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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4 12:57
전체적으로 3막 컴패 개인퀘 엔딩과 에필로그 ㅅㅍㅈㅇ를 달아야할 것 같네...


Baldur's Gate 3_20240427202529.png


 
◈ 뱀파이어 군주의 반려에 관해서 더 알아보기

 

· 나흘 전에 만난 박학다식하고 유쾌한 동료가 발더스 게이트를 장악한 뱀파이어 군주의 반려자라는 것을 알게 됐다. 두려운 일이지만, 동시에 흥미로운 일이기도 하다. 그와 여정을 계속하면 그가 반려의 곁을 떠난 진정한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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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들판에는 이름이 없다.


 

대륙을 전전하던 바람들이, 운 나쁘게 불시착한 종자들이, 갈증에 시달리던 꽃들이, 천적을 피해 달리던 짐승들이, 사냥감을 쫓던 사냥꾼들이, 적을 치려던 병사들이, 소식을 나르던 전령들이, 매복중이던 암살자들이, 경이를 추적하던 모험가들이, 물건을 운송하던 상인들이, 안식처를 찾아 떠돌던 부랑자들이. 헤아릴 수 없는 시신들이 겹겹이 쌓여 흙을 이룬 이 대지는 지도에 명시되는 이름을 가진 것이 없다. 풀밭의 잡초를 한 가닥씩 구분지어 이름 붙이지 않듯 그 땅에서 일어나는 죽음이 너무도 항시적이고, 또한 고독하기에 하나의 표제로 명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뭇사람들에게 '그것' '그곳' 등의 지시대명사로 언급되곤 하는 이 너른 평야는 잊힌 죽음들의 거대한 보관소나 다름없다.


 

너는 턱에 흘러내린 땀을 닦아내며 주변을 둘러본다. 언더다크에서 지상으로 나온지 닷새째. 너희는 이틀 동안 인근의 마을에서 물자를 보충했고, 그후 사흘 동안은 잠을 자고 식사를 하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이동에 할애해가여 이곳까지 도착했다. 너는 네 몫의 천막을 칠 엄두도 못 내고 제자리에 뻗어버릴 것 같다. 젠타림의 운송대원이던 시절 이후로 이만한 강행군에 참여하는 것은 오래간만이라 너는 완전히 기진맥진해져있다.


 

그런 네 사정에 비춰보면 불행히도 오늘밤은 야영지를 조성하기 위한 사전작업이 필요한 모양이다. 너는 신체 부위 중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눈꺼풀을 깜빡이면서 네 일행의 움직임을 구경한다. 제라드는 들판 곳곳에 산재해있는 갑주들을 한데 모으고 있고, 대니는 신앙자로서 떠도는 영혼들을 위한 기도를 올리고 있다. 게일은 근방에서 유일하게 장사를 하고 있는 상인에게서 꽃을 한아름 사들고 돌아오고 있다. 네 역할은 저녁 식사 준비인만큼 동료들의 것에 비해 중요도가 떨어지지 않는다. 너는 숨 넘어가는 기합을 딱 한 번 뱉은 후에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다.


 

"장렬한 전투였을 것 같군요."


 

제라드는 가지런히 모아놓은 갑주의 수를 보고 말한다. 백골이 비와 바람에 풍화되어 흙으로 돌아간 탓에, 그가 무구를 집결시켜놓은 모양은 마치 주인 없는 소지품을 나열해놓은 것처럼 보인다. 너는 이곳을 지나쳤을 숱한 모험가와 장물아비들이 어떻게 이 많은 무구에 손을 대지 않았나 싶다. 하기야, 샤 신도의 흔적과 괜히 엮였다가 재수 옴 붙는다는 속설이 지배적인만큼 미신적인 이유로 두고 간 것일 수도 있다. 


 

너는 종교나 역사와 거리가 먼 사람이지만 그들의 상징만큼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무정한 낯이 그려진 가면과 자연의 빛을 흡수하는 갑옷. 공허로 향하는 통로를 묘사하는 듯한 두 개의 원. 상실의 신을 섬기는 신자들답게 무구의 형상마저 하나같이 귀기가 어려 있다. 저것들을 스스럼없이 옮기고 나른 팔라딘의 무던함이 너는 비인간적으로 느껴질 지경이다.


