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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10 18:50
알못 개날조 기타등등 다 ㅈㅇ















팩스는 참 성가신 메크였다. 언제나 온갖 사고를 치고 있었으니까. 난 팩스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일단 큰 소리로 "팩스, 안 돼!" 라고 외치곤 했다. 그럼 어딘가에서 먼지로 뒤덮인 팩스가 머리를 긁적이며 나왔다. "해보고 싶었는데..." 그 애는 늘 그랬다. 예측 불가능하고, 조용한 법이 없고, 생기 넘쳤다. 한시도 쉬지 않고 재잘거리는 내 작은 사고뭉치. 주제는 다양했다. 매트릭스는 왜 사라졌을지, 기록 보관소는 왜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지, 우리가 열심히 캐는 에너존은 어디로 갈지, 센티넬 프라임은 매일 전장을 뛰어다니는데도 어째서 동체가 항상 반짝이는지... 그가 가지는 의문은 모두 예리했다. 그래서 위험했다. 팩스는 항상 눈에 띄었다.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 모두로.

난 떠도는 낭설처럼 팩스가 지하 어딘가에 버려지길 원하지 않았다. 작고 예쁜 동체가 고철 더미에 섞여 소각로에 떨어지는 모습 따위는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네 사상은 날 두렵게 해. 가만히 있으면 우린 안전해. 그런 위험한 생각은 안 하면 안 될까? 내가 너 대신 열심히 일할 테니까. 넌 광산 밖으로 빼내줄 테니까. 너만은 그렇게 계속 빛날 수 있도록 영원히 지켜줄 테니까... 우리 이대로 행복하면 안 될까?

참 멍청하고 나약한 생각이었다. 팩스가 너무 소중해서 뻔히 보이는 것들을 모두 외면하고 있었던 거다. 코그가 없다는 이유로 광산에서 착취당하는 이 상황이 비정상적이라는 걸 어렴풋이 느꼈지만... 거짓된 평화 속에 머물고 싶었던 거다. 하지만 팩스는 내가 아니라 사이버트론을 선택했다. 내가 아니라 고통받는 모든 사이버트로니안을 위하기로 했다. 오라이온 팩스는 옵티머스 프라임이 되었고, 더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난 눈앞에서 그를 잃었다. 팩스가 스스로 나를 떠났다.

난 이미 충분히 행복했지만 넌 그러지 않았던 거야. 난 너 하나만 있으면 됐는데 넌 그걸론 부족했던 거야. 난 진심을 다해 사랑했는데 넌 나를 그렇게까지는 사랑하지 않았던 거야. 난 네가 전부였는데 넌 아니었던 거야. 너에게 나는 그 정도였던 거야. 다음 순위.



















프라임은 이제 웃지 않았다.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재잘거리지도 않았다. 내 동체를 꼭 껴안고 입 맞추지도 않았다. 손을 잡아끌면서 보여줄 게 있다고 방방 뛰지도 않았다. 나를 보기만 하면 어둡게 가라앉는 표정이 미웠다. 예전에도, 지금도 넌 날 받아들이지 않아. 그렇게나 널 원했는데. 난 바닥에 쓰러진 오토봇 하나의 머리를 뽑으며 실없는 생각을 했다. 프라임의 머리만 내 쿼터에 두면 참 좋을 텐데. 동체를 돌려 달라고 화낼 게 뻔하지만 수천 사이클이 지나면 조금은 얌전해지겠지. 내가 에너존을 직접 먹여 주고 재밌는 데이터 패드도 구해다 줄 텐데. 그럼 우린 예전처럼 행복할 수 있을 텐데.

상상에 빠진 채로 다른 오토봇 하나의 넥 케이블을 조르자 동체가 많이 손상된 프라임이 기어 왔다. 날 간절히 올려다보는 모습이 귀여워서 이름 모를 오토봇은 던져 버리고 그를 끌어안았다. 프라임의 동체는 따뜻하고 포근했다. 오토봇이 프라임을 구하려는 듯 다시 일어났지만, 프라임이 고개를 젓자 덴타를 꽉 깨물고 트랜스폼했다. 오토봇이 멀리 달아나는 모습을 지켜보던 프라임이 마침내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포로들을 풀어줘."


