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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7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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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즈의 마음에 들고 싶어서 여러모로 노력하는 칸. 그럴수록 미치겠고 환장하는 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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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하이센 박사의 뜻밖의 제안이 발단이었음.

 - 다른 고객님께서 맡기신 임무를 칸이 성공적으로 완수했다는군요. 보러 가시겠습니까?

본즈가 처음 찾아왔던 첫날을 제외하고, 칸이 시설 내에 붙어있는 경우는 드물었음. 칸은 강화인간들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상품"이었기에 꾸준히 고객들의 대여 의뢰가 들어온다고 했음. 칸은 온종일 바깥을 누비며 고객들이 명령한 임무를 수행한 뒤, 밤이 되면 다른 애들 틈에 섞여서 본즈의 방으로 기어들어와 잠을 청했음.

하이센 박사는 본즈도 그런 식으로 강화인간을 대여하거나 구입하려는 고객이라고 생각했기에, 칸이 실제로 일하는 모습을 보고 판단하라며 기회를 준 것이었음. 본즈는 그 제안을 거절할 명분을 찾을 수 없었음.

 - 헬기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얼마 안 걸릴 겁니다.

그 장소에 도착했을 때, 본즈가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지독한 냄새였음. 의사로서 아주 잘 알고 있는 냄새.

사람의 피비린내.

 - 뭐, 뭐야...

본즈는 정신이 아뜩해졌음. 사방에 시신이 가득했음. 전투와 의술 양쪽에 능숙한 전투메딕의 눈으로, 본즈는 그 모든 시신들이 숙련된 전문가의 솜씨로 피살당한 것들이라는 사실을 알아볼 수 있었음.

그리고 그 시신들 한가운데에, 피칠갑을 한 소년이 무표정한 얼굴로 우뚝 서서 무기를 집어넣고 있었음. 칸이었음.

 - ...미스터 호레이쇼?

본즈를 알아본 칸의 얼굴에 반가움이 차오르더니 강아지처럼 달려오기 시작했음. 본즈는 뒷걸음질을 쳤음.

 - 이것 보세요. 미스터 호레이쇼! 제가 전부 해치웠습니다. 이번 고객님도 아주 만족하실 거예요.

자기가 죽인 사람들의 피를 온몸에 뒤집어쓰고, 신이 나서 달려오는 칸의 모습은 마치 기괴한 죽음의 천사 같았음. 본즈는 소름이 끼쳤음. 아직 어린 놈인데도 사람이 아닌 괴물 취급을 받는 이유를 이해할 것 같았음.

 - 가, 가까이 오지 마.

칸의 어린 얼굴 위로, 본즈가 알던, 300년 후의 그 냉혹한 살인마 칸의 얼굴이 겹쳐졌음. 본즈의 표정을 보고 칸이 당황하며 멈춰섰음.

 - 네가 전부 죽였다고? 이 사람들을?

 - 네, 제가...

 - 왜, 어째서 이 사람들을 죽인 거야? 이 사람들이 왜 전부 죽어야 하는데? 대체 무슨 잘못을 했기에?

 - 저는 알지 못합니다. 고객님의 명령을 받았을 뿐입니다.

 - 대체 그 명령이란 게 뭐였는데?!

 - 이 마을 전체를 지정된 장소로 이주시키라고, 만약 주민들이 저항한다면 전부 죽여서라도 이 마을을 비우라고... 화, 화내지 마세요. 왜 화가 나신 겁니까?

칸은 혼란스러워했음. 이제껏 칸이 만나본 모든 어른들은, 칸이 고객의 명령을 이행하는 것을 반가워했고 칭찬해 주었음. 그래서 본즈도 분명 기뻐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기는커녕 치를 떨도록 분노하고 있었음.

 - 왜 화가 났냐니? 그럼 넌 내가 이걸 좋아할 거라고...!

