마음에 들었다.

오비완은 수염에 오일을 바르고, 현관문 열쇠를 챙겼다. 그리고 한 손으로 셔츠의 목 부분에 달린 실밥이 거의 풀려 흔들리는 단추를 채우고는 오페라 하우스로 데려다줄 택시와 퀸란이 기다리고 있는 밖으로 나갔다.

퀸란은 퀸란답게 짜증나게도 오비완에게 뒷좌석 문을 열어주더니 오비완이 택시에 타는 동안 허리를 숙여 인사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작가님을 위한 황금 마차를 대령했사옵니다."

*

인생을 살아온 시간이 길어질수록 오비완의 취향이 고급스럽게 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대부분은 새틴의 취향에 따라간 거긴 했지만 말이다. 오비완은 기숙학교를 졸업한 뒤에 명망 높은 대학으로 진학하기는 했지만 부유한 삼촌의 넉넉한 인심덕분에 살아왔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다. 오비완은 부자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새틴을 포함한 돈 많은 친구들 주위에서 부를 누리는 특권을 가지고 살아왔다. 

이제 오비완은 새틴이 소개시켜준 많은 생활양식이 몸에 베어버려서 그곳에서 재미를 찾는 수준까지 이르게 되었다. 새틴 덕분에 오비완은 테니스를 배웠고, 겨울에 긴 양말을 신고 잠들었으며, 잠들기 전에 침대에 누워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읽으며 셰리주를 홀짝이게 되었다. 그리고 오페라 역시 새틴 덕에 알게 된 문화생활이었다. 사회성이 좋아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원할 때면 언제든지 오페라 하우스의 특별석 좌석 표를 얻을 수 있는 새틴은 오비완을 데리고 오페라 하우스에 가곤 했다.

퀸란이 받아온 좌석은 어떻게 봐도 프리미엄 좌석은 아니었지만 무대와의 거리가 적당했고 두 다리를 편안하게 펼 수 있을 정도로 좌석간의 공간도 충분히 넓었다. 인터미션이 되자 오비완은 순전히 습관적으로 흡연실 근처에서 어슬렁거렸다. 간접흡연을 할 때면 새틴과 새틴이 담배를 피우는 동안 밖에서 기다렸던 시절이 떠올랐다. 필터가 없는 담배를 선호했던 새틴이 만화 속 악당처럼 우아하게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생각나자 그와 어울리는 억양을 구사하던 새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그날 밤은 평온하게 마무리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고통 받는 오비완을 내려다보는 데서 기쁨을 찾는 신에게는 오비완을 위한 계획이 있었다. 자리로 돌아온 오비완은 퀸란에게 지인을 소개받다 무의식적으로 2층을 올려다봤다. 그러자 눈에 익은 머리가 보였다.

거기에 그녀가 있었다. 마치 복수의 천사처럼 어떤 남자와 팔짱을 끼고 계단 꼭대기에 서있었다. 남자가 반대쪽 손을 자신의 작은 등에 얹는 것을 허락한 새틴은 남자와 함께 천천히 미끄러지듯이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오비완은 새틴을 위해서라도 지금쯤 행복해져야했었다. 새틴이 과거를 묻은 채 앞으로 나아가듯이 오비완 역시 전진해야했다. 하지만 오비완은 여전히 과거에 남아있었다. 오비완은 새틴이 자신의 심장을 부순 걸로 모자라 8cm 하이힐 굽으로 자근자근 밟아 작은 조각으로 만들어버렸던 순간에 머물러 있었다. 좋은 남자였다면 그런 새틴을 용서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비완은 그런 남자가 아니었다. 옹졸한 나머지 적의를 품어버린 오비완은 절대로 용서하지 못했다.

