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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0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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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는 이제 없었지만 어디에서나 헨리를 볼 수 있었다.

왕실의 배려인지 아닌지 모를, 헨리의 퇴위라는 표면적인 이유로 전통적인 절차를 밟는 떠들썩한 장례는 치루지않았다. 그럼에도 세상은 온통 헨리 이야기 뿐이었다. 헨리가 어디서 어떻게 태어나 무슨삶을 살았고 어떤병을얻어 떠났는지까지. 길거리를 걷다가도 가판대에 걸린 신문이며 라디오에 뉴스까지 온통 헨리를 향한 이야기를 떠들어댔다. 바깥의 풍경이야 얼마 지나면 곧 사그러들 일이었지만 알렉스의 핸드폰 속 사진과 메시지, 집안의 흔적들은 몇 배는 더 아프게 다가왔다.
두고온 짐을 정리해야하는데, 오스틴 별장을 갈 엄두도 내지못했다. 차라리 평생 발을 들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고갤 돌리는 모든 곳, 집안 곳곳 시선이 닿는 모든곳에 헨리가 존재했다.

한달가량을 엘렌과 오스카의 집에서 보냈다. 알렉스는 거절했지만 그들이 단호하게 자처한 일이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결과적으로 잘된일이라고 생각했다. 혼자였더라면, 사람하나 더 치울뻔했다고. 그리고 그건 남은 사람들에게 절대로 못할짓이었다. 생각보다 시간은 빨리 흘렀다. 처리할 일이 많았고 비행기를 타고 왕실을 오가며 헨리의 가족들과 시간을 조금 보냈다.

마침내 부모님의집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온 알렉스는 끈질기게 귀찮게구는 퍼시와 노라의 애정어린 감시덕에 사람꼴은 유지하고있었다. 노라가 한걱정을 하며 채워둔 음식이 냉장고에 그대로 있었다. 며칠을 아무것도 하지않고 누워지내다 간신히 일어나 집안을 치웠다. 침대가 넓게 느껴져 안방은 들어가지도않고 내내 소파에서 잠을 청했다. 헨리가 늘 덮던 두터운 담요를 세탁하고 암체어 위에 잘 개어 올려두었다. 지저분하게 자란 수염을 정리했다. ' 너 수염기르는건 십년뒤에나 시작해. 아직은 나만 볼거야.' 귓가에 헨리의 웃음소리가 맴도는것같아 알렉스는 멍청하게 한 손에 면도기를 든채로 미소를 띄웠다. 굴러다니는 술병을 치우고 엉망인 집안을 돌보고나니 반나절이 지나있었다. 핑하고 현기증이 돌아 다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손에 그대로 끼워진 결혼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살이 빠진탓에 마디가 헐렁했다. 혹여 빠지기라도 할까 덜컥 겁이나 플라스틱 타이를 감아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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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클 알렉스한테 이거 드릴까 우리? 퍼시의 말에 데비가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헨리가 떠난후로 처음 맞는 알렉스의 생일이었다. 아이의 작은 손엔 삐뚤빼뚤한 글씨로 정성들여쓴 축하카드가 들려있었다. 고마워 데비, 삼촌 정말 기뻐. 데비의 눈망울을 들여다보며 알렉스는 애써 입꼬리를 올려 활짝 웃었다. 데비는 수줍게 웃고는 다시 퍼시의 뒤로 달려가 숨었다. 

" 좀 어때. "

노라가 조심스레 물었다. 알렉스는 어깰 으쓱했다. 그럭저럭. 노라가 진심인지 아닌지 제 얼굴을 살피는게 느껴졌다. 하지만 정말로 괜찮았다. 이렇게 바람을 쐰것도 오랜만이었다. 

퍼시의 어깨에 올라타 목마를 탄 데비의 발에 알렉스의 시선이 머물렀다. 
데비는 지금보다도 어릴때 헨리가 선물했던 구두를 신고있었다. 알렉스는 헨리와 함께 백화점을 가서 그 선물을 산 날을 기억했다. 손바닥만한 작은 아기용품들에서 한참이나 눈을 떼지못하던 헨리가 떠올랐다. 

" 이제 데비가 많이 커서 신발이 작아. 올해가 지나면 더 신지는 못할거야. 그래도 간직해두려고.. "

노라가 훌쩍였다. 




 산책에서 돌아와 다시 침실에 틀어박힌 알렉스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헨리를 보았다. 아주 잠깐의 찰나동안 알렉스는 무엇이 현실인지 알수없었다. 종종 있는 일이었다. 어떤 날은 꿈속에서 꿈인것을 인지하기도했고 완전히 까맣게 잊은채 행복하기도했다. 눈물범벅이된 얼굴로 잠에서 깨고나면 알렉스는 베이크오프를 틀어두고 헨리에게 말을걸듯 중얼거리곤 했다. 청승이래도 할말없었다. 그렇게라도 하지않으면, 적막을 견딜 수 없었다. 입을 열어본지가 오래라 까끌하고 가라앉은 제 목소리가 낯설었다.

