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팁이 토니에게 고백했을 때, 토니는 꽤 많이 당황했어. 그도 스팁을 좋게 보고는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동료라 생각했거든. 그래도 이런 일에 여지를 두는 건 못할 짓이라 생각해서 토니는 단호박으로 거절했어. 미안, 스티브. 당신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어.

스티브는 별로 상처받은 거 같지 않았어. 담담하게 토니를 보며 그런가? 하더니 되려 난처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하는 거지. 그러면서 답지 않게 눈치를 보는 토니에게, 앞으로도 가까운 동료로 지내자고 먼저 말해주는 거야.

좀 찝찝하긴 했지만 다행이다 여겼어. 스티브를 연애 감정으로 좋아하진 않더라도, 이미 그는 토니에게도 소중한 인연이었으니까. 깊은 마음은 아니었기를 바라며 예전처럼 지낼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

그런데 바로 그 다음 날부터 이게 아닌데 싶어지는 토니였으면 좋겠다. 스티브는 그가 말했던 것처럼 이전과 크게 다를 바 없이 토니를 대했어. 아주 사소한 차이만이 있었을 뿐이지. 인사를 할 때 환하게 얼굴에 떠오르던 웃음, 서류를 건네줄 때면 눈을 마주치며 다정하게 웃던 버릇이나, 토니 하고 부를 때의 따스한 울림 같은 것. 그런 게 전부 사라진 거야. 항상 보여주던 잔잔한 미소가 사라진 건 토니를 초조하게 만들었어. 여전히 스티브는 토니에게 친절했어. 하지만 그런..., 누구에게나 지키는 예의는 토니가 바라는 게 아니었는걸.

그 뒤로 초조하게 스팁 곁을 맴돌지만 스팁은 칼같이 친구로만 토니를 대하는 거야. 이래서 군인은, 뭐가 저렇게 단호해? 속으로 툴툴거리지만 미련없는 그 태도가 서로에게 좋은 거라는 건 토니도 잘 알고 있었어. 하지만 언제나 아는 것과 느끼는 건 다른 거였지.

그러다가 어느 날, 임무 도중에 스티브가 하마터면 큰 부상을 입을 뻔한 날이었어. 스티브는 가장 앞에서 제 몸을 아끼지 않고 전투에 임하기 때문에 부상의 위험이 항상 높은 편이었지. 토니는 스티브의 코 앞에서 폭탄이 터지기 직전 가까스로 그를 낚아채 날아올랐지. 심장이 터질 듯이 두근거렸어. 토니는 스티브를 안은 채로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어. 하여간 몸 조심할 줄 모른다고, 백 살 넘었다고 여생에 미련이 없느냐, 뇌까지 얼어 아직까지 그렇게 반응이 둔한 거냐 화를 냈어. 그런데 한 마디쯤 할 법한 스티브가 조용한 거야. 어디 다치기라도 한 건가? 깜짝 놀라 고개 숙인 스팁의 얼굴을 살피는데, 그때 본 거지.

토니의 품 안에 안겨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스티브를.

그리고 그 모습은 토니가 한순간 말을 잃게 만들 정도로 귀여운 것이었어. 스티브는 꺼질 듯한 목소리로 토니에게 말했지. 이제..., 내려주지 않겠나....... 토니는 어어, 얼빠진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 안전한 곳에 스티브를 내려주었지.

그렇게 거절하고 나니까 스티브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운데 스팁은 이미 맘 접으려고 토니 필사적으로 피해다니는 그런 거 보고싶다. 토니가 좋아한다고 고백해도 곧이곧대로 듣지 않고 자신을 위한 토니의 위로 내지는 제 감정에 휩쓸린 토니의 착각 정도로 여기면 좋겠다. 그래서 도리어 그러지 말라고 토니를 달래고 토니 환장했으면. 그런 귀여운 로코가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