이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그들은 겨우 3년 동안만 한 침대를 썼고, 결혼 4년차에 접어들었을 때 새틴은 오비완에게 코골이 방지 기계를 살 때가 왔다고 말하고는 손님용 방으로 가버렸다. 침실에 홀로 남겨진 오비완은 불만이 있었으면 미리 말해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두 사람은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새틴의 눈동자를 보자 오비완은 그동안의 인생이 눈앞에서 폭발하며 거칠게 뛰는 맥박만큼이나 머리를 두근거리게 만드는 것을 느꼈다. 가슴에서 뛰는 심장의 무게와 폐를 짓누르는 갈비뼈가 느껴지고 점점 커져가는 미칠 듯한 주위의 소음이 선명하게 들렸다. 귓가에 들리는 쿵쾅거리는 심장소리와 땀으로 축축해진 손바닥과 더불어 복잡하게 헝클어진 실뭉치처럼 답답한 가슴 때문에 익사할 것만 같아서 공기를 힘껏 들이마셔야 했다.

새틴의 입이 열리는 순간 오비완은 몸을 홱 돌려 객석에서 도망쳐 새틴의 시선이 닿는 범위에서 벗어났다.

*

오페라 하우스의 남성용 화장실에는 칸막이가 쳐진 좌변기가 충분히 많았지만 모든 화장실에는 오비완이 절대로 되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높은 콧대를 자랑하는 음울한 남자들로 북적였다. 그래서 오비완은 자신만을 위한 조용한 장소를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마침내 비상구와 연결된 텅 빈 복도를 찾아냈다. 다른 곳보다 화려하지 않은 복도에서 오비완은 바닥에 쭈그려 앉아 손으로 얼굴을 쓸어 내렸다. 그리고 상담사가 가르쳐준 자신을 현재에 붙잡아두는 방법대로 팔로 무릎을 감싸고 어깨를 움츠렸다. 다시 기숙학교로 돌아간 것처럼 느껴졌다. 괴롭힘을 피해서 혼자 있을 수 있는 무릎 사이의 작은 공간에 얼굴을 숨긴 약한 소년이 된 것만 같았다.

오비완은 눈을 감고 스스로를 비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세상에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게 존재했다. 만약에 여기가 영화 속 한 장면이나 소설 속이었다면 지금은 주인공이 옛 아내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자신감 있게 자신을 소개할만한 완벽한 순간이었다. 새틴의 등에 올라간 남자의 손을 쳐내고 능청맞게 윙크를 날리고선 새틴이 쑥스러워할만한 일화에 대해 늘어놓았을 것이다. 담요를 발목까지만 덮는 습관이 있어서 오늘도 발등이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었느냐고 물어본다던지, 항상 인조 손톱을 달고 있지만 이게 원래 자신의 손톱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새틴을 알고 있으면서 넌지시 손톱이 오늘따라 더 아름답다고 말하던지, 아니면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고 싶은 날이면 칠하는 특별한 색의 립스틱을 알아본 척을 했을 수도 있었다. 허영심이 있는 새틴은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비완이 만났을 때 즐거웠던 사람 중에서 가장 똑똑하면서도 뛰어난 여성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곳은 소설 속이 아니었다. 오비완은 어두운 복도에 홀로 앉아 있었다. 이게 오비완의 인생이었다. 자기비하 농담을 너무 많이 늘어놓는 바람에 핵심에서 벗어나버려 다른 사람들을 오히려 불편하게 만들어버린 남자가 느낄만한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후회가 밀려왔다. 결혼이 끝나버렸음을 증명하는 도장은 이미 찍혔고 해피 엔딩이나 구원은 책에나 쓰여 있거나 소설 소재에 불과했다.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었다.

