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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5 21:03
산삼즈 논컾








학년이 바뀌었다. 마츠모토와 친구들의 우정은 매우 끈끈해졌다. 같이 경기할 일이 급격히 많아진 1군-레귤러 라인이었다. 후술할 그의 다소 순진한 희망사항은 거기에서 출발했다.

그는 제 소망이 후카츠에게 읽혔음을 눈치챘다. 후카츠는 입바른 소리를 하는 대신 말을 아꼈다. 묵언은 몇 달 넘게 이어졌다. 산왕에 재학하는 자들이 으레 그렇듯이 마츠모토도 주간바스켓볼을 챙겨 읽었고 대학농구에 관심이 지대했다. 게다가 얼마 안 있어 그들 바로 윗학년 선배들이 전국 각지로 흩어지는 것을 보면 그에게도 실감 나는 바가 생길 것이었다ㅡ후카츠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마츠모토에게도 보였다.

마츠모토도 대학 입시의 현실을 영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매일 밤 침대에서 마음으로 따라그은 친구들의 플레이에 어린 애착이 낭만으로 비화하는 게 금방이었다. 투명하고 맑은 물에 꾸덕한 과즙이 섞이듯이 졸업 후 미래에 대한 상상에 낭만이 달게 물들었다. 낮에는 건조하고 치열하게 현실의 농구를 하면서 밤에는 오십 년 동안 이어질 우정을 꿈꿨다.

감미로운 생각은 그렇게 싹을 틔운 것이다. 전국 최강 산왕의 5명, 우리가 다 같이 이 나라 최고의 체대에 입성할 수는 없을까, 어차피 유례없는 전설을 쓰는 우리인데, 합이 아름답게 맞아서 성적이 절정에 이르렀으니 대학에서도 환영을... 어쩌면. 그는 어떤 대회에서든지 이 친구들과 함께 우승하고 싶었다. 실제로 이 친구들과 함께라면 우승이 당연하기도 했다. 산왕이 맺어준 인연 안에서 그는 든든했다. 그 자신도 제몫을 할뿐더러 이들과 함께라면 모든 적수가 흥미로웠다. 산왕의 명예 아래에서 우정은 진지하면서도 티격태격하고 자상하며 매끄럽고 열정적인 형상을 했다. 하루하루가 함박 즐거울수록 소망은 끈질기게 타올랐다.

3학년으로 올라가던 해 그는 마지막으로 짐을 챙기러 작년 교실에 들렀다. 어느 것 하나 잊고 놓고 가는 게 없으려고 꼼꼼하게 사물함과 책상 밑을 살폈다. 그런 마츠모토 곁으로 후카츠가 슬쩍 다가붙었다. 후카츠는 올해 노베, 이치노쿠라와 같은 반이 되었다. 마츠모토는 카와타와 둘이서 그 옆반이 되었다. 교사들은 친밀해 보이는 농구부 소년들을 적당하게 붙여주었다. 다섯 명이 전부 한 반일 수는 없었지만 두셋쯤을 동급생으로 만들어 주는 데에 매우 흔쾌했다. 물론 마츠모토로서는 한 해 동안 함께했던 후카츠와 반이 갈려 아쉬움이 남긴 했다.

계절은 초봄이었다. 직속선배들 중 스카웃될 만한 인재들은 진작에 대학입시를 마무리했다. 여태까지 갈 곳이 정해지지 못한 선배들은 아마 농구를 그만두고 스베리도메로 수험할 것이었다. 하지만 산왕 농구부에서 3학년까지 살아남아 십대에 이미 집념을 증명한 그들, 십대에 이미 긍지 어린 승리감을 경험한 그들을 마츠모토와 후카츠가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선배들의 앞날은 밝을 것이다. 안온 속에 마지막 눈꽃이 내렸다. 눈발은 벚꽃잎처럼 가냘프게 날렸다. 감상에 젖은 마츠모토가 먼저 불쑥 말을 건넸다.

“우리 다섯 명이 다 같은 대학에 가면 좋겠어.”

내용에 비해 가벼운 말투였다.

후카츠는 한참을 묵상하다가 중얼거렸다.

“우정이 과하다, 뿅.”