 

"하필이면 이 들판을 전장 삼은 것마저 참 그 신도들답네, 안 그래?"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아니면 공교롭게도 이곳이 전장이 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추적이 이루어졌던 흔적을 발견했거든요."


 

 그는 네게 석판 하나를 건넨다. 갑주 안에 보관되어 있느라 가까스로 풍화의 손길을 피해간 모양새다. 너는 그 안에 적힌 간결한 지령을 읽는다: 추적하고 죽여라. 변절자의 불결한 육신이 다시 상실의 품에 안기게 하라. 살벌하구만.


 

"어지간히 미움 박힌 변절자였나보네. 떼거지로 몰려와서 죽이려 들었던 걸 보면."


"하지만 그들의 목표물은 대단한 실력자였던 것 같습니다. 샤 신도들의 무구가 이만한 수로 남아있는 것에 반해 그의 흔적은 거의 없다시피해요. 어쩌면 목표물이란 자는 한 명에서 두 명…, 아니면 최후의 생존자가 되어 전장을 빠져나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내린 가설의 경이로움에 혀를 내두른다. "암흑심판관들이라면 샤 신도의 정예 중에서도 일류입니다. 그런 그들과 전면전을 벌여 살아남았다면, 진정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너는 샤의 추종자들이 남긴 흔적들을 집요하게 훑어보지만, 수십년의 시간이란 힘은 가장 뚜렷한 핏자국마저 철저하게 마모시켜 놓은 참이다. 그곳에 암흑심판관 무리에 맞서 맹공을 펼쳤을 전사의 흔적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 너는 무진한 아쉬움을 느낀다. 그런 실력자의 위업이 하필이면 이 이름 없는 땅에 버려져 잊혀지고 있다니, 페이룬의 영웅담 애호가들이 치를 떨만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너는 식재료를 다듬고 불에 냄비를 올려놓고 나서야 게일에게 다가간다. 그는 여전히 묘비 역할을 하는 표식도 없는 자그마한 고봉들에 일일이 꽃다발을 놓고 있다. 너는 이 들판에 처음으로 군락을 이룬 분홍색 꽃들을 내려다본다.


 

"크로커스네."


"상인이 가진 꽃이 이것뿐이더군. 이것이나마 있어 다행이야." 그는 노움의 것처럼 보이는 작은 무덤에 꽃을 내려놓고 몸을 일으킨다. "'죽음은 높은 자나 낮은 자를 평등하게 만든다. 우리는 벌거숭이로 이 세상에 왔으니 벌거숭이로 이 세상을 떠나리라.' 그렇지만 망자에게도 꽃을 품에 안고 길을 떠날 권리가 있지. 이 작은 꽃들이 그들의 여행길을 외롭지 않게 해줄 테니 말이야. 


 

시체의 틈바구니를 뒤져 쓸만한 물건을 찾는 네게 있어 추모란 썩 생소한 개념이다. 하물며 누군가 일면식도 없는 객사자들에게 헌화하는 것을 본 건 처음이기도 하다. 착한 녀석이네. 그나 제라드와 같은 류의 선함은 이 시대에 목격하기 드문 것이다. 너는 보통 네게 이득을 주지 않는 존재라면 죽던 말던 상관하지 않는 주의지만, 게일의 행동을 보고 있다보면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될 것 같다. 


 

네 입술이 통제를 벗어나 달싹 하고 움직인다. 순간 이런 말이 튀어나올 뻔한다: 하지만 너는 언데드잖아.


 

요는 그렇다. 밤의 춤을 엿본 그날 밤, 너와 게일이 있던 방에 거대한 코끼리가 들어왔다. 그 코끼리는 너와 네 동료 사이에 자리잡고 앉아 그 육중한 부피감을 한껏 자랑하는 중이다. 그러나 게일은 마치 그놈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양 평범하게 행동하고 있는 데 반해, 너는 녀석을 흘긋거리다가 눈이 마주치거나 팔 한 짝이라도 실수로 닿지 않기 위해 시시각각 안간힘을 써대고 있는 격이다. 그러다 네가 제 풀에 못 이겨 '코끼리의 꼬리 털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지 않을래?'라는 이야기를 꺼내려 들면, 게일은 늘 그렇듯이 빙긋 웃고는 이렇게 답하는 것이다: '아주 좋아, 더할 나위 없는 논제군! 함께 드래곤본의 혈통에 따른 숨결의 특성과 탈피의 차이로 발생하는 비늘 경도의 다양성에 관해 논해보자고. 마침 관련된 서적도 이만큼이나 있군. 야영지에서 찬찬히 읽어보도록 할까?'