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프라임을 쓰다듬고 입을 맞췄다. 멀리서 오토봇 포로들이 고문당하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프라임은 옵틱을 질끈 감았다. 자기 혐오와 자책, 절박함이 뒤섞여 조급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뭐든 할 테니까..."

"위험한 제안이군."


프라임은 자기가 거래로 내건 게 뭔지 알아둘 필요가 있다.


"포로의 수만큼 디셉티콘을 만족시켜 봐. 참고로 지금 저쪽에 잡혀있는 포로는 셋이다."


프라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말의 고민도 없이 수락하는 모습에 기분이 나빠졌다. 못 하겠다며 울고불고 나한테 매달렸으면 좋았을 텐데. 그럼 내가 자비롭게 용서해 줄 텐데. 난 끌어안고 있던 프라임을 디셉티콘 쪽으로 밀쳤다. 


"정말 저희 마음대로 해도 됩니까?"

"그래. 프라임이 그걸 원한다잖아."


심드렁하게 말하자 디셉티콘들이 프라임에게 슬금슬금 다가왔다. 인터페이스 패널을 붙잡고 뜯으려고 하니 프라임이 스스로 패널을 열었다. 과감하게 보여지는 프라임의 밸브에 모두 넋을 놓았다. 뻑뻑하게 말라 있는 밸브를 보고도 흥분한 하나가 무작정 스파이크를 꽂아 넣었다. 프라임이 신음을 꾹 참고 동체를 움찔거렸다. 다른 하나가 프라임의 입을 억지로 벌리고 스파이크를 처박았다. 남은 하나는 프라임의 체스트 플레이트에 스파이크를 비볐다.

모두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급급했기에 프라임은 어떤 쾌감도 느끼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고만 있었다. 저런. 프라임의 밸브가 찢어져 에너존이 질질 새어 나왔다. 난 가만히 서서 폭력적인 왕복 운동을 구경했다. 마침내 트랜스플루이드가 배출되고 아쉬운 듯 스파이크를 빼내자 프라임의 밸브에서는 에너존과 트랜스플루이드가 뚝뚝 흘러나왔다. 외설적인 모습이었다. 입에 처박고 있던 이가 바로 이어서 밸브에 스파이크를 박았다. 밸브가 엉망이 된 채 덴타를 악물고 신음을 참는 모습에 흥분한 하나가 참지 못했다. 트랜스플루이드를 체스트 플레이트에 배출해 유리창을 더럽혔다. 이제 하나 남았군.

남은 하나는 프라임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스파이크 케이스처럼 쓰며 밸브에 박았다. 느긋하게 밸브의 조임을 즐기더니 이내 프라임의 후면 포트를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프라임이 동체를 파드득 떨며 깜짝 놀랐다.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널 이 상황에 몰아넣은 게 나인데 위급할 때 나를 쳐다보는 거야? 귀엽기는...


"거긴 안 돼."


내가 명령하자 곧바로 손이 떼졌고 디셉티콘은 내 눈치를 살폈다. 프라임은 안심한 듯 다시 동체에 힘을 뺐다. 퍽 순종적인 모습에 기분이 괜찮아진 내가 웃으니 디셉티콘이 다시 스파이크를 처박기 시작했다. 힘겨운 게 보임에도 프라임은 그에게 동체를 기대지도 않고 신음도 끝까지 참았다. 마음에 들었다. 시간이 흐르고 마지막 남은 이까지 트랜스플루이드를 배출하자 프라임은 마침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바닥에 늘어진 프라임이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셋... 끝났어."

"프라임, 계산이 이상하군. 저기 잡혀있는 포로가 셋이야."


프라임이 혼란스러운 옵틱으로 날 올려다보았다.


"그럼 포로는 너까지 넷인 거지. 마지막으로 나를 만족시키면 되겠군."


난 이 순간이 좋아. 네가 품은 같잖은 희망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 잠깐 좌절하던 프라임이 다시 힘겹게 기어와 내 아래 자리를 잡았지만 난 그를 발로 치워냈다.


