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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5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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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가 너무 늘어져서 미안합니다... 항상 늦어서 미안합니다... 읽어줘서 고맙습니다...
의인화ㅈㅇ + 개연성 없음 ㅈㅇ + 썰체 ㅈㅇ + 노잼 ㅈㅇ + 두서없음 ㅈㅇ 

사람이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고 하지. 그리고 그게 딱 지금의 너붕의 상황과 맞물리는 설명일거야. 그 짧은 순간에 너붕은 거의 괴성에 가까운 비명을 내지르며 구두를 신을 발로 메가트론의 정강이를 걷어차 버렸거든. 솔직히 메가트론의 입장에서는 간지러운 수준의 저항이었지만 아주 잠깐동안 너붕이 메가트론으로부터 틈을 만들기에는 무리가 없었고, 너붕은 순식간에 메가트론과 거리를 벌렸어.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을 헛디딘 너붕은 이번에야말로 요란하게 바닥을 향해 넘어지고 말았고, 당연하게도 너붕이 벌인 소란 때문에 풀숲 너머의 커플들은 자리를 피한지 오래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금 전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자각이 있기나 한 것인지, 메가트론은 태연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서 너붕을 내려다볼 뿐이었어. 

"이거 무서워서 장난이나 치겠나."
"장난이요? 이 제국의 국왕께서 그런식으로 나오셔도 됩니까? 예?"

아오, 짜증나 진짜!... 거추장스러운 드레스도 그렇고, 지금 자신의 처지가 마음에 들 리가 없는 너붕은 씩씩대며 바닥에 주저앉은 채 메가트론을 올려다보며 그렇게 쏘아붙였어. 그 이야기에 메가트론은 놀라게 했으면 사과한다는 이야기와 함께 여전히 넘어진 채인 너붕을 일으켜 세워주기 위함인지 손을 내밀었어. 마음같아서는 확 내쳐버리고 싶었지만 이 이상 옷을 더럽히고 싶지도 않았고, 이 상황에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이런 호의를 보였을 것 같지는 않아서 너붕은 그를 노려보다 조심스럽게 그가 내민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지. 다행스럽게도 정말 너붕을 일으켜세워줄 목적 이외에는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은 메가트론이었을거야.

하... 이거 세탁은 어떻게 해야하는거야...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흙이나 풀물같은게 드레스에 남아있을 것이 걱정되어 너붕은 손이 닿지도 않지만 애꿎은 드레스의 옷자락을 최대한 툭툭 털어보았지. 그러면서도 메가트론에게 의례적으로나마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네는 것을 잊지 않았어. 그런 너붕을 가만히 바라보던 메가트론은 이제 곧 있으면 춤을 추는 시간이 끝나간다며, 슬슬 돌아가는 편이 좋을거라는 이야기를 꺼냈을거야.

안그래도 그럴거였거든요? 방금 전의 일 때문에 다소 까칠한 대답이 돌아오는 것을 본 메가트론은 장난 한번에 경기를 일으키며 뒤로 나자빠지는 아가씨를 또 놀려먹을 정도로 자신이 악질은 아니라며 태연하게 대답했어. 아, 네... 참 잘도 그러시겠네요... 라는 의미를 담은 시선으로 그를 노려보던 너붕이었지만 그런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을거야. 결국 한숨을 푹 내쉬며 한번 더 그런 장난을 치셨다가는 온 힘을 다해 남자구실을 못하게 만들어 드리겠다며 으름장을 놓고는 그가 내민 손을 잡고 그의 뒤를 따라갔겠지. 

메가트론과 함께 들어온 미로 정원이 그다지 복잡한 구조물은 아니었지만 한밤중이어서 주위가 어두운 데다가 제법 안쪽까지 들어온 탓에 너붕은 슬슬 길이 헷갈리던 참이었는데 메가트론은 마치 왔던 길을 기억이라도 하는 것처럼 아무런 막힘 없이 척척 나아가기 시작했어. 덕분에 너붕은 별다른 힘을 들이지 않고 손쉽게 길을 찾을 수 있었지. 