 - 저, 저는 고객의 명령을 완수했습니다. 저는 좋은 강화인간입니다. 좋은 강화인간이니까, 미스터 호레이쇼의 명령도 이렇게 효과적으로 완수할 겁니다.

 - 넌 고객의 명령이면 사람을 막 죽여도 되는 거야? 이 많은 죄없는 사람들을?!

 - 명령은 따라야 합니다. 그게 제가 만들어진 목적입니다.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전혀 감도 못 잡고 있는 칸을 보면서, 본즈는 미칠 것 같았음.

 - 명령 정도로 퉁칠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야. 이건 가장 끔찍한 범죄야. 감옥에서 평생 썩을 수 있는...

 - 저희는 법적으로 인간이 아닙니다. 저희에게는 어떤 법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 순간, 본즈는 첫날밤에 칸이 자기 몸을 바치며 했던 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음.

(저희는 법적으로 인간이 아닙니다. 저희에게 무슨 짓을 하시더라도 법에 저촉되지 않고 처벌도 받지 않으실 겁니다.)

강화인간들이 법적으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양날의 검이었음. 강화인간에게 무슨 짓을 저질러도 벌을 받지 않지만, 반대로 강화인간 쪽에서 무슨 짓을 하더라도 처벌할 수가 없는 것이었음. 맙소사. 본즈는 어째야 할지 알 수 없었음. 아이들에게 도덕을 가르치는 가장 원초적인 수단은 처벌에 대한 공포인데, 처벌조차 받지 않는 이 아이에게는 이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

하지만 그의 극대노한 얼굴 앞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아이를 보면서, 본즈는 자신이 지닌 유일한 수단을 깨달았음. 칸은 그를 아주 좋아했고, 그의 마음에 들고 싶어서 애쓰고 있었음. 본즈는 최소한 자기가 살인을 아주 싫어한다는 사실을 칸에게 전할 수는 있었음.

 - 칸, 이걸로 나한테 잘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완전히 잘못 생각한 거야. 난 오늘 네가 한 일이 정말로 싫어.

 - 미스터 호레이쇼, 저는 단지 고객님의...!

 - 나는 사람이 죽는 것이 싫어. 누군가가 사람을 죽이는 건 더 싫어. 네가 오늘 이 많은 사람들을 죽였으니, 난 지금 너도 꼴보기 싫어. 돌아갈래.

본즈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돌아섰음. 뒤에서 칸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돌아보지 않았음.

그날 다시 헬기를 타고 시설로 돌아온 뒤에도, 본즈는 자신이 본 그 끔찍한 광경을 잊을 수 없었음. 널려 있는 시신들과, 그 가운데에 무표정하게 서 있던 칸을. 자신이 개입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본즈는 결국 하이센 박사를 찾아가 물어야만 했음.

 - 저기... 칸이 수행하는 임무는 다 오늘같은 식인가요?

 - 뭐, 대부분은 그렇죠.

본즈가 살던 23세기에는 지구 전체의 통합 정부가 있었던 것과 달리, 20세기는 지구가 크고 작은 국가들로 쪼개져서 전쟁이 끊이지 않던 시대였음. 국가 간의 전쟁도 흔했고 국가 내부적으로 내전이 벌어지기도 했음.

그래서 각국의 정부나 재벌들은, 이러한 골칫거리를 비합법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자국 군대 대신 강화인간들을 사서 투입한다는 것이었음. 군대를 보내면 조약 문제나 부상자 복지 등등 신경써야 할 게 많지만, 강화인간은 어차피 사람이 아니니까. 오늘 일의 경우에도, "고객님"이 직접 마을을 몰살시킬 수는 없었는데 칸이 그 일을 대신 해주었기 때문에 아주 편해졌다고 했음.

(댐잇, 진짜로 미개했던 시대구만...)