"더러워진 밸브는 별로 사용하고 싶지 않은데."


그러자 프라임은 디짓을 밸브 안에 집어넣고 열심히 트랜스플루이드를 긁어서 빼냈다. 오토봇의 비명이 들려올 때마다 안절부절못하는 프라임이 귀여워서 조금 도와주기로 했다. 밸브에 디짓을 넣고 외부 노드를 살살 만져주니 프라임은 밸브를 꽉 조였다. 난 다른 놈들이랑은 달라. 네가 좋아하는 곳이 어디인지 다 알지. 밸브 안쪽 프라임이 제일 좋아하는 곳을 꾹꾹 눌러주며 디짓을 왕복하니 윤활유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프라임은 여전히 신음을 참고 있었다. 내 기분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기 싫은 티가 나면 내가 만족이 될지 모르겠군."


그러자 프라임이 고개를 떨구고 오래 생각했다. 인내심 있게 기다리니 프라임은 내게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하기 싫었던 적 없어. 널 사랑해."


순간 눈앞이 새빨개진 나는 프라임을 거칠게 돌려 눕히고 잘 풀린 밸브가 아닌 후면 포트에 스파이크를 처박았다. 세게 찍어 누르자 프라임이 바닥을 긁어댔다.


"날 기만하다니. 플레져봇답게 신음을 내라는 거였어. 그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라는 게 아니라."


난 계속해서 스파이크를 쑤셔 박으며 프라임을 사용했다. 프라임은 내가 원하는 대로 신음을 냈으나 흥분에 찬 것이 아닌 고통스러운 신음이었다. 막무가내로 트랜스플루이드를 배출한 이후엔 약속대로 프라임과 포로를 모두 풀어주었다. 프라임이 비틀거리며 오토봇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기묘하게도 나는 그 어떤 승리감도 느끼지 못했다. 프라임은 멀어졌고, 나는 그가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싸늘함만을 붙잡고 있었다.























그렇게 전쟁이 길게 이어졌고 승세는 디셉티콘 쪽으로 기울어졌다. 하지만 오토봇은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그 중심엔 언제나 프라임이 꼿꼿하게 서 있었다. 최근 프라임은 꽤 오랫동안 전장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지루함에 동체를 비틀며 생각에 잠겼다. 어떤 오토봇을 고문해야 프라임을 끌어낼 수 있을까. 그러나 어느 날 프라임이 스스로 찾아왔다.


"로드의 플레져봇이 직접 찾아왔군."

"밸브가 허전해서 왔나?"

"후면 포트가 허전했을 수도 있지."


디셉티콘의 조롱이 쏟아졌으나 프라임은 미동조차 없었고, 담담하게 독대를 요청했다. 오랜만에 프라임을 봐서 기분이 좋아진 나는 관대하게 내 개인 쿼터로 초대했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뻗어 프라임의 페이스 플레이트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립 플레이트를 맞대려는 찰나 프라임이 나를 살짝 밀어내고 멀어졌다.


"날 이해해 줬으면 해."


프라임이 차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무언가... 오고 있어. 모든 사이버트로니안의 힘이 필요해. 이상하게 들릴 걸 알지만 우린 힘을 합쳐야 해. 그동안 내가 대비해 둔 것이 있어."


입맞춤조차 허락하지 않고 본론을 꺼내 드는 모습에 기분이 저조해진 내가 빈정거렸다.


"그래? 너만 믿고 싸우는 오토봇이 죽어 나갈 동안 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게 그것 때문이었나? 잘난 옵티머스 프라임의 계획이 대체 뭘지 궁금하군."


프라임의 옵틱이 살짝 흔들렸다. 상처받은 기색이 역력했다.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프라임은 감정을 금방 추스르고는 내 오만한 표정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내 모든 걸 읽어낼 것만 같은 그 새파란 옵틱이 싫었다. 내가 표정을 찡그리자 프라임이 낮게 대답했다.