팔로 감싼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자 마침내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어쨌거나 그렇다고 세상이 멸망한건 아니었다. 오비완은 아직 죽지 않았고 더 최악의 상황에서 살아남은 적도 있었다. 그때 복도 끝에서부터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구두에서 나는 규칙적인 발걸음이 오비완의 의식을 콕콕 질렀다. 드라마틱하게 나가버린 오비완이 괜찮은지를 살펴보러 온 퀸란 같았다. 하지만 오비완이 퀸란에게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고 흐려진 눈을 가늘게 뜬 채로 고개를 들었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어깨와 어두운 표정을 지은 남자의 으스스할 정도로 눈에 익은 실루엣이었다. 아나킨은 두 번할 필요도 없이 한 번만 부탁해도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었던 남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당당한 걸음걸이로 어두운 복도가 마치 샹젤리제 거리라도 되는 듯이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아나킨이 입은 흠잡을 데가 없는 정장은 넓은 어깨를 딱 맞게 감싸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가늘어지는 날씬한 허리를 붙잡아주고 있었다. 처음에 아나킨은 바닥과 하나가 된 듯이 바보처럼 주저앉아있는 오비완을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마침내 오비완을 알아볼 정도로 가까이 다가오자마자 곧바로 발걸음을 멈추느라 살짝 발을 헛디디고 말았다. 그런 아니킨이 처음으로 건넨 말은 "또 당신이네요. 여기서 뭐 하세요?"여서 오비완은 대답 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오비완은 몸을 바르게 세우고 비틀거리며 제 발로 일어섰다. 아나킨과의 만남은 의심할 여지없이 오늘 밤은 인생에서 가장 최악의 밤이 될 거라는 선고와도 다름없었다. 오비완은 아나킨을 향해 온화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제가 묻고 싶은 말이네요." 아나킨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비완 가까이로 가다왔다. 그러자 오비완의 눈에 멀리서 보았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어떤 부자연스러운 점이 들어왔다. 계절감에 맞지 않는 검은색 가죽 장갑도 이상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아나킨의 정장 재킷에 선명하게 묻어있는 방금 튄 듯한 검은 얼룩은 어떤 경고처럼 느껴졌다. 얼룩에서는 어딘가 익숙한 듯한 날카로운 냄새가 났는데 오비완은 그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집어낼 수 없었다.

잠시 동안 오비완은 얼룩을 살펴보다가 시선을 들었다. 그리고 아나킨이 자신을 골똘히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아나킨의 얼굴에서 피어나는 나른한 미소를 바라보며 오비완은 조심스럽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오비완의 등이 벽에 부딪혔지만 아나킨은 몸이 붙을 정도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저 부적절한 거리라고 여겨질 정도로 너무 가까이 서있을 뿐이었다. "이건 라즈베리 잼이에요." 아나킨은 손가락으로 얼룩을 살살 쓸면서 말했다. 그리고 손가락을 혀로 핥더니 살짝 움찔했다.

머리가 보내는 불신감에 오비완은 얼어붙은 채로 아나킨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아나킨의 뻔뻔한 거짓말에 완전히 매료되어 둥둥 떠다니는 기분에 사로잡혀버렸다. 영국에서 태어난 만큼 오비완은 면이나 울이나 모직에 묻은 라즈베리 잼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나킨의 재킷에 묻은 얼룩이 라즈베리 잼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라즈베리 잼이라고 주장하는 아나킨의 의견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대신 오비완은 블루먼탈이 옆에 있었다면 믿기지 않는다는 듯 팔을 들어 올리고 상담이 추가로 필요하겠다며 상담료를 더 청구할 정도로 급격하게 주제를 바꾸었다. "당신이 오페라를 좋아하는지 몰랐어요."

"안 좋아해요." 아나킨은 어두운 표정을 점점 풀면서 씨익 웃었다. 마치 둘만의 농담을 주고받았다는 게 즐겁다는 듯이 엄지로 코를 긁었다. "하지만 가끔씩은 변화를 주고 싶은 날이 있잖아요. 아주 가끔씩 약간의 즐거움을 찾아 밤 외출을 나가는 걸 좋아해서요."