그 우정, 우연하게도 1군-레귤러로 한정되어 있네.

노베가 농을 쳤다. 마츠모토가 소망을 말로 꺼낸 참이었다. 다섯 명은 반쯤 놀 작정으로 자발적으로 남아 체육관을 정리하고 있었다. 멀리서 카와타가 던져주는 농구공을 척척 받아내던 노베가 짧은 웃음을 흘려 섞었다. 이런 자리에서 그는 분위기가 지나치게 진지해지는 것을 막는 역할을 했다. “속물 뿅.” 후카츠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조그맣게 야유를 거들었다. 마츠모토가 곤란하게 뒷목을 쓸었다. 다시 진지하게 어필을 시작하려던 그는 이번엔 이치노쿠라에게 가로막혔다. 이치노쿠라는 언제나처럼 무표정하게 응수했다.

“레귤러? 난 하마터면 못 낄 뻔.”

루틴처럼 웃음이 터졌다. 그 뒤로는 마츠모토가 미안하다는 듯이 삐질삐질 땀을 흘리고 다들 그런 그를 보고 웃는 순서였다. 물론 그도 무작정 무골호인의 기질은 아니었으므로 노베와 이치노쿠라가 곧 한발씩 물러서야 했다. 모두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내자는 선에서 대화가 대강 종료됐다. 카와타는 후카츠와 눈빛을 주고받았다. 후카츠는 낮에 급식으로 나왔던 요구르트 빨대를 쪽 빨며 침묵으로 답했다.

마츠모토는 소등을 앞두고 침대에서 엎드려서도 그 이야기를 했다. 한번 꽂힌 일에는 밀고 나가는 게 드디어 소나무 뿌리(松本)의 성질이었다. “후카츠가 동참해주면 일이 이뤄질 것 같은걸.” 후카츠는 헐겁게 웃으면서 그의 말을 들었다. 마츠모토는 그가 자신과 같은 추억을 떠올렸으리라고 짐작했다.

산왕 농구부가 극도로 엄격하던 시절이 아직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그들이 1학년으로 입학한 4월까지만 해도 훈련이 체벌로, 기율이 학대로 번지기 일쑤였다. 그런 공기에서 후카츠는 농구부 다 같이 고기를 구워 먹자는 허무맹랑한 단합 계획을 제안하고 실제로 실현시켰다. 1학년들은 입을 떡 벌리고 그가 주전 선배들을 설득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보름 뒤 분위기는 기이하게 풀려서 소년들은 옹기종기 야트막한 뒷산 쉼터로 향했다. 후카츠의 뜻대로였다. 기숙사 사감들과 수위까지 동행하여 동네에서 빌린 철판과 기름통을 나눠 들었다. 누군가의 부모님이 보내주신 채소와 고기로 한 판이 거하게 차려지기까지가 금방이었다. 그때까지도 마츠모토는 선배들이 무릎이 떨릴 만큼 무서웠지만 십대의 혀와 배는 솔직하여 그들이 구워주는 고기가 맛이 좋았다. 농구부 생활이 추억으로 들어차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네가 협조해 주면 다 함께 같은 대학, 가능하지 않을까? 후카츠의 입시 운영 특별반을 개설해 줘.”

마츠모토는 혼자 말하고 혼자 쿡쿡 웃었다. 후카츠의 눈매는 시종일관 부드러웠다. 마츠모토의 예민한 인상과 골격을 감상하는 듯했다. 그는 그런 눈빛이 자신에게 지지를 보내주는 것 같다고 느꼈다. 후카츠가 한 마디라도 거절이나 반박을 했다면 그는 찬물을 뒤집어쓴 기분이 되었을지언정 현실성이 없음을 기꺼이 깨닫고 마음을 접었을 것이다. 그가 품은 소망은 그렇게 아슬아슬한 것이었다. 그 자신도 그것을 알았다. 하지만 후카츠는 함부로 그의 기분이 가라앉을 만한 말은 하지 않았다.