"자세한 계획은 말해줄 수 없어. 나도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확신할 수가 없어. 하지만... 사이버트론에 거대한 위험이 닥칠 거라는 건 느낄 수 있어. 날 믿어줘. 사이버트론에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을 거야. 절대로."

"그래. 네 사이버트론 사랑은 나도 알지. 그 눈물겨운 감정이 진심이란 것도 알아. 하지만 그런 뜬구름 잡는 소리에 무작정 휴전할 수는 없다. 이미 승기가 기울어진 상황에 너한테 지고 들어갈 이유가 없어."

"널 이기려는 게 아니야. 이건 외부의 위협에 맞서 하나가 되는 거야. 시간이 없어. 그냥 나와 함께할 거라고 해줘."


프라임이 절박하게 속삭였다.


“예전처럼... 그럴 거라고 해줘."


그 순간 스파크 어딘가가 아주 잠깐 흔들렸다. 깊은 곳의 동요가 불쾌해진 나는 프라임을 거칠게 넘어뜨렸다.


"내 앞에서 감히 과거 얘기를 꺼내? 넌 나랑 함께였던 적 없잖아. 우린 늘 반대편에 있었어! 넌 항상 날 무시한 채 네 계획들을 실행해 왔고!"


난 프라임을 힘껏 때렸다. 동체가 우그러지고 에너존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으나 프라임은 전혀 반항하지 않았다.


"난 그냥 사이버트론을 지키고 싶어..."


그렇겠지. 네가 관심 두는 건 그거 하나지. 언제나.


"네 대의명분엔 질렸어. 넌 항상 그럴듯하게 말하지만 결국 네 방식대로 날 휘두르려고 해. 난 다시는 순종하지 않을 거다. 넌 어떤 방식으로도 날 무릎 꿇릴 수 없어."

"부탁이야. 우리가 함께 미래를 만들 수도 있어."


프라임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그 옵틱은 그대로였다. 안에서 희망이 엿보였다. 또다시 일렁이는 스파크 때문에 다시 한번 거칠게 주먹을 날렸다. 


"이제 네 지겨운 평화에는 관심 없어."


이어지는 폭력에 프라임이 결국 아이처럼 흐느끼기 시작했다. 반항하지 않는 프라임은 재미가 없었다. 흥미를 잃은 내가 일어서자 프라임도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트랜스폼해 떠나갔다. 저 멀리 사라지는 트럭을 어쩐지 다시는 못 볼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상하리만치 분명한 확신이었다. 그러나 무시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시스템이 고장 난 듯이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으니까. 눈앞이 팽팽 돌았고 브레인 모듈이 깨질 듯이 아팠다. 무언가... 무언가 크게 잘못된 것 같은데 어디부터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을 멈췄다. 깊이 생각하면 하나의 결론에 도달할 것 같아서 두려웠다. 어쩌면 내가 걸어온 모든 길이 잘못됐다는 결론. 내 손으로 우리를 망쳤다는 결론.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는 결론에.



























여기가 어디지? 프라임은 모든 것을 포기한 듯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내가 아무리 소리쳐도 들리지 않는 듯했고, 난 무슨 짓을 해도 프라임에게 닿을 수 없었다. 프라임은 혼자서 아주 오랫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어딘가 무너진 것 같았다. 얼마 후 그가 갑자기 일어나 어두운 우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말릴 새도 없었다. 프라임이 영원히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꿈에서 깨어났다.

꿈이었구나. 그러나 난 다시 리차징에 들어갈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봤던 프라임의 상처받은 옵틱이 떠올랐다. 떠나가는 트럭의 뒷모습이 생각났다. 마지막 기억은 꿈과 어지러이 합쳐졌다. 우물 안으로 뛰어드는 프라임의 모습이 브레인 모듈 속을 맴돌았다. 멍하니 그 모습을 생각하고 있는데 순간 온 동체의 에너존이 식었다. 갑자기 시야를 꽉 채울 정도로 커다란 경고창이 띄워졌다.


[붙잡아!]