23세기인인 본즈의 눈에는, 20세기란 야만의 시대 그 자체로 보였음. 같은 지구인들끼리 서로 전쟁을 벌이고 죽인다니. 칸과 같은 강화인간들은 그러한 야만의 시대에 인간의 손으로 창조한 괴물들이었음. 본즈의 벌레씹은 표정도 아랑곳없이, 하이센 박사는 자랑스럽게 지껄였음.

 - 그래서 저놈들에게는 철저한 복종을 가르쳤습니다. 고객님들이 잔혹한 일을 명령하시더라도 거리낌없이 해내야 하니까요. 만약 저놈들이 감히 양심이나 도덕 때문에 고객님들께 반항한다면 그 얼마나 난처한 일이겠습니까?

젠장. 본즈는 자신이 화를 냈을 때 칸이 왜 그토록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했는지 이해할 것 같았음. 지금 본즈 자신도 혼란스러웠기 때문이었음.

(이걸 칸의 잘못이라고 봐야 할까...)

그놈은 겨우 열두 살인데. 12년간의 짧은 생애에서 훈련받은 것이라고는 명령에 복종하는 것뿐일 텐데. 칸이 저지른 살인을 그 아이의 잘못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잘못은 그 어린애한테 살인을 가르치고 명령한 못된 어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닐까.

 - 만약... 복종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 반항하면 벌을 줘야죠. 채찍질을 할 수도 있고, 밥을 굶기고 가둔다던가, 여러 방법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 그래도 복종하지 않는다면?

 - 그 경우에는 그놈이 속한 전투조의 다른 구성원들까지 전부 함께 처벌합니다. 가족처럼 함께 자란 놈들이니, 거기까지 가면 보통 못 버티거든요.

가족을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없다던 칸의 말이 다시 떠올랐음. 칸이 가족들을 위해 살인이나 잔혹한 짓을 저지르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뿌리가 깊어 보였음.

본즈는 완전히 우울해진 채 자기 방으로 돌아왔음. 주방에서 받아온 보드카 한 병을 들이키면서. 혼자 마시는 술은 영 맛이 없었고, 갑자기 커크와 함께 나눠 마시던 체콥락커산 보드카가 몹시 그리워졌음.

그리고 노크 소리가 들렸음.

 - 미스터 호레이쇼...

 - 어... 칸이냐?

본즈는 멍하니 일어나 문을 열었음. 칸은 차디찬 복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었음.

 -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를 빌러 왔습니다.

잔뜩 풀이 죽어서 울먹이는 칸의 목소리를 들으며, 본즈는 마음이 몹시 불편해졌음. 그들의 관계는 "고객님"인 본즈에게 칸 쪽에서 일방적으로 잘 보이려고 애써야만 하는 관계였기에 더더욱 입맛이 썼음.

 - 칸, 엎드려 있지 말고 일어나. 일어나서 이리 와.

본즈는 칸을 일으켜서 침대로 데려가 앉게 했음. 풀죽은 아이의 어깨를 쓰다듬어 주면서.

 - 내가 왜 화가 난 건지 알겠어?

 - 제가 그 마을 주민들을 죽여서요...

 - 그럼, 앞으로는 안 그럴 거야?

칸은 말문이 막히더니, 잠시 후 어물어물 대답했음.

 - 저도 사람을 죽이는 일을 즐기지는 않습니다. 잘못된 일인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면 저는 벌을 받을 것이고, 제 가족들도...

 - 이봐, 난 네가 고객들의 명령을 수행하는 걸 탓하는 게 아니야. 네가 벌을 받는 건 나도 싫어. 그렇지만 말이야,

본즈는 한숨을 푹푹 쉰 후 말을 이었음.

 - 네 고객의 이번 명령은, 주민들을 이주시켜서 그 마을을 비우라는 거였잖아. 꼭 그 사람들을 죽여야만 했어? 죽이지 않고도 목표를 달성할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 하지만 고객님은 저항하면 죽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이 제일 신속하고 효과적인 방법일 거라고요.