돌아오는 초여름, 인터하이 대비 훈련이 본격화되어 녹초가 될 무렵 마츠모토는 다들 잊고 있던 말을 다시 꺼냈다. 십오분 후 저녁연습에 들어가기 위해 위장에 석식을 쏟아붓던 남고생들의 시선이 온통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몇 달 전과 사뭇 다른 분위기였으나 그는 꿋꿋했다. 이번에는 노베와 이치노쿠라가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어주는 일이 없었다. 특히 이치노쿠라는 들은 척도 안 했다. 국에 말은 밥을 떠먹다가 정적 속에서 “마츠모토 농구 언제 시작했다 그랬지?” 하고 지나가듯 허공에 묻고는 끝이었다.

다음 날 노베는 코트 한구석에서 몸을 풀면서 마츠모토를 맞이했다. 노베는 그가 기어코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약간 굳은 얼굴로 들었다. 마침내 그가 같은 대학에 가면 좋겠다고 주장하자 노베는 자신도 그것을 바란다고 대답했지만 눈끝이 살그머니 쳐졌다. 부주장인 노베가 표정을 숨기는 역량은 주장의 그것보다 한참 부족했다. 결국 마츠모토가 알아챌 만큼 곤란하다는 기색이 비쳤다. 그는 노베의 태도에 살짝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거둘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마츠모토는 연습 경기가 끝나고도 노베와 자연스럽게 붙어 섰다. 그는 노베가 자신을 받아쳐 주든 수긍해 주든 하길 원했다. 노베는 그가 드물디 드문 충동을 보일 때면 보통 동참하는 친구였다. 그러나 평소에는 잘만 티격대고 놀았으면서 이날 노베는 선배들의 구령에 맞춰 선 상태 그대로 다른 곳을 쳐다볼 뿐이었다. 답답해진 마츠모토는 “차라리 꿈 깨라고 하지 그러냐.” 하고 내뱉었다. 생각보다 말이 날카롭게 나왔다. 말은 흐름을 타서 “노베, 나한테 제대로 대답할 용기가 없지?” 하고 그를 등지는 것이 한순간이었다. 노베는 혼자서만 마츠모토를 실망시키는 면목 없는 어른처럼 굴었다. 마츠모토는 희미하게 자존심이 상했다. 이대로 꺾일 수 없었던 그는 노베를 설득하기를 유보했다.

며칠 후 마츠모토가 다음으로 찾아가 일대일로 대면한 사람은 카와타였다. 카와타는 “진지한 거냐.” 하고 물어 놓고서 곧 대답도 듣지 않고 “너라면 진지하겠지.” 하고 자문자답을 했다. 의외로 마츠모토에게 가장 먼저 정직하게 현실을 알려주는 쪽은 이치노쿠라나 노베가 아니라 카와타였다. 그는 자기 사정을 꾸밈없이 음성으로 냈다.

마츠모토는 그윽한 충격을 받았다. 카와타는 집안에 운동하는 남정네가 둘이나 되니 학비를 해결하기 위해 장학금을 줄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집안이 아주 여력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가문이 대대로 지켜온 전답을 부모님이 자신 때문에 파는 건 원치 않는다는 사적인 설명까지 뒤따랐다. 그리고 집에 자주 못 오는 것도 싫으니 되도록이면 도호쿠 지방 내에서 대학을 선택하고 싶다는 설명까지, 카와타는 자상하고 신중하게 마츠모토의 어깨를 짚으면서 분위기를 풀었다.

마츠모토는 카와타에게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사실 그는 충격에 이어 약간 감탄하고 있었다. 당장 성인이 되면 대학리그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센터가 될 거라는 평가를 듣는 놈답게, 카와타는 대학의 급보다도 다른 것들까지 골고루 따지는 여유를 보였다. 그가 입학한다면 모 대학의 급이 오히려 한 단계 높아질 거라는 겸손한 암시는 과연 맞는 말이었다. 마츠모토는 포지션을 통틀어 도호쿠 최고의 간판선수로 군림할 카와타를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카와타가 고려하는 체계에는 가족과 미래와 현실이 전부 궤가 맞았다. 낭만이 호소될 틈이 없었다.