또다시 이상한 예감이... 아니다. 이건 예감 따위가 아니었다. 내 연산 시스템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돌아가며 수십억 개의 로그와 패턴을 분석한 결과였다. 프라임과 주고받은 교신 기록, 그가 남긴 비언어적 신호, 전장 이탈 빈도, 광량이 감소된 옵틱... 내 기억 장치에 저장된 프라임의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도출해 낸 결과. 프라임이 날 떠날 거야. 영원히.

나는 모든 디셉티콘을 소집해 미친 듯이 우물을 향해 질주했다. 내가 가장 선두에 서서 거슬리는 것들을 모두 깔아뭉갰다.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어. 자신 있어. 심지어 난 코그가 없을 때도 아이아콘 우승 직전까지 갔었지... 옛날 생각이 나. 네가 내 집이었어. 난 그때 행복했어. 네 옆에 있었으니까. 이제 알겠어. 너한테 내가 뒷순위여도 괜찮아. 그냥 난... 널 잃고 싶지 않아. 도대체 뭘 해야 내 옆에 있을 거야? 나 이제 네가 하잔 대로 할 준비가 됐어. 네가 꿈꾸는 미래에 동참할 준비가...

우물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토봇들이 가득했다. 공격을 시도하는 이들도 있었다. 물론 전투가 불가피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엘리타가 나를 안쪽으로 이끌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너도 옵티머스를 볼 권리가 있어."


안쪽에 가까워질수록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들리고 모두 땅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꼭 누가 죽기라도 한 것처럼. 누군가 죽기라도...


"너한테도 유언을 남겼거든."


스파크가 쿵쿵 뛰었다.


"알아듣게 얘기를 해라. 상황만 보면 마치..."


난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날 맞이한 건 누워 있는 프라임이었다. 아주 깊은 어둠 속에서도 영원히 반짝일 것 같았던 스파크는 더 이상 빛을 발하지 않았다. 옵틱은 감겨 있었고, 그 아름다운 도색은 모두 사라져 있었다. 프라임의 모든 색이 사라져 있었다. 그 어떤 최악의 악몽에서도 상상할 수 없었던 끔찍한 광경에 온 동체가 떨렸다. 한발 늦었다. 유니크론의 침공이 예정되어 있었고, 프라임은 사이버트론에 피해가 가기 전에 매트릭스의 힘을 써 혼자 희생하기로 결정했고... 누군가 침통한 표정으로 설명하고 있었으나 오디오 리셉터에 들어오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전후 관계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프라임이 죽었다.






























아주 허무맹랑한 꿈을 꾼 것도 같은데. 프라임이 죽는... 아니, 그건 꿈이 아니었다. 프라임은 죽었다.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난 벽에 머리를 쾅쾅 박기 시작했다.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무겁게 울렸다. 내 헬름이 부서지는 소리였으면 좋겠다고, 내 시스템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꺼져서 다시는 부팅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엘리타가 소리쳤다.


"머저리같이 그러고 있을 거야? 너만 슬픈 줄 알아? 옵티머스가 너한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있다고!"


엘리타가 건네준 건 작은 쪽지였다. 떨리는 손으로 잡아 들었다.


[사이버트론을 너만큼 사랑해서야]


단 한 줄이었다. 그날 아이처럼 울던 모습이 생생했다. 옵티머스는 내 협력을 구하러 찾아왔을 것이다. 함께 적에게 맞서보자고, 가능성이 있다고, 아주 작은 희망이 있다고 믿었겠지. 그러나 내가 그걸 짓밟고 뭉갰다. 내가 옵티머스를 몰아넣은 거였다. 내가 모든 선택지를 지워버린 탓에 옵티머스가 자신을 던질 수밖에 없던 것이다. 내 잘못이야.