 - 그 고객이란 놈이 대체 뭘 아는데? 보나마나 너보다 한참 멍청한 놈일 거잖아.

 - 네??

칸의 눈이 휘둥그레지자, 본즈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음.

 - 넌 신체만이 아니라 지능도 한참 우월하잖아. 그럼 넌 분명히 그 우월한 지능으로, 네 고객은 생각 못하는 훨씬 좋은 방법을 떠올릴 수 있을 거야. 네가 더 똑똑하니까.

 - 그런... 식으로는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칸의 목소리가 떨렸음.

 - 이봐, 칸, 살인이란 건 있잖아. 아주 열등한 행위야. 아무리 멍청하고 무능한 놈이라도 총만 있으면 살인은 할 수 있거든.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한 일이란 말이야.

 - 열등한 행위요...

 - 그래. 살인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건 열등한 놈들이나 떠올리는 방식이라고. 싹 다 죽여버리면 쉽고 편하게 끝나니까.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거야말로 훨씬 어렵고 복잡해. 그거야말로 우월한 지능을 가진 너 같은 애들이 할 수 있는 일이야.

본즈는 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음.

 - 그러니까, 다음에는 너보다 열등한 고객들이 열등한 명령을 내리면, 네 똑똑한 머리로 생각해서 해결해줘. 그러면 난 기뻐할 거야. 네가 우월한 능력을 입증해 보인 거니까.



다음날.

칸은 또다시 다른 고객에게서 임무를 받았는지 보이지 않았음. 다른 강화인간 아이들 몇 명도 함께 갔다고 했음.

 - 강화인간을 한 번에 여러 명씩 투입한다고요? 굉장히 큰일인 모양이네요.

 - 네, 대규모 군사작전이겠죠.

(또 많은 사람들이 죽는 건가...)

본즈는 이 20세기라는 시대가 갈수록 싫어졌음. 이렇게 행성 내에서 쉴새없이 전쟁이 터지는데 다들 어떻게 살았던 걸까. 본즈는 온종일 전쟁에 나간 칸과 다른 아이들을 걱정하며 서성거리다 보냈음.

그런데, 칸이 임무를 마치고 보낸 보고서를 읽고, 하이센 박사는 눈썹을 치켜올렸음.

 - 허... 이건 좀 의외인걸요.

 - 네? 왜요?? 설마 칸이 실패했대요?

 - 아니, 그게, 성공은 했는데, 고객님께서 의뢰하신 방법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성공했다네요.

갑자기 본즈의 가슴이 방망이질치기 시작했음.

 - 어떻게요? 무슨 방식으로요?

 - 음, 고객님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의뢰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습니다만, 대략적으로 설명해 드리면...

하이센 박사의 대략적인 설명에 따르면, 이번 고객은 어느 지역의 매장자원을 탐내고 있어서, 그 지역을 침략한 뒤 자원 채굴권을 뺏어오라는 것이 의뢰 내용이었음. 그런데 칸은 그 지역의 주민들을 몰살시키는 것이 아니라, 직접 교섭을 시도해서 자원 채굴에 대한 협약을 이끌어냈다는 것이었음. 무력을 앞세운 협약이었기에 결코 동등한 조건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아무도 죽이지는 않았다고.

본즈는 뛸 듯이 기뻤음. 자신이 가르친 내용을 칸이 즉시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에 뿌듯함이 느껴졌음.

 - 박사님, 헬기를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직접 가서 보고 싶습니다.

 - 뭐 그러시지요. 어차피 그 애들을 픽업해오려고 헬기를 보낼 예정이었거든요.

그 곳으로 향하는 내내, 본즈는 칸을 만나면 제대로 칭찬해줘야겠다고 별렀음. 가슴 가득히 꼬옥 안아줘야지. 혹시 먹고 싶다는 게 있으면 무엇이든...

