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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9 19:37
본가의 저택이 대대적인 공사에 들어가야 했음. 이참에 노후한 배관부터 인테리어까지 싹 다 바꾸기로 한 건 좋았는데, 긴 공사 기간 동안 머물 공간이 마땅치 않아서 고민이었음. 적당히 호텔에 머물러도 되겠지만 맘 편히 쉬긴 어려울 것 같아서 고민하다, 어린 시절 가족끼리 종종 놀러 가곤 했던 별장이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는 보고를 듣고는 조금 놀랐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도 어린 시절의 추억 때문에 처분하지 않고 있다가, 바쁜 삶에 치여 존재 자체를 잊고 있던 별장이었음. 어쨌든 본인 소유의 공간이니 호텔보다 심적으로 편할 거고, 관리도 꾸준히 되었다니 지내는 데 불편하진 않겠지. 막연한 생각을 이야기하자 저택의 노집사도 적극 찬성의 의견을 내놓았음. 가문을 물려받은 뒤로 단 한 번의 휴가도 없이 바쁘고 치열한 삶을 보내왔던 알렉스에게 이참에 휴식을 취하고 오시라고 성화였지. 휴가라고 하기엔 주변에 볼거리도 없는 한적한 동네지만, 이참에 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조금 일찍 시작하는 여름 휴가인 셈 치고, 아예 여름 내내 머물 생각으로 별장으로 오게 되었어.



간만에 방문한 별장은 어린 시절 제가 기억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낡고 작았고, 외딴곳에 있었음. 하지만 오히려 마음에 들었어. 인가와 멀찍이 떨어져 있어서 사람 볼 일 없이 한적하고 내부는 아늑해서 오길 잘했다 싶었지. 도착해서 며칠 간은 가정부와 몇 마디 나누는 것 외엔 말할 일도 없었음. 그마저도 가정부가 본인의 사용인이 사람 마주치는 걸 딱히 즐기지 않는다는 걸 알아챈 뒤로는 싹 사라졌지. 몇 시간씩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거나, 마당에 나가 본가에서 데리고 온 리트리버 루키와 공놀이를 하는 게 하루 일과의 전부였음. 아무에게도 방해 받지 않는, 완벽한 휴가였음.





그날도 뒷마당에 루키와 나란히 늘어져 햇볕을 쬐고 있는데, 갑자기 루키가 귀를 쫑긋하고 마당 바깥쪽을 살피다가, 갑자기 짖으면서 달려 나갔어.

"으악-!"

뒷마당 너머 풀숲이 우거진 쪽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서 알렉스도 놀라서 루키를 뒤따라갔음. 루키가 바짓가랑이를 물고 놓아주질 않는지, 웬 낯선 사람이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루키한테 질질 끌리고 있었지.



"루키, 이리 와!"

알렉스가 부르자 낯선 이를 놓아주고는 금세 쪼르르 주인 옆으로 자리를 잡아. 앉아 있는 사람은 놀랐는지 숨만 몰아쉬고 있길래 일으켜 세워주며 물었지.



"여긴 사유지인데, 어떻게 들어오신 겁니까."





"어어, 저 종종 숲 안쪽에 오는데요, 오늘따라 더 깊이 들어오다 길을 잃어서..."

큰 개며 낯선 사람의 등장에 당황했는지 우물쭈물 대답해. 그러면서도 호기심을 숨길 수 없는지 되려 알렉스에게 질문을 던지지.

"아저씨, 저기가 아저씨 집이에요?"



아저씨라니... 이질적인 호칭에 어질해서 낯선 이를 쳐다봤음. 그런데 막상 상대방을 훑어보니, 키만 훌쩍 컸지 아직 마른 몸에 앳된 얼굴을 하고 있더라고. 딱 봐도 아직 미성년자 같지. 이런 아이 눈엔 곧 서른인 자신이 아저씨처럼 보여도 할 말이 없겠어. 늙은 집사가 어쩐지 요즘 들어 부쩍 저더러 일도 좋지만 가정을 꾸리셔야 한다는 둥 잔소리를 하더니 그게 이런 이유 때문이었나. 허탈한 생각을 삼키며 대충 대답했음.