" 네가 요리는 못해도 디저트는 잘 만들었는데. 그렇지 헨리. 라임 파이만큼은 네가 최고니까. "

방송이 거의 끝나간다. 벌써 다음화의 예고편으로 넘어가고있었다. 뚝. 까만 화면이 정지하고 다시 홈화면으로 돌아왔다. 어두운 방안에 오로지 화면에서 나온 빛 뿐이었다. 알렉스는 리모콘을 향해 손을 뻗을 생각도 하지않고 그대로 누워 멍하니 중얼거렸다.

" 헨리. 어디있어? "

목이 콱 메여 이상한 소리가 났다. 뜨겁고 굵은 눈물줄기가 피부를 적셨다. 눈물이 소파로 스미는게 느껴졌다.

" 거긴 편안해? "

너무 보고싶어 헨리. 나 어떡해야하지.
내가 조금만 더 널 위했더라면. 조금만 더 일찍 발견했더라면.. 그럼 네가 여기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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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는 다시 새벽조깅을 시작했다. 정계는 여전히 멀리했지만 후배가 일하는 작은 로펌에 찾아가 다시 변호사일을 시작했다. 프로보노나 마찬가지인 일도 모두 도맡았다. 조금이라도 시간이나면 헨리가 하던 퍼시의 재단에 관련된 일의 마무리도 대신 처리했다.
산더미같은 서류에 파묻혀 밤낮을 잊고나면 흩어져있던 삶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끌어모아 제자리를 찾아가는것같았다. 어떤이들은 그가 지독하다고 혀를 끌끌 차곤했다. 확실히 젊어서 그런지 큰일을 겪고도 멀쩡하다고들 했다. 
베아에게 연락을 끊은지 오래였다.
시간은 잘 갔다. 눈 앞에서 휙휙 지나가는게 보일것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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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로 쓰러지고 나서야 병실의 천장을 바라보며 알렉스는 그동안 외면해왔던, 지독히 느리게 흐르는 현재를 마주했다. 꾸역꾸역 몸을 혹사시키면 조금이나마 잊을 수 있었던 사실. 앞으로 살날이 너무 까마득하다는것. 제가 이렇게 굴어도 곁에서 말려줄 이 없다는것. 헨리가 없이 남은 평생을 살 자신이 없다는 사실이 쓰나미처럼 알렉스를 덮쳤다. 헨리가 떠난 날부터 한순간도 아물지도 메워진적도없는 공허가 블랙홀처럼 알렉스의 세계를 삼켰다. 
미아가 된 알렉스는 공황에 휩싸여 눈물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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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던가, 헨리의 스캔을 하고 돌아온 날이었다. 그무렵 새벽마다 급작스런 고열로 응급실을 오가며 짐작은했지만. 결과는 예상보다도 더 좋지않았고 연명치료에대한 말이 오갔다. 헨리는 신경이 날카로워져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알렉스와 한차례 언쟁을 한 후였다. 냉랭하게 집에 도착한 두사람은 각각 서재와 침실에 틀어박혔다. 생각에 잠겨 얼마나 시간이 지난건지도 몰랐다. 밖이 어두워져있었고 집은 조용했다. 문득 정신이 든 알렉스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혹시나 제가 무슨 소리라도 놓치지않았나 허겁지겁 방을 나가 헨리를 찾았다.

헨리를 발견한건 의외의 장소였다. 헨리는 부엌의 스툴에 앉아 물끄러미 싱크를 내려다보고있었다. 식탁엔 이런저런 도구와 음식재료가 어지럽게 나와있었다. 울려던건지, 울고 난 후인건지는 모르지만 눈이 빨갰다. 헨리? 조심스레 다가간 알렉스를 올려다본 헨리가 머쓱하게 웃었다.

"..뭔가 만들어주고싶었는데. 재료를 꺼내고보니까 너무 피곤해진거있지."

헨리가 힘없이 웃었다. 다시 방으로 돌아갈 힘은 없고. 널 부르기도 뭐하고.

" 그래서 내가 너무 한심하고. 바보같고. 화가나서.."