이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옵티머스는 별과 같았다. 멀리 있다고 생각했으나 언제나 그 빛이 나를 비추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모두를 품는 광휘를 가지고 있었다. 옵티머스는 진심으로 모든 것을 사랑했다. 나를 사랑하는 만큼 사이버트론을 사랑하고, 사이버트론을 사랑하는 만큼 나도 사랑했다. 옵티머스가 날 사랑했다. 그 모든 상처와 실망, 배신을 품고도. 그 많은 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날 사랑했다. 난 네 애원에 대답했어야 했다. 우린 당연히 함께할 거라고 말했어야 했다. 서로를 지켜주기로 하던 약속이 아직 유효하다고 했어야 했다. 그랬어야 했다. 하지만 대답을 들을 이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난 하루 종일 기억 장치를 뒤져 옵티머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주 오래전 해맑게 웃던 오라이온 팩스부터 이미 죽어서 모든 색을 잃은 옵티머스 프라임까지. 옵티머스가 나오는 기억들은 아주 많았다. 나는 에너존 섭취조차 멈추고 조용히 기억만 들여다보았다. 동체는 점점 힘을 잃었다. 그러나 모든 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더 이상 어떤 것도 나에게 흥미를 일으킬 수 없었다. 그토록 바라던 자리를 다시 차지한 스타스크림도, 사이버트론을 무력으로 점령한 디셉티콘도, 패배한 채 떠나버린 오토봇도... 다 상관없었다. 난 그냥 옵티머스를 끝없이 바라보고 싶었다. 
























깊은 후회 속에 잠들어있는 내게 누군가 에너존을 강제로 주입했다. 억지로 옵틱을 뜨니 그 앞에 쇼크웨이브가 서 있었다.


"프라임이 죽은지 수백만 사이클이 지났습니다."


난 대답할 가치도 느끼지 못한 채 다시 옵틱을 감았다. 날 내버려둬. 난 옵티머스를 따라 잠들고 싶어.


"...되살릴 방법을 찾았습니다."


디셉티콘은 본래 프라임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하이가드였다. 프라임을 잃자 그 빈자리를 고스란히 느낄 수밖에 없었다. 깊은 공허함이 그들을 삼켰고, 실의에 빠져 스스로 스파크를 꺼트린 이들까지 있었다. 나와 똑같이 모든 의욕을 잃고 작동을 멈춘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존재하는 모든 문건과 우주를 뒤져 다크 에너존을 찾아낸 이들도 있었다. 수백만 사이클만의 성과였다.

오토봇에게서 탈취해 온 옵티머스의 동체는 색이 모두 빠지고 스파크가 빛을 잃었을 뿐 멀쩡히 박제되어 있었다. 이미 죽은 메크를 살리기 위해서는 다크 에너존에 물든 스파크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지만, 지금까지 수많은 메크들이 그 힘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대로 죽었다고 했다. 설명을 들은 난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다크 에너존을 스파크 안에 꽂아넣었다.

내 스파크는 끝없는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거대한 에너지는 차갑고 무자비하게 내부의 모든 부품을 압박했다. 내 의식이 붕괴되며 스파크가 찢기고 짓밟혔다. 그러나 그 고통 속에서도 나는 멈출 수 없었다. 내 목표는 오직 하나, 옵티머스를 되살리는 것뿐이었다. 나는 온 동체를 쥐어짜내며 다크 에너존을 깊이 받아들였다. 천둥처럼 울려 퍼지는 강렬한 충격이 나를 강타했고 나는 마침내 다크 에너존을 완전히 받아들였다. 디셉티콘 모두가 환희에 찼다. 모든 감각이 무뎌지고 정신이 혼미해지려고 했으나 덴타를 꽉 악물었다. 그리고 곧바로 내 스파크 일부를 옵티머스에게 나눠주었다.

내 스파크와 옵티머스의 스파크가 맞닿자 이상한 환상을 마주했다. 옵티머스가 날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가엽게 여기는 것 같기도 했고, 화내려는 것 같기도 했다. 날 밀어내려는 것 같으면서 그리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간절하게 손을 뻗으니 옵티머스가 망설였다. 손을 잡아줘. 다시는 놓지 않을 테니까. 다시는. 내 절박함이 통했는지 옵티머스는 손을 마주 잡아 주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환상에서 깨어났다.