미로 정원을 빠져나온 직후, 메가트론은 너붕에게 먼저 들어갈 것이냐며 의사를 물었어. 그제서야 너붕은 연회장 안에서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을 사운드웨이브의 모습을 떠올렸지. 한번도 얼굴을 마주한 적은 없지만 이곳에서도 온갖 업무들에 시달릴 그의 모습을 생각하니 절로 탄식이 터져나왔어. 그렇기에 너붕은 뭘 당연한걸 묻냐며, 당신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지금쯤 피를 토하고 있을거라고, 빨리 돌아가보라며 손을 내저었을거야.

"아, 맞다. 이거 다시 돌려드릴게요."

메가트론이 돌아가기 전, 하마터면 너붕은 잊을 뻔 했다며 주섬주섬 무엇인가를 장갑 안쪽에서 꺼내들었어. 바로 메가트론이 마음대로 처분하라고 했던 목걸이였을거야. 그것의 정체를 눈치챈 메가트론은 가만히 목걸이를 바라보다 조용히 입을 열었어.

"자네 마음대로 해도 좋다는게 이런 의미는 아니었네만."
"아뇨, 돌려드릴게요. 가져가세요."
"자네와 나 사이의 신뢰관계가 이정도였던건가?"
"메가트론 님은 이제 국왕이시잖아요. 일개 하녀인 제가 어떻게 국왕께서 주시는 하사품을 몸에 지니고 다니겠어요."
"..."
"그러니까 가져가세요. 전에 주셨던 로브도 오늘은 가져오지 못했지만 꼭 돌려드릴테니까, 오늘은 일단 이것부터 받아주세요."

저 팔떨어지겠어요, 빨리요. 재촉하는 듯한 너붕의 목소리에도 메가트론은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 너붕은 국왕의 하사품을 일개 평민이 받을 수 없다는 식으로 돌려 말했지만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메가트론이 모를 리가 없으니까. 아슬아슬하게 너붕과의 관계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메가트론에게 딱 잘라서 그 어떤 때보다 강력하게 거절의 의사를 표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어. 

그의 관심 덕분에 너붕이 목숨을 구한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 관심은 점차 너붕의 목을 조여올 것이고, 결국에는 현재 유지되는 관계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너붕이 모르지 않았기 때문에 취한 조치이기도 했지. 하지만 당돌한 너붕의 태도만큼이나 메가트론 또한 순순히 너붕의 요구사항에 따라줄만큼 상냥한 인품을 가진 인물은 아니잖아? 그는 지금 당장에라도 다소 강제적인 방법이 되겠지만 너붕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가트론이 지금 당장 너붕의 거절의 의사를 받아들이는 것을 망설이고, 너붕을 강제적으로 취하지 않는 단 하나의 이유는 순전히 그가 너붕을 향해 품고 있는 마음 때문이겠지. 처음에는 호기심이었지만 결국에는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변모한지 오래인, 그 대상인 눈앞의 이 작은 여자아이가 자신을 진심으로 거부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니까. 오랜 세월동안 자신이 마음을 먹고 얻어내지 못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모든 선택에 있어 망설였던 적도 없었던 그였지만 결국 사랑이라는 사소하고 하찮기 짝이 없는 감정 하나만으로 그는 연모하는 눈 앞의 대상을 떠나보내야만 했지. 

진정으로 아낀다면 목줄을 채워놔야 한다는 자신의 이야기와는 달리,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한다면 상대의 자유와 의지를 존중할줄 알아야한다는 자신의 오랜 친우의 이야기가 메가트론의 귓가에 들려오는 듯 했어. 자신의 만족과 상대의 행복, 어떤 것을 저울에 올려야만 할까. 너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그 고민에 대한 답은 뻔하기 그지없지. 한참 침묵을 유지하던 메가트론은 결국 졌다는 듯, 두 손을 들어올리며 너붕의 손에서 목걸이를 가져갔어. 