그런데 헬기에서 내린 본즈를 맞이한 것은 칸이 아니라 다른 아이였음. 평소 칸과 함께 본즈의 방에 매일 찾아오는 멤버들 중 하나였기에, 본즈는 바로 얼굴을 알아보았음.

 - 와킨! 임무 성공 축하해. 칸은 어딨어?

 - 칸은 임무를 마무리하기 위해 다른 곳에 가 있습니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와킨의 말투나 눈빛은 어쩐지 불안했음. 과거에 소아과 의사로서 어린애들의 이상행동을 익히 보아온 본즈는 알 수 있었음. 그것은 아이가 뭔가 큰 잘못을 숨기면서 어른한테 들킬까봐 안절부절못하는 얼굴이었음.

 - 와킨, 날 속일 생각은 마. 칸은 어딨어? 무슨 일이야?

 - 속이는 게 아닙니다!

아뿔싸. 와킨이 뻣뻣하게 굳은 얼굴로 도리질치는 것에, 본즈는 급히 전략을 바꾸어 달래기 시작했음.

 - 와킨, 나야. 나 호레이쇼야. 너희들한테 항상 잘해줬잖아. 너네가 뭔가 잘못했더라도 화 안 낼게. 고자질 안 할게. 그냥 솔직하게만 말해줘.

하지만 와킨은 동공지진을 일으키면서도 굳게 버텼음.

 - 안 됩니다. 칸한테 약속했단 말입니다. 절대로 들키면...

그 순간, 저 뒤에서 칸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렸음.

 - 미스터 호레이쇼...? 여긴 어떻게...

본즈의 눈이 커졌음. 그가 본 것은, 칸이 다쳐서 스스로 걷지 못한 채 다른 강화인간들에게 들려오는 모습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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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댐잇!!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본즈가 버럭 고성을 지르며 달려가자, 그들은 본즈에게서 칸을 지키려는 듯 황급히 온몸으로 가로막으며 변명을 쏟아내기 시작했음.

 - 칸 잘못이 아닙니다!
 - 칸은 저를 감싸려다 다친 겁니다. 제 탓입니다.
 - 제발 하이센 박사님한테만 말하지 말아주세요!

본즈는 이 상황에 뭔가 큰 오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음.

 - 잠깐, 잠깐만! 나 화 안 났어. 왜 다들 내가 칸한테 화났다고 생각하는 거야?

 - 임무 도중에 부상당하면 하자 있는 상품이 됩니다. 박사님이 아시면 칸은 크게 혼이 날 거란 말입니다...!

강화인간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아니라 도구로 취급받았음. 마치 도끼의 날이 빠지거나 화살대가 부러지는 것처럼, 사용 도중에 도구가 고장나면 그것은 불량품이라는 뜻이었음. 그래서 임무 도중에 부상당하면 실적이 깎였고, 특히 심각한 중상을 입는다면 말할 것도 없었음.

 - 이런 미친...

본즈는 아이들이 듣지 못하게 입 안으로만 욕설을 주워섬기면서, 최대한 위협적이지 않은 표정을 지으려 애썼음.

 - 소리 질러서 미안해. 너희들한테 욕한 게 아니야. 절대로 그 박사놈한테 말 안 할게. 비밀 지킬게. 그러니까 제발 칸이 어딜 다쳤는지 내가 보게 해줘. 제발...

진심을 담은 애절한 호소. 다행히 본즈가 착실하게 쌓아온 호감도 덕분에, 아이들은 주춤주춤 길을 열어 주었음. 본즈는 허겁지겁 칸의 곁에 달려가서 무릎을 꿇었음.

 - 미안해, 칸. 잠시만 볼게. 많이 아프겠지만 참아 줘.