그리고 세상에, 오늘 밤의 아나킨은 정말로 멋져보였다. 카페에서처럼 청바지와, 문구가 적힌 티셔츠와, 다 해진 운동화를 입고 헤어밴드를 쓴 아나킨과 다르게 지금 아나킨은 명백히 매력을 한껏 드러내고 있었다. 손님과 카페 사장으로서가 아닌 오비완과 아나킨으로 밖에서 만나는 일은 슈퍼마켓이나 은행에서 우연히 직장 동료와 마주치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통계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아주 일어나기 힘든 일이었다. 직장 동료에게 회사와 분리되어있는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 솟구쳐 오르는 이상한 감정이 느껴졌다. 직장 동료와 아나킨이 회사와 카페 밖에 존재하며 자신들만의 규칙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생각하니 어딘가 이상한 것 같았다. 카페 사장이자 바리스타인 아나킨이 눈앞의 아나킨과 겹쳐보이자 오비완은 갑자기 아나킨이 어디선가 에스프레소와 달달한 빵을 꺼내 건네줄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평상시에 아나킨은 머리를 아무렇게나 풀어헤치고 돌아다녔지만 오늘은 얼굴을 가리는 머리카락이 한 올도 없도록 깔끔하게 빗어 넘겼다. 곱슬거리던 부분도 단정하게 가라앉아있었다. 지금의 아나킨은 오비완이 20대였을 때 몰래 욕정을 품었었지만 오직 작가가 되겠다는 하나의 꿈을 쫒겠다는 의지로 억지로 무시해야만했던 청년처럼 보였다. 아나킨의 거의 위험해 보일 정도로 멋진 새로운 외면에는 어떤 매력적인 면이 있었다. 심지어는 팔짱을 끼고 있는 자세조차도 오페라 하우스와 같은 곳에 어울리는 동시에 어느 곳의 홍등가나 담배 연기로 가득한 도박소굴에 있어도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화가난거 같네요." 아나킨은 마치 그 말이 자신이 일하는 카페에 오는 손님과 우연히 오페라 하우스나 아니면 아무 곳에서나 마주쳤을 때 할 만한 말이라는 듯이 완전히 평범한 목소리로 지적했다. "눈이 완전...." 아나킨이 얼굴을 향해 손짓해보이자 오비완은 눈가에 나타난 붉은 기를 없애려고 눈을 문질렀다. 하지만 눈은 더 붉어질 뿐이었다.

"미안해요. 그냥...."

"오페라에 너무 감동받았다고요?" 아나킨은 짐작하듯이 눈썹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오비완은 자신도 모르게 코웃음을 쳤다. "네. 위대한 코이 마테일의 절묘한 아리아에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받았거든요."

아나킨은 오비완의 말이 믿기지 않다는 듯이 콧소리를 냈다. "뭔가가 당신을 화나게 만들었군요. 아니다. 누군가 때문에 화가 났네요."

도대체 어떻게 알아차린 걸까? 제 3자의 눈에 보일 정도일까? 오비완은 태연한 표정과 재치 있는 변명 뒤에 숨어버리는 능력마저 잃어버린 걸까? 어쩌면 상담의 효과가 마침내 발휘된 덕분에 감정을 숨기는 속임수를 잊어버렸을지도 몰랐다. 아나킨은 가슴 주머니에 손을 가져가더니 흰색 손수건을 꺼냈다. 손수건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처럼 아무런 얼룩이 묻어있지 않았지만 한쪽 구석에 피가 약간 말라붙어 있었다. 오비완의 혼란이 담긴 눈동자를 바라보며 아나킨은 손수건을 건넸다. 아직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던 오비완은 망설이면서 손수건을 받아들고 다른 남자의 손수건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 거렸다. 오비완은 울고 있었던 게 아니라 그저 사방에서 몰려오는 압도적인 분노와 좌절감이라는 공성 망치처럼 강하고 거대한 파도에 강타당해 숨을 쉴 수 없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아나킨은 오비완의 괴로움을 알고 있다는 듯이 동정어린 미소를 지었다. "오늘 밤에는 할일이 있어서 오랫동안 함께 있어줄 수 없어요." 여전히 깜박이지 않는 눈으로 오비완을 바라보며 아나킨이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우연히 라도 만나서 좋았어요, 오비완."

아나킨은 오비완의 이름을 꼭 그런 식으로 불러야 할까? 오비완은 부르르 떨리는 몸을 겨우 멈췄다. "나도요." 오비완이 말했다.

아나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아나킨의 얼굴에 떠있던 미소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갑작이 다가온 아나킨의 손이 오비완의 목옆을 살포시 움켜쥐는 순간 오비완은 두 눈을 감았다. 하지만 가죽 장갑이 살결에 닿으며 평소에는 느낄 수 없는 마찰을 일으키자 오비완은 숨을 멈추고 아나킨을 바라봤다.