"도무지 자네에게는 당해내질 못하겠군."
"항상 봐주시는거잖아요. 제가 무슨 재주로 메가트론 님을 이기나요?"

아니, 이젠 국왕님이라고 불러드려야 하나? 어깨를 으쓱 해보이는 너붕과 잠시 눈을 마주하던 메가트론은 이곳은 항상 너붕을 위해 열려있으니 언제든지 찾아오라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보였을거야. 그 이야기에 질색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인 너붕이었지만 말이지. 

"이제 나는 그만 돌아가보도록 하지. 자네는 시간을 두고 돌아오게."
"제가 그정도 사리분별도 못하지는 않거든요?"
"그러고보니 동측의 장미 정원이 잘 조성되어 있더군. 그곳을 둘러보고 오면 딱 적당할 것 같은데, 어떤가?"

갑자기요?... 아니, 뭐 여기에서 어정쩡하게 시간 떼우는 것보다 좋긴 한데... 무슨 이유냐는 너붕의 질문에도 메가트론은 아무런 대답 없이 웃어보일 뿐이었어. 그리고는 밀회는 적당히 즐기라는, 도무지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남긴 채 먼저 연회장으로 돌아가버렸을거야. 
 
---***---

메가트론이 마지막에 한 이야기의 의미를 도무지 알 수 없던 너붕이었지만 우선은 착실하게 그의 권유에 따라 왕궁의 동측으로 발걸음을 옮겼어. 그리고 그곳은 메가트론의 이야기처럼 온 사방이 장미들로 빼곡하게 채워진 구역이었을거야. 사방에서 풍겨오는 장미의 향에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였으니까. 어두워서 사방이 잘 보이지 않던 미로 정원과는 달리 사방이 탁 트여있어서 그런가 은은하게 비춰지는 달빛 아래에서 형형색색의 장미들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어.

음... 벌써부터 정원사 분들의 비명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듯 하군. 아름다운 것과는 별개로 관리하기 고되어 보이는 정원의 구성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기던 너붕은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어. 왜냐하면 이곳에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한 인물을 마주했기 때문이었지. 하지만 상대는 아직 너붕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듯 싶었기에 너붕은 나지막하게 그 이름을 불러보았어. 

"스모크스크린?"
"허, 허니?"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던 것인지, 우두커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던 스모크스크린은 너붕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듯 그대로 뒤를 돌아보려했어. 하지만 어지간히 당황한 모양인지, 그대로 발이 꼬여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제자리에 넘어지고 말았을거야. 그 기사단장 스모크스크린이 당황해서 발이 꼬여 제자리에 넘어진다니... 참 진귀한 광경이네... 그런 실없는 생각도 잠시, 너붕은 조심스럽게 스모크스크린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상태를 확인했어.

"괜찮아? 일어설 수 있겠어?"
"아야야... 괜찮아..."

크게 다친 것은 아닌 모양인지 금새 자리에서 일어날 것처럼 구는 스모크스크린에게 너붕은 잡고 일어나라는 의미로 손을 내밀었어. 그런데 스모크스크린은 그런 너붕의 손을 잡고 일어나려는가 싶더니, 이내 힘을 줘 그대로 너붕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을거야. 아무리 건강하다 해도 체력 단련 같은걸 한 적이 있을 턱이 없는 여성과 젊은 나이에 기사단장이라는 직위에 오른 남성의 힘 차이는 너무나도 명백했기 때문에 너붕은 그대로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스모크스크린의 품에 안기는 자세가 되고 말았지. 

너붕은 어떻게든 스모크스크린의 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스모크스크린은 그런 너붕의 저항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받아넘기며 큰 소리로 웃어보였어. 당황한 너붕은 이러다 누가 보면 큰일난다고, 당장 풀어달라며 몸부림을 쳤지만 스모크스크린은 이쪽은 연회장과 정 반대방향인 데다가 아직 연회가 끝나지 않았다고, 걱정하지 말라며 너붕을 안심시켰어. 하지만 연회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스모크스크린의 이야기에 너붕은 또다른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을거야.