본즈는 칸의 옷을 들추고 상처들을 훑어보면서, 마음속으로 육두문자를 연발했음. 복부. 옆구리. 허벅지. 만약 일반인이었다면 그것들 중 하나만 다쳐도 사망했을 수준의 중상이라, 칸이 살아서 의식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할 지경이었음. 곧 의사 모드로 들어간 본즈가 사방에 지시를 쏟아내기 시작했음.

 - 너, 그리고 너, 윗옷 벗어. 여기 지혈점에 묶어야 해. 너는 칸의 다리를 위로 들어올려 줘. 심장보다 높게.

이곳에는 제대로 된 의료장비도 약물도 없었지만, 엔티호의 수석의료장교로서 온갖 돌발상황에 대처해온 닥터 맥코이의 경험치가 빛을 발했음. 아이들은 본즈가 칸을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즉시 협조를 시작했음.

 - 다행이다. 피는 멎었으니까, 칸을 헬기로 옮기자. 최대한 빨리 시설로 돌아가서 제대로 치료해야...

 - 안 됩니다!!

아이들이 일제히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에, 본즈는 뒷목을 잡았음. 벌써부터 대충 예상이 가기 시작했음.

 - ...왜. 시설로 돌아가면 어떻게 되는데?

 - 박사님들은 절대 칸을 치료해 주시지 않을 겁니다. 칸을 실험실로 보낸 뒤, 저 상처들이 다 재생되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시간을 재면서 기록하실 겁니다.

이제는 욕할 기운도 없어진 본즈는, 자기 겉옷을 벗어서 칸의 온몸을 감싼 뒤 공주님처럼 번쩍 안아들었음.

 - 그럼 내 방으로 데려가자. 혹시 누가 물어보면 칸은 나랑 둘이 있다고 해. 아무도 방해하면 안 된다고.



헬기를 타고 돌아가는 시간이 한없이 길게 느껴졌음.

본즈는 칸을 내내 품에 안고 토닥이며 의식을 유지시키려고 했지만, 강화인간이라도 그 출혈과 통증을 견디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음. 마침내 칸이 기절해서 축 늘어지는 순간 본즈는 입술을 깨물며 평정을 지키려 애썼음. 어른인 그가 흥분하면 주변 아이들은 패닉에 빠질 것이었음.

 - 근데 어쩌다 다친 거야? 임무는 평화적으로 끝났다면서.

 -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오는 길에, 공격을 받았습니다.

협약을 맺었다고 해서 모두가 그 결과에 수긍한 것은 아니었음. 칸 일행은 돌아오는 길에, 잔뜩 분노한 그 지역 군대의 습격을 받았음. 칸은 얼마든지 그들을 쉽게 몰살시킬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는 성과를 본즈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그들을 죽이지 않고 제압하려 했음. 하지만 적들은 수가 너무 많았고 무기도 갖고 있었음.

(젠장, 칸...)

본즈는 칸의 창백하게 눈을 감은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울고 싶어졌음.

영겁과 같은 비행 끝에 기어이 강화인간 시설에 도착한 뒤, 본즈는 칸을 안고 자기 방으로 직행했음. 침대에 칸을 눕혀놓는 즉시 본즈는 다시 의사 모드로 돌아갔음.

 - 혹시 실험실에서 약품과 붕대를 훔쳐다줄 수 있어? 내가 필요한 약들을 적어줄게.

 - 약품은 엄격히 관리되고 있어서 반출이 불가능합니다. 저희가 훔쳐오면 발각될 겁니다.

 - 댐잇! 그럼 주방에 가서 술을 가져와. 도수 40도 이상의 증류주로. 내가 술 마시고 싶어서 시켰다고 해. 그리고 얼음도 가득 채워서 가져와야 하고. 그리고 너는...

본즈의 지시를 받은 아이들은 저마다 흩어졌음.

 - 괜찮아. 괜찮아. 괜찮을 거야...

스스로 혼잣말을 속삭이며, 본즈는 기절한 칸의 옷을 전부 벗기기 시작했음. 검게 피가 말라붙은 상의에 이어서 바지까지 벗기는 순간 칸이 움찔거리면서 눈을 떴음.