옵티머스의 꺼졌던 스파크가 반응하며 점점 빛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실없는 생각을 했다. 우리 이제 스파크메이트가 된 거네. 아니면 이걸 스파크 결합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아. 넌 내 형제이자 콘적스가 된 거야. 색을 잃었던 옵티머스의 동체가 점점 도색으로 뒤덮였다. 스파크는 마침내 환하게 빛났다.


"일어나, 옵티머스 프라임..."


내 말에 반응하듯이 옵티머스가 옵틱을 반짝 떴다. 분명히 옵티머스였다. 정말로 옵티머스 프라임이 살아 돌아왔다. 난 저절로 무릎을 꿇은 채 벌벌 떨었다. 그토록 꿈꾸던 광경에 내가 하려던 말을 모두 잊고 횡설수설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미안해. 나 그동안 많이 반성했어. 네가 하자는 대로 다 할게. 날 떠나지만 마. 정말 보고 싶었어. 미안해. 다시는 떠나지 마..."


되살아난 옵티머스는 울다 웃기를 반복하는 날 빤히 내려다보았다. 그리곤 살짝 미소를 지었다.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는 나를 부드럽게 일으켜 주었다. 심지어는 입까지 맞춰 주었다. 옵티머스가 날 용서했다. 내 자애롭고 고결한 프라임... 난 옵티머스의 손을 살며시 잡으며 물었다.


"좀 쉴래? 뭘 하고 싶어?"

"응... 일단 쉬면서 생각을 조금 정리한 후엔... 다른 행성에 가보자."


일어나자마자 하고 싶은 게 그거야? 넌 여전히 여행을 좋아하는구나. 그래. 넌 항상 호기심이 넘쳤지. 난 환하게 웃었다.


"좋아. 같이 온갖 행성을 여행하자."

"여행이 아냐. 우리 같이 사이버트론을 지키는 거야."


옵티머스의 옵틱이 어쩐지 불길하게 빛나는 듯했다. 옵티머스는 내 손을 아주 꽉 마주 잡았다.


"난 온 우주를 사이버트론으로 만들 거야. 우주는... 하나가 될 거야."


내 동체가 차갑게 식으며 자동으로 온갖 위험 신호를 보냈다. 급기야 커다란 경고창까지 띄웠다.


[도망쳐]


하지만 나는 옵티머스가 맞잡아준 손에만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리고 꽤 뜬금없는 생각을 했다. 옵티머스, 동체가 보라색이 됐네. 네 원래 빨갛고 파랗던 도색들이 섞인 것 같다. 그 색도 귀여워. 정말 예뻐. 네 흑백 동체는 끔찍하게 무서웠어. 살아있는 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 나는 아직도 시끄럽게 울려대고 있는 경고 신호를 뮤트했다.

모든 경고가 꺼지고 조용해지니 옛날 생각도 났다. 한때 의지로 타올랐던... 아주 파란 옵틱. 전쟁이 지속되며 점차 차분하게 가라앉았던 옵틱. 그럼에도 여전히 희망이 남아있던 옵틱. 이제 다시는 볼 수 없을 줄만 알았던 옵틱. 나 때문에 영영 꺼졌던 옵틱. 그 옵틱은 지금 다시 미래를 꿈꾸며 빛나고 있었다. 예전처럼. 분명히 내 옵티머스가 맞아. 내 오라이온. 내 길잡이별.


"메가트론, 나의 원대한 계획을 이해하지? 나랑 함께할 거지?"


나는 옵티머스의 새빨간 옵틱을 마주 보았다. 위험하게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경이로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날 집어삼킬 걸 알면서도 불나방처럼 뛰어들고 싶었다. 네 불길에 타죽을 수 있다면 그건 파멸이 아니라 구원이야. 황홀한 감정에 휩싸여 미소를 지었다. 너와 함께할 거냐고? 미치도록 후회했던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 이제야 수도 없이 연습했던 정답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이 감격스러웠다.


"영원히."


난 마침내 평화를 되찾았다. 
























그렇게 미친개끔찍디셉군단과 메가카섀글옵에 의해 우주는 멸망했다.....
어찌됐든 일단 메옵은 행복하고 서로 사랑하고 영원히 함께임!! 와 다행이다(?)

트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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