"그럼 너는 왜 지금 여기에 있어? 호위 임무는 어떻게 하고?"
"허니가 안보인다고 옵티머스가 많이 걱정했거든. 나는 이쪽에서 너붕을 닮은 여성을 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온건데..."

방금 전에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너붕을 만났다는 기쁨으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지금에서야 스모크스크린은 너붕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어. 어딘지 모르게 흐트러진 너붕의 머리장식과 미처 다 털어내지 못한 흙과 풀자국이 남아있는 드레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지. 이곳에서 넘어진 걸까? 

하지만 이내 너붕의 옷에 붙어있는 식물의 잎이 이곳에 조성된 식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챈 스모크스크린은 어렴풋이 너붕이 이곳에 온 것은 방금 전이고, 그 전까지는 다른 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어. 그렇기에 너붕이 이곳으로 오기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설명해주기를 바라며 말을 흐린 것이었지만 너붕은 굳이 스모크스크린에게 메가트론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여 그를 신경쓰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메가트론과 함께 있었다는 부분을 생략하고 이야기를 이어나갔어. 

"연회장에 계속 있으면 파트너 찾아서 춤 춰야 하잖아... 나 춤 못춘단 말이야..."
"옵티머스하고 예법교육 시간에 배웠다고 하지 않았어?"
"나 진짜 기본밖에 못해. 그리고 나 거기에서 아는 사람이 너를 포함해도 손에 꼽는데, 모르는 사람한테 춤 신청 받는거 상상만 해도 기빨려..."
"난 허니랑 춤 추고 싶었는데..."
"너 발등 으깨지고 싶지 않으면 그 말 취소하는게 좋을걸."

장난스럽게 대꾸하는 너붕에게 스모크스크린은 너붕 정도의 무게라면 티도 나지 않을거라고 태연하게 대답했을거야. 그리고는 너붕을 품에 안은 채 그대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그대로 너붕을 잔디 위에 내려놓아주었어. 그리고는 정중한 자세로, 너붕에게 한쪽 손을 내밀며 이렇게 물었지. 

"한 곡 추시겠습니까?"

그 이야기에 너붕은 당황해서는 손을 내저었어. 음악도 없는데 뭐 어떡하자고? 그리고 나 춤 못춘다니까? 그 이야기에 스모크스크린은 꼭 음악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대답하더니 그대로 너붕의 손을 잡고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어. 그러면서 너붕이 자신의 허리에 손을 얹고 자연스럽게 자세를 잡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지. 시내의 축제 때마다 사람들이 추는 춤이라는 설명과 함께 스모크스크린은 너붕이 자신의 발걸음을 따라올 수 있도록 해주었어.

처음에는 엉거주춤하게 스모크스크린의 발걸음을 따라갈 뿐인 너붕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격렬해지고 빨라지는 움직임을 어떻게든 따라잡고 있었을거야. 신고 있던 구두가 벗겨질 정도로 격렬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너붕은 쉴새없이 스모크스크린과 함께 달빛과 정원을 조명과 무대 삼아 춤을 추었지.

몇 번씩이고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멀어지고, 스모크스크린의 손길에 몸을 맡기기도 하던 격렬한 춤사위에 결국 너붕이 먼저 나가떨어지고 말았어. 더 이상은 못하겠다며 숨을 몰아쉬는 너붕의 모습에 스모크스크린은 체력을 더 키워야하는게 아니냐며 웃어보였고 그런 스모크스크린의 모습에 너붕은 자신도 정말 정신이 없었던 모양이라며 드레스 자락을 걷어올려 흙으로 엉망이 된 자신의 맨발을 보여주며 웃음을 터뜨렸어. 물론 그 모습에 스모크스크린은 빨리 옷을 내리라며 얼굴이 빨개져서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지만 말이야. 