장갑이 목에서 떨어지고 아나킨이 뒤로 물러났다. 멀어지는 발자국 소리와 비상구가 열리는 소리를 들으며 오비완은 카페 밖에서 아나킨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궁금해 했다. 삐걱이며 닫히는 문소리에 고개를 돌린 오비완의 시야에 비상구 너머로 사라지는 아나킨의 등이 보였다. 아나킨이 지금처럼 도시를 돌아다닌다면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멍하게 얼어붙은 채로 복도에 홀로 서있던 오비완은 한참 뒤에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퀸란의 옆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여전히 꿈속에서 방금 걸어 나온 듯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퀸란은 갑작이 옆에 나타난 오비완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그동안 어디에 있었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새틴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오비완은 남은 오페라를 관람하는 동안 작가가 의도한 웃긴 장면에서 웃음을 터트렸고 돌아가는 길에 자신에 관한 농담을 퀸란에게 늘어놓으면서 드디어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왔다는데 안도했다. 너무 안도한 나머지 안쪽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아나킨의 손수건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니까 아파트로 돌아와서 뜨거운 물이 담긴 머그잔에 티백을 담갔다가 빼면서 새벽 다섯 시에 길가에서 말다툼을 벌이는 이웃을 바라보다가 손수건에 대해 떠올린 건 오비완의 잘못이 아니었다. 오비완은 정장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식탁에 펼쳤다. 그리고 모서리를 쓸어보고는 고급스러운 천을 조심스럽게 만지작거렸다. 위로 들어 올려보자 천에 스며든 남성용 향수 같은 희미한 우드 냄새와 구리 같은 날카로운 냄새가 뒤섞여났다.

어느 순간 오비완은 손수건에 얼굴을 대고 누르고 있었다. 그제야 자신이 변태처럼 그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오비완은 몹시 당황하여 다급하게 식탁에서 일어나 차를 마저 마셨다. 어느 정도 마음이 안정되자 아나킨의 손수건을 빨래 바구니에 던져 넣고 다음번에 만나게 되면 돌려주겠다고 생각했다. 그 유혹 덩어리와 팔 하나만큼의 거리를 두지 않으면 침대로 손수건을 가지고 간다는 뜻밖의 일을 저지를 것만 같아서 멀리 떨어트려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공원으로 가다가 신문 가판대를 지나치던 오비완의 눈에 신문 헤드라인이 들어왔다. 오페라 하우스가 찍힌 사진 위에는 굵은 글씨로 '오페라의 유령이 나타나다! 남성의 시체가 발견된 남성 화장실에는.....'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한 오비완은 그냥 걸어가 버렸다. 길을 건넌 오비완은 가장 좋아하는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시키고 그날 하루의 다섯 시간을 새로운 소설의 아무것도 잡히지 않은 아웃라인을 검토하는데 사용했다.

그렇게 다른 날처럼 순식간에 잊힐 도시에서의 또 다른 하루가 지나갔다.

*

청바지와 셔츠를 입고 카페 계산대를 다루는 아나킨과 격식 갖춘 정장을 차려입은 아나킨이 보이는 움직임 차이는 흥미로웠다. 아나킨은 친절하게 손님들을 맞이하고 효율적으로 주문을 처리했으며 문을 열고 들어오는 오비완을 발견하자 카운터 건너편에서 은밀한 미소를 보냈다. 하지만 가죽 장감을 끼고 허리를 곧게 편 자신감 넘치던 아나킨은 사라졌고 길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청년이 실망스럽게도 그 자리에 대신 자리하고 있었다.

오비완은 더 이상 연연 필요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어쩌면 오페라 하우스에서의 밤은 일생에 단 한번 찾아올 수도 있었고 심지어는 그저 열병 같은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저렇게 평범해 보이는 옷차림조차도 아나킨의 매력을 빼앗아가지 못해 오비완은 카운터를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바이코딘 두 알을 삼키고 밤을 꼬박 샌 끝에 완성한 여섯 장의 초벌을 퇴고해야했지만 아나킨에게로 향하는 시선을 막을 수가 없었다.