마츠모토는 옅은 부끄러움 속에서 카와타가 이런 이야기를 제게 해주는 것에 고마움을 느꼈다. 그가 아는 카와타는 잔정이 많대도 이런 이야기를 굳이 먼저 터놓는 사람이 아니었다. 약점은 밝힐 이유가 없었고 낙관은 그의 규격외의 실력으로 말미암아 오해와 질투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코트 위에서 치열하게 통하고 제대로 쿵짝이 맞은 후카츠나 긴밀하게 들었을 법한 이야기를 선뜻 하는 것은, 분명 그의 마음이 다치는 일이 없게 하려는 카와타의 자상한 심사였다.

마츠모토는 카와타의 어깨를 마주 짚었다. 이해와 감사 인사가 나직했다. 카와타는 슬근 웃더니 평이하게 말을 이었다. “뭐, 나는 그렇고-” 






“-이치노쿠라는 농구를 계속 한다냐? 그것부터 물어봐야 하는 게 아니냐?”

“당연히 계속하지.” 생각지도 못한 말에 마츠모토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카와타는 팔을 거두고 팔짱을 꼈다. “모를 일이야.”

그 신중하고 의미심장한 말에 마츠모토는 확 불안해졌다. 이런 화제가 나오면 이치노쿠라가 보통 뭐라고 하더라. 며칠 전에는 그가 농구를 언제 시작했는지 물었던가. 그럼 그게 자기는 농구를 곧 그만둘 생각을 해서 그런 거였나. 그는 하루 정도 고민하다가 이대로 잠을 설치느니 컨디션 관리를 하는 편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차피 산왕을 졸업하기까지는 반 년이 남았다. 인터하이를 앞두고 그가 이치노쿠라의 일로 마음고생을 한다는 전제부터가 낭비였다. 도모토 감독님께 일 점이라도 더 득점하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편이 좋았다. 후카츠가 알았다면 현명하다고 했겠으나 그 다음 일까지 응원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마츠모토는 그 길로 '즉각' 이치노쿠라의 방문을 두드렸다.

이치노쿠라와 한방을 쓰는 2학년이 놀란 얼굴로 문을 열어주었다. 연초에 이치노쿠라는 기숙사에서 배정해준 사람을 거절하고 농구부에서 자신과 성향이 비슷한 룸메이트 후보를 공개적으로 모집했었다. 성가신 동기들과 노닥거리는 시간은 하루의 2/3로 이미 충분하다는 이유였다.

이치노쿠라가 느슨하게 팔짱을 끼고 나왔다. 학교가 생활복으로 지정한 산왕 면티 차림이었다. 마츠모토는 이치노쿠라가 일과 중엔 좋아하는 브랜드의 반팔을 입고 산왕 면티는 고작 잠옷으로 낙점했다는 사실을 언젠가부터 알고 있었다. 이치노쿠라와 대화할 때는 단도직입이 낫다는 점 또한 그가 이치노쿠라와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깨우친 바였다. 그러나 같은 농구부끼리 대뜸 언제 농구를 그만둘지 묻는 것은 어쩐지 지나치게 무례하게 느껴졌다. 만약 이치노쿠라가 화내지 않고 대답을 해준대도 그에게서 농구를 그만둔다는 말을 들으면 끈질기고 연약한 소망의 붕괴에 앞서 슬픔이 마츠모토를 기어오를 것 같았다. 그것도 그의 컨디션을 망치기는 마찬가지였다.

마츠모토는 딱 한 번만 우회하기를 선택했다. 그래서 자신에게 언제 농구를 시작했냐는 물음이 어떤 뜻인지부터 물었다. 이치노쿠라는 복도를 휑하니 둘러보다가 후배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를 방으로 들였다.

이치노쿠라는 침대 헤드에 깊숙이 기대서 말을 골랐다. 책을 읽고 있었는지 바로 옆에 얇은 책 한 권이 책등을 보이고 엎어져 있었다. 마츠모토는 무릎을 내리고 침대 사이드에 앉았다. 이치노쿠라는 그와 눈을 맞추면서 말을 텄다. 이치노쿠라는 사려 깊게도 그가 농구 입시 물정을 모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시작했다. 이어지는 말에는 다같이 대학을 가자는 제안이 조금은 맹랑하다는 묘한 피드백과 그 자리에서 자신의 태도가 냉담했다고 해서 기분이 상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며 그에게 사과하는 내용이 공존했다. 이치노쿠라는 마츠모토를 안심시키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제서야 마츠모토는 이치노쿠라가 허무맹랑한 제안으로 기분이 나빴을까 봐 자신이 은은하게 걱정하고 있었음을 의식했다.