그리고 너붕은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조금 쉬었다 들어가자며 자신의 옆을 손으로 툭툭 두드렸어. 스모크스크린은 드레스가 더러워진다며 너붕을 일으켜세워주려 했지만 이미 더러워진 마당에 별 의미는 없을거라며 너붕은 태연하기 그지없었지. 결국 떨어진 너붕의 구두를 가져온 스모크스크린은 조심스럽게 너붕의 발의 흙먼지를 털어주고 구두를 신겨준 뒤에야 너붕의 옆에 자리를 잡았을거야. 

이내 너붕은 하늘을 보라며, 오늘은 보름달이 뜬 날이라고 말하며 하늘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어. 너붕의 말처럼 밤하늘 위에는 동그랗게 보름달 하나가 떠오른 채였어. 밤인 것 치고는 주위가 제법 밝다고 느꼈었는데 아무래도 오늘이 보름이어서 그런 모양이었지. 그러다 문득 스모크스크린은 그날 밤, 담담하게 자신의 죽음을 이야기하던 너붕의 모습을 떠올렸어. 그와 동시에 지금 자신의 제복의 주머니 안쪽에 넣어둔 물건의 존재도 함께 말이지. 

스모크스크린은 이 물건을 지금이 아니면 건네줄 수 없다고, 지금이 어쩌면 너붕에게 이 물건에 대한 이야기를 할 적기일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들었을거야. 잠시 망설이던 스모크스크린은 너부에게 지금 할 이야기가 있는데 혹시 들어줄 수 있느냐며 운을 뗴었어. 평소와는 달리 제법 진중한 분위기의 모습에 너붕은 무슨 이야기냐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말해보라며 스모크스크린과 눈을 마주했어.

이제 정말 자신이 입을 열기만 하면, 이 물건을 건네주기만 하면 끝나는 이야기인데, 어째서인지 스모크스크린의 입은 쉽사리 열리지 않았어. 그 이유는 단순했지. 지금 스모크스크린이 하려는 이야기는 이전에 너붕에게 했던, 연인이 되자고 하는 고백 그 이상의 관계를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었어. 그리고 무엇보다 스모크스크린은 너붕이 지금 자신과 같은 마음인지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어.

처음으로 너붕과 데이트를 했던 날에는 다소 섣부른 판단이라는 생각에 어떻게든 아무렇지도 않게 무마할 수 있었지만 지금이라고 그때와 상황이 다른걸까? 자신이 너무 급하게 앞서나가는게 아닐까? 짧은 순간 스모크스크린의 머릿속은 복잡한 생각들로 가득 채워졌을거야. 게다가 너붕의 성격상 스모크스크린의 마음에 진심으로 답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부담감과 스모크스크린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의무감에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역시 못하겠어. 없던 일로 하는게 좋겠어. 그렇게 생각한 스모크스크린은 물건을 꺼내려던 손을 제자리로 돌려놓으며 뭐라고 말을 돌리면 좋을까, 하며 대화의 주제를 돌리려 했지. 그런데 머릿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는 바람에 그만 주마니에서 손을 뺄 때 그대로 주머니에 있던 물건이 밖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어. 그리고 스모크스크린이 그것을 다시 주머니에 돌려둘 틈도 없이 너붕이 그걸 목격하고 만거야. 

바닥에 떨어진 것은 한 손 안에 딱 들어오는 크기의 작은 검은색의 상자였는데, 바닥에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상자가 열리며 그 안에 있던 물건이 빠져나왔어. 너붕의 발치로 굴러떨어진 상자와 물건에 당연히 너붕은 스모크스크린의 물건인 줄로만 알았끼에 그것을 주워주기 위해 손을 뻗었지. 그런데 물건의 정체를 확인한 너붕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어.