 

한마디로 말해서, 그에게는 너와 진실을 나눌 의사가 전혀 없다. 차라리 다행인 일이다. 그 화제로 넘어가면 네 입이 무슨 뇌 없는 소릴 지껄이기 시작할지 모르니(이미 많이 지껄여버린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간에). 따라서 너는 오늘도 근질거리기 시작한 이를 안쪽에서 꽉 깨물고 침묵을 지켜야하는 신세다. 아직은 이르다. 아직은. 너는 이 주제에 관해 인내를 발휘하고 있는 자신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건 적시에 탐스럽게 익은 과실을 따기 위함일까, 아니면 이 비밀스러운 동료에게 갖게 된 의리 때문일까? 지금의 너로서는 모를 노릇이다. 


 

너는 게일을 도와 마지막 남은 꽃송이들을 헌화한다. 빈 꽃바구니를 갈무리하고 모닥불로 돌아오자 제라드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건너편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를 따라 시선을 옮기니 한 시간 내내 같은 자리에 앉아 기도에 잠겨있는 대니가 있다. 저렇게 오래 무릎을 꿇고 있으면 도가니 아프지 않나. 너는 클레릭들이란 참으로 경이로운 존재라 생각하며 혀를 내두른다.


 

"아직도 기도 중이래?"


"예, 물론 이 땅에는 애도할 영혼이 몹시 많습니다만…. 저렇게 오래 부동자세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보니 걱정스럽군요. 혹시 명상속에서 악한 혼들과 맞서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집니다."


게일이 다른 관점을 내놓는다. "어쩌면 그의 신과 교감하고 있는 중일 수도 있지."


"아침의 군주가 어스름이 내리고 있는 시각에도 찾아오려나?"


"그건 신자만이 알 수 있겠군요. 제가 처음 그와 네버윈터의 라샌더 수도원에서 마주쳤을 때도, 그는 신과 교감하던 중이었습니다." 회상에 잠긴 제라드의 눈매가 부드러워진다. 소중한 것을 보는 듯한, 애틋하게 여기는 이를 보는 듯한 그런 눈빛. "어쩌면 대니는 신앙자 중에서도 그의 신과 가장 가까운 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간혹 그런 '선택받은 자'들이 있기도 하니까요."


"신에게 선택받은 클레릭이라…." 게일의 중얼거림에 네가 고개를 돌리자, 그는 의뭉스러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내젓는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저 옛 생각에 잠긴 회상꾼이 꿈결처럼 내뱉은 혼잣말일 뿐이라네, 친구여."

 



 

너희가 식사를 마치고도 클레릭은 여전히 정물처럼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사실 자고 있는 중인 거 아니야?" "글쎄요, 저런 자세로 꿈쩍도 않고 잠들 수 있다면 이미 어떤 경지에 다다른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신과 담소를 나눌 때는 시간 관념이 다소 희석되기 마련이지. 내 말 믿어, 그는 영광에 잠겨있는 중일 테니까. 괜히 건드려 그가 누리는 기쁨을 방해하지 말자고." 


 

너희는 금방 다른 화제로 넘어가 수런거리지만, 대화는 얼마 지나지 않아 뚝 끊어져버리고 만다. 너를 포함한 세 사람이 놀란 눈을 향한 곳에 대니가 두 다리로 몸을 지탱하는 법을 처음 깨달은 사람처럼 서 있다. 그의 얼굴을 장악한 놀라움은 처음 보는 종류의 것이다. 그가 어떤 감정에 사로잡힌 표정을 지을 줄도 알던가?


 

"대니?"


 

제라드가 의아하게 부른 것이 시발점이었다는 듯이, 대니가 갑작스럽게 어둠속으로 질주한다. 너희 셋은 시선을 마주친 다음 그의 뒤를 쫓기 시작한다. 혹여 그가 어떤 주술적인 것에 홀렸을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휘장처럼 쌓여있는 야음을 헤치고 사방 어디에도 엄폐물이 없는 낭떠러지까지 도달하자-이건 꽤 충격적인 광경이었다고 고백해야겠다-대니가 맨손으로 땅을 파헤치고 있다.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흙더미를 헤집어가며. 창공에서 지상으로 쇄도하고 있는 달빛 탓에 그의 눈동자가 맹목적인 기세로 번뜩이는 것이 보인다.