삶은 언제나처럼 계속 이어졌다. 한 가지 변한 게 있다면 오비완이 집 안에 틀어박혀 축 늘어져있는 대신 규칙적인 일과에 맞춰 밖으로 나가게 되어 이전보다 덜 우울해한다는 점이었다. 운동을 가끔 하기도 했고 태양을 쬐기도 했다. 새 소설을 쓰겠다고 맹세를 한 덕분에 쪼아대는 퀸란에게서 아주 잠시 동안 벗어나게 되었다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오페라 하우스에서 몽정 속 그 남자와 같은 옷을 입은 아나킨이 자신에게로 걸어 오른 순간 떠오른 이야기는 어서 나가고 싶다는 듯이 머릿속에서 웅웅거리면서 오비완을 괴롭히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 아소카는 오비완을 케노비 교수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아소카는 고풍스러워 보이는 오비완의 분위기에..... 그러니까 스웨터 조끼와 다리에 줄이 달린 안경을 좋아하는 오비완의 취향과 자신이 샌드위치를 데워줄지를 물어볼 때마다 어쩔 줄 몰라 하거나 아니면 다른 곳을 바라보는 오비완을 보고 그가 교수라는 결론을 내린 것 같았다.

대체로 오비완은 새틴과의 이별 후에 찾아온 새로운 인생에 나쁘지 않게 적응했다. 행복은 추가적인 상담을 받고 내면을 더 정리한 뒤에야 찾아올 것 같았지만 오비완은 가장 좋아하는 테이블에 앉아 아나킨이 커피를 만들며 주먹을 꽉 쥔 손으로 에스프레소 머신 스텀프를 다루는 모습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감정이 행복 비슷한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욕심많은 사람이 아니었기에 오비완은 더 이상 바라는 게 없었다. 외로움이 사라지자 소설에 쓸 만한 이야기가 대신 다가왔고 이제는 라디오에서 전 아내를 떠올리게 만드는 음악이 나와도 움찔하지 않았다. 오비완은 이정도면 희망이 자신에게 남아 있었다고 믿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수요일이 되자 모든 것이 변했다.

*







아나오비 헤이든유안
2024.04.06 19:26
ㅇㅇ
하 이번편도 진짜 개재밌다 번역붕 정말 코맙ㅠㅠㅠㅠㅠㅠㅠ
[Code: 2081]
2024.04.06 23:0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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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잼이야ㅠㅠㅠ번역붕 덕에 행복하다ㅠㅠㅠㅠㅠㅠ복 많이 받어라!
[Code: 8a37]
2024.04.07 06:2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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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킨 진짜 청부업자인거 이제 확 느껴진다 ㅋㅋㅋㅋ 오비완 얼굴에 취해서 이상함을 인식 못하는건가ㅋㅋㅋㅋ 하 넘 재밌어 ㅠㅠㅠㅠㅠ
[Code: b023]
2024.04.07 06:2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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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 넘 아슬아슬하다고 ㅠㅠㅠㅠㅠ 번역해줘서 고마워 번역붕 정말 사랑해 ㅠㅠㅠㅠㅠㅠ
[Code: 61e6]
2024.04.09 01:0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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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킨의 정장 재킷에 선명하게 묻어있는 방금 튄 듯한 검은 얼룩은 어떤 경고처럼 느껴졌다. "이건 라즈베리 잼이에요." 아나킨은 손가락으로 얼룩을 살살 쓸면서 말했다. 그리고 손가락을 혀로 핥더니 살짝 움찔했다.
오페라의 유령이 나타나다! 남성의 시체가 발견된 남성 화장실에는.....'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한 오비완은 그냥 걸어가 버렸다.

덜덜덜덜 아니 진짜 집중해서 다 읽었다.... 번역붕덕에 이런 소설을 읽게되다니 고마워.... 다음편도기다릴래...♡
[Code: 0d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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