왜냐하면 너붕이 주워든 것은 작은 푸른색의 보석이 박혀 있는 얇은 은색의 반지였거든. 스모크스크린의 반지라기에는 그의 손가락에 들어가기에는 턱없이 얇은 굵기의 사이즈였지. 어림짐작하건데, 성인 여성의 손가락에 들어갈 것같은 사이즈였어. ...이거, 내가 생각하는 그, 런건가?... 그런 마음에 너붕은 집어든 반지와 스모크스크린을 번갈아가며 바라보고 있었어. 그런 너붕의 모습에 스모크스크린은 도무지 너붕의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고개를 숙인 채 손에 얼굴을 파묻어버렸어. 최악 중에 최악인 프로포즈라고, 이런걸 생각한게 아니었는데, 자기가 다 망쳤다는 자책과 함께 말이야. 

이제 스모크스크린의 머릿속은 온갖 최악 중의 최악인 시나리오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어. 너붕이 무슨 말을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거든. 부담스럽다고 느끼면 어떡하지?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니라면? 사실 나와 사귀자는 부탁도 내가 불쌍해서, 미안하고 부담스러운 마음에 그런거라면 어떡하지? 그런 너붕으로부터 이건 아니라고, 자신과의 관계는 여기까지로 끝내야 할 것 같다고 거절당하는 상황이 너무나도 두려웠어. 하지만 스모크스크린의 예상과는 달리 너붕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완전히 예상 밖의 것이었지.

"어... 이거 니 물건이야?"
"아, 아니!!! 아니야!!! 그건 허니 네 거!..."

너붕 입장에서는 어색하지 않게 분위기를 풀어보겠다며 한 농담이었는데, 지나치게 긴장한 스모크스크린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자진해서 사실을 고백해 버렸어. 그리고 그제서야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를 알아차리고는 절망과 두려움에 휩싸인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무릎 사이에 묻으며 완전히 너붕의 시선을 피해버렸을거야. 

'완전 망했어. 허니도 나한테 실망했겠지...'

그런데 스스로를 자책하며 고개를 숙인 스모크스크린의 귓가에 너붕의 목소리가 들려왔어. 조용히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에 스모크스크린은 차마 그 다음의 이야기를 들을 자신이 없어서 고개를 들어올릴 수가 없었어. 그래서 스모크스크린은 기분이 나빴으면 미안하다고, 너붕이 부담스럽게 생각한다면 없던 일로 해도 된다고 속사포로 말을 이어나갔을거야. 그런데 돌아온 너붕의 반응은 뜻밖의 것이었어.

"스모크스크린. 내가 왜 부담스러워할거라고 생각했어?"

너붕은 어느새 스모크스크린과 시선을 맞추며 거리를 좁히고는 조용히 그의 이야기를 듣겠다는 듯 눈을 맞춰왔지. 그제서야 조심스럽게 숙였던 고개를 들어올린 스모크스크린은 너붕의 눈빛으로부터 자신을 책망하려는 것이 아닌 의도를 읽어낸 이후에야 우물거리다 입을 열었을거야. 

"...허니 너랑 나의 마음의 속도가 다르면... 어떡하나, 하고 겁이 났어. ...물론, 허니와 연인인 것도 정말 나에게 있어서는 꿈만 같은 일이지만, 그게... 이 이상의 관계가 된다고 했을 때, 허니 너는 어떨지 나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
"그, 그리고!... 이런 프로포즈같은거, 이런거...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꼴볼견이지..."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너붕은 아무말 없이 들고 있던 반지를 케이스에 집어넣더니 그대로 스모크스크린에게 돌려주었어. 이것을 너붕의 무언의 거절이라고 생각한 스모크스크린은 잔뜩 가라앉은 표정으로 너붕이 건네준 케이스를 건네받았지. 그러면서 미안하다고, 앞으로 혼자 앞서나가서 이런 일은 만들지 않겠다며 너붕에게 사과를 하기 위해 입을 열려 했어. 그런데 그 뒤에 이어진 너붕의 이야기에 스모크스크린은 자신의 귀가 잘못된게 아닌가 싶었을거야. 왜냐하면 너붕이 꺼낸 이야기는 고백을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왜 자신이었냐고, 너 정도면 다른 좋은 결혼 상대들이 널리지 않았느냐는 것이었거든. 