마츠모토는 무심한 듯 불안하게 제 심기를 살피는 이치노쿠라의 눈길에서 그가 자신을 감성적이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스스로도 긍정하는 바였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들었다. 이치노쿠라는 그가 납득했다는 사실을 두 번 세 번 확인하고 나서야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사실 이건 그보다 이치노쿠라가 불편할 주제였다.

“농구, 계속 할 거야. 할 건데,”

이치노쿠라는 한숨을 푹 쉬고 더 느슨하게 드러누웠다. 이치노쿠라와 같은 방을 쓰는 후배는 어느새 헤드폰을 쓰고 연습일지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종종 후카츠의 심부름을 하는 후배였다. 마츠모토는 그가 두 사람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이 밤에 헤드폰을 착용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이치노쿠라가 정말 자신과 비슷한 후배를 찾아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덕분에 그는 세상에 그와 이치노쿠라 둘만 있는 것처럼 대화할 수 있었다.

이치노쿠라가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농구를 직업으로 할지 아직 못 정했어. 사실 못 정한 것과 아직 모르겠는 느낌의 중간쯤. 그래서 일단 대학때까지만이라도 나를 최대한 많이 경기에 내보낼, 그런 전략을 쓰는 감독이랑 코치를 찾고 있달까... 나는 수비 특화 쪽이니 나를 확실하게 수요해 주는 대학으로 갈 거야. 컨택이 들어온 학교들도 그런 눈으로 평가하고 있어. ”

어지간하면 같은 농구부원에게는 안 할 질문을 한 마츠모토에게, 이치노쿠라도 어지간하면 같은 농구부원에게는 안 할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 마츠모토는 카와타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 되었다. 그와 이치노쿠라는 변죽을 울리는 이야기를 몇 가지 더 하다가 평소보다 훨씬 상냥하게 밤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는 나오기 전에 기어코 이치노쿠라의 머리통을 한번 꾹 끌어안았다. 이치노쿠라에게 정강이를 걷어차였지만 맞고 나서도 그다지 아프지 않았으므로 후카츠와 함께 쓰는 방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에 걸리는 게 없었다.

바로 다음 날 그는 노베를 찾아가 산책을 청했다. 지난번 연습 중의 사건 이후 그는 노베와 별로 대화가 없었다. 친구들은 그 둘에게 화해를 재촉하지 않았다. 노베는 평소보다 농담이 반틈 적은 무드로 석식시간의 여가를 함께 즐겨주었다. 그들은 티격태격하다가도 그런 분위기가 어울리는 사이였다. 대화하면서 마츠모토는 그가 어떤 야망을 품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고, 그래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카와타와는 절대 같은 대학에 갈 생각이 없음을 깨닫고 말았다. 그는 약간 감동에 차서 노베에게 악수를 청했다. 다음날이면 그와 후카츠가 협공하여 자신을 지독하게 놀려올 것을 알면서도 벅차는 기분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마츠모토는 감성적인 사람이 맞았던 것이다. 노베는 꺼억꺼억 낮게 웃음통을 울리면서 그와 악수했다.

그날 밤에 마츠모토는 자려고 누웠다가 문득 생각난 것처럼 후카츠를 불렀다. 후카츠는 규칙적인 생활의 화신이었다. 잠에 취한 목소리로 피횽...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후카츠가 알아들을 거라는 기대 없이 지난 며칠 간의 이야기를 했다. 스스로 생각을 정렬하는 차원이었다. 그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후카츠는 계속해서 피횽...하고 자는 듯 마는 듯 대답하다가 여름 대회에서 잘하자는 말에는 “뿅...” 하고 보다 선명한 대답을 내놓았다. 마츠모토는 대단히 만족해서 깨끗한 마음으로 편안하게 잠들었다.