 

너는 그가 미쳤다고 생각한다. 명상이 그에게 무슨 효과를 불러일으켰는지는 몰라도 단단히 돌아버렸다고, 신과 교감하던게 아니라 어떤 알 수 없는 저주 때문에 돌연히 그의 뇌가 괴질을 앓게 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광견병에 걸린 개처럼 바닥을 파헤치는 기백은 모두가 꼼짝없이 그의 기행을 구경하게 만든다. 너와 동료들이 말문을 잃고 있을 때 기행의 주인공이 마침내 사람다운 문장을 꺼낸다.


 

"그럴 리 없어. 이게 왜 여기에……." 


 

너는 조심스럽게 클레릭의 뒤로 접근한다. 그제야 네 눈에도 대니의 얼굴에 어룽거리는 희미한 광채가 잡힌다. 그것을 감히 무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태양이 낮은 곳으로 강림한 것처럼, 그 철퇴는 가장 심원한 밤에도 선명한 등불이 되어줄 것 같다. 가시 두른 구체에 어린 찬란함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악을 배제할 듯이 그저 눈부시다. 물론 그것이 둔기로서 치명적인 생김새를 지니고 있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문외한의 눈으로도 그 성스러움의 크기를 직감할 수 있으며, 정적인 아름다움에 넋을 놓을 것 같다. 성유물이 발산하는 빛이 다른 의미로 너의 생각을 멎게 만든다. 인간이 빚어내고 신의 광휘가 깃든 작은 기적이 너의 눈앞에 놓여 있다.


 

"기도해야 해."


 

네 정신이 되돌아오는 것보다 대니가 초연함을 되찾는 것이 더 빠르다. 그는 한 시간을 넘게 기도했던 적이 있었기나 했냐는 듯 광야로 나가 무릎을 꿇고 경건한 자세를 갖춘다. 그는 마치 그의 신이 거기에 현현하기라도 한 것처럼 빛의 철퇴를 눕혀두고 묵상에 빠진다. 너는 들짐승이 흙밭을 파먹은 광경을 남겨놓고 기도에 전념하는 그의 모습이 뒤늦게 당혹스러워진다.


 

"야, 잠깐만…. 이거 무덤 아니야? 파헤친 건 다시 원상복구 해놔야지. 이게 누구 무덤인 줄 알고?"


 

그러나 클레릭은 묵묵히 자신의 과업에 전념할 뿐 미동도 없다. 네가 얼이 빠진 낯으로 뒤에 선 동료들을 바라보자, 게일은 그를 이해한다는 표정이고 제라드는 그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듯 난처한 미소를 짓고 있다. 너는 굳이 따지자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쪽에 가깝다. 누구라도 좋으니 이 상황을 해명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네 무언의 요청을 잡아냈는지 게일이 손동작을 곁들어가며 설명한다.


 

"저건 라샌더의 피야. 라샌더의 클레릭들에게 있어서는, 신의 육체에서 나온 파편이나 마찬가지로 고귀하게 여겨지는 유물이지. 중앙에 자리잡은 진홍색 호박 안에 그의 피가 들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말이야." 그는 적절한 비유법을 고심하다가 말을 이어간다. "신격으로 따지면 마스크(*그림자와 도둑들의 신)의 추종자가 그의 검은 가면을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일까. 하긴, 너는 로그일지라도 특별히 믿는 신이 없다고 했었지? 그럼 덜 와닿는 비유일 수도 있겠군."


"흠, 대충 이해됐어. 고마워."


 

신을 향한 감사 기도에 매진 중인 대니를 대신해, 배려심 넘치는 팔라딘이 삽을 들고 나선다. 그는 다 쓰고 버려진 헝겊더미처럼 사방팔방에 흩뿌려진 흙들을 퍼서 무덤의 원래 형태를 복구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너는 그를 도우려 접근했다가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는 몸짓을 받고 멋적게 물러선다. 하늘이 횡으로 베인 자국에서 창백한 빛의 창자가 흘러내리는 밤, 온몸을 적시는 달빛 안에서 기도를 드리는 클레릭은 아침의 군주가 아닌 은의 여인을 섬기는 신자처럼 보인다. 