너붕의 이야기도 정론인 것인게 스모크스크린 정도의 직업과 얼굴이라면 더 높은 직위의 귀족 여성들과 결혼을 하여 신분 상승을 꾀해볼 수도 있을법하거든. 실제로 스모크스크린에게 연서를 보내오는 여성들도 적지 않았고 말이야. 하지만 너붕의 이야기에 스모크스크린은 화들짝 놀라며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며, 그때도 말했지만 자신의 인생에서 평생을 사랑하기로 맹세한 사람은 너붕 뿐이라며 대답을 돌려주었어.

"아니, 그... 어디까지나 연애, 라고 가정했을 때의 이야기잖아."
"허니..."
"스모크스크린. 나는 너랑 비교하면 진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야. 그냥, 어쩌다보니 여기에 태어나서 조금 특별한 능력을 받았을 뿐인걸. ...지금은 그마저도 없는 일반 민간인이고."
"..."
"다들 내가 제국을 구한 구원자라는 말을 하지만, 그건 온전히 내 능력으로 해낸게 아니야. ...그리고 그 수식어들을 제외하면 난 그냥, 아무것도 아닌 여자애라고."

너붕의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자신이 스모크스크린과 같은 대단한 사람과 이 이상의 관계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 그의 앞길을 막게 될까 두려웠거든. 자신과 연인의 관계인 것이 꿈만 같다는 스모크스크린의 이야기에 가슴이 떨리고, 여전히 그를 사랑하는 너붕이 왜 그 이상의 관계를 맺는 것을 거절하려 하겠어. 하지만 상대적으로 맺고 끊는 것이 쉬운 연인의 관계 그 이상이 되는 것은 자신의 처지에 맞지 않는 욕심을 내는 것이라고 너붕은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거야. 그런데 마치 그런 너붕의 마음을 읽어내기라도 하듯, 스모크스크린은 너붕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겹쳐쥐며 이렇게 말해주었어.

"허니. 그것들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너의 마음가짐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게 아니야."
"아니야, 나는..."
"항상 스스로에게 주어진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다른 누군가를 위해 먼저 마음을 쓰는 그 다정함이 너의 능력인걸."
"..."
"그리고 그 다정함에 이끌리는건 나 뿐만이 아니야, 허니. ...그래서 조바심이 났고, 지금이 아니면 말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가만히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너붕은 조심스럽게 "...그거, 지금 프로포즈 한거야?" 라고 물어보았고, 그제서야 스모크스크린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는 뭐라 횡설수설 말을 수습하려 했어. 하지만 이내 포기한 듯 축 쳐진 듯한 표정과 함께 조심스럽게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반지 케이스를 너붕에게 건네며 "이, 이런 꼴볼견인 프로포즈지만... 바, 받아, 주시겠습니까?..." 라고 입을 열었지.

그런 스모크스크린과 반지케이스를 번걸아가며 바라보던 너붕은 오만 감정이 교차했을거야. 이걸 내가 받아도 되는건가? 감히 나같은게?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제 완전히 자신을 받아들여주고, 함께해주는 누군가가 곁에 생긴다는 안도감이 너붕의 곁에 자리잡았거든. 그다지 짧지 않은 시간동안 알게모르게 이곳의 이들과 묘하게 선을 긋던 너붕의 마음속에 스며든 스모크스크린과의 함께했던 일상들이, 너붕에게 있어 더할나위 없이 값진 시간이 되어버렸지.

잠시 뜸을 들이던 너붕은 스모크스크린에게 내가 이걸 받아도 되는거야? 후회하지 않아? 라고 물었어. 그런 너붕의 질문에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안절부절 못하던 스모크스크린의 표정이 담담하게 가라앉으며 이렇게 말하겠지. 

"허니, 네가 바란다면 몇 번씩이고 말해줄게. 내 인생에 있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이는 너 뿐이야."