 - 미, 미스터, 호, 레이쇼.

 - 그래, 그래. 칸. 나 여기 있어.

 - 저, 저, 성공, 했습니다. 아무도, 죽이지, 않,

 - 그래. 잘했어. 이야기 다 들었어. 정말 잘했어.

본즈가 칭찬해주는데, 칸의 표정은 밝아지지 않았음. 창백한 입술이 일그러지고 푸른 눈망울에서 눈물이 흘렀음.

 - 아파, 아, 아파요...

당연히 엄청 아프겠지. 어린 녀석이 얼마나 아플까. 본즈는 진통제조차 놔 줄 수 없는 이 상황을 저주했음.

 - 칸, 칸, 내 말 들어. 이번에 넌 정말 잘했어. 하지만 내가 너한테 하나 더 가르쳐야 했던 게 있어.

칸의 핏기 없는 손을 힘주어 잡으면서, 본즈는 지금 울고 있는 사람이 칸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음. 본즈의 눈물이 뚝뚝 떨어져 칸의 손을 적셨음.

 - 사람이 사람을 죽여도 되는 경우가 딱 하나 있어. 그건 바로 상대방이 먼저 날 죽이려고 공격해올 때야. 누군가가 너나 네 가족들을 죽이려고 한다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상대방을 죽이는 건 괜찮아.

 - 저나, 제, 가족들을, 죽이려고, 할, 때...

 - 그래. 그게 바로 정당 방위라는 거야. 상대방을 죽이지 않고서는 너나 네 가족들이 죽게 되는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는 거잖아. 알았지? 그러니까 이 지경이 되도록 당하고만 있지는 마. 제발. 다시는 이러지 마.

그 때, 힘찬 노크 소리와 함께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음.

 - 미스터 호레이쇼, 얼음 가져왔습니다!

 - 술도 가져왔습니다. 원액 위스키라 도수가 높습니다.

본즈는 서둘러 눈물을 훔치며 문을 열어젖혔음. 아이들이 저마다 물건들을 들고 쏟아져 들어왔고, 본즈는 팔을 걷어붙이며 알콜로 상처 소독과 드레싱을 시작했음.

 - 괜찮아. 칸. 괜찮을 거야. 이 호레이쇼가 구해줄게.

그날 본즈는 새벽동이 틀 때까지 칸을 보살피며 꼬박 밤을 새웠음. 다른 강화인간 아이들에게는 가서 자라고 했지만, 아무도 그 말을 듣지 않고 함께 침대 곁에서 웅크린 채 밤을 보냈음. 가족을 걱정하는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본즈는 말없이 담요를 가져다 꾸벅꾸벅 조는 아이들에게 덮어주었음.




베니칸 칼어빵본즈 본즈칸 칸텀 존해리슨텀 베니텀

* 토스에 따르면, 칸 누니엔 싱은 20세기 말 지구를 정복한 강화인간 독재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전혀 학살을 저지르지 않고, 상대 쪽에서 침략해오지 않는 한 전쟁도 하지 않았던 통치자로 역사에 기록되었음.


삼나더 https://hygall.com/594134380
2024.05.18 03:2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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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특유의 천진난만함과 무지에서 오는 잔인함으로 억장이 무너지는 상황을 너무 잘 그려내서 어린 칸과 본즈를 보면서 같이 억장이 무너질 것 같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참 기특한데...억장이 무너지고...귀엽고 장한데 억장이 무너지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정말 너무 안쓰럽고 마음이 아픈데 이렇게 어긋나고 고통받는 게 좋기도 해서 한 자 한 자 그냥 핥고만 있음
[Code: 9854]
2024.05.18 03:3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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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이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걸 아니까 어른처럼 방법을 알려주는 본즈도 너무 맛있음 하.....센세는 천재야
[Code: 9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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