 

게일은 무덤 곁에 놓인 비석 앞에 무릎을 접고 앉아 있다. 그의 손바닥이 조심스럽게 세월의 더께를 지워내자, 잊힌 과거에서 역사가 드러나듯 음각된 활자들이 획을 드러낸다. 묘비의 전문을 확인한 그는 오래도록 말이 없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뜬 그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다.


 

"…밤의 난초를 구해야겠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빛을 잃지 않은 자

여기 잠들다


 

제네벨 할로우리프

 

 

 



 

 

나 젊었을 때 슬픔에게 말했네

"오라, 내 그대와 놀아주리라."

슬픔은 온종일 내 곁에 있었네.

밤이 되면 그는 돌아와 말했네.

"내일 다시 오리다.

다시 와서 그대 옆에 머무르리다."

 

숲길을 따라 우리 함께 걸어가네.

부드러운 그의 발소리 내 곁에서 사각거리네.

돌아보는 이 없는 목숨 지키기 위해

그는 황량한 헛간 하나 지었네.

그리고 비 오는 날 밤새도록

곁에서 들려오는 그의 부드러운 숨소리 나 듣고 있네.

 

-오브리 드 비어, <슬픔>

 

 

 



 

네 품에서 작은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다. 너는 그를 쓰다듬으며 최대한 진정시키려 하고 있지만, 오늘밤은 네 손길도 무용할 듯하다. 너는 네 오랜 동반자가 안정을 느끼는 부위들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이 험난한 밤의 고개가 지나길 기원한다.


 

"더는 못 버티겠어요, 데카리오스 씨."


 

트레심의 목소리가 바람에 흩날리는 연약한 이파리처럼 떨린다. 너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그의 등을 쓸어내린다. 그의 공포심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네 트레심은 세월의 무상한 흐름 탓에 노쇠해졌고, 유혈이 낭자한 극을 목격하는 행위에 익숙하지 않다. 너는 할 수 있다면 그의 불안감을 뿌리채 걷어내주고 싶다. 그러나 지금의 너는 품에 파고드는 그를 손으로 안아줄 도리 밖에 없다. 너는 그에게 안심을 줄 수 있는 목소리로 입을 연다.


 

"타라, 그는 너를 해치지 않을 거야. 맹세해."


"아뇨, 아니에요! 고작 나 하나의 목숨을 건사하자고 이러고 있는게 아니에요." 타라가 네 가슴을 양 발로 짚고 너와 시선을 맞춘다. 팽창한 동공, 뒤로 젖힌 귀와 수염, 뻣뻣해진 털, 등에 바짝 붙은 날개,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발톱. 모든 외견적 징후가 그의 두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난 그가 당신을 해칠까봐 두려워요. 그에게는 당신을 제 뜻대로 휘두를 수 있는 힘이 주어져 있다고요. 그가 낮의 불쌍한 포로들을 대하는 것처럼 당신을 다루는 취미를 들이면 어떡해요? 지금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그렇게 되면요? 뱀파이어 주인이란 것들은 다 가학적인 행동을 일삼는다고 들었단 말이에요."


"뭐? 아냐, 절대 아니야! 그가 그럴 리 없어.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너는 단호하게 부정한다. 네가 아는 지식이 전부 거짓으로 판별되고 만물의 이치가 역으로 뒤집히더라도, 너는 이 사실 하나만큼은 불변할 것이라 자부한다. "그는 날 사랑해. 그가 날 해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거야, 부탁이니 안심해 줘."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요? 그럼 제가 본 건 뭐였어요?" 


 

타라의 녹색 눈동자에 물기가 어룽진다. 정교하게 엮인 피륙에 칼을 박아 찢어내리는 것처럼, 그의 눈물이 네 심장의 가장 강한 부분을 이지러뜨린다. 


 

"제가 당신이 여기서 도망칠 수 있도록 돕는 데 실패했을 때요. 그때 그가 당신에게 내린 '형벌'은……" 타라가 목을 울리며 탄식하는 소리에 네 살결이 아리다. "……아, 미스트라가 우릴 구해주길. 게일, 그건 신체에 물리적인 고통을 가하는 것보다 끔찍했어요. 그건 엄연히 폭력이었다고요.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아니에요!"