"응."
"와, 누나들이 저기는 엄청 부잣집이라고 괜히 가까이 가지 말랬는데."

크게 중얼거리는 말에 기가 차서 물었지.

"넌 어린애가 왜 혼자 돌아다녀. 어디 살길래 여기까지 온 거야?"
"우씨, 저도 두 달 뒤면 성인이거든요."

알렉스 말에 발끈하면서도 아이는 아이인지 순순히 대답하더라고.

"저기, 그... 옛날 기차역 있는 쪽에 살아요. 좀 멀긴 해도 못 올 정도는 아녜요."



대답을 듣고 의아해졌음. 그 자리에 사람 살 데가 있나. 다른 자리에 새로운 역이 들어선 지도 벌써 이십 년도 넘었고, 구 역사 자리는 황폐해져서 주택이며 상가며 다 없어진 지 오래임. 사람들의 눈길이 뜸해진 틈을 타 자리 잡은 낡은 집창촌 말고 거기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눈 앞의 아이를 다시 흘끗 쳐다봐. 언뜻 풋풋한 오메가 향이 느껴지는 것도 같지만, 젖살이 덜 빠진 얼굴에 데록데록 눈만 굴리는 걸 보니 코웃음이 나오지. 이렇게 풋내 나는 애가 대체 거기서 뭘 한다는 건지. 하긴, 예전에도 어린 애들을 붙잡아다 심부름꾼으로 부려 먹고는 했다던 게 기억이 났음.

"거기서 심부름이라도 하는 거야?"

조소하는 말투에 그저 아이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야. 그러더니 알렉스 발치의 루키한테 호기심을 드러내.

"얘 이름이 루키예요?"
"응"
"이렇게 큰 개를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에요."

반짝거리는 눈으로 신기해하는 건 본인 나이에 맞게 천진난만해 보였음. 알렉스도 괜스레 마음이 누그러졌지.

"인사해 볼래?"
"...네? 그래도 돼요?"
"그럼."



알렉스가 앉아서 루키의 목을 긁고 등을 쓰다듬어 주는 걸 보고서는 아이도 쭈뼛쭈뼛 쭈그리고 앉더라고.

"안녕, 난 조엘이야."

알렉스를 따라서 루키의 등을 살살 쓰다듬더니, 얌전히 손을 타는 루키가 마음에 들었는지 헤헤 웃지. 루키도 그 손길이 마음에 들었는지 헥헥대며 꼬리를 흔들어댔음. 루키가 신난 걸 보니 알렉스도 기분이 나쁘지 않지. 조심스럽던 손길은 익숙해졌는지 점점 대범해지고, 루키가 얼굴을 들이대도 움찔할 뿐 강아지랑 잘 놀아주는 게 참 애답다 싶기도 하고. 한참을 쳐다보고 있었더니, 아이가 문득 손목시계를 보며 놀라서 벌떡 일어나더라고.





"헉, 시간이 벌써...!"

허둥지둥 일어나면서 옷을 챙기지. 그 와중에도 선심 쓰듯 맹랑한 소리를 내뱉었음.

"아저씨도 놀러 와요. 아저씨가 온다고 하면 마담한테 잘 말해줄게요."

알렉스가 기가 차서 고개를 젓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루키한테 인사를 하고는 떠나갔지.

"잘 있어~"





한바탕 휩쓸고서 뛰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니 알렉스도 덩달아 정신이 없더라고. 조용하던 휴가에 갑자기 이게 무슨 야단인지. 루키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면서도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며 헛웃음이 나왔을 거야.










알슼조엘
2024.05.09 22:37
ㅇㅇ
모바일
하오츠하오츠 감자알슼이라니 마히따
[Code: f149]
2024.05.18 10:21
ㅇㅇ
모바일
더줘센세
[Code: e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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