여름은 뼈아팠다. 다섯 명이 당연히 함께 우승하리라 생각했던 전국대회에서 산왕은 지나치게 일찍 경로를 이탈했다. 마츠모토는 실핏줄이 터지도록 눈물을 삼켰다. 밤마다 분을 못 이겨 울음을 토하는 습관이 잠시간 생겼다가 없어지기를 반복했다. 다시 제대로 잠을 잘 수 있게 되기까지 고통스러운 시간이 걸렸다. 하룻밤이 백 년 같고 일주일이 천 년 같아서 인터하이를 괴롭게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금방 늙어버릴 듯했다. 생에 도사리는 고난이 가혹했다.

그러나 이변이야 이변이고, 대학 진학은 고유의 이치가 있는 세계였다. 산왕의 활약이 짧았다고 해서 전국의 체대가 학수고대하며 오래도록 노려온 선수진 라인업이 갑자기 뒤집어 엎어지지는 않았다. 산왕의 벤치에라도 앉을 수 있었던 선수들은 언제나처럼 명문 입학이 가능했다. 문제는 마츠모토의 마음이었으나 그것은 머지않아 개인보다 더 강력한 조직의 힘에 의해 해결되었다.

가을의 도호쿠배, 동일본회에서 도모토 감독과 후카츠는 악귀처럼 산왕의 승리를 얻어냈다. 아키타현 대표는 약이 바싹 오른 3학년 라인업을 유지했다. 그 과정에서 마츠모토는 속죄하는 기분으로 제 눈에만 보이는 허물을 씻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순번에 돌아온 할몫을 다 했다.

마츠모토가 고른 대학은 스카웃 제의가 들어온 대학 중에서 가장 급이 높은 곳이었다. 뻔하다면 뻔한 결과였다. 그러나 그가 대학을 결정하기까지의 논리는 매우 복잡했다. 대학입시에서 카와타는 가족을, 노베는 야망을, 이치노쿠라는 전략을 고려했다. 마츠모토에게는 산왕에 대한 의리가 무엇보다 크게 작용했다. 사랑하는 모교에 펄럭일 현수막에 자신의 이름으로 자랑스러운 한 줄이 추가된다면 좋은 게 좋은 거였다. 십대 청춘에 한없이 가열찬 추억과 우정을 선사해 준 모교였다.

무엇보다 그것은 그의 연약하고 끈질긴 소망-우정-을 장래 언젠가에 실현하기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산왕의 농구는 집념, 증명, 긍지, 승리감으로 요약되었다. 한 번 그 맛을 경험한 젊은이들은 삶이 부지런할 수밖에 없었다. 운동선수로서 중요한 시기에 그가 여유를 부린다면 집념과 긍지를 갖춘 친구들과 다시 함께 농구할 길이 멀어지는 셈이나 다름없었다. 기회가 왔을 때 친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그도 그럴 급이 되도록 자신을 끊임없이 필사적으로 갈고 닦아야 했다. 그는 T대와 협의를 마쳤다.






그들이 졸업하는 봄, 마츠모토는 마지막으로 교정을 둘러보고 합류하겠다며 부모님을 먼저 교문 밖으로 보내드렸다. 카메라는 필요가 없었다. 사진은 진작 친구들과 넘치도록 찍었다. 지금은 체육관과 기숙사와 운동장을 눈으로 꼼꼼하게 살필 뿐이었다. 어느 추억 하나 잊고 놓고 가지 않으려는 그런 그의 곁으로 가쿠란 정복을 차려입은 후카츠가 슬쩍 다가붙었다.

후카츠는 그와 같은 대학에 입학할 예정이었다. T대는 최강 산왕공업의 가드와 슈터를 붙여놓고 거리낌 없이 기대를 증폭시켰다.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었으나 마츠모토는 각자의 자리에서 비슷한 부담을 떨치고 일어설 친구들을 생각하고 용기를 냈다. 물론 다섯 명이 당장 함께하지 못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었다.

카와타는 후카츠와 함께할 그의 대학 생활을 미련없이 축복해 주었다. 그는 카와타에게서 대학 졸업 이후의 커리어를 내다보는 여유를 배웠다. 보고 싶을 것이다. 그러다 이치노쿠라와 노베라도 대학이 가까워서 다행이라는 감상이 그를 스쳤다. 마츠모토는 감정을 빠르게 갈무리했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도 후카츠가 자신의 심기를 살피는 것이 곁눈으로 느껴졌다.