그제서야 너붕은 마음을 먹은 듯 스모크스크린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어. 그리고 스모크스크린은 곧바로 반지를 너붕의 왼손 약지에 조심스럽게 끼워주었지. 마치 치수를 재기라도 한 것마냥 딱 맞는 반지의 크기에 너붕이 이런건 언제 준비한거냐며 조심스럽게 물었고, 스모크스크린은 매일같이 잡는 손인데 그런것 하나 모르지 않는다며 천연덕스럽게 대답했을거야. 사실은 너붕이 죽음을 각오하고 스모크스크린과 마지막이 될 뻔한 대화를 나눴던 날 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지막까지 손 끝의 감각만으로 너붕의 약지의 손가락의 굵기를 기억하고 있던 스모크스크린이었지만 그 사실은 구태여 말하지 않기로 했어.

"...그런데 나는 준비한게 없는데?... 반지라던가, 아무것도..."
"나는 이미 받았으니까 걱정하지 마."

어? 뭘 받았다는건데? 하지만 그런 의문도 잠시, 이내 스모크스크린의 입술이 너붕의 입술 위로 조용히 포개졌어. 평소같았으면 부끄럽다던가, 누군가 보면 어떡하냐며 가벼운 포옹 정도만 허락하던 너붕이었지만 오늘만큼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온전한 행복감에 사로잡혀 스모크스크린이 바라는대로 몸을 맡겼을거야.

트포, 트포너붕붕
2024.05.05 16:4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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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센세가 성실프라임이라니
[Code: 5d6c]
2024.05.05 16:43
ㅇㅇ
모바일
센세 늘 존잼이에요ㅠㅠ
[Code: 5d6c]
2024.05.05 19:06
ㅇㅇ
모바일
스모크스크린 마지막까지 허니의 손가락을 손끝의 감각으로 기억하고 있었다니 만약 허니가 돌아오지 못했다면 왼손 약지에 들어가야했을 반지를 맞춰서 혼자 품고 다녔을 거 아닌가
[Code: 58d7]
2024.05.05 19:3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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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항~ 프로포즈 대성공!!!!
[Code: 2056]
2024.05.05 22:5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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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모크스크린 존나 순정남.......
[Code: e14c]
2024.05.08 09:2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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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발 내센세 스뫀이가 숨기던 게 반지였다니ㅜㅜㅜㅠㅠ언제부터 사서 가지고 있던거냐고ㅜㅜㅠ 센세 너무 달달해요...메가카 스뫀이 둘 다 힘 센 거 개좋아....아니 근데 메가카 너무 순애하시는 거 아니냐구요 좋은데 더 집착해줘...변태될 거 같음 메가카 평소 성격이면 망가뜨려서라도 가질 거 같은데 그정도로 사랑하시는거냐구ㅜㅠ 하 삼각 사각이 너무 좋은데 스뫀이랑 둘이 행복했으면 좋겠고 센세 진짜 내 맘이 뭘까? 아 전편에서도 옵머장님 옷 선물하신 거 스뫀이가 눈치챘는데 아무말 안하고 서로 암묵적으로 신경전? 견제한 것도 너무 좋았는데 아 둘이 계속 사이 좋았으면 좋겠는데 머장님 성격으로는 미련을 접고 둘의 행복을 빌어주실 것 같지만 하지만 그럴 거면 옷 선물은 왜하냐고 견제 왜 하는데!!! 머장님은 상메크지만 메가카가 끼어들어서 적극적으로 행동하면 뭔가 달라지시려나...
[Code: f3e2]
2024.05.08 09:3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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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목만 나왔는데 왤케 야하냐 원래 중세근대에서 발목보여주면 이거 완전​( ͡° ͜ʖ ͡°) 섹스어필이라고( ͡° ͜ʖ ͡°) 
[Code: f3e2]
2024.05.09 22:1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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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댓까지 보니까 더 맛도리에요 센세
[Code: 4e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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