 

너는 두 번째로 한숨을 내쉰다. 트레심의 작은 머리를 붙잡아 가슴에 붙이고, 그가 네 심장이 뛰는 느른한 소리를 듣고 심박수를 맞출 수 있도록 돕는다. "그건…, 그가 그런 방식밖에 모르기 때문이야. 카사도어는 그가 통제에서 벗어나려 할 때마다 제 소유물임을 깨닫게 하기 위해 가혹한 방식을 동원했어. 그가 겪었던 처벌의 강도에 비하면, 내가 그날 받아야 했던 것은 미약하기 그지없는 처사야." 


너는 네가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이백년의 곡절을 떠올린다. 네 반려가 걸어냈어야 하는 길이다. "나는 그를 이해해. 그러지 않을 수가 없어."


"그가 당신의 마음을 끔찍한 죔쇠로 묶어놓고 그 줄을 단단히 쥐고 있군요. 내가 늦은 거에요. 당신 둘은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린 거죠?"


 

타라의 목소리가 가느다랗다. 너는 그의 엉덩이를 받쳐 끌어안고, 작은 실수에도 생채기가 나기 쉬운 비단결처럼 털을 어루만져준다. 그의 털은 건조하고 혀로 핥아도 충분한 기름기가 오르지 않아 푸석하다. 하루의 반 이상을 보금자리에서 웅크려 잠들고, 적은 양의 식사를 오래도록 씹어먹고, 더는 날개의 도움 없이 네 무릎 위로 쉽사리 오르지 못한다. 느리게 꿈뻑이는 그의 눈동자는 때때로 네 형체를 정확히 잡아내지 못하고 희게 짓무른다. 네 부름에 귀를 세우지 않는 그를 볼 때마다 너는 그의 끝이 머잖아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기 어렵다. 너의 늙은 트레심. 너의 동반자. 너의 타라.


 

"당신이 뭐라고 하든 제 생각은 변함없어요. 당신이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는 예전의 그가 아니에요. 그는 미쳐버리고 만 게 틀림없어요. 당신이 피투성이로 돌아왔던 그날부터요. 차라리 당신이 미스트라와 함께하던 시절이 더 나았다고 생각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저는…," 


 

네 손바닥의 반의 반도, 그 반도 채 되지 않는 작은 발이 너의 손등을 감싼다. 생의 마지막 말처럼 그가 간절하게 속삭인다. 


 

"약속해줘요, 게일. 나같은 트레심에게도 작디작게 느껴지는, 당신을 속박하고 있는 이 탑에서 도망칠 기회가 생긴다면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고요. 제발 그러겠다고 말해줘요."


 

그 약속에 승낙을 건넸는지의 여부를, 너는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한다.







아스게일 블러드위브
2024.05.04 13:0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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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고통... 타라아아............ ㅠㅠㅠㅠ
[Code: 3cb2]
2024.05.04 13:1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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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섀하...ㅠㅠㅠㅠ 아 타라...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357d]
2024.05.04 15:2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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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아아앙아ㅏ섀도하트ㅠㅠㅠㅠㅠㅠㅠ타라야ㅜㅠㅠㅠ게일아 ㅜㅜㅠㅠㅠㅠ센세사랑해애애애ㅐㅑ
[Code: 88f6]
2024.05.04 17:1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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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섀하..ㅠㅜ타라ㅠㅜㅡㅜㅠ하ㅠㅜ진짜 찡했어...
[Code: 5aa2]
2024.05.04 17:4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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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에에엥ㅠㅠㅠㅠㅠㅠㅠ
[Code: ba82]
2024.05.05 08:0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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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아파 ㅠㅠㅠㅠㅠ 넘 재밌어요센세
[Code: 56fe]
2024.05.06 03:0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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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 아픈 부분이 너무 많다ㅠㅠㅠㅠㅠ 라샌더의 피 나왔을때부터 섀하 생각하긴 했는데ㅠㅠㅠㅠ 타라ㅠㅠㅠ 타라라면 게일 탈출시키려고 시도할 것 같았음 아 가슴찢어진다ㅜㅠㅠㅠ
[Code: 68a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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