“나랑 같은 대학인 걸로는 역시 부족, 뿅?”

“혼자 떨어진 녀석들이나 걱정이지.”

마츠모토로서는 뜻밖의 질문이었다. 하지만 후카츠라면 한 번 정도는 묻고 끝내는 것도 괜찮았다. 그의 단정한 이마를 내려다보면서 마츠모토는 후카츠와 몇 년을 확정적으로 함께하게 된 것은 역시 기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둘이니까 충분히 재미있지 않을까.”

마츠모토의 나긋한 말에 후카츠의 눈가가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 후카츠는 쇳소리를 내면서 웃었다. 마츠모토도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런 그에게 후카츠는 뜬금없는 제안을 했다.

“같이 자취할래? 부모님은 내가 설득드릴게, 뿅.”

마츠모토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재미있게 해줄게. 우리가 같이 살면 노베도 이치노도 놀러 올 수 있음 뿅. 카와타는 좀 멀어서 자주 못 오겠지만 우리가 재워 주자.”

담백한 낯으로 다소 기막힌 제안을 하는 게 영락없이 후카츠였다. 우스운 것은 정말로 동화되는 자신이었다. 갑자기 새로운 기대감으로 마음이 부풀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후카츠가 하자고 해주면 일이 이뤄진다. 그 기묘한 느낌은 해가 바뀌어도 여전했다. 후카츠가 “싫다면ㅡ” 하고 말끝을 길게 끌어 마츠모토는 드물게 큰 소리를 내면서 좋다고 소리를 질렀다. 거의 후카츠를 끌어안을 기세였다. 후카츠는 “귀 아픔 뿅.” 하고 그를 밀어내면서 킥킥거렸다.

멀리서 그의 부모님이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교문 앞에 차를 대놓고 시동을 걸어놓으신 모양이었다. 약간 떨어진 곳에 후카츠의 부모님이 함께 계셨다. 아들들이 나란히 걸어오는 것을 알고 곧 네 분이 서로 인사드리는 풍경이 보였다. 마츠모토는 후카츠와 팔꿈치를 스치면서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 가쿠란을 입는 마지막 날이었으나 마지막이라는 기분은 전혀 들지 않았다. 초봄의 기운에 그것은 갑작스럽게도 너무나 유쾌했다.












김낙수 신현철 최동오 정성구 이명헌
고증 하나도 없음
타싸에 수정백업함
2023.08.15 21:12
ㅇㅇ
이노타케 한국말 언제배움? 센세 나 왜 눈물이 나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산왕 마무리 본 느낌이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50ca]
2023.08.15 21:22
ㅇㅇ
모바일
아 청춘이다 청춘이야... 각자의 길 앞에서 자기 나름대로 확고한 이 빡빡이들 너무 좋다고...
[Code: 2343]
2023.08.15 22:09
ㅇㅇ
모바일
진짜 ㅠㅠㅠㅠㅠㅠ 너네 우정 영원해 ㅠㅠㅠㅠ
[Code: 0791]
2023.08.15 22:27
ㅇㅇ
모바일
너무 좋다... 낭만과 현실, 청춘과 성장이 모두 이 한 페이지에 담긴 느낌ㅠㅠ
[Code: a379]
2023.08.15 22:3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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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램덩크 산왕 외전소설 언제 발간됨????
[Code: 7d7d]
2023.08.15 23:4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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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인 마츠모토가 너무 소년스러워서 사랑스럽다....
[Code: 3ab7]
2023.08.16 00:1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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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너무 다정한 얘기에요ㅜㅜㅜㅜㅜ 어떻게 이런글을 쓰세요ㅜㅜㅜ
[Code: 8337]
2023.08.16 16:0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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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산왕 그자체... 청춘만이 가질 수 있는 간질간질하고 불안하면서도 희망찬 분위기 넘 좋다...
[Code: 0152]
2023.10.10 01:1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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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좋다..... 꿈이랑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산왕이들 너무 좋음진짜로..... 마츠모토의 서운함도 알겠고 그걸 털어버릴줄 알게되는것도 넘좋아 어떻게 이런글을 쓰지 센세는 천재다
[Code: b824]
2023.12.10 02:0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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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
[Code: 681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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