" ..헨리. 그렇지않아. 침대로 가서 눕자. 괜찮아. " 

알렉스가 다가가 헨리를 끌어안았다. 헨리의 눈에 그렁그렁 고여있던 눈물이 기어이 툭, 손등으로 떨어졌다. 괜찮아, baby. 자고 일어나서 생각하자. 알렉스가 헨리를 안아들고 속삭였다. 괜찮아, 괜찮아. 주문처럼 되뇌이는 알렉스에게 헨리는 전부 다 미안하다고 했다. 헨리는 침실까지 가는동안 제 목덜미에 고갤 기대고 금방 잠이들었다. 다음날 헨리는 고집을 부려 기어이 알렉스에게 작은 컵케이크를 만들어주었다. 그리곤 뿌듯하게 웃으며 알렉스의 입가에 묻은 프로스팅을 닦아냈다.

" 약속해 알렉스. 내가 없더라도, 널 돌보겠다고. 매끼 잘 챙겨 먹고 잠도 푹 잘자고, 맛있는 디저트도 먹겠다고. "

헨리는 억지로 알렉스의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하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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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가 묻힌 곳 바로 옆에 아서의 이름이 보였다. 한가지 좋은점이라면, 네가 아버지와 함께일수있다는 점이겠지. 알렉스는 직접 만든 파이를 헨리의 앞에 내려놓고 멍하니 앉아 묘비를 바라보았다. 

얼마전 텍사스의 집을 정리하며 몇번이나 무너지고 울고 난 후였다. 사용인들이 몇번 청소를 했지만 헨리의 옷과 신발과 물건이 그대로였다. 하나도 빠짐없이 읽던 문자와 보이스메일과 달리 그간 닳기라도 할까 잘 펼쳐보지도 않던 헨리의 편지와 일기를 다시 읽었다. 꼼꼼히 적어둔 라임파이 레시피를 발견했을때 알렉스는 또 한번 무너져내릴 수 밖에 없었다.

" 헨리. 너무 지키기 힘든 약속을 했나봐. "

그래도 너랑 한 약속이니까 지켜야겠지.

알렉스는 옷에 풀물이 지는것도 모른채 우두커니 앉아 넋두리같은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 해가 지고나서야 쉬이 떨어지지않는 걸음을 옮겼다.
다시 살아가야만 한다.








이런거 써도 원작은 해피일테니까ㅎㅎㅎㅎ
시퀄 발표ㅊㅊㅊㅊㅠㅠㅠㅠ

테잨닉갈 레화블
2024.05.10 21:32
ㅇㅇ
미친.........미친!!!!!!!!!!!!!!!!!!!!!!!!!!!!!!!내센세가 돌아왔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다시 찌찌붙이고 읽으러갈게요
[Code: 391e]
2024.05.10 21:38
ㅇㅇ
모바일
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72a5]
2024.05.10 21:46
ㅇㅇ
모바일
알렉스ㅜㅜㅜㅜ
[Code: 9d09]
2024.05.10 21:52
ㅇㅇ
모바일
ㅠㅠㅠㅠㅠㅠㅠ진짜 꾸역꾸역 헨리랑 약속 지키려고 살아가는 거 너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5cb8]
2024.05.10 21:54
ㅇㅇ
모바일
센세 나울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d7df]
2024.05.10 21:58
ㅇㅇ
모바일
혼자 남은 알렉스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그저 눈물만...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Code: b2df]
2024.05.10 23:52
ㅇㅇ
모바일
아ㅠㅠㅠㅠㅠㅠㅠㅠ시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심장 빠개져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읽다가 눈물 줄줄 나서 몇번이나 멈췄다가 다시 읽었어ㅠㅠㅠㅠㅠㅠ마음이 너무ㅜㅜㅜㅜㅠ힘들다ㅠㅠㅠㅠㅠ약속해 알렉스. 내가 없더라도, 널 돌보겠다고. 매끼 잘 챙겨 먹고 잠도 푹 잘자고, 맛있는 디저트도 먹겠다고.ㅠㅠㅠㅠㅠㅠㅠ사랑이란 뭘까ㅠㅠㅠㅠㅠㅠㅠㅠ내가 없더라도 그 사람이 잘 먹고 잘 자길 바라는 거ㅠㅠㅠㅠㅠㅠㅠㅠㅠ이거 너무 숭고한 감정 같다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f42b]
2024.05.11 02:01
ㅇㅇ
모바일
아ㅜㅜㅜㅜㅜ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까마득하다는 알렉스가 너무 짠하다...ㅜㅜㅜㅜㅜㅜㅜㅜㅜ
[Code: 7e21]
2024.05.11 05:18
ㅇㅇ
모바일
너무슬퍼.. 너무너무슬퍼요 센세ㅜㅜㅜㅜㅜ
[Code: db2e]
2024.05.11 05:19
ㅇㅇ
모바일
헨리가없어도 속상해할테니까 잘지내야돼 알렉스ㅜㅜㅜㅜㅜ
[Code: db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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