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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18:11
앞으로 만나지 말기로 하고 덤덤하게 헤어지는거 보고 싶다


머리 터지게 고민하던 사토미 결국 자기가 쿄지 좋아하는거 깨닫고 인정하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만날 순 없음. 성숙한 어른으로 살아가려면 좋아하는 마음도 접을 줄 알아야 하잖아.

마지막으로 밥 먹고 일어서기 직전에 쿄지한테 사실 그동안 많이 좋아했다고, 사랑이었다고 고백하니까 묵묵히 커피만 들이키던 쿄지가 그 어떤 농담이나 코멘트 한 마디도 없이 "나도." 라고 대답할듯. 서로 마음 확인한 그날을 마지막으로 이제 연락도 안 하고 약속도 안 잡고 얼굴도 안 보는데 그 뒤로 기묘한 관계는 계속됐으면 좋겠다.

쿄지 딴에는 변명할 거리가 있었음. 만나지 말자고 한 거지 조사하지 말라고 한 건 아니잖아? 혹시 자기때문에 사토미 위험해질까봐 지켜주려고 감시하는데 사실은 먼 발치에서나마 잘 지내는지 지켜보고 싶었을듯. 다행히 사토미는 아르바이트도 잘 하고 친구들과 놀기도 하면서 잘 지내는 것 같았음. 처음 몇 달은 울적해 보이더니 점차 얼굴이 밝아짐. 가라오케나 위험한 동네에 기웃거리지도 않고 정말 평범한 대학생처럼 살아가서 마음이 놓이겠지. 하루는 사토미가 약속에 늦었는지 뛰어가다가 차에 치일뻔 했는데 쿄지는 그때도 주먹을 꽉 쥐고 사토미에게 뛰어가지 않은 자신을 칭찬했음.

그렇게 몇 해가 지나가겠지. 사토미가 남자친구를 사귀었을 땐 조금 놀랐지만 행복해 보여서 다행이었음. 하루는 쇼핑몰에서 데이트하다가 깜박했는지 자리에 뭘 놓고 감. 사토미와 애인이 자리를 떠난 뒤에 가서 보니까 밥 먹은 영수증, 구겨진 영화표와 졸업식 리플렛이었음. 쿄지는 졸업식 리플렛만 챙기고 영화관에 가서 사토미가 본 영화를 예매해서 봤음. 솔직히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요즘 이십대 취향은 이건가보다 함. 사토미를 보러 올 때는 최대한 회사원이나 평범한 동네 아저씨처럼 입고 다녀서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민간인 체험하는 것도 나쁘진 않았겠지. 

시간 맞춰 찾아간 졸업식에서도 쿄지는 새끼손가락만하게 작게 보이는 학사모 쓴 사토미를 오분쯤 구경하다가 오사카로 돌아옴.

그뒤로 사토미가 뭘 흘리고 가는 일이 많아졌음. 꽃다발에서 뽑아낸 꽃 한송이일 때도 있었고, 작은 독사진 한장일 때도 있었고, 초콜렛이나 오마모리일 때도 있었음. 그때쯤 되니까 쿄지도 깨달았겠지. 나만 사토미를 지켜보는 게 아니라 사토미도 날 지켜보고 있었구나.

졸업한 사토미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아감. 대체로 피곤하지만 평화로워보였음. 남자친구와 헤어졌는지 이제는 여자친구랑 만남. 한두 해 뒤에는 아기도 생김. 이야 진짜 실바니안 패밀리 같구만. 아이랑 놀던 사토미가 놀이터 시소 위에 음료수 하나 놓고 돌아가는데 아이가 물어보겠지. 아빠 저건 왜 놓고 가는거야? 그러면 사토미가 온화한 표정으로 안아주면서 얘기해줌. 우릴 지켜주는 요정에게 선물하는 거야~

아직 어려서 무엇이든 믿는 아이가 요정이 어떻게 생겼냐고 물어보면 잠시 망설이던 사토미가 대답하겠지. 그러게~ 요정님은 키도 엄청 크고~ 인상도 강하고 털도 부숭부숭하고 등에는 호랑이처럼 알록달록한 무늬가 있단다. 그러면 아이가 고개 갸웃하면서 요정이 아니라 도깨비 아니야? 물어볼듯. 그뒤로는 아이가 색종이로 접은 학이나 색연필로 삐뚤빼뚤 쓴 편지도 함께 놓여있겠지.

그때쯤 쿄지는 마츠리바야시 부두목 보좌가 아니라 부두목이 되어 있었음. 은퇴한 회장님 보면서 생각이 많아졌을 거야. 하지만 바쁜 와중에도 시간 쪼개서 사토미의 가족을 구경하러 가는 시간을 냈음.

그런데 행복한 시간도 얼마 못 가고, 어느날부터인가 사토미 혼자 아내와 아이 없이 다니겠지. 어떤 종류의 불행인지는 몰라도 얼굴이 꽤 어두워졌음. 급기야 사람들로 가득한 기차역 벤치에 앉아서 얼굴을 감싸고 울고 있음. 당장이라도 가서 안아주고 싶지만 쿄지는 사토미와의 약속을 지켜야 하니까 그럴 수 없었음. 대신 사토미가 앉은 자리를 등지고 반대편 의자에 가서 울음을 그칠 때까지 가만히 앉아 있어주겠지. 어차피 사토미도 우는 얼굴을 보이기는 싫어할 테니까. 처음 만났던 해에도 저렇게 서럽게 울지는 않았는데. 왠지 모든 게 자기 탓 같아서 쿄지도 생각에 빠짐.

몇 개월 뒤에 다시 사토미를 보러 갔을 땐 많이 회복한 것 같았음. 그래, 앞으로 나아가야지. 너답게. 
이번에도 사토미가 신발끈을 묶는 척하더니 작고 동그란 물건을 가로등 밑에 놓고 갔음. 동전인가?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게 가서 조용히 집어들음.

반지.
근데 낡은 게 아니고 새거네. 

쿄지는 반지를 늘 안주머니에 지니고 다니다가 다음 번에 사토미를 보러 갔을 때 사토미가 똑같은 반지를 왼손에 끼고 있는 걸 보고 나서야 자기 손가락에 끼워봄. 나이먹으면서 살이 내려서 조금 헐렁하긴 한데 잘 맞겠지. 사토미 제법인데?

그렇게 십여년을 지내다가 사토미가 삼십대 중반이 됐을 때 쿄지가 조기은퇴하고 찾아가도 좋고...아니면 마츠리바야시 회장이 돼서 멀리서 존재만 확인하면서 살아도 좋을 것 같다.
2024.05.08 19:48
ㅇㅇ
༼;´༎ຶ ۝ ༎ຶ༽
[Code: 210d]
2024.05.08 19:48
ㅇㅇ
뭔가......진짜로 이런 결말 날것 같다 서로 마음 확인하지만 사귀지 않고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거, 하지만 서로의 존재는 늘 느끼고 있는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210d]
2024.05.09 02:07
ㅇㅇ
모바일
이거 미쳤네....."나도"라고 덤덤하게 말해놓고 죽어도 약속 어기지 않겠다고 멀리서 사토미 지켜주는 도깨비 요정해주고....이야,,,,이거,,완전 미쳤구먼
[Code: a4a2]
2024.05.09 23:04
ㅇㅇ
모바일
죽을게ㅣ
[